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 오래 전 우리가 사랑했을 때
앤 타일러 지음, 공경희 옮김 / 창해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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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제의 음산하고 소란스러웠던 날씨에 대해 속죄라도 하려는 듯 어제는 맑고 쾌청하며 조용했다. 정말 그랬다.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불러도 불에 데인 듯 화들짝 놀랄 것처럼. 나는 무작정 떠오르는 추억의 한 장면을 소재로 '만약에 이러이러 했더라면...'하는 식의 상상에 빠져들었다. 지난 과거는 언제나 '만약에'로 시작되는 상상 속의 소설 한 편을 만들어내곤 한다. 그 때문에 무료한 시간이 가볍게 흘러가고는 하지만. 그러다 문득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선택하지 않은 어떤 일, 예컨대 아버지의 장례식에 조문을 왔던 친구에게 감사 메일을 보내야겠다 생각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던 것이 미래의 어느 순간 지금처럼 조용한 순간을 비집고 들어와 '만약에'로 시작되는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때도 물론 상상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가끔 레베카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인생의 길이 갈라졌던 그곳에 되돌아가서 가지 않았던 길을 선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지금은 처음에 선택한 길의 종점에 이른 시점이기는 하지만. 속임수 같았다. 자기 케이크를 다 먹고 남의 것마저 욕심내는 듯했다." (p.268)

 

앤 타일러의 소설 <인생>을 읽고 있노라면 삶은 한없이 조용하고 따뜻하게 흘러갈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오래 전 우리가사랑했을 때'라는 부제가 붙은 이 소설에서 작가는 특별하지 않은 한 여인의 보편적인 삶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인생에서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 과연 무엇인지,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인생에는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행복들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 깨닫게 한다.

 

소설에서 주인공 레베카는 대가족을 이끄는 안주인으로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낸다. 전도 유망한 대학생이었던 레베카는 '오픈 암스'의 주인이었던 조를 만남으로써 그녀 인생의 모든 것이 바뀐다. 같은 동네에서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랐던 '윌'과 결별하고 딸 셋이 딸린 이혼남 '조'와 만난 지 2주만에 결혼한다. '조'와 레베카 사이에서 딸 한 명이 더 태어났고 시어머니가 죽은 후에는 홀로된 숙부까지 떠맡는다. 열다섯 살의 나이 차가 나는 남편 '조'가 결혼한 지 6년만에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죽는 바람에 레베카는 딸 넷과 숙부, 어린 시동생을 돌보는 처지가 되었다. 장성한 딸들이 모두 결혼하고 집에는 이제 숙부와 레베카 둘만 남았다. 숙부는 이제 100세를 눈앞에 두게 되었고 레베카도 여러 명의 손주를 둔 할머니가 되었다.

 

남편의 사업체였던 '오픈 암스'는 사람들에게 파티 음식과 장소를 제공하고, 파티의 성격에 맞게 '오픈 암스'를 장식하고 파티의 진행도 맡는 일을 한다. 레베카는 파티 예약에서부터 파티가 끝나는 순간까지 모든 것을 관리한다. 첫째 딸 비디와 함께 파티 의뢰인의 음식을 준비하고, 필요할 때마다 레베카를 찾는 딸과 사위들, 그리고 어린 손주들을 응대하고, 몸이 편치 않은 숙부도 돌보아야 한다. 끝이 없어 보이는 일상에 지쳐버린 레베카. 그녀는 어느 날 시동생에게 숙부를 맡기고 고향에서 홀로 사는 친정 어머니를 찾는다.

 

"어린 시절을 보낸 방에서 옷을 벗고 치마 잠옷을 걸치면서 과거의 자기가 이 모습을 봤다면 얼마나 숨막혔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예전의 레베카는 거울에 비친 이 여자를 몰라보겠지. 옥수수 수염 같은 머리칼이며, 아무렇게나 빚어진 듯한 얼굴하며. 예전의 레베카는 조심성 없이 발을 질질 끌며 침대로 다가가는 이 여자를 모른다 하리라." (p.118)

 

우리는 이따금 가족 행사에서 오랜만에 만난 조카를 보며, 우연히 나간 동창회에서 친구의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과 처진 피부를 보면서, 또는 거울 속에 비친 낯선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지난 시간을 압축 파일로 배달 받은 것처럼 당혹스러운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때의 느낌은 쓸쓸하거나 공허하다. '겨우 이거였나?' 하는 자조 섞인 물음이 저절로 튀어나오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삶이 계속되는 이유는 자신의 과거를 공유한 가족들의 사랑과 같은 시간을 지나온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 덕분이 아닐까 싶다.

