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금 나아진 감이 있습니다만 요 며칠 대기 중 미세먼지의 농도가 어찌나 심하던지 밖에 나가는 일이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이처럼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과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대개 무기력하고 답답함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그런 시간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육체적으로 오던 무력감이 정신적인 우울이나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번지게 됩니다. 며칠 동안의 길지 않은 시간도 이럴진대 개인의 인생에서 기나긴 좌절이나 실패를 맛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신적 질환을 겪지 않을 수 없을 듯합니다. 아무리 의지가 강하고 훈련이 잘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내가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였을 때 진심으로 바라던 게 있었습니다. 나의 글을 읽는 사람이 그닥 많지 않다고 할지라도(최악의 경우 단 한 명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나의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자신의 가슴에 쌓였던 슬픔을 조금쯤 털어내고 한결 가벼운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에는 기본적으로 기쁨보다는 슬픔의 비율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나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었던 것입니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말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깨닫게 된 것은 내가 블로그에 글을 씀으로 해서 누군가를 위로하기보다는 나에게 더 큰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글쓰기의 효능은 본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몇 가지 나름 결심하였던 게 있었습니다. 내 블로그를 절대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과 내 능력에서 벗어날 정도의 과한 이웃을 맺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나는 나와 이웃을 맺었던 분이 한동안 나의 블로그를 방문하지도, 나의 글을 읽지도 않는 듯 보이면 이웃을 취소하곤 합니다. 이웃 한 분이 취소됨으로써 나에게 이웃을 신청하였던 다른 분(말하자면 이웃 대기자)을 새로운 이웃으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물론 친구처럼 지내는 인터넷 서점의 개인 블로그는 그렇지 않고, 소위 sns라고 불리는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를 그렇게 유지한다는 뜻입니다. 가급적이면 나는 이웃 블로거의 글을 빼놓지 않고 읽어보려 애쓰고 있고, 그들이 현재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충분한 시간을 들여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내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새해가 되면 늘 그렇지만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습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다 보니 주말 휴일이 아니면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나를 되돌아볼 잠시의 짬을 내기도 힘듭니다. 가끔씩이라도 나의 글을 읽거나 나의 블로그에 입장하여 잠시 머무르는 분이라면 이 기회를 빌려 그들 모두에게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고 싶습니다. 마음이 울적할 때는 아주 가끔씩 하늘을 보는 것처럼 나의 블로그를 되돌아볼 필요도 있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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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마음으로 - 이슬아의 이웃 어른 인터뷰
이슬아 지음 / 헤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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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만 있다면 우리는 주변에서 언제든 감동의 서사를 만나볼 수 있다. 어떤 OTT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생생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주변 어디에든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이웃이나 주변 사람들이 건너온 삶의 서사에 그닥 관심이 없을 뿐이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바쁜데...' 하는 핑계는 곧바로 다른 이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미처 몰랐던 진실 하나는 무관심은 전염력이 매우 강한 까닭에 나로부터 출발한 무관심이 나 하나로 그치지 않고, 삽시간에 주변 사람 모두에게 전염되어 결국에는 나의 삶 역시 주변 사람들의 관심에서 한없이 멀어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주변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쏟고,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돌본다는 건 결국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돌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책을 시작하며 적었다. 나는 오랫동안 이 일을 하며 당신을 기다려왔다고. 이것은 1958년생 김한영 씨의 문장이다. 한영 씨는 작가 양다솔의 엄마이자 나의 친구다. 한영 씨 입에서 흘러나온 이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때 왜 그렇게 가슴 저릿했는지 모르겠다. 어떤 어른들이 생각나서 그랬을 것이다. 오랫동안 이 일을 해왔다는 말 옆에 당신을 기다려왔다는 말이 이어진다. 짧은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지만 긴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다. 한 번의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지만 매일 반복되는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세월이라고 문득 생각한다."  (p.282~p.283 '에필로그' 중에서)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집 <새 마음으로>를 읽는 내내 '나는 참 무정한 사람이구나. 주변 사람들의 삶에 도통 관심이 없으니...' 하는 생각과 반성이 이어졌다. 나란 인간이 본디 그렇게 무정한 사람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 기차가 주요한 이동수단이었을 때, 나는 옆 자리에 앉은 처음 보는 승객과 언제나 다정한 인사를 나누었고, 그들이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때로는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짧은 편지와 함께 보내주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부터 나는 어쩌면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줄여갔는지도 모른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는 핑계와 함께.


