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따금 '머리 샤워'를 한다. '머리 샤워'가 뭐냐고? 이걸 어쩐다. 가르쳐주고 싶은 생각이 없다. 부끄러워서 말이다. 언젠가 나는 블로그에 올린 포스팅에 '책잠'이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드는 걸 길게 쓰고 싶지 않아서 '책잠'이라고 짧게 명명했던 것인데 그때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예쁜 말이라고 칭찬 아닌 칭찬을 들었었다. 그런데 이 말은 왠지 그게 뭐냐고 타박을 들을 것만 같다.

 

'머리 샤워'라니... 머리감기도 아니고. 그렇다. 머리감기는 분명 아니다. 학창시절의 나는 문학서적보다는 철학책에 반쯤 미쳐있었지만 요즘은 그와 정반대로 되어 이따금 철학이나 사상서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마음에 드는 철학서를 읽곤 하는데 그럴라치면 왠지 모르게 머리가 맑아지고 뜨거운 여름철에 찬물을 들이켠 것처럼 뒤죽박죽이던 머릿속이 깨끗하게 정리되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나는 아직까지 이것을 명명할 만한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 상태이고 어쩔 수 없이 '머리 샤워'라는 말로 대체하여 쓰고 있는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쓸데없는 일에 목숨을 거는 경우가 있다. 나야 열혈독서가의 발치에도 이르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못된 것만 먼저 배운 까닭인지 이따금 엉뚱한 일에 시간을 쓰곤 한다. 하등의 직업 연관성도 없으면서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괜한 시간을 소비한다거나 책을 읽다가도 이 문장은 이렇게 고쳤으면 어땠을까, 한참을 궁리하기도 한다. 병명도 없는 병을 앓고 있는 셈이다. 그것도 중증으로. 갑작스러운 임시 공휴일 지정으로 마음만 바쁜 오후가 그렇게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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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중독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창해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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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 앞가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앞에 나서서 일일이 간섭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옆에서 그냥 말없이 지켜보기에는 가슴이 너무 답답하여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할 일도 다 못하는 처지이긴 하지만 만약 나같은 사람이라도 간섭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 곁에는 금방이라도 이불 보따리보다 더 큰 불행 덩어리가 '쿵'하고 떨어질 것만 같고, 상황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던 나도 괘씸죄에 걸려 옷 보따리만 한 불행을 선물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저절로 들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그런 사람 한둘쯤은 곁에 있게 마련이다. 인생이란 자고로 속이 터지는 일이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너무 꽉 잡는다. 상대가 아파하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다. 그러니 이제 두 번 다시 누구의 손도 잡지 말자. 체념하기로 정한 것은 깨끗하게 체념하자.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과는 정말로 두 번 다시 만나지 말자. 내가 나를 배신하는 짓은 하지 말자. 타인을 사랑할 바에는 차라리 나 자신을 사랑하자." (p.32)

 

나오키 상 수상 작가 야마모토 후미오의 출세작인 <연애 중독>에 나오는 주인공은 정말 속이 터지는 인물이다. 나보다 한 열 살쯤 연배라고 할지라도 서슴없이 "당신, 인생 그렇게 살지마라." 충고 한 마디를 나도 모르게 던지게 될 그런 사람이다. 오죽 답답한 인물이면 내가 그렇게 혀를 찰까 싶겠지만 다른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물론 그런 생각이 들었던 까닭에 손에서 쉽사리 책을 내려 놓지 못하고 한나절 책에 빠져들었었지만 말이다. 이구치는 전에 사귀던 여자 때문에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조그만 출판사로 회사를 옮기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생일날 새 직장인 출판사로 다짜고짜 찾아오고,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인 미나즈키가 그런 이구치를 위기에서 구해주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베일에 싸인 미나즈키의 인생이 펼쳐지는 것이다.

