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나 친척 등 아주 가까운 사람들 중 누군가와 안 좋은 말로 투닥투닥 다투고 나면 '아, 인간이란 정말 조금 더 겸손해져야 하는구나.' 하고 급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나요? 물론 반성의 유효시한이 어느 정도 되느냐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죠. 일단 반성 모드에 돌입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 박수 먼저 칩시다. 짝짝짝!

 

반성을 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도 분명한 듯 보입니다. 대개의 다툼은 기대심리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나는 상대방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연히 이렇게 행동하리라 기대했는데 상대방이 나의 기대와는 정 반대로 행동을 할 때 화가 나는 것이거든요. 물론 나의 기대를 상대방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사회 통념 상 이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하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이죠. "남들은 잘만 알더라." 하는 말도 심심찮게 듣는 까닭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말다툼을 한 후 혼자 남아 곰곰 생각해보면 나는 상대방에 대해 아는 게 그다지 많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제 자신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는데 하물며 남과 다름없는 타인에 대해 우리가 뭘 알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정말 오만하게도 그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습니다. 일단 내지르고 보는 것이죠. "내가 너를 잘 알아서 하는 말인데..."로 시작되는 말 중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기분만 나빠질 뿐이죠. 오늘처럼 불쾌지수가 천장을 뚫고 하늘 높이 치솟는 날에 그런 가치 없는 말을 들었다고 가정해 보면 우리는 정말 겸손해져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나란 놈은 말다툼을 전혀 하지 않느냐고요? 그럴 리가요. 자주 합니다. 본시 밴댕이 소갈딱지로 태어나서 이론만 알고 있을 뿐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합니다. 속이 좁고 잘 삐치는 까닭에 다른 사람보다 다툼이 잦은 편이라는 게 맞는 말이겠죠. 그러나 잘하는 것도 있습니다. 반성이죠. '인간은 정말 겸손해져야 한다.' 이렇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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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하모니카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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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애를 써도 도무지 상쾌하거나 산뜻해질 수 없는 날씨였다. 우중충한 하늘과 땀구멍까지 막아버릴 듯한 높은 습도 그리고 바람 한 점 없이 정체된 대기. 사람들은 "이제 두어 달 더울 일만 남았다"며 조물주의 저주보다도 더 끔찍한 예언을 서슴없이 꺼내 놓았다. 그런 예언을 들으면서 나는 '불쾌지수, 열대야, 폭염경보' 등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줄줄 딸려 나오는 온갖 우울한 단어들을 떠올려보았다. 아득하기만 한 한낮이었다.

 

"시나는 홀연히 이해했다. 자신이 지금도 고독하다는 것을. 이 세상에 홀로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여자아이를 바라보며 친구라고 생각했다. 저 아이는 그렇게 생각해주지 않겠지만 우리는 친구다,라고.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시간처럼 천천히 흘러갔다." (p.73)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 소설집<개와 하모니카>를 읽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때로 읽는다기보다 본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어느 시점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촬영하여 시청자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것만 잘 편집하여 내보내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마누엘이 실제로 좋아하는 것은 술이 아니라 술자리다. 그곳에는 대화가 있고 침묵이 잇고, 사람이 있고, 인간관계가 생겨난다(또는 무너진다). 시간이 특별한 방식으로 흐르기에 그 자리에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사람들이며 기억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마누엘은 그런 자리가 좋아서 바텐더가 되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p.148 '알렌테주' 중에서)

 

