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떠오른 기억은 100% 신뢰하는 편이다. 여기서 '불현듯' 또는 '뜬금없이'가 내 기억에 대한 믿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오랜 시간 고생 고생해서 억지로 떠올린 기억에 대해서는 그닥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얘기다. 적어도 기억 속에 등장하는 다른 누군가와 교차검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나의 기억력에 대한 신뢰는 오직 '문득' 일어난 기억에 대해서만 한정된다. 그런 경향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심해진다. 그런데 문제는 아주 오래전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고 하더라도 그 시각에 추억을 공유할 만한 사람이 곁에 없거나 너무나 기쁜 나머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추억을 공유하려 했다가 되레 퉁박만 받은 채 전화가 끊겨버렸다면 그 또한 서글프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은 더 이상 교차검증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서 그리움의 정점을 찍게 된다. 그리고 궁금한 게 있어도 더 이상 질문을 받아 줄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나는 왜 궁금한 걸 미리미리 질문하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이 더해질수록 그리움은 커진다. 사랑의 크기는 상대방에 대한 궁금증의 크기와 비례한다는 걸 나는 최근에야 알았다. 그런 까닭에 나는 가까운 지인을 만날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사소한 질문이라도 궁금한 게 있으면 그때그때 물어보는 게 나중에 후회를 덜 남기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말해 준다.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궁금한 게 있어도 그 질문을 내일로 미루곤 한다. 내일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걸 종종 잊은 채.

 

흐렸던 하늘은 오후가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었다. 따가운 햇살이 열기를 더하는 동안 사람들은 그늘을 찾아 밀려났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장수 고양이의 비밀>을 읽고 있다.

 

"뭔가를 보는 눈이 어떤 계기로 하루 만에 확 바뀌는 때가 가끔 있다. 그렇게 자주는 아니지만(자주 그러면 무척 피곤할 테죠). 잊어버렸을 때쯤 문득 찾아온다. 긍정적으로 바뀌는 때가 있는가 하면 부정적으로 바뀌는 때도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긍정적인 변화가 훨씬 바람직하지만……" (장수 고양이의 비밀' 중 '하루 만에 확 바뀌는 일도 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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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의 심리학 - 비로소 알게 되는 인생의 기쁨
가야마 리카 지음, 조찬희 옮김 / 수카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지금은 전문직 여성들이 오히려 결혼보다는 비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과거에는 전문직 여성과의 결혼을 남성 측에서 먼저 꺼려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여자가 남자보다 더 똑똑하면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사회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전문직에 진출하려는 여성 숫자도 손에 꼽을 정도로 현저히 적었지만 청운의 꿈을 안고 전문직에 진출한 여성들도 많은 남성들 틈바구니에서 적응한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전문직 여성에 대한 이와 같은 사회적 편견 탓인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여학생들의 선호 학과는 대개 유아교육과나 식품영양학과 등 육아나 요리와 관련되는 학과가 주였다. 말하자면 현모양처를 꿈꾸는 여성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이겠지만 말이다.

 

전문직뿐만 아니라 교직에 진출한 여성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를테면 나이 50이 넘었는데 교장 진급도 하지 못한 채 평교사 신분으로 꾸역꾸역 출근하는 여교사들에 대한 편견은 대단했다. 남편이 사업을 하다 쫄딱 망해서 어쩔 수 없이 출근한다는 둥 아들이 주식에 투자했다가 큰 빚을 졌다는 둥 확인도 되지 않은 소문이 무성했고 그런 뒷담화는 끝없이 계속되었다. 그런 까닭에 집안에 이렇다 할 우환이 없는데도 쉰 살이 되기 전에 서둘러 사직서를 제출하는 여교사들이 참으로 많았었다.

 

일본에서 정신과 의사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가야마 리카의 신작 <나이 듦의 심리학>을 읽는 독자라면 여성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일본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과정을 겪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비혼의 전문직 여성으로 살아왔고, 구체적으로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생각인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처럼 싱글로 사는 여성들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정년과 연애와 나이 듦과 주거와 건강과 자아 찾기와 심지어 패션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독신으로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저자의 솔직한 심정을 곁들여 어떻게 사는 게 현명한지 묻고 있다.

