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
톰 말름퀴스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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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몸살로 며칠을 앓았다. 연말연시의 육체적인 피로도 피로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크지 않았나 싶다. 발단은 아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지난해 9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아들은 너무도 의연하게 일상을 지켜왔다. 학교 생활도, 하교 후에 가는 몇몇 학원도 힘들다는 내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직장 문제로 떨어져 사는 나나 아들을 보살피는 할머니 역시 그런 아들을 대견하게 생각했을 뿐, 속으로 얼마나 힘들고 아파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랬던 아들이 탈이 났던 건 지난주. 잘 다니던 학원도 며칠째 빠지고 밥을 먹는 것도 깨작깨작 의욕이 없어 보였다.

 

어제 아이의 할머니로부터 장문의 문자를 받았다. 그동안 꽁꽁 감추어 왔던 아이의 속내를 듣고 어찌나 안쓰럽던지 혼자 한참을 우셨다고 했다. 그리고 어떻게 위로를 하고 용기를 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일 때문에 잠시 외출을 했던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펑펑 울었다. 눈물로 시야가 번져 운전을 할 수조차 없었다. 나야 그렇다지만 아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신히 집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아들과 통화를 했던 건 늦은 밤이었다.

 

슬프면 슬프다고 말해도 된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언제든 나에게 말해주면 좋겠다고는 했지만 정작 아들은 나에 대한 걱정이 더 큰 듯했다.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나는 톰 말름퀴스트의 소설 <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을 마저 읽었다. 읽기 시작한 지는 꽤나 오래되었지만 읽다 말다를 반복하는 바람에 진도가 잘 나가지 않던 책이었다. 재미가 없어서라기보다 아내를 잃은 톰의 상황이 나의 상황과 겹쳐지면서 슬픔이 북받쳤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거예요. 뉘그렌이 말한다. 그럼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은가요? 내가 묻는다. 부인의 치료를 조금 더 계속해보기로 결정하긴 했지만, 가망이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기는 힘들지만, 아마도 대략 한 시간쯤. 나는 카린의 뺨에 양손을 얹고 손가락으로 이마를 쓸어준다. 땀이 배어 나와 있다. 아내와 단둘이 있게 해줄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시간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p.106)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한 이 소설은 평범하기만 했던 우리의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마치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양 담담하게 쓰고 있다. 약 1개월 반 후면 아빠가 될 예정이었던 톰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아내 카린과의 결혼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린이 고열과 호흡 곤란으로 병원에 실려 가며 모든 게 바뀐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라는 진단과 함께 뱃속의 아기를 살리기 위한 제왕절개 수술에 들어간다.

 

미숙아로 태어난 딸 리비아를 돌보면서 아내 카린의 병간호까지 감당해야 했던 톰은 순식간에 변한 이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톰과 의료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내 카린은 세상을 떴고, 신생아인 딸과 톰만 남았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아내가 죽는 바람에 리비아는 법적으로 딸이 아닌 동거인에 불과했다. 리비아에 대한 법적 문제를 처리하며 카린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톰. 책에는 톰과 카린이 만나 같이 살게 되는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톰에게는 또 다른 상실의 고통이 이어진다.

 

"나는 장례식 추도문을 쓰면서 카린의 머리빗을 옆에 두고 글이 막힐 때마다 카린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문지른다. 계단에서 이웃집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부엌 환풍기가 휭휭 돌아가는 소리, 환기구를 지나가는 바람 소리, 창문 아래 룬다가탄에서 띄엄띄엄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소리는 여느 때와 똑같다. 여느 평범한 날과 똑같다." (p.284)

 

미국 월가의 허상을 파헤친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저서 <블랙 스완>에는 재미있는 비유가 나온다. 칠면조의 주인은 천일 동안 매일 먹이를 갖다 준다. 칠면조는 먹이를 받아먹을 때마다 주인이 자신에게 선의를 베푼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친절한 먹이주기의 횟수가 늘어갈수록 믿음은 한층 견고해진다. 하지만 추수감사절을 앞둔 날 친절하기 그지없던 주인의 손에 칠면조는 죽임을 당한다. 과거 경험으로는 결코 자각하거나 예측할 수 없었던 극단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 그러니 경험에서 얻은 지식에 의지해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천만한 일인가.