"인숙 씨는 자꾸자꾸 새 마음을 먹으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새 마음, 새 마음,, 하고 속으로 되뇌인다. 약한 게 뭘까. 인숙 씨를 보며 나는 처음부터 다시 생각한다. 인숙 씨의 몸과 마음은 내가 언제나 찾아 나서는 사랑과 용기로 가득하다. 그에게서 흘러넘쳐 땅으로 씨앗으로 뿌리로 줄기로 이파리로 열매로 신지 언니에게로 나에게로 전해진다."  (p.105)


인터뷰집을 선호하지도 않는 내가 이슬아 작가의 <새 마음으로>를 단숨에 읽을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인터뷰 대상이었던 인터뷰이의 면면이 내 주변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작가가 인터뷰 대상을 선정함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듯하다. 농업에 종사하는 동료 작가의 부모님이나 아파트 청소 노동을 하시는 작가의 외할머니, 작가가 직접 책을 만들어봄으로써 인연을 맺게 된 출판계 종사자와 어느 곳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수선집 사장님 등 작가가 꾸준히 인연을 맺고 만남을 지속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굳이 인터뷰를? 하고 의문을 가질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그들의 얼굴만 겨우 알고 있을 뿐 그들이 지나온 삶의 서사는 전혀 알지 못한다. 어쩌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게 더 적당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이영애 사장님이 주인공인 영화의 끝을 상상하고 있다. 스크린이 어두워지고 그 위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인생이 바라던 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던 이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떠오를 것이다. 대전의 가난한 팔남매들, '주'자 돌림 형제들과 '영'자 돌림 자매들의 이름, 공장에서 만난 오야와 시다들의 이름, 영애와 상경한 고향 여자애들의 이름, 하꼬방에서 함께 자취한 친구의 이름, 재단사들의 이름, 샘플사 직원들의 이름, 남편의 이름, 남편과 사랑을 했던 여자의 이름, 시어머니의 이름, 자식들의 이름, 며느리들의 이름, 손자들의 이름... 그리고 찬무 할아버지의 이름도 거기에 있다."  (p.272)


매섭게 춥던 날씨는 조금씩 풀리고 있다. 우리 사회도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시간의 알맹이엔 저마다의 사연이 익어가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시간의 속살에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언젠가 나의 삶도 맥없이 내동댕이쳐질 것이다. 누군가 곁에서 들어줄 이가 없어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오늘은 그의 곁에서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그렇게 길고 긴 이야기를 들으며 밤을 꼴딱 새워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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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비가 조금 내렸는지 도로는 젖어 있었다. 도시인의 피로를 닮은 어둠이 새벽녘까지 길게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여느 날처럼 걸음을 옮겼다. 산등성에 오르자 주택가 어둠으로부터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 엊그제 내린 눈이 녹지 않은 채 얼어붙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가사각 경쾌한 소리를 냈다. 낙엽이 쌓인 곳을 밟을 때는 저벅저벅 둔탁한 소리가 나는 것에 비해 얼룩덜룩 잔설이 쌓인 등산로를 지날 때면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곧추선 서릿발을 밟는 듯한 쾌감이 찌릿찌릿 전해졌다.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미끄러운 등산로 탓인지 산을 오르는 등산객은 많지 않았다. 작심삼일도 한참이나 지났으니 새해 계획으로 운동을 결심했던 이들도 이제는 적당히 쉴 때가 되긴 했다.


