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후유증은 대개 오랜 시간의 운전과 집안일 등으로 인한 온몸 구석구석에서 느껴지는 뻑적지근함과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청소년기의 친척 아이들을 보면서 깨닫게 되는 나이 듦의 우울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몸도 마음도 구겨진 종이처럼 후줄근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일요일 오후. 기름기 있는 명절 음식을 시도 때도 없이 주워 먹은 바람에 뱃살은 1센티미터쯤 불어난 듯하고 더부룩한 속은 무작정 음식을 거부하고 있다. 먹고 눕고, 먹고 또 눕고를 몇 차례 반복하다 보면 몸속 에너지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금세 사라지고 먹은 음식을 소화시키는 데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화창하게 갠 초가을 하늘에서 따가운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선선한 가을바람에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햇살의 열기. 아들은 오늘도 학원으로 향했다. 낮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학원 수업을 받고 오면 내일부터는 또 쉼 없는 학교 수업이 이어질 테고 10월 초에 있는 중간고사를 걱정할지도 모르겠다. 애나 어른이나 삶은 결코 녹록지 않다.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자'가 요즘 젊은이들의 삶의 모토라는데 오늘 하루쯤은 나 역시 해야 할 집안일을 내일로 미룬 채 마냥 뒹굴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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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허리 디스크가 아니다 - 망가진 허리를 재생하는 기적의 내 몸 프로파일링
이창욱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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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의 어딘가를 다쳐서 한동안 아파본 사람은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을 무심히 흘려보내지 못한다. 아무리 관대하고 아량이 넓은 사람도 일단 자신의 몸이 아프면 없던 짜증도 생겨나게 마련이고, 그런 상황에서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을 부리지 않는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비슷하지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중에서도 허리 통증은 고통의 정도를 떠나서 거동의 불편함으로 인해 짜증을 유발하는 가장 대표적인 질병이 아닐까 싶다. 정말이지 허리를 다쳐 한동안 누워 있는 신세가 되면 반송장이나 진배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고, 주변 사람들의 활발함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는 것이다.

 

나 역시 허리 통증으로 인해 고통을 겪었던 적이 몇 번 있다. 대학 시절 조금 높다 싶은 곳에서 뛰어내리다 착지를 잘못하는 바람에 허리를 삐끗하였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통증이 가시지 않아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던 적이 있는데, 과로를 하거나 어떤 일에 신경을 쓰느라 잔뜩 긴장했던 시기에는 여지없이 허리 통증이 재발하곤 했다. 일단 허리가 아프면 의자에서 일어나는 데에도 고통으로 인해 많은 시간이 걸리고, 한 발 한 발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고통이 따르는 까닭에 한쪽 손을 허리에 댄 채 어기적어기적 걸을 수밖에 없고, 계단을 올라갈 때는 그럭저럭 참을 만하지만 계단을 내려갈 때는 정말이지 그 자리에서 딱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 든다.

 

몇 년 전 봄에도 나는 극심한 허리 통증으로 한의원을 찾았던 적이 있다. 전기치료를 비롯한 일반적인 물리치료는 물론 사혈 침 등으로 피부를 찌른 다음 부항기를 흡착시켜 나쁜 피를 뽑아내기도 했다.  한 번 내원할 때마다 기다리는 시간을 포함하여 두 시간 정도가 소모되다 보니 그렇게 버려지는 시간도 아까웠지만 어기적어기적 부자연스럽게 걷는 내 모습이 한심스러워 절로 얼굴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근 한 달 동안의 치료를 견뎌야만 했었다. 이창욱 소마통합운동센터 센터장이 쓴 <당신은 허리 디스크가 아니다>를 읽으면서 나는 나 자신의 생활 습관과 식습관을 꼼꼼히 되짚어보게 되었다.

