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 지친 너에게 권하는 동화속 명언 320가지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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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지치거나 힘든 시간이 지속될 때면 나도 모르게 찾게 되는 곳이 있다. 예컨대 고향이라든가, 부모님 혹은 위안이 되는 다른 가족의 품이다. 그리고 우리는 기억의 저편 너머로 유년 시절의 특정한 시간을 떠올리기도 한다. 마치 자석에 이끌려가는 쇠붙이처럼 말이다. 시간의 미끄럼틀이 처음 시작되는 저 높은 곳의 과거를 향해 치닫는 우리의 회귀 본능은 온 힘을 다해 물살을 가르는 연어의 몸짓과 비슷하다. 죽음에 이르는 시간의 지면에 닿을 때까지 우리는 자신이 지나쳐 온 시간의 미끄럼틀을 몇 번이나 더 거슬러 올라가려는지...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이서희 지음, 리텍콘텐츠)은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다섯 개의 주제로 파트를 나누고, 각 파트에 다섯 권의 동화를 선정하여 각각의 동화에서 발췌한 문장을 위주로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지나온 과거의 기억을 되새기게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각 파트의 주제를 살펴보면 PART 1 잃어버린 가치를 찾아..., PART 2 불안한 시간을 위하여..., PART 3 모험과 불확실함 속에서..., PART 4 특별한 세상을 마주하여..., PART 5 소중한 이들을 떠올리며...이고 각각의 주제에는 우리가 한번쯤 읽어보았거나 대강의 내용을 들어봤음직한 동화 다섯 편씩을 배치하고 있다.


"지친 일상 속에서, 막막한 삶의 가운데서, 친절이 무시당하는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자신을 다독이고 타인을 위해 용기 내는 법을 잊어버린 당신에게 동화는 따뜻한 힘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오래도록 읽힌 고전부터 세상에 나온 지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은 이야기까지, 수많은 '당신'과 '우리'를 위한 아름다운 동화 25편을 이곳에 모아보았습니다. 주인공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삶에 공감하고 또 안타까워하고, 기뻐하기도 하며 다양한 감정을 맛볼 수 있도록 그들의 여정을 정리하였습니다."  (p.5~p.6 'Prologue' 중에서)


삶이 힘겨울 때마다 반복하여 찾는 장소가 고향이라면, 삶이 고되고 막막하다고 느낄 때마다 하시라도 되돌아가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시기는 동화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던 그 시절이 아닐까 싶다. 어린 왕자, 크리스마스 캐럴,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빨간 머리 앤, 톰 소여의 모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세암, 아름다운 아이,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키다리 아저씨 등 지금 다시 읽어도 금세라도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날 것만 같은 동화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얼굴에는 온통 주름이 깊게 파였다 할지라도 순수했던 그 시절의 기억들을 어찌 다 잊을 수 있을까. 다만 그러들 줄 모르던 용기와 자신감만 조금씩 퇴색되어 갈 뿐...


"난 이 세상 모든 것에 마법이 있다고 믿어. 다만 우리한테 감각이 부족해서 그 마법을 발견하고 유용하게 쓰지 못하는 거야. 전기나 말이나 증기처럼."  (p.69 '비밀의 화원' 중에서)


찬바람이 불던 늦가을의 어느 날, 따뜻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엎드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톰 소여의 모험', 눈 내리던 어느 겨울날 쏟아지는 졸음을 쫓아가며 읽었던 '모모' 등 동화를 통해 삶의 방식들을 하나둘 깨쳐가던 내 지난날의 어린 시절.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가진 것 없어도 마냥 행복했던 그 시절의 기억만으로도 나는 언제든 다시 용기를 낼 수 있고, 삭막한 인생길에서도 따뜻한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좋은 성격은 추위나 서리에 상처받으며 풀이 죽기도 하지만 따뜻한 햇살을 만나면 쑥쑥 자랄 수 있어요.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저는 역경과 슬픔과 좌절이 정신을 강하게 한다는 의견에 반대해요. 자신이 행복해야 비로소 상대에게도 친절을 베풀 수 있는 법이에요."  (p.208 '키다리 아저씨' 중에서)


