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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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정재승 교수의 <열두 발자국>은 올해 대학을 졸업한 조카에게 선물했던 책이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그때 책의 목차만 보고, 본문은 읽지도 않은 채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조카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과 함께 도움이 될 만한 책이라며 일독을 권했었다. 내가 먼저 읽고 권하는 것처럼. 인간의 행동이란 이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알량한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또는 한 줌 권위를 지키기 위해 별 필요도 없는 수고를 감수할 때가 있다. 인간의 의사결정은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지는 걸까?

 

뇌과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의 의사결정, 창의성, 놀이, 결핍, 습관, 미신, 혁신, 혁명 등 인간의 다양한 행동과 그것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을 통해 인간을 다각도로 이해하려 하고 있다. 물론 '이러이러하게 하면 좋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모두에게 적합한 확실한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는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된다면 각자의 성향에 맞는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인간의 숲 속으로 들어가 인간의 본질과 대면하기 위해서는 수만 발자국의 탐험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제 겨우 뗀 열두 발자국은 그 첫걸음이라 하겠지만, 기꺼이 과학자들과 함께 탐험에 합류해 주세요. 우리가 당연하게 믿고 있던 사실들이 전복되는 유쾌한 경험을, 통념과 익숙한 상식의 관성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겁니다." (p.12 '프롤로그' 중에서)

 

예컨대 선택지가 많은 상황보다는 더 적은 선택지 하에서 소비자의 구매율이 높게 나타난다거나, 작금의 세대가 정답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성장한 까닭에 결정장애를 앓는 사람이 많아졌다거나, 결핍을 모른 채 성장하여 지적 호기심을 느껴보지 못했다거나 하는 것들은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물론 사회 전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의 합의가 전제된 상태에서 긴 시간에 걸친 점진적인 개혁이 필수적이겠지만 그러자면 구성원들의 집단지성이 한 단계 더 성숙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정답을 찾는 교육이 아니라, 좋은 문제를 정의하는 교육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정해진 답을 남들보다 먼저 찾는 교육이 아니라 나만의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해답을 제시하는 능력이 더 존중받아야 합니다. 높은 수준의 수학적 추론을 가르치고, 틀에 박힌 언어교육을 하는 게 아니라 언어교육이 곧 사고와 철학 교육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242)

 

저자는 개인의 좋은 의사결정에 주목할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놀이란 무엇인지, 우리는 왜 미신에 빠져드는지, 창의적인 사람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와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등 우리가 그동안 궁금해했거나 불안과 공포 속에서 우왕좌왕했던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아하,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치게 되는 경우를 여러 번 경험하게 된다. 물론 대중을 상대로 한 과학서적인 까닭에 다소 피상적이거나 과학적 실험의 결과물을 지나치게 축소해서 전달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인간의 목표가 성공이 아니라 성숙이라면,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습관은 안락하고, 포근하고, 안전하게 우리의 삶을 여기까지 끌고 왔지만, 새로고침이 주는 뜻밖의 재미, 유쾌한 즐거움은 여러분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 줄 겁니다. '내가 지금처럼 10년 살아봤더니 이 삶이 주는 즐거움이 뭔지 충분히 알겠어. 그럼 이제 새로운 삶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해볼까?' 하는 설렘으로 새로고침을 시도해보시면 어떨까요." (p.154)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일자리 행정통계 결과'에 따르면, 영리 기업 가운데 대기업 근로자의 평균 근속기간은 7.4년인데 반해 중소기업은 3.0년에 그쳤다고 한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아주 크다. 좋든 싫든 우리는 첫 직장에서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하며, 경력을 인정받고 이직을 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새로운 공부를 하여 7년을 주기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회사원이라면 더 빈번하게 이직을 준비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크나큰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오랜 습관이 주는 안온함을 포기하고 7년마다 한 번씩 리셋 버튼을 눌러야만 한다. 생존을 위해서.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종종 이유도 없이 멍해질 때가 있다. 어디가 아프거나 탈이 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게 멍한 상태에서는 나 자신이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지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나는 과거에 내가 간절히 원했던 모습도 아니요, 같은 모습으로 여러 해 유지해온 것도 아닌 까닭에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은 무척이나 생경하다. 게다가 내 삶의 끝이 어디쯤인지 알 수 없으니 나는 지금 삶의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지도 가늠할 수 없다.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면서도 도통 모르는 것 투성이이니 때로 멍해지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인간에게 편집, 검색, 빠른 모드 전환 등 스마트폰적인 사고를 하는 시간과 책을 읽고 오래 생각하고 멍 때리면서 사색하는 시간 사이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이 균형이 내 삶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채우는 역할을 했는데, 인생 몰입 기술은 이균형을 깨뜨릴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제 매 순간 '인생 내비게이션'을 켜고 세상을 살아가야 할 테니까요. 내 삶을 다양한 모드로 전환하면서 원하는 정보는 빨리 얻고 실수할 확률은 좀 더 줄어들겠지만, 깊이 사색하고 오래 성찰하는 삶과는 좀 더 멀어지게 될 겁니다." (p.280)

