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겪어 본 사람은 안다. 한 사람의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를. 단지 뉴스로만 듣던 피상적인 의미의 죽음이 아니라 몸과 마음 전체를 짓누르는 부재의 실감과 가슴이 통째로 사라진 듯한 허무와 상실감. 그런 것들로 인해 온 우주가 빛을 잃고 점차 사그라드는 듯한 느낌. 부귀영화도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현실적인 깨달음.

 

미황사/김태정

 

……(생략)……

꽃살문 너머

반야심경이 물결처럼 출렁이면

나는 언제나 이 대목에서 목이 메곤 하였는데

 

그리운 이의 한 생애가

잠시 내 손등에 앉았다가 포르르,

새처럼 날아간 거라고

땅끝 바다 시린 파도가 잠시

가슴을 철썩이다 가버린 거라고.....

스님의 목소리는 어쩐지

발밑에 바스라지는 낙엽처럼 자꾸만

자꾸만 서걱이는 것이었는데

 

차마 다 터뜨리지 못한 울음처럼

늙은 달이 온몸을 밀어올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필생의 호흡이 빛이 되어

대웅전 주춧돌이 환해지는 밤

오리, 다람쥐가 돌 속에서 합장하고

게와 물고기가 땅끝 파도를 부르는

생의 한때가 잠시 슬픈 듯 즐거웠습니다

열반을 기다리는 달이여

그의 필생의 울음이 빛이 되어

미황사는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홀로 충만했습니다

 

우리 영화계의 큰 별이었던 배우 신성일이 향년 8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가 살았던 삶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서라도 한 사람의 죽음은 하나의 우주가 스러지는 것임을 나는 안다. 그에 대한 기억도 언젠가는 산 사람의 머릿속에서 낙엽처럼 스러지겠지만 적어도 낙엽을 밟고 선 오늘의 체감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생면부지의 그이지만 오늘의 애도는 오직 그에게 향해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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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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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음식에 대한 기호는 어릴 적 추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어렸을 적 가정 형편이나 부모님의 성격, 형제의 유무 어쩌면 부모님의 교육관이나 이웃과의 유대 관계 등 그 사람의 몸에 촘촘히 새겨진 삶의 무늬가 음식에 대한 기호를 통해 발현되는지도 모른다. 예컨대 가정 형편이 어렵고 가부장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음식은 그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수단 이상의 의미는 지니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유하고 자유분방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음식에 대한 탐닉이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인식하지 않을까.

 

모리 마리의 산문집 <홍차와 장미의 나날>을 읽어본 독자라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모리 오가이의 장녀로 태어난 작가는 부유한 집안의 첫째라는 특권을 마음껏 누리며 자란 듯했다. 좋아하는 음식을 즐기는 것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까닭에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그와 같은 삶은 오래 유지되지 않았고 하루하루의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렸을 적 기억을 간직한 채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는 사실이다.

 

"좋아하는 소설을 쓰는 것은 고통스럽고 괴로운 작업이긴 해도 그 세계 속에 일단 제대로 들어가기만 하면 어떻게든 쓸 수 있게 된다. 음식으로 말하자면 입술 주위에 과즙을 잔뜩 묻힌 채 달콤한 백도를 무아지경으로 먹는 상태라고 할까. 가끔 아직 이 정도로는 절대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자조 섞인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나는 조증 환자여서 가끔 어울리지 않게 우울하고 내성적인 생각을 하더라도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생각이 구름처럼 흩어져 태연해지는 그야말로 행복한 성격의 인간이다." (p.199~p.200)

 

두 번의 이혼 끝에 친정으로 돌아갔던 그녀였지만 여동생과 남동생의 결혼,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 등으로 텅 빈 집에서 혼자 살 수 없어 따로 방을 얻어 살게 되었다는 그녀. 아이들과 떨어져 홀로 외롭게 지내면서 싱크대도 공용으로 써야 하는 셋방의 열악한 환경을 탓하기는커녕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즐겼던 걸 보면 인생은 그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구나 짐작하겠지만 책의 내용은 음식과 관련한 유년 시절의 추억과 친구들과 얽힌 여러 에피소드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모리 마리의 소소한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에게 닥친 여러 근심거리나 이런저런 문제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기도 하는 걸 보면 음식 이야기에 섞여들어 간 작가의 인생관이 독자들의 머릿속으로 전이되는 듯하다.

