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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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아주 오래 전에 읽었었다.  그리고 서평을 쓰기 위해 오늘 다시 읽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사실이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요, 단순히 블로그에 서평을 올리자고 책을 두 번씩이나...  남들이 들으면 내가 이 책을 낸 출판사로부터 두둑한 보수라도 받는 줄 알겠다.  그러나 나는 그럴 만한 글재주를 지닌 주제도 못 되거니와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마음에 내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며칠 전 막 잠이 들려는 순간에 문득 이 책의 제목이 갑자기 떠올라 선잠을 깨우더니 비몽사몽 간에 머릿속을 뱅뱅 맴을 돌다가 종국에는 또릿또릿한 정신으로 나를 되돌려 놓고야 말았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심정으로 체념하듯 일어나 이 책을 책장에서 꺼냈다.  그렇게 다시 읽기 시작했건만 책의 내용은 한동안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지 못한 채 겉으로만 돌았다.  처음부터 다시, 처음부터 다시 이런 짓거리를 몇 번을 거듭하다가 내가 하는 꼴이 하도 한심해서 결국 잠이 들고 말았는데, 결국 나는 오늘 서평이라도 쓰자는 심산으로 다 읽고야 말았다.  아마도 이 서평을 다 쓸 즈음에는 작가처럼 '왜 쓰는가?'의 문제만 고스란히 남아 내 머리를 다시 어지럽히겠지만.

 

"그렇다면 왜 쓰는가?  사회를 개선시키기 위해?  문학을 쇄신하기 위해?  인류를 사랑하기 위해?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질문과 부정은 계속됐지만, 그 해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1999년쯤이었다.  그 즈음 나는 내게 돈도 명예도 가져다 주지 않을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사회나 문학을 쇄신하는 사상이 담기지도 않을 게 분명한 장편소설을 쓰고 있었다.  퇴근한 뒤,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매일 써내려갔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썼을 때쯤이었다.  컴퓨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더니 밤하늘이 보였다.  문득, 고독해졌다.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오직 그 문장에만 해당하는 일을 나는 하고 있었다.  그 소설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그 소설로 인해 내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그런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저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그 문장뿐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받았던 모든 상처는 치유됐다."    (p.66)

 

글을 쓴다는 것, 자신만의 감정과 자신만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것은 종국에는 누군가에게 읽히고야 말것이라는 막연한 미래를 생각하지 않게 한다.  최소한 글을 쓰는 그 시간만큼은 우주 밖의 또 다른 우주에서 머물며 잠깐 동안의 요양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과 한참이나 떨어진 고독의 밤길에선 청년기의 열정과 아픔, 많은 의문과 분노, 그리고 언뜻언뜻 유년기의 희미한 기억들이 내가 스치며 걷는 담벼락에 아이맥스 영화관의 스크린처럼 생생하게 되살려내는 것이다.

 

"다음날, 이삿짐 트럭을 타고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나는 그 언덕에서의 삶이 내겐 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꽃시절이 모두 지나고 나면 봄빛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천만 조각 흩날리고 낙화도 바닥나면 우리가 살았던 곳이 과연 어디였는지 깨닫게 된다.  청춘은 그렇게 한두 조각 꽃잎을 떨구면서 가버렸다.  이미 져버린 꽃을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p.132)

 

작가 김연수에게 청춘이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애매한 계절'이고 '가장 위대한 물음표'였나 보다.  매미가 허물을 벗고 하늘을 날 준비를 하듯 청춘은 고통과 불안이 병존하는 시기인 것을.  다 지나고 나면 그 시절이 그립고, 가끔 눈물을 찔끔거리게 되지만 그런 청춘의 시기가 있었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양 거리로 나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 여자애와 헤어지면서 그 어마어마햇던 나만의 세계가 완전히 무너져내린 것이다.  나는 내 세계 안쪽 창에 맺힌 슬픔만으로는 부족했다.  비로소 나는 그 바깥의 슬픔에까지도 눈을 돌리게 됐다.  내게는 슬픔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신문을 보다가도, 연속극을 보다가도, 영화를 보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눈물을 흘렸다.  중생들의 고통에 눈물을 흘리던 관음보살의 눈물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건 윤리 시간에 배웠듯이 측은해서가 아니라 관음보살 자신의 몸이 너무나 아프기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었다.  마음에서 비롯한 게 아니라 몸에서 비롯한 눈물이었다."    (p.139)   