 

"생각해보면, 아무리 과학과 의료기술이 진보한다고 한들 예순은 예순이다. 에순이 열아홉이 될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예순 살이니 저건 못 해'라든가, '이제 예순 살이니 이건 하면 안 돼'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뭔가 시작하고 싶으면 하면 되고, 그만두고 싶으면 하지 않으면 된다. '시작하다'와 '그만두다'는 완전히 반대말이지만, 어떤 것을 택하든 그걸 결정할 권리는 자기 자신에게 있다. 이 사실은 나이 때문에 달라지는 게 아니다." (p.237~p.238)

 

그렇다면 이 책의 독자는 싱글의 여성에게만 국한되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남성 독자로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여전히 순탄치 않은 여성들의 삶에 대해 많은 부분 공감하게 되었고,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적 구별을 떠나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남성과 여성을 무 자르듯 극명하게 편가름 하는 그런 책은 아니다.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반면 이렇게 해라, 강한 어조로 지시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살아보니 이렇더라 그러니 저렇게 사는 게 좀 더 나아 보인다는 식의 부드러운 조언일 뿐이다.

 

"아무리 나이 따위 상관없다고 생각해도, 남자와의 관계 문제에서는 아주 조금 나이를 의식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책임감 없는 남자에게 휘둘려 상처받거나 시간과 돈을 헛되이 써버리기에는 자신의 소중한 현재가 너무 아까우니 말이다." (p.157)

 

저자는 지금 80대의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고 썼다. 함께 사는 건 아니고 저자는 도쿄에서, 저자의 어머니는 홋카이도에서 살고 있는데 '어머니 돌봄 문제는 어떻게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라고 쓰고 있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도시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자식이 시골에 사는 부모님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애만 태우는 현실. 저자는 부모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자책하지 말고 현실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에 관해 고민하라고 조언한다.

 

"여성이 일을 하는 것, 일하고 싶어하는 것은 '미안해할 일'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훌륭한 일'도 아니다. 이는 그저 '당연한 일'이다." (p.44)

 

세월에 의한 관성의 힘은 꽤나 오랫동안 그 힘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과거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동안 유지되어 오던 여성 차별의 문제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법적으로 어느 정도 정비되었다고 할지라도 세월의 관성에 의한 여파가 오래도록 지속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남성들의 머릿속 생각마저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성이 싱글로 살아간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색안경을 끼고 보는 주변 환경과 마주쳐야 한다는 걸 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신경을 쓰고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할까. 그보다는 외면한 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게 정답일지 모른다.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남자나 여자나 나이가 든다는 건 주변보다는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해도 된다는 사회로부터의 암묵적인 허락이자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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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중계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오늘은 이른 새벽부터 축구 중계를 보게 되었다. 한국과 에콰도르가 맞붙었던 U-20 월드컵 준결승전 경기 말이다. 새벽 3시 30분부터 경기가 시작되었지만 웬일인지 나는 중계방송을 꼭 보겠노라 작정한 것도 아닌데 일찍부터 잠이 깨고 말았다. 대략 3시를 전후하여 잠에서 깬 듯한데 억지로 다시 자려고 하니 의식은 점점 더 또렷해지고, 한 번 달아난 잠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새벽에 할 일이라곤 5시 30분에 운동을 나가는 것밖에 딱히 정해진 게 없으니 마땅히 할 일이 없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축구 마니아도 아닌 내가 신새벽에 홀로 일어나 축구 중계를 보는 풍경은 그닥 아름답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일단 중계에 빠져들다 보니 축구 경기는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쫄깃한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하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긴 경기는 언제나 재미있다고 느끼게 마련이지만 말이다. 어떤 종목이든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경기는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기는 경기가 아닐까. 경기는 연장전으로 이어지지 않고 전.후반 본경기로 끝이 났지만, 시간은 내가 매일 운동을 나가는 5시 30분 직전이었고, 부족한 잠으로 인해 무거워진 몸은 '그냥 잠이나 자자' 하는 유혹의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왔다. 그러나 1시간쯤 더 잔다고 해도 피곤이 풀릴 것 같지도 않고, 막상 자려고 누우면 쉽게 잠이 들 것 같지도 않아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운동에 나섰었다.