 

"몸 전체를 파악하고 과거 병력을 관찰하는 일은 어떤 면에서 현재의 치료 진단 결과지를 분석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과거 병력과 평소의 습관을 바탕으로 통증의 원인을 50% 이상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자들이 하는 말 한마디에도 경청하고 통증의 원인을 하나라도 더 찾아내는 것이 치료 계획을 세울 때 첫 번째 할 일이다. '디스크'라는 결과만 초점을 맞추면 절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p.19~p.20)

 

24년 동안 디스크를 집중 연구하며 수천 명의 환자들을 돌봐왔다는 이창욱 센터장은 '디스크'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디스크를 병들게 만든 진짜 원인- 이를테면 환자의 자세, 생활 습관, 식습관 등-을 범죄 프로파일러처럼 꼼꼼히 분석하고 진단함으로써 수술 없이 자연 치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다. 1장 '몸을 프로파일링하라', 2장 '우리는 허리를 너무 모른다', 3장 '틀어진 습관이 당신의 허리를 죽인다', 4장 '문제는 내장기의 압력이다', 5장 '진짜 통증과 가짜 통증을 구별하라', 6장 '요통을 '삭제'하는 기적의 재활 운동법'의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목차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요통' 하면 '디스크'로 연결 짓는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을 비판하면서 대근육만 강화시키는 허리 운동법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한다.

 

"근육을 강화하는 대근육 운동을 하면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쓰는 데는 좋을 수 있지만, 정작 환자들이 원하는 '오랫동안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자세'를 하는 데는 별로 효과가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은 속근육이다. 속근육은 산소가 많이 들어 있는 근육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이 오랜 시간 동작을 수행하게 해준다. 장거리 달리기를 할 때 필요한 근육이 속근육이라면, 단거리 달리기를 할 때처럼 짧은 시간 힘을 쓸 때 필요한 근육이 대근육인 셈이다." (p.246)

 

개개인이 느끼는 통증의 원인은 모두가 다 다를 수 있는데 치료는 대개 '디스크'에 초점이 맞춰진 채 올바른 자세, 운동을 권하게 된다. 저자는 이와 같은 방식을 비판하면서 허리 통증의 다양한 원인과 환자의 잘못된 습관을 나열하면서 이를 수정하고 무너진 몸과 척추의 밸런스를 잡는 방법도 자세히 알려준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허리의 근육은 약해지고 시시때때로 통증을 유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에 맞는 적절한 운동을 병행함으로써 통증을 줄일 수 있다면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디스크는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다. 이 질환은 여러 원인 때문에 나타난 증상이자 결과이기 때문에 통증을 유발하고 악화시키는 원인을 찾아내어 잘못된 습관을 바로잡으면 된다. 또한 척추에 좋은 자세, 좋은 음식, 좋은 생각, 좋은 운동을 생활화하면 반드시 디스크에서 벗어날 수 있다." (p.324~p.325)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송편을 빚고 전을 부치는 등 명절 음식을 준비하자면 건강하던 허리도 당해낼 도리가 없다. 남자가 할 일, 여자가 할 일을 따로 구분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족 중 몇몇의 희생을 담보하여 다른 가족 구성원의 즐거움을 얻는 것이라면 명절 음식을 장만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생각해볼 문제이다. 추석은 선물과 덕담만 나눌 것이 아니라 치러야 할 희생을 가족 모두가 함께 나누는 날이기도 하다. 즐거운 한가위는 그렇게 찾아오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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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백을 버린 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최유리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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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조금씩 알아간다는 건 한편 좋은 일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자신이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은 대개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장점보다는 단점에 치우쳐있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약하다거나, 끈기가 없다거나, 낭비벽이 있다거나, 자제력을 잃고 시시때때로 욱하는 경향이 있다거나, 기분이 나빠도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늘 마음에 쌓아두기만 한다는 등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온 문제들에 대해 그 원인을 캐가는 일은 생각보다 꽤 지난한 작업이며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그 원인을 발견한다고 해도 바로잡기에는 이미 시기를 놓쳤다거나, 비로소 알게 된 원인을 통해 자신의 인식을 수정하고 그것을 통해 나를 좀 더 사랑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신을 바보 같다고 비난할 수 있는 여지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자존감. 자신을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믿기에 자기 자신에게 지지를 보낼 수 있는 단단한 마음. 그것은 성인이 되어서 부모에게 일일이 말할 수 없는 다양한 위험을 마주쳤을 때 자신을 굳건히 보호하는 방패가 되어준다. 내가 들었던 "안 돼"는 건강한 자존감을 방해했다. 난 내가 들었던 수많은 "안 돼" 때문에 처음부터 내게 그런 방패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p.23)