 

저자는 이 책을 읽는 '젊은이들의 인생이 '탐험의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길 진심으로 응원'한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에 자신만의 지도를 그리고, 놀이를 통해 더 나은 대답을 찾아가며, 상상을 현실로 만들려고 하는 의지와 노력으로 혁명을 일구어가며, 사려 깊게 준비한 탐험가의 자세로 성취를 이루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 모든 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순간순간 자신을 인지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지도 모른다. 읽지도 않고 짐짓 읽은 체한 게 부끄러워 뒤늦은 독서를 한 나처럼 무작정 미루거나 버틸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든 일단 부딪혀보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마다 해결책을 생각하는 그런 다이내믹한 삶을 살아가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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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유튜브가 대세라고는 하지만 블로그에 오랫동안 길들여진 나는 영상이나 사진을 통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런 매체보다는 조금 구닥다리 느낌이 들지언정 따스한 정감이 흐르는 글을 읽는 게 훨씬 더 편하고 기분이 좋다. 물론 글을 읽는다는 것 자체는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사진이나 영상을 보는 것에 비하면 괘나 까다로운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성스레 읽었던 글은 자신의 기억 속에서 몇 번이고 끄집어내어 되새김질하듯 곰곰 음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순전히 주관적인 판단이겠지만 말이다.

 

블로그를 오래 하다 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겪게 된다. 생각지도 못한 괜한 오해를 사기도 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누군가가 입에 담지도 못할 비난이나 욕설을 담은 글을 내가 쓴 글에 댓글로 달기도 하고, 나로서는 문장의 해석조차 불가능한 댓글을 읽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럴 때 내가 대처하는 방법은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 못 본 척 넘기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별 이상한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어서 왜 자신의 댓글에 답을 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더러 만나게 된다.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논쟁이나 토론은 상대의 수준이 나와 엇비슷할 때 가능하다. 예컨대 대학생과 세 살배기 아이는 토론의 상대가 될 수도 없고 정상적인 토론이 가능하지도 않다. 댓글을 다는 상대방이 나에 비하면 세 살배기 아이처럼 지적 수준이 낮다고 깔아뭉개려는 게 아니다. 상대방이 보기에 나의 지적 수준이 한참 어리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터이다. 내가 답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그렇기 때문이구나, 하고 쿨하게 넘어갔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아무튼 괜한 오해나 시비는 없었으면 한다. 내가 쓴 글을 제발 읽어달라고 강권한 적도 없고, 댓글을 간청한 적도 없으니 얼굴도 모르는 서로가 감정을 가질 필요가 무엇이겠나.

 

푸근한 겨울 날씨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덕분에 미세먼지로 인한 자발적인 감금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말이다. 추위가 몰려오더라도 맑은 하늘을 보고 싶다. 이래저래 우울한 주말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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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우화
류시화 지음, 블라디미르 루바로프 그림 / 연금술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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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한파가 주춤 물러나자 그 틈새를 비집고 미세먼지가 스며들었다. 그래서인지 며칠 전만 하더라도 청명하던 하늘은 운무가 내려앉은 듯 흐릿하기만 하다. 뿌옇고 답답하기만 한 시야. 과학이 발달할수록 우리네 삶의 질이 점점 나아져야 마땅하거늘 나아지기는커녕 되레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걸 보면 아이러니도 이런 아니러니가 없는 듯하다. 편하게 숨 쉬고 걷고 싶을 땐 언제든 걸을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간다는 건 어찌 보면 삶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일 텐데 말이다.

