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되었다는 기상청의 예보를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했습니다. 점심 무렵에는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지기도 했었죠. 아주 짧은 시간 장대비가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장맛비 때문인지 거리로 쏟아져 나온 차량으로 도로는 가는 곳마다 지체와 정체가 빚어졌습니다. 낮에 차를 몰고 잠시 외출을 했었는데 이 길이 밀리는 걸 보고 다른 길을 선택하면 그 길은 오히려 더 길게 밀려 있곤 했습니다. 좀 더 빨리 가려고 이 길 저 길 한참을 돌다 보니 평소보다 한참이나 지체되었습니다. '머피의 법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하루였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으레 밀리겠거니 생각하고 가던 길에서 느긋하게 기다리면 될 것을 조급한 마음에 이 길 저 길 헤매다 보면 시간과 돈을 모두 잃곤 하지요. '머피의 법칙'을 자주 경험하게 되는 까닭도 모름지기 그런 조급함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간이란 참으로 조급하고 경박스러운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나만 그렇고 다른 사람들은 다들 느긋한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도...

 

비가 많이 내린 것도 아닌데 방안은 온통 꿉꿉하고 눅눅한 기운으로 가득합니다. 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책을 집어들었는데 그마저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진득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어서 퀴퀴한 세월이 묻은 오래된 음악을 듣다가 습관처럼 몇 자 적었습니다. 끈적끈적하고 후텁지근한 공기, 밖에는 다시 비가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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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평전 - 문익환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판 문익환 평전
김형수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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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0년대의 민주화 투쟁을 경험하지 못한 20대의 젊은이들에게 문익환은 어쩌면 낯선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서 문익환이라는 이름 석자는 통일과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각인되었다. 시를 노래하며 세상의 온갖 부조리를 외면한 채 오직 자신의 길만 고집스럽게 걷던 그가 쉰아홉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던 것은 어쩌면 시대의 부름에 호응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를 시대의 외침에 호응하도록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성직자로서의 문익환이 보기에 남과 북의 우리 민족의 삶이 너무나도 애잔하다고 느꼈을 터였다.

 

아직 이런 말을 할 만큼 나이가 든 건 아니지만 한 사람의 삶에는 분명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문익환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1918년 만주 북간도에서 3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난 문익환은 독립운동의 주요 거점이었던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만주의 한인들이 세운 명동소학교와 은진중학교를 거쳐 평양의 숭실중학교, 북간도의 용정광명학교를 다녔다. 그 시절의 문익환은 여리고 행복했던 듯 보인다.

 

"그 속에서 문익환은 겨울 동화를 살았다. 친구 윤동주, 송몽규, 김정우와 함께 아버지가 장로로 있는 주일학교를 다니며 성탄 때는 교회당 옆의 윤동주 집에서 새벽노래 준비를 하고 밤새워 꽃종이를 만들었다. 옷을 두툼하게 껴입고 벙거지를 뒤집어쓰고 개가죽 버선을 신고 새벽 눈길을 걸어 다니며 찬송가를 부를 때는 하느님의 나라가 따로 없었다." (p.101)

 

순진하고 천진난만했던 그가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서서 여섯 차례에 걸쳐 12년간의 옥살이를 감내할 만큼 강인한 투사의 길을 걷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열렬히 사모하던 여인 박용길과 결혼하여 만보산 골짜기에 터를 잡고 신접살림을 시작하자마자 태어난 첫 아이. 그 모습이 안쓰러워 신경 중앙교회 목사가 문익환을 부목사로 초빙하여 부부를 불러줄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들의 앞날은 힘들지만 순탄한 듯 보였다. 그러나 갑자기 날아든 비보는 문익환의 삶을 현실 세계의 한가운데로 인도하기에 충분했다. 아끼던 친구 윤동주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죽었다는 소식.

