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오늘 시험공부를 하겠다며 도서관으로 갔다. 중학교에서의 마지막 시험인 3학년 2학기 기말고사가 다음 주에 있다. 기온이 오르자 미세먼지의 수치가 높아졌는지 목이 칼칼하다. 건강을 위해서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습관이 안 된 탓인지 웬만해선 쓰지 않게 된다. 답답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학교나 학원에서 내준 숙제를 하는 아들을 지켜볼 때가 있다. 고지식하기 짝이 없는 아들은 도통 요령을 부릴 줄 모른다. 내가 보기에 그냥 설렁설렁해도 될 만한 숙제도 열과 성을 다하는 까닭에 남들보다 시간은 배나 들고, 그 여파로 육체적 피곤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얼마 전에도 사회 과목 수행평가를 한답시고 주말을 포함한 며칠을 UCC 촬영 및 편집에 매달리는 걸 보고, '같은 조원들은 뭐하는데 너만 혼자 촬영과 편집을 도맡아 하느냐?'고 물었더니 친구들은 영상 편집을 할 줄 몰라서 자기가 할 수밖에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속에서는 부아가 치밀었지만 아들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처럼 누구도 선뜻 나서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 학교에서 내준 조별 과제의 어려운 부분을 떠맡는다는 게 어디 유쾌한 일이기만 했을까. 아들은 UCC가 아닌 조별 발표에 있어서도 자료 탐구며 파워포인트 작성에 이르기까지 발표에 필요한 전반적인 사항을 도맡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지켜보는 나로서는 속이 터질 수밖에. 이제 수행평가는 모두 끝났고 지필고사만 보면 된다. 시험을 치르고 나면 여행도 하면서 좀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으면 좋으련만 우리나라 사정이 어디 그런가. 고등학교 과정을 선행학습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듯 호들갑을 떠니 말이다. 더구나 금년에 치러진 불수능의 여파로 학원가는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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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몽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기 드 모파상 지음, 송의경 옮김, 토뇨 베나비데스 그림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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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의 단편은 때로 에세이나 수기처럼 읽힌다. 전형적인 소설의 구성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고 여러 번 읽어보아도 특별한 사건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도 그렇다. 게다가 기 드 모파상의 화려하고 감각적인 문장 구사력에 현혹되어 굳이 장르를 구분해야 할 필요성을 찾지 못하는 것도 한 이유가 될지 모른다. 작품 활동을 했던 십 년 남짓의 길지 않은 시간 동안 100여 편의 시평과 6편의 장편소설, 300편 이상의 단편소설을 썼던 그였지만 기 드 모파상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유전적 요인에 의한 신경증, 심장질환, 매독, 간질환, 소화기 장애, 장출혈, 만성 두통, 류머티즘과 안질환에 시달리다가 결국에는 실명 상태에서 정신병으로 사망했으니 그런 상태에서 후세에 남길 만한 수작들을 쏟아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밤:악몽>을 발표할 무렵 그는 인간 정신을 지배하는 광기와 환각을 집요하게 탐구했던 시기라고 한다. 소설을 읽는 독자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그런 의식의 흐름을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하지만 뉘엿뉘엿 해가 지면 막연한 기쁨이 밀려들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나는 깨어나고 활기를 되찾는다. 어둠이 확산될수록 전혀 다른 사람, 더 젊고 더 기운차고 더 날렵하고 더 행복한 사람으로 변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거대하고 감미로운 어둠을 바라본다. 차츰 짙어가는 어둠이 손으로 잡을 수도, 헤치고 들어갈 수도 없는 파도처럼 도시를 집어삼킨다. 색깔과 형태를 감추거나 지우고 파괴한다. 집과 사람과 건물들을 보이지 않는 손길로 감싸안는다. 그러면 나는 부엉이처럼 기쁨에 들떠 울부짖으며 고양이처럼 지붕 위를 달려가고 싶어진다. 내 혈관 속에서 억누를 수 없는 맹렬한 사랑의 욕망이 점화된다." (p.9)

 

소설에서 화자인 '나'는 그날도 가스등과 별빛이 가득한 파리의 대로변을 거닐며 북적북적한 카페를 관찰하고, 샹들리에 불빛이 휘황찬란한 극장도 들어가보고, 개선문 앞에 서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몽상에 잠기기도 한다. 걷고 싶은 욕구에 부추겨진 나는 바스티유까지 걷게 되고, 문득 이토록 캄캄한 밤을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가스등이 꺼진 어둠 속에서 '나'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시간 감각이 흐려진다. '나'는 활기를 느낄 수 있는 시장으로 가보자고 생각한다. 레알 시장은 텅 비고 아무 움직임 없이 버려진 채 죽어 있었다. 도시는 침묵과 어둠 속에 갇혀 있고, '나'의 회중시계마저 멈춘 순간 센 강변에 다다른 '나'는 여전히 센 강이 흐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계단을 찾아 강으로 내려간 '나'는 강물이 흐르고 있음을 확인하며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다.