오늘은 윤석열을 비롯한 내란 혐의 피고인 8명에 대한 결심 공판이 있는 날이다. 지난주 금요일에 있었던 결심 공판에서 있었던 변호인들의 낯 뜨거운 '침대 변론'으로 인하여 구형도 하지 못한 채 오늘로 연기되었던 바, 내란 수괴인 윤석열이 법정에서 꾸벅꾸벅 졸거나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는 모습을 오늘 다시 보아야 한다는 게 영 마뜩지 않지만, 나라와 국민 모두를 사지로 몰았던 내란 수괴에 대한 죄과를 묻기 위해서라도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요즘 유튜브에 올라오는 영상을 보노라면 윤석열을 지지하거나 동조하는 사람들이 가끔 눈에 띈다. 지능이 낮은 건지 아니면 슈퍼챗을 받기 위해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인지 그 진의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지껄이는 소리를 들어보면 논리도 없고, 근거도 없고, 단 하나 감정만 있는 듯하다. 그렇게 떠벌여서야 타인을 설득한다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집 <새 마음으로>를 읽고 있다. 인터뷰이의 면면을 살펴보면 응급실 청소 노동자, 농업인, 아파트 청소 노동자, 인쇄소 기장, 인쇄소 경리, 수선집 사장 등으로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들이지만 우리가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는 것 같지는 않은, 말하자면 그들의 노고에 비해 인색한 대우를 받는 인물들이다. 인터뷰의 성패는 인터뷰이에 대한 인터뷰어의 공감 능력에 달려 있다고 믿는 나로서는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가 더없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쩌면 인터뷰 대상자의 선택이 오롯이 이슬아 작가에게 주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너무나 많이 치우고 너무나 많이 헤아리는 그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이순덕이라는 개인이 해내는 촘촘한 일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순덕 님과 함께 목마공원을 한 바퀴 산책했다. 걷다가 순덕 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 팔짱을 꼈다. 27년을 일하면서 이렇게 목마공원에 와보는 건 처음이라고 하셨다. 병원 정문 코앞에 있는 곳인데도 말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다고, 항시 동동거리며 지낸 것 같다고 하셨다. "일 얘기를 이렇게 쭉 한 거는 처음이에요. 얘기를 하니까 행복하네." 순덕 님의 말을 듣고 나는 문득 삶이라는 게 몹시 길게 느껴졌다."  (p.49)


짧은 겨울 해가 떨어지자 부쩍 찬 기운이 돌고 있다. 내일 아침에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어쩌면 이번 겨울에는 단 한 차례도 꺼낸 적 없는 아이젠을 챙겨 나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쨍한 추위를 경험하고 나면 살아 있다는 느낌이 가슴 한가득 차오르곤 한다. 내란 수괴를 지지한다는 둥 컴퓨터 앞에서 헛소리를 늘어놓는 사람들에게도 새벽 산행을 권하고 싶다. 산을 내려올 즈음이면 정신이 번쩍 들지 않을까. 내가 이제껏 멍청한 짓거리로 인생을 낭비하고 있었구나, 하는 반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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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삶을 열다
정혜윤 지음 / 녹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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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물리적으로 접근성이 가장 좋은 물건인 동시에 정신적으로는 가장 먼 물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집과 사무실에 미처 읽지도 못한 책들을 마치 때 지난 과제인 양 떠안고 살면서도 단 한 줄의 문장도 읽지 않은 채 하루를 마감하는 날들이 허다하니 때로는 책이 하나의 벽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럼에도 나를 옥죄는 삶의 난제들이 밤잠을 설치게 할 때면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어느 작가의 글귀들이 잠들었던 신경세포인 양 나를 일깨운다. 책은 그렇게 머릿속에 차곡차곡 순서대로 기억되는 게 아니라 몸속 하나하나의 세포에 잠들어 있는 게 아닌가.


정혜윤 PD의 에세이 <책을 덮고 삶을 열다>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나와 같은 생각이 먼저 들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가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사회의 위태로운 순간을 대비하여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늘 그와 같은 순간에 자신이 읽었던 책을 먼저 호출하고, 불러온 책의 한 대목을 주문(呪文)처럼 외며 마음의 평안을 갈구하곤 한다. 책은 그렇게 우리의 몸 곳곳에 스며들었다가 필요한 순간에 짠 하고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진가를 증명한다. 작가 역시 수십 년간 라디오 프로듀서를 하면서 맞닥뜨렸던 수많은 재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작가를 붙잡아주었던 책의 힘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책을 덮고 삶을 열다>는 작가가 마음으로 읽었던 책들이 오롯이 삶의 현장으로 옮아 와 흔들리는 자신을 지켜주었던 지난 경험의 이야기이자 그와 같은 책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이다.