 

오전에 나도 모르게 잠깐 졸았다. 바깥공기는 조금 탁하고, 가볍고 날카로운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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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 심리학, 어른의 안부를 묻다
김혜남.박종석 지음 / 포르체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 전체에서 하나의 연령대를 콕 짚어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지만 나는 왠지 40대를 생각할 때마다 시골집 마당에 놓인 고무대야를 떠올리게 된다. 건조한 가을 햇살이 쏟아지는 너른 마당 한 귀퉁이에 덩그러니 놓인 고무대야는 주변 풍경에 적절히 녹아들지 못한 채 쓸쓸함만 더한다. 아마도 나는 40대를 줄곧 그렇게 생각해왔는지도 모른다. 인생의 절반을 돌아 반환점에 이른 40대는 30대의 연장선에 놓인 자연스러운 연령대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별개의 연령대를 억지로 이어 붙인 듯한, 왠지 어색하고 툭 불거진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말하자면 나는 인생의 40대를 꽤나 불안한 연령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어느 연령대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 비교 불가의 독특함이 있기에 40대는 그저 인생의 한 과정으로 여겨지지만은 않는 것이다. 김해남, 박종석 두 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쓴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를 읽으며 나는 내내 40대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두 명의 저자 역시 인생의 고비를 넘기는 불안한 연령대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쓰지 않았나 싶다.

 

"우울은 우리 삶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얼굴 중의 하나다. 일이 뜻대로 안 될 때,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를 받았을 때, 자신의 한계를 느꼈을 때 등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 우울감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런 우울은 인생을 살면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좌절에 직면했을 때 이를 내적으로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우울은 고통스럽지만 정상적인 우울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거나 상황이 달라지면 자연스럽게 그때의 우울감도 사라진다." (p.5 'Prologue' 중에서)

 

저자는 이 책에서 인생의 감기와도 같다는 우울의 다양한 얼굴들을 설명하고 있다. 우울증, 조울증, 상실과 애도, 공황장애, 우울성 인격, 번아웃 증후군, 만성피로 증후군, 허언증, 현실 부정, 강박증, 불안장애, 무기력감, 자해, 화병, 섭식장애, 성공 후 우울증, 외로움 등 삶의 과정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의 상처와 그 진단 방법을 설명함과 동시에 어떻게 하면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삶의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 독자들에게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공황장애를 흔히 '짐작할 수 없고 가늠할 수 없는 큰 공포'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무섭다고 생각하면 더 무서운 것이 된다. 그러니 오히려 내가 어르고 달래며 잘 조절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물론 발작이 온 그 순간에 호흡이나 자기 암시 등을 차분히 행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공황장애로 힘들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은 죽음이나 공포,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것들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괜찮아질 거라는 긍정적인 믿음이다." (P.61)

 

겉으로 드러난 상처는 빠르게 치료하면서도 잘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상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치료를 끝까지 미루는 탓에 정신 질환으로 인한 범죄나 자살 등 무고한 생명이 목숨을 잃는 사례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극단적 선택을 뉴스로 읽을라치면 나는 마치 나 자신의 일인 양 마음이 무거워진다. '따지고 보면 사는 게 별것도 아닌데 죽을 만큼 힘들었던 건 도대체 무엇인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고, 한숨이 터져 나온다.

 

""우리 인생의 여정 가운데서 나는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었다네. 제대로 난 길을 몰랐기 때문이라네."라는 단테의 시 구절처럼 우울은 길을 잃은 상태와 비슷하다. 이런 무기력한 상태에서 길을 잃고 두려움과 고통에 짓눌려 헤매고 있을 때, 우선은 그 어두운 안개 속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 그들에게 필요하다." (p.163)

 

우리는 이따금 주변에서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과 마주칠 때 마치 자신이 전문가라도 되는 양 당사자의 의지 운운하면서 질환의 원인이 오직 당사자의 책임인 것처럼 의지박약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다. 우울증은 가뜩이나  자신에 대한 자책과 좌절, 절망으로 아파하는 병인데 곁에서 치료에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불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한다면 환자는 그야말로 물러날 곳이 없는 천 길 벼랑에 서는 꼴이 되고 만다. 예컨대 '우울증에는 밖에 나가 햇빛을 받으며 걷는 게 좋다.'는 식의 조언은 정말 도움은커녕 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밖에 나갈 수 있을 정도의 건강한 사람이라면 우울증에 걸리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상처 입고 두려움에 떠는 연약한 자기를 바라보는 일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눈물 가득한 연민을 느끼며 자신을 바라본 후에야 우리는 그러한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어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도망가지도 숨지도 않고 행복을 찾아갈 수 있는 건강한 힘을 얻게 된다." (p.258)

