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 - 제2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대상 수상작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권석 지음 / &(앤드)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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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시간에 의해 마모되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연민과 동병상련의 쓸쓸함을 느끼게 되는 계절. 우리의 곁을 스쳐갔던 숱한 것들에 대한 기억을 더듬더듬 반추할 때마다 나는 기어코 한 권의 책을 손에 잡고야 만다. 쓸쓸함에 대한 가장 적절한 위로는 쓸쓸함의 언어인 것처럼 사라져 가는 기억에 대한 가장 적절한 보상은 사라진 것에 대한 기록일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를 품고 한 권의 시집이나 한 권의 소설을 손에 들고 펼쳤을 때의 기분은 마치 저무는 가을의 저녁 햇살처럼 정겹다. 그럼에도 나는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해거름녘의 서늘함과 성큼 다가올 삭막한 계절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익숙한 것에 대한 안도와 아직 오지 않은 계절에 대한 불안이 교차하는 느낌. 내가 권석 PD(이제는 작가라고 해야겠지만)의 장편소설 <스피드>를 읽기 시작했을 때의 분위기는 그러했다.


"건물 입구 위에 붙어 있는 누런 글자 세 개. 처음엔 금빛으로 번쩍였을 '水泳場(수영장)' 글자도 이제는 허옇게 색이 바래 추레해 보였다. 현관 앞에는 커다란 청동상이 생뚱맞게 서 있었다. 학교의 상징인 참치였다. 수산 시장도 아니고 학교의 상징 동물이 참치라는 게 이상했지만 청동상도 나름대로 수난을 겪는 중이었다. 피뢰침 같은 주둥이를 위로 한 채 'C'자형으로 허리를 말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통째로 기름에 튀긴 것 같았다. 몸통은 돌에 맞았는지 옴폭옴폭 패었고 눈은 무언가에 까맣게 그을려 흉측했다. 한때 학교의 자랑이었을 수영장은 봄이 왔어도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동면 동물처럼 산속에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p.14~p.15)


작가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속초 바다고등학교의 수영장을 그렇게 묘사하고 있다. 기울어가는 수영장의 위세처럼 바다고등학교의 자랑이었던 수영부 역시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욱이 바다고등학교에 전학 온 것은 한 달 전. 속초에서 태어나 서울로 이사를 갔던 욱은 3년 만에 자신의 고향인 속초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고향 친구였던 성수의 꼬임에 빠져 바다고등학교 수영부의 회원 명부에 이름을 올린다. 사실 바다고등학교 수영부의 기존 멤버는 9명으로 욱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채 열 명이 되지 않는 해체 위기 직전의 상태였었다.


"감독이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아직도 숨이 가쁜 욱은 무안해서 꾸벅 인사를 했다. "그래도 태호에게 졌는데요." 감독은 허리를 굽혀 욱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너는 아직 미완성이야. 그게 네 가능성이다." 감독의 말이 욱의 마음속에 여운을 남겼다."  (p.127)


사실 욱의 아버지인 박두하 역시 바다고등학교 수영부 회원이었으며, 한때는 모든 경기에서 금메달을 휩쓸기도 했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그랬던 그는 금지약물 투약으로 자격정지 3년을 받고 수영계에서 은퇴하였다. 대학 졸업 후 건설회사에 입사하였던 그는 아프리카 건설현장에 파견을 나갔다가 그곳에서 물에 빠진 학생을 구하다 그만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그때 욱은 은행원이었던 엄마의 배 속에 있었다. 아빠의 얼굴도 모른 채 태어난 욱은 엄마를 따라 서울로 갔다가 다시 자신의 할아버지가 있는 속초로 돌아왔고, 그 후의 이야기는 주인공인 욱을 중심으로 두 축으로 펼쳐진다. 아버지인 박두하 선수의 금지약물 파동에 대한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하나의 축과 바다고등학교의 수영부 해체를 막기 위한 속초 하늘고와의 수영 대결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과정을 그리는 또 하나의 축이 그것이다. 물론 고등학생인 욱의 달달한 로맨스와 사내들의 거친 우정 그리고 바다고등학교 수영부를 살리겠다는 뜨거운 열정 등은 소설을 읽는 독자들을 위한 하나의 덤으로 작용할지도 모르겠다.