류시화의 우화집 <인생 우화>에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위기 대처법'이라는 제목의 우화가 실려 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 헤움. 마을 사람들은 긴장과는 거리가 먼 일상을 향유한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강둑이 무너져 마을은 물에 잠겼고 위기를 인식한 사람들은 모두 대피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베렉을 비롯한 현자들은 농사조차 짓지 못하는 다른 지역들을 생각할 때 이것은 위기가 아니라 신의 축복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의회에서는 '위기'라는 단어 사용을 금지하고 '축복받은 환경'으로 부르기로 결정했다. 홍수로 물고기를 잡지 못해 안식일에 생선을 먹지 못할 위기에 처하자 현자들은 밀가루로 붕어빵을 굽기 시작하고 식탁으로 뗏목을 만들었다. 그러나 금요일 아침 마을에 가득 찼던 물은 모두 사라졌고, 현자들은 마을 사람들의 비난을 잠재우기 위해 지금이 오히려 위기 상황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전통이 되어 오늘날에도 헤움 사람들은 잠재된 위기 상황에 대비해 붕어빵을 먹고, 식탁으로 만든 뗏목 위를 걸어 회당에 온다고 한다.

 

현실에서는 도무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이 짧은 우화 한 토막을 읽는 독자들은 어쩌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예컨대 나라 살림을 돌보고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위정자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당선을 위해 위기를 획책하거나 위기 상황에서 축복이라고 우기는 경우는 너무도 흔하지 않던가.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 북한 군부와 접촉하여 돈을 주고 위기 상황을 조장하려 한 것이나 가뭄이나 홍수를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4대강 사업을 진행시키는 등 우리는 헤움의 현자들이 했던 어처구니없는 짓거리를 현실에서 너무도 자주 목격해오지 않았던가 말이다. 말도 안 되는 듯한 이러한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실로 크다.

 

"경전, 철학서와 함께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책 중 하나가 우화집이다. 우화가 인간 삶의 허구를 꿰뚫으며 진실과 교훈을 던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헤움 마을의 주인공들을 따라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문득 우리가 사는 세상이 헤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가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혹은 우리의 공동체가 그렇게 할 때, 헤움 사람들의 문제 해결 방식과 큰 차이가 없음을 알게 된다." (p.344 '작가의 말' 중에서)

 

우화라는 게 본디 한 지역을 중심으로 오랜 시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인 까닭에 그 출처와 배경을 자세히 알기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입을 거치면서 이야기는 때로 살을 붙이기도 하고, 재미없는 부분은 잘려나가기도 하면서 더욱 풍성해지는 게 아니던가. 이 책의 저자인 류시화 시인은 그의 친구인 레나타 체칼스카 교수가 기분 전환 삼아 읽어보라며 보내 준 짧은 이야기 한 편이 45편의 우화가 실린 우화집을 출간하게 된 계기라고 설명한다. 류시화 시인이 흥미를 보이자 그녀는 150년 전 폴란드에서 발간된 신문과 잡지들까지 뒤져가며 거의 매일 이야기들을 보내 주었고, 류시화 시인은 그 스토리들에 내용과 구성을 덧보태 시인의 방식으로 다시 썼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이 책은 폴란드의 작은 마을 헤움을 배경으로 전해지는 우화들을 시인의 방식으로 재구성한 책이다.

 

"시장에서 노래하는 눈먼 거지는 천사일지도 모른다네. 그리고 그대의 아내는 인생의 수수께끼를 풀 열쇠를 갖고 있을 수도 있어. 신의 계율을 압축하면 이것이라네. 지금 이 순간 눈앞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게." (p.267)

 

세상의 바보들이 우연히 한 장소에 모여 살게 된 곳이라는 '헤움 마을', 그 마을에서 펼쳐지는 여러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우화 속 주인공들이 마치 현실 속 우리의 모습인 양 당혹스러워지기도 한다. 위기에 대응하는 헤움 마을의 바보들이 내놓는 처방이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현자들의 그것인 양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독자는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헤움 사람들의 지혜와 수 세대에 걸쳐 지켜 온 삶의 방식을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며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했다. 그날 이후 헤움 사람들은, 바보들은 자신들이 아니라 바깥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그들을 설득하려 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사실을 알았다." (p.339)