오늘은 겨울의 초입이라는 입동. 그러나 날씨는 더없이 포근했고 가지 않은 가을의 풍취가 만연했다. 11월의 둘째 주 월요일인 내일은 비와 함께 오후 들어 북서쪽에서는 찬 공기가 내려오고 산지에는 대설특보가 내려질 가능성이 있다는 예보가 있다. 바야흐로 2021년의 끝자락에 들어선 것이다. 우리는 또 한 살 나이를 더하고, 기쁘고 행복한 추억과 더불어 슬프고 아쉬운 기억들을 혹은 화나고 절망적인 경험들을 시간의 미끄럼틀 위에 버려둔 채 미래를 향해 모험을 떠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서로를 위한 격려의 말일지도 모른다. 엘리너 H. 포터가 쓴 <폴리애나>에 나오는 말처럼.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격려이다."  (p.219 '폴리애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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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 대쪽 같았던 나의 할머니는 철없는 손자들의 실없는 소리도 너그럽게 봐주는 법이 없었다. 할머니가 있는 자리에서 형제들 간에 어쩌다 농담이라도 오갈라치면 "입이 하자는 대로 씨불이냐?' 하면서 호통을 치셨다. 그렇게 엄하기만 했던 할머니의 태도가 어린 손자들은 늘 불만이었다. 그와 같은 불만은 쌓이고 쌓여 급기야는 어머니에게 전달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그러게 누가 그런 실없는 소리를 하라던? 좀 조심하지 않고." 하는 식으로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곤 했다. 어머니로서 자식의 입장에서 편들어 감싸주거나 역성을 들어주는 일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청소년기를 거치는 동안에도 할머니에 대한 불만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할머니를 처음으로 이해하게 된 사건은 우연히 찾아왔다. 한글도 깨치지 못하셨던 할머니는 매년 연중행사처럼 빼놓지 않고 방문하던 사찰이 있었는데 어찌나 지극정성이셨던지 법문을 적은 종이를 손자들에게 읽어달라고 하는 것만으로도 꽤나 긴 법문을 통째로 외우실 정도였다. 나는 어쩌다 궁금해서 지나가는 말로 여쭈었던 적이 있다. "할머니, 절에 가면 뭘 비세요?" 했더니 즉시 답이 돌아왔다. "다른 건 없고 3일만 앓고 죽게 해 달라는 것과 손자들 잘 되게 해 달라는 게 다야." 하셨다. 나는 마치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살가운 말이라고는 일체 꺼내는 법이 없으셨던 할머니. 손주들을 마냥 미워하시는 줄만 알았던 나의 할머니에게 있어 제1순위의 소원이 손자들 잘 되는 것이었다니... 할머니는 당신의 소원처럼 단 하루도 앓지 않고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그 후로 나는 어떤 말이든 입 밖으로 내뱉을 때는 할머니를 생각하곤 한다. 입이 하자는 대로 씨불이지 않기 위해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함부로 말한다는 의미의 사자성어는 흔히 '신구개하(信口開河) 또는 ‘신구자황(信口雌黃)’이라는 말을 쓴다. 주로 정치인에게 쓰이는 말이다. 최근에도 "식용 개는 따로 키우지 않느냐?"고 반문하던 어느 정치인이나 로봇의 복원력 실험을 하는 어느 정치인에 대해 감정이입 능력이 없다며 로봇 학대를 주장했던 어느 석사, 또는 '윤석열을 위해 '홍어준표' 씹다'는 등의 막말을 한 어느 교수 모두 그놈이 그놈이긴 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입이 하자는 대로 씨불인 '신구개하'의 인물들이란 점이다. 어쩌면 그들은 어려서부터 밥상머리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까닭에 나이가 들어서도 그 버릇이 부지불식간에 나오는지도 모른다. 자식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부모의 책임이라면 책임일 것이다. 그들의 인성이 나쁜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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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대세이 - 7090 사이에 껴 버린 80세대 젊은 꼰대, 낀대를 위한 에세이
김정훈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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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은 비슷한 감성과 비슷한 추억을 공유하게 마련이다. 좋든 싫든 말이다. 60년대생은 60년대생만의 감성이, 70년대생은 70년대생만의 감성이, 그리고 80년대생은 80년대생만의 감성과 추억을 간직한 채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추세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10년 단위에서 5년 단위로, 5년 단위에서 3년 단위로, 혹은 1년 단위로 빠르게 재편되고는 있지만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왠지 친밀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80년대생 낀대. 위로는 70년대 기성세대가 있고 아래로는 90년대 신세대가 있다는데, 요즘엔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기성세대가 든든한 발판이 되어, 신세대를 우러러봐야 한다. 신세대라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신세대는 아닌 세대. 신세대라는 단어를 쓰는 것 자체에서 스멀스멀 풍겨 오는 왠지 모를 꼰대 스멜을 감지하는 센스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세대라는 단어를 대체할 다른 단어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 세대. 그렇게 구린 걸 알면서도 구린 걸 행할 수밖에 없는 세대. 그게 낀대다."  (p.20~p.21)