책에는 각기 다른 주제의 단편 여섯 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인 '개와 하모니카'를 비롯하여 '침실', '늦여름 해 질 녘', '피크닉', '유가오', '알렌테주'가 그것이다. 서로 다른 목적으로 나리타 공항을 이용하게 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린 '개와 하모니카'와 열다섯 살이나 어린 젊은 여자와 5년 넘게 밀애를 즐겨온 중년의 남성이 갑작스러운 이별을 통보받은 상황을 밀도 있게 그린 '침실', 낯가림도 심하고 열의도 부족한 한 여인이 한 남자를 만나 열정적으로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늦여름 해 질 녘', 결혼한 지 5년이 되는 부부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 바라본 두 사람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거리를 그린 '피크닉', '겐지 이야기'를 현대적인 언어로 개작한 '유가오', 이성 커플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게이 커플의 3박 4일 여행담을 그린 '알렌테주'. 작가는 그들의 모습을 자신의 어떤 주관적인 감정도 싣지 않고 아주 담백하게 그저 무심히 그려낸다. 사람들은 누구나 더 밀접한 관계를 원하지만 어떤 관계에서도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처마 밑에 선 채 방금 전 담뱃불을 붙였을 때처럼 남자는 무심히 손을 놀려 자신의 왼손 살갗을 얇디얇게 벗겨냈다. 엄지손가락 바깥쪽에서부터 손목 방향으로. 그만두라고 시나는 말하지 않았다. 주인이 주는 먹이를 기다리는 개처럼 숨죽인 채 그저 가만히 기다렸다. 만들기 놀이에 빠진 소년처럼 자신의 손에 집중하고 있는 남자를 응시하면서." (p.64 '늦여름 해 질 녘' 중에서)

 

작가는 남자가 벗겨낸 피부를 여자가 받아먹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매우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작품에 삽입하기도 한다. 가족을 중시하며 남편 역할에 충실했던 남자가 딸의 인형에 '햄'이라는 괴이한 이름을 붙였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이혼을 요구하는 여인, 격정적으로 사랑하는 남자와 더 가깝게 느끼고 싶어서 남자의 피부를 먹겠다는 여인, 5년째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남편의 이름조차 헷갈려하는 여인, 남자의 이름도 모른 채 밤을 함께 보내는 여인, 이성 커플은 아니지만 질투의 감정만큼은 하나 다를 게 없는 게이 커플 등 다양한 인물을 보여줌으로써 작가는 우리가 맺는 관계는 결국 허울뿐이며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끝내 혼자일 수밖에 없음을, 그리고 둘이 하나가 된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아주 무덤덤하게, 잔인하게 말하고 있다.

 