 

책의 내용은 작가 김연수가 지금의 나처럼 자신이 사는 폼세가 무척이나 한심하다고 생각했을 때, 책을 읽고 한시를 읽으며, 때로는 하이쿠를 읽으며 그때 그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을 옮겨 적은 것들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어렵고 한심한 때일수록 과거의 기억은 햇잎처럼 더욱 푸르러지게 마련이다.  작가의 글은 떠오르는 상념들과 낡은 기억들로 이루어진 일기에 가깝다.  가끔은 두서없이 쓴 글이 읽는 이의 가슴을 적실 때가 있다.  벽이 없기 때문이다.  더이상 감추거나 꾸미려하지 않는 사람은 자연스레 감동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비록 그의 글이 난삽하여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행간에 드러나는 진실의 향기는 독자의 숨구멍으로 쉽게 빨려든다.  

 

시간이 솔방울처럼 구를 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나의 시간 속으로 누군가 풀벌레의 작은 날갯짓이라도 좋으니 작은 파동을 일으켜주길 간절히 바랬던 사람들은 안다.  슬픔은 시간의 강을 무심히 건너지 말라는 빨간 신호등이라는 것을.  요즘 남과 북의 극한 대치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사람들은 오히려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소식에 마음이 아릿해지곤 한다.  외신에서는 곧 전면전이 일어날 것처럼 연일 급박한 소식을 전해 오는데 정작 당사국의 국민들은 오히려 평온하다니...  나는 그들이 전쟁의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다고는 믿지 않는다.  오히려 하루하루 먹고 사는 문제가 얼마나 중하면 삶과 죽음의 문제가 두 번째로 밀려나는 것일까? 하는 안타까움이 먼저 든다.  남북한의 사람들에게는 전쟁의 문제도 체념하듯 아스라히 비껴가고 있는 것이다.

 

만약 눈물에도 꽃말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쯤 되지 않을까?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는 그때의 슬픈 기억이 먼저 떠오르는 것처럼 눈물은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아닐까?  이 책 <청춘의 문장들>을 읽으며 나는 아픈 기억들을 하나둘 떠올리며 새끼손가락을 깨물어야 했다.  왜 나는 그때 눈물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무심히 걸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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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을 권리 -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강신주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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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요?

돈 문제?  노후에 대한 걱정?  가족?  자녀의 교육?  그도 저도 아니면 밀려오는 생각을 멈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건 아닌가요?  참 우습죠?  형체도 없는 것에 우리가 지배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을 합니다.  어떨 때는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 생각의 주체는 무엇일까요?  생각하는 당사자 자신이라구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철학자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생각의 주체가 오직 그 자신의 의지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서양의 심리학자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에게는 하루에 보통 6만여 가지의 생각이 올라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중 95%가 매일 같은 생각이고 새로운 생각은 단 5%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 대부분은 습관적이고 반복적인 것인데 그것마저도 자신의 의지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생각들, 그리고 그 생각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행위들이 우리들 삶의 팔할을 메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철학의 필요성은 딱 그지점에서 비롯됩니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영역, 왜인지도 모른 채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행위들에 대하여 철학은 그 원인과 대안을 생각하게 합니다.  소설은 드러나고 행해지는 실상을 그저 보여주기만 할 뿐 분석하지 않습니다.  철학자는 현실을 자세히 보기 위해서라도 소설을 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까닭을 생각하고 분석하여 우리와 같은 일반 독자에게 알려줍니다.

 

이 책의 저자인 강신주 작가도 철학자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 책에서 산업자본주의에 매몰된 인간 군상의 실체를 분석합니다.  당연하게도 그의 서술 방식은 문학과 철학을 대비시키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입장에서는 어렵고 지난한 과정이었겠지만 독자들로서는 그렇게 반가울 수 없습니다.  사실 이 책은 현대 철학의 주류를 이루는 구조주의를 이해하지 못하면 읽기 어려운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조주의 학파에서 '개인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의식하면서 말하지만, 동시에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전혀 다른 것을 무의식적으로 얘기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무의식은 한 개체 안에서 그를 이끄는 타자(他者 l'Autre)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의식하는 개인을 온전한 자율적 존재라고는 보지 않는 것이죠.  오히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외부 요인, 이를테면 자신의 환경, 문화, 언어, 제도 등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견해입니다.

