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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꾸만 딴짓 하고 싶다 - 중년의 물리학자가 고리타분한 일상을 스릴 넘치게 사는 비결
이기진 지음 / 웅진서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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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와 골동품 수집과의 상관관계, 교수와 동화 작가의 조합, 또는 물리학 교수와 만화 그리기의 연관성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러한 조합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굳이 하겠다는 데 말릴 까닭도 없지만 첨단 과학을 연구하는 물리학자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또는 50대 중반의 가장이 저지른(?) 일 치고는 왠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의 저자인 이기진 교수는 조금은 특이한 물리학자이다. 내가 상상하는 물리학자는 흰 가운을 걸친 깔끔한 차림새로 연구실은 늘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허튼 농담이나 실없는 말은 일체 입에 담지 않고, 집에서도 독서와 연구에 매진하는 그런 모습이다. 물리학자에 대한 편견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나의 생각은 이제껏 변한 적이 없었던 듯하다. 그러나 대개의 일반인이 가졌음직한 이러한 편견을 이기진 교수는 단번에 깨트린다.

 

연구실 한켠에 군데군데 서있는 깡통 로봇과 벽면에 붙은 엉뚱한 그림들과 이빨이 나간 백자며, 부엌에 있어야 할 조리기구며, 홍차를 거르는 기구며, 출처가 궁금한 호랑이 조각상이며, 심지어 낡고 허름한 개집까지. 이건 뭐 시골집 창고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그런 너저분한 연구실을 학기에 단 한 번 정리하고, 입는 옷도 1년에 한 번 몰아서 산다고 하니 그의 가족이나 지인들은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이 사람을 너그러이 용서하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그렇지 않은가. 웬만한 사람이면 대개 직장과 가족이 생기는 순간 자신이 몰입하던 취미와 결별하고, 새로운 환경을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게 일반적이지 않은가.

 

"취미 생활은 연애와 같다. 애정과 관심에 따라 취미의 깊이가 달라진다. 조금 눈길을 멀리하면 토라져 버리고, 만남이 뜸해지면 헤어짐의 아픔을 당하기도 한다. 물질적으로 투자를 하면 둘 사이는 럭셔리해지고 급격하게 친밀해지기도 한다. 가끔 삼각관계에 휘말리기도 한다. 둘 중 한 사람을 버려야 하는 불편한 상황처럼, 애지중지하던 취미를 멀리하고 새로운 관심사로 갈아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헤어진 애인의 편지와 선물을 처리하듯, 취미 생활에서 구입한 물건들이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폐기물처럼 방치되기도 한다." (p.87)

 

실험실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온갖 상상의 날개를 펴고 '딴짓'에 몰입할 수 있는 사람. 저자 이기진은 그런 사람이다. 내전중이던 아르메니아 공화국에서 보냈던 젊은 시절, 그곳에서 사귀었던 오래된 인연, 다락방 생활을 감행했던 프랑스 파리에서의 생활, 지도교수가 맘에 들어 7년을 보냈던 일본. 글을 못 읽어 학교까지 그만두어야 했던 초등학교 2학년의 어린 소년은 물리학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오래된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시간이 켜켜이 쌓인 물건에 탐닉하며, 추억의 장소를 찾는 어른이 되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어린 시절의 환경, 부모님, 친구들,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저자를 자극하고 부추겼으리라. 대학생 시절부터 다니던 술집을 몇 십 년째 드나들고, 매일 같은 시각에 들르는 커피점, 수없이 드나들던 고미술 상가와 벼룩시장, 그의 주변에는 온통 '오래된 것들'만 넘쳐나는 것이다. 창성동에 마련한 한옥을 혼자만 즐기는 게 아쉬워 현재는 갤러리로 쓰고 있다는 저자.