 

우리는 누구나 타인에게 일어나는 불행이 자신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산다. 다른 사람에게는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도 자신만은 예외로 비껴갈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무심한 듯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 물론 그러한 믿음과 희망이 없다면 세상을 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평범한 일상에 대한 고마움은 저만치 사라지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톰 말름퀴스트의 소설 <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은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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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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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홍규의 산문집을 읽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이유로 주눅이 들곤 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해 어두운 방 한켠으로 달아나야만 할 것 같기도 하고, 무릎 꿇고 손을 드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슴에 손을 얹고 두어 시간쯤 혼자만의 깊은 반성 정도는 있어야 할 것만 같다. 그리고 세상에 이름 붙여진 모든 것들을 일일이 다 알아둘 필요야 없다 할지라도 제 나이에 걸맞은 평균적인 앎은 반드시 있어야 하고, 효자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도 제 부모가 지나온 삶의 여정을 더듬고 이해하면서 그 지난한 과정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 것만 같다. 이러한 느낌은 작가의 글이 주는 엄숙주의에서 비롯된다. 웃음기 쏙 뺀 그의 글은 단정하다 못해 서릿발처럼 엄격하다.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은 작가 개인의 자서전적 성격이 짙은 산문집인 까닭에 작가의 성장 배경과 소설가로서의 꿈과 희망, 문학에 대한 작가의 소신, 그리고 소설가인 작가의 눈에 비친 우리 사회의 모습 등 다소 주관적인 이야기가 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독자층으로부터 공감을 득하는, 말하자면 작가 개인의 사생활이나 개인적 소신이 객관적으로 평가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까닭은 작가의 글에서 느낄 수 있는 진정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컨대 작가의 부친이 탈곡기에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잃고 절망한 나머지 크지 않은 논을 처분하여 중고 트럭을 샀고, 모친과 함께 행상에 나섰다. 옷과 신발, 그릇, 잡화, 닭, 청과 등을 팔고 다녔는데 장사 수완이 없었던 터라 결과는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이를 두고 작가는 "절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절망하지 않은 사람처럼 살아왔다"고 썼다. 십여 년의 트럭 행상을 접은 후 조경업체 날품팔이로 칠팔 년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아버지는 전지작업을 하기 위해 높은 사다리에 올랐다가 떨어져 크게 다쳤고, 수술을 하기 위해 마취실 입구에서 섰을 때 아버지의 떨리는 손을 잡았던 기억을 들려준다.

 

"당신의 손이 내 손안에서 어린 새처럼 떨었다. 당신의 두 눈은 이미 갈쌍갈쌍했다. 마취사가 나가라고 할 때까지 온 생애인 듯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인 듯 다시는 그럴 수 없는 것처럼 한 번도 그런 적 없는 것처럼 아버지의 손을 쥐고 있었다. 당신의 손가락 하나가 내 가슴속에서 오래도록 영글어 내가 되고 소설이 되었음을 말해주고 싶었다." (p.79)

 

그의 또 다른 산문집 <다정한 편견>을 읽었을 때도 그랬지만 글을 읽다 보면 지금은 쓰지 않는 낯선 단어들로 인해 책을 덮고 사전을 뒤적여야 하는 순간들을 종종 맞게 된다. 책 한 권을 읽기 위해 국어사전을 뒤적였던 건 대학 시절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을 읽은 이후 손홍규의 산문집이 유일하지 싶다. 어쩌면 우리는 잊혀가는 한글을 되살리려는 노력도, 그런 어휘를 사용함으로써 작가 개인에게 미칠 수도 있는 불이익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의지도 점차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손홍규의 가치는 그 지점에서 발화된다.