 

음식을 단지 생존 수단으로만 여기는 나는 맛집 앞에서 길게 줄을 서거나 아주 먼 거리를 운전하여 맛집을 찾아가는 걸 끔찍이도 싫어했었다. 그러나 큰돈 들이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걸 무엇보다 즐겼던 아내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나 대신 아들과 함께 여러 음식점을 돌아다니곤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질색을 했을까 하는 후회가 남는다. 모리 마리 정도는 아닐지라도 가까운 사람과 음식 한 끼 나누는 것이야말로 삶의 큰 기쁨인데 말이다.

 

"마지막으로 슬픈 이야기를 하나 쓰겠다. 아버지는 마지막 병상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을 때 여간해서 자리에 들려 하지 않았다. "나는 아직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어"라고 말하며 다다미방에 앉아서 식사를 하셨지만 손이 떨려서 상아 젓가락이 밥그릇 가장자리에 부딪치며 딱딱 소리를 냈다. 어딘지 모르게 하얀, 죽음의 그림작가 떠도는 듯한 푸른 잎의 나무들 언저리로 눈길을 주며 어머니는 슬픔으로 기력을 잃어버렸다." (p.128)

 

음식을 즐기는 것도, 그렇다고 요리를 잘 만든다거나 남다른 미각을 지닌 것도 아닌 나이지만, 요리와 관련된 책은 시간이 날 때마다 더러 읽었었다. 언뜻 떠오르는 책의 제목만 하더라도 박찬일 셰프의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나 독일의 일류 요리사인 되르테 쉬퍼의 <내 생의 마지막 저녁 식사>,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 등 줄줄이 이어진다. 우리는 사실 살기 위해 한 끼를 때운다기보다 가까운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지난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거나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주가 되는 건 음식을 빙자한 삶이 아닐까 싶다. 밥 한 끼 같이 하자는 건 당신과의 추억을 공유하고 싶다는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이다. 그 말의 무게를 새삼 실감하는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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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게 산다는 것 - 불필요한 감정에 의연해지는 삶의 태도
양창순 지음 / 다산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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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이 심한 날씨가 며칠간 계속되었다. 멀쩡히 개는 듯하다가도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천둥이 치고 우박이 쏟아지기도 했다. '가을비 한 번에 내복 한 벌'이라는 말처럼 계절은 이제 가을을 지나 겨울로 향할 터였다. 주말 내내 비가 오락가락하던 날씨는 월요일 출근길에는 말끔히 개었다. 사심이 없는 담백한 하늘이었다. 언제부턴가 그런 하늘을 마주하는 날이면 괜스레 부끄러워지곤 한다. 내가 살아온 삶의 얼룩이 하늘 한편에 속속들이 투영되는 듯해서 말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던 윤동주 시인처럼 나이가 들수록 끝내 이룰 수 없는 소망들만 눈에 들어오는 듯하다.

 

"이 역시 내 생각이지만, 계절 중에서는 겨울이 가장 담백함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추운 날 오히려 쨍하고 마음이 맑아지는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겨울은 봄날의 들뜸도 없고, 여름날의 화려함이나 열정, 피곤함도 없으며, 가을날의 서글픔도 없다. 조용히 숨을 죽이고 다음 해의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만 있을 뿐이다."    (p.30)

 

'담백하게 살아가기'가 인생의 버킷 리스트가 되었다는 양창순 박사의 에세이 <담백하게 산다는 것>은 지금과 같은 늦가을에 어울리는 책이다. 사람의 습성이야 늘 자신이 갖지 못한 것, 이루지 못한 일들을 욕심내게 마련이지만, 자신이 직접 죽음 직전의 경험을 겪거나 아주 가까웠던 사람의 죽음을 목도하게 되면 그와 같은 욕심도 조금씩 옅어지곤 한다. 죽음에 대한 체감은 삶은 그야말로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저자가 뜬금없이 들고 나온 책의 제목이 <담백하게 산다는 것>이라는 데 의아함을 갖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미리 방어하고 경계한다는 의미에서 까칠하게 살고자 했던 저자가 주변 환경에 개의치 않고 담백함을 유지하고 싶다는 것만 보아도 세월이 흐른 만큼 저자 역시 성숙해진 게 아닌가 싶다. 어쩌면 저자 역시 자신에 대한 지나친 기대치를 내려놓았는지도 모른다.