 

"문익환은 자신이 구겨진 휴지처럼 역사의 구석지에 버려져 있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확실히 문익환이 생각지 못한 제2의 길을 간 장준하와, 그보다 더한 제3의 길을 선택한 윤동주, 송몽규의 진로에 비추어 형편없이 초라한 것이었다. 문익환은 엄청난 절망감에 빠졌다. 육체는 밥으로 살찌지만 정신은 기아와 고통으로 성장한다.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에 의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어야만 비로소 행동할 수 있게 된다." (p.178)

 

젊었을 때 종교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나는 성직자나 신학자로서의 문익환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았다. 그보다는 오히려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던 투사로서의 문익환이 더 익숙했다. 검은 뿔테 안경에 듬성듬성한 수염을 하고서도 얼굴에는 늘 미소를 잃지 않던 모습은 투사의 이미지와는 영 딴판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1989년 3월 조평통의 초청으로 소설가 황석영과 함께 북한을 방문했던 사건은 마치 어제의 일인 양 기억에 또렷하다. 군사정권의 엄혹했던 시기에 국가 기관 소속이 아닌 일반인의 신분으로 북한을 방문할 수 있었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마침내 문익환이 법정에 섰을 때 두 손이 밧줄에 묶인 채 사진기자들에게 보여주었던 소년 같은 미소는 그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흉악범처럼 묶여 있는 처지와 미묘한 부조화를 이루어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물론 그의 표정과 눈에는 통일에 대한 확신과 열정이 빛나고 있었지만 재판은 구역질이 날 만큼 유치한 여론몰이에 활용되었다." (p.606)

 

성직자라는 가면을 쓰고 정권에 빌붙어 호의호식하는 자들을 우리는 수없이 많이 보아왔다. 목회자라는 지위와 권력, 신앙심을 이용해 여성신도에게 차마 못할 짓을 저지르거나 신도들의 헌금을 개인의 사적 치부 수단으로 활용하여 부를 쌓는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겉으로는 목회자입네 우리 사회에서 존경과 신뢰를 받는 아이러니한 현실 앞에서 문익환 목사는 얼마나 한결같았던가.

 

"그는 자신의 마음을 글자가 아니라 발바닥으로 쓰고자 했으니, 세월이 흐르면서 숱한 존재들의 발자국이 덮어버리면 점점 지층 밑으로 사라져갈 것이었다. 그렇다고 살아 있는 사람들을 못 돌아다니게 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그러나 그것이 문익환이 지상의 사람들에게 남긴 선물이었다. 그가 예수의 말 중에서도 가장 경외하는 말이 이것이었다.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노라." 문익환! 그의 민중 사랑은 이렇게 넓고 컸다. 넓고 컸던 사랑도 떠난 뒤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헌신적 인간애와 지사적 풍모에 거듭 감복했던 사람들도 그가 말하는 민족의 위기에 대해서는 그것이 드러날 때까지 알지 못했다." (p.646)

 

돌이켜 생각해 보면 문익환 목사와 같은 선각자가 있었기에 평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지 않나 싶다. 평화주의자가 곧 빨갱이로 매도되던 시기에 지속적으로 평화를 주장하던 많은 희생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지낸다. 나이가 들수록 한 인간이 걷게 되는 항거할 수 없는 운명이 존재한다는 걸 믿게 되는 것처럼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되는 날 그 하나의 목적을 향해 한결같이 달려왔던 수많은 희생자들이 있었음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날 우리는 문익환이라는 이름 석자를 제일 먼저 호명할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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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이따금 시계열의 연속선상에서 누군가 한 부분만 뚝 떼어 들어낸 듯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 공란의 삶이 있게 마련입니다. 밤꽃이 피고 지던 지난 보름여의 시간 동안 나는 그야말로 목숨만 겨우 유지한 채 죽은 듯 지냈었나 봅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꼭 해야 할 일만 겨우 하면서. 마치 나는 내 삶이 아닌 누군가의 삶을 조용히 지켜보는 듯 그렇게 방관자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한낮의 더위도 아침저녁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에 슬몃 씻겨 사라지고 바람을 벗 삼아 저녁 산책에 나선 날이면 하루의 기억도 바람결에 무심히 흩어지곤 했습니다.

