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어수선한 하루였다. 아베 신조 주재로 열린 각의에서 일본 정부는 한국을 수출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백색국가'(화이트 리스트) 명단에서 제외하였다. 미리 예견된 일이기는 했지만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의 발표가 전파를 타면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반응도 극도로 격앙되는 듯했다. 일본의 조치를 규탄하고 우리 정부와 기업에 힘을 실어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국민 발표가 있었고, 우리도 일본을 백색국가서 제외한다는 홍남기 부총리의 발표도 있었다.

 

일본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전국을 휩쓸고 있을 때 정치권의 어처구니없는 모습도 몇몇  있었다. 추경에 대한 늦장 심사도 모자라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예결위원장의 모습이라든가 한일 청구권 협정에 개인 청구권이 포함됐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일본 정부의 주장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자유당의 송 모 의원 등 도대체 이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맞긴 맞는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日 수출규제 철회 촉구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일본은 스스로 무덤을 판 꼴이지만 말이다. 이 마당에 자유당도 무덤을 파고 있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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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8-02 2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국가가 위기에 처했는데
소위 국민의 대표라는 이들이
저런 모습을 보이다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송 모 의원은 일본 정부에서
세비를 받는 모양입니다.

국회의원 소환제의 필요성을
몸소 보여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꼼쥐 2019-08-03 13:40   좋아요 0 | URL
그런 자들을 국회의원으로 뽑았던 많은 유권자들도 반성해야 할 일이지만 혹여라도 눈에 콩깍지가 씌어 잘못 뽑았다면 국민이 다시 소환하는 게 맞는 일이지요. 자유당 국회의원들이 기를 쓰고 국민소환제를 반대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듯합니다. 뭔가 켕기는 게 있었던가 보지요.
 
[전자책] 악몽과 몽상 1 악몽과 몽상 1
스티븐 킹 / 엘릭시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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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작가의 능력은 뻔한 스토리를 특별한 이야기로 탈바꿈하는 데 달려 있다. 그런 까닭에 한 편의 추리 소설을 읽고 나면 왠지 허탈한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고작 이런 이야기를 읽으려고 밤을 새웠단 말인가, 하는 억울한 느낌도 들고 말이다. 이를테면 본전 생각이 나는 것인데, 책을 읽는 중간에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데 추리소설의 묘미가 있다. 본전 생각은커녕 오히려 쫀득한 스릴과 꽁꽁 숨겨진 힌트, 그리고 독자의 후두부를 강타하는 대반전 등으로 인해 자신의 선택이 탁월했음을 여러 번 인정하곤 한다. 적어도 그만한 책이라면 밤을 새울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스스로 믿게 되는 것이다.

 

다양한 장르에서 자신의 진가를 증명했던 스티븐 킹은 그의 단편집 <악몽과 몽상 1>에서도 전문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복수는 차갑게 식혀서 먹었을 때 가장 맛있다.'는 스페인 속담으로 시작하는 이 책의 첫 소설 <돌런의 캐딜락>은 그의 소설이 늘 그렇듯 경쾌한 리듬을 타며 천천히 출발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학교 선생님이다. '나'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역시 같은 학교 선생님이었는데 7년 전 당시 엘리자베스는 돌런의 도주 현장을 우연히 목격했고, FBI에서 신문을 받고 증언을 하겠다고도 했다. 말하자면 엘리자베스는 돌런의 도주를 목격한 증인이었던 셈인데 어느 날 저녁 그녀가 차에 타서 시동을 거는 순간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했고, '나'는 홀아비가 되었다. 증인이 사라지자 돌런은 자유의 몸이 되었고, 그의 집 라스베이거스의 펜트하우스로 돌아갔다.