 

어이없게도 인간의 호기심과 열정은 공포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그에 비례하여 실체를 확인하고 싶은 욕망 또한 증가하도록 부추긴다. 그러므로 공포는 사람들의 생명을 기반으로 세력을 키워간다고 말할 수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나' 역시 밤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강한 욕구와 밤에 대한 공포를 동시에 드러낸다. '우리가 열렬히 사랑하는 것은 결국 우리를 죽음으로 이끄는 법'이라고 작가는 경고한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이 스포츠를 즐기는 도중에 생을 마감하는 것처럼. 실체도 없는 공포,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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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첫눈이 내리는 동안, 그리움과는 별개의 슬픔이 쏟아졌다. 카톡 문자 메시지를 알리는 진동음이 끝없이 이어졌고, 응답이 없는 나를 걱정하는 몇몇은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어둑어둑 그늘이 진 방에는 진득한 침묵이 내려앉았고, 다리께서부터 차오르던 슬픔이 목과 얼굴을 거쳐 마치 나를 익사시키려는 듯 온 몸을 짓누른다.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이 무기력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정호승 시인의 시를 나즉나즉 읊어보았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자

정호승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있는
군밤장수한테 다가가 군밤을 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나는 늙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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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오다 - 다큐 피디 김현우의 출장 산문집
김현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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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장면은 세월에 따라 세세한 풍경은 잊히지만 공간 깊숙이 스며들었던 소리는 더욱더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경우가 있다. 세월에 흐릿해진 공간이 소리에 묻혀버린 느낌이랄까. 어느 해 여름 남해의 해변에서 들었던 파도 소리도 세월에 역행하여 생생하게 되살아나곤 한다. 해변에는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동안 파도에 깎여 그 크기며 모양도 제각각인 자갈들이 깔린 몽돌 해변이었다. 파도가 육지에서 물러갈 때마다 몽돌을 가볍게 스치며 내는 자글거림이 밤새 이어졌었다. 소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나는 결국 해변으로 향했고, 그날 나는 잠을 포기한 채 밤새 해변을 서성였었다.

 

김현우 피디의 출장 산문집 <건너오다>를 읽으며 몽돌 해변의 파도 소리를 떠올렸던 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날 내가 보았던 몽돌은 어느 이름난 장인이 깎고 다듬어도 그와 같은 아름다움을 연출할 수는 없을 듯했다. 오랫동안 파도에 씻기고 다듬어지면서 둥글둥글해진 돌들이 물기를 머금고 달빛에 은은하게 빛나는 모습은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어쩌면 그것은 세월의 더께가 빚어낸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글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낱글자 하나하나에서 세월의 묵은 때가 묻어나는 그런 글이 좋다.

 

"처음 제의를 받은 지 사 년 만에 한 권의 책을 마쳤다. 책 한 권으로 묶일 만큼의 글을 써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쓰는 동안 뭔가가 정리되긴 했다. 글쓰기는 적어도 나에게는 도움이 되는 작업이었다. 대충 삼십대의 시기와 겹치는 십여 년을 이렇게 정리해보고 나니 뭔가 더 분명히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삶은 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 그건 좀처럼 자신이 생기지 않는 일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p.253)

 

<건너오다>는 EBS <다큐프라임> <지식채널e>의 연출가이자 존 버거, 리베카 솔닛의 번역가이기도 한 저자가 출장을 갔던 17개국 38개 도시를 관통하며 자신이 느끼고 기록했던 것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여행기와는 크게 다르다. 도시를 방문하는 목적이 일반 여행객의 그것과는 다르기도 하지만 김현우 피디의 감성이나 지나온 삶이 달라서일 수도 있다.