 

아픈 아내를 돌보며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일상을 살아내는 동안 6.13 지방선거가 있었고, 2018 러시아 월드컵이 개막했고, 연분홍 자귀나무 꽃이 만개했습니다. 슬쩍 스치기만 해도 금세 초록물이 들 것 같은 한여름의 시간들이 지금도 무심히 흘러가고 있습니다. 뉴스에서는 오늘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향년 9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3김 시대로 통칭되던 민주화의 시기에 그도 어쩌면 자신의 지난 삶을 조금쯤 반성하며 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나 영욕의 삶을 살게 마련이니까요.

 

김형수가 쓴 <문익환 평전>을 읽고 있습니다. 손에 잡고 읽은 지 꽤나 오래되었는데 진도는 잘 나가지 않습니다. 멍하니 글자만 읽다가 처음 읽었던 부분으로 다시 되돌아가기를 여러 번, 온전히 책에 집중하지 못하는 건 날씨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햇살은 무척이나 따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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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의 진실 - EBS 다큐프라임_교육대기획
EBS 다큐프라임 「대학 입시의 진실」 제작팀 지음 / 다산에듀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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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도 참 지지리도 없지 아들은 지금 중3, 새로 마련될 2022학년도 대학 입시제도 개편안에 따라 대입시를 치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입시 개편안이 매스컴에 나올 때마다 부모 된 자로서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오늘도 나는 국가 교육회의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에서 어제 발표한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시나리오' 4가지 방안을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읽어봐도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 잘 모르겠다. 게다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학생부의 기재 방식이나 각 대학별 수시 전형의 복잡성을 어떻게 손볼 것인지는 밝히지도 않은 상태이니 중3 자녀를 둔 학부모로서 걱정이 앞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것은 마치 곧 경기에 나설 선수들에게 적용될 규칙도 채 마련하지 못한 꼴이니 교육부의 나태한 행정에 불만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대학 입시의 진실>이다. 2017년 5월에 방송된 EBS 다큐프라임 교육대기획 '대학 입시의 진실'을 책으로 엮은 것인데 유튜브 조회수 100만 뷰를 기록하는 등 방송 역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화제를 모았던 것으로 안다. 그도 그럴 것이 기획을 시작한 후, 총 1년 6개월의 제작 기간이 소요됐을 뿐 아니라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3만 8천 명 교사, 학생, 학부모 설문 조사를 통해 입시 현장의 불편한 진실을 파헤쳤다. 1부 '학생부의 두께', 2부 '복잡성의 함정', 3부 '엄마들의 대리전쟁', 4부 '진짜 인재', 5부 '교육 불평등 연대기', 6부 '대학 입시, 불편한 진실을 넘어서'의 총 6부작으로 제작되었던 방송은 같은 제목으로 고스란히 책에 담겼다.

 

"현재 대학 입시 당락을 좌우하는 학생부는 더 이상 학생 본인의 노력에 달린 게 아니다. 학생부의 양과 질을 결정하는 건 부모의 배경과 소득, 그리고 투자다. 그렇게 만들어진 학생부가 학생을 선발하는 중요한 평가 자료로 활용되는 것이 현 대학 입시 제도의 민낯이다." (p.328)

 

교과 영역뿐 아니라 비교과 영역에서 학생의 다양한 재능도 두루 평가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학생부 종합전형은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교육 정책을 총괄하는 교육부와 교사들의 논리는 한결같았다. 인공 지능, 사물 인터넷, 빅데이터, 모바일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경제·사회 전반에 융합되어 혁신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4차 산업혁명의 시기에 적합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서는 단순 암기력을 테스트하는 과거의 선발 방식으로는 맞지 않다는 게 그들의 논리였다. 그러나 도입 배경이나 취지와는 달리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노력과 능력에 근거한 공정한 선발은 사실상 물 건너가고 말았다. 말하자면 지역이나 빈부, 부모의 직업에 따라 교육격차가 발생하고 부모의 금전적 투자에 따라 학생의 능력은 마구 부풀려졌다고 봐야 한다. 돈과 정보력에 의해 억지로 만들어진 인재가 4차 산업혁명에 적합한 인재인지는 잘 모르겠다.

