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중력 증후군 - 제1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윤고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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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떤 질문의 답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예요. 뉴스가 되느냐 덜 되느냐. 그뿐이죠."    (p.131)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 기억할런지 모르겠다. 유부남인 어느 유명 감독과 여배우와의 스캔들 말이다. 그게 어떤 계기로 프라임 뉴스에 올랐고 세간에 화제가 되었는지 나는 도대체 아직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뉴스를 본 사람들은 마치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라도 되는 양 만나는 사람들마다 입에 침을 튀겨 가며 소식을 전하곤 했었다. 따지고 보면 그 일은 뉴스의 중심에 섰던 당사자들에겐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일 뿐이고, 유부남과 처녀의 사랑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벌어지는 일인데 말이다. 다만 그들이 일반인과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사건이 있기 전부터 그들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물론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그들의 행위가 옳았다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며칠씩이나 TV 뉴스에 오르내릴 만큼 중대한 범죄였던가? 하는 데에는 머리를 갸웃거리게 되지만 말이다. 그런 걸 보면 뉴스거리가 차고 넘쳐나는 요즘과 같은 시대에 우리의 관심을 끌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는 사건은 모름지기 따로 있는 듯하다. 어쩌면 그것은 사건의 중대성보다는 관심의 지속성이나 SNS를 통한 파급력에 달려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윤고은의 <무중력 증후군>은 위와 같은 세태를 신랄하게 풍자한 소설이다.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도 우리들처럼 뉴스에 몰입하고, 이슈에 열광한다면서 "냄비근성은 비단 한국인만의 얘기도 아니고 그냥 본능적인 우리 모습인 것 같다"고 말하였다. 다만 그녀는 "뉴스를 소비하거나 이슈에 휩쓸리면서도 개개인이 그것을 의식했으면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물론 사건은 늘 일어나지만, 이 주기라는 것은 사회를 뒤흔들 만한 '이슈'가 됨을 말한다. 이슈가 되려면 적어도 일주일 이상은 신문에 실려야 한다. 일주일 내내 신문 1면을 차지할 수 있다면 명예의 전당에 들어야 한다. 50일 이상 그것이 지속된다면 타임캡슐에 넣을 만한데, 아직까지 그런 사건은 없었다."    (p.201~p.202)

 

소설의 주인공은 스물다섯 살의 청년 '노시보'이다. 전문대학을 졸업한 후 여러 회사를 전전하다가 지금은 부동산회사에서 전화로 땅을 파는 일을 하고 있다. 일면식도 없는 전화 상대와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그는 이슈가 될 만한 뉴스를 끝없이 검색하고 소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제2의 달'이 출현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도 없을 정도로 작은 두 번째 달에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였고, 모든 이슈는 달에 집중되었다. 뿐만 아니라 '제2의 달'이 출현함으로써 나타나는 사회적 변화나 여러 사건 또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면서 확대 재생산되었다. 게다가 자신이 중력을 거부하는 '무중력자'임을 밝히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난 것도 '제2의 달'의 출현과 무관치 않았다.

 

그러나 이런 것도 잠시 세 번째, 네 번째 달이 일정한 주기로 생겨나면서 그동안 급속도로 퍼지던 '무중력 열풍'은 빠른 속도로 식어만 갔다. 이와 같은 달의 '번식'은 세상 사람들의 삶을 크게 변화시켰던 게 사실이어서 고시공부를 하던 '시보'의 형이 요리사를 꿈꾸게 되고, 전업주부였던 '시보'의 엄마는 달을 구경하러 간다며 가출을 하였고, 집안일에는 일체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아버지도 점차 가출하기 전의 엄마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뿐만 아니었다. 돈 버는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오직 소설가를 꿈꾸며 게으른 생활을 이어오던 '시보'의 친구 '구보'도 어느 날 대학 선배와 함께 창업을 하기에 이른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달과 우주 관련 사업에 집중했고, 가출을 했다 돌아온 '시보'의 엄마 또한 우주 분위기로 인테리어를 한 미용실을 차리기에 이르렀다. '시보'네 회사도 달나라 납골당을 분양하면서 이슈에 편승했다. 그러나 보름을 주기로 달이 늘어나자 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익숙함에서 오는 권태로 빠르게 변해갔다.