"원치 않는 재료가 널린 거친 작업장에서 삶을 빚는 나의 작업 방식은 언제부터인가 책을 섞는 것이었다. 슬픔에다 책 큰 스푼 듬뿍, 외로움에도 책 두 스푼, 실망에도 책 한 즙 쭉. 두려움에는 책 한 국자. 쓰디쓴 재료에는 감미로운 책 한 그릇. 나는 온갖 재료에 책을 섞는다. 이렇게 많은 삶의 재료가 있는데 여기서 아무 좋은 것도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할 때도 책을 섞었다. 이를테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하는 말 같은 것. "나중에 나오는 이야기는 더 재미있어요." 나는 음식을 먹듯이 책을 흡수했고 거기서 영양분을 취했고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재료(현실)를 다루는 나의 방식이고 내 인생의 작업 비밀은 내가 책과의 혼합물이라는 점이다."  (P.32~P.33)


작가는 이 책에서 이자크 디네센, 허먼 멜빌, 제프 다이어, 이탈로 칼비노, 배리 로페즈 등 우리가 익히 알 만한 이름들을 호명한다. 그리고 작가는 상상이나 관념으로만 떠돌던 그들 대문호의 작품을 현실에 섞는다. 한겨울 경찰차에 막혀 남태령을 넘지 못하던 농민들 곁을 함께 지켰던 시민들, 무안공항에서 있었던 비행기 폭발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을 돌보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온 세월호 유가족, 눈물이 흐르던 고래의 얼굴을 기억하는 원양어선 항해사들의 이야기는 작가가 읽었던 어느 작가의 문장 속으로 스며든다. '바베트의 만찬', '모비 딕', '그러나 아름다운', '호라이즌'...


"우리는 읽는다. 외롭고 괴롭기에. 우리는 읽는다. 도움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읽는다. 길을 찾길 원하므로. 읽기는 마음속에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가슴에 아름다움이 있는 채로 살아낼 수 있다. 독자인 우리의 삶은 어디에 있는가? 읽은 책 너머, 쓰인 책 너머, 아직 읽히지 않은, 쓰이지 않은 우리의 삶이 있다."  (P.179~P.180)


나는 세상과 동떨어져 무작정 책만 읽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책은 멀리하면서 오직 세상을 향해 달려드는 사람도 좋아하지 않는다. 책을 통하여 조금씩 조금씩 사람의 정상 체온인 36.5도에 이르게 된, 가슴 따뜻한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자면 누군가의 이야기가 나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내 이웃의 눈물과 나의 눈물이 더해져 빛나는 미소가 되었던 경험을 누군가와 나누어야 한다. 나는 여전히 이웃의 슬픈 눈물에 같은 양의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늘 이야기와 연결시킨다. 좋아하는 이야기를 아는 것은 내가 무엇에 영향을 받는지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름다운'은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린다. 나는 이렇게 이야기에 건드려지는 부분을 '존재의 핵심'이라고 부른다. 이 존재의 핵심에 있는 것이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만든다. 마음이 운명과 관계를 맺게 만든다. '그러나 아름다운'은 나를 변하게 할 힘이 있다. 나를 사랑이 넘치는 사람으로 변신시킨다. 나는 슬픈 사람의 아름다운 자아를 사랑한다. 아무리 가슴 아픈 일이 생겨도 아름다움은 여전할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P.90~P.91)


점심을 먹고 집 근처의 공원을 거니는데 한 무리의 비둘기 떼가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하늘엔 푸른빛의 냉기가 흐르고, 공원에는 어제 내린 눈이 가득한데 저 비둘기 떼는 어디에서 오늘의 허기를 달랠 수 있을까. 나는 사라져 가는 비둘기의 잔상을 눈에 담으며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온기를 잃은 겨울 햇살이 눈밭에 부딪혀 부서진다. 산다는 게 저토록 힘든 일인가, 나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바삐 서두르지 않아도 집은 차츰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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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내리던 비는 오후가 되자 눈으로 바뀌었습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쏟아지는 눈발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뒤섞입니다. 참으로 을씨년스러운 날씨입니다. 나는 저녁 약속을 취소한 채 애꿎은 하늘만 원망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오히려 잘됐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습니다. 한두 시간의 만남을 위해 외출 준비를 하고, 막히는 도로에서 시간을 지체할 생각을 하면 그것도 못할 짓입니다. 휴일을 휴일답게 보낼 생각이면 오늘처럼 조용히 집에서 머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날씨를 핑계로 말입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저에게도 이따금 인생상담을 요청하는 후배들이 더러 있습니다. 엊그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옆구리에 서너 권의 책을 들고 나를 찾아온 후배는 새해를 맞아 뭔가 계획을 단단히 세운 듯했습니다. 그가 내 앞에 펼쳐놓은 책은 주식 관련 서적 한 권과 두 권의 자기계발서였습니다. 그는 올해부터 경제 관련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자신이 선택한 자기계발서의 지침에 따라 잘못된 습관도 뜯어고칠 생각임을 거창한 포부처럼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게 이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자 왔음을 밝혔던 것입니다.


