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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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작품에 매혹되는 까닭은 어떤 식으로든 독자의 지적 허영심을 만족시킨다는 데 있다. 때로는 작가의 지적 수준이 독자를 한참이나 앞질러 간 까닭에 글을 읽는 독자가 어리둥절 이해를 못 하거나, 지루함을 느끼거나, 읽었던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해서 다시 읽어야 하는 불편을 끼칠 때도 있지만 작가는 서사라는 이야기 구조 속에 삶의 이면을 고집스럽게 덮어씀으로써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인생의 실체, 인간의 심리, 진정한 가치 등을 자세히 파악하도록 한다.

 

<연애의 기억(The only story)>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야기인 즉 일흔 즈음에 접어든 한 남자가 50여 년 전에 있었던 비극적인 자신의 첫사랑으로 인해 그의 인생 전체가 달라지는 과정을 매우 세밀하게 다룬 것으로 주변에 흔한 사랑 이야기로 읽히지만 실상은 한 남자의 인생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삶이 유지되는 한 사랑을 멈춘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 이야기는 언제든 인생 이야기로 쉽게 치환되거나 전환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어린아이이고, 그녀는 중년의 유부녀다. 나에게는 냉소주의가 있고, 삶에 대한 이해라고 알려진 것이 있다. 하지만 나는 냉소주의자일 뿐만 아니라 이상주의자이기도 해서,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힘을 다 갖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p.139)

 

작가는 사랑이 삶의 전부로 여겨지는 청년 시절과 사랑은 그저 삶의 일부이거나 주변부로 여겨지는 어느 시점과 기억 속 작은 흔적으로만 존재하는 노년기를 다룸으로써 소설 속 주인공의 사랑이 세월에 따라 변질되어가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리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사랑 안에 갇혀 있거나, 사랑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그 옅은 흔적이나 체취만 간직하는 경험을 세월에 따라 순차적으로 겪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 안에 존재하는 청년 시절에는 사랑을 제대로 파악하기는커녕 그 실체조차 보기 어렵다. 그 시기의 연인은 오직 나와 상대방만 보일 뿐이다. 지구 안에 존재하는 우리가 지구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월의 경과에 따라 나와 사랑을 동일시하던 과거의 습관에서 점차 벗어나게 되고 사랑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것이 꼭 사랑이 식었거나 사랑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에 빚어지는 결과는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사랑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서서히 알아가게 되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을 인칭의 변화로 그려내고 있다. 1인칭에서 2인칭으로 그리고 3인칭으로.

 

"나중에 이 대화를 생각해보다가 너는 그녀가 너보다 잃을 게 많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 사실, 처음으로. 훨씬 많다는 사실을. 너는 과거를 버리고 있고, 그 많은 부분은 버리게 되어서 행복하다. 너는 중요한 건 오직 사랑뿐이라고, 그것이 모든 것을 보상해준다고, 너하고 그녀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갈 거라고 믿었고, 여전히 전과 다름없이 깊게 믿고 있다. 그러다 너는 그녀가 뒤에 두고 온 것이 - 심지어 고든 매클라우드와의 관계도 - 네가 가정했던 것보다 복잡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너는 큰 덩어리들을 고통이나 합병증 없이 삶에서 깨끗하게 절단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네가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빌리지에서 고립된 것처럼 보였다면, 네가 그녀를 데리고 떠나옴으로써 그녀를 더 고립시켰다는 것을 깨닫는다." (p.208~p.209)

 