 

"오롯이 노력만으로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되어 주었던 교육은 오늘날에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상위 계층의 부를 대물림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노력만으로는 희망을 찾기 힘든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p.342)

 

우리나라의 사교육 1번지 강남 3구는 부산 인구의 절반도 되지 않지만 서울대생을 더 많이 배출하는 현실, 부모의 정보력과 경제력이 자녀의 대학을 결정하는 이 현실이 과연 정상적인 사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 사람의 능력이 출신 대학에 의해 평가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훌륭한 인재를 선발한다는 명목 하에 입시의 공정성을 무참히 짓밟는다면 나는 그 제도가 좋다고는 결코 말하지 못하겠다. 입시에서 공정성보다 더 큰 가치가 과연 있을까? 학부모, 학생, 교사 모두 정시가 가장 공정하다고 말하고 있음에도 수시 선발 비중을 매년 늘려왔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교육부, 자녀 교육에 투자할 여력이 충분한 소수의 상위 계층, 학생들의 수능 성적이 곧 자신의 역량으로 평가되는 것을 꺼리는 교사들 어쩌면 그들의 이해가 합쳐져 학생부 종합전형이라는 입시 괴물을 탄생시킨 건 아닌지... 입시전형이 복잡할수록 부정한 수단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난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터,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나와 내 가족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이 우리 사회의 유일한 계층 사다리인 교육을 고사 직전으로 몰고 가고 있다. 계급사회로의 이러한 퇴행이 현 정부에서 하루빨리 고쳐지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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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아랫사람에게 존댓말을 쓰는 게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그 외에도 자신의 권위를 인정해달라는 은근한 압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주로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벌어지기도 하고 일반적인 관계에서도 심심찮게 생길 수 있다. 이를테면 존댓말을 쓰는 이면에는 '내가 너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아도 괜찮지만 특별히 너를 배려해서 하는 것이니 너도 나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나를 함부로 대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무언의 압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라고 할지라도 존댓말을 쓰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기대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일 수도 있고 말이다. 게다가 그런 심리는 주로 열등의식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학벌이든, 지역이든, 가난이든 아무튼 복합적인 어떤 이유로 오랫동안 차별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아랫사람에게조차 차별을 받고 싶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그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미리 상대방에게 존댓말을 사용함으로써 상대방도 자신에게 예사말을 쓰지 않도록 방어막을 치는 것이다. 윗사람이건 아랫사람이건 가리지 않고 존댓말을 쓴다는 건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그런 사람들의 기저에는 열등의식과 함께 강한 권위의식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보수적인 자신의 철학을 상대방에게도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것이 비단 윗사람에게는 반드시 존댓말을 사용해야 하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존댓말이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어떤 어휘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듣는 사람이 무례하다고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엄격히 말하면 예사말을 주로 사용하는 외국의 언어에도 존댓말이 존재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그런 까닭에 자신의 자녀에게도 항상 존댓말을 쓰는 부모의 심리에는 자신의 자녀가 존댓말을 잘 사용하는 사람으로 성장하여 성인이 된 후에도 남들로부터 존경과 권위를 누리며 살기를 바라는 기대심리, 또는 우리 아이는 다른 집 아이들과 다르다는 선민의식이 있게 마련이고 사회나 직장에서 아랫사람에게 깍듯이 존댓말을 쓰는 사람의 심리 기저에도 '너는 나의 권위에 절대 도전하지 말 것이며 그래서도 안 된다'는 무언의 압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나의 주장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 가능한 일반적 사실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런 경우가 다반사라는 말이다. 존댓말을 강요하는 보수적인 철학을 가진 부모라 할지라도 자녀에게까지 자신의 신념을 강요할 권한은 없다. 존댓말을 쓸 것이냐 예사말을 쓸 것이냐의 판단은 실수와 경험을 통해 자연스레 배우는 게 좋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나이가 아주 어린 아이들도 몇 번의 경험을 통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게 존댓말인지 예사말인지 금세 판단하곤 한다. 상황에 따라 어떤 게 자신에게 유리한지 아이들은 쉽게 학습할 수 있으며 그것은 그들만의 당연한 권리이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자녀가 자신의 소유물인 듯 행동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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