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통 끝날 것 같지 않던 일이 어느 날 갑자기, 그것도 무참할 정도로 허무하게 끝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대통령의 비리가 본격적으로 언론에 보도된 지 근 한 달이 지나고 있는 요즘, 사람들은 다들 이 혼란이 언제 끝날지 가늠을 할 수 없다고들 말합니다. 1년 이상 남은 내년 대선때까지 지금과 같은 상태가 쭉 이어질 것 같아서 하는 말이지요. 대통령이라는 대체불가의 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전체가 방향성을 잃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걱정을 아니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물러나기 싫다는 대통령을 강제로 끌어내릴 수 있는 방법 또한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어서 이를 지켜보는 야당이나 국민들 역시 답답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모 프리미엄 병원에서 Sunsiri 아줌마뿐만 아니라 그녀의 일가족, 그리고 힘깨나 쓴다 하는 주요 인사들까지 모두 특혜성 처방을 받은 모양이더군요. 대통령 또한 예외는 아니었던가 봅니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부터 회원권도 없이 드나들었던 것은 물론 당선된 이후에도 대리처방을 받거나 직접 방문하여 병원의 시설을 이용했다지요. 나이가 많았던 전직 비서실장도 그렇구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신분 노출을 꺼렸던 대통령은 '길라임'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지요? 나는 이 얘기를 듣고 순간적으로 영어 단어 '크라임'(crime : 범죄)이 혹시 '길라임'에서 온 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더랬습니다. 병원을 처음 방문했을 때는 '길라임'으로, 몇 번 반복되면서 이게 혹시 국민들에게 알려지면 큰일이 나지 않을까 싶어 '클라임'('클날 것임'의 줄임말)으로, 이것이 다시 'ㄹ'음이 탈락하는 음운탈락 현상에 의해 '크라임'으로 변한 게 아닌가 하고 말이지요. 세상 참 요지경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혼돈의 상황이, 언제 끝날지 기약없는 이 상황이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을 바꿔먹은 대통령의 '오늘부로 대통령직을 내려놓겠습니다.' 하는 하야성명과 함께 허무하게 끝이 날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부터 전국민이 함께 하는 100일간의 새벽기도회라도 가져야 할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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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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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새벽 운동을 나서는 내 발길 앞에는 희거나 다정했을 달빛이 환하게 드리웠었다. 몇십 년 만의 슈퍼문이라는 얘기를 TV에서 얼핏 들었던 그 달빛이었다. 동행하는 달빛은 나무 그림자에 가려 어른어른 이상한 무늬를 만들었다가 때로는 한낮처럼 환하게 밝았다가 했다. 달빛이 아무리 밝아도 세상의 모든 어둠을 다 몰아낼 수는 없다고 달빛은 나무 그림자에 한 자 한 자 새겨넣는 듯했다. 희거나 다정했던 그 달빛이.

 

"달이 유난히 커다랗게 떠오른 밤, 커튼으로 창들을 가리지 않으면 아파트 구석구석으로 달빛이 스며든다. 그녀는 서성거린다. 생각에 잠긴 거대한 흰 얼굴에서 스며나오는 빛, 거대한 캄캄한 두 눈에서 배어나오는 어둠 속을" (p.69)

 

한강 작가의 소설 <흰>은 영면하는 어떤 것들에 대한 애도의 마음이 담겨 있다. 애초에 희거나 밝았을 원형질의 어떤 것들은 무자비한 시간의 속성 앞에 때론 더럽혀지고 처음에 가졌던 물성이 사라지기도 한다. 영면하거나 사라져간 어떤 것. 작가는 그것에 대해 쓰고 있다. 문학이란 결국 존재하는 어떤 것을 존재하지 않는 다른 어떤 것으로 치환하는 작업이다. 존재하는 어떤 대상은 형태나 질감이나 색채나 향기 등 물체로서 갖는 본연의 물성을 잃는 대신 시간의 영속성을 획득한다.

 

책의 화자인 '나'는 태어난 지 2시간 만에 죽은 언니에 대해 회상한다. '나'를 깊은 사색의 어떤 지점으로 이끄는 것은 주로 '흰 것'들이지만 작가에게 '흰'의 의미는 삶과 죽음의 경계, 죽은 언니와 나와의 화해쯤으로 읽힌다.