일본 문학의 특징은 작가의 생각이나 감정을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러한 특징은 개인의 신변잡기를 다루는 수필에서 가장 잘 드러나지만 소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각적인 영상을 단순히 글로 옮긴 듯 처리함으로써 독자가 그 글을 읽었을 때의 감정이나 느낌은 나 몰라라 한다. 그러다 보니 소설을 읽은 후의 느낌이나 교훈도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반대로 한국 문학은 작가의 느낌이나 의도가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도록 노력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작가와 독자, 또는 책과 독자가 일치되도록 한다. 말하자면 몰입도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이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어서 독자는 작가의 이러한 태도(예컨대 과잉 감정이나 행동)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신파조로 읽히기도 한다. 반면에 일본 문학이 가볍다거나 선정적이라는 비판도 이와 같은 태도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책과 독자, 작가와 독자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둠으로써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일본 문학의 특징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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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혼전천(一魚混全川)'이라는 말이 있다. 다들 아는 말이겠지만 굳이 해석하자면 '한 마리의 물고기가 온 시냇물을 흐려 놓는다'는 뜻이다. 우리 속담에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온 웅덩이 물을 다 흐린다'는 의미의 '일어탁수(一魚濁水)'와 비슷한 말이다. 이를테면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여러 사람이 피해를 입게 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느 조직이나 사람들이 여럿 모이면 개중에는 또라이(?)가 있게 마련이고 그 사람으로 인해 조직 전체가 피해를 보는 경우는 다반사이다. 그런 행태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에서도 다르지 않은 듯하다. 지금은 존재감마저 희미해졌지만 한때 세간의 관심을 크게 끌었던 '일간베스트'가 그러했고, 최근에 여러 문제를 야기시킨 남성혐오 사이트나 여성혐오 사이트가 그렇다. 극단적이거나 어찌 보면 과격한 언행 이면에는 그 사람이 처한 현재의 환경이나 자라온 성장배경이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이라면 무작정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최근 혜화역 여성집회에서 일부 시위 참가자들에 의해 불거진 대통령 비난이나 역사 왜곡의 문제 등은 '일어혼전천(一魚混全川)'의 전형이 아닐까 싶다. 오랫동안 만연했던 여성차별의 문제를 정당하게 제기하는 것이야 남성과 여성을 떠나 다들 공감하겠지만 단지 대통령이 남성이라는 이유로 적대적 발언을 내뱉는다거나 우리의 역사를 폄훼하고 왜곡하는 등 시위 참가자들 전체를 욕되게 하는 행위는 이해할 수도 없고 공감이 되지도 않는다. 이런 또라이(?)들의 주장을 방송에 내보내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세간의 관심을 끌기 위해 또라이(?)짓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또라이(?)짓 때문에 관심을 끄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런 또라이(?)들의 행태도 곧 잠잠해질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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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머니 - 부의 미래를 바꾸는 화폐 권력의 대이동
고란.이용재 지음 / 다산북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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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증시 격언 중에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팔아라'는 말이 있다. 아무런 근거가 없는 듯한 이 말은 주식에 문외한이거나 주식 초보자에게는 그저 시중에 떠도는 말쯤으로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내가 아는 한 100% 신뢰해도 좋은 금언이다. 비근한 예로 2001년 9월 11일에 있었던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에 벌어진 항공기 자살 테러 사건이 있었던 다음날 세계의 주식시장은 폭락을 면치 못했다. 주식 투자자들을 패닉 상태로 몰고 갔던 그날의 기억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마치 어제 벌어진 일처럼 널리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그 사건으로 인해 모두가 손해를 보았던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하루아침에 돈벼락을 맞은 사람들도 있었다. 주가지수의 하락을 예측하는 선물 매도나 풋 옵션 매수를 했던 사람들이 그들이다. 적게는 수십 배에서 많게는 수백 배에 이르는 초대박 수익을 거두었던 그들에 대한 소문은 많은 개인투자자들로 하여금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선물·옵션 거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급기야 직접적인 투자로 이어지도록 했다. 그러나 큰 수익을 냈다는 뉴스를 보고 투자했던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2001년 9월 12일(수요일)과 옵션 만기일이었던 2001년 9월 13일(목요일) 불과 이틀 만에 쪽박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와 같은 일은 개별 종목의 투자에서도 흔하게 벌어진다. 예컨대 모 회사와 대규모 계약을 체결했다거나 신제품 개발에 성공했다는 등 호재가 되는 뉴스가 뜨면 그 순간 잠깐 반짝하던 주가는 금세 곤두박질을 치기 일쑤이다. 지인을 통해 알음알음 알려진 소문을 듣고 뉴스가 발표되기도 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규모 주식 매수에 나섰고 그 바람에 주가는 상당한 폭으로 상승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뉴스 이전에 선구매를 했던 사람들은 이미 큰 수익이 난 상황이고 차익 실현을 위해 모두 내다 팔 수밖에...

 

2018년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대한민국 전체를 들썩이게 했던 비트코인 열풍도 다르지 않았다. 암호화폐의 선구자 격인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은 2016년,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으로 관심을 끌기 시작했던 것은 2017년 후반기였고, 비트코인 거래를 통해 상상할 수 없는 큰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하자 너도나도 비트코인 열풍에 동참했던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증가할수록 비트코인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수수방관하던 정부도 규제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소문에 샀던 사람들은 큰 수익을 내고 떠난 뒤였다. 역시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팔아라'는 격언은 정확히 들어맞은 셈이 되었다.

 

"시장 과열에 정부가 놀랐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2017년 11월 28일 국무회의에서 비트코인은 사회병리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24시간 거래되는 터라 중독성이 강했고, 하루 만에 한 달 월급이 생기는 시장구조는 근로의욕을 떨어트렸다. 그간 개점휴업 상태였던 범정부 가상통화 태스크포스에 시선이 집중됐다." (P.12)

 

중앙일보 경제부 기자 고란과 블록체인& 암호화폐 리서치 센터 '마스터마인드'의 공동 설립자 이용재가 쓴 <넥스트 머니>는 실체도 없는 투기 대상으로 낙인이 찍힌 암호화폐에 대한 오해를 불식하고 기존 금융 시스템의 문제점과 법정화폐의 한계를 지적하는 한편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하나의 새로운 기술이 오래된 체계를 뒤흔드는 게 아니라 서로의 부족한 면을 보충하는 공존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지폐의 탄생과 함께 명목을 이어온 법정화폐는 수백 년간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 변화가 없으니, 무한한 자본 팽창의 욕구를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없게 되었고, 이로 인한 부작용은 금융위기로 발현되어 우리들의 소중한 자산을 위협했다. 암호화폐는 이러한 구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구 제도권 금융에서 당연시되었던 기능, 주체들을 과감하고 멋지게 생략하고도 새로운 경제를 창조해냈다." (p.566)