"삶의 나이테가 두꺼워져도 내 안에는 아직 '어릴 적의 나'가 살아 있습니다. 칭찬받고 이해받고 싶어 하고 쉽게 삐치고 질투심도 많은 변덕스러운 아이입니다. 네버랜드에 사는 피터 팬처럼 나이를 먹지 않는 이 아이는 제게 뮤즈 같은 존재입니다. 어리다 보니 유치하고 미욱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순수하고 가볍습니다. <스피드>는 내 안의 그 아이에게, 그때를 지나고 있는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그리고 내 안에 있는 그 위대한 유치함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어른들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입니다."  (p.278 '작가의 말' 중에서)


나이가 어리다는 것만으로 순수하다거나 어리숙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반드시 그렇게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나간 모든 것들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현실보다 크게 부풀려서 말하거나 추억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어쩌면 사라져 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다시 또 가을! 반복되는 이런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자신의 마음속에 품을 수 있는 포용의 임계치를 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신인작가의 작품이니 만큼 때로는 덜컹덜컹 아귀가 맞지 않는 듯한 느낌도 들고, 단출한 인물 구성과 예측 가능한 결말이 다소 아쉬운 부분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누구나 첫 숟갈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권석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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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아프리카돼지열병(ASF)에 걸린 야생멧돼지의 폐사체가 우리나라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현재까지 이 병을 예방하기 위한 효과적인 백신이 없어 확산 방지를 위해서는 '차단 방역'이 유일한 해결책이고 보니 폐사체를 발견하여 살균하고 소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야생멧돼지의 개체수가 증가하고 가을 행락객의 이동이 늘면서 이 또한 만만한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바이러스의 창궐도 인간의 욕심과 이로 인한 자연 파괴에서 비롯된 것이니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 또한 존재하는 자연의 법칙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버콘 S' 소독제의 살균 효과가 탁월하다고 하니 축산 농가의 걱정도 조금은 덜어질 듯하다.


야생멧돼지로 인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의 확산은 이렇듯 '차단 방역'과 소독 및 살균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지만 인간멧돼지로 인한 피해는 야생멧돼지에 비해 피해 범위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을 뿐만 아니라 백신은커녕 소독제나 살균제도 개발된 게 없으니 국민들의 시름이 깊다. 게다가 입만 벌리면 구라를 치는(소위 입벌구) 통에 가뜩이나 심사가 뒤틀린 국민들의 속을 뒤집어 놓기 일쑤이다. 어디 그뿐인가. 본인의 무능을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데 본인만 모르는 체 당당하기만 하니 속이 터질 수밖에. 타인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무능이나 무식이 죄가 될 수는 없겠지만 멧돼지의 습성이 어디 그런가. 한 자리에 진득하니 앉아 '나 죽었소' 하고 조용히 지내는 법이 없으니 삼천리 방방곡곡을 헤집고 들쑤셔서 국민이 감당해야 할 피해는 나날이 늘어나고만 있는 실정이고 보니 나라 밖으로 몰아내야 한다는 주장이 비등하다.


멧돼지는 본디 불을 무서워하는 동물이다. 그런 까닭인지 견디다 견디다 임계치에 이른 국민들이 결국 촛불을 든다고 한다. 그렇다고 꽁꽁 숨어 있는 멧돼지를 붙잡아서 일본이나 미국으로 보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국민들의 무서움을, 촛불의 무서움을 알게 되지 않을까. 한 번으로 안 된다면 두 번, 세 번, 아니 열 번 스무 번이라도 계속하면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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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
가와카미 데쓰야 지음, 송지현 옮김 / 현익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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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상당히 주관적인 글이 될 수 있다. 물론 지금껏 써왔던 대부분의 글이 주관적이었지만 이 글은 특히 더 주관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얘기다. 일본 작가가 쓴 소설 중에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 동화와 같은 소설이 많고, 나는 그런 류의 소설들에 한없이 매료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물리적인 나이만 먹었지 심리적으로는 여전히 어린애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 피터팬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점에서 정말 있었던 마음 따뜻해지는 이야기'의 저자인 가와카미 데쓰야가 쓴 <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는 위안과 희망을 주는 따뜻한 동네서점을 다룬 책이다. 일본 전역의 서점을 취재할 정도로 서점을 사랑하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는 가와카미 데쓰야의 소설답게 스토리는 고바야시 서점의 실제 이야기와 픽션을 결합한 구성으로 읽는 이에게 잔잔한 울림을 준다.


