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맹하고 어이없는 해명이겠습니다만 요즘 저는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데에도 도통 집중을 할 수 없는 까닭이 모두 어수선한 시국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낮에 외국인 친구 한 명을 만나 점심을 먹는데 아니나 다를까 불쑥 Sunsiri 아줌마 애기를 꺼내는 바람에 낯이 뜨거워서 그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지요. 그 친구 얘기인 즉슨 어떻게 민간인 한 명에 의해, 그것도 막돼먹은 아줌마 한 사람 때문에 나라 전체가 좌지우지 될 정도로 국가 시스템이 형편없을 수 있느냐는 의문이었고, 아무리 대한민국의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 낮은 수준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멍청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을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저는 다만 '어쩌다보니...(Well, in the meantime...)'라는 말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힘들고 하기 싫은 일이 닥쳤을 때 제가 항상 되내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는 말이지요. 단순하지만 저는 그 말을 속으로 몇 번 되내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심감을 얻곤 합니다. 적어도 힘들어 보이는 어떤 일을 피하지는 않게 된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 일도 어찌어찌 하다 보면 반드시 끝이 보이곤 한다는 것을 지난 경험이 사실로 증명해주었습니다. 예컨대 뜨거운 여름 날 집안 대청소를 하려면 엄두가 나지 않지요. 그래서 질질 시간만 끌고 미루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두 번쯤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럴 때에도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다. 쉬더라도 일단 시작하고 중간에 쉬자.' 하고 맘을 먹곤 합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요? 그렇더군요. 일을 일단 시작하면 빨리 끝내고 싶은 욕심에 힘든 것도 참고 일에 매달리게 됩니다. 저만 그런가요? 암튼.

 

대한민국 전체가 뒤숭숭한 요즘입니다. Sunsiri 아줌마도 귀국을 했고 그동안의 잘못에 대해 조사를 받고는 있습니다만 하나를 들추면 또 다른 일이 딸려나오는 바람에 '도대체 끝이 어딘가? 끝이 있기는 한건가?' 의심이 들고, 그때마다 국민들 전체의 어깨는 한 뼘씩 축축 쳐지는 듯합니다. 국가의 동력이란 무릇 그런 것이지요.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지도자가 있으면 국민들도 덩달아 힘이 나는 법이고, 제 잇속만 차리고자 몸을 움츠리고 국민들의 눈을 속이려는 지도자가 있다면 국민들도 따라서 사분오열 되는 건 시간 문제이겠지요.

 

그래도 끝은 있겠지요. 그럴 것입니다. 잘못을 저지른 지도자가 자신의 모든 잘못을 시인하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가장 빠른 해법이겠습니다만 지금으로선 그마저도 쉽지 않은 듯 보입니다. 그럴수록 국민들의 분노와 수치심은 더욱 커질 테구요. 돌이켜보면 Sunsiri Family에게 우리의 지도자는 얼마나 좋은 먹잇감이었겠습니까. 세상 물정이라곤 아는 게 없는, 세 살배기만도 못한 여인에게 크나큰 권력이 쥐어졌다는 걸 아는 순간 그 권력의 칼을 자신이 대신 휘두르면 세상 겁날 게 없겠다 생각했겠지요. 그렇게 광란의 칼춤이 시작되었던 것이구요. 2016년이 저물어 가고 있는 요즘, 대한민국호는 좌초되기 일보 직전의 위기 상황입니다만 어떤 식으로든 끝이 나겠지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일 수도 있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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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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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별도 없이 성급하게 왔던 계절이 또 서둘러 떠나려 하고 있다.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아쉬움만 가득 남겨 놓은 채 말이다. 아쉬움은 늘 준비되지 않은 게으른 자의 몫으로만 남는다. 아파트 주변을 붉게 물들였던 벚나무잎은 그제 내린 비가 힘에 겨웠는지 부스스한 모습으로 흩날렸다. '가을비 한 번에 내복 한 벌'이라는 옛말도 있다지만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탓인지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잔뜩 옹송그린 자세로 잰걸음을 옮기고 있다.