 

나는 저자의 삶이 은근 부러워진다. 매시간, 매분, 매초, 매순간마다 미끄러지듯 흘러 다시는 되돌릴 길 없는 추억의 지하동굴에 저장되는 삶의 나락에서 우리는 그 지하동굴에서 건져 올린 추억에 나른한 감상을, 명징한 느낌을, 때로는 상큼한 쾌감을 적당히 섞어 행복이라는 삶의 와인을 들이켜곤 한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제대로 즐기고 즐길 줄 아는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세월을 거슬러 뭔가 상상하게 만드는 물건. 너무 많이 팔리는 바람에 벼룩시장에서조차 가장 싸게 구입할 수 있는 물건. 이런 물건을 오브제로 생각하며 사는 모습. 이런 풍경이 나는 좋다." (p.269)

 

삶이란 결국 다양한 경험을 첨가한 사유의 칵테일이 아닌가. 어떤 경험, 어떤 첨가물을 넣을지 결정하는 일은 순전히 본인에게 달려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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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문학사상 세계문학 12
J.D.샐린저 지음, 윤용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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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날 오후의 일은 판박이 스티커처럼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어. 이를테면 그렇다는 거지. 투명 셀로판지에 새겨진 다양한 그림들을 공책의 여백에 대고 엄지 손톱으로 박박 문지르면 순식간에 선명한 그림이 새겨지는 판박이 스티커 말이야. 간혹 힘이 약한 저학년 꼬마들이 문지르면 채 반도 새겨지지 않거나, 귀퉁이가 잘려나가곤 하지만.

 

아무튼 너도 그날 오후의 일을 잊지 못할거야. 뭐라고? 생각나지 않는다고? 어떻게 그날을 잊을 수가 있어?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우리들 중 가장 멍청한 질문을 해댔던 그날을 말이야. 펑퍼짐한 바지를 골반 위에 간신히 걸쳐 입고 다니던 국어 선생님은 기억하지? 그래, 맞아. 만나는 학생들마다 머리 깎았냐고 질문하던,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자켓 주머니에는 항상 분필가루를 묻히고 다니던 그 국어 선생님'

 

9월 초의 어느 날이었을 거야. 운동장 한켠에 있던 등나무 벤치에서는 말매미 몇 마리가 살려달라는 듯 악을 쓰며 울어대고 있었지. 목청을 돋구어 우는 꼴이라니. 점심 도시락을 5분 내에 해치운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축구를 하고 있었지. 그날 5교시는 국어시간이었거든. 그날 5교시에 우리는 조금 얼띤 국어 선생님의 눈을 피해 다들 자거나 잡담을 할 생각을 하고 있었지. 늘 그래왔지만. 그런데 뜬금없이 야외수업을 하겠다는 거야. 음악이나 미술 시간에 야외수업을 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국어는 그렇지 않았잖아.

 

야외에서 작문 시간을 갖겠다는 국어 선생님의 발표는 그야말로 난데없는 폭탄발언이었지. 노트와 볼펜을 들고 학교 뒤편의 논둑길을 어슬렁거리며 걷는 꼴은 마치 젖도 떼지 않은 송아지가 어미소를 따라가는 형상이었어. 너도 알다시피 야외수업을 하던 장소는 논둑길을 따라 5분쯤 걸어야만 닿을 수 있는 솔밭이었잖아. 땀도 씻지 못하고 끌려갈 때의 심정은...

 

솔밭 그늘은 그나마 시원한 편이었다구. 하늘은 더없이 맑았고, 도자기 문양처럼 작은 구름만 떠다니고 있었지. 너도 알다시피 아무리 신경질적인 선생님도 일 년에 서너 번쯤은 아주 관대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있지. 천사처럼 말이야. 그날 국어 선생님도 그랬어. 마치 '애기는 어떻게 생겨요?' 하고 실없는 질문을 던진다 해도 다 들어줄 것만 같은 그런 표정이었지. 선생님은 그때,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읽어본 사람 있나?" 하고 물었어.

 

다들 멀뚱멀뚱 눈빛만 교환하고 있었지. 나는 사실 읽어본 적은 있었지만 괜히 엉뚱한 질문을 받을까봐 손을 들지는 않았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잖아. 뭐랄까, 그냥 있으면 중간이나 갈 것을 어줍잖게 나섰다가 망신만 당할 수도 있겠다 싶었던 거지. 아무도 손을 들지 않고 눈치만 보던 그때 너가 손을 번쩍 들었던 거야. 나는 마른 하늘에 벼락이라도 친 줄 알았어. 평소에 책을 좋아하는 놈 같았으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그런데 하필 너라니.