 

나를 깨닫고 나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간다는 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본질적인 나의 자아 정체성과 세상이 요구하는 직업 정체성은 완전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세상 사이에 불협화음이 존재할 때 세상에 맞서 나를 고집하는 건 꽤나 위험하며 자신에게도 결코 행복한 일이 아니다. <샤넬백을 버린 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의 저자 최유리 역시 다르지 않았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30대 후반 박사 논문의 마지막 관문을 앞두고 찾아온 우울증.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업, 화려하고 멋진 삶을 꿈꾸었던 저자의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울증을 치유하기 위해 무작정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썼다. 삶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루저'일 때조차 내가 배워온 것들이 글을 스면서 정리되었다. 그러자 내가 뭘 잘하고, 뭘 좋아하는지 보였다. '패션 힐러'라는 내 업은 이렇게 만났다." (p.50)

 

단골 쇼핑몰 사장님 어깨에서 보았던 샤넬백만 있으면 삶이 달라질 줄 알았던 저자가 모든 걸 내려놓은 채 온전히 자신으로 돌아가 옷을 좋아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정체성 입기를 돕는 사람, 패션 힐러라는 새로운 업을 선택하게 되는 과정을 책으로 엮은 <샤넬백을 버린 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는 Chapter 1. '패션의 완성은 자존감이다', Chapter 2. '트렌드 말고 나를 입기로 했다', Chapter 3. '진정한 아름다움은 삶에서 나온다', Chapter 4. '행복은 진정한 소통에서 나온다'의 구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신의 내면과 외면을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가꿀 수 있을까? 에 대한 답을 제시하면서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저자의 경험을 통해 들려준다.

 

"잠시 다른 세상을 엿보게 해준 샤넬백은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난 이제 누군가의 사진 속 샤넬백을 동경하지 않는다. 진짜 '멋있다'는 샤넬백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었다. 이제 난 건강한 자존감과 진실한 소통에서 진짜 멋있는 삶을 꿈꾼다." (p.230)

 

소설가 김형경은 20대에 늘 있었던 죽음에 대한 충동으로 인해 2년에 걸쳐 정신분석과 치료를 받은 후 자신은 물론 타인에 대해 이해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 후 <만 가지 행동>, <사람 풍경>, <좋은 이별> 등과 같은 심리 에세이 시리즈를 통하여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을 볼 때 자신과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세상을 사는 데 더없이 중요한 요소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나는 이따금 우리 주변에서 듣게 되는 혐오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우리 사회가 타인과의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도를 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치녀, 된장녀, 맘충, 한남충 등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이 그대로 묻어나는 단어들이 공공연히 쓰이는 걸 보면 사회 구성원의 스트레스 해소책이 전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쌓이는 스트레스로 인해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화와 적개심만 늘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인생 에세이인 동시에 쇼핑 노하우부터 옷장 점검, 이런 옷은 사지 마세요 check list 등 패션에 대한 전반적인 팁을 제공하는 패션 실용서이기도 하다. 주지하다시피 원한다고 누구나 '패피'가 되지는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고 말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감과 자신의 내면에 부합하는 옷을 선택할 수 있는 센스는 어느 정도의 경험과 조언에 의해 발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정도의 진척을 위해서라면 이 한 권의 책을 읽는 수고와 노력이 아깝지 않을 듯하다. 우리는 종종 자신보다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꾀죄죄한 자신의 모습을 탈피하려고도 애쓰는 법이니까 말이다. 코앞에 닥친 추석 명절이 마냥 두려운 '패션 루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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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간 하늘은 침묵만이 가득합니다. 태풍 이후의 땅 위에서의 소란과 분주함이 인간의 차지라면 자연의 모든 변화에 무심한 것 역시 신의 영역인 듯합니다. 언젠가 나는 '희망이란 생명이 유한한 자의 조급함'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영생이 가능하다면 희망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겠지요. 굳이 시간에 구애받을 일도 아니고 말이지요. 그런 까닭에 영원이란 나태함의 다른 표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교육을 통한 계층 사다리가 사라졌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산업화의 초창기에 교육은 인생역전의 기회로 작용했던 게 사실입니다. 어렵고 힘든 시기였고, 제도가 미비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와 같은 혼란기에는 기회도 많은 법이지요. 탈법적이기는 하지만 부동산 투기가 자신의 계급을 바꿀 수 있는 공공연한 방법이었다면 교육과 고시는 정상적인 계층 상승의 수단이었습니다. 그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계급이 공고화되고 계층 상승은 꿈도 꿀 수 없는 그들만의 카르텔이 형성되는 바람에 일반인이 느끼는 박탈감은 날이 갈수록 커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일각에서는 수시 전형의 문제를 거론합니다. 아무리 똑똑한 학생도 소위 SKY로 지칭되는 일류 대학의 수시 전형을 순전히 자력으로 통과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경험해 본 사람들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결과를 낳았던 건 학생부의 불공정성도 한몫했었고, 학부모의 돈과 권력이 수험생의 능력을 과도하게 포장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수시 전형이 현대판 음서제로 불린 데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학생 선발을 대학의 자율에 맡기면서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입시 전형이 탄생했다는 데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많은 대학의 입시 전형을 속속들이 알 수도 없을뿐더러 각각의 대학은 학과마다 또 다른 입시 전형이 존재하니까 말이지요. 그렇게 분류하면 수천 가지의 입시 전형이 존재한다고 해도 과장된 표현이 아닐 듯합니다. 부정한 편법이란 일반인들이 미처 다 알 수 없는 많은 방법 속에서 싹트게 마련이지요. 소위 '정보의 비대칭성'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은 수시 전형의 방법을 과도하게 늘림으로써 벌어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계층 사다리를 걷어찰 수 있었던 그들만의 방법이라고 보아야 하겠지요. 그렇다면 입시전형을 단일화하거나 몇 가지로 좁히자는 제안을 하면 어떨까요? 모르긴 몰라도 모든 대학이 손사래를 칠 겁니다. 대학의 자율을 해친다는 명목으로 말이지요.