 

"상담을 하다 보면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아니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이 결국은 '기대치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 세상에 내 기대치를 온전히 만족시켜줄 사람은 없다. 그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p.79)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장 '담백하게 산다는 것의 의미', 2장 '담백한 삶이 가져다주는 최고의 선물', 3장 '담백한 삶을 방해하는 몇 가지 요소들', 4장 '담백한 삶을 위한 마음 솔루션', 5장 '담백하게,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법'으로 담백하게 산다는 게 무엇인지, 담백하게 살면 뭐가 좋은지,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담백하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담백하게 살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담백한 일상을 살기 위한 구체적인 처방은 무엇인지에 대해 쉽고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우리가 현재 이 시점을 살지 못하고 늘 과거에, 미래에 마음을 빼앗기고 사는 것은 '무'라는 한자처럼 현재 이 시점에 내게 주어진 것을 못 보고 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담백함은 또 다른 의미에서 '보이지 않는 현재 이 시점에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보는 능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p.214)

 

저자도 말하고 있지만 얼룩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도 다른 사람의 기대치를 완벽하게 충족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누구나 처음인 인생, 신이 아닌 이상 실수가 일상일 수밖에 없는데 우리는 언제나 완벽함만 추구하며 사는 건 아닐까. 이런 불가능한 목표를 내려놓지 않는 한 우리는 늘 삶의 무게와 스트레스에 짓눌린 채 평생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나 역시 이와 같은 책을 읽을 때면 그런 생각이 불현듯 들다가도 며칠만 지나면 남과 견주면서 자신을 들볶는 걸 보면 내 눈에도 욕심의 색깔이 담백함의 색깔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절대로 그러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라고 그렇게나 외치던 분도 현실에서는 그놈의 욕심 때문에 영어의 몸이 되지 않았던가.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게 삶인가 보다. 저녁이 되자 다시 흐려진 하늘,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나의 마음처럼 날씨마저 어수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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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경영 - 한국을 깬 골프장, 스카이72 이야기
황인선.SKY72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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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책임하에 장시간 돌보는 게 아니라면 순수한 아이들과 노는 일은 더없이 즐겁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뿐 자의적으로 평가하려 들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대개 자신의 유불리를 따져 상대방에 대한 평가도 다르게 내리는 까닭에 설령 기분이 나쁠지라도 겉으로는 웃음을 지으며 상대방을 향해 입에 발린 칭찬을 늘어놓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하여 인간관계에서 즐거움을 찾기는커녕 신물이 나기 일쑤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르다. 아이들은 상대방의 눈치를 보지 않은 채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곧이곧대로 말을 하는 까닭에 불같이 화를 낼 만한 말을 들어도 피식 웃음이 나는 것이다. 순수한 아이들과 한바탕 놀고 나면 어른들과의 관계에서 쌓였던 모든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날아가버리는 느낌이 들곤 한다. 그러니 아이들을 좋아할 밖에.

 

일상적으로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우리는 부단히 노력한다. 유흥을 즐기기도 하고, 여행을 하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자연 속에서 한참을 거닐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이런 일련의 행위들 중에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게 골프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스트레스 해소나 삶의 유희를 찾기 위한 목적이라면 골프는 상당히 유용한 스포츠가 아닐 수 없다.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휘슬링락 골프장처럼 권력자에게 줄을 대기 위한 접대 골프가 아니라면 말이다.