소설의 주인공 폴은 이제 막 성인의 대열에 합류한 19살의 대학생이다. 여름 방학을 보내기 위해 런던 교외의 본가로 돌아왔던 그는 어머니의 권유로 나가게 된 테니스 클럽에서 48살의 여성 수전 매클라우드를 파트너로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수전에게는 폴과 비슷한 나이의 두 딸과 남편이 있었지만 자신감 넘치고 위트가 가득한 수전의 매력이 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수전은 테니스 파트너로도, 이야기가 잘 통하는 대화 상대로도 폴에게는 단 한 명의 특별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급기야 두 사람은 수전이 모아두었던 돈으로 런던에 방을 얻고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기에 이른다. 일상이 된 유머감각과 음악과 테니스라는 공통분모를 통하여 두 사람의 사랑은 영원히 지속될 줄 알았지만 함께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의 속사정을 더욱 깊이 알게 되고, 이해의 폭이 깊어지면서 단단했던 사랑의 결속은 금이 가기 시작한다. 수전은 알콜중독에 우울증, 알콜성 치매를 앓게 되면서 황홀했던 기억들을 서서히 잃어가고 이를 지켜보는 폴 역시 서서히 지쳐간다. 전도양양한 변호사로서 화려한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그는 수전과 있을 때 그들의 사랑을 토론하고, 분석하고, 그 형태, 색깔, 무게, 경계를 이해하려고 한 적이 없었다. 그 사랑은 그냥 거기 있었다. 불가피한 사실로서, 흔들 수 없는 주어진 것으로서. 하지만 동시에 그들 둘 다 그것을 토론할 말, 경험, 정신적 장비가 없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나중에, 삼십대가 되고 사십대가 되면서, 그는 점차 감정적 명료함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훗날의 관계에서, 그는 그때만큼 깊이 빠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토론할 것도 줄었다. 따라서 그의 잠재적 표현 능력이 요구되는 일도 거의 없었다." (p.353)

 

폴이 자신을 못 알아보는 수전을 마지막으로 병문안 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수전의 옆모습을 보면서 영화에서 보았던 몇몇 마지막 작별 순간을 떠올렸고, 아름다웠던 수전의 옛날 모습을 몇 분 동안 떠올려보았고, 이내 다른 곳을 떠돌기 시작하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챘다. 자신의 '마음을 사랑과 상실에, 재미와 통탄에 묶어둘 수 없었'던 것이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의 두 번째 장을 나는 다른 어느 것보다 아프게 읽었다. 2인칭으로 그려진 그 장에서 폴의 사랑은 그 빛을 잃고 서서히 쇄락해간다. 그 과정이 어찌나 사실적이고 아프게 묘사되었던지 이따금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살아가면서, 적어도 생명이 유지되는 한 우리는 단 한 번도 사랑을 유예하거나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랑은 곧 인생이 된다. 우리가 들려줄 수 있는 유일한 이야기는 오직 사랑, 그것 외에는 없다. 단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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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
황경신 지음, 김원 사진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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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지고 있다. 가벼워지는 시간이다. 그래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나는 크게 한숨을 토해낸다. 삶의 구획들이 오래된 흙벽돌처럼 숭숭 구멍이 나고 있다. 사랑했던 기억들은 때론 아프고 공유할 수 없는 추억들은 때론 무섭다. 어떤 기억은 세월조차 약이 될 수 없다는 걸 나는 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채 열흘도 지나지 않았을 때 받은 책이다. 황경신 작가의 영혼시 <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 나는 한동안 책을 펼쳐보지 못했다. 예전부터 좋아하던 작가. 나는 황경신 작가의 감각적인 문체를 좋아했었다. 그러나 두려웠다. 어떤 순간에 와락 울음이 터질지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정이 많다거나 지나치게 눈물이 많다는 말보다는 침착하다거나 냉정하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었는데 내 안에 나조차도 몰랐던 눈물이,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그렇게나 많이 존재한다는 걸 나는 최근에야 알았다. 겨우 용기를 내어 펼쳐 든 책, 불면의 밤과 싸우며 나는 몇 날 며칠을 울었는지 모른다.

 

오래전 낙서를 뒤적여보니

내 추억의 기록은 온통 슬픔이네요

낡은 기억을 들추어보니

지금은 이유도 알 수 없는 슬픔뿐이네요

돌 하나 바람 하나 구름 하나

슬픔 아닌 것이 없네요

생각해보니 슬픔이 나를 가두고

나를 버리고 나를 만들었네요 ('하기야 슬픔 아니었다면' 중에서 p.17)

 

미루고 미루던 사망신고를 하러 동 주민 센터에 들렀던 날, 주말부부로 살면서 나와 주소조차 달랐던 아내. 주민 센터 직원은 나에게 구청으로 가라고 했다. 다른 때 같으면 불쑥 화도 났겠지만, '그래, 그렇게 쉽게 처리되면 나조차도 너무나 쉽게 잊을까봐 그랬나 보다' 생각하며 구청을 향했다. 가능한 한 천천히 차를 몰았다. 오늘의 슬픔이 어제의 슬픔을 닮아가는 동안 나는 시간의 흐름을 알지 못한다. 끝나지 않는 긴 하루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듯한 느낌.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풍경은