 

레베카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고, 결혼까지 생각했던 '윌'에게 전화를 한다. 그는 젊은 아내와 이혼하고 현재는 혼자 살고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레베카는 한때 사랑했던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되돌아가 새로운 삶을 새로 시작할 수 있지나 않을까 기대에 부푼다. 레베카의 가족을 '윌'에게 소개하고, 레베카도 '윌'의 전부인과 함께 살고 있는 '윌'의 딸을 만나지만 그녀는 결국 '윌'이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남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소설은 파피 숙부의 100세 생일을 맞아 가족 모두가 모인 성대한 가족 파티의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파피 숙부의 이 말은 인상적이다.

 

"난 늘 조에게 '봐라. 똑바로 봐. 진정한 인생 같은 건 없단다. 어떻게 끝내든 자기가 마무리짓는 게 진정한 인생이야. 갖고 있는 걸로 최선을 다할 뿐이지.'라고 말했지." (p.363)

 

소설은 늘 '만약에'로 시작된다. 한가하고 무료한 순간,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시작되는 소설. 다른 것에 밀려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과거의 어느 시점을 배경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이 펼쳐지는 것이다. 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소설, 결말 없는 삶의 유희가 아닌가. 그림 속의 인물처럼 생명이 없는, 오직 상상의 세계에서만 펼쳐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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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도토리가 풍년이다. 도시에 살고 있으니 다른 농작물의 작황은 알 길 없지만, 매일 아침 오르는 등산로 주변에서 간밤에 떨어진 도토리들이 조약돌처럼 흩어져 있는 모습을 거의 매일 보게 된다. 내가 다니는 등산로에는 참나무가 특히 많다. 상수리 나무며 갈참나무, 이따금 보이는 굴참나무까지. 그러나 작년에는 태풍 탓이었는지 가을이 다 가도록 이렇게 많은 도토리를 본 적이 없었다.

 

이제 막 도토리가 떨어지기 시작했을 무렵, 올 겨울에는 산 속 짐승들이 먹을 것 걱정없이 지낼 수 있겠거니 좋아했었다. 그러나 웬걸, 하루가 멀다 하고 도토리 줍는 인파가 늘어나더니 어찌나 헤집고 다녔는지 온 산이 운동장처럼 변해버렸다. 숲의 관목들이 밟히고 부러지는 건 예사고 쌓였던 낙엽도 사람들의 발길에 부숴지고 다져졌다. 정말 화가났다. 어찌 이럴 수가...

 

얼마나 도움이 될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며칠 전부터 등산로에 떨어진 도토리들을 주워 등산로에서 멀리 던지곤 하였다. 어찌나 여러 번 던졌는지 어깻죽지가 결릴 지경이었다. 내가 숲으로 던진 도토리들을 어느 악착같은 사람이 발견하여 그마저도 다 주워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맘이 편치 않을 듯 싶었다.

 

내가 찾는 등산로 초입에는 등산로임을 알려주는 나무 계단이 있다. 시에서 만들어 놓은 계단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사람들은 계단보다는 계단 주변에 심어 놓은 어린 벚나무 묘목 사이로 지나다니곤 하였다. 그 바람에 새로운 등산로가 생긴 셈인데 이게 영 마뜩지 않았다. 한두 명 지나다니는 거야 그렇다 치지만 수많은 등산객들이 밟아대면 땅이 금세 굳어지고 이내 벚나무의 뿌리가 드러날 게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보다 못한 나는 근처의 묘지 주변에 베어 놓은 아까시 나무를 끌어다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막아 놓았다. 그러나 주말의 휴일이 지나고 나면 내가 옮겨 놓은 아까시 나무가 저만치 치워지곤 하였다. 나는 또 다시 옮겨 놓았고.