 

연공서열에 민감한 우리나라의 직장 내 풍속도에서 세대 구분과 자신이 속하게 될 세대를 인지한다는 건 어쩌면 생존을 위한 작은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윗사람으로부터 나댄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아랫사람으로부터 '꼰대'라는 비아냥을 듣지 않기 위해서 10년 단위의 동년배들 틈에 두루뭉술 몸을 숨긴다는 건 왠지 비겁한 느낌이 들면서도 어쩔 수 없는 생존전략이라고 자위할 수밖에 없는 현실. 김정훈이 쓴 <낀대세이>는 80년대생 젊은 꼰대, 7090 사이에 껴 버린 80세대의 이야기를 질펀하게 풀어놓는다. 말하자면 이 책은 다른 어떤 세대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80세대만의 비밀인 동시에 그들만의 애잔한 푸념이다.

 

"회사 생활을 하기 위해선 동기부여가 가장 중요하다고들 한다. 그것이 월급일지, 승진일지, 혹은 칼퇴일지는 개인마다 다르다. 하지만 이직의 이유 중 가장 큰 퍼센티지를 차지하는 게 회사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다. 그 스트레스를 줄여보겠다고 힘든 일을 힘들지 않은 일처럼 포장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낀대들이여."  (p.234)

 

책을 읽다 보면 감칠맛 나는 작가의 입담에 정신없이 웃다가도 어느 순간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애잔한 슬픔이 밀려온다. 세대가 다를지라도, 성별이 다를지라도, 21세기를 힘겹게 살아가는 동시대의 지구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작가의 이야기에 백 번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시대에 인간은 한낱 로봇을 보조하는 부속품으로 전락하여 필요도 없이 밥만 축내는 '잉여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는 인격체임을 잊지 말라고 작가는 누누이 주장하고 있는 듯했다.

 

"삶도 결국 연기 아닌가. 괜찮다는 연기. 잘 될 거라는 연기. 그러니 그 연기를 제대로 해내기 위해선 How보단 Why를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중요하지만, 왜 그런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진정성이 생긴다."  (p.166)

 