 

최근에 출간한 <동심 경영>은 영종도 인천공항 근처의 72홀 대형 골프장인 '스카이72 골프 앤 리조트'(이하 스카이72)를 모델로 한 책이다. 칼럼니스트 황인선이 쓴 책으로 광고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의 필력 덕분인지 책을 읽는 독자는 시종일관 유쾌한 기분이 들게 한다.

 

"그럼 스카이72를 만나보세요. 인생이나 사업에서 분명히 영감을 받을 겁니다. 간혹 웃음이 터지고 감탄과 감동, 공감의 철학도 있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골프장 이야기가 아닙니다. 골프장 이야기만 쓰려면 25년 경력의 마케터이면서 스토리텔러인 필자가 할 일은 아닙니다. 이 책은 한국의 고정관념을 깬, 한국의 위대한 혁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p.24 '서문' 중에서)

 

스카이72의 경영 모토이기도 한 '동심'은 유머와 스토리텔링이 어우러져 임·직원뿐만 아니라 고객을 유쾌하게 하는 것으로 이 같은 경영 기법으로 최고의 명문 골프장이 될 수 있었던 비법을 책에서 다루고 있다. 골프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저자의 취지에 당연히 공감하게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골프가 하나의 스포츠이자 삶의 유희라는 걸 감안할 때 단순히 놀이로서의 골프에 소소한 재미를 더할 수만 있다면 그 기쁨은 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도 남음이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는 분은 지금보다 잘 놀아야겠습니다. 그렇게 보면 놀이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이슈이기도 합니다. 앞서 한국엔 유머가 중요하다고 여러 번 강조했었습니다. "유머는 유아기의 놀이적 마음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어른들의 해방감"이라고 한 프로이트의 말을 생각해보십시오. 유머가 유아기 놀이적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어른들의 해방감이라는데, 그렇다면 어른들의 해방을 위해 놀이는 유머만큼이나 중요한 겁니다." (p.148)

 

스트레스의 상당 부분은 결국 인간관계로 시작된다. 독서나 음악 감상처럼 혼자서 하는 행위가 아니라면 우리가 하는 놀이나 스포츠 또한 인간관계의 연장에 불과하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재미를 발견하고 규칙이나 깨달음을 얻는다.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란 없다. 물론 자신의 뜻에 맞지 않아 토라지기도 하고 이따금 투닥거리기도 하지만 다시 만날 때는 모든 걸 잊고 '하하' 웃는다. 어른들의 놀이에도 재미와 동심이 곁들여져야 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스카이72의 성장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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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법을 잊었다
오치아이 게이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한길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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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기대하지도 않았던 책에서 큰 감동을 받게 될 때, 책과의 인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반쪽이 될 사람을 우연처럼 발견하게 되었을 때의 감동처럼 말이다. 오치아이 게이코의 소설 <우는 법을 잊었다> 역시 내게는 그런 책이었다. 소설이라기보다 주인공 후유코가 적어 내려 간 간병일지나 다름없는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하는 그런 책이었다.

 

 

"나는 좌절하지 않는다. 나는 굴복하지 않는다. 나는 죽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을 여러 의미에서 관리하고 운영하는 모든 기술과 능력, 지식과 지혜를 잃어버린 늙은 어머니를 남기고 딸이 먼저 죽을 수는 없다. 인지장애라는 증상으로 완벽에 가깝게 빼앗긴 어머니 자신의 삶에 대한 확인. 나는 어머니 삶의 대행업자가 되려는 것인가. 그건 가능한 일일까." (p.161)

 

 