 

내가 이렇게 하는 데에는 어떤 도덕적 이유 때문이라거나 우리의 환경을 후대에 물려줘야겠다는 등의 거창하고도 윤리적인 목적, 또는 환경운동의 일환으로라기보다는 내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이다. 나는 정말로 산을 좋아하고, 그런 까닭에 적어도 내가 보는 이 아름다운 풍경을 더 오래도록 보고 싶은 강한 욕심이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모처럼 비가 내렸다. 가을비라고 하기에는 요란한. 아무도 없는 산길을 호젓하게 걸었고 유난히 많은 도토리를 숲으로 던지느라 예정보다 오래 걸렸다. 사람들의 욕심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욕심은 정말 무서운 데가 있다. 도토리를 주워다 무엇에 쓰려고 하는지 요즘은 남자들도 배낭을 매고 산을 오른다. 아주 오래 전, 우리나라는 일 년에 20~30만 마리의 다람쥐를 잡아 외국에 수출한 적이 있었다. 단지 귀엽다는 이유로. 몸에 좋다는 이유로 개구리와 뱀의 씨를 말리기도 했다. 이런 추세라면 집에 쌀밥을 두고 개사료나 개껌까지 넘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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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여행 - 헤세와 함께 하는 스위스.남독일.이탈리아.아시아 여행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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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은 그 사람의 삶 전체를 관장하는 것이지만 일상에서 그것을 감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일상에서 한 사람의 모습은 그저 처세나 임기응변, 인간성, 지적수준 등 삶의 기교와도 같은 비교적 가벼운 것들만 드러날 뿐 그에게서 철학적 울림과도 같은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찾아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개인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은 은밀하고 사적인 것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가 꼭 그렇게만 볼 수 없는 까닭은 자연의 품에 안긴 고독한 영혼은 스스럼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뒤섞이며, 홀연 자신을 잊은 채 자연과 하나 되기에 이른다. 자연 속에서 자신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아무런 부끄럼 없이 드러낼 수 있는 한 인간의 모습은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가. 하지만 자연 속에서 느꼈던 자신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우리에게 말과 글로 전하지 않는 한 그것은 전설처럼 떠돌 뿐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되지는 않는다.

 

여행은 그런 것이어야 한다. 일상의 체험이 아닌, 한 인간의 영혼과 자연의 만남, 처음으로 마주하는 자신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대한 응시, 자신의 총체적인 삶을 계획하는 밑그림, 그 모든 체험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자신이 비로소 자연의 일부로 편입되었음을 인식하는 황홀한 경험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대 인간의 교류가 아닌, 영혼과 자연의 강한 입맞춤이어야 한다.

 

"여행의 시학은 일상적인 단조로움, 일과 분노로부터 휴식을 취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우연히 함께하고, 다른 광경을 관찰하는 데에 있다. 여행의 시학은 호기심의 충족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체험에, 다시 말해 더욱 풍요로워지는 데에, 새로 획득한 것의 유기적인 편입에, 다양성 속의 통일성과 지구와 인류라는 큰 조직에 대한 우리의 이해 증진에, 옛 진리와 법칙을 전적으로 새로운 상황에서 재발견하는 데에 있다." (p.36)

 

<헤세의 여행>은 가볍고 경박한,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천박하기까지 한, 여행에 대한 현대인의 잘못된 생각들을 돌아보게 한다. 일상에서 느끼는 경제적, 육체적 부담에서의 일시적 해방, 이제껏 가본 적 없는 어느 바닷가의 일출, 고지대에서 바라보는 멋진 풍광, 오직 그것만이 다인 양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사진을 찍어대는 현대인의 여행은 그것이 여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장소만 바뀐 일상에 가깝다고 느끼게 한다.

 

사실 유럽의 작가 중에 헤세만큼 동양적인 작가도 드물 것이다. 그의 외삼촌이 불교연구의 대가였던 까닭도 있겠지만 그가 동양적인 사고의 유럽 작가가 된 데에는 수없이 많았던 여행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에게 여행은 삶의 목적이자 전부였다. 자신을 방랑자나 유목민으로 이해하는 헤세는 여행은 단순히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닌, 순수의 자신에게 이르는 고행의 한 방편으로 여겼던 듯하다.

