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오래 지속하다 보면 나처럼 숫기 없는 사람도 이래저래 이웃도 만들고, 이따금 교류도 하고, 읽었던 책에 대해 이런저런 견해를 피력하기도 한다. 물론 그 모든 게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온라인 상의 일이기에 가능한 것이지만 일상의 업무를 처리하면서 과외의 시간을 내어야 하는 까닭에 무작정 쉽게만 생각할 일도 아니다.

 

블로그에 올리는 글만 해도 그렇다. 어떤 글을 쓰든 사회상규나 미풍양속에 저해되지만 않는다면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 생각도 없이 마구 토해내는 것 같지는 않다. 재주는 없지만 곰곰 생각하게도 되고, 여유가 있을라치면 자신이 쓴 글을 읽어보고 미진한 부분은 고쳐보기도 하고, 전에 읽었던 책의 일부를 인용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자니 때로는 많은 시간을 블로그에 할애하는 날도 있게 마련이다.

 

사람의 일이라는 게 늘 그렇지만 우연찮게 안 좋은 일도 당하고, 때로는 기쁜 일도 있고, 딱히 특별한 일도 없는데 한없이 가라앉는 날도 있어서 블로그를 꾸준히 관리하고 유지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 블로그를 그만두고 싶거나 만사에 의욕이 없을 때에는 일부러라도 일을 만들곤 한다. 리뷰대회에 참가해보는 것도 그중 하나이다. 물론 상을 받으면 좋겠지만 그게 목적은 아니다. 명색이 대회에 참가하는 글이니 조금 더 생각하고, 조금 더 집중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슬펐던 일도 조금 잊을 수 있고, 화가 나거나 바닥까지 가라앉았던 마음도 다시 고를 수 있다.

 

얼마 전에 참가했던 리뷰대회에서 보기 좋게 탈락했는데 대회를 주최했던 출판사 측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책을 보내주시겠다고 말이다.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편지와 함께 보내주신 네 권의 책!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좋은 책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도서출판 '한길사',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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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
김형숙 지음 / 뜨인돌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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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건 상대적으로 자신의 죽음만큼은 아직 저만치 멀기만 하다는 강한 믿음이 있기 때문일 터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나 막상 자신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말할라치면 사정은 180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두려운 것이다. 아무리 담담한 척해본들 결코 무덤덤해질 리 없다. 그렇게 된 데에는 삶과 죽음이 철저히 분리된 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죽음과 삶이 한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던 과거와는 달리 현대인의 죽음은 병원이라는 한정된 공간 내에서 삶과 분리된 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늘 있는 일이고 자신도 언젠가는 겪을 일이지만 현대인에게 죽음은 익숙하지도, 그렇다고 가깝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또 의식이 없는 환자를 대신하여 가족들이 '사전 동의서'라는 형식으로 내리는 의사결정은 어떤 결론이건 가족이나 의료진에게 후회와 죄의식을 남겼다. 연명치료를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나 이미 시작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도, 연명치료를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에 비해 중간에 멈추는 걸 용납하기가 훨씬 어려워지는 등 사전의사결정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 기준도 모호했다." (p.6)

 

의학의 발달과 의학에 대한 과도한 믿음으로 인해 현대인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와 의미를 까맣게 잊어버리곤 한다. 그러므로 나이를 먹고 노화가 진행될수록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죽음의 실체는 과거 우리의 선조들에 비해 훨씬 큰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차가운 의료장비와 낯선 의료진들만 가득한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맞는다는 건...

 

19년 동안 신경외과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던 경험을 책으로 엮은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의 저자 김형숙은 우리에게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첫 직장인 대학병원 중환자실이 '의외로 나에게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는 저자는 세월이 흐를수록 고통스러웠고, 결국 병원을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뇌·척추 질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그들의 팔다리에 통증을 가하는 일'이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가 어려서부터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키워왔던 건 아니다. 1장 자연스러웠던 죽음을 추억하다'에서 저자는 산골 출신인 저자가 무덤가에서 놀며 위로받고,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던 자신의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한다. 2장 '중환자가 된다는 것, 나에 대한 결정에서 배제되는 것'에서 저자는 중환자실에 들어간다는 것을 '고립·소외·침묵·분노·공포·배제'로 요약한다. 그리고 3장 '중환자실에서 죽는다는 것, 이별하기 어렵다는 것'에서 환자가 과도한 연명치료와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 격리된 생활로 인해 스스로의 죽음에서 '배제'되고 아름답게 죽을 권리를 박탈당하는 현실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드러낸다. 어쩌면 우리는 끊을 수 없는 미련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더 큰 고통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건 아닌지...