 

새로운 기술에 대한 불신과 오해는 어제오늘 있었던 일도 아니다.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 익숙한 것으로 바뀌는 과정은 멀고도 지루한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는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국가에서 막는다고 하여 멈추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쓴 두 저자의 의도도 그와 같았을 것이다. 어차피 사라지지 않을 변화라면 차분하게 살펴 그 원리를 깨우치는 게 순서라고 본 것이다. 그러자면 기존의 금융 시스템과 화폐 혁명, 제2차 화폐전쟁 등 우리가 살펴야 할 지난 역사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책에는 비트코인뿐만 아니라 또 다른 암호화폐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과 리플 창시자 매캐일럽을 직접 인터뷰한 내용도 수록되었다.

 

600쪽에 가까운 방대한 내용의 이 책을 읽는 데 여러 날이 걸렸다. 그러나 기술적인 이해는 여전히 저조하다. IT 기술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탓이다. 그럼에도 최대한의 노력을 시도했었다. 새로운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과가 아닌 문과 전공자로서 유시민 작가와 같은 탁월한 이해력을 선보일 수는 없지만 블록체인 기술과 다양한 암호화폐에 대한 어렴풋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유례없는 비트코인 광풍이 휩쓸고 간 대한민국에서 다시 또 암호화폐를 논한다는 건 여전히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 내 주변에서도 비트코인에 투자했다가 큰돈을 잃고 낙심했던 사람들이 더러 있고 말이다. 암호화폐의 '암'자만 들어도 넌덜머리가 난다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증시 격언 중에 '골이 깊으면 산도 높다'는 말이 있다. 암호화폐가 사라지지 않는 한 희망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섣부른 투자에 앞서 투자 대상에 대해 잘 알아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유행에 민감한 팔랑귀는 되지 말자는 게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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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시간이 눈에 보이는 듯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처럼 더없이 맑고 깨끗한 공기가 기분마저 설레게 하는 날에는 어깨를 스쳐가는 보이지 않는 시간들이, 그 감촉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첫 데이트를 앞둔 어느 소녀의 더욱 짧아진 미니스커트처럼 오늘 날씨는 그렇게 명랑했습니다. 장마도 쉬어가는 주말 휴일, 이따금 부는 바람에 더위마저 쉬어가려나 봅니다. 오늘은 소서(小暑), 본격적인 더위는 이제부터 시작인데 말입니다.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 <풍장의 교실>을 읽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소설은 왠지 모르게 섬뜩한 느낌이 듭니다. 제가 느끼는 감정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조안나 작가는 이 책을 두고 '미소 지으며 세상에 복수하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을 책이라고 했습니다.

 

"내 마음속에는 묘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시체를 흙으로 덮어 줄 만큼 친절하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을 들에 내버려 두는 것을 풍장(風葬)이라고 한답니다. 그건 잔혹한 풍습일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도 들판을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땅을 밟고 서서 풀과 나무의 냄새를 맡는 걸 좋아합니다. 나는 인생에 아득하게 펼쳐진 죽음의 침상의 존재를 느낍니다. 그건 아주 기분 좋은 일입니다. 내 마음은 여전히 그것에 이끌립니다." ('풍장의 교실' 중에서)

 

아픈 아내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전보다 책을 잡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그러나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턱없이 줄어든 탓에 한 달에 읽을 수 있는 책의 권수는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대신에 저는 예전에는 몰랐던 '멍 때리기'의 효과와 나른한 오후에 즐기는 토막잠의 유익함을 기꺼운 마음으로 배워가고 있습니다. 오후의 여름 햇살도 서서히 잦아들고 있습니다. 가을을 닮은 어느 여름날이 그렇게 저물고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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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07-07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쥐님의 글은 뭔지 모를 자연의 ‘그것‘과 닮아 있다 해야하나. 항상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고예
아내분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꼼쥐 2018-07-08 17:45   좋아요 0 | URL
북프리쿠키 님이 좋게 봐주셔서 그럴 듯합니다. 사실 제 글은 체계적이지도 못하고 중구난방의 형편없는 글일 텐데 말이죠. ㅎ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