미처 마르지 않은 물감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당신이 그곳에 있을 때

당신의 부재는 치명적인 가혹이었습니다   ('잊은들 잊지 않은들' 중에서 p.187)

 

추억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가슴을 난도질하는 가장 무서운 흉기는 행복했던 기억이다. 슬픔은 언어가 되지 못하고 추스를 수 없는 생각들이 유령처럼 떠도는 밤. 어젯밤에는 중학생 아들이 카톡으로 노래 한 곡을 보내왔다. 영국 가수 패신저(Passenger)가 부른 'Let her go'. 가사가 좋다면서. ……You see her when you close your eyes/ Maybe one day you'll understand why/ Everything you touch surely dies/ ……(눈을 감으면 넌 그녀가 보여/ 아마도 언젠간 그 이유를 알게 되겠지/ 네가 스쳤던 모든 것들이 사라져가는 이유를)

 

빛나는 눈물은 차곡차곡 쌓이고

꿈같은 갈증은 깊어가고

맹세할 것 많았던 날들이 별처럼 떨어지는데

운명은 변한 것이 없어

이제야 알게 되었나

처음부터 그것은

허공 위에 쓰인 맹세였다는 것을  ('처음부터 그것은' 중에서 p.229)

 

구름 낀 서쪽 하늘에 노을이 진다. 어제와 다름없는 밤이 다시 또 찾아올 테고, 추억이 난도질하는 긴 시간 동안 나는 무방비로 지새울 수밖에 없으리라. 슬픔은 언어가 되지 못하고 추억은 위로가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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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손가락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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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책은 많지만 눈 앞에 놓인 어떤 책에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이유는 참으로 다양합니다. 책의 내용이 어려워서, 문장이 딱딱해서, 별 의미도 없는 글들로 채워져서... 한마디로 책을 읽기 싫은 것이죠. 그런 날이면 이따금 찾아 읽게 되는 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입니다. '잊어도 좋기 때문에 읽는 것이 추리소설이다.'라고 했던 장정일 작가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게 되는 순간입니다. '유용성'으로부터 멀어진 독서는 얼마나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것인지요. 게다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작가로 정평이 난 까닭에 언제 찾아도 내가 읽지 않은 작품들이 차고 넘친다는 점이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내가 읽은 책은 가가 형사 시리즈 제7탄인 <붉은 손가락>이었습니다. 47세의 중년 가장인 아키오는 18년째 결혼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그의 아내 야에코와 중학생 아들 나오미를 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직장 상사의 주선으로 1년여의 연애 끝에 결혼한 나오키와 야에코는 아들 나오미가 태어나자 아들의 양육에 대한 견해차로 시댁과 결별합니다. 아들의 양육은 자연스레 전업주부였던 야에코에게 전적으로 위임되고 그럴수록 아키오의 발언권은 점점 약해져만 갑니다. 치매를 앓던 아키오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혼자 남겨진 어머니 마사에를 돌볼 방법이 없었던 아키오는 시댁으로 들어가는 게 어떻냐고 넌즈시 제안합니다. 경기 불황으로 몇 년째 월급이 오르지 않았던 아키오의 월급만으로는 내 집 마련의 꿈이 멀어져만 갔던 까닭에 야에코 역시 무작정 반대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이야기의 축은 두 갈래로 이어집니다. 아버지도 없이 힘들게 성장한 마쓰미야는 어머니인 가츠코와 자신을 살뜰히 보살펴준 외삼촌 다카마사를 아버지처럼 의지하며 살아왔습니다. 경찰에서 은퇴한 다카마사는 현재 말기암 환자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입니다. 다카마사를 너무도 존경한 나머지 그를 따라 경찰관이 된 마쓰미야는 시간이 날 때마다 외삼촌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마쓰미야의 외사촌 형이자 다카마사의 아들인 가가 형사는 아버지의 병문안에 인색합니다. 마쓰미야는 그 사실이 못내 서운합니다. 다카마사와 가가 교이치로 사이에 알 수 없는 불화가 존재한다는 걸 어렴풋이 추측할 뿐입니다. 가정을 등한시했던 다카마사로 인해 가가의 어머니가 가출을 했고, 병을 앓던 그녀는 결국 혼자서 외롭게 죽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마쓰미야는 자신의 어머니를 통해 들었습니다.