 

30대 초반의 미나즈키는 후지타니와의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간간이 번역일을 하면서 낮에는 도시락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어느 날 그녀가 일하는 도시락집에 어렸을 때부터 그녀가 좋아해 마지 않았던 방송인 겸 작가인 이츠지 고지로가 우연히 들른 걸 보게 되었고, 유명인답지 않은 그의 태도에 그만 홀딱 반하고 만다. 결국 사적인 만남은 육체적 관계로까지 이어지고 미나즈키는 도시락집의 일자리를 헌신짝처럼 집어던진 후 이츠지 고지로의 사무실로 출근하게 된다.

 

"우리의 공통점은 이츠지 고지로였던 것이다. 그 당연한 사실을 똑똑하게 자각해야 했다. 그를 독점하지 말 것, 결코 그와의 정사를 은근히 과시하지 말 것, 대결 의식을 감추고 오히려 그를 공통의 적으로 씹으면서 비로소 우리는 친해졌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얘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직장 분위기를 위해서는 중요한 일이었다." (p.112)

 

50대의 이츠지 고지로에게는 이혼한 후 다시 얻은 젊은 부인 외에도 십대 소녀 치카, 미나즈키와 비슷한 연령대의 요코, 이츠지 고지로와 비슷한 나이의 미요코 등 수시로 관계를 갖는 여자가 즐비했었다. 한 마디로 그는 바람둥이였던 셈이다. 그에게 여자는 그가 돌보아야만 하는 '새끼 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츠지 고지로는 여자가 요구하는 대로 월급을 주었음은 물론 마음이 내킬 때마다 선물을 사서 안겼다. 그럼으로써 그는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여자들을 대했다.

 

"저렇게 제 하고 싶은 말을 다 내뱉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그리고 머릿속에 있는 그대로 입밖에 다 내놓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화가 나기도 하지만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은 전혀 느끼지 않았다. 빈혈은 그를 만나 허둥지둥 따라오는 동안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려서 결과적으로 내가 크게 도움을 받은 셈이었다." (p.123)

 

미나즈키는 운전을 할 줄 모르는 이츠지 고지로의 기사 겸 비서인 동시에 연인으로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이츠지 고지로의 집 근처에 살았던 미나즈키는 그의 젊은 부인과도 우연히 조우하게 된다.

 

"이 여자는 자신을 제1부인이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전에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일부다처제 국가에서 본처는 남편에게 제2부인이 생기는 것을 질투하기는커녕 뛸듯이 기뻐한단다. 본처에게 제2부인이란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이고 친구이며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고 자존심을 높일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질투심이라고는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p.275)

 

미나즈키의 고민은 이츠지 고지로의 사랑을 독차지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전 남편의 소식을 몹시 궁금해 했다. 다행인지 이츠지 고지로의 주변에 있던 여자들이 하나둘 그를 떠나기 시작한다. 나이가 많은 미요코가 결혼을 하고, 나이 어린 치카가 다른 기획사 사무실로 떠났고, 요코가 이츠지 고지로의 사무실에 새로 출근하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게다가 딸과 함께 외국에서 사는 이츠지 고지로의 첫번째 부인이 재혼을 결심하면서 딸 나나를 일본으로 보내는 바람에 그의 부인마저 영국으로 떠난다. 미나즈키의 연적이 모두 제거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반전이 시작된다. 생각도 못한 반전이.

 

작가가 이혼을 하고 힘들어 하던 시기에 썼다는 이 소설은 역설적이게도 '연애 중독'에 빠진 한 여인의 속 터지는 삶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연애는 심리학적으로 중독이 맞다. 그러므로 연애 중독에 빠진 주인공은 제정신의 독자들이 보기에 속이 터진다. 딸을 가진 아빠의 입장이라면 아마도 책장을 뚫고 소설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을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아무 상관도 없는 미나즈키를 소설 밖으로 끄집어 내어 자신의 곁에 앉혀 놓고서 따끔한 훈계 한마디를 잊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나처럼 주인공의 삶이 속 터진다 생각했다면 작가는 정말 독자를 깜박 속여 먹을 정도로 글을 잘 썼다는 얘기다. 글쎄, 어느 쪽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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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도 아닌 일로 대통령의 하나뿐인 여동생이 이슈가 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광복절이 멀지 않은 시점에서 그녀가 했던 인터뷰 내용이 빌미가 된 모양입니다. 일본의 동영상 사이트 니코니코에 방영된 인터뷰에서 그녀는 "우리가 위안부 여사님들을 더 잘 챙기지 않고 자꾸 일본만 타박하는 뉴스만 나간 것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지요. 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관련해 문제 삼는 것에 대해 "내정간섭이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피력했으며 일왕을 지칭하면서도 '천황폐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이 논란의 골자입니다.