 

우리가 습관적이고 반복적으로 하는 자신의 행위를 매번 의식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구조화된 구조, 구조화 되어가는 구조, 또는 내면화된 구조는 우리의 생각과 행위 전반을 지배합니다.  같은 지역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의 지도를 그릴 수 있다면 어쩌면 그 생각의 얼개는 서로 비슷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비슷한 지도를 들고 타인의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다름'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듭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산업자본주의라는 외부 요인이 사람들의 생각과 일상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지 아주 세세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 대해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의 생계의 곤궁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보면 나는 경제적으로 약간의 여유가 있는 셈입니다.  생계에 쪼들린 도시 근로자나 농촌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모든 것들이 사치나 쓸 데 없는 개똥철학으로 비춰질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이처럼 생계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한, 자신의 현실에 직대면할 여유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언젠가는 이들의 불만이 감정적으로 폭발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부르디외의 지적처럼 "현재에 의해 너무 짓눌려서 유토피아적 미래 - 그것은 현재의 성급하고 주술적인 부정이다 - 와는 다른 것을 겨냥할 수 없는 사람들의 자포자기 혹은 마술적인 조급함" 정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p.245)

 

현대 산업자본주의를 지탱하고 유지할 수 있는 근간은 인간의 허영에 기초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본가가 만들어낸 유행에 사람들은 끝없이 현혹되고, 그들을 따라하면 마치 자신도 상류층에 속한 듯한 착각에 빠져들곤 합니다.  저자는 이 책의 3부(매트릭스는 우리 내면에 있다)에서 인간의 허영과 가식을 깊이 통찰했던 파스칼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허영은 사람의 마음속에 너무나도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이어서 병사도, 아래 것들도, 요리사도, 인부도 자기를 자랑하고 찬양해줄 사람들을 원한다.  심지어 철학자도 찬양자를 찾기를 원한다.  이것을 반박해서 글을 쓰는 사람들도 훌륭히 썼다는 영예를 얻고 싶어한다.  이것을 읽는 사람들은 읽었다는 영광을 얻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렇게 쓰는 나도 아마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을 읽을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p.286-p.287)

 

이 책에는 네 명의 문학가와 네 명의 사상가가 등장합니다.  이상, 보들레르, 투르니에, 유하의 작품을 네 명의 사상가인 게오르그 짐멜, 발터 벤야민, 부르디외, 장 보드리야르의 사상과 대비시켜 설명하고 있죠.  느끼셨겠지만 산업자본주의의 초창기 인물에서부터 현대의 문학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인 셈이죠.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시든 소설이든 현실에서 벌어지는 어떤 현상을 분석하거나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보여줄 뿐이죠.  분석하고 밝히는 것은 어쩌면 사회학자나 철학자의 몫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은 단적으로 말해 하나의 고유한 선물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산업자본은 생산력의 증가, 다시 말해 잉여가치를 얻기 위해서 심지어는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일종의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우리 역시 어떤 면에서는 산업자본이 설치해놓은 집어등에 사로잡혀 스스로 교환 가능한 존재라고 받아들이며 체념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보드리야르는 마치 선사(禪師)가 사자후를 토하듯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던 것입니다.  우리 생각과는 달리 "세계는 교환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인간을 포함하여 세계의 모든 것은 "아무데서도 (교환을 위한) 등가물을 갖지 않는"소중한 것들이라고 말입니다."    (p.403-p.404)

 

우리는 때로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주관이나 판단에 의지하여 살고자 하는 사람을 고루하거나 고집불통의 사람쯤으로 매도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제대로 깨우친 사람이라면, 또는 구조주의 철학을 한번쯤 읽어본 사람이라면 오히려 그들을 존경하거나 부러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소한 그들은 오징어배의 집어등에 현혹되어 죽음을 향해 달려가지는 않고 있으니까요.  나는 책을 덮으며 다시 한 번 되묻고 있습니다.  내 생각은 오롯이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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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벌써'라는 말을 아니 할 수가 없다.  새해를 맞은 게 엊그제만 같은데...

매일 아침 산을 오르다 보면 양지바른 곳에서는 이미 진달래가 피었다.  분홍빛의 수줍은 미소와 연록색의 작은 잎들이 혹독했던 겨울을 잊게 한다.  키가 큰 교목들은 여전히 잎을 틔우지 않고 있지만, 버드나무, 싸리나무, 찔레나무 등 키가 작은 관목들은 나날이 푸르름을 더하고 있다.  그렇게 장할 수가 없다.  나는 4월의 생명숲에서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했었다.  더없이 행복한 고민이다.

