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에 허덕이는 서민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주려는 정부의 노력이 눈물겹도록 가상하다. 진심이다. 다사다난했던 2014년을 뒤돌아 볼 때 대한민국의 국민들 대부분은 웃을 일보다는 슬퍼하거나 화낼 일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인지 정부에서는 블록버스터급 코미디 두 편을 선보였다.

 

그 하나는 '정윤회 문건에 얽힌 비화(가제)'이다. 이미 검찰의 수사도 마무리 단계이고 저간의 의혹도 대부분 덮인 상황이지만 국민들도 대부분 배꼽이 빠질 정도로 웃었을 줄 안다. 정부와 검찰의 노고에 감사하면서. 압권이었던 것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실에서 근무했던 박모 경정이 정말, 아주 정말 할 일이 없고 무료해서 '찌라시'와 같은 소설을 썼다는 것이다. 우리는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근무하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 표해야만 한다. 나도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는 그 자리가 그렇게 무료하고 할 일이 없는 직책인 줄은 미처 알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다리가 배배 꼬일 정도로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박모 경정은 위험을 무릅쓰고 보고서 형식을 빌어 소설 한 편을 완성했던 것이다. 다 함께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그의 상사와 청와대 관계자들도 박 경정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리라. 그렇게 재미있는 소설을 일부 관계자들만 즐긴다는 건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들로서 있을 수 없는 일, 언론을 통하여 전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은 물론 소설 속의 주인공들(정윤회, 박지만 등)을 불러 검찰청에서 차도 한 잔씩 대접함이 마땅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었던 듯하다. 그나저나 박 경정은 이제 대한민국 작가협회 정식 회원으로 등록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의 코미디극은 '대통령 당선 2주년 선물(가제)'이다. 알다시피 오늘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성된 지 2주년이 되는 날이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노고를 치하하고, 당선 2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409일 동안 준비했다고 한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선물을 대통령께 드린 셈이다. 그동안 박 경정이 쓴 소설과 되는 일 하나 없는 국가 운영에 속이 문드러질 대로 문드러졌을 텐데 늦게나마 여론과 언론의 압박으로부터 대통령의 숨통을 틔워준 일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찬조출연한 어버이 연합 등 보수단체의 멋진(?) 퍼포먼스도 있었다.

 

정말 웃을 일 없는 시기에 조금이라도 국민을 웃게 만들려는 국가의 노력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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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유난히 글이 잘 써지는 날이 있다. 미리 구상한 것도 아닌데 술술 풀려나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남에게 내놓고 자랑할 만큼 멋진 글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 날 나는 그날 있었던 일을 곰곰 되짚어 보게 된다. 좋은 꿈을 꾸었다거나, 뜻하지 않은 횡재가 있었다거나, 난데없는 칭찬을 들었다거나 뭔가 다른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다 할 공통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여느 날보다 기분이 좋았던 것도 아니고, 책을 더 열심히 읽었던 것도 아닌데 미리 준비된 원고처럼 글이 쉽게 쓰이는 걸 보면 도통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쓰인 글에는 여지없이 많은 댓글이 달린다. 물론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읽으면 초등학생 수준의 글로 비춰질 게 뻔하지만 말이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날은 정말 고심하여 리뷰를 쓰는 경우도 있다. 몇 번씩이나 글을 수정하고 반복하여 읽어본 후 괜찮다 싶어 올린 글임에도 불구하고 평가는 냉담할 때가 있다. 어떤 칭찬이나 대가를 바라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어깨가 처지고 풀이 죽는다.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의심도 해보지만 딱히 이렇다 할 만한 게 없다. 기껏해야 짧은 리뷰나 일상에서 벌어지는 잡담 수준의 글을 쓰면서 이런 고민을 하는 것도 우습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말이다. 수정이나 퇴고도 없이 단숨에 써내려간 글에 댓글이 달리는 걸 보면 나름 신기할 때가 더러 있다. 모르긴 몰라도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은 보이지 않는 어떤 끈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다. 모임도 잦고 밀린 일도 많다 보니 요즘은 이웃 블로거의 글도 읽어볼 시간이 없다. 미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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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4-12-18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공감하는 부분이 있어서 읽다가 소리내서 웃었네요~ :)

꼼쥐 2014-12-19 14:26   좋아요 0 | URL
다들 비슷하신가 봐요. ㅎㅎ

2014-12-19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19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의 조선미술 순례』


디아스포라 서경식이 만난

조국의 미술과 미술가들



나의 서양미술 순례』 이후 20년,

디아스포라 서경식의 또 다른 미술 순례기



한국의 많은 독자들이 서경식이라는 이름을 저자로서 기억하게 된 것은 1993년 번역 출간된 『나의 서양미술 순례』 덕분일 것이다. 이 책은 이제는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와 거의 하나의 분야로 자리 잡은 ‘미술 기행’의 거의 첫 출발에 해당하는 책이었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판매되는 몇 안 되는 미술 기행기이기도 하다.

많은 독자들이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통해 그림 읽기의 새롭고도 친근한 방법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조국에서 옥살이를 하는 형들(서승, 서준식)의 옥바라지를 하는 30대의 재일조선인 청년에게 유럽의 다양한 미술관에서 만난 작품들은 지하실에 난 창문으로 겨우 들어오는 희박한 공기였다고, 저자는 그 책에서 기록한 바 있다. 예술이 역사와 현실과 삶과 독특하게 뒤섞이며 서로를 해석하거나 확장하는 놀라운 장면들이 그 책에 가득 담겨 있었다.