 

"어, 그래 재민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뭘 느꼈지?" 선생님은 더없이 반가운 표정으로 널 호명했어. "오래 전에 읽어서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구요. 호밀이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오, 맙소사! 그걸 대답이라고. 호밀이 뭐냐구? 그건 마치 초등학교 1학년 꼬마가 판박이 스티커를 어설프게 문지른 거랑 다를 게 없었어. 정말 그랬다구. 덩치는 산만한 놈이 그런 대답을... 주인공 홀든이 그렇게나 경멸하던 애클리보다 너는 한참이나 지능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어. 만약 애클리가 그 시간에 있었다면 천재라고 생각했을 거야. 그 후로 너는 국어 선생님께 완전히 찍혔던 거야. 홀든이 생각하는 여자 애들처럼 국어 선생님도 그랬으니까.

 

"여자 애들의 문제점은 일단 어떤 남자에게 호의를 가지게 되면, 그놈이 어떤 쓰레기 같은 놈일지라도 열등감이 있다고 말하는 거야. 반대로 싫은 사내애라면 아무리 좋은 놈일지라도, 아무리 열등 의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놈을 가리켜 거만하다고 말한다구. 머리가 좋은 애들도 그렇다니까." (p.199)

 

지금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으니까 너도 많이 변했겠지. <호밀밭의 파수꾼> 정도는 까맣게 잊었을 테구. 그나저나 너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어. 홀든이 컬럼비아 대학에 다니는 카알 루스를 불러내어 그에게 전공이 뭐냐구 묻지. 혹시 '변태 성욕'이냐구. 물론 농담으로 물었던 거야. 너는 국어 시간마다 턱을 괴고 졸았고, 선생님은 그런 너를 여지없이 혼내곤 했었어. 그랬던 네가 어떻게 교수가 됐니? 뭘 가르쳐? 혹시 졸음학? 물론 농담이야.

 

그런데 말이야. 너는 정말 시력이 좋았어. 인정해. 인정한다구. 그걸로 대학에도 들어간 거잖아. 너는 아마 50미터 밖에서도 남의 답안지를 훔쳐볼 수 있었을 거야. 네가 만약 결혼을 했고 아이가 둘쯤 있다면 그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말하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순전히 실력으로 합격했다고 허풍을 떨겠지. 너뿐만이 아냐. 다들 그렇더군. 그런 걸 생각하면 웬일인지 슬퍼져.

 

네가 그때 정말로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다면 이 대목은 기억할 수 있겠지? 펜시 고등학교에서 쫓겨난 홀든이 아무도 몰래 집으로 들어와 잠들어 있는 여동생 피비를 깨웠던 장면 말이야. 그때 피비는 어린애였지만 오빠가 고등학교에서 또 쫓겨났다는 걸 단박에 알아차렸지. 수요일에 오기로 돼 있었던 오빠가 일찍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던 거야. 피비가 물었어. 오빠는 뭐가 되고 싶으냐구. 그때 홀든은 이렇게 말하지.

 

"나는 넓은 호밍밭 같은 데서 어린아이들이 다같이 어떤 게임을 하는 장면이 눈에 선하단다. 몇 천 명의 애들이 있을 뿐 주위엔 아무도 없어. 나 이외에는 어른이 하나도 없단 말이야. 나는 위험한 벼랑 끝에 서 있는 거지. 내가 하는 일이란, 누가 잘못해서 벼랑으로 굴러떨어지는 일이 생기면, 그애를 붙잡아주는 거지. 말하자면 애들은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 보지도 않고 뛰잖니? 그런 때에 나는 어디선가 재빨리 달려나와서 그애를 붙잡아주는 거야.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는 거라구. 호밀밭에서 붙잡아주는 역할, 즉, 호밀밭의 파수꾼이지.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p.248)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을 때면 까닭없이 울적해지곤 해. 그렇다고 슬프거나 울고싶은 건 아니야. 그런 거랑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뭐랄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랄까. 아무튼 그래. 그리고 작문 야외수업을 하던 그날, 네가 했던 대답은 정말 더럽게 유치한 것이었지만 가끔 그날이 그리워지기도 해. 네 눈꺼풀에는 항상 50톤의 졸음이 매달려 있었지.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구. 실제로 토할 뻔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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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tan6 2014-11-13 11:24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사진으로 남은 기억과 기록이
친구를 그리고, 선생님을 그리고, 솔나무를 그리고,
그리고 동화를 그려낸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꼼쥐 2014-11-14 14:15   좋아요 0 | URL
이렇게 과분한 칭찬의 댓글을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그리고 기쁩니다.
 