 

 

어니 J.젤린스키의 글은 봄처럼 따스하다.  언젠가 나는 그의 저서 <느리게 사는 즐거움>을 읽었고, 그때 나는 그렇게 느꼈었다.  그리고 나는 새봄에 그가 쓴 다른 책을 한권쯤 읽어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책이 아니었더라도 그를 다시 떠올렸을지 자신할 수는 없지만 젤린스키의 신간이 나를 미소짓게 한다.

 

 

 

 

 

 

 

 

봄이면 까닭도 없이 여행을 떠나고픈 유혹에 한껏 달뜬다.  꽃 때문이라고, 산나물 때문이라고, 아지랑이 때문이라고 갖가지 이유를 들이대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합당한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  나는 풀이 죽은 채 "그냥, 무작정."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 무미건조한 나의 대답에 작가 변종모는 산나물처럼 알싸한 봄향기를 담아 다채로운 여행의 이유를 속사포처럼 쏟아낼 것만 같다.

 

 

 

 

 

 

 

 

찰스 디킨스의 작품 한두 권쯤은 누구나 읽었을 것이다.  신간 서적들을 뒤적이다 보니 우연처럼 나는 찰스 디킨스를 만났고, 그의 작품에 자석에 이끌리듯 클릭을 했다.  어쩌면 '추억'이라는 아련함이 이 책을 고른 주된 이유가 될 터였다.

 

 

 

 

 

 

 

 

 

꽃을 빼고 봄을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새봄의 팔할은 꽃일 게다.  개나리, 목련, 산수유로 시작된 꽃의 향연은 나와 같은 도시내기에게 익숙한 모습이지만 복수초, 노루귀의 소식은 선뜻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아주 오래 전 아랫목에 배를 깔고 엎드려 밤 새는 줄 모르고 읽었던 어느 책의 꽃들은 지금도 내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 그 향기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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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더 사랑하는 법 (해외편 + 한국편) - 우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일상의 재발견
미란다 줄라이, 해럴 플레처 엮음, 김지은 옮김 / 앨리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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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엄밀한 의미에서 프로 작가에 의해 씌어진 책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 그날이 그날 같은 평범한 일상에서 우리의 이웃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작은 변화들을 특별한 시선으로 담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늘 마주치던 평범한 일상과 우리의 이야기들을 지면으로 만났을 때 잔잔한 감동과 함께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끼게 된다.  왜 그럴까?  책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  누가 강요하거나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책의 저자인 미란다 줄라이와 해럴 플래쳐는 2002년 '당신을 더 사랑하는 법 배우기(Learning to love you more)'란 웹사이트를 개설한다.  그리고 이곳에 과제를 내기 시작한다.  가령 '누군가의 주근깨나 점을 연결해 별자리 그리기',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 써보기', '태양을 사진에 담기', '죽음을 앞둔 사람과 시간 보내기', '최근에 했던 말다툼 적어보기','5학년 때 가장 좋아했던 책 다시 읽어보기', 중요한 날 입었던 옷을 사진으로 찍어보기'등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특별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그닥 어렵지 않은 과제들이다.

 

과제가 진행되는 동안 국적, 나이, 성별, 직업을 초월한 사람들이 마음을 담은 5,000여 개의 답변을 보냈으며, 2009년 5월, 마지막 70번째 과제 '작별 인사하기'로 마감하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과제를 수행하면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오롯이 느끼게 되고, 웹공간에 올려진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을 보면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다.  어두운 방 한 귀퉁이에 놓인 자신은 개별적 존재로서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지만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또 다른 사람들의 일상과 작은 상처들을 확인할 때 우리는 보편적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우리는 더 이상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과제'라는 형식에 참여함으로써 마음을 열고, 타인과 공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쯤 덜어낼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갈수록 유리 조각처럼 파편화되는 우리가 '과제'라는 단일한 목표를 수행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모자이크와 같은 하나의 완성된 작품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인류라는 거대한 작품 속에서 보이지 않는 작은 공간에 위치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지...  