 

저자는 이 책의 4장 '죽음 이후, 당신이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을 때 생길 수 있는 일'을 꼼꼼히 되짚으며 5장 '다른 가능성들'을 제시한다. 그것은 결국 '사전 의료 지시서' 제도로 이어진다. 병원에서의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서면으로나마 연명 치료 여부를 미리 결정하고, 심폐소생술 여부, 시신 처리 방법 등에 관한 구체적인 의사를 남겨 우리가 응급상황에 처했을 때 의료진과 가족에게 전달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전 의료 지시서' 제도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아직 이 제도의 법적 효력이 없다. 사전 의료 지시서를 작성했다고 하더라도 현실에서는 보호자의 의사, 의료진의 의사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연명치료나 소생술을 시행하지 않는 것은 환자를 포기하고 죽음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환자의 치료를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면서 가능한 한 환자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마지막에는 환자 내부의 힘, 혹은 하늘의 뜻에 맡기며 기다렸다. 그때까지 유지하던 치료를 지속할지 중단할지 결단하지 않고도 남은 날들이 환자나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결과 환자가 스스로 회복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p.245)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의 책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의 자기 보존을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로봇기계이며, 유전적 본성에 따라 먹고, 살고, 사랑하면서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존재라고 썼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하찮은 존재로 이 세상에 왔다 가는 건 결코 아니라고 믿는다. 그와 같은 믿음을 지켜주는 것,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는 것은 순전히 한 인간의 마지막 모습이 아름다운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 있지 않을까. '당신은 오늘 죽음을 상상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만이 당신이 마지막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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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죽음 뒤에는 항상 안타까운 사연이 뒤따른다. 종로의 한 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고 했다. 몸 하나 겨우 들어갈 1.7평의 작은 방 하나에 월세 27만 원, 입주자 대부분이 40~70대의 일용직 근로자라고 한다. 비가 와서 공치는 날이라 사망자가 늘었다고 하니 운명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들 수밖에...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가난의 굴레는 그 사람의 생명까지도 옥죄게 마련이다. 그렇게 내몰린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하루를 견디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제공한다.

 

몇 년 전 나도 서울 신림동에 있는 고시원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잠시였지만 안정적인 숙소가 마련될 때까지 임시방편으로 고시원에 머물러야 했던 조카를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방문자가 앉을 공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좁디좁은 공간에서 나는 금세라도 폐쇄공포를 느낄 것만 같은 아찔한 예감에 저녁을 먹자는 핑계로 그 자리를 서둘러 벗어나야만 했다. 두어 달을 그곳에서 살았던 조카도 그 후 마땅한 방을 얻어 감옥과 다름없었던 고시원 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지만 그때의 경험이 혹여라도 트라우마로 남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곤 했었다. 물론 더 이상 한 발짝도 물러날 곳이 없는 고시원 상주자들이 듣는다면 이렇게 말하는 나의 모습은 순전히 엄살로 비칠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지난 9월 만취 운전자가 몰던 BMW에 치여 뇌사상태에 빠졌던 윤창호 씨도 오늘 끝내 숨졌다고 한다. 미국 LA 교외 술집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의 희생자들 역시 안타깝기만 하다. 내 가족이나 가까운 일가 친척이 아닌 한 우리는 또 쉽게 잊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을 살아가겠지만 언제쯤이면 이런 안타까운 죽음이 사라지게 될지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사람이 같은 사람을 죽이는 세상, 그런 까닭에 우리 모두는 공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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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9 19: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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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1 12: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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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0
막심 고리키 지음, 이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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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심 고리끼' 하면 소설보다는 먼저 '밑바닥에서'라는 연극이 떠오르곤 한다. 반공주의에 매몰되었던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막심 고리끼의 문학을 논한다는 건 왠지 께름칙하고 두려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일종의 자기 검열로서 말이다. 그런 까닭에 막심 고리끼의 작품을 처음 읽어본 게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참이나 지난 시점이었던 듯하다. 그에 앞서 우연히 보게 된 연극 '밑바닥에서', 어린 시절에 보았더라면 제대로 이해조차 하기 어려웠을 그늘진 삶의 단면에 홀리듯 이끌렸고, 그 후 원작을 찾아 책으로 읽게도 되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그이지만 불행했던 그의 삶을 대변하듯 그가 쓴 대부분의 작품은 무척이나 어둡고 우울했다. 막심 고리끼의 작품을 다시 읽는다는 건 접혀 있던 우울의 한 끝단을 펼치는 것과 진배없었다.