 

"그는 그의 세계로 돌아갔고 나는 나의 세계로 돌아갔다. 그의 세계는 라스베이거스의 펜트하우스였고 나의 세계는 아무도 없는 성냥갑 주택이었다. 그의 세계에서는 모피와 스팽글이 달린 이브닝드레스로 휘감은 미녀들의 행진이 이어졌고 나의 세계에서는 정적이 이어졌다. 그가 회색 캐딜락을 네 대 갈아치우는 동안 나는 점점 망가져가는 뷰익 리비에라를 계속 타고 다녔다. 그의 머리가 은색으로 변하는 동안 내 머리는 그냥 없어졌다." (p.25)

 

'나'는 복수할 기회만 엿보며 돌런의 동선을 수 년째 면밀히 관찰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최종 복수 장소로 결정한 '나'는 네바다 고속도로 관리 공단에 입사 원서를 제출한다. 현장감독 하비 블로커는 40도를 웃도는 사막의 열기 속에서 삽을 들고 펄펄 끓는 역청을 펴는 일을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의 예상을 깨고 악착같이 버틴다. 보다 못한 블로커는 '나'에게 굴착기 운전을 연습하라고 말했다. 여름 내내 굴착기를 운전했던 '나'는 학교로 복귀한 후 이듬해 봄에 네바다 주 고속도로 위원회의 우편물 수신을 신청했다. '나'는 도로 재포장 공사를 의미하는 RPAV만 관심이 있었다.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7월 1일부터 7월 22일 사이에 도로 재포장 공사  일정이 확인되었다. '나'는 도로를 차단하고 우회도로 표지판을 세운 후 한밤중에 도로를 파헤쳤다. 달려오는 돌런의 캐딜락을 도로 아래에 묻을 생각이었다.

 

"그날의 남은 시간은 포효하는 엔진과 작렬하는 태양으로 뒤덮인, 길고 환한 지옥이었다. 케이스 조던 기사는 기어에 모래 덮개 씌우는 건 깜빡해놓고 양산은 제대로 치웠다. 조물주가 가끔 장난을 칠 때도 있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렇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조물주는 특이한 유머 감각의 소유자다. 2시가 거의 다 됐을 때 아스팔트 조각들을 도랑에 모두 처박을 수 있었다." (p.62)

 

'나'는 손에서는 피가 흐르고 체력은 바닥났지만 오직 복수를 위해 악착같이 버텼다. 모든 것은 준비되었다. '나'는 돌런이 타고 올 회색 캐딜락을 기다렸다. 돌런이 지나갈 것이라고 예상했던 시각이 다가오고 나는 도로를 지나는 차량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조바심을 냈다.

 

"막힘없이 보이는 이 길의 저쪽 끝에서 커브길을 돌아 나온 캐딜락은 착각의 여지가 없었다. 머리 위 하늘과 같은 회색이었지만 동쪽으로 굽이치는 칙칙한 갈색 땅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며 도드라져 보였다. 그였다. 돌런이었다. 의구심과 망설임으로 얼룩졌던 기나긴 순간들이 순간, 아득하고 어리석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돌런이었고 나는 그 회색 캐딜락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p.77)

 

우리는 한 치 앞에 펼쳐질 자신의 미래도 모른 채 누군가를 코너로 몰거나 해선 안 될 해코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명한 사람은 '나'로 인해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입지나 않을까 항상 살피고 삼가는 사람일 터,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터무니없이 순항을 할 때 우리는 종종 분에 넘치게 오만해지거나 '나'의 앞길을 아무도 막지 못한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다음 장면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비록 자신의 미래를 낱낱이 예측할 수는 없지만 오만해지는 자신을 스스로 통제할 수는 있다. 불운을 막기 위해 무당을 찾을 게 아니라 탐욕을 버리고 교만을 억제하는 게 자신의 불운을 막는 유일한 부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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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첫날.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하루 앞둔 오늘, 아세안지역 안보 포럼(ARF)이 열리는 태국 방콕에서는 한·일 외교장관의 빈손 담판이 있었습니다.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된다고 할지라도 바로 가시적인 타격이 나타나는 건 아니겠지만 점진적인 타격은 불가피하겠지요. 물론 우리나라 경제만 나빠지는 건 아니고 일본 역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할 듯합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본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해방 직후 처벌하지 못했던 친일 반민족 행위자와 확실히 제거하지 못했던 식민지 잔재를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총리 아베에 의해서 척결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이제이(夷)는 이럴 때 쓰는 고사성어가 아닐지요.

