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신경숙 작가의 표절 사태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엉뚱하게도 '아, 신경숙 작가는 여전히 젊구나' 하는 것이었다. 표절을 주장한 이응준 작가도 참 까칠하다거나 신경숙 작가가 잘못했다거나 하는, 사태의 본질에 대한 내 자신의 어떤 의견이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보다는 오히려 신경숙 작가가 아직은 젊구나 하는 생뚱맞은 생각이 먼저 들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사실 나는 신경숙 작가의 소설을 좋아한다. 말하자면 나는 그녀의 애독자인 셈이다. 꼭 그렇다고 해서 작가의 표절 의혹에 대해 의견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말이다.

 

작가가 젊다고 생각했던 까닭은 그녀의 물리적인 나이도 나이려니와(사실 그녀는 53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를 먹었다) 그정도 나이가 되었으면 세상 이치를 어느 정도 알 만도 할 텐데 여전히 젊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인생이란 어차피 나와 세상과의 한판 싸움이다. 그러나 지는 쪽은 항상 나라는 사실이다. 삶에서 배우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수백 번, 수천 번 지고, 그로 인하여 상처 받고,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아파보았으면 이제 세상에 맞서 싸우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만도 한데 작가는 여전히 세상과 맞서려 했다는 것이다. 물론 마지못해 사과를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말한다고 해서 내가 생각하는 내 자신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지 않고 버틴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사죄하지 않고 버티면서 너희들은 너희들, 나는 나 따로 분리되어 사는 방법과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할지라도 미안하다, 죽을 죄를 지었다 사과하고 그들이 용서하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 방법이 그것이다. 잘못했다고 싹싹 빌고 사과함으로써 그들의 생각을 바꿔볼 요량이었다면 그 사람은 아직 세상을 덜 산 사람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오직 시간과 환경에 의해 바뀔 뿐 내 사과의 말 한 마디로 금세 바뀌는 건 아니다.

 

이런 이치를 알고 나면 세상 살기가 조금 편해진다. 그들이 나에 대해 믿고 생각하는 대로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옳다고 인정해주면 된다.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고 세상과 싸울 일도 없다. 그보다 편한 방법을 나는 지금껏 보지 못했다. 황희 정승이 했듯이 당신도 옳고 또 당신도 옳다고 인정하면 된다. 굳이 나를 내세워 분란을 만들 이유는 없다. 그렇게 한다고 하여 나에 대한 세상의 인식이 바뀌는 건 결코 아니다. 다들 경험해 보았겠만 내가 아무리 얼르고 구슬른다고 해도 가장 사랑하는 배우자의 생각조차 바꾸지 못한다. 평생 동안 말이다. 다만, 내가 배우자의 생각을 무작정 인정하면 그 순간부터 배우자의 생각도 바뀌기 시작한다. 참, 신기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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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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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 안에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일들과 마주칠 때면 아직 오지도 않은 가까운 미래를 향해 심통 사나운 노크를 해대곤 한다. 물론 그 시발점은 언제나 나의 게으름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말이다. 예컨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날, 한동안 미루기만 했던 방청소를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거나, 몇 개 되지도 않는 밥그릇을 적당히 돌려가며 사용하다가 이제는 그마저도 어렵게 되었다고 판단될 때, 우렁각시도 기대할 수 없는 나는 내 손으로 직접 설거지며, 빨래며, 청소 등등을 말끔하게 끝마치고 식탁에 느긋하게 앉아 냉커피 한 잔을 달게 마시는 장면을 상상하곤 한다. 이를테면 나는 김칫국부터 마시는 셈인데 그렇게 하고 나면 이따금 움직거릴 힘이 나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긴 기다림 끝에 내리는 단비처럼 야금야금 아껴가며 취해야 할 대상인 듯 여겨져 상상도 가끔 미안해진다. 내가 상상한다고 그 달콤한 기분이 쉬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동시에 예술가로도 이름이 난 박상미를 알게 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번역을 맡았던 그녀에게 큰 빚을 진 셈이었다. 게다가 나는 번역 문체를 꼼꼼히 따지는 까탈스러운 독자가 아니던가. 박상미 작가는 줌파 라히리의 소설에서 풍기는 차분하고도 따뜻한 느낌을 무리없이 제법 잘 표현했었다. 영어로 씌어진 작품을 한글로 번역하는 일이 영어만 잘한다고 생각처럼 쉽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작가로서의 기질과 섬세한 감성뿐 아니라 뛰어난 한글 실력이 덧붙여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신작 <나의 사적인 도시>를 읽는 내내 여동생 생각이 났다. 1996년 대학을 졸업한 후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뉴욕으로 갔다는 작가와는 달리 여동생은 그보다 늦은 2003년에 단순히 그곳에 살기 위해 뉴욕으로 갔다. 같은 도시에 살고는 있지만 그 큰 도시에서 동생과 작가가 서로 안면이 있을 것이다 장담할 수만은 물론 없다. 애 둘을 키우며 이제는 완전한 미국 아줌마의 태가 나는 동생은 지난해 있었던 아버지의 장례식에 뒤늦게 참석했었다. 그 자리에서 동생은 꺽꺽 울음을 삼키며 대상도 없는 누군가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되내었었다.