소설의 주인공인 오모리 리카는 도쿄 출신의 전형적인 도시내기로서 집을 나가고 싶다는 마음을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음은 물론 여행도 좋아하지 않아 일 년에 한 번 부모님과 함께 하코네 온처에 다녀오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랬던 그녀가 '출판유통회사'인 다이한에 입사하여 오사카 지사 영업부로 발령을 받았다. 책이나 독서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출판유통이라는 단어조차 들어 본 적 없었던 리카. 오사카로 팔려 가는 송아지 같은 심정이었다는 그녀가 1년 반 만에 도쿄 본사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신업태 서점 개발부'의 1호 직원으로 발탁되어 다시 도쿄로 복귀하는 것은 물론 오사카에서 우연히 만난 다케루와 결혼하게 된다는 내용의 이 소설은 사실 그 구성이나 전개 면에서는 하나 특별할 게 없는 흔하디 흔한 소설일 수도 있겠다.


"애초에 왜 제가 오사카 지사입니까? 왜 영업부예요? 왜 다이한에 들어왔는지 서점 직원한테도 말해 주지 못하는 제가 왜 여기 있는 걸까요? 저보다 잘 맞는 사람도 많을 텐데. 왜 제가 다이한에 왔고, 왜 제가 영업부고, 왜 이런 장소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알려주세요."  (p.61)


자신의 직속 상사 앞에서 눈물을 쏟으며 이렇게 내뱉었던 리카가 마음을 잡고 자신에게 내재된 능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게 되었던 건 순전히 아마가사키시 다치바나 상점가에 있는 고바야시 서점의 유미코 씨 덕분이었다. 인적 드문 곳에 위치한 평범한 동네서점인 고바야시 서점이 70년 동안 한 곳을 지켜올 수 있었던 비결을 조곤조곤 들려주며 마음을 잡지 못하는 사회초년생 리카를 다독이며 용기를 북돋워 주는 유미코 씨. 유미코 씨를 만난 이후로 리카는 고민이 있을 때마다 고바야시 서점을 찾았고, 유미코 씨는 그런 리카를 딸처럼 보듬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리고 자신이 겪어 온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상황에 맞는 적절한 사례를 들려주며 용기를 북돋웠다.


"물론 나를 향한 것만은 아니었을 거야.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쉬지 않고 성실히 일한 부모님. 언제나 묵묵히 배달 다니는 남편. 이 아마가사키 다치바나 상점가에서 30년 동안 계속 가게를 열어 온 고바야시 서점에 대한 신용이야. 이 신용만큼은 지켜야 한다고 굳게 다짐했어. 그저 우리가 팔고 싶으니까 파는 게 아니라 손님도 사길 잘했다는 마음이 드는 물건만을 제대로 설명한 다음 팔아야겠다고."  (p.132)


대지진을 겪고 다 무너져 가는 서점을 살리기 위해 우산 장사를 겸했으며, 서점의 규모가 작아 베스트셀러 할당량이 턱없이 부족했던 까닭에 다른 작은 서점들을 불러 모아 현대를 형성함으로써 평소에는 팔 수 없었던 놀라운 성과를 일궈내기도 했다. 다이한에 결제할 돈을 모두 도둑 맞고 시름에 잠겨 있을 때 다이한의 직원들과 친구 및 선후배들이 십시일반 도와줘서 위기를 무사히 넘겼던 이야기 등 우리 주변에서 있을 수 있는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고바야시 서점의 유미코 씨는 한 편의 영화처럼 실감 나게 들려준다.