낙엽이 쌓인 거리를 젊은 부부와 그들의 자식인 듯 보이는 어린아이가 걷고 있다. 아이는 엄마 아빠의 손을 잡은 채 공중으로 붕 떠올라 해맑게 웃고 있다. 땅에 착지하자마자 "또"를 외치는 아이. 부모는 힘들다는 말도 숨긴 채 아이의 몸을 힘껏 끌어올려 서너 발자국을 내딛는다. 아이는 연거푸 "또"를 외치고, 부모의 힘듦은 아이의 웃음으로 대체된다. 나는 그렇게 그들의 모습을 멀찌기서 바라보았다. 아주 한참 동안. 부모의 손에 매달려 하늘을 날던 아이는 훗날 자라서 어떤 세대와 공감하며 살까? 그도 역시 낀 세대의 고단함을 푸념처럼 늘어놓으며 소주잔을 기울이던 순간을 추억처럼 회상하게 될까? 10월의 마지막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잊혀진 계절'을 부른 가수가 이용이 아닌, 아이유나 임영웅, 혹은 다른 어떤 가수로 기억하지나 않을까? <낀대세이>를 쓴 어느 작가의 푸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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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쌀쌀하던 날씨는 주말이 되면서 한결 부드러워졌다. 해가 없는 이른 아침이나 초저녁 혹은 햇빛이 들지 않는 그늘에서는 여전히 서늘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지만 가을 햇살이 쏟아지는 한낮에는 얇은 외투만으로도 더위를 느끼게 된다. 유난히 가을비가 잦았던 탓인지 들녘에는 여전히 푸르스름한 볏잎이 마른논을 채우고 있다. 농부의 한숨처럼 메마른 바람이 건듯 불고 미처 자라지 못한 볏대가 쓰러질 듯 일렁인다. 우리가 사는 삶의 시간 시간들을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시간 속에 누군가가 우연처럼 함께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던 어느 날, 나는 내 삶에 참여했던 그 모든 이들에게 감사함을 느꼈었다. 나와 얼마나 가깝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 삶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로 인해 내 삶이 풍요로워졌다는 걸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미워했던 사람일지언정 진정으로 그를 용서하고 고마운 마음을 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며칠 전 대통령 후보로 나선 모 씨가 또 주워 담을 수 없는 망언을 해서 온 나라를 들쑤셔 놓았다. 부산을 찾았던 그는 "우리가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잘못한 부분이 그런 부분이 있지만, 그야말로 정치를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며 "그거는 호남분들도 그런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그는 "나치 정권도 대량학살만 빼면 정치를 잘했다."라거나 "이춘재도 살인만 빼면 인간성은 좋다."는 식의 비유를 든 것인데 이게 과연 타당하기나 한 것인지... 그의 망언(실언이 아닌)들을 생각나는 대로 간추려 보아도 꽤나 많다.

 

1)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

2) 코로나 초기 확산 대구 아닌 다른 지역이었다면, 민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3) 이명박·박근혜 생각하면 마음이 무척 아파.

4) 부정식품이라는 것은, 없는 사람은 그 아래 것도 선택할 수 있게 더 싸게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

5) 암 걸려 죽을 사람은 임상시험 전 신약 쓰게 해 줘야...

6) 페미니즘도 건강한 페미니즘이어야지, 선거에 유리하게 하고, 짐권 연장에 악용돼선 안 된다. 저출산 문제엔 여러 원인이 있다. 얼마 전 글을 보니까, 너무 정치적으로 악용돼서 남녀 간 건전한 교제 같은 것도 정서적으로 막는 역할을 한다는 얘기가 있다.

7)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것은 아니다. 지진하고 해일이 있어서 피해가 컸지만 원전 자체가 붕괴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방사능 유출은 기본적으로 안 됐다.

8) 사람이 이렇게 뭐 손발로 노동을 하는 그렇게 해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건(손발 노동) 인도도 안 한다.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다.

9) 집이 없어서 주택청약 통장을 만들어 보지 못했다.

10) 주택청약 통장을 모르면 거의 치매환자다.

 

그 외에도 많지만 이건 뭐 말을 옮기는 나도 수준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더 이상 쓰고 싶지 않다. 게다가 압권은 전두환 옹호 발언에 대해 유감 표명만으로 그치려다가 이에 대해 국민의 질타가 이어지자 겨우 사과를 한다는 게 사과를 잡은 돌잡이 사진을 올리지 않나, 개에게 인도 사과를 주는 사진을 sns에 올려 국민들을 우롱하지 않나 아무튼 가지가지한다. 이런 사람이 대선 후보라니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 또한 수준을 알 만하다.