 

작가는 '강보, 배내옷, 달떡, 안개, 흰 도시, 젖, 초, 성에, 서리, 각설탕, 흰 돌, 흰 뼈, 백발, 구름, 백열전구, 백야, 얇은 종이의 하얀 뒷면, 흰나비, 쌀과 밥, 수의, 소복, 연기, 아랫니, 눈, 눈송이들, 만년설, 파도, 진눈깨비, 흰 개, 눈보라, 재, 소금, 달, 레이스 커튼, 입김, 흰 새들, 손수건, 은하수, 백목련, 당의정, 빙하, ... 모든 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명 치마의 마지막 밑단이 불꽃 속으로 빨려들어갈 때 당신을 생각했다. 당신, 올 수 있다면 지금 오기를. 연기로 지은 저 옷을 날개옷처럼 걸쳐주기를. 말 대신 우리 침묵이 저 연기 속으로 스미고 있으니, 쓴 약처럼, 쓴 차처럼 그걸 마셔주기를." (p.125)

 

작가의 사유는 이내 끈적한 슬픔으로 독자들의 눈시울을 적시지만, 마침내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슬픔을 딛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야겠다는 의지가 두 손 가득 모아지는 걸 보면 우리가 어떤 매개물을 통하여 죽은 자와 산 자가 서로 소통할 필요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날카로운 시간의 모서리 - 시시각각 갱신되는 투명한 벼랑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살아온 만큼의 시간 끝에 아슬아슬하게 한 발을 디디고, 의지가 개입할 겨를 없이, 서슴없이 남은 한 발을 허공으로 내딛는다. 특별히 우리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것밖에 방법이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도 그 위태로움을 나는 느낀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 속으로, 쓰지 않은 책 속으로 무모하게 걸어들어간다." (p.11)

 

한강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우리 마음의 보편적인 정서를 한 자 한 자 그녀가 대신 기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나는 지금 이러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그녀는 그에 적확한 단어와 문장들을 찾아내어 내 앞에 글로 써서 보여준다는 상상. 그렇게 되기 위해서 작가는 지금껏 얼마나 많은 고통과 씨름하며 긴 시간을 건너왔을지...

 

하늘이 어둑신하다. 가당치도 않은 일을 바득바득 우기고 떼를 쓰는 철부지 어린애의 투정을 받아주듯 어른들도 이따금 자신의 투정을 받아줄 누군가 한 명쯤 곁에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이성적인 설득이 아니라 무한정 받아주고 웃는 낯으로 어르고 달래줄 그 누군가가. 주말이면 어깨에 내려앉는 일주일의 피로가 먼지처럼 달라붙는다. 그나마 한강 작가의 이 소설(때로는 시처럼 읽히지만)이 위로라면 위로가 되었다.긍정의 한 모금을 입에 넘기는 듯 나는 그렇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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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의 여린 햇살이 메마른 보도 위에 스민다. 그 알갱이들은 마치 분가루처럼 흩어져 살금살금 틈을 비집고 마침내 그 속으로 조용히 스며드는 것이다. 나는 한참 동안 멀거니 바라보았다. 나날이 푸른 물이 빠지는 늦가을의 나뭇잎은 연신 마른 기침을 하면서도 스며드는 햇살을 완강히 거부한다. 그 고집스러움에 나는 놀란다. 기어이 잘려나가면서도 자연의 혜택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결연한 다짐. 바람은 이따금 무거운 짐을 덜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안식을 준비하는 나무로부터 제 소임을 다한 나뭇잎들을 떨구었다. 무던히 애를 쓰던 바람도 어느 순간 어지간히 잦아들고 사방은 문득 고요하다. 나른한 오후에 가을의 변명이 낙엽처럼 쌓인다. 보도에 쌓이는 플라타너스의 너른 잎. 흉측하다.

 

고3 수험생들이 한바탕 난리를 치며 고사장으로 떠난 후 늦가을 여린 햇살과 무엇인가 지난 잘못을 비밀스럽게 실토해야 할 듯한 농밀한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사는 게 허깨비처럼 느껴지는 허기진 오후. 가을을 가을답게 살아가던 사람들은 하나둘 어디론가 떠나고 제 욕심을 채우려 악다구니를 쓰는 사람들만 득시글한 21세기 대한민국.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가. 도적질을 한 사람이 자신의 죄는 덮어두고 또 다른 도둑을 잡으라며 검찰에게 명령을 내리는 이런 웃지 못할 코미디에 국민들은 또 얼마나 큰 무력감에 빠지는지...