 

바람으로 가늠하던 가을의 결이 어느새 칼날처럼 매서워졌다. 시간의 흐름을 가을만큼 선명하게 보여주는 계절도 없는 듯하다. 서서히 단풍이 드는 나뭇잎에서, 날카로워지는 바람결에서, 이제는 마지막이라는 듯 보도 위를 힘없이 뒹구는 낙엽의 무리에서 시간의 흐름을 우리는 온몸으로 느끼지 않던가. 당나라의 명필가 구양순이 쓴 '추성부'(秋聲賦)에는 이런 소절이 있다. '바람의 결은 외로움에서 그리움의 톤으로 돌아눕고 그 기척을 제일 먼저 알아차리는 건 귀뚜라미와 잠자리. 귀뚜라미는 더듬이로, 잠자리는 대나무의 속청 같은 날개로 그 그리움의 감도를 때론 진하게 때론 옅게 조율한다.' 얼마나 멋진 문장인지...

 

앉아만 있어도 괜히 감상적으로 변하는 건 계절의 탓도 있으려니와 며칠 전에 읽었던 <숨결이 바람될 때>가 생각나서이기도 했다.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에 어린 딸과 아내를 남겨둔 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신경외과 의사 폴 칼라니티의 회고록인 이 책은 가을의 속절없는 애상처럼 읽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중병에 걸리면 삶의 윤곽이 아주 분명해진다. 나는 내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건 전부터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은 그대로였지만 인생 계획을 짜는 능력은 완전히 엉망진창이 됐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만 하면 앞으로 할 일은 명백해진다. 만약 석 달이 남았다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다. 1년이라면 책을 쓸 것이다. 10년이라면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삶으로 복귀할 것이다." (p.193)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의 저자인 폴은 레지던트 마지막 해에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치료 후 기적적으로 복귀하여 얼마 남지 않았던 7년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지만 결국 그는 죽었다. 신경외과 전문의도, 추앙받는 교수도, 유능한 과학자도 그는 되지 못했다.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후 22개월 만에 그는 세상과 이별했던 것이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찾고자 고군분투했던 그의 노력은 이 한 권의 책으로만 남았을 뿐이다.

 

"신경외과는 뇌와 의식만큼이나 삶과 죽음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아주 매력적인 분야였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에서 일생을 보낸다면 연민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스스로의 존재도 고양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찮은 물질주의, 쩨쩨한 자만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 문제의 핵심, 진정으로생사를 가르는 결정과 싸움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곳에서 어떤 초월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p.105)

 

폐암 판정을 받은 후 폴과 그의 아내 루시는 인공수정을 통하여 임신을 했다. 무기력하게 죽어가는 대신 남겨진 삶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리라 결심한 것이다. 보조침대에 누워 루시의 출산과정을 지켜보고 갓 태어난 딸을 힘겹게 안아보았던 폴은 이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던 듯하다. 그가 연명치료를 거부한 채 죽음을 선택하던 날 그의 딸은 태어난 지 겨우 8개월이 된 아기였다. 아빠로서, 한 생명의 보호자로서 그는 얼마나 할 말이 많앗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아쉬움 속에 눈을 감았을까. 그가 어린 딸에게 남긴 메시지를 옮겨본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p.234)

 

화학요법으로 쇠약해져가는 몸과 가물거리는 의식을 부여잡고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에는 22개월은 결코 넉넉한 시간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은 미완성의 작품일 수도 있다. 이 책의 말미에서 그의 아내 루시도 말하고 있지만 '미완성이야말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진실, 폴이 직면한 현실의 본질적인 요소'였을 것이다. 루시는 폴이 암과 사투를 벌이던 그 기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비록 지난 몇 년은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때로는 정말 견딜 수가 없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충만한 시기이기도 했다. 매일 삶과 죽음, 즐거움과 고통의 균형을 힘겹게 맞추며, 감사와 사랑의 새로운 깊이를 탐구한 시기였다." (p.256~p.257)

 

폴은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내 루시는 매순간 그가 사무치게 그립다고 고백한다. 모든 사람이 거쳐가야 할 과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죽음을 예약하기 전에는 그 사실을 체감하지 못한다. '바람의 결이 외로움에서 그리움의 톤으로 돌아눕는' 이 계절이 오면 나 또한 내 곁을 떠난 사람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물드는 단풍잎새에도, 마른 바람결에도, 푸르게 높이를 더하는 하늘가에도 내 슬픔의 물기가 촉촉히 젖어드는 것만 같다. 사랑을 하는 것도, 누군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사는 것도 어쩌면 내가 떠난 후에 그리움의 무게를 더하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결국 한 사람이 살다 간 삶의 가치는 그리움의 무게에 지나지 않음이다. 날이 차다. 그럴수록 그리움은 깊어질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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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이유도 없이 새벽에 한 번 잠이 깨는 바람에 오늘 아침에는 5시 30분에 맞춰진 알람이 울리고 나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밖은 여전히 캄캄했고 습관적으로 운동복을 꿰어 입은 나는 무거운 몸을 겨우 추스르며 현관을 나섰다. 새벽 기온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아파트를 벗어날 무렵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졌다. 낭패였다. 우산을 가지러 다시 돌아가자니 귀찮고 우산도 없이 그냥 가자니 빗발이 거세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에라, 모르겠다. 비좀 맞으면 뭐 어때' 하는 생각으로 무작정 산을 올랐다. 귀차니즘이 결국 나를 압도한 것이다.