 

우리 민족은 언제나 위기 상황에서 단결하고 어렵다고 하는 위기도 거뜬히 통과하여 왔습니다. IMF 위기 상황에서도 금 모으기에 앞장섰던 것도,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에서 촛불 혁명에 나섰던 것도 한국의 정치인이 아닌 대다수의 국민이었습니다. 우리 국민은 현명하고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해 온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민족입니다. 일본이 자신들의 정치적 속셈을 위하여 우리 대한민국을 쥐고 흔들려하고는 있지만 말입니다.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찜통더위'가 시작된 지 며칠. 열대야에 자다가도 종종 잠이 깨지만 달포만 지나면 또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가을이 찾아오겠지요. 일본이 벌인 경제 전쟁을 거뜬히 극복해나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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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19-08-02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그러리라고 봅니다. 우리는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대통령을 바꾼 민족이잖아요!

꼼쥐 2019-08-02 12:11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전 세계에 우리만큼 현명한 민족이 없지요. 지금 당장은 어려울지 모르지만 잘 헤쳐나가리라 믿습니다.
 
제 인생에 답이 없어요 - 크리에이터 선바의 거침없는 현생 만담
선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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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 보면 아무 말이고 물색없이 툭툭 내던지는 사람을 적어도 한두 명쯤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에 대한 우리들 대부분의 평가는 '도대체 저 사람은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이거나 '도무지 배려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사람이네'와 같은 비난 일색이 아닐까. 그러나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나오는 대로 툭툭 내던졌다고 생각했던 말들도 나중에 곰곰 생각해보면 '쉽게 말한 듯해도 깊은 뜻이 담겨 있었구나'라고 생각될 때가 종종 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말이다. 실없는 소리나 하는 대책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던 사람이 달리 보이게 되는 순간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다만 상대방에 대해 깊이 알 수 있는 순간을 만나지 못했을 뿐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선바의 <제 인생에 답이 없어요>도 그런 책이다. 예컨대 '내가 살고 싶은 인생--> 돈이 많고 여유로움, 주변 사람들 인생--> 돈이 많고 바쁨, 내 인생--> 가난한데 바쁨'과 같은 식이다. 가볍고 쉽게 내뱉은 말인 듯한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고개가 끄덕여지는 폭이 커진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사실이다.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우리네 생각의 관성은 그런 사람을 철저히 무시하거나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네가 뭘 알아?'라는 말 한마디로 단숨에 제압하도록 길들여져 왔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인정하면 안 되는 것이다. 고개가 끄덕여질지라도 그저 속으로만 생각하고 못 들은 체 돌아서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배워왔고, 그런 식으로 살아야만 한다고 가르쳐왔던 것이다. 상대방에게 '꼰대' 소리를 들을지언정.

 

"듣는 사람이 기분 나쁘면 오지랖이다. 상대가 기분 나빠 한다면 조언해주고 싶은 마음을 참는 게 좋을 것이다. 네? 내가 진짜 큰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조언을 해준 건데 어떻게 기분 나쁘게 이걸 오지랖이라고 말할 수가 있냐고요? 저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조언을 한 건데, 앞으로는 참도록 하겠습니다." (p.104 '조언과 오지랖의 차이')

 

과거에는 능히 '4차원'이나 '또라이'라는 별명을 귀가 닳도록 들었을 사람들이 존중받고 누구보다도 인정받는 사회가 되었다.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하거나 단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애써 부인한다고 해도 달라질 건 크게 없어 보인다. 오히려 쿨하게 인정하는 편이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또라이'가 되거나 적어도 '또라이'와 근접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라는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고.