 

"모든 시간들, 아니 순간들에 이유를 붙이고 싶은 것은 내가 어떤 '의미'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야 나의 과거와 미래가 '일관되게' 이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삶이란 그래야 한다고, 적어도 삼십대까지의 나는 생각했던 것 같다. 비어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어떻게든 그 시간에 이유를 붙이려 했다. 그렇게 피곤했다." (p.111)

 

<건너오다>가 다른 여행기에 비해 특별하다고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일반 여행객들이 잘 찾지 않는 특별한 곳을 다녀왔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피디라는 직업적 특성상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주제가 뚜렷해야만 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방문지에서 보여줄 필요가 있는 대상과 방문지의 역사와 그곳 사람들의 생각을 종합하다 보면 세계 곳곳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훑게 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개중에는 물론 일과 연관되지 않은 사적인 만남이나 관광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발칸의 지금을 보며 전쟁이라는 필터로만 보는 것도 선입견임을 안다. 다만 그렇게 열린 창을 통해서만 본 것들이 해준 이야기는, '소속되어 있음'이 지닌 폭력적인 가능성이었다. 발칸은 잘생긴 땅이었다. 산들은 위엄이 있고, 그 사이로 흐르는 강은 풍요롭고, 사이사이 보이는 평원은 기름지고, 아드리아 해는 눈부셨다. 그런 자연에 비해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풍경은 어두웠다. 짧은 여정이라 단정할 순 없겠지만, 나는 그 어두움이 '밖에서 주어진 정체성', 즉 소속이 지닌 어둠이 아닐까 생각했다." (p.154)

 

김현우 피디의 글이 유려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때로는 단조롭고 투박한 느낌마저 든다. 그럼에도 술술 읽힌다. 책을 읽는 도중에 급한 용무가 생겨도 좀처럼 책을 내려놓기 어렵다. 미려한 문장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중간중간 화려한 사진이 실린 것도 아니지만 깊은 사색에서 우러난 진솔한 문장들이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의 뒷모습을 힐끔거리며 쳐다보게 되는 듯도 하고, 누군가 내 뒷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는 온통 과거만을 향한 문장은 아닌 것이다. 그 마음도 여전히, 늘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미래를 향하고 있다. 사람은 '기대'가 없어도 다가올 날들을, 혹은 남은 날들을 그려볼 수밖에 없다. 그건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음을, 그렇게 환하기도 했고 어둡기도 했던 자신과 비로소 화해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마음일 것이다." (p.250)

 

우리가 하는 흔한 실수 중 하나는 세월의 가치를 은연중에 무시한다는 것이다. 시시하고 촌스럽다는 이유로. 그러나 내가 어느 해변에서 보았던 기나긴 세월의 흔적은 오롯이 내가 자연 속에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왔다 가는 존재임을, 그렇기에 어떤 인간도 자연과 세월이 빚은 작품을 결코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던 것처럼 김현우 피디의 글이 독자들에게 특별했던 까닭은 글 속에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긴 시간을 두고 고치고 다듬었던 흔적들이 세월의 더께로 책의 곳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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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건 무턱대고 저지르고 보는, 말하자면 '무작정'이 어울리는 사람을 보면 왠지 부럽다. 직진 성향의 저돌적인 용기가 부러운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부딪혀서 어떤 일의 결과를 알고 싶어 하는 강한 호기심과 열정이 부러운 것이다. 인생에서 호기심과 열정이 사라진다면 삶은 그야말로 무기력하고 암울한 어떤 것으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어서도 아이의 호기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즐기겠다는 굳은 약속과 같다.

 

호기심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 근심이 아주 작게 느껴지기도 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자신의 근심을 잠시 내려놓은 채 호기심이 펼쳐 보이는 인생의 마법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60, 70, 80살이 되었을 때의 자신이 궁금하지 않다면 살아야 될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마냥 부정적으로만 비칠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의지로 나이 먹는 것을 거부할 수도 없으니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오늘은 소설(小雪), 눈은 날리지 않지만 어제 내린 비로 한결 맑아진 공기, 볼에 닿는 느낌은 제법 차갑지만 여린 햇살의 온기가 마냥 반갑기만 하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소설(小雪)을 소춘(小春)이라고도 했다지. 아직 따뜻한 햇볕이 간간이 내리쬐는 까닭에.

 

만민교회 이재록 목사의 1심 판결에서 징역 15년을 선고했다는 기사.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손녀가 운전기사에게 했다는 폭언.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날들이 계속될 것 같지만 세상은 온갖 신기한 일들을 마련한 채 삶을 유지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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