 

"난무하는 달의 이미지 속에서 나는 종종 달이 하나뿐이던 시절을 그리워했다. 달이 하나뿐이던 시절에는 모든 지구인들이 하나의 달을 바라봤을 텐데. 지금은 북반구와 남반구의 달이 다르며, 동쪽과 서쪽의 달이 다르고, 위층과 아래층의 달이 다르다."    (p.229)

 

작가가 소설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처럼 현대인이 겪는 여러 증후군들은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 낸 상상력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종편에 출연하는 쇼 닥터를 숙주 삼아 있지도 않은 여러 질병들을 우리는 오직 상상 속에서 그것들을 만들어 내고, 사실 관계를 규명할 것도 없이 여러 뉴스에서 퍼날라지는 동안 별 필요도 없는 약들을 처방받아 이유도 모른 채 복용하는지도 모른다. 현실 속에 가상을 구현하는 증강현실의 '포켓몬 고'처럼 우리는 어쩌면 있지도 않은 가상을 현실에서 쫓고 있지나 않은가 하는 의심이 든다. 소설 속의 분화된 달이 우주 쓰레기로 밝혀지는 것처럼 우리가 앓는 여러 증후군들도 언젠가 일상의 흔한 일들로 말해질 날이 결국 오고야 말 것이다. 이슈는 출처의 사실 규명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슈화 시키는 사람들에 따라 그 중요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국정원의 직원이 사실도 아닌 기사를 끝없이 리트윗 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다음 대선에서 대선 후보자로 나선 누군가가 또 하나의 달을 만들어냈다고 하더라도 조금 허황된 말이지만 일단 믿고 보자는 식의 무뇌아는 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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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그야말로 결과를 알고 있는 자작극인 셈이지만 우리는 종종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제 스스로 걸려드는 웃지 못할 일도 겪게 마련이다. 실제로 우리는 감쪽같이 속는 것이다. 그러다 이따금 지진이나 홍수, 폭설이나 가뭄 등 우리도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을 겪고 나면 '아, 내가 바보처럼 또 속고 말았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열에 아홉은 그마저도 깨닫지 못하지만 말이다.

 

어제 경주에서 있었던 강력한 지진은 그곳으로부터 꽤나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도 강한 진동을 감지할 수 있었다. 첫 지진이 있었던 시각에는 밖에 있었던 탓에 잘 느끼지 못했지만 집 안에서 맞았던 두 번째 지진의 충격은 가히 사람들을 놀래키고도 남을 만큼 강력한 것이어서 아파트 전체가 휘청 하는 느낌이 들었고, 놀란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대는 통에 공포는 생각보다 더 심했었다. 나는 아파트 8층에 살고 있는데 진동이 느껴졌던 그 순간 '대피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가 그마저도 귀찮아 TV를 켜고 금세 자리에 앉고 말았다.

 

떨어져 살고 있는 아들과 아내에게 잠시 통화를 했고, 허둥대며 지진 소식을 전하기에 바쁜 방송 관계자들의 모습과는 달리 평온한 듯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멀쩡한 몸으로 일어나 여느 날처럼 아침 운동을 나갔고, 먼 산에서 들려오는 까마귀 울음 소리에 '혹시 지진 때문에?'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고, 등산로에 떨어진 도토리 몇 알을 주워 부지런한 청설모 커플에게 던져주었다.

 

추석이 내일 모레, 바빠 보이는 사람은 오직 정치인들뿐이고 귀성을 준비하는 사람들 얼굴에는 왠지 모를 피곤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어쩌면 지진에서 얻은 깊은 깨달음의 결과인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각자에게 주어진 하루 일과를 묵묵히 해내고 있다. 내일부터 이어지는 추석 연휴와 생각지도 못했던 지진의 공포. 오늘 만났던 사람들마다 지진과 추석의 서로 상반되는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게 있었다. 이 모든 게 허방을 짚는 일일지언정 한가위 명절은 행복하게 맞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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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6-09-14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쥐님 행복한 한가위 되세요~

꼼쥐 2016-09-15 08:14   좋아요 0 | URL
초딩 님도 행복한 한가위 보내세요~~
맛있는 음식도 많이 드시고 가족 친지분들과도 즐거운 시간 되시길~~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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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한낮의 연애>, 책의 제목만 보면 꽤나 더위가 느껴지는 소설인 듯하다. 말하자면 느낌이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나 책을 펼쳐 들고 불과 서너 쪽을 넘기기도 전에 손끝에서부터 전해지는 서늘한 느낌으로 인해 당신은 어쩌면 화들짝 놀랄지도 모르겠다. 공포소설이나 스릴러 소설도 아닌데 이런 느낌은 도대체 뭔가, 하고 말이다. 더구나 책의 제목에서 이미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김금희 작가가 2014년부터 2015년까지 발표했던 9편의 단편소설을 엮은 연애 소설집인 듯한데.