 

저는 그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온 국민의 공분을 살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제 설명을 들어보면 저를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다 아시는 것처럼 그녀의 선친인 다까끼 마사오(박정희)는 일왕에게 혈서를 써서 충성맹세를 했던 사람입니다. 당시 만주군관학교의 생도였던 다까끼 마사오는 손가락을 잘라 다음과 같은 여덟 글자를 써서 충성 맹세를 합니다.

 

"盡忠報國 滅私奉公"

 

어쩌면 그녀는 선친의 유지를 받드는 것이 자신의 패륜을 막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선친이 없었기에 일왕에게 충성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선친의 유지를 받들지 않으면 패륜이 되고, 선친의 유지를 받들면 국가의 반역자가 될 처지인데 그녀는 전자를 선택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국가 반역자의 죄는 대통령인 그녀의 언니가 알아서 잘 돌봐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매우 현명한 선택이지요? 어쩌면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녀는 선친의 유지만

생각하며 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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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잡담
박세현 지음 / 작가와비평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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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나이가 들면 그에 따라 어느 정도 말이 많아지는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 다른 사람은 해보지 못했음직한 특별한 경험들이 하나 둘 늘어나다 보면 입이 간지러워 누군가에게 그 경험을 말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순간이 반드시 오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는 어디에나 있는 법이어서 자신이 겪었던 그 숱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일체 함구한 채 태연히 지내는 사람들도 더러 있기는 하다. 입이 무거운 건지, 답답한 건지 아무튼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고서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히 잘 지낼 수 있는 DNA를 타고 난 셈이다.

 

나로 말하자면 그런 부류에는 속하지 않는다. 너무 수다스럽지도 않지만 묵언수행을 하는 스님처럼 답답하지도 않다. 그래도 어느 한 쪽으로 기우는가 굳이 말하라고 한다면 묵언수행 쪽으로 살짝 기운다고 할 수 있으려나. 암튼 대학민국 남성의 수다스러운 정도를 조사한 통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그런 이상한 주제에 대하여 연구 아닌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어느 사회에서건 한둘쯤은 꼭 존재하게 마련이다.) 나는 적어도 표본오차에 속하는 특이한 인간은 아닐 것으로 믿고 있다.

 

박세현 시인이 쓴 <시인의 잡담>은 꽤나 특별한 책이다. 시인은 실상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닌, 말을 짓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시인에게 '잡담'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이를테면 그것은 햇빛이 쨍쨍한 날 장화를 신고 출근하는 것만큼이나 어색하다. 한편으로는 시를 읽는 사람이 얼마나 없으면 이제 시인은 잡담이나 하며 세월을 보낼까, 측은해지기도 한다. 책을 펼치면'시는 죽었는데 시는 그걸 모르다'는 의미심장한 문장이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자신의 블로그에 ‘한 줄의 페허’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조각글들을 책으로 엮었다는 <시인의 잡담>은 '잡담'처럼 쉽게 이해되거나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 보낼 만한 성질의 시답잖은 문장은 찾아볼 수 없다. 언젠가 대학 시절에 시인이 된 내 친구는 말했었다. '어렵게 쓴 시는 독자도 어렵게 이해해야 한다'고 말이다. '너의 시는 너무 어렵다'는 나의 말에 대한 그의 반론이었다. 이 책이 딱 그렇다. 하나하나의 문장은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친구의 논리를 따르자면 시인은 하나하나의 문장에 어지간히 공을 들였다는 얘기가 된다.

 

"일언지하에 말하자면,

가치라는 말처럼 무가치한 말은 없다.

저마다 자기 언어의 품에서 살아간다.