 

조국 후보자의 자녀도 그와 같은 혜택을 입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비록 불법은 아니지만 말이지요. 학생부의 공정성을 제도적으로 담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입시 전형의 방법을 최소한으로 제한하지 못한다면 '정보의 비대칭성'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을 수정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대학에게 학생 선발의 권한을 무제한적으로 제공하는 한 교육을 통한 계층 사다리는 영원히 복구되지 않을 듯합니다. 하나의 학과에서도 리더십 전형이니 논술 전형이니 학생부 종합전형이니 특기자 전형이니 정시 전형이니 해서 합격하는 방법이 제각각인데 전국의 각 대학별, 학과별 입시 전형을 모두 취합한다면 한 권의 책으로 엮기도 힘들지 않을까요? 욕심이 과한 것에 대한 경고였는지 13호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교회의 첨탑이 여럿 부서졌더군요. 무심한 하늘 아래 오직 인간만 분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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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일기 - 우리가 함께 지나온 밤
김연수 지음 / 레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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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도 그렇지만 소설가란 마치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별종의 인간인 양 생각하기 쉽다. 아

침이면 직장에 출근하여 지친 몸으로 퇴근하는, 그날이 그날 같은 대부분의 직장인과는 달리 뭔가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쓴 자신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우리네 삶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비록 생각은 우리와 크게 다를지언정 정해진 시간에 노동하듯 규칙적으로 글을 쓰고, 그와 같은 힘든 노동을 견디기 위해 운동으로 체력을 비축하는 등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은 일반 직장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 보이는 것이다.

 

<시절 일기>는 소설가 김연수가 지난 십 년간 보고 듣고 읽고 써내려간 한 개인의 일기이자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한 개인의 진솔한 삶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 속한 한 구성원으로서 우리 사회를 걱정하는 사십대의 어른이자 평범하기 짝이 없는 개인인 동시에 끊임없이 쓰고 지우고 다시 쓸 수밖에 없는 한 직업인으로서의 고민을 이 책에 담고 있다.