저는 사실 자기계발서에 대해 지나치다 싶은 거리 두기를 해 왔습니다. 그런 처지에 새해 들어 자기계발서를 읽고 자신의 낡은 습관을 버리는 것은 물론 멋진 모습으로 탈바꿈하여 꿈에 그리던 이상적인 유형의 자신으로 변모해가고자 하는 후배에게 어떤 조언을 한다는 게 이치에 맞지 않는 듯 느껴졌습니다. 제가 자기계발서를 자주 읽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기계발서의 저자는 대개 사회적으로 성공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책을 읽는 독자는 저자와 비교하여 신체적, 정서적 특징도 다르고, 경제적 형편이나 사회적 환경도 다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의지 등 모든 여건이 다른데 저자가 요구하는 일체의 행동 지침을 따를 수 있다는 것도 회의적이고, 만일 이것을 절반도 이행하지 못했을 때 독자 스스로가 느낄 실망이나 좌절감도 만만치 않을 듯하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게다가 그것을 따라 하기 위해 투자했던 시간들은 또 어떻게 보상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자기계발서는 대개 저자가 이룩한 인생 전체에 대한 노하우이자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 대한 한두 가지의 가벼운 팁이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낮은 등급의 기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인생 전체에서 얻은 수많은 노하우와 기술을 저자처럼 완벽하게 재현한다는 것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모든 조건이 상이한 독자 개개인이 그 많은 기술을 습득하고자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느낌입니다. 그 시간에 차라리 소설 한두 권을 읽거나 철학책 한 권을 읽는 게 낫다는 게 저의 소신입니다. 소설은 적어도 자기계발서처럼 수많은 인생 노하우를 빼곡하게 적어 놓지도 않았고, 기껏해야 한두 가지의 주제를 아주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을 뿐입니다. 그 정도의 인생 지식은 누구나 쉽게 깨닫고 습득할 수 있을 듯합니다. 철학책 역시 많은 그리고 쉽게 깨우치기 어려운 현학적인 지식들이 가득 담겨 있을 듯하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한 권의 철학책에서 하나의 인생 노하우만 습득하여도 성공적이라 하겠습니다.


인생상담을 받기 위해 저를 찾았던 후배는 저와의 상담에서 별 소득도 없이 시간만 허비하지 않았을까 싶어 제가 괜히 미안해졌습니다. 이미 어두워진 하늘엔 찬바람만 스쳐갑니다. 내리던 눈도 그치고 주차장엔 하얗게 쌓인 눈이 오싹한 추위를 느끼게 합니다. 저녁 약속을 취소한 탓에 주저리주저리 말만 길어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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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6-01-11 0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생각은 다 다르니까요. 요즘 나한테 찾아오는 후배는 모두 신세타령 삼아 술 한 병 들고 독거노인이 살고있는 원룸 임대아파트로 찾아오곤 합니다. 그저 오는 사람 난 반갑기만 하지요.

꼼쥐 2026-01-11 17:15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 부럽습니다. 체질적으로 술을 못하는 저는 술 잘 드시는 분이 늘 부럽습니다. 저 역시 술이 잘 받는 체질이었으면 후배들이 술을 사들고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잉크냄새 2026-01-11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계발서 출판업계에 ‘18개월 법칙‘이라는 정설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계발서를 구입하는 사람은 이전 18개월 이전에 자기계발서를 구입한 경험이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겁니다. 자기계발서의 자기위로성 한계라고 할까요.

꼼쥐 2026-01-11 17:19   좋아요 0 | URL
그런 정설이 있군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사실 자기계발서는 우리니라처럼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미래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투어 읽힐 수밖에 없고, 남들이 놀고 있을 때 나는 그나마 자기계발서라도 읽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의 안정제로 작용할 듯합니다. 결과가 어찌됐든... 그 기한이 18개월이라는 게 씁쓸하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