 

"같은 낱말이라 해도 사전에 있을 때보다 살아 있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때 아름다운 이유 역시 그 낱말을 발음하는 이의 사연이 담겨서라는 걸 뒤늦게 깨달으면서 정작 내가 흉내 내야 했던 건 할머니의 말투와 어휘가 아니라 당신이 세계를 바라보던 방식, 고달프고 끔찍하며 비참했으나 누구보다 낙관적이었던 당신의 태도였어야 한다는 후회가 찾아왔다." (p.45~p.46)

 

어린 시절 작가와 내내 같은 방을 쓰다 그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신 할머니, 고모의 죽음, 작가의 대학 등록금을 위해 팔아야만 했던 소, 대학시절의 문학 동아리 활동과 파란만장했던 대학 생활과 군대 시절의 기억, 터키 이스탄불에서 만난 '야샤르 케말' 등 그가 절망 속에서 고드름처럼 키워온 문학적 소양은 이 겨울의 한파처럼 매섭고 눈물겹다. 이십대 후반까지 농민이 되기를 꿈꿨던 그가 갑오농민전쟁 사료를 보면서 문득 깨달았다는 '형님들의 서글픈 진심'. 농민 따위는 되지도 말고 생각도 말라며 윽박질렀던.

 

"글을 쓰는 시간보다 아직은 글을 읽는 시간이 많은 것 같다. 내가 글을 읽는 이유는 영감을 받기 위해서고 영감이 필요한 이유는 글을 쓰지 못해서다. 글을 쓸 수 없는 시간들을 보내고나면 삶의 일부를 낭비해버린 듯 허탈하기까지 하지만 좋은 글을 읽게 되면 외려 과분한 보상을 받은 것처럼 송구하기까지 하다." (p.303)

 

바람이 차다. 작정한 듯 불어오는 바람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을 오래 기억하라고 다그치는 듯하다. 인간은 절망을 딛고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지만 때로는 절망 앞에서 무릎이 꺾여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는 경우도 흔히 보지 않던가. 시가, 소설이 희망을 말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켜켜이 절망이 쌓일지언정, 마음을 다쳐 오래도록 그 자리에 머물지언정 우리는 끝끝내 그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제 더는 슬픔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라는 작가의 다짐, 그 문장을 읽는 우리도 다시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지금은 다시 희망을 말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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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송년 모임이 빈번한 요즘, 그래도 과거에 비해 하나 나아진 게 있다면 2차, 3차 자리를 옮겨가며 끝없이 이어지던 음주문화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술은 배제한 채 음악회만 관람하는 것으로 송년모임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고, 원하는 사람만 모여 산을 오르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변화가 긍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부어라 마셔라 하던 무분별한 송년모임이 사라진 까닭에 자영업자들의 타격은 아무래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술이라면 질색을 하는 나로서는 이런 문화가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한 해를 조용히 되돌아보고 다가올 한 해의 계획과 새로운 다짐을 하는 데 반드시 술이 있어야만 하는지 의심스럽기도 하고 말이다.

 

2018년의 출판계에서 유시민 작가의 <역사의 역사>가 '2018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것은 참으로 획기적인 일이 아닌가 싶다. 물론 여러 방송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였던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던 게 사실일 테지만 무엇보다 작가로서의 그의 역량이 없었더라면 그와 같은 일은 처음부터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런 면에서 그의 지적 소양과 안목을 독자로서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역량이 빛나면 빛날수록 이를 시기하는 사람들도 많아지는 건 인지상정, 며칠 전에 했던 그의 발언도 그런 측면에서 기인한 게 아닌가 싶다.

 