 

“여행은 언제나 체험을 의미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정신적 관계를 가질 수 있는 환경에서만 뭔가 가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가는 즐거운 소풍, 어떤 음식점 정원에서의 유쾌한 저녁, 멋진 호수 위에서의 증기 기선 여행은 그 자체로 체험이 아니고,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 못하며, 계속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자극이 아니다.” (p.33)

 

헤세의 여행은 일견 구도자의 그것처럼 따분할 수 있다. 자신을 포기하는 단계에 이를 때까지 그는 자신의 글에서 솔직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때로는 낭송을 목적으로, 때로는 휴식을 목적으로, 집필을 목적으로, 또는 지인을 만나기 위해 계속되었던 여행에서 그가 품었던 소회는 우리가 갖는 여행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그가 여행 중에 남긴 담백하고 아름다운 글 속에는 자연을 관조하고 자신을 살피는 대문호의 겸손함이 묻어난다.

 

"나는 오늘날 우리 같은 사람들이 쓰는 글은 그것에서 오늘날 장기간에 걸쳐 하나의 형식과 문체, 하나의 고전이 생겨날지도 모른다는 데서가 아니라 궁핍을 겪는 우리에게 최대한 솔직해지는 것 외에는 다른 도피처가 없다는 데에 가치가 있을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솔직함과 고백, 최종적인 자기포기에 대한 요구와, 다른 한편 젊은 시절부터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아름다운 표현에 대한 요구, 이 두 가지 요구 사이에서 내 세대의 전체 문학은 절망적으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자포자기에까지 이르는 최종적인 솔직함을 지닐 용의가 있다 해도 그런 솔직함을 위한 표현을 어디서 발견한단 말인가?" (p.437)

 

헤세의 여정은 니탈리아,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보덴 호수, 뉘른베르크 등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했지만, 그의 여행은 언제나 자연과 자기 자신, 인간과 삶에 대한 관조, 그리고 문학에 대한 열정 속에 있었다.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주는 것이다.” 라고 한 '아나톨 프랑스'의 말은 헤세의 여행이 주는 또 다른 교훈이다. 삶의 향기가 묻어나는 책, <헤세의 여행>은 그런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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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부와 여당이 하는 행태를 보면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는 생각이 아니 들 수 없다.  정말 가관이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식의 태도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낸 정부는 군사 독재정권 이후에 본 적이 없다.  일일이 나열하기도 싫은 정부 발표가 뉴스의 메인을 장식한다는 게 부끄럽고 참담할 뿐이다.

 

주민세 인상, 자동차세 인상, 담뱃값 인상, 쌀 수입 전면 개방, 손주 교육비 1억 면세 발의, 가업 상속세제 개편, 의료 원격 진료 강행, 공무원 연금 및 공기업 개혁 강행 등 그동안 간절히 원했지만 정황상 미뤄두기만 했던 것을 하나씩하나씩 쏟아내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이 다 나쁘다는 게 아니다.  공무원 연금이나 공기업 개혁은 일부 손볼 부분이 있다.  인정한다.  이것 말고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게 과연 있는가.  이런, 젠장!  도대체 그들은 누구의 동의를 거쳐 진행하는 일이란 말인가.

 

절대 불가! 라는 팻말을 붙인 항목도 있다.  세월호 특별법.  수사권, 기소권은 절대 줄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저들의 이익이나 불편한 진실을 감추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강행하겠다는 얘기다.  그들에게 국민의 안전이나 복지는 안중에도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국가의 존재 이유도,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조세의 근거도 사라지는 것이지만 그들의 뻔뻔함은 이 모든 것을 무시할 뿐이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국가의 명운이 다하거나 권력이 사라질 때의 공통점은 국민에게 과중한 세금을 지운다는 것이다.  그들이라고 이를 모를 리는 없을 터, 그럼에도 밀어붙이겠다는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7.30 재보궐 선거의 승리, 지리멸렬한 야당, 부당함에 저항하지 않는 국민의 무기력 등이 아닐까 싶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참으로 참담하다.  외국을 나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자국민의 안전이나 자국민 보호에 관심이 없는 나라를 순위로 매긴다면 대한민국이 단연 1등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이런 나라를 모국이라고 믿는 나도 참 한심한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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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9-23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입니다.