 

제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는 것처럼 우리는 가끔 자신의 삶을 비춰보기 위해 삶의 거울이 되어줄 어떤 것을 절실히 요구하기도 한다. 우화는 그런 게 아닐까. 내가 처한 현실, 내가 마주하는 모든 문제들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우리는 잠시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고, 그곳에서 우리는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삶의 지혜를 선물처럼 한아름 받아 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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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있었던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다양한 듯하다. 민주주의는 원래 그래야만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독재에 가까운 일사불란함을 추구하는 보수 정권의 권위주의에 오랫동안 길들여진 탓에 너도 나도 서로 다른 주장을 펴는 작금의 상황이 썩 익숙하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자신을 진보주의자라 주장하는 측에서도 이와 같은 어수선한 분위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국민들 지지에 의해 정권을 잡았으면 반대 측을 더 강력하게 몰아붙일 것이지 왜 그냥 참고 넘어가느냐는 게 그들의 불만인 것이다. 한마디로 상식의 선에서 합리적인 비판을 하는 세력은 보호한다고 할지라도 '가짜 뉴스'나 퍼 나르며 국민들을 속이기에 여념이 없는, 혹세무민 하는 극우 세력들까지 봐줄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게 그들의 불만인 셈이다.

 

어제 기자회견장에서 있었던 경기방송 김 모 기자의 질문과 태도 논란도 그 연장선상에 있지 않나 싶다. 자신의 소속도 밝히지 않은 채 다짜고짜 질문을 던졌던 것도, 어떤 합리적인 근거나 질문의 구체성도 없이 두루뭉술하게 질문을 던졌던 것은 아마도 그녀가 기자로서의 경험이 짧았거나 그런 미숙한 기자를 대통령 기자회견장에 보낼 수밖에 없었던 지방 방송국의 열악한 재정난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TV를 시청하던 국민들이 분노했던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나 싶다. 김 모 기자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대통령의 구체적인 답변을 기대했던 게 아니라 생방송으로 중계되던 전파에 현 정부를 싫어한다는 자신의 감정과 대통령에 대한 자신의 증오심을 고스란히 담아 보내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어투나 태도에서 분명히 드러났던 것처럼 말이다. 국민들로서는 이것이 마치 노무현 대통령 시절 평검사와의 대화 속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데자뷔를 느꼈을 것이다.

 

보수 야당의 국민을 무시하는 듯한 막무가내식 정치는 비단 중앙 무대에서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외유 추태' 논란을 빚고 있는 예천군의원들이나 이런 와중에도 베트남 여행을 다녀온 경북 도내 시·군 의장단의 행태는 지난 연말 본회의도 불참한 채 베트남 다낭을 다녀온 자유당 국회의원들의 판박이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 군의원 9명 중 자유당 소속이 7명, 무소속이 2명인 걸 보면 그들이 모두 자유당 국회의원들로부터 보고 배워왔음을 잘 알 수 있다. 국민들을 향해 레밍 발언을 했던 충주시 의원도 자유당 소속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토록 뻔뻔할 수 있었던 건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비롯되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보지도 않고 습관처럼 1번을 찍어주던 국민들의 미숙한 선거 태도가 그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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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1 15: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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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2 13: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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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읽는 부모는 아이를 창업가로 키운다 - 4차 산업형 인재로 키우는 스탠퍼드식 창업교육
이민정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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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아들의 중학교 졸업식에 참석했었다. 중학교 졸업은 초등학교의 졸업과는 또 달라서 고등학교라는 험난한 과정이 졸업생들의 앞에 놓인 탓인지 장난기가 묻어나는 순진한 표정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석별의 정을 나누던 8, 90년대의 숙연했던 분위기가 감돌았던 건 물론 아니다. 아이들이 직접 찍은 영상과 가수 뺨치는 노래와 춤 등 다채로운 레퍼토리로 꾸며진 졸업식은 시종일관 흥겨운 분위기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깝게 지내던 아들의 친구 몇몇의 부모님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일단은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고 보자는 아이들의 왁자한 웃음소리와는 달리 부모님들은 이제부터가 고비라고 느껴서인지 표정은 내내 어두워 보였다.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했던 이민정 강사의 <미래를 읽는 부모는 아이를 창업가로 키운다>가 떠올랐다. 나도 이제 수험생 학부모가 되었구나, 하는 실감도 미약하게나마 느껴졌다. 대학 입시에 전력을 기울이는 우리나라의 입시 풍토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데 우리 주변을 둘러싼 과학기술의 발달과 이로 인한 유망 직업군의 변화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자식을 둔 부모로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난감한 노릇이었다.