자신의 곁을 내어주지 않는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가령 쿨하다거나 끊고 맺는 것이 확실하다거나 하는 식의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면 당신은 적어도 어리거나 젊은 나이임에 틀림없다. 물론 연배가 들어 뵈는 사람 중에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누군가로부터 요만큼도 피해를 입고 싶지 않고 나 역시 상대방에게 눈곱 만치의 피해도 주지 않겠다는 심보, 너와는 구질구질하게 얽히지 않겠다는 다짐, 이런저런 문제로 다투느니 차라리 안 만나는 게 서로를 위해 좋다는 식의 자기 합리화, 뭐 이런 생각들이 나의 내면을 채우지 않았었나 싶다. 그 당시의 나는 인생을 이해하기에는 한참이나 어린 나이였으니까 이해하자고 들면 못할 것도 없다.

 

이런 얘기를 꺼내 놓고 보니 내 고등학교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때의 나는 이해도 못하면서, 단순히 친구들에게 우쭐대려는 목적으로 틈만 나면 철학책을 읽어댔었다. 그야말로 읽어댔던 것이다. 플라톤부터 니체에 이르기까지 서양 철학의 대부분을 읽었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시험 전날에도 나는 책상 서랍에 책을 넣어두고 몰래 읽다가 선생님께 들켜 혼쭐이 났을까. 지금 생각하면 나는 참 되바라진 아이였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무렵의 어느 날 기차를 탄 적이 있었다.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가 내 주위에 앉아 있었고 나는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가져 간 책을 꺼내 읽었다. 내가 탔던 역으로부터 몇 정거장이나 지났을까,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멀뚱멀뚱 어색한 눈빛을 교환하자니 무료했던지 그 중 한 아저씨가 내게 무슨 책을 읽느냐 물었다. 나는 대답도 없이 책의 표지를 보여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들고 간 책의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내 기억에 없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내게 물었던 아저씨 왈, "인생이란 말이야..."로 시작된 장광설에 나는 몹시도 기분이 상했었던 듯하다. "아저씨가 인생에 대해 뭘 알아요?"로 시작된 나의 반격에 주변의 아줌마 아저씨들 눈이 놀란 토끼눈처럼 동그래졌다. "어려운 수학 문제도 여러 번 되물었던 사람이 정답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인생이 무엇인지 반복하여 질문에 질문을 거듭했던 사람만이 인생에 대해 논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저 아무런 의심 없이 세월만 보낸 사람이라면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인생을 알 수는 없는 거겠죠."

 

나는 그때 주변의 어른들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들었다. 이런저런 조언과 함께. 그러나 그들과의 대화를 처음부터 마뜩잖게 생각했던 내가 귀기울여 들었을 리 만무하다. 나는 그렇게 까칠한 성격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말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곁을 내어주면 줄수록 번잡한 일이 수도 없이 늘어나는 게 사실이다. 때로는 구질구질해 보이기도 하고, 우유부단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느니 차라리 우아하고 고고한 자세로 혼자 지내는 게 훨씬 더 좋아보일 수도 있겠다. 물론 내 인생 내 맘대로 사는 것이니 못할 것도 없다. 실제로 그런 삶을 선택하는 사람이 나날이 늘어나고도 있다.