꼼쥐 2014-09-23 13:45   좋아요 0 | URL
흔적 님 칭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어요.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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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꾸만 딴짓 하고 싶다 - 중년의 물리학자가 고리타분한 일상을 스릴 넘치게 사는 비결
이기진 지음 / 웅진서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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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와 골동품 수집과의 상관관계, 교수와 동화 작가의 조합, 또는 물리학 교수와 만화 그리기의 연관성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러한 조합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굳이 하겠다는 데 말릴 까닭도 없지만 첨단 과학을 연구하는 물리학자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또는 50대 중반의 가장이 저지른(?) 일 치고는 왠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의 저자인 이기진 교수는 조금은 특이한 물리학자이다. 내가 상상하는 물리학자는 흰 가운을 걸친 깔끔한 차림새로 연구실은 늘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허튼 농담이나 실없는 말은 일체 입에 담지 않고, 집에서도 독서와 연구에 매진하는 그런 모습이다. 물리학자에 대한 편견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나의 생각은 이제껏 변한 적이 없었던 듯하다. 그러나 대개의 일반인이 가졌음직한 이러한 편견을 이기진 교수는 단번에 깨트린다.

 

연구실 한켠에 군데군데 서있는 깡통 로봇과 벽면에 붙은 엉뚱한 그림들과 이빨이 나간 백자며, 부엌에 있어야 할 조리기구며, 홍차를 거르는 기구며, 출처가 궁금한 호랑이 조각상이며, 심지어 낡고 허름한 개집까지. 이건 뭐 시골집 창고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그런 너저분한 연구실을 학기에 단 한 번 정리하고, 입는 옷도 1년에 한 번 몰아서 산다고 하니 그의 가족이나 지인들은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이 사람을 너그러이 용서하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그렇지 않은가. 웬만한 사람이면 대개 직장과 가족이 생기는 순간 자신이 몰입하던 취미와 결별하고, 새로운 환경을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게 일반적이지 않은가.

 

"취미 생활은 연애와 같다. 애정과 관심에 따라 취미의 깊이가 달라진다. 조금 눈길을 멀리하면 토라져 버리고, 만남이 뜸해지면 헤어짐의 아픔을 당하기도 한다. 물질적으로 투자를 하면 둘 사이는 럭셔리해지고 급격하게 친밀해지기도 한다. 가끔 삼각관계에 휘말리기도 한다. 둘 중 한 사람을 버려야 하는 불편한 상황처럼, 애지중지하던 취미를 멀리하고 새로운 관심사로 갈아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헤어진 애인의 편지와 선물을 처리하듯, 취미 생활에서 구입한 물건들이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폐기물처럼 방치되기도 한다." (p.87)

 

실험실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온갖 상상의 날개를 펴고 '딴짓'에 몰입할 수 있는 사람. 저자 이기진은 그런 사람이다. 내전중이던 아르메니아 공화국에서 보냈던 젊은 시절, 그곳에서 사귀었던 오래된 인연, 다락방 생활을 감행했던 프랑스 파리에서의 생활, 지도교수가 맘에 들어 7년을 보냈던 일본. 글을 못 읽어 학교까지 그만두어야 했던 초등학교 2학년의 어린 소년은 물리학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오래된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시간이 켜켜이 쌓인 물건에 탐닉하며, 추억의 장소를 찾는 어른이 되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어린 시절의 환경, 부모님, 친구들,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저자를 자극하고 부추겼으리라. 대학생 시절부터 다니던 술집을 몇 십 년째 드나들고, 매일 같은 시각에 들르는 커피점, 수없이 드나들던 고미술 상가와 벼룩시장, 그의 주변에는 온통 '오래된 것들'만 넘쳐나는 것이다. 창성동에 마련한 한옥을 혼자만 즐기는 게 아쉬워 현재는 갤러리로 쓰고 있다는 저자.

 

나는 저자의 삶이 은근 부러워진다. 매시간, 매분, 매초, 매순간마다 미끄러지듯 흘러 다시는 되돌릴 길 없는 추억의 지하동굴에 저장되는 삶의 나락에서 우리는 그 지하동굴에서 건져 올린 추억에 나른한 감상을, 명징한 느낌을, 때로는 상큼한 쾌감을 적당히 섞어 행복이라는 삶의 와인을 들이켜곤 한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제대로 즐기고 즐길 줄 아는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세월을 거슬러 뭔가 상상하게 만드는 물건. 너무 많이 팔리는 바람에 벼룩시장에서조차 가장 싸게 구입할 수 있는 물건. 이런 물건을 오브제로 생각하며 사는 모습. 이런 풍경이 나는 좋다." (p.269)

 

삶이란 결국 다양한 경험을 첨가한 사유의 칵테일이 아닌가. 어떤 경험, 어떤 첨가물을 넣을지 결정하는 일은 순전히 본인에게 달려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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