새겨 읽어야 할 부분은 밑줄 긋지 않은 그 대목이었어." (p.128)

 

위의 인용구처럼 시인의 잡담은 시와 아포리즘(경구)의 혼재, 운문과 산문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산문이라기 보다는 길어진 운문이 맞을 듯하다. 책 속에는 시인의 미발표 시도 수록되어 있다. 시가 오롯이 시집에 실리지 못하는 슬픈 현실, 산문집 속의 시는 왠지 모르게 애잔하다. 하기에 그의 잡담을 잡담 수준으로 치부하기에는 쑥스럽고 미안해진다. 그러나 시인의 숙명은 시를 떠나서 살 수 없기에 시인은 산문집을 표방한 한 권의 책에 곁다리로 시를 실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인에게 덧씌워진 삶의 굴레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시는 시시하고 너절하다. 현실적 가치를 가리는 말은 아니고, 그 속으로 들어갈수록 가파른 벼랑과 마주한다. 누구나 한번 들어간 사람은 되돌아나오지 못한다. 이 시시한 스캔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나는 시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무슨 헛소리냐고 하겠지만, 시는 없고, 시 비스무레한 것에 나는 늘 홀린다. 내가 열망한 것은 시엿으나, 내가 도달한 것은 시가 벗어 놓은 헛것이었다. 의붓어미를 친어미로 알고 산다. 이것이 나의 진짜 행복이자 가짜 진실이다." (p.272)

 

시는 언어인 동시에 청정한 울림이다. 눈으로 읽는 글자인 동시에 가벼운 떨림이다. 생일 선물로 시집을 주던 시기에 나는 선물로 받은 시집을 닳도록 읽었었다. 내가 읽었던 것은 시인이 쓴 한 줄 시구도, 시집을 선물한 누군가의 마음도 아니었다. 영원을 노래한 우주의 음성, 그 잊을 수 없는 가락에 대한 진한 향수였다. 시가 찬란했던 시절은 온 우주의 날씨가 맑음이었다. 시의 몰락은 우주의 그늘, 두려움의 구름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그 그늘 속으로 속절없이 흘러들고 있다. 나는<시인의 잡담>을 읽으며 시가 맑았던 어느 한 시절을 망연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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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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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는 질문을 자주 받는 편이다. 내가 만만하거나 편해 보여서 그러는지 아니면 그곳 지리에 유난히 밝을 것처럼 보여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있는 곳의 사방 십 미터 이내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은 죄다 내게로 몰려들곤 한다. 그리고는 약간의 쭈뼛거림이나 미안한 기색도 없이 다짜고짜 묻곤 하는 것이다. "말씀 좀 물을게요. 여기에 가려면..." 젠장, 나도 초행인 걸 어쩌란 말이냐. 이런 일이 누적될 때마다 나는 다시 한 번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는 '그래, 결심했어. 이제부터 까칠해지자.' 다짐하곤 했다.

 

내가 선천적으로 길을 잘 안내해줄 것 같은 특유의 분위기를 갖고 태어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사실 겉보기와는 달리 상당히 꼬장꼬장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까칠하기로 치자면 '오베' 뺨친다고 말할 수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오베라는 남자>에 나오는 '오베' 말이다. 그는 사실 냉정하다거나 까칠하다기보다는 실없이 웃지 않을 뿐인데 철없는 독자들은 그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는 속으로는 한없이 여리고 정이 많은 사람이지만 헤살헤살 잘 웃거나 사근사근하게 말하지 않을 뿐이다.

 

"그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였다.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그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그녀를 보기 전까지 그가 사랑했던 유일한 건 숫자였다. 그에게 유년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라곤 없었다. 그는 따돌림을 당하지도 않았고 따돌리는 사람도 아니었으며, 스포츠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다. 중심에 있었던 적도 없었고 겉돌았던 적도 없었다. 그는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p.57~p.58)

 

이 책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오베'들을 위한, 세상으로부터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는 모든 '오베'의 항변이자 그들을 위한 변론인 셈이다. 무뚝뚝하지만 정의감이 넘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오베는 열여섯에 고아가 된다. 아버지의 성격을 그대로 빼다 박은 오베. 그는 아버지가 사고로 죽자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기차 청소부를 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그러나 운명의 여인 소냐를 만나면서부터 그의 삶은 달라진다.