"사실은 여기에 소개한 것의 몇 배가 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맞지 않아 쓰라린 마음으로 생략했습니다. 다른 에피소드나 그 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부디 직접 고바야시 씨 본인에게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다만 이야기가 길어질 수 있으니 다음 일정은 잡지 않기를 권합니다."  (p.254 '작가의 말' 중에서)


우리 주변에도 고바야시 서점과 같은 동네서점들이 있다. 그러나 모든 게 대형화되고 플랫폼 기업으로 흡수됨으로써 동네서점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편리함의 추구는 서점 주인과 단골 고객 사이의 따뜻한 우정마저 끊어놓았다. 코로나 시국을 거치면서 확대된 비대면의 활성화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은 것일까. 삶의 온기는 당신의 손을 직접 잡아 보았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정임을 책은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엔 당신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작가는 고바야시 서점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쓸쓸하거나 외롭다고 느끼는 당신에게도 고바야시 서점의 유미코 씨는 언제나 한 줄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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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숙명은 순간순간 어떤 선택을 강요받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마주해야 하며 좋든 싫든 자신의 선택에 대한 피드백의 무게를 감당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정치인에게 있어 자신을 향한 숱한 욕설과 비난은 일상의 풍경처럼 익숙할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정치인의 평균수명은 종교인 다음으로 높다. MB나 전광훈 목사를 보더라도 '욕먹으면 오래 산다.'는 속설이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정치인들의 선택 중 본인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일정 기간 정치활동을 하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얻게 되는 것이 있다. '권위'와 '존경'이 그것이다. 둘 다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성격의 결과물이다. 이를테면 '권위'는 일정한 직책(고위직이겠지만)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물리적인 힘(권력)을 행사함으로써 타인을 공포와 불안에 몰아넣거나 강력한 반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반면 '존경'은 직책에 부여된 권한이나 권력과는 무관하게 인간 대 인간으로서 가까워지고 본받고 싶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박정희나 아베의 사례에서 보더라도 정치인은 권위로 인한 반감의 축적이 결정적인 사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 스스로가 '권위'를 선택할 수는 있지만 '존경'은 선택할 수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권력에 집착하면 할수록 '권위'는 자연스레 획득되지만 '존경'은 직책에서 주어지는 합법적인 권력으로부터 무한히 멀어지거나 그 힘에 대한 유혹을 과감히 떨쳐낼 때 획득되기 때문이다.


최근 자신의 권력을 무기로 정적을 제거하고 정신이상자에 가까운 자들을 특별한 직책에 앉힘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반감과 불안을 동시에 느끼도록 하는 굥의 행태는 '권위'에 탐닉하는 정치인의 전형이라고 하겠다. 문 전 대통령이 총살감이라는 막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자가 경사노위 위원장에 임명되지 않나 자위대 창립 기념일 행사에 참여한 정치인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함으로써 일본을 본받으라는 메시지를 공공연하게 표방하는 것 등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그에 대한 반감을 차곡차곡 쌓는 일이 될 것이다. 위대한 정치인은 그가 속한 조직의 구성원으로부터 무한한 신뢰와 존경을 받는 인물이지 지속적인 권위를 누리는 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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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뮤지컬 - 전율의 기억, 명작 뮤지컬 속 명언 방구석 시리즈 1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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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지금껏 살아오면서 뮤지컬을 공연장에서 직접 관람하였던 건 손으로 꼽을 정도로 그 수가 적다. 이렇게 된 데에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개인적 차원의 문제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뮤지컬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과거의 초라한 무대 세트와 어설픈 무대 연출,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관람료 등 뮤지컬 분야의 구조적인 원인도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뮤지컬 한 편의 관람료면 영화 몇 편을 볼 수 있는데...' 하는 단순 계산 때문인지 어쩌다 손에 들어오는 공짜 티켓이 아니면 뮤지컬 공연장으로으로 향하는 자발적인 발걸음은 좀체 없는 일이 되고 말았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고등학교 동창 모임의 송년 모임 레퍼토리가 바뀌면서 뮤지컬 관람은 하나의 정기 행사로 편입되었다. 촌놈들이 모인 자리에서 뮤지컬 관람이라니... 그것은 마치 '개발에 편자'처럼 꽤나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여겨졌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호평이 이어지는 기이한 결과를 낳았다. 부어라 마셔라 하던 음주 일색의 송년 모임이 뮤지컬 관람과 간단한 식사로 대체되면서 부부 동반이나 가족 전체가 모임에 참가하는 기이한 현상도 적지 않았다.