 

나는 대체로 순간적인 직감을 신뢰하는 편이다. 남들에 비해 예민하다거나 시쳇말로 '촉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런 근거도 없이 떠오르는 단순한 느낌을 그저 신뢰한다는 말이다. 그것은 어쩌면 '무작정'이라는 부사를 앞에 첨가해야 할런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내 생각에 <너무 한낮의 연애>를 읽으면서 느꼈던 '서늘한 느낌'은 '결핍'이나 '허무'의 감정에서 비롯된 '자포자기의 느낌'과도 무척이나 닮아 있는 듯했다.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현대인의 가장 큰 특징은 집착이나 소유의식의 결여에서 오는 '열정의 제로 상태'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소설 속 주인공의 이야기에 '서늘한 느낌'을 받았던 것처럼 열정이 없는 사람들은 한여름 태양 아래에서도 가벼운 추위를 느끼는 법이니까.

 

표제작인 '너무 한낮의 연애'에 나오는 주인공 '필용'은 대기업 영업팀장으로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좌천되어 건물 지하에 있는 시설관리팀으로 내려간다. 그 후로 그는 사람들의 시선이나 자신 스스로가 느끼는 자괴감으로 인해 그는 회사 식당에서의 점심을 포기한 채 무작정 종로 거리로 나선다. 그렇게 무심코 걷던 그 거리에서 '필용'은 대학 시절 자신이 다녔던 어학원과 자주 들렀던 패스트푸드점을 발견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그곳으로 발길이 옮겨졌다. 자신이 주문한 햄버거를 먹으며 무심코 바라본 창밖에서 그는 "나무는 'ㅋㅋㅋ'하고 웃지 않는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우연히 보게 된다.

 

대학 시절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 후배 '양희'가 썼던 연극 대본의 제목이었다. 그 시절 '필용'은 깡마르고 부스스하고 여성적인 매력이라곤 전혀 없었던 '양희'를 그저 햄버거나 같이 먹으며 자신의 허풍을 들어주는 후배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 "나 선배 사랑하는데" 라고 뜬금없는 고백을 한다. '필용'에게는 감정의 파동을 느끼게 하는 말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묻는 '필용'에게 "모르죠, 그건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고.", "지금 사랑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는데, 내일은 또 어떨지 모르니까요."라고 말했던 '양희'. 젊은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미래를 위해 하나쯤 보험처럼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욕망이나, 이해타산이나, 자존심이나, 수치심과 같은 속성이 그녀에겐 전혀 없었다. 몇 달 뒤 '필용'은 문산에 있는 '양희'의 집을 찾아간다. 그러나 그곳에서 '필용'은 그녀가 사는 누추한 집과 가난한 가족들을 보았고 자신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다. '양희'에게 사과하는 '필용'. 그러나 '양희'는 '사과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이런 나무 같은 거나 보라'고 말한다.

 

어떤 절망적인 현실을 잊기 위해 우연히 들렀던 종로 거리와 그 속에서 대면하게 된 자신의 과거. '필용'은 종로 소극장에서 10여년 만에 재회한'양희'의 연극을 보면서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잊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때 철없음으로 인해 저질렀던 부끄러운 일들이 어떤 것을 계기로 기억 속에서 되살아날 때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용서의 대상도, 그래야만 했던 시간도 이미 잊혀져가는 저 과거 속에서 되살릴 방법은 전혀 남아 있지 않은데 말이다.

 

이번 소설집에는 '너무 한낮의 연애'와 함께 '조중균의 세계', '세실리아', '반월', '고기', '개를 기다리는 일', '우리가 어느 별에서', '보통의 시절',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 등 9편의 단편이 실렸다.

 

"집집을 돌아다니다보면 머리가 지끈지끈해지면서 속이 울렁거리는데 집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완고하게 자기 스타일대로 평생을 살고 그러다보면 냄새가 만들어졌다. 그건 특정 영역의 냄새였으며 타인을 밀치는 냄새였다. 자기 고양이를 찾아주러 온 그를 사람들은 깍듯하고 친절하게 대했지만 아무튼 그 냄새는 진저리나게 게별적이고 고유한 것이라서 언제나 부루퉁하고 신경질적이었다."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 중에서 p.237)

 