 

주말에 여유 시간이 좀 나서 김정훈의 <낀대세이>를 읽고 있다. 읽다 보면 망언을 일삼는 대선후보로 인한 스트레스는 사라지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배꼽을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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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다음에는 책방에서 만나자
김지선 지음 / 새벽감성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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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관계자'라는 말은 꽤나 근사한 말처럼 들린다. 우리가 어느 집 문패처럼 손쉽게 마주할 수 있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팻말에서 보듯 '관계자'는 언제나 남들이 드나들 수 없는 통제구역을 무시로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말하자면 보통의 일반인들과는 차별되는 어떤 특수한 권한을 부여받은 소수의 몇몇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계자'는 사실 권한보다는 책임을 더 크게 떠안은 사람이라는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근사한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면서 우리가 무시로 드나들던 대부분의 공간들조차 이제는 몇몇 '관계자'들의 전유물로 변한 느낌이 든다. 그중 하나가 도서관이나 서점이 아닐까 싶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약속 시간까지는 한참의 여유가 있을 때에도 내 집인 양 주저 없이 들어가 빈 시간을 편하게 보내곤 하던 공간인데 이제는 '관계자'로부터 출입에 필요한 허가를 득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스러운 공간으로 변하고 말았다. 김지선 작가의 소설 <있잖아, 다음에는 책방에서 만나자>를 읽는 동안 나는 마치 몇십 년 전의 과거로 시간여행을 한 느낌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책방지기가 되었고 어느 날 갑자기 곰인형이 내게 왔던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책방에서 일했던 알바생의 이야기는 소설이 되었다. 소설 속 화자를 주인이 아닌 알바생으로 정한 것은 책방을 잘 모르는 사람의 입장으로 책방에서의 일 년을 그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해진 업무만 하면 되는 알바생의 입장으로 책방을 묘사하고 싶었다."  (p.194 '나·김지선' 중에서)


책방에서 근무하는 알바생의 시점으로 1월부터 12월까지의 소소한 일상을 마치 한 권의 에세이처럼 엮은 이 소설은 나처럼 둔한 독자에게는 어쩌면 에세이라고 해도 깜빡 속아 넘어갈 듯하다. 나도 그렇게 알고 읽었는데 뒷부분에 실린 '일 년이라는 인연'과 '일 년의 나에게'를 읽고 나서 그제야 비로소 이 책은 작가의 이야기를 알바생에게 투영하여 쓴 한 권의 소설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양천구의 어느 골목에 위치한 독립서점 '새벽감성1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작가는 여행작가로 지내다가 독립서점의 사장님이 된 케이스.


"인생을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처음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던 때는 내 삶에서 가장 힘들던 시기였다. 사라져 버리고 싶었지만 사라질 수 없었고 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이면 나를 의지하는 가족들조차 무너져 버릴 것 같았기에 기를 쓰고 버텼다. 그러다 우연히 책방에 알바 자리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적당히 외진 곳에 있고 적당히 숨을 수 있으며, 알바의 업무는 매출을 상승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장의 빈자리를 그저 메워주는 역할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p.35)


소설은 그렇게 특별할 것 같지 않은 책방 알바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일월, 이월, 삼월, 사월... 특별할 것도 없는 한 달 한 달의 소제목을 따라 책방 알바가 겪고 느끼는 특별한 일상과 생각들이 특별하지 않은 소제목 밑에 채워지는 것이다. 마치 우리의 삶이 돌이켜보면 특별하지 않은 이름 밑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특별한 경험들로 채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도래하지 않은 앞으로의 일 년을, 오 년을, 혹은 십 년을 걱정하곤 한다.


"사장은 이곳에서 십 년 동안 책방을 하고 싶다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십 년을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중학교 때 오던 곳이 갑자기 생각나 고등학생이 된 지금 찾아왔다는 손님의 말에 뭉클한 감정이 들었다. 이 아이가 대학교에 간 후에 갑자기 생각나 찾아오거나 결혼하고 나서 갑자기 찾아왔는데 여전히 이곳에 책방이 있다면 어떨까?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인데 언제 와도 늘 그대로인 이곳이 남아 있다면 어떨까?"  (p.146 '시 월' 중에서)


사실 이 소설은 책방 알바의 경험을 다룬 책이라기보다 책방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한 사람이 겪는 특별한 인연에 관한 책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고 어느 시인이 노래하지 않았던가. 누군가를 만나 인연을 맺는다는 건 그 사람의 삶의 빗장을 열과 무시로 드나들 수 있는 관계를 득하는 일이다. 말하자면 모르던 누군가의 삶에 '관계자'가 되는 것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나 역시 누군가의 삶에 '관계자'가 되어 그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고 싶다. 여행을 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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