 

"내가 생각하는 1인 크리에이터로서의 성공이란 별것 아니라 그냥 딱 그것만 해도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상태이다. 사실 별것 아닌 게 아니라 엄청난 것이긴 하다. 구독자가 몇 명이니 조회수가 몇이니 그런 것보다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지속할 수 있는 것. 그게 성공이다. 여기엔 경제적으로 성공했다는 의미뿐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며 산다는 의미도 있다." (p.136 '1인 크리에이터로서의 성공이란?')

 

과거와는 달리 요즘 초등학생의 장래희망 순위를 살펴보면 유튜버가 1위를 차지하는 걸 심심찮게 보게 된다. 선생님과 의사는 2위, 3위로 밀려난 지 오래되었다. 그 뒤를 차지하는 게 연예인인 걸 보면 자신의 끼와 재능을 통해 생계를 해결하고, 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 하는 요즘 세대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도 한계는 있다. 아프리카 TV 신생 BJ가 1억 2천만 원 상당의 별풍선 120만 개를 받음으로써 논란의 중심에 섰지만 그 후폭풍도 만만치 않아서 여러 루머와 악플에 시달렸던 것이다.

 

"사랑받으면서도 불안할 때가 있다. 나도 유튜버를 시작하면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아 행복하기도 하고 또 행복한 만큼 불안하기도 했다. 내가 받아도 되는지 모를 것을 받게 되면 불안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불안은 내가 앞으로도 계속 큰 사랑을 받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됨을 알았다. 앞으로도 항상 이런 사랑을 받고 싶으니 불안한 것이었다. 그런 욕심을 버리고 현재에 집중하니 굉장히 행복해졌다." (p.186 '행복과 불안')

 

그렇다. 지혜는 무욕의 다른 말이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제삼자의 시각으로 나를 볼 수 있는 까닭에 지식은 없을지언정 지혜로운 사람은 될 수 있다. 자책과 회한이 그리움의 다른 표현인 것처럼 지혜는 무욕과 쌍을 이루는 말이다. 1인 크리에이터가 된다는 건 겉보기에는 여유롭고 행복한 듯 보이지만 그의 인생관이 지나친 욕심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는 결코 행복에 이를 수 없다. 이와 같은 현상은 다른 직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저자도 말하고 있다. <제 인생에 답이 없어요>의 저자 선바는 분명 별종의 세상을 꿈꾸는 사람일 테다. 그러나 나는 그의 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그는 분명 자신의 분수를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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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마지막 오랑캐
이영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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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6월에 몽골을 향해 떠난 친구가 있다. 여행사를 하면서 한국과 몽골을 수시로 오가던 친구는 KOICA가 진행하는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지난달에 몽골을 향해 떠났다. 3년을 기한으로 낯설고 물선 이국땅에서 타국 생활을 시작한 친구는 이따금 sns를 통해 몽골의 사진이나 소식을 전하고는 있지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왠지 쓸쓸함이 묻어나는 느낌이다. 몽골 생활을 시작한 친구를 생각하며 읽었던 책이 이영산이 쓴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이다.

 

"오랑캐로 태어나 오랑캐의 삶을 살아온 비지아는 만난 지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틈만 나면 몽골 초원과 알타이산을 노래한다. 어느 때는 학자 같고 어느 때는 악동 같지만, 언제나 초원을 가까이 느끼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삶을 꿈꾸는 사내. 이 책은 내가 만나본 최고의 사내, 알타이산의 마지막 오랑캐와 지낸 행복했던 초원 이야기이다." (p.27)

 

이 책은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로 살아온 '비지아'의 눈을 통해 몽골의 문화 전반을 말하고 있다. 물론 몽골의 자연환경이나 문화에 대해 소개하는 글이나 영상 등 몽골을 발견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는 이전에도 많았고 앞으로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제삼자의 눈으로 그 나라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것은커녕 반의 반도 알기 어렵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제삼자의 시각은 늘 신기함과 호기심의 충족일 뿐 깊고 장구한 문화의 흐름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것이다.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는 제목에서 오는 낯선 느낌만 아니라면 꽤나 좋은 책이다. 작가의 유려한 문장도 문장이려니와 오리앙카이족 출신의 비지아로부터 전해들은 그와 그의 친지들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몽골 유목민의 출생에서부터 성장, 사회생활, 결혼과 장례풍습에 이르기까지 총 아홉 개의 장에서 유목민의 일대기를 보여준다. 게다가 저자와 비지아가 함께 여행하며 찍은 몽골의 풍경 사진 역시 이국적인 느낌을 더한다.