 

그러나 모르는 게 있다. 인생의 숨은 비밀, 보석과도 같은 삶의 교훈은 항상 진흙탕처럼 여겨지는 그 구질구질한 관계 속에서만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흔히 나쁜 남자로 분류되는 그런 사람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이면에는 이기심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잘 알고 있다. 쿨한 관계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대개 번잡함을 회피하려는 자신의 이기심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산다 한들 별반 잃을 것도 없겠지만 인생 전반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보석같은 삶의 교훈은 절대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미처 알지 못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주된 목적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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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8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20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19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20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19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번잡함을 회피하려는 이기심... 얻을 수 있는 보석같은 삶의 교훈... 명심해보기로
감사합니다

꼼쥐 2014-09-20 15:00   좋아요 0 | URL
비 님 반갑습니다.^^
대개의 경우는 그렇더군요. 자신의 시간을 타인으로 인해 조금도 손해보지 않겠다는 이기심이 바로 그런 경우죠.
 
기적의 튜즈데이 - 한 남자의 운명을 바꾼 골든 리트리버
루이스 카를로스 몬탈반.브렛 위터 지음, 조영학 옮김 / 쌤앤파커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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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 나는 난생 처음 아버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평생을 술에 의지하여 살았던, 어머니와 어린 자식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자신의 설 자리를 스스로 지워버렸던, 겁 많고 소심했던 나의 아버지를 조금쯤 이해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당신의 속마음이 어땠는지 확인할 길 없으니 순전히 나의 추측과 어림짐작만으로 당신의 삶을 평가하는 것이지만, 한 인간으로서 당신의 삶은 너무도 황량하고 부조리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제 당신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던 까닭은 아버지에 대한 나의 원망과 이해득실이 객관성과는 사뭇 멀어지게 했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가까운 사람일수록 자신의 주관에 의해 평가되기 일쑤이고,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한없이 너그러워지는 법이다. 예컨데 내가 아버지에 대해 가졌던 감정은 얼마 되지 않는 가산을 탕진하고 경제적으로 한없이 무능했던 것에 대한 원망, 술과 폭력으로 가족 구성원 모두를 불안에 떨게 했던 것에 대한 원망, 자식들의 바람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것에 대한 원망 등 나의 기대치에 견주어 내려진 평가일 뿐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문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어느 날 대낮부터 술에 만취한 아버지가 동네 파출소에서 난동을 부렸을 때,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아파트 3층에서 뛰어내렸을 때 우리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아버지의 돌발행동의 원인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었다. 다만 알콜성 치매로 인한 환청과 환시 현상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굳게 믿었을 뿐이었다. 북한군이 쫓아온다며 파출소로, 그리고 아파트 난간으로 달아나다 급기야 뒷베란다 밑 잔디밭으로 뛰어내리기까지 했던 그 일련의 행위가 어쩌면 어린 나이에 참전했던 한국전쟁의 영향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왜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 사건 이후로 근 20년 동안 이어진 아버지의 병원 생활은 가족들의 원망을 가중시켰으면 시켰지 가족들과의 관계를 좋게 하지는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비로소 당신이 겪었을 전쟁의 참상과 그 잔혹했던 현장을 목도함으로써 당신이 겪게된 트라우마에 대해, 평생을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던 당신의 삶에 대해 조금쯤 이해하게 되었다.

 

"전쟁은 그런 것이다. 추악하고 폭력적이며 끝내는 깊은 상처를 남긴다. 죽음은 삶을 더욱 부각하므로 일상보다 더 현실적일 수도 있다. 죽음의 존재에 다가갈수록 우리는 삶의 맥박을 더 강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이라크에서는 군의 결정에 따라 매일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나와 내 부하들의 결정 때문에 죽은 사람도 있다. 그리고 나는 매일매일 그 위력과 책임이 혈관 속에서 꿈틀대는 걸 느꼈다." (p.325)

 

<기적의 튜즈데이>는 라틴계 미국인인 루이스가 이라크전에서 부상을 입고 복귀한 후 겪게되는 처절한 트라우마와 도우미견 '튜즈데이'로 인해 치유되는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겉보기에는 그렇다. 그러나 이 책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전쟁터에서 실제로 전쟁을 수행하는 병사와 이를 지시하고 감독하는 고위층간의 상반된 인식과 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복귀한 상이용사들의 처절한 삶과 일반인들의 차가운 시선이 그것이다.