 

"이윽고 그가 떠나야 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가족들은 아직 오지 않은 상태였고요.  그의 손을 잡자 그는 갑자기 온 몸을 떨며 경련을 일으키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손을 잡는 게 싫은 것 같아 손을 놓으려 하자 그는 더듬거리며 내 손을 찾았습니다.  나는 다시 그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우리는 말없이 한동안 거기에 그렇게 앉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곧 그의 곁에 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도록 노래도 하고, 기도도 하고, 말도 건넸습니다.  내가 하는 일 중 가장 좋아하는 대목입니다.  언젠가 내가 떠날 차례가 오면 누군가 내 손을 꼭 잡고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과제 31:죽음을 앞둔 사람과 시간 보내기-캘리포니아에 사는 익명의 간호사)

사람들의 호응과 공감에 힘입어 과제 결과물들을 모아 뉴욕 휘트니 미술관, 휴스턴의 오로라 픽처 쇼 등에 전시를 하기도 했으며, 세계 각국에서 책으로 출간하였다고 한다.  과제들 대부분은 우리가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전쟁을 겪은 사람과 인터뷰해보기(과제 59)'라든가 '낯선 사람들에게 손을 잡게 한 뒤 그 모습을 사진에 담기' 등 녹록지 않은 과제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당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정부에 대해 이야기해보기(과제 61)'와 같은 정치적인 과제들도 있다.

 

과제 44에는 '<나를 더 사랑하는 법> 과제 만들어보기'가 있다.  나는 이 과제에 대해 한동안 곰곰 생각해보았다.  교도소에 방문하여 모르는 수감자 면회해보기?  생각나는 은사에게 편지하기? 아침 운동 중에 만난 사람과 나란히 걸어보기?  딱히 맘에 드는 게 없다.  그래도 즐겁다.  용기를 내어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 그리고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서 특별함을 찾아내는 일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비교되고 비교하면서 '하찮고 보잘것 없음'이라고 단정지었던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게 한다.  세상에 가치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70억의 사람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당신의 삶을 지지하고 응원한다면. 

 

사실, 나는 은둔자에 가까운 타입이다.  전화번호부에 전화번호도 싣지 않으며, 누가 찾아와도 아는 사람이 아니면 거의 문을 열지 않는다.  그런 성격인지라 살아온 이야기를 쓰면서 내 이름을 밝혀야 하는지에 대해 도덕적인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익명'으로 하자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하지만 몇 분 동안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면서, 내 이야기의 지은이는 '행인 2'가 아닌 나 자신이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내 이름을 밝혔다."    ('참여자 후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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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아직 새였을 때 시공 청소년 문학 10
마르야레나 렘브케 지음, 김영진 옮김 / 시공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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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에 앉아 읽을 만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소란스럽지 않아 귀를 기울이면 마치 꽃이 피는 소리라도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마르야레나 렘브케!  발음하기 쉽지 않은 작가의 이름이다.  1945년 핀란드에서 태어난 작가는 연극학을 전공한 뒤 독일로 건너 가 뮌스터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공부했다고 한다.  핀란드 작가의 책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울창한 숲과 크고 작은 호수를 떠올리게 하는 나라.  어쩌면 핀란드식 사우나와 잘 갖춰진 교육제도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야기는 "내게는 '돌이 새였다.'고 생각하는 동생이 한 명 있었다"라는 짧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과거형의 문장이다.  읽기도 전에 짠한 슬픔이 밀려온다.  동생의 이름은 페카.  제왕 절개로 태어난 동생은 합지증과 사시가 있었고 머리는 비딱했다.  보통 사람과는 조금 특이하게 태어난 아이.  동생은 헬싱키의 어린이 병원 '라스텐린나'로 보내졌다.  라스텐린나는 핀란드 말로 '어린이 궁전'이라는 뜻이다.

 

"'제왕'이니 '어린이 궁전'이니 하는 말은 우리에게 굉장히 신비스럽게 다가왔다.  우리는 머릿속으로 아이들만 사는 궁전을 그려 보았다.  그 궁전에는 딸기처럼 빨간 실크 드레스를 입은 어린 공주들과 이끼처럼 푸른 벨벳 바지에 진짜 진주알이 반짝이는 하얀 조끼를 받쳐 입은 어린 왕자들이 살고 있을 것 같았다."    (p.8)

 

페카는 2년 동안 어린이 궁전에 살면서 여러 번 수술을 받았고, 걷기 시작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페카는 걷지 않고 언제나 바닥을 기어만 다녔다.  어느 날 바닥에 떨어진 고기 조각을 삼킨 페카는 다시 병원에 가야 했고, 그 이후 페카는 다시 두 발로 걸었으며 말도 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창조물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페카. 페카는 가족뿐만 아니라 자기가 앉는 의자와 자기 침대, 양말과 양탄자, 할머니의 앞치마와 엄마의 냄새, 그리고 아빠의 수염도 사랑했다.