영영 기회가 없을 줄 알았던 뮤지컬과의 인연이 이렇듯 우연한 계기로 인해 나의 삶에 자연스레 녹아든 것은 내 삶에 있어 하나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배경에는 물론 뮤지컬 업계의 성장과 경제 발전에 따른 뮤지컬 관객의 증가와 같은 사회적 변화에 편승한 우연 아닌 우연이 작용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뮤지컬 애호가가 아닌 입문자의 수준에 머물러 있고, 귀에 익지 않은 낯선 제목의 뮤지컬 공연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편견이 심한 관객에 불과하다. <방구석 뮤지컬>을 쓴 이서희 저자 역시 나와 비슷한 경험을 말하고 있다.


"이 책을 펼쳐 든 여러분께서 어느 순간 공연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뮤지컬이 품고 있는 배경과 서사를 생동감 있게 담아내고자 노력했습니다. 아름다운 가사와 무대 영상을 덧붙여, 문자가 가진 한계를 보완했고요. 공연장에서 직접 느낀 감동과 전율을 전달하려 했습니다. 프로덕션에 따라 달라지는 뮤지컬의 구성과 넘버는 되도록 제가 직접 감상한 공연을 기준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뮤지컬은 여러 자료를 통해 천천히 알아갔습니다."  (p.5 '프롤로그' 중에서)


뮤지컬 <노트르담 파리>를 시작으로 순식간에 뮤지컬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는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뮤지컬은 서른 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보고자 하는 뮤지컬의 무대 장치와 조명, 의상, 안무, 연출에 이르기까지 뮤지컬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요소를 알고 나면 우리가 알던 뮤지컬의 세계는 한층 다채로운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뮤지컬은 하나의 종합예술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줄거리 파악이나 유명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는 뭔가 성에 차지 않았던 것도 그런 까닭이었는지도 모른다.


"시대와 운명이 배반하더라도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뮤지컬 속의 인물들. 우리는 극장에서 그들의 용기와 의지를 엿봅니다. 그리고 중력을 거슬러 날아오른 엘파바처럼, 매 순간 조금씩 성장해가는 에반 핸슨처럼 나아갈 힘을 얻습니다."  (p.358 '에필로그' 중에서)


그러나 접해 보지 않은 누군가에게 뮤지컬은 여전히 낯선 장르일 뿐이다. 그러나 처음이 어려울 뿐 일단 부딪쳐 보면 뮤지컬의 매력에 쉽게 녹아들 수밖에 없다는 게 많은 이들의 전언이다. 게다가 활동하기에 더없이 좋은 가을 저녁의 뮤지컬 관람은 생각만으로도 설레게 된다. 뮤지컬을 관람한 후 극장을 나설 때의 여운은 뺨에 닿는 가을바람처럼 신선하고 부드럽다.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혹은 자신의 집이 어느 방향인지도 잊은 채 한동안 넋을 놓을 수밖에 없는 감동의 여진이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할지도 모른다.


"빵 하나를 훔친 죄로 5년의 징역을 선고받은 '장발장'. 그는 이후 탈옥을 시도하다가 19년으로 형량이 늘어납니다. 그곳에서 죄수들을 감독하는 이는 '자베르'입니다. 이후 장발장은 가석방 처분을 받게 되지만 가석방 처분의 규율을 어기고 도망쳐 '마들렌'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p.206)


돌이켜보면 삶의 시간들은 순간처럼 가볍다. 그렇다고 자신의 삶을 인위적으로 길게 늘일 수 있는 방법도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 우리는 순간순간의 '지금'을 마냥 행복한 경험으로 채우는 것만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즐기는 최선의 방책이라는 걸 앞서 살다 간 많은 이들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자신의 삶을 원하지 않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 때가 많은 것도 사실, 그럼에도 우리는 삶의 기쁨과 충만한 만족감을 향해 험한 가시밭길을 헤쳐 앞으로 나아가곤 한다. 뮤지컬은 그와 같은 우리의 여정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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