 

"음, 거기서 혼자 살았어. 그러다 곁에서 간병해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죽었어. 아버지는 그 일이 몹시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야. 임종하는 순간에 아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아버지도 결심하셨대. 자기도 혼자 죽을 거라고. 나한테 당부를 하더라. 자신이 숨을 거둘 때까지 절대로 곁에 오지 말라고." (p.284)

 

한편 아키오와 야에코가 어머니의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한 후 아키오의 어머니마저 치매를 앓기 시작합니다. 근처에 사는 아키오의 여동생 하루미가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매일 저녁 들르곤 했었는데 어느 날 저녁 아키오는 야에코로부터 걸려온 급한 전화를 받게 됩니다. 여동생 하루미의 방문도 미루고 급히 집으로 와달라는 주문이었습니다. 아내의 부탁으로 귀가를 서두른 아키오는 거실에 놓인 어린 소녀의 시신을 보게 됩니다. 응석받이로 자란 나오미가 한 짓이었습니다. 살인자가 된 아들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던 아키오는 시신을 상자에 담아 아무도 없는 한밤중에 근처의 공원 화장실에 유기합니다.

 

"어떻게 이런 어리석고 경솔한 범죄가 다 있는가. 아무리 제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라지만 늙은 어머니를 살인범으로 몰아세우다니, 마쓰미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이었다. 그나마 마에하라 아키오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실토를 해준 게 유일한 구원이었다." (p.264)

 

마쓰미야와 가가 형사는 한 팀이 되어 사건을 조사합니다. 가가 형사의 뛰어난 추리력과 상황 판단으로 수사망은 점점 범인을 향해 좁혀집니다. 아들 나오미를 살인자로 내몰 수 없었던 아키오와 야에코는 치매에 걸린 마사에를 살인범으로 꾸며 자백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독자의 허를 찌르는 반전은 그다음에 이어집니다. 아키오와 마사에, 다카마사와 가가 교이치로 형사는 어떤 결말로 끝나게 될지...

 

작가는 부모 세대를 나 몰라라 내팽개친 채 자식에게만 모든 열정을 쏟는 젊은 부부의 그릇된 사고방식과 양육 태도, 그 결과가 보여주는 참혹한 현실을 대비시킴으로써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작가는 결말 부분의 반전을 통해 희망의 불씨를 살리고 있습니다. 혈육의 정마저 시들해지는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을지 작가는 조심스레 묻고 있는 듯합니다. 태풍이 지나간 휴일 하늘은 가을빛으로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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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풍토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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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시기를 통과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물론 시대가 바뀐다는 건 숨 죽이고 살던 사람들에게도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꼭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겠지만 말이다. 결과야 그렇다 할지라도 그 시대를 몸으로 겪어내는 모든 사람들의 고충은 말해 무엇할까. 그러므로 다 지나고 난 뒤에 우리가 추억하는 것들과 과정에서 실제로 겪는 일들은 엄연히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추억은 그야말로 낭만일 뿐 현실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가상의 현실에 불과하다.

 

스마일 카다레의 소설집 <광기의 풍토>에는 새로운 체제에 처한 알바니아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소설, '거만한 여자'가 실려 있다. 읽기에 따라서는 고집 센 장모와 약삭빠른 사위 간의 흔하디 흔한 장서 갈등쯤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실상은 알바니아의 구체제와 공산화된 알바니아의 신체제의 대립으로 보는 게 옳을 듯하다. 공산당의 집권으로 하루아침에 권세와 영화를 잃어버리고 시골의 작은 마을에 정착한 '몰락한 가문 사람들'은 이제 자신들의 처지를 인식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에 적응해야만 했다.

 

옛 고위 관리의 미망인인 무하데즈 역시 그들 중 한 사람이다. 국내에 갖고 있던 재산은 모두 수용되었고 그나마 해외의 재산은 국가에 귀속되지 않았던 탓에 언젠가 그 재산을 다시 차지할 날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유일한 삶의 원동력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무하데즈는 자신의 못생긴 딸을 추남인 공산당 소위 알레코 발라와 결혼시킴으로써 또 한 번의 '재기'를 꿈꾼다.