 

계절을 계절답게 하는 것은 철따라 농도가 달라지는 햇빛과 바람과 물의 조화다. 겨울로 향하는 발걸음이 잠시 가벼워진 듯한 오늘, 가을의 푸석한 햇살이 메마른 대기를 밟고 한껏 여유롭다. 모든 게 빠르게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이 한낮의 여유는 얼마나 값진 것인지. 노랗고 빨간 색감으로부터 받는 눈의 호사와 소임을 다한 나뭇잎의 자발적인 쇠락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더 부끄러워 해야 할까.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국민 대다수가 내려오라 하는데 싫다고 버티는 작금의 세태를 보면서 홀연히 떨어지는 분분한 낙엽 앞에 나는 무한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지금 손에 쥐어진 것과 눈앞에 보여지는 모든 것들이 영원히 제것으로 남도록 하겠다는 저들의 탐욕이 마냥 부끄러워지는 하루다. 우리는 그런 대통령을 뽑지 않았다고 뒤돌아 서서 부인하고 싶은 그런 오후가 쓸쓸히 흐르고 있다. 쇠락하는 가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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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 미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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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차일드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어릴 적 친구 한 명이 떠오르곤 한다. 만화책보다 무협지를 더 좋아했던 친구. 국민학교를 졸업하기도 전부터 무협지라면 모르는 게 없었던 그는 또래보다 조금은 조숙했고, 이따금 말을 더듬었고, 친구들보다 키가 한 뼘쯤 더 컸었고, 덧니가 인상적인 아이였다. 그 친구가 금강, 사마달, 서효원, 야설록, 용대운, 운중행 등 이름조차 중국스럽거나, 무협스러웠던 작가들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 놓을라치면 친구들은 다들 목을 길게 뺀 채 넋을 놓았다. 친구도 그때만큼은 말을 더듬지 않았다. 답설무흔이니, 어기비행술이니, 십갑자의 내공이니, 주화입마니 도통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힘든 말들을 친구는 거침없이 사용하면서 다른 아이들의 기를 죽이곤 했었다.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했던 친구는 서울에 있는 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했고, 딱히 바쁜 일이 없었던 나는 이따금 친구의 자취방을 찾았고, 공인회계사였던가 세무사였던가 아무튼 어떤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던 그는 허구한 날 집 안에 틀어박혀 공부를 했고, 맥주병이나 음료수병엔 담배꽁초가 가득 채워져갔고, 그러는 사이에 졸업을 했고, 마냥 미뤄두었던 군대를 다 늦은 나이에 가게되었고, 이래저래 사는 게 바빴던 그와 나는 연락마저 뜸해지다가 그도 나도 결혼을 했고, 몇 번인가 이사를 한 후로는 숫제 연락마저 끊겨버렸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샛길로 빠지는 바람에 서두가 길어졌다. 말하자면 이 책은 '서양의 무협지'라고 해도 좋을 그런 소설이다. 이 책뿐만 아니라 리 차일드의 소설이 다 그렇다. 잭 리처를 주인공으로 쓴 '잭 리처 컬렉션' 스무 번째 이야기인 <메이크 미>는 디프 웹(Deep Web : 일반 검색 사이트로 검색이 가능한 웹인 표면 웹(Surface Web)과 비교되는 용어로 각국의 정부 자료나 기업의 비밀 자료, 또는 불법적인 정보가 거래되는 심층적인 웹을 의미하며 다크 웹(Dark Web) 또는 섀도 웹(Shadow Web)이라고도 함)을 소재로 하고 있다.

 

전직 헌병 군수사관 출신인 잭 리처는 아무런 목적도 없이 미국 전역을 떠돌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시카고로 가려고 했던 그는 마더스 레스트(Mother's Rest)라는 시골 마을 이름에 이끌려 기차에서 무작정 내린다.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고, 잭 리처는 마을 이름의 유래에 대해 이런 저런 상상을 한다. 195센티미터의 키에 110킬로그램의 거구인 그를 보고 전직 FBI 출신의 사설탐정 장이 다가온다. 리처를 자신의 동료로 착각했던 것이다. 동료인 키버의 지원요청을 받고 마더스 레스트에 도착했던 장은 그의 실종에 대한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리처에게 도움을 청한다. 리처와 장은 키버가 묵었던 모텔 객실에서 키버의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지 한 장을 발견한다. 거기에 적힌 'LA 타임스'기자의 전화번호와 '사망자 200'이라는 단서를 쥐고 장과 리처는 끝없는 추격을 시작한다.