 

우리가 주변에서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으로 힘들어하는 이를 잘 돌봐야 하는 이유는 당사자의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목적도 있지만 정신질환은 알게 모르게 주변 사람에게도 쉽게 전염된다는 데 더 큰 이유가 있다. 말하자면 나 자신을 돌보기 위한 목적이 크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가 선정한 인류를 괴롭히는 무서운 질병 열 가지 중에서 네 번째'를 차지한다는 우울증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희망의 끈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우울과 건강하게 이별할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작은 희망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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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섣부른 욕심이나 과한 경쟁심이 앞서면 본인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얻는 것은 물론 하고자 하는 일을 오래 지속할 수도 없다. 말하자면 생각만 앞서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 누구나 한두 번의 경험이 있겠지만 어떤 운동이든지 운동을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가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은 '힘을 빼는 방법'인데 이게 어찌나 어려운지 대개는 힘을 빼는 방법만 배우다가 중간에 그만두는 게 일반적이다. 힘을 빼는 요령도 터득하지 못한 채 말이다.

 

글쓰기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좋은 글을 쓰겠다는 생각이 지나치게 강하면 생각은 경직되게 마련이고, 글은 생각만큼 잘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놓은 채 되는 대로 쓰겠다, 생각하면 기대보다 훨씬 좋은 글을 쓰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말하기도 비슷하다. 회사의 프레젠테이션도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몸은 점점 더 굳어지게 마련이고, 달달 외웠던 발표문도 전혀 생각나지 않고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가던 경험,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나마 말은 글과 달라서 말을 매끄럽게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크게 흠이 되는 건 아닌 듯하다. 아침부터 잠자기 전까지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을 맺는 정치인이나 목회자, 아나운서 등은 자신이 했던 말로 이득을 보기보다는 말 때문에 화를 입는 경우가 더 많으니 말이다. 나의 여동생이 모 방송국의 보도국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경험이 있던 터라 아나운서와 기자들의 세계를 조금은 알고 있는데 그들 대부분이 권력층이나 부유층과 접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신도 역시 권력지향적 인간이 되거나 오히려 그와 같은 모습을 보는 것조차 싫어서 오래 견디지 못하는 두 부류로 나뉘는 듯하다. 대표적인 권력지향적 인간형으로 민경욱이나 한선교를 들 수 있겠다. 권력자에게는 최대한 몸을 낮추고 약자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인간형. 권력자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짓도, 어떠한 말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인간성. 그들은 생각을 자유롭게 하기보다는 늘 자신의 욕심이 앞서는 까닭에 듣는 이의 고충은 배려하지 않는다.

 

세월호 사건 소식을 전하면서도 웃는 낯이었고, 고성 산불이 발생했을 때도 대통령이 북한과 협의해 진화를 지시했다며 빨갱이라고 하는가 하면 헝가리 유람선 사고 때도 골든 타임이 기껏해야 3분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대통령의 북유럽 순방도 천렵질에 비유했다. 소위 아나운서 출신의 그가 말 때문에 자신의 정치 생명을 끝내려는 모양새다. 카피라이터 김하나의 에세이 <힘 빼기의 기술>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힘을 빼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줄 힘이 처음부터 없으면 모를까, 힘을 줄 수 있는데 그 힘을 빼는 건 말이다. 친구 하나는 “병원 가서 엉덩이에 주사 맞을 때 말야, 간호사가 ‘엉덩이 힘 빼세요’ 하면 엉덩이에 힘을 빼야 한다는 긴장감 때문에 더 힘이 들어가버린다구”라고 말했다. 쓰고 보니 이 말은 그다지 적절한 예시 같지는 않다. 하여간 힘 빼기의 기술은 미묘한 고급 기술이다." ('힘 빼기의 기술'  중에서)

 

김하나의 글에 비유하자면 민경욱 의원에게 "말에 힘 빼세요." 했더니 말에 힘을 빼야 한다는 긴장감 때문에 더 힘이 들어가버린 형국이다. 그도 역시 힘을 빼는 미묘한 고급 기술은 배우지 못했던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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