내일이면 사라질지 모르는 감정이지만 오늘은 선배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양희'의 고백처럼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은 언젠가 또 부끄러워해야 할 과거로 바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은 그저 살아가는 것이지 지난 과거를 붙잡고 사과로 일관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 소설집에 실린 9편의 단편에는 저마다의 과거를 지닌 인물들이 등장한다. 어떻게 읽으면 무미건조한 문체일 수도 있고, 또 어떻게 읽으면 쿨한 느낌일 수도 있는 김금희 작가의 소설을 나는 '고급지다'고 느꼈다. 감정이라곤 조금도 실리지 않은 듯한, 무심한 듯 스쳐가는 창밖의 풍경처럼 작가는 그렇게 소설을 쓴다. 우리의 과거도 그렇게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당신의 과거는 안녕하냐'고 묻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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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여러 생각들 중 내 딴에는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몇몇 것들을 모아 글로 옮기곤 한다. 말하자면 나는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잃어버린 삶의 기억을 찾아 헤매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열정이나 마르셀 프루스트에 의한 삶의 재구성처럼 지난하고 힘든 작업일 수도 있고 시지프스의 노역처럼 덧없는 반복일 수도 있다. 애당초 나에게 주어진 것이 그것 밖에는 없다는 슬픈 고백일 수도 있다.

 

아침에 산을 오르는데 등산로에 떨어진 도토리를 보았다. 상수리나무가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올해의 첫 작품인 셈이었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도토리와 함께 나는 가을을 실감하고 있었다. 조용히 넘어가나 했던 2016년의 가을은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인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전혀 새롭지 않았던, 그동안 언론에 보도만 되지 않았을 뿐 어쩌면 줄곧 공공연한 비밀로 세간에 회자되어 왔던 검찰의 비리가 김모 부장검사에 의해 낱낱이 드러났던 것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김모 부장판사의 건도, 권력형 비리의 전형을 보여주었던 민정수석의 건도 사람들은 다들 '그걸 이제야 알았냐'는 듯 끌끌 혀를 찰 뿐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어쩌면 북한의 핵실험도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학습효과란 그런 것이다.

 

가을은 겨울의 심연을 향해 떨어지는 추락의 계절이다. 시간에 붙은 가속도로 인해 순간순간의 시간들이 빠른 속도로 밀려나 과거라고 명명된 어떤 체계나 순서도 없는 심연 속으로 떨어진다. 추락하는 기억은 손상되거나 변형된 채 어둠 속에서 길을 잃는다. 나는 가까스로 건져낸 몇몇 기억들을 글로 적는다. 글을 쓴다는 건 정말 시지프스의 노역처럼 덧없는 일이다. 추락하는 계절, 가을에는 더 그런 느낌이 든다. 과거를 향해 이유도 없이 곤두박질치던 내 기억의 파편들과 추락하는 계절의 어디쯤, 그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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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0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11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더 라스트 레터
조조 모예스 지음, 오정아 옮김 / 살림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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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느냐 물었지요? 누구에게나 그렇듯 일상이란 언제나 번잡스럽고 잡다하지만 막상 말로써 설명하려 들면 아무런 할 말이 없어지는 게 일상이지요. 저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몇몇 일들을 제외하면 딱히 말할 것도 없지요. 아니, 그것은 제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제 일상의 면면을 당신에게 만큼은 어떻게든 특별한 것으로 포장하고 싶은 게 저의 솔직한 심정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지 제 욕심일 뿐이고 어쩌면 당신은 특별할 것 없는 저의 소소한 일상을 궁금해 했는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9월입니다. 길었던 올 여름 폭염을 감안하면 9월은 그야말로 축복의 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저는 여전히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읽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읽는 책들은 어떤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체계도 없고 이렇다 할 목표도 없는 그런 독서일 뿐입니다. 일상의 권태와 무료함을 달래줄 유일한 소일거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때우기 위한 한 방편으로서의 독서는 그럭저럭 쓸모가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한 조조 모예스의 소설 <더 라스트 레터: 사랑을 찾아주는 마지막 열쇠>를 오늘에서야 다 읽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저는 요즘 조조 모예스의 소설을 자주 읽게 됩니다. <미 비포 유>를 읽었던 건 꽤나 오래 전의 일이었습니다만 <원 플러스 원>과 <애프터 유>를 읽었던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으니까요. 그랬던 게 불과 한 달 전에 있었던 일인 듯한데 저는 또 조조 모예스의 소설을 읽게 된 것이지요. 일부러 작정하거나 미리 계획했던 일도 아닌데 말입니다. 이번에 저는 평범한 이야기를 가지고도 순간적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소설가로서의 조조 모예스의 능력에 새삼 감탄하면서 이 책을 읽었던 듯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제니퍼 스털링이 그저 부자 남편을 둔 응석받이 여자로 느껴졌다. 그러나 앤서니는 다른 것들도 보았다. 그녀는 남편에게 약간 소홀한 대접을 받고 있으며, 자신의 위치가 요구하는 것보다더 영리한 여자라는 점, 한두 해가 지나면 그런 조합이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본인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 지금은 오직 그런 사실을 자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슬픈 기미만 눈에 감돌 뿐이었다. 제니퍼 스털링은 끝없이 반복되는 의미 없는 사교적 일상에 갇혀 있었다." (p.62)