 

"난 숲을 사랑해.  난 자작나무를 사랑해.  전나무랑 소나무도 사랑해.  그 나무들은 향이 좋으니까.  그리고 나는 꽃도 사랑해.  꽃은 빨갛고, 파랗고, 노랗고, 알록달록하니까.  풀은 초록이라서 사랑하고, 버섯은 모자를 쓰고 있어서 사랑해.  나는 다람쥐랑 개구리랑 애벌레도 사랑해.  하지만 내가 진짜 사랑하는 것은 새랑 돌이야.  왜냐하면 돌도 옛날엔 새였거든."  (p.14 - 15)

 

특별했던 페카도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학교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페카의 친구들은 페카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 날 학교 뒤 공터에서 술래잡기를 하던 도중에 누군가가 페카를 밀어 우물에 빠기도 하였고, 손목시계가 탐나서 주인 몰래 집으로 가져오기도 하였다.

 

"다음 날 페카는 시계 주인에게 시계를 돌려주었으며, 미안하다는 말도 했다고 내게 말했다.

"...하지만 미안하단 말은 걔 듣기 좋으라고 했을 뿐이야.  그래야 누나가 좋아할 테니까.  하지만 난 사람들 기분 좋으라고 거짓말을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그러면서 페카는 원망스러운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p.42-p.43)

 

바다에서 수영을 배우다 잔뜩 물을 먹은 페카가 내뱉은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페카는 '물고기가 울어서 바다에 소금이 녹아 있다'고 했다.  가난했던 페카의 부모님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페카뿐만 아니라 페카의 누나와 형들 그리고 페카의 동생들은 모두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날 날만 기다리던 중 페카가 아팠고 의사는 백혈병이라고 진단했다.  부모님은 이민을 포기했고 떠날 준비를 하느라 이미 살던 집도 팔았던 부모님은 결국 시골로 이사를 했다.  학교도 그만두게 된 페카는 그곳에서 부모님이 기르는 닭과 돼지와 놀았고, 나와 산책도 하거나, 동생 시오나를 돌보기도 했다.  웃지 않는 시오나를 웃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페카 뿐이었다.  부모님은 페카를 치료하기 위해 신선한 간과 간유, 그리고 철분 약을 먹였고 페카도 하루가 다르게 나아지는 듯 보였다.  가족들은 페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한 번 아날리사가 페카에게 물었다.  "넌 언제 죽니?"  페카는 이마를 찡그리면서 한숨을 내쉬더니 대답했다.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그때나 죽을 것 같아."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고, 페카의 엉뚱함과 특이함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선사하는지 새삼 깨달았다."    (p.95)

 

그러나 페카가 백혈병에 걸렸다고 진단했던 의사는 나중에 오진이었음을 시인했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에 페카를 위해 소를 한 마리 선물했다.  그 소가 송아지를 낳았고, 얼마 후 페카의 동생 '야코'도 태어났다.  어느 날 내가 핀란드 일주를 계획하고 여행을 떠날 때 페카는 이렇게 말했다.

 

"다시 볼 거니까 또 만나자고 인사하는 거야.  내가 죽을까봐 겁낼 필요 없어.  누나, 내 생각에 난 절대 안 죽을 것 같거든.  난 돌이 됐다가 새로 변할 거야.  밤이 돼서 달이 뜨고 그래서 슬픈 생각이 들면 지금 내가 한 말을 기억해.  그리고 혹시 돌에 맞더라도 겁먹지 마.  그건 막 새가 되려는 돌일지도 모르니까."    (p.127)

 

페카는 그 뒤로 여러 해를 더 살았고 곂국 가족의 곁을 떠났다.  그리고 가족들은 작은 돌을 찾아서 '네케민'이라고 쓰고 페카의 무덤 위에 올려 놓았다.  네케민은 핀란드어로 '또 만나.' 라는 뜻이다.  

       

마르야레나 렘브케는 장애를 결코 불행하다고 쓰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애틋하고 짠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편견이 얼마나 큰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쓴 작가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가 쓴 또 다른 작품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었다.

 

행복은 작은 것과 적은 것에서 온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는 외롭고 고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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