 

'모든 명령에 대한 즉각적인 응답'을 뜻하는 은어로서 <메이크 미>라는 책의 제목은 600페이지에 가까운 장대한 스케일의 소설 끝부분에 이르기까지 독자는 그 제목이 뜻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한 채 깊이 빠져들게 된다. '마더스 레스트'라는 온화한 지명과는 반대로 잔인한 범죄 집단의 거점이었던 그곳을 초토화시키는 데에는 많은 인원이 필요치 않았다. 리처의 동료이자 연인이었던 장과 LA 타임스 기자 웨스트우드, 그들 세 명이면 충분했다. 리 차일드의 소설이 언제나 그렇듯 모든 면에서 완벽한 잭 리처와 잔인한 범죄집단과의 숨막히는 추적과 빠른 스토리 전개, 시원한 액션과 달달한 로맨스가 일품인 책이다.

 

이따금 도서관에 들러 보면 지금도 무협 판타지 소설이 누군가에 의해 쓰여지고 또 누군가에 의해 읽혀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친구의 소식이 궁금해지곤 한다. 누구보다 무협지를 사랑했던 친구. 그가 지금 곁에 있다면 나는 어쩌면 리 차일드의 소설 한 권을 그에게 건넬지도 모른다. "여보게 친구. 요즘은 사람들이 무협지 대신 리 차일드 소설을 읽는다네. 그러니 자네도 한 번 읽어보게."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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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씨는 얼마나 푹하던지요. 새벽에 산을 오르는데 어찌나 덥던지 운동복 상의 지퍼를 내려 땀을 식혀야만 했습니다. 여명이 밝아오기 직전의 캄캄한 어둠은 숲의 숨결을 더욱 가라앉게 했습니다. 은사시나무의 잎이 떨어진 등산로 위를 상수리나무의 길쭉길쭉한 갈색 잎들이 뒤덮고 있습니다. 켜를 이룬 낙엽을 밟는 기분이 마치 어느 영화제의 레드 카펫을 밟는 느낌이었습니다. 바람이 스쳐갈 때마다 마른 낙엽이 비처럼 떨어집니다. 나는 결국 운동복 상의를 벗고 속옷만 입은 채 걸었습니다. 그 시간에 만날 수 있는 사람은 한두 명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스락 바스락 낙엽 밟히는 소리가 정겹습니다. 나도 모르게 구르몽의 시가 떠오릅니다. '시몬, 나뭇잎 져 버린 숲으로 가자./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지금은 고인이 된 이브 몽땅의 노래 "고엽"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깊은 저음으로 울려퍼지는 허스키한 목소리와 쓸쓸한 느낌.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로 유명한 박영근의 시인은 그의 시 '다시 11월'에서 11월을 이렇게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꽃 떨어진 그 텅 빈 대궁에 빗물이 스쳐간다//이제 나를 가릴 수 있는 것은 거센 바람뿐"이라고.

 

이따금 젊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계절의 감상을 말하노라면 '오글거린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계절의 감상이라는 게 일상이었던 듯합니다. 편지 첫머리에는 으레 계절 인삿말 한두 줄이 쓰이곤 했으니까요. 첫인사를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도 많았습니다. 어디 멋진 말이 없을까 형이나 누나가 읽던 시집을 뒤적이기도 하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감상적인 멘트도 받아 적곤 했었지요. 그렇게 온 몸으로 계절을 느끼다 보면 어느새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눈인사를 하곤 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계절을 오롯이 느껴보지도 못한 채 또 다른 계절을 맞곤 합니다. 한여름에는 에어컨 바람 속에서, 한겨울에는 후끈 더운 난방 속에서 계절이 가는 줄도 모른 채 보냅니다. 그러니 계절에 대한 느낌이 있을 리 만무하지요. 과학의 발전은 인간을 계절 부적응자 또는 계절 불구자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삐삐가 유행하던 그 시절의 감성을 요즘 아이들은 모를 테지요. 

 

나태주 시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달 11월, 햇빛과 나뭇잎이 꼭 같은 맛이 되었다는 황인숙 시인의 11월, 큰 사랑을 주신 당신에게 감사의 말을 찾지 못해 나도 조금은 쓸쓸하다고 말하는 이해인 수녀의 11월, 흩어진 낙엽 위에 나이테를 키우는 김경숙 시인의 11월, 무어라고 미처 이름 붙이기도 전에 찾아온다는 유안진 시인의 종교의 계절 11월, 지금은 태양이 낮게 뜨는 계절이라 말하는 오세영 시인의 11월을 요즘 사람들도 온몸으로 느껴봤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젊은 사람들이 계절의 불구자가 아닌 계절 탐닉자 또는 계절 마니아로 살았으면 하고 말입니다. 한스 에리히 노삭의 소설 "늦어도 11월에는"을 읽으면 그 느낌을 조금 알 수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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