소설의 주인공인 후유코는 치매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자신의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와 7년째 함께 살고 있다. 일흔두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의 후유코가 어머니를 간병하고 어린이책 서점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꾸려가는 모습은 왠지 모를 숙연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후유코의 어머니는 혼외 자식으로 그녀를 낳았고 서로가 서로를 돌보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그들을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깨달았던 후유코는 어린 나이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다. 후유코에게 청개구리를 선물했던 친구의 남동생은 어느 날 물풀을 따다 주기 위해 늪으로 갔다가 시체로 발견되었고, 장례식장에서 힘없이 앉아 있던 그 아이의 어머니를 본 후 자신이 죽게 되면 혼자 남겨질 그녀의 어머니 역시 그런 모습일 거라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후유코가 어렸을 때부터 그녀의 어머니는 강박증에 시달렸다. 깨어 있는 내내 손을 씻고 또 씻는 바람에 액체 세제 한 통을 일주일 만에 다 써버리기 일쑤였던 어머니는 새 옷을 입으면 세균이 달라붙는다는 강박증세로 인해 옷을 갈아입는 것도, 목욕도 거부하는 등 불안정한 신경 증세를 보였다. 그러던 어머니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사랑했던 남자, 후유코 자신의 친부가 거의 동시에 죽음을 맞으면서 어머니는 당신이 겪던 긴 '겨울잠'에서 스스로 깨어나게 되었다. 힘들게 살아왔던 어머니. 후유코는 남들의 칭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어머니 같은 여자가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야말로 왜곡돼 있는 거죠.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어머니를 칭찬할 게 아니라, 저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바꿔가고 싶어요. 열심히 살아야 하는 사회 자체를 말이에요. 불필요한 열정을 개인에게 강요하는 사회를 저는 원하지 않습니다. 필요 이상 열심히 하는 것을 미담으로 삼는 사회와 인간관계에도 저는 이의가 있습니다." (p.58)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어머니를 위해 이모들과 사촌, 조카 등 가족들이 모두 모여 생일 파티를 하고, 대소변을 받아주고, 나날이 약해져 가는 어머니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기도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유롭게 살기를 원했던 어머니의 뜻에 반하여 후유코는 어머니의 간병을 도맡음으로써 어머니를 온전히 자신의 손에 의지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지만 그러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7년 동안 돌보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후유코는 자신의 어머니가 자유로워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간병에서 벗어난 자신만 그렇게 믿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기도 한다. 일찍 남편을 잃고 홀로 네 딸을 키웠던 할머니. 좋은 집에 시집가서 편하게 살기를 바랐던 맏딸이 '아비 없는 자식'을 낳겠다고 했을 때 혹독한 말로 몰아세우며 모욕과 분노를 퍼부었던 할머니를 10년간 병수발을 들었던 어머니. 누군가의 어머니가 될 자신이 없었던 후유코가 독신으로 자유롭게 사는 것을 지지했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마지막 7년을 지켜보면서 후유코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게 된다. 책에는 자신이 한때 사랑했던 남자의 갑작스러웠던 죽음과 어린이책 전문서점 '광장'의 직원으로 오랫동안 근무했던 '미치코'의 남편의 죽음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후유코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한다.

 

 

"인생은 한 권의 책이다라고 쓴 시인이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오늘까지 나는 어떤 책을 써왔을까. 내가 살아온 일흔두 살이라는 나이의 책. 만약 그 책에 색이 있다면, 어떤 색으로 물들어 있을까. 단색은 아닐 테지만 어떤 색이 도드라질지 나는 생각해본다." (p.282)

 

 

작가 자신의 자서전일 수도 있는 이 책을 내가 때로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공감하며 읽었던 데에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들을 처가에 맡긴 후 내가 혼자 머물던 좁은 숙소로 내려왔던 아내. 나는 온전히 아내의 식사를 챙기고, 행여나 몸이 굳을까 하루에도 여러 번 손발을 주무르고, 아내를 부축하여 산책을 나가고, 산책 후에는 꼼꼼히 몸을 씻기고,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는 등 정성을 다했건만 아내는 겨우 일곱 달을 나와 함께 살았다.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내 삶의 무게를 조금쯤 덜어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산 자에게 삶의 무게가 가벼워진다는 건 곧 외로워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죽음 직전까지도 누군가를 걱정하고 책임을 지려 한다는 건 외로움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스스로의 어깨에 짐을 더함으로써 외로움에 저항하려는 작은 발버둥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상실과 슬픔 끝에 찾아오는 자유는 산 자의 몫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말할 수 있다. 삶에서 얻는 어떤 깨달음은 상실과 슬픔 끝에 찾아온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삶에서 겪는 상실의 고통은 깨달음의 완결이자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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