 

막심 고리끼, 러시아어로 '최대'를 뜻하는 막심과 '맛이 쓰다'는 의미의 고리키를 합쳐 필명으로 쓰게 되었다는 그이지만 그의 작품은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곳곳에서 드러나곤 한다.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도 바로 그런 부분이 아닐까 싶기는 하지만 말이다. 작가의 산문집에서 '인간은 희망으로 들뜬 불안한 삶을 원치 않습니다. 밤하늘의 별 아래 느릿느릿 흘러가는 조용한 삶이면 족합니다.'라고 썼던 것처럼 그 역시 자신의 삶 전체에서 희망으로 요동치는 불안한 삶을 원치 않았을 듯하다. 오늘 내가 읽었던 그의 단편소설 '첫사랑'의 주인공도 그렇지 않았을까.

 

"삶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뭔가 끝없이 펼쳐 보이는 마술사에 대한 어린아이의 믿음 같은 것이었다. 이제까지 보여준 마술도 재미있었지만 더 재미있는 것은 앞으로 나올 테고, 바로 다음 순간, 아니 어쩌면 내일 보게 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분명히 보게 되리라고 믿고 있는! 죽음의 순간까지도 어떻게 된 건지 전혀 알 수 없는 최후의 놀라운 마술을 그녀는 여전히 기다리고 잇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p.189~p.190)

 

주인공인 '나'가 사랑하는 여자(올가)는 나보다 열 살이나 많고 애가 딸린 유부녀였지만,'귀족 여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파리에서 살기도 했으며, 그림 공부도 하고, 산파술도 배운, 한마디로 교양이 있는 우아한 여성이었다. 반면에 나는 촌스럽기 그지없는, 그렇지만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그런 남자였다.

 

"무엇이든 거침이 없는 그녀의 어투에서 나는 혹시 이 사람이 내 주변에 잇는 혁명적 성향의 지인들이 알고 있는 것을 다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걸 넘어 뭔가 더욱 높은 가치가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세상 모든 것을 멀리서, 한편으로 비켜서서, 흥미롭지만 위험한 장난을 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처럼, 자신은 이미 다 겪어보았다는 듯이 지그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p.147)

 

우리는 대개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끌리게 마련이다. 소설 소의 나도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은 결국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나 한 집에서 살게 된다. 사제관에 딸린 싸구려 월세방에 가정을 꾸렸지만 썩은 내가 진동하고 벌레가 들끓는 궁핍한 생활이었다. 그러나 여자는 불평 한 마디 없이 견뎌주는 것은 물론 초상화를 그리거나, 지도를 그려주거나, 혹은 최신 유행하는 모자를 만들어 내다 파는 등 생계를 거들었다. 나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지역 신문에 연재를 하기도 했다. 돈을 조금 벌면 그들은 지인들을 초대하여 만찬을 열었고 여자는 가까운 남자들을 '뒤흔들기' 좋아했고 아주 손쉽게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질투하지 않았다. 동거 생활 삼 년째에 나는 문학 창작에 진지하게 매달렸고 여자는 나의 작품에 관심조차 없었다. 달라도 너무나 다른 문학적 취향과 삶의 인식. 나는 모욕감을 느꼈고, 그것 때문에 헤어졌다.

 

"얼마 전 나의 첫사랑인 그 여인이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녀에게 찬사를 바치고 싶다. 진정 여자다운 멋진 여자였노라고! 그녀는 있는 것만으로 살아갈 줄 아는 여자였다. 그러나 그녀에겐 매일매일 축제 전야였다. 그녀는 내일이면 지상에 새롭고 특별한 꽃이 피어날 것이라고, 또 어딘가에서 아주 재미있는 사람들이 찾아와 놀랄 만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늘 기대하며 살았다." (p.184)

 

우리는 내게 없는 것을 그녀, 또는 그 남자가 갖고 있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끌리기도 하고, 똑같은 이유로 헤어지기도 한다. 그런 실수를 반복하는 게 청춘의 특권이라고는 하지만 지나고 나면 그 시절은 아주 짧은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아쉽고 애틋한 경험일 수밖에 없다. 온종일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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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헤어지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F 지음, 송아람 그림, 이홍이 옮김 / 놀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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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읽은 느낌은 이러했다. 이름도 모르는 저자가 내 곁으로 기척도 없이 다가와서는 남들이 들을세라 한껏 낮춘 목소리로 미처 몰랐던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들려주는 듯한 느낌, 또는 친한 친구가 어렵사리 꺼낸 속내를 듣는 듯한 느낌, 아무튼 그런 느낌이었다. "실은 말이야..." 하면서 꺼낸 이야기는 그동안 우리가 의심 없이 믿어왔던 상식에 반하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논리적으로, 때로는 도발적으로 풀어놓았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추억이란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다'는 말처럼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무릎을 치며 감탄하게 되는 대목이 곳곳에 등장한다.