 

작가가 말하는 '사적인 도시' 뉴욕은 그야말로 '사적'이다. '사적인 도시'를 나는 '고향'과 '여행지'의 중간쯤으로 인식한다. 그것은 삶의 권태와 익숙함에으로부터 살짝 벗어난 낯섦과 긴장감이 상존하는 공간일 터이다. 작가에게 뉴욕은 딱 그런 곳이다. 삶의 무게는 느껴지지 않지만 여행자의 외경과도 사뭇 거리가 있는... 동생이 사는 뉴욕은 또 다른 '삶의 기착지'였다. 서울에서 뉴욕으로 주소와 우편번호만 바뀌었을 뿐 달라진 건 없었다. 작가에게 뉴욕은 취미 생활을 하는 어느 공간처럼 가볍고 분주하다. 살짝 긴장감이 묻어나지만 진득한 땀냄새는 없는, 매일매일이 소풍을 가는 어느 봄날처럼 설레는 그런 곳이다.

 

"내가 태어난 도시가 아니라 내가 살기로 선택한 도시, 뉴욕은 나라는 개인에게 매우 사적인 은유였다. 내가 자라나며 불만을 품었던 중산층적 가치들의 전복이 일어날 수 있는 장소. 안정과 위생과 효율보다 도전과 거침과 우회가 인정되는 곳. 불가능하게 치솟은 빌딩처럼 위대함이 꿈꾸어지고 시도되는 장소로서의 은유. 뉴욕은 내 삶의 변명들을 뭔가 다른 것으로 바꾸어가는데 필요한 나만의 내면적 장치였다." (p.87~p.88)

 

<나의 사적인 도시>는 삶의 진실성보다는 약간의 겉멋을 부린 그런 책이다. 몸빼 바지가 아닌 원피스와 스카프로 한껏 멋을 부린 어느 여인이 연상되는.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2005년 11월부터 2010년 6월까지 4년 반의 시간 동안 뉴욕에서 써 내려간 블로그의 포스트를 간추리고 재구성해 묶은 산문집이라고 한다. 지인들은 물론 다수를 차지하는 익명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블로그에서 포스팅 주제로 쓰기에는 땀내 풀풀 나는 일상보다는 오히려 공연과 전시회와 문학이 더 어울렸을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에도 우아함을 잃지 말라고, 누군가 내게 그렇게 말해주었다고 상상할 때가 있다. 뜻은 높고, 판단과 실행은 군더더기 없이 단순해야 하고, 태도는 부드러워야 한다고. 외롭고 외로운 여왕이나 장군을 떠올리라고. 영예로운 뜻과 반듯한 말과 생각, 칼날 같은 실행이 있다 해도 관용이나 인간적 연민이 없다면 우아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곧음만을 자랑하던 직선이 몸을 살짝 구부려 공간을 품을 때 비로소 우아한 곡선이 된다. 베라자노 브리지는 브루클린의 한 지점에서 스태튼 아일랜드의 한 지점까지 그렇게 건너간다." (p.237)

 