 

사실 한 민족의 문화적 성숙도는 그 민족이 가진 물질적 부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한 민족 전체의 통일된 견해가 존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그 등급이 나뉘는 게 아닌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운 사람일수록 바람에 새기는 거'라는 유목민의 풍장(風葬) 풍습은 '바람 속에 살던 삶 그대로 바람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라는 그들의 수준 높은 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유목민들은 조상의 묘를 찾아, 부모의 고향을 찾아 천릿길을 떠나지 않는다. 그들에게 과거는 지나간 시간에 불과하다. 과거는 흘러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초지를 찾고, 새로운 방목을 시작해야 한다. 삶도 죽음도 전쟁의 승리도 실패도 모두 그렇다. 과거를 버리지 못하면 분노와 복수심에 발목이 잡혀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알타이산이 이동한다는 것, 마음속에 성산을 두고 산다는 것은 고향을 몸으로 찾지 않고 마음으로 찾는다는 뜻이다. 유목민의 고향은 바람 속이다." (p.325)

 

'시간관념이 철저하면서도 시간을 붙잡지 않는 것이 유목민의 자세'라고 저자는 쓰고 있다. 그러므로 유목민은 생일도 없고, 그것을 기념하는 잔치도 없으며, 시간은 그렇게 쌓이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노인이 이삿길에 함께하지 못할 정도의 나이가 되면, 죽음을 앞둔 노인 앞에 잘 차려진 음식상을 내어놓고 잔치를 벌인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잔치상의 머리맡에 정좌를 하고 앉은 노인에게 양의 엉덩이 비계를 입에 넣는다. 그리고 걸음마를 막 뗀 어린 손자가 입에 문 양의 넓적다리뼈를 툭 쳐서 비곗덩어리를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으면 비계가 숨길을 막아 노인은 순식간에 죽음을 맞는다고 한다. 유목민으로 살았던 한 사람의 삶은 시간이 지배하지 않는 다른 세상으로 그렇게 이동하는 것이다.

 

저자는 비지아와의 이별에서 자신의 소망을 적고 있다. '신에게서 자유를 찾아오고, 가난에서 돈을 얻었으며, 질병에서 건강을 가져온 인간이, 그리하여 스스로 신이 돼버린 인간이 배타적인 시선으로 그를 보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우리는 대개 우리와 다를 수밖에 없는 타민족의 문화를 그 민족의 절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에 견주어 얼마나 다른지, 얼마나 미개한지, 얼마나 무지몽매한지를 따지고 그 문화를 배척하거나 우리 문화의 아래에 두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까닭에 타민족의 문화를 소개할 때는 으레 우리 문화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것, 과학에 근거하지 않은 주술적인 것 등을 우선적으로 말한다. 그 저변에는 독자들의 일시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그럼으로써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지속적인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상업적 의도가 깔려 있다.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에서는 저자의 그런 의도가 엿보이지 않아 좋았다. 얼마 전에 보내온 친구의 소식은 나담 축제로 도시가 조용하다고 했다. 다들 짐을 싸서 축제가 열리는 시골의 초원으로 떠난 까닭에 혼자서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귓가에도 초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소리가 들려오겠지. '살면서 듣게 될까/언젠가는 바람의 소리를'로 시작되는 가수 조용필의 노래 '바람의 노래'가 생각나는 저녁. 몽골로 떠난 친구도 그곳에서 한 3년쯤 살다 보면 바람 속에 살다간 많은 사람들의 음성을 듣게 될까. 한 점 바람도 없었던 어느 여름날 몽골로 떠난 친구를 생각하며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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