 

"아름다움, 특히 외적인 아름다움은 무언가를 향한 복수와도 같다. 물론 얼굴이 예쁜 사람이 좋다. 하지만 그런 잔꾀에 속는 사람은 결국 겉모습만 본다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나 혼자만 믿으며 살아가고 싶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필요 없이." (p.184)

 

그러나 저자에 대한 의미 있는 정보는 그 어디에도 없다. 'F'라는 익명에 더하여 책의 내용에 언뜻언뜻 등장하는 몇몇 소소한 정보가 다이다. 도쿄 신주쿠 지역에 살고 있다거나, 11월에 태어났다거나,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남들은 일주일에 다섯 번 학교에 갈 때 저자는 겨우 두 번만 나갔다거나, 퇴학 처분이 내려진 것도 여러 번이었으나 어찌어찌 대학까지 졸업했다는 둥 읽으면 읽을수록 고개만 갸웃거리게 된다. 책을 다 읽은 독자나 하나도 읽지 않은 독자나 저자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F'로만 남는다.

 

"미움 받을 용기 따위 필요 없다. 굳이 온 세상을 적으로 만들 필요도 없다. 누군가 나의 적이 될 때는 그가 자기 마음대로 내 적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미움 받을 용기, 그런 위험천만한 마음을 갖고 살기에 인생은 너무도 짧다. 그런 무시무시한 마음을 지니고 다니기에는 인간의 수가 너무도 많다." (p.135)

 

저자는 연애나 사랑에 대하여, 친구에 대하여, 외로움이나 질투 또는 향기에 대하여, 인간관계에 대하여, 이별에 대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조언한다. 조언이라기보다는 그가 살아온 경험과 지식, 또는 예리한 관찰에 기반을 둔 현실적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늘 들어오던 식상한 조언이 결코 아니다. 문장 하나하나에 저자만의 독특한 개성이 드러난다.

 

"나는 항상 나의 연인이 바람을 피울 경우를 대비하고 있다. 아무리 사귀는 사이여도 함께 있는 시간 이외에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 걸 아는 것도 이상하다. 하지만 정해놓은 것이 딱 하나 있다. 의심하지 않기다. 무얼 의심하지 않느냐고? 나의 연인은 절대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얘기도,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도 아니다.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절대로 의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반대로 여기에 의심이 생기면 그땐 헤어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p.280)

 

저자의 시각이나 관점은 책을 읽는 독자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말하자면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기꺼이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었지만 재미있는 소설이나 시집을 읽을 때처럼 지루하거나 따분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청춘기에 했던 잘못된 선택지로 인해 저자 역시 후회하고 있다는 몇 가지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이었다.

 

"독서는 확실히 체계적으로 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기억의 용량이 낭비된다. 예를 들어 나쓰메 소세키의『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으면 그에 대한 주석과, 해설을 해주는 책 또는 논문을 다섯 권 정도 더 읽는 게 좋다. 책은 아무리 많이 빨리 읽어도 '지식'밖에 안 쌓인다. 이건 의미가 없다. 하나의 사실을 여러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을 때 '식견'이 생긴다. 어디에 살면서 무엇을 보든, 체계적인 독서는 자신만의 견해로 세상을 해석하는 능력을 길러준다." (p.199~p.200)

 

후회하는 몇 가지에 대한 저자의 당부는 이러했다. '외로울 때는 실컷 외로워하고, 누군가를 만나서 투정을 부리라'는 것이다.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으면 추억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때 더 부끄러운 짓을 했었더라면 지금보다 덜 후회하고 살고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우리가 사랑하던 사람과, 공간과, 시간과도 결국 이별을 해야 하는 한시적인 존재일 뿐이다. 영원한 듯 살고는 있지만 영원하지 않다는 얘기다. 아이러니하게도 얼굴이 빨개지도록 부끄러운 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생은 더 풍요로워진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삶에서 맘껏 부끄러워해도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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