 

"한때 아이들을 남부럽지 않은 대학에 보내고 싶은 열망이 컸습니다. 아이들을 스카이에 진학시키는 것은 제게 노벨상보다 더 멋진 훈장처럼 보였고요. 거기다 제가 쌓아온 입시교육 커리어를 봤을 때 저는 누구보다 아이들을 잘 가르친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제 뜻대로 된다면 아이의 학업은 탄탄대로를 가겠다는 확신도 있었습니다." (p.23)

 

입시전문가로 명성이 자자했던 저자가 두 딸을 SKY에 보내지 못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큰애는 하나고 진학에 최종 탈락하고 일반고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던 반면 작은애는 특목고에 진학은 했으나 전통무용에 빠져 학업을 등한시했다. 이러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겪었던 특별한 경험이 없었더라면 딸들에게 재수, 삼수를 강요해서라도 SKY를 고집했을 거라고 저자는 고백한다. 그 특별했던 경험은 다름 아닌 명문대를 졸업한 제자들과의 만남이었다. 공부와 내신관리 외에는 딱히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아이들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서야 비로소 자신들의 진면목을 깨달았던 것이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요."라는 고백은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라고 저자는 파악했다. 저자는 정작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성적관리보다 창의력, 자생력, 소통력, 문제 해결 능력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성장했던 과거 시대를 기준으로 아이들을 교육시키려 든다. 예컨대 판, 검사나 의사, 공무원, 선생님 등 과거에 잘나갔거나 지금 현재 으뜸으로 치는 직업을 고집할 뿐이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건 쉽지도 않을뿐더러 그만큼 위험성도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화의 주지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요즘, 아이들이 성장하여 사회에 진출할 때쯤이면 그런 직업군은 아마도 사양산업이 되었거나 인기가 시들한 직업으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미래를 읽는 부모는 아이를 창업가로 키운다>는 모든 아이들이 창업가가 되라고 권장하는 책은 아니다. 다만 스탠퍼드식 창업 교육을 한국에 접목함으로써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고 인생에서 마주치는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한다.

 

"성적으로 아이를 압박하면 무기력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무기력한 학생만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창업교육은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개인에게 내재된 것 또는 개인이 타고나는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누구나 학습하면 도전 의식이 높아진다는 것을 실천하는 교육입니다. 아이의 진로에 창업교육을 넣으면 아이의 미래가 바뀔 수 있습니다." (p.234)

 

스탠퍼드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는 디스쿨(D School)의 교육과정을 국내 교육환경에 맞춰 연구 개발한 교육 프로그램, 스탠퍼드식 창업교육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덩치만 큰 '어른 아이'를 양성하던 기존의 교육방식을 탈피하여 좀 더 넓은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말하자면 스탠퍼드식 창업교육은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는 작업이기도 한 셈이다.

 

"저를 매료시켰던 스탠퍼드 창업교육은 학생들의 생각을 바꾸는 경험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자녀 교육서는 사고가 전환되는 원리만 알려주고,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탠퍼드는 어떻게 해야 생각을 바꿀 수 있는지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알려주는 대로 하면 많은 변화가 나타납니다." (p.249)

 

우리는 어쩌면 아이들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기보다 아이들의 성적을 관리함으로써 자신의 부와 권력을 내보이거나 체면을 유지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들은 무기력한 인생관을 물려받고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어른아이'로 평생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과감히 도전하고 끊임없이 해결책을 찾는 자생력을 길러주는 게 우리 기성세대의 역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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