대통령에 대한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의 지지율 격차에 대해 '자기들은 축구도 봐야 되는데 여자들은 축구도 안 보지, 롤도 해야 되는데 여자들은 롤도 안 하고 공부하지, 모든 면에서 우리가 불리해'라고 하면서 20대 남성들의 처지를 위로했던 발언인데 보수 언론과 유 작가를 시기하는 측에서는 '옳다구나' 싶었던지 아무것도 아닌 발언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작가는 사실 이 발언을 농담조로 한 듯 보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는 사실(fact)에 가깝다. 오죽하면 고교 진학에 있어서도 남학생을 둔 학부모는 남녀공학보다는 남자고등학교를 월등히 선호할까. 교육문제는 대개 엄마들이 주관하게 마련인데 이는 곧 전적으로 엄마의 의견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남학생들은 이성 친구를 사귐에 있어 이성을 상실할 정도로 중독되는 반면 이성 교제를 하는 여학생들은 적어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은 다 처리하는 편이다. 여학생들은 적어도 눈이 뒤집히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생물학적 측면이 강하다. 더구나 롤처럼 순발력을 요하는 게임에서는 여성보다는 남성이 두각을 나타내게 마련이고 어떤 분야를 잘한다는 건 중독으로 진행될 위험성이 크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을 사실이라고 증명하는 일과 거짓을 사실이라고 꾸미는 일 중 어떤 것이 더 어려울까? 당연히 전자가 어렵다. 최순실의 태블릿PC가 최순실 것이라고 증명하는 일도 어려웠거니와 사실로 밝혀진 지금도 이를 믿지 않으려는 자들이 여전히 횡행하는 걸 보면 그런 측면을 여실히 짐작할 수 있다. 그 자체로 사실인 것을 사실임을 증명하려 한다는 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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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 - 오지은의 유럽 기차 여행기
오지은 지음 / 이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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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의 분단 70년.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과 북은 급격히 가까워진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사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태어난 이후 단 한 번도 북한 땅을 밟아보지 못했기에 마치 동아시아의 작은 섬처럼 살아왔던 게 사실이다. 그게 뭐 불편하다거나 불행하다는 현실 인식도 없이 해외로 나갈 때는 으레 비행기나 배를 이용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 여겨왔다. 그러나 남과 북의 정상들이 몇 차례 회담을 하고 냉랭했던 분위기가 점차 풀리면서 우리는 기차를 타고 머나먼 이국땅을 밟아보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것이 비록 언제가 될지 기약은 없지만 기차를 타고 떠나는 먼 나라로의 여행을 우리는 비로소 현실에서 꿈을 꾸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오지은의 유럽 기차 여행기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는 조금쯤 특별하게 읽혔다. 시적인 가사로 리스너들의 사랑을 받는 뮤지션이자, 자신의 마음을 가감없이 드러낼 줄 아는 작가, 오지은. 나는 예전에 읽었던 그녀의 에세이 <익숙한 새벽 세 시>를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나는 그 기억으로 인해 이 책을 손에 잡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낡은 기차를 타고 여행했던 어렸을 적 기억과 몸으로 기억되는 편안한 진동이 책을 통해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마음으로 비행기표를 샀다. 그냥 잘 쉬고 싶다. 그냥 신기해하고 싶다. 기차를 타고 알프스 한가운데를 달리고 나폴리에서 피자를 먹고 싶다. 그래도 될지, 내게 그런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건 오늘 내가 한 생각 중 가장 멍청한 생각일 것이리라.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 (P.12)

 

작가는 기차를 타고 오스트리아 빈을 출발한다. 구석에 파묻혀 있는 걸 좋아하면서 또한 여행을 좋아한다는 작가는 그래서 자신의 삶이 아이러니라고 말한다. 아이러니와의 계속되는 싸움이라고. 일상을 전투적으로 대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작가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과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가는 모습을 잊기 위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 우리는 두 가지 상반된 마음 중 하나를 선택하며 중립이란 없는 아슬아슬한 삶을 살아가게 마련이지만 그렇게 양 극단을 살아간다는 게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른다. 우리들 중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일상은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게 전부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의 우울이란 그저 게으른 자의 사치쯤으로 여기면서.

 

"기차는 산의 모양을 따라 둥글게 달린다. 산의 덩치는 점점 커지고 등줄기는 정연히 서 있는 군대의 그것 같다. 너무 가팔라서 눈도 쌓이지 않은 돌산에 눈보라가 친다. 그 아래 소나무는 하는 수 없이 눈으로 새 옷을 입었다. 오스트리아의 알프스." (P.43)

 