 

"일단 스펙터클이 된 타인의 불행에 사로잡히면 찌꺼기처럼 어떤 감정이 우리에게 들러붙는다. 목구멍 안에 들러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하지만 이물감 외에는 그다지 고통을 주지 않는 생선 가시 같은 것. 고통이라기보다는 불편함에 가까운, 우리 내부의 타자. 그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슬퍼한 뒤에야 우리는 우리 안의 이 타자를 애도하는 게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어떤 슬픔으로도 그 타자를 애도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타자에 대한 윤리의 기본은 그냥 불편한 채로 견디는 일이다. 이렇게 견디기 위해서 소설가들은 소설을 쓰고 감독들은 영화를 만들고 시인들은 시를 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견디기 위해서 사람들은 소설과 시를 읽고 영화를 본다. 애도를 완결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애도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들은 날마다 읽고 써야만 한다." (p.43~p.44)

 

한 사람의 일기라는 게 늘 그렇듯 글의 소재가 되는 것은 꽤나 다양하다. 세월호와 같은 국가적 재난에 대한 작가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이 글로 쓰일 수도 있고, 최근에 본 영화나 책에 대한 간단한 소회가 글의 소재가 될 수도 있고, 자주 듣던 노래나 문득 떠오르는 추억 혹은 더위나 추위 등 시답잖은 이야기들이 글의 소재로 등장할 수 있겠다. 그러나 <시절 일기>가 우리네 일기와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글을 잘 쓰고 못 쓰는 데서 오는 차이가 아니라 '쓰기' 자체에 대한 질문들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데 있다.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작가라는 직업의 특성상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소설가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며, 소설가는 평생을 마침표 없이 과정으로서의 삶을 살다 가는 특이한 부류의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러나 더 많은 소설을 창작하고 난 뒤, 나는 생각과 문장 사이의 시간차를 줄이는 일이 어떤 소설을 끝까지 쓸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중에 그만둔 소설들 - 대개 작가 생활 초기에 이런 미완성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 과 끝까지 써서 출판한 소설들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애초의 구상에서 대대적인 수정이 가해졌느냐 아니냐에 있었다. 내 경우 출판까지 이른 소설들은 대개 애초의 구상과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와 플롯으로 완성됐다." (p.242)   

 

몸이 기억하는 시간은 의식이 기억하는 시간과는 사뭇 다르게 흐른다. 일정한 루틴을 따라 큰 변덕 없이 흐르는 몸의 시간은 매번 죽음이라는 한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의식의 시간에 한계와 매듭을 지어주는 것은 몸의 시간이 있기에 가능하다. <시절 일기>에서 삶과 죽음의 문제가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우리의 삶은 우리를 매혹시킨 근대적 기계들의 규칙적인 움직임을 닮아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구불구불 흘러내려가는 강을 닮아 있습니다. 인간의 시간은 곧잘 지체되며, 때로는 거꾸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깊은 어둠 속으로 잠겨들지만, 그때가 바로 흐름에 몸을 맡길 때라고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서도 쉼 없이 흘러가는 역사에 온전하게 몸을 내맡길 때, 우리는 근대 이후의 인간, 동시대인이 됩니다. 그때 저는 온전히 인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깊은 밤의 한가운데에서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으로 역사의 흐름에 몸을 내맡길 때, 우리의 절망은 서로에게 읽힐 수 있습니다. 문학의 위로는 여기서 시작될 것입니다." (p.301)

 

13호 태풍 링링이 휩쓸고 간 거리는 참담했다. 강풍에 부러진 가로수 잔가지들이 도로 곳곳에 수북수북 쌓여 있고, 피비린내처럼 질펀한 풋내가 풍겼다. 그러나 비는 내리지 않았다. 흐린 하늘 밑으로 태풍의 잔해가 공포처럼 흘렀다. 지난 한 달 동안 뒤덮었던 대한민국의 사법 개혁에 저항하는 괴벨스의 광풍이 태풍 링링과 함께 사라진 듯하다. '뭘 계속 쓰다보니까 어느 날 소설가가 됐다'는 김연수 작가. '수천 번의 무와 대면한 뒤에야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고 믿는 작가는 괴벨스의 광풍이 몰아쳤던 지난 한 달의 대한민국을 어떤 모습으로 쓰고 있을까. 나는 태풍이 스러지고 있는 아득한 하늘을 보며 역사의 침묵만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문득 깨닫는다. 꽁꽁 닫았던 창문을 이제야 열어본다. 신선한 바람 한 점이 훅 들이친다. 책상 위에 놓인 <시절 일기>가 바람에 펄럭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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