 

저자인 루이스도 그랬다. 환각과 악몽, 편두통과 공황발작이 일상을 지배했고, 눈을 감으면 널브러진 시체들이 보이고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자신을 암살하려 했던 남자의 증오 가득한 눈동자와 자살폭탄 테러범의 마지막 얼굴이 그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음료수 캔만 봐도 사제폭탄인 것만 같아 경기를 일으켰고, 직장생활은커녕 이웃과의 대화나 가벼운 나들이조차 불가능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벼운 부상처럼 보였기에 가족들조차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사랑하던 아내가 떠나고 부모마저 등을 돌리자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했다. 국가에서도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희망 없는 나날을 술에 의지한 채 버텨가던 중 튜즈데이라는 기적을 만났다. 그리고 기적과 같은 치유가 시작되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 아버지는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로 전쟁터에 나갔다. 낙동강 전투에 참전했었다는 이야기를 형을 통하여 어렴풋이 들었다. 형도 아마 국가 유공자 등록을 위해 서류가 필요했던 까닭에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때의 기억을 가족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우리들 중 누구도 묻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의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위로는 술이 아니었을까 싶다.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들조차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 무관심과 냉대는 당신이 겪었을 트라우마와 함께 평생을 지고 갈 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한 달. 나는 여전히 문득문득 병원비를 생각하고, 가끔 의무감으로 들렀던 병원 복도를 떠올리고, 병원 침대에 뉘어진 당신의 앙상한 몸을 생각한다. 왜 나는 아버지가 살아계셨던 그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당신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던 것일까. 자책보다는 진한 아쉬움이 가슴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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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딱히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계절의 순환에 나는 이유도 없이 아득해지곤 한다. 아침 저녁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과 나도 모르게 이불을 여미게 되는 밤 기온과 더없이 맑은 하늘. 길을 걷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오곤 한다.

 

지금이야 '여행'하면 으레 자가용이나 버스가 먼저 떠오르지만 어릴 적 기억 때문인지 나는 아직도 '기차'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단조로운 연속음으로 덜컹대는 비둘기호의 느린 기차바퀴 소리, 서 있는 승객들을 우악스럽게 밀어부치며 지나가는 홍익회 아저씨의 특유의 목소리 "심심풀이 땅콩이나 오징어 있어요.", 그런 소음과는 무관하게 차창으로 비껴드는 나른한 가을 햇살, 혼잡한 객실을 유령처럼 떠돌던 매캐한 석유 냄새, 그리고 기차의 더딘 발걸음에 아슴아슴 밀려오는 졸음.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자취 생활을 했던 나는 정기적으로 기차를 타곤 했다. 대학에서 MT를 갈 때도, 친구들과 여행을 할 때도 언제나 기차를 탔다. 열에 두서너 번은 자리에 앉아 졸았고, 익숙해지지 않는 석유 냄새에 이따금 멀미를 했고, 볼이 미어지도록 삶은 계란을 한 입에 밀어넣는 앞 좌석 꼬마를 부러워했다.

 

열차의 진동에 맞춰 대여섯 시간 흔들리다가 도착지를 알리는 승무원의 안내방송에 화들짝 놀라 잠이 깨기 일쑤였고, 플랫폼을 휩쓸고 지나가는 건조한 바람에 남은 잠을 털어냈고, 멀어져가는 열차 꽁무니를 멀거니 쳐다보곤 했다. 역에서 내린 승객들이 개찰구를 향해 밭은 걸음을 옮겨갈 즈음, 제복을 입은 역무원이 개찰구를 열고 검표를 했다. 나는 그 무리에서 벗어나면 큰일이라도 나는 양 승객의 무리 속으로 섞여들곤 했다. 죄 지은 것도 없는데 역무원 앞에서는 언제나 주눅이 들었고, 역사를 멀찌기 벗어나서야 마음을 놓곤 했다.

 

가을이면 지금도 나는 문득문득 비둘기호 완행열차를 떠올리곤 한다. 지금은 사라져 아스라한 추억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그 열차를 말이다. 여전히 나는 그때의 아날로그식 풍경에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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