 

어쩌면 당신은 위에서 제가 인용한 문구만으로도 소설의 전체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젊고 아름다운, 그러면서도 부자 남편을 둔 덕분에 세상 물정이라곤 눈꼽만큼도 알지 못하는 유한마담 제니퍼와 앤서니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신문기자이자 이혼남이었던 앤서니는 제니퍼의 남편, 로런스 스털링이 자신의 집에서 개최한 파티에 초대되어 제니퍼를 처음 만나게 됩니다. 권위적이고 체면을 중시하는 로런스는 제니퍼에게 금전적으로 부족함이 없게 하는 것이 부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라고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세상 물정이라곤 모르는 어린 나이에 결혼한 제니퍼는 성공한 사업가인 로런스를 남편으로 둠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 어린 시선을 은근히 즐겼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까닭에 무시하는 듯한 남편의 태도도 그럭저럭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이지요.

 

앤서니와 제니퍼는 서로에게 빠른 속도로 빠져듭니다. 로런스도 그런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니죠. 한편 로런스의 비서였던 모이라는 언제나 격식을 갖춰 행동하는 로런스의 태도에 흠모와 존경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제니퍼에 대한 질투의 마음도. 어찌 생각하면 세상은 참으로 불공평하고 비합리적인 곳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 특파원으로 발령을 받은 앤서니는 제니퍼의 동행을 강하게 바라고 그녀에게 요구합니다. 약속시간이 지났음에도 나타나지 않는 제니퍼를 뒤로 하고 앤서니는 결국 미국으로 떠납니다. 그러나 그 시각에 제니퍼는 앤서니를 만나기 위해 서두르다 그만 교통사고를 당하고 모든 기억을 잃는 불행에 빠지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제니퍼는 모이라 같은 여자들이 흉내도 낼 수 없는 최고의 상품이었다. 하지만 모이라 파커에게는 한 가지 이점이 있었다. 늘 모든 것이 주어지는 제니퍼 스털링 같은 여자와 달리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하룻밤의 짧은 기억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p.224)

 

사고에 대해 쉬쉬하는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 속에서 제니퍼는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발버둥칩니다. 그러나 주변의 어느 누구도 속 시원히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니퍼의 기억이 어렴풋이 되살아날 무렵 로런스는 그녀에게 그날의 교통사고로 앤서니가 죽었다고 말합니다. 제니퍼는 죄책감에 휩싸입니다. 1960년 9월에 있었던 사고와 기억을 잃은 제니퍼. 세월은 흘러 소설은 1964년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미국으로 갔던 앤서니가 돌아오고 제니퍼와의 재회로 이어집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앤서니가 제니퍼 앞에 살아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었죠. 그러나 마냥 반길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앤서니를 잊고 지냈던 4년 동안 제니퍼에게는 딸이 한 명 태어났던 것입니다. 그녀는 이제 마음 내키는 대로 움직일 수 없는 혹 하나가 생긴 셈이었습니다. 콩고 내전을 취재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난 앤서니와 딸을 데리고 로런스로부터 달아난 제니퍼의 운명은 엇갈립니다. 그리고 소설은 이제 40년의 세월을 지나 2003년 9월로 이어집니다.

 

역설적이지만 사랑은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앤서니와 제니퍼가 다시 재회하던 1964년의 시점에서 소설이 멈췄더라면 그건 아마도 삼류 로맨스 소설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운명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지요. 언젠가 당신이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그때도 아마 가을의 어느 날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운명은 소설에서도 다 다룰 수 없는 수많은 복선들로 이루어진다고 제게 했던 말 당신도 기억하고 있는지요?

 

소설처럼 9월의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안부를 묻는 당신에게 무엇 하나 특별한 걸 말하지 못했던 저를 용서해주세요. 하루를 살아내는 각자에게 일상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로 채워지는지요. 그러나 특별한 누군가에게 자신의 일상을 설명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매번 얼버무릴 수밖에 없는 저로서도 답답한 노릇이지만 당신의 웃음 속에 저의 모든 사정이 속속들이 이해되고 잇다는 걸 알기에 '그저 잘 지내노라' 말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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