 

"아무도 안 볼 때 당신의 내면은 춤을 추고 있어요, 오베. 그리고 저는 그 점 때문에 언제까지고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당신이 그걸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간에." 오베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결코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그는 춤을 춰본 역사가 없었다." (p.153)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던 오베의 삶에 어느 날 불행이 찾아온다. 교통사고로 뱃속의 아이를 잃고 소냐는 불구의 몸이 된다. ADHD를 앓고 있는 아이들에게 소냐는 셰익스피어를 읽게 하며 하루하루를 헌신하다가 6개월 전에 세상을 떠났다. 소냐와 함께 40년 동안 한 집에서 살고, 같은 일과를 보내고, 한 세기의 3분의 1을 한 직장에서 일했던 오베는 이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세상 사람 모두가 그녀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알아야 한다. 그게 사람들이 했던 얘기였다. 그녀는 선을 위해 싸웠다. 결코 가져본 적 없는 아이들을 위해 싸웠다. 그리고 오베는 그녀를 위해 싸웠다." (p.280)

 

오베는 자살을 결심하고 이제 막 자살을 결행하려는 순간 이웃집에 젊은 부부가 이사를 온다. 오베는 자신의 자살을 막은 젊은 부부와 어린 두 딸에게 처음에는 까칠하게 대하지만 점점 마음을 열고 가까워진다. 그러나 그가 평생 동안 지켜온 원칙과 소신은 마을에 새로 이사온 다른 사람들과 번번이 부딪쳐 말썽을 일으킨다. 그런 그들이 못마땅한 오베는 죽은 아내 생각이 간절해진다. 소냐는 그를 완전히 이해했던 단 한 명의 이웃이자 동지였던 셈이다. 목을 매 자살하려던 그는 방법을 바꿔 차고에서 차의 시동을 켜 놓은 채 배기가스에 의한 질식사를 시도하는가 하면 그마저도 여의치 않자 총기 자살을 결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웃 사람들에 의해 그의 자살은 번번이 실패한다.

 

"그는 정의와, 페어플레이와, 근면한 노동과, 옳은 것이 옳은 것이 되어야 하는 세계를 확고하게 믿는 남자였다. 훈장이나 학위나 칭찬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래야 마땅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종류의 남자들은 이제 더 이상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소냐는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이 남자를 꼭 잡았다." (p.206)

 

"스스로를 통제한다는 자부심. 올바르게 산다는 자부심. 어떤 길을 택하고 버려야 하는지 아는 것. 나사를 어떻게 돌리고 돌리지 말아야 하는지를 안다는 자부심. 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은 인간이 말로 떠드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존재였던 세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p.371)

 

오베는 결국 자신이 의도했던 자살은 실패하지만 마을의 이웃사촌들을 위한 여러 일을 참견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준다. 오베가 자살을 결심했던 이유도 따지고 보면 주변에서 그를 이해할 만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베와 마을 사람들이 펼치는 시끌벅적한 여러 에피소드는 갈등과 분열을 거쳐 진한 감동으로 마무리된다.

 

"우리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지만, 대부분은 죽음이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데려갈지 모른다는 사실을 더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해 갖는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 언제나 자신을 비껴가리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홀로 남겨놓으리라는 사실이다." (p.436~p.437)

 

첫인상은 무뚝뚝하고 까칠해 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진국인 사람이 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이웃의 어른들은 모두 그랬던 것 같다. 내 아들, 내 손자가 아닐지라도 누구든 잘못을 하면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을 내곤 했다. 그 시절에는 '오베'가 너무나 흔했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더 이상 '오베'는 보이지 않는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백주 대낮에 담배를 피우고 있어도, 어두운 골목길에서 여학생을 희롱하여도 누구 하나 그들을 막지 않는다. '오베'가 사라진 이 시대의 골목골목엔 CCTV만 덩그러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도 어딘가에 존재할 세상의 모든 '오베'를 위하여, 진심으로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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