 

"딸이 말한 그대로, 남자는 불쾌감을 주는 용모의 소유자였다. 듬성듬성 난 머리털 때문에 얼굴이 더욱 납작해 보이는 데다, 다소 튀어나온 눈을 두리번거리며 끊임없이 무언가에 집중하려고 애쓰는 모습은 차마 보고 잇있기가 괴로웠다. 시간과 습관의 완화작용도 손댈 수 없는 혐오감이란 바로 이런 거라고 무하데즈는 확신했다." (p.122~p.123)

 

그러나 알레코 발라 소위는 당으로부터 축출된 것은 물론 군에서조차 파면당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파면당한 뒤 일주일 후에 무하데즈의 딸과 약속대로 결혼식을 올렸다는 사실이었다. 신부의 집에 눌러앉게 된 알레코는 마을의 난방용 장작 저장소에서 하급 일자리를 얻는다. 상품 취급 전담원이었던 그가 손을 다치는 바람에 임시로 송장 전담 일을 맡게 되었고, 직장 상사와 마을 사람들에게 헌신적이었던 그는 금세 회계 부서의 책임자 자리에 오른다. 거기에는 기획부서 주임을 직원을 탐탁지 않아했던 부장의 생각을 알레코가 읽고 그의 생각에 동조했던 것과 마을 사람들의 우호적인 여론이 합쳐진 덕분이었다. 알레코와 무하데즈의 갈등이 표면화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추악한 괴물, 위선자, 엉큼한 놈! 예전엔 자기한테 무언가 굴러들어 오리라 기대하고 싹싹하게 굴며 굽실댔지. 한데 이제 그런 희망이 사라지고 나니 나한테 욕을 해도 된다고 믿는 거야. 자기 사람들을 팔아먹은 더러운 인간. 넌 날 줄곧 방해물로 여기고 있지. 두 개의 젖통을 동시에 빠는 연습을 했으니, 비굴함과 아첨으로 계속 출세 가도를 달릴 수 있을 거야. 넌 하이에나처럼 공산주의 지도자와 관리자 사이에 충돌이 잇는 곳마다 찾아가 킁킁대며 냄새를 맡고선 승산이 잇는 쪽에 붙어 알랑거리며 어떻게든 더 많은 이득을 챙기려 하지. 그렇게 해서 좀 더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성공할 수도 있겠지." (p.163)

 

그러나 알레코가 승승장구를 할 때는 무하데즈와의 갈등이 고조되었다가도 숙청의 칼바람이 불어 납작 엎드려 있을 때에는 수그러들곤 했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성공을 이유도 없이 미워하곤 한다. 일종의 질투일 수도 있고 열등의식의 발현일 수도 있다. 무하데즈도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무하데즈로서는 사위의 성공이 마냥 반가울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무시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을 테니 말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해 여름을 나면서 괴롭더라도 잊어서는 안 되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살아 있는 동안 간혹 폭풍우가 물러나기를 기다리며 몸을 낮춰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이었다."    (p.139)

 

그러나 알레코의 성공이 마냥 못마땅하고 누구보다도 사위를 미워하는 듯 보였던 무하데즈의 속마음은 그런 게 아니었다.

 

"노파가 친구에게 심중의 생각을 그대로 고백한 바로는, 사위와 자기 두 사람의 관계가 어찌 됐든 사위 역시 이제는 가족의 일원이라는 것, 또 여하한 경우에도 집안의 수치를 밖으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p.166)

 