책의 두께는 문고판처럼 얄팍하다. 기차를 타고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약한 진동에 몸을 맡긴 채 급할 것 없이 즐길 수 있는 그 정도의 두께. 책을 읽다 보면 자신의 어깨에 실린 삶의 무게도 저절로 가벼워지는 것만 같다. 삶의 고독은 모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가벼움이다. 책임이 없다는 건 고독하다는 말과 진배없다. 그러므로 삶의 무게로부터 달아나고 싶다는 건 어쩌면 단순한 응석일 뿐, 무한한 고독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기차 여행은 때론 아슴아슴 멀어져가던 기억을 눈앞으로 소환한다. 일상에서는 슬몃 눈을 감거나 일부러 외면했을 기억들. 돌이켜보면 별것도 아닌 일들이 삶의 중요한 순간으로 다가온다. 여행은 그렇게 우리의 가치 체계를 뒤흔든다. 단단하기만 했던 신념들이 하나둘 무너질 때의 쾌감은 여행이 주는 또 다른 축복이다. 일상에서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을 것들. 그런 것들이 한낱 허접쓰레기처럼 변하기도 한다. 나는 이따금 그런 순간들을 경험한다. 영혼이 부활하는 순간.

 

"나에게는 병이 있다. 별것 아닌 평범한 우울증이다. 앓은 지 4년 정도 되었다. 어쩌면 더 오래됐을지도 모른다. 이 병을 앓으면 기쁨을 느끼는 감각이 퇴화되는 느낌이다. 아무 음악도 듣지 않고 아무 글도 읽지 않고 아무 것에도 놀라지 않는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미신적인 믿음에 빠졌다. 이 증상을 없애줄 성배가 세계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는 믿음." (P.148)

 

우리는 그런 믿음 하나로 여행길에 오른다. 지금의 일상과 하나 달라질 게 없는 여행이라면 굳이 먼 곳까지 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늘이 희끄무레 어두워지고 있다. 아늑한 우울에 한동안 빠져들고 싶은 날씨. 오지은의 기차 여행기<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는 반어법처럼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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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내일이 성탄절인데 주변 분위기는 너무도 조용하다. 다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라고 생각하는 듯한 분위기. 인터넷도 없고 저작권에 대한 규제도 많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성탄절 전후로 족히 한 달 정도는 전국 어느 곳을 가더라도 캐럴을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 사람들이 빈번하게 오가는 시장통에서도 크리스마스 캐럴은 여지없이 울려 퍼졌다. 게다가 사는 게 팍팍하고 어려워도 집집마다 캐럴 테이프 한두 개쯤은 갖고 있었던 걸 보면 낭만이라는 게 삶의 고통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리는 진통제 역할을 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요즘은 그 시절에 비해 몇 곱절 잘살게 된 건 맞지만 지금처럼 한 해의 끝자락에 서면 캐럴은커녕 다들 죽겠다는 소리만 달고 사니 어찌된 일인지...

 

서민들의 고달픈 현실과 삶의 애환을 보듬고 달래주어야 할 주체가 정치인들인데 되려 없던 분노를 촉발시키는 당사자 역할을 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정치인들을 불신하고 정치를 혐오하지 않을 수 없겠다 싶은 것이다. 그중에서도 민의를 대변한다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며칠 전 인천 송도의 한 버스정류장에서도 국회의원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일이 벌어졌었나 보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여성에게 인천 연수구를 지역구로 하는 자유당 의원이 다가와 인사를 하자 여성분이 "네" 하고 짧게 대답하고는 계속해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러자 "잘 지내시죠?" 하고 말을 이어가는 바람에 대답을 안 하고 있었더니 같은 질문을 재차 물어서 "이번 정부에서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했더니 국회의원이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 침을 뱉더란다. 모욕감을 느낀 여성분이 지금 침 뱉은 것이냐 물었더니 한동안 노려보기만 해서 "지금 저랑 얘기 중에 침 뱉은 것이냐" 재차 물었더니 뱉었다고 답하며 왜 삐딱하게 나오냐고 하더란다. 여성분이 송도 주민한테 뭐하는 짓이냐고 따지자 고소하라고 하더란다.

 

이게 사실이라면 이 자는 시정잡배만도 못한, 인격이라곤 도통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자임에 틀림없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고 정치적 의사를 표출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자신과 뜻이 같지 않다고 해서, 국회의원을 능가하는 권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해서 무시하고 모욕감을 준다는 건 동네 양아치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는 아마도 자유당에서 그런 것들만 학습했나 보다. 그가 옆에 있다면 가래침이라도 뱉어주고 싶다. 그와 똑같은 사람이 될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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