어느 곳에서 산들 한 점 삶의 애환이 어찌 없을까. 나도 안다. 너무나도 잘 안다. 반짝거리는 빌딩의 유리에도 칙칙한 삶의 시간이 주책없이 달라붙는다는 사실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뉴욕, 그곳이라고 삶의 번잡함이 왜 없으랴. 작가라고 이방인의 슬픔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이 책에서 작가는 예술과 문학과 공연과 전시회와 자신의 일과 만남만 이야기할 뿐 보편적 삶이 수놓는 저지대의 풍경은 그리지 않는다. 내가 공감할 수 없었던 까닭은 거기에 있다. 나는 내가 사는 지구위 어느 곳의 또다른 삶이 아닌, 다른 우주의 한 귀퉁이를 보고 있는 듯했다. 나는 이 책을 읽어내기 위해 마지막 페이지를 읽는 나의 모습을 수백 번 상상해야만 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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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메르스 사태를 바라보는 다른 나라의 시각은 상당히 싸늘한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유럽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온 친구가 전하는 바로는 그 심각성이 보통이 아닌 듯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농담삼아 툭툭 던지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가시가 돋아 있었고 듣고 있는 자신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만났던 어떤 사람은 어디서 보고 알게 되었는지 자신도 알지 못했던 문화관광체육부의 '외국인을 위한 안심보험'에 대해 묻더랍니다. 얼마 전에 발표되어 혹독한 비난을 받았던 정부의 대책 말이지요. 이를테면 입국한 외국인이 국내에서 메르스에 걸리면 돈을 준다는 내용이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 보니 보상 내용은 여행경비+치료비+3000달러(사망 최대 1억원)이더군요.

 

이번 사태로 외국인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은 에볼라가 만연했던 소말리아나 에티오피아의 수준으로 떨어진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제 친구가 딱히 애국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받은 수모가 상당했던지 도대체 이 나라의 정부는 뭔 짓을 한 거냐며 나를 만났던 내내 씩씩거렸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힘도 없는 제가 정부를 대신해서 친구에게 사과를 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요.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정부에 갖는 불만은 제 친구의 일시적인 불만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따금 들르는 식당의 사장님은 차마 그 속내를 말로 하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은퇴를 하고 올해 초 식당을 차렸던 그 분은 퇴직금이며, 적금이며, 그가 갖고 있던 대부분의 돈을 식당에 투자한 듯했습니다.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분은 어찌할 줄 모르더군요. 오죽하면 식당을 찾는 손님이 하루에 열 명도 안 될 때가 많다고 하면서 절망스러운 표정을 짓더군요.

 

메르스 사태는 결국 시간이 가면 어떤 식으로든 사그라들겠지만 개개인이 입은 손해는 고스란히 각자의 몫으로 떠안아야 할 듯 보입니다. 잔인한 유월의 하루하루는 그들에게 뼈를 깎는 아픔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뒷짐만 진 채 행복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 어떤 분들은 그러더군요. 원자폭탄은 안 무서워하고 메르스만 무서워 한다고. 대한민국 사람들은 웃긴 사람들이라고 말이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웃긴 사람들의 웃픈 얘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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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5-06-19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미국인 친구와 이야기하다 메르스에 대한 정부의 거짓말 (?) 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어느 나라 정부나 거짓말을 다 한다에 서로 동의를 했습니다.
단지, 얼마나 능숙하고 치밀하냐 또 약간의 선을 얼마나 더 생각하느냐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좌우지간 ㅠㅠ 그래도 어서 좀 종식되었으면 좋겠네요.

꼼쥐 2015-06-20 15:07   좋아요 0 | URL
물론 어느 나라나 가릴 것 없이 거짓말을 하겠죠. 하지만 이렇게 무능한 정부,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부는 보지 못했어요. 이명박 시절에도 이것보다는 나았던 것 같아요.
 
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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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시월 초순이 되면 기다려지는 소식이 있다. 그건 바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발표 소식이다. 수상 작가의 작품을 딱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매년 그맘때만 되면 괜히 설렌다. 그러다 한 며칠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시들해지지만 말이다. 그것은 마치 가을을 타는 사춘기 소녀의 마음처럼 나로 하여금 한순간에 부르르 끓어 올랐다가 미처 열기가 다 가시기도 전에 다른 쪽으로 관심이 쏠리게 하거나 나른한 일상의 흐름 속으로 가볍게 빠져들도록 부추긴다. 그러면서도 이제나 저제나 하는 마음으로 한국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기다리게 된다. 늘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는 노벨문학상에 실망하면서도 한국 작가의 수상을 간절히 바라는 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한 사람의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되지만.

 