우리가 이따금 착각하는 게 있다. 갈등이란 언제나 집단과 집단, 세대와 세대 사이의 대규모 단위로 벌어지는 충돌쯤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만한 여자'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신체제를 대표하는 알레코와 구체제를 대표하는 무하데즈의 충돌처럼 갈등은 지극히 사적이며 개별화된 사건이라는 사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알레코의 아내가 소설 속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개별적인 사건들이 모여 하나의 사회 현상을 이룰 뿐이지 커다란 사회 현상 속에서 개인의 갈등이 노골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보수주의자도 수구꼴통만 있는 게 아니고 진보주의자 중에도 이념적 좌파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소위 '일반화의 오류'는 어떤 사회를 이해하는 데 지극히 위험하다. 소설에서 알레코가 장모 무하데즈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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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해리 세트 - 전2권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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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기억하는지요. 살면서 단 한 번도 법을 어긴 적이 없고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했던 남자, 그는 8개월간 지속된 지루한 재판 내내 칸트의 도덕 철학을 들먹이며 자신은 '명령받은 대로, 의무에 따라 행동했을 뿐, 비열한 동기나 악행이라는 의식이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그를 감정했던 정신과 의사들조차 그의 정신상태가 정상이라고 말했었지요. 그러나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란 개념을 통해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죄라고 말합니다. 아이히만은 일상생활에서 아주 근면한 인간이고 무능하지도 어리석지도 않았지만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했으며,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순전히 '생각의 무능성(thoughtlessness)' 때문이었다'고 한나 아렌트는 쓰고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의 이러한 주장은 어쩌면 전쟁과 같은 극단적 위험에서만 한시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전쟁도 없고, 테러도 없는 평화의 시대에 그렇다면 그 많던 악은 다 어디로 숨어든 것일까요. 평화는 모든 사람의 인간성마저 순하게 정화한다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절대 그럴 리가 없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어쩌면 선한 얼굴로 위장한 수많은 아이히만의 망령을 우리 곁에 무작정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단지 바쁘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공지영 작가의 신작 소설 <해리>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아돌프 아이히만의 망령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소설을 읽는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로 다가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요. 소설의 배경이 '무진'인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싶습니다. 선을 가장한 악인 앞에서 우리는 마치 안갯속을 헤매는 것처럼 그의 진심을 전혀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도가니>의 배경이 '무진'이었던 것처럼 <해리>를 쓰면서도 작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게 인간의 마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은 주인공 '한이나'가 암 수술을 앞둔 엄마의 병간호를 하기 위해 그녀의 고향인 무진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한 인터넷 사이트 뉴스텐의 기자였던 이나는 자신의 엄마가 입원한 무진 카톨릭대학병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최별라를 우연히 만나 사연을 듣게 됩니다. 사연인 즉 백진우 신부로 인해 그녀의 딸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이나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가슴에 손을 넣었던 백진우 신부에 대한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며 이나는 이 사건을 끝까지 캐보리라 작정합니다.

 

이야기는 이제 입으로는 온갖 사회정의를 부르짖으면서도 어린 소녀와 젊은 여성들에게 성폭력을 일삼고, 장애인 봉사 단체를 축재의 수단으로 삼는 백진우 신부와 그의 곁을 지키는 '이해리'에게로 옮겨갑니다. 고등학교 시절 유난히 이나를 따르던 해리는 불우한 성장 과정을 내세워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고, 자신의 외모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된 해리는장애인 센터장이라는 직함에 걸맞지 않게 짧은 미니스커트에 목이 깊게 파인 티셔츠를 입고 무진에서는 방귀 꽤나 뀐다는 사람들을 두루 만나고 다니는 지역 유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수단이 되었던 것이 다름 아닌 봉침이었습니다. 은밀한 곳에 봉침을 놓아줌으로써 지역의 권력자들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었던 것이지요.

 

한편 백진우와 이해리는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선하고 가련한 이미지를 만들어갑니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이 그랬던 것처럼 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접속하는 SNS 공간은 자신의 가공된 이미지를 팔아 언제든 돈을 모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공간이었습니다.

 

"그들은 독약을 먹고 있어요. 그게 독약인 줄도 모르고, 안 죽네, 맛있네, 이러고 있다고요. 그들이 쥐약이 든 빵을 계속 먹고 있는데, 왜 화가 나요? 안타깝지요, 그 사람들이요." (2권, P.169)

 

자유시장경제의 논리에 따르자면 백진우와 이해리는 최고의 장사꾼이자 가장 영리한 사업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성과를 내니까 말이죠. 그러나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분노가 치미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쩌면 선한 얼굴을 한 악인을 주변에서 자주 목격을 하면서도 단지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못 본 체 지나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렇게 악인의 활동 영역을 무한정 넓혀주었던 것은 아닌지요.

 

"부탁이 있어."

남우가 돌아서려다 말고 이나를 바라보았다.

"약속해줘. 최소한 명백하게 악을 목격하게 된다면 모른 척하지 말아줘."

이나와 남우의 눈이 아주 길게 마주쳤다. 먼저 시선을 돌린 것은 남우였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남우가 알 거라고 생각했다. (1권 p.277~p.278)

 

온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안개도 없이 희끄무레한 하늘은 하늘과 땅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고, 공지영 작가의 <해리>를 읽었던 나는 선과 악의 경계마저 희미해지는 듯했습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악의 평범성'을 주장했던 한나 아렌트를 떠올렸습니다. 주인공 '한이나'는 어쩌면 작가가 역사 속에서 작심하고 끄집어낸 한나 아렌트의 분신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지 바쁘다는 이유로,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변명으로 우리는 시나브로 각자의 마음속에 아돌프 아이히만의 망령을 키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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