 

산을 반도 오르지 못했는데 빗발이 굵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전히 푸른 나뭇잎들이 직접적으로 비를 맞는 건 막아주었다는 점이다. 능선에 있는 체육공원에 들러 몸을 풀었다. 정자 밑에서 체조를 하고 팔굽혀펴기도 하고 스트레칭도 했다. 철봉은 이미 빗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비를 맞으며 철봉에 거꾸로 매달린 채로 잠시 있었다. 피가 머리로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비가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산길을 걸었다. 늘 다니던 길이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어두웠던 탓에 발을 헛딛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럴 때마다 휘청 하면서 중심을 잃었다.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주'지는 않았다. 'Sunsiri' 아줌마 정도의 영적 능력이라면 비라도 그치게 했을 텐데 말이다. '더 블루 K'라는 회사를 만들고 사업이 번성하기를 간절히 원했더니 전 우주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청와대와 문체부는 나서주지 않았던가. 직접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영적 능력이 턱없이 낮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무리 간절히 원했건만 산을 다 내려올 때까지 비는 그치지 않았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분명 위기 국면이다. 대통령의 권한은 있지만 권위는 무너졌다. 임기라고 해야 1년 남짓 남은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마저 상실했다면 그것은 이미 대한민국 내에서 최고권력자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명예로운 퇴진은 아니지만 대통령 자신을 위해서라도 직을 내려 놓는 게 현명한 처신일 것이다. 측근에서 보좌하는 사람들도 대통령에 대한 충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퇴진을 건의하는 게 맞다고 본다. 적어도 자신들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대통령을 끝까지 남아 있도록 한다는 건 비겁하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위기 국면을 타개하고 장기적인 아노미 상태를 극복하는 유일한 해법이리라.

 

정부와 여당은 지금의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듯하다. 사건에 연루된 사람 몇몇을 처벌함으로써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인 양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권력을 상실한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할 인물도 없으려니와 권력이 살아 있을 때 미처 말하지 못했던 그간의 비리들이 봇물처럼 터질 것임은 너무도 자명하지 않은가. 힘 없는 대통령에게 모든 잘못을 전가함으로써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날 테니 말이다. 그런 비리들이 하나둘 드러날 때마다 대한민국의 위기는 증폭되고 국민들의 분노는 커져만 갈 것이다. 결국에는 쫓겨나듯 등 떠밀려 직을 내려 놓는 것보다는 지금 스스로 물러나는 게 낫다는 얘기다.

 

이제 비는 그쳤다. 혼란에 빠진 대한민국의 실상처럼 여전히 하늘은 어둡고 찬바람이 불 때마다 으스스한 한기가 옷깃을 파고든다. 다들 무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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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8 16: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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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30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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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살을 거스르며 바람이 불고 있다. 스산한 느낌이었다. 스산하다는 그 느낌에서 나는 생각을 멈춘다. 그래. 가을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바람은 이미 불고 있었지. 심지어 유난히 뜨거웠던 올해 여름의 어느 날에도 나의 상상 속에서는 언제나 시원한 가을 바람이 불고 있었어. 그것은 다만 시원하다는 느낌으로만 존재하는, 손끝에 감지되지 않는 어떤 것이었을지라도 내 머릿속에선 결코 떠난 적이 없었다. 그렇게 상상처럼 가을이 왔고, 가을도 다 가기 전에 벌써 스산하다고 느낀다는 건 나는 이미 겨울을 염려하고 있거나 상상 속에서 겨울을 살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늘 같은 계절을 두 번 사는 게 아닌가. 한 번은 상상 속에서, 또 한 번은 현실에서.