나는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도 아니고, 문학계에 몸을 담은 사람도 아니지만 한국 작가 중 누구라도 좋으니 노벨문학상을 탔으면, 바라 마지않는다. 그렇게 목이 빠져라 간절히 바라는 까닭에 나는 매년 실망하고, '왜 우리나라 작가만 상을 타지 못하나?' 곰곰 생각하게 된다. 물론 그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학계의 몫이겠지만 나의 어쭙잖은 판단으로는 '대한민국의 작가들이 대체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체면에 신경을 쓰는 탓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예술의 대부분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숱한 감정들과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영감으로부터 나오지 않던가. 그러나 우리는 어려서부터 '사람이 어찌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평생을 살 수 있나?'하는 말을 자장가처럼 들으며 자랐던 탓에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게 되고 자신의 감정을 몸 속 깊숙이 숨기게 된다. 며칠 전에 읽었던 김영하의 산문집 <말하다>에도 그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언제부턴가 나는 위대한 예술가가 되겠다 꿈을 꾸는 사람은 그것이 어떤 조직이든 조직의 구성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왔다. 특히 우리처럼 유교적 질서에 길들여진 사람이라면 더더구나. 왜냐하면 예술가는 조직의 목표나 타인의 일희일비에 무작정 대응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신의 영감에 반응할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유능한 사회 구성원은 될지 모르겠으나 위대한 예술가의 길과는 점점 멀어지게 될 뿐이다. 내가 우리나라 작가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아는 것도 아니지만 작가들 대부분이 자신의 감정을 사회적 잣대에 비추어 한 겹 걸러낸 후 글로 옮긴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곤 한다. 게다가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반응이다. 모든 예술의 원천이 되는 사랑 말이다. 예술가라면 어떤 제약에도 굴하지 않고, 다른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과감하고도 솔직하게 드러내야 하는 사랑의 감정을 대한민국의 작가들은 많이도 숨긴다. 사랑 앞에서는 목숨을 걸어야 마땅하거늘 한발짝 물러나는 모습을 나는 숱하게 보았다. 위대한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언제 찾아올지 기약 없는 영감보다는 순간을 불사를 수 있는 용기인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는 비록 노벨 문학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독자들에게 '삶과 진실'을 생각하게 하는 작가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아니 에르노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데 주저함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에르노는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규정한다. 이 말은 자신의 삶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은 결코 아니다. 흠이 없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그것을 아니 에르노는 부끄러워 하지 않을 뿐이다. 1991년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사랑에 빠졌던 작가는 자신의 감정을 이 책 <단순한 열정>에서도 잘 드러내고 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 사람은 이것을 읽지 않을 것이며, 또 그 사람이 읽으라고 이 글을 쓴 것도 아니다. 이것은 그 사람이 내게 준 어떤 것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 (p.73)

 

작가는 사랑에 빠진 여느 여인처럼 남자의 전화를 기다리고, 넋이 나간 듯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그 남자와 관련된 이야기에는 온 신경이 쏠린다. 그러나 막상 만날 시간이 다가오면 너무도 초조한 나머지 아무 일도 할 수가 없고, 그가 떠나고 나면 그의 전화만 무작정 기다리는 고통스러운 나날이 계속된다.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시간이 흘러 그와 헤어진 후 자신에게 남겨진 추억과 감정의 흔적들, 작가는 그 기억들을 반추한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그녀의 고백으로 그녀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부모와 자식은 육체적으로 너무도 가까우면서도 완벽하게 금지되어 있어서, 서로의 성적 본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무척 불편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엄마의 알 수 없는 침묵과 멍한 시선 속에 드러나는 육체적 욕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아이들은 그런 순간에 빠져 있는 엄마를 늙은 수코양이를 따라다니는 발정난 암코양이쯤으로 생각할 뿐이다." (p.22)

 

"그 사람의 질투는 나에 대한 사랑의 유일한 증거라는 생각에, 나는 그 사람이 하는 말 중에서 질투의 증거로 생각되는 것은 탐욕스럽게 기억해두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크리스마스 휴가에 여행 떠날 거야?"라는 그 사람의 물음이 그저 흔한 일상적인 물음일 뿐이지 내가 누구와 스키를 타러 갈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우회적으로 하는 질문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31)

 

"『우리 둘』은 사드보다 더 외설스럽다."고 한 롤랑 바르트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이 책은 시작된다. 포르노의 '정사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인상, 또는 고통, 당혹스러움, 그리고 도덕적 판단의 유보 상태에 줄곧 매달리게 될 것 같다'고 작가는 예감한다. 역자 후기까지 합쳐도 채 80쪽이 되지 않는 이 얇은 책에서 나는 작가의 노고를, 깊은 고뇌를, 그리고 어떠한 편견이나 비난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깊이 새겼다. 그것은 800쪽에 이르는 어느 전직 대통령의 자서전에서도 결코 찾아볼 수 없었던 삶의 진실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요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 중에는 일반인의 도덕적 판단에 맞서는 모습을 가끔 보게 된다는 점이다. 예술을 도덕적 가치로 가두는 순간 독자는 책에서 그만큼 멀어지게 된다.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부재,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 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주었다."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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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을 듯.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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