 

가을 햇살이 옅어지던 오늘, 나는 박주영의 소설 <고요한 밤의 눈>을 읽었다. 작가는 이 책에서 대한민국의 90퍼센트의 사람이 누군가의 조종을 받는 노예이거나 소모품이라는 전제를, 나머지 10퍼센트의 사람 중에 다시 10퍼센트, 즉 전체의 1퍼센트에 속한 사람들이 이 나라를 조종하고 기획한다는 전제를 깔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특정 나라를 언급한 적 없으니 어쩌면 전 세계를 의미하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 책은 단순히 스파이 소설에 불과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현대인의 절망적인 삶과 파편화된 개개인의 모습을 조망하고 있다.

 

"나는 나의 일을 하고 X는 X의 일을 하고 Y는 Y가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스파이이고 각자가 해야 할 일을 한다. 그리고 우리의 목표는 하나이거나 하나가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세상, 그 세상의 이면에 우리가 있고, 우리의 이면에 또 누군가가 있다. 누군가 우리를 모른 체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등 뒤를 모른 체한다. 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 하지만 패자가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 결국 우리 모두를 패자로 만든다. 언젠가 뒤돌아서 등 뒤를 보아야만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 순간이 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p.132)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생각의 날틀은 예상하지 못한 어떤 순간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곳으로 불시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실체도 없고,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도구로서의 '생각'을 우리는 어떻게 다루고 보듬어야 할까. 소설에는 여러 이니셜로 지칭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과거 15년간의 기억이 사라진 채 깨어난 서른다섯 살의 남성인 X와 X가 병원에 있는 동안 보호자 역할을 했던 여성 요원 Y와 정신과 의사 D와 스파이 조직의 중간 보스인 B와 소설가 Z 등.

 

"인간이 기억의 총합이라면 그 기억을 가진 누군가를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기억하고 있는 그 누군가. 하지만 그녀는 정답이 될 수 없다. 그녀는 십 년 전의 나만을 알고 있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말은 진실일 테지만 그것은 그녀의 진실뿐이었다." (p.39)

 

성인이 된 이후의 기억을 모두 잃은 X는 자신의 기억을 찾기 위해 정신과 의사 D를 만나기도 하고 자신의 친구라고 기록된 Y를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이 몸 담았던 회사를 찾아가기도 한다. 그러던 중 자신을 안다는 한 남성이 접근하여 그가 과거에는 금융계를 좌지우지하는 애널리스트로서 조직을 위해 일했노라고 말하면서 다시 조직에 복귀할 것을 종용한다. 한편 신분을 바꿔가며 중요 요원들을 감시해왔던 Y는 X가 다시 스파이 일에 복귀하도록 조종하는 임무를 맡고 X에게 접근한다.

 

"원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위안을 주는 환상 속에서 살 수 있다. 거짓된 현실에 속아주기도 하고 본래 의도를 감추려고 그 현실을 이용하기도 하면서. 이 거짓으로 쌓은 도미노가 길고 크고 복잡해질수록 어쩌면 우리는 더더욱 환상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성공적인 환상을 지키기 위해 거짓된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스파이의 삶이다." (p.162)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스파이에 자원했던 수석요원 B는 자신도 단지 하나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고 새로 들어오는 신참들은 그런 꿈마저 없이 오직 자신의 안위와 영달만을 목표로 한다는 사실에 실망한다. 잠재적인 위험인물로 소설가인 Z를 지목했던 B는 Y에게 그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겼었지만 X와 가까워져서 그를 설득하고 감시하는 역할이 주어지자 Z를 감시하는 일은 다른 요원에게 맡겨진다. Y는 X의 서재에 꼽혀 있는 Z의 책을 발견하고 Z와 X가 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보통 사람에게 일상은 매일 망각의 강을 건너는 것과 같다. 알람에 맞추어 겨우 일어나 요기를 하고 일터로 나가는 분주한 하루의 시작부터 그 하루를 바삐 보내고 지친 몸으로 귀가해 식사를 하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켜놓은 채 앉아 있다가 잠드는 나른한 하루의 끝까지, 그 하루의 순간순간을 함께하는 누군가의 몸짓을, 이야기를 시간과 함께 잊어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기록한다. 하지만 기록은 기억을 완전히 대신하진 못한다." (p.63~p.64)

 

Y와의 결혼을 염두에 두었던 X는 Y의 진짜 모습을 알기 위해 정신병원에 있는 Y의 어머니를 찾아간다. 한때는 스파이였던 Y의 어머니도 딸에게 해가 되지 않기 위해 철저히 자신을 정신병자로 위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X는 알게 된다. 한편 Z가 X의 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된 Y는 Z의 감시 임무를 다시 맡게 해달라고 B에게 부탁한다.

 

"현실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우리의 정당한 분노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여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믿는 사람, 바꿀 수 있다, 해낼 수 있다는 격렬한 희망을 여전히 품은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p.288)

 

작가는 소설에 등장하는 스파이 조직이 어떤 성격의 조직인지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가가 독자들에게 말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소수의 상위 그룹에 집중된 권력의 편중은 갈수록 심화되고 다수의 대중은 점차 냉소와 무관심만 더해가는 현실에서 '생각은 최고의 지성이었고 최상의 사치'로 변모해 간다. 그런 환경이 지속될수록 세상은 점점 살기 어려운 곳으로 변하지 않을까 작가는 우려스러운 것이다. 삶이 팍팍할수록 주변은 온통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감시하는 스파이들의 세상으로 바뀌고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리라는 희망은 사라진다. 이러한 비극적은 결말이 도래하기 전에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회복해야 하고, 그 원동력은 바로 독서라는 사실을 말하려고 했을 터였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작금의 현실을 바라보며 우리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던가. 실체도 없고, 진실도 없었던, 어쩌면 종교보다 더 성역화 된 '반공'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우리는 지금의 현실을 만들어 온 게 아닌가 싶다. 개인의 능력이나 정당의 도덕성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반공'이라는 종교를, '안보'라는 신을 숭배해 온 우리에게 지금의 현실은 뼈아픈 자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대통령 한 명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참회여야 한다. 그렇게 가을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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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손쉽게 어두워지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혹시 비가 올지도 모르겠는걸' 생각했었다. 일기예보에는 분명 비가 온다는 내용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적어도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 들었던 일기예보에서는. 그러나 기상청 예보와는 다르게 비가 내린다 한들 사람들은 대개 그러려니 이해하거나 "웬 비람" 한마디 내뱉고는 가던 길을 묵묵히 걸어 갈 게 틀림없었다. 일상에서 그런 일쯤이야 밥 먹듯 흔한 일이고 주변에는 우리가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에.

 

세상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여간 간단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세상은 개인의 욕심을 동력으로 쉼 없이 굴러가는 것이기에. 다만 허공에는 보이지 않는 전파가 무수히 많은 것처럼 세상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개인의 욕심이 복잡하게 얽혀있을 뿐이다. 개개인의 욕심이 향하는 과녁은 각자 다르고 그 강도 또한 천차만별이겠지만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일순간 제 욕심을 내려놓는다면 동력을 잃은 세상은 그야말로 적막강산으로 변하지나 않을까 몰라.

 

요즘 대한민국 전체를 떠들석하게 만드는 핫이슈를 꼽으라면 단연 최모 여인과 그녀의 딸 정모 양, 그리고 그들과 연관된 주변의 인물들일 것이다. 연일 새로운 뉴스들이 쏟아지는 통에 그들의 재력과 권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도 없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현 정권의 실세와 손을 잡지 않고는 그런 일들을 감히 실행에 옮기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건 아마도 세 살배기 어린애도 능히 짐작할 만한 일인데 관련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니라고 잡아떼기만 하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최근에 만났던 사람들 중 대화의 중간에 그 뉴스를 꺼내지 않았던 사람들을 보지 못했으니 그들이 과연 '난 놈'이거나 '난 X'이 아닐 수 없다. 그 바람에 콘크리트 지지율이라고 하던 대통령의 지지율도 허무하게 깨져 25%까지 곤두박질 친 걸 보면 집권 여당의 미래도 암울하다 하겠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분위기를 감지한 여러 권력층들, 예컨대 검찰이나 언론 등이 갑자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현 정권의 다음을 기약하지 못한다면 권력에 동조하거나 그에 기대어 갖은 짓을 일삼았던 그들 또한 안위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닌 송모 씨의 회고록을 크게 부풀려서 연일 떠드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검찰이 야당 국회의원들을 무더기로 기소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러나 모든 별들도 소멸하기 직전에 밝게 빛나는 것처럼 정부 여당과 그 추종자들도 마지막 불꽃을 피우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결국 그들의 욕심이 향하는 곳은 명계의 어느 곳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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