이번에 출간되는 『나의 조선미술 순례』에서 저자는 이제 60대가 되어 유럽의 미술관이 아닌 한국의 미술관들을 순례한다. 30대의 재일조선인 청년이 집착했던 주제들, 죽음, 섹슈얼리티, 가족, 민족…… 같은 것들이 여전히 60대 재일조선인 노교수의 눈과 귀와 온갖 감각들을 사로잡고 날카로운 통찰들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과 삶의 변화를 따라 미묘하게 달라진 지점들 역시 드러난다.

가령 저자는 이제 홀로 유럽의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작품과 고독하게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 F와 함께 때로는 제자들과 함께 ‘조국’의 미술관을 찾는다. 그리고 정말로 원한다면 그 작품을 만든 작가들과 직접 한국어로 대화를 할 수도 있다. 조국은 더 이상 그가 70년대에 보았던 군사독재 치하의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또 이제 형들의 옥바라지를 위해 조국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구와 활동을 위해 찾게 되었다. 이렇듯 달라진 상황에서 저자는 20년 전, 30년 전 그림들 앞에서 던졌던 것과 똑같은 물음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이번에는 이 물음들에 답할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이전에는 단순히 목격자에 머물 수 있었던 독자들을 이번 순례에는 더 깊이 동참시킨다. 위의 답을 혼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20~30년 전의 그 순례와 지금의 이 순례의 미묘한 차이들을 읽어내는 것은 작가 자신의 변화를 읽어내는 일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나 자신의 변화를 읽어내는 일이 된다.

한편 『나의 서양미술 순례』와 『나의 조선미술 순례』를 나란히 놓고 보는 일은 마치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나란히 걸린, 렘브란트의 34세 때와 63세 때의 자화상을 보는 일 같기도 하다.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삶의 질문, 궁극의 질문에 대한 답을 갈구하는 그 빛나는 눈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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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인간 - 분석심리학자가 말하는 미래 인간의 모든 것
이나미 지음 / 시공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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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 성당에 가면 미사 중에 신자들끼리 평화의 인사를 주고받는다. 미사를 주재하는 신부님이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면, 신자들이 한 목소리로 '또한 사제와 함께' 한다. 그리고 양 옆과 앞뒤 좌석에 있는 신자들을 향해 서로 가벼운 목례를 하며 '평화를 빕니다. 평화를 빕니다.' 인사를 하게 되는데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이든, 처음 본 사람이든 모두 그렇게 한다.

 

다소 엉뚱하지만 나는 '평화를 빕니다.'라는 인사를 받을 때마다 '고독을 빕니다.'로 해석하곤 한다. 상대방의 발음이 부정확하거나 내 귀가 어두워서 그렇게 듣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귀가 어두워도 '평화'를 '고독'으로 알아들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나는 다만 평화와 고독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전쟁이나 갈등이 없이 평온한 상태를 우리는 '평화'라 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위험을 느끼지 않는 상태에서의 인간은 '연대(連帶)'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평화가 지속될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속력은 약해지게 마련이다. 새로운 관계의 추구나 기존 관계의 유지도 느슨해질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한 권의 책을 선물 받았다. 책의 제목은 <다음 인간>. 신경정신과 전문의이자 분석심리학자인 이미나의 신작이다. 딱히 관심이 가는 책도 아니었고, 그닥 재미있는 책도 아닌 듯하여 며칠 동안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랬더니 웬걸, 나에게 책을 준 분과 우연히 마주쳤는데 나보고 다 읽었느냐 묻는 게 아닌가. 뜨끔했었다. 내가 우물쭈물 답변을 흐리자 재미있는 책인데 뭐 그렇게 오래 걸리느냐 타박 아닌 타박을 하셨다.

 

그날 저녁에 나는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이 책을 쓴 저자의 의도는 단순했다.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의 발달이 우리 인간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 미래의 인간상인 '다음 인간'은 어떤 모습일지 추측하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에 따른 생활상의 변화 또는 소비패턴의 변화 등 실생활과 밀접한 외부 환경의 변화를 추측하는 책은 많았지만 인간 내면의 변화를 예측하는 책은 상대적으로 적었고 우리의 관심도 뒤떨어졌던 게 사실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래의 인간상에 대해 다소 비관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요즘 청소년들의 행태만 보아도 충분히 그렇게 예측할 수 있지만 말이다. 예컨대 무감동과 타성에 젖은 사람들, 사이코패스, 관계의 해체, 감정이 부족한 R 세대의 출현, 에볼라 바이러스 같은 전염병의 세계화 등을 예상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음 세대의 인간상을 예측해 보고 문제의 해결책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이야기이다.

 

"오늘날 빈부의 격차는 점점 더 심해지고 신자유주의가 세습자본주의로 정착되면서 젊은이들은 패기를 잃었고 노인들은 여유를 잃었다.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기 힘들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물론 정치나 경제의 구조적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회 구성원들이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p.15)

 

그러나 나는 위 대목에서 저자와 의견을 달리 한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발생하는 문제는 어떤 제도나 시스템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물질적 풍요와 평화의 지속에서 오는 문제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예컨대 삶에 대한 애착이나 결속의 필요성은 결핍이나 생명의 위협이 증가할 때 나타나는 인간 심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는 전쟁이나 기아, 범죄와 질병 등 인간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요소들이 많았다. 이러한 문제는 개개인이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인간 관계의 중요성, 사회 공동체나 국가 공동체를 통한 결속의 필요성을 절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가족 구성원에 대한 사랑,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에 따른 위험 요소의 감소는 물질적 풍요와 육체적 편리를 가져다 준 반면 적극적인 인간 관계의 도모, 꿈과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열정, 가족 구성원과 국가 구성원에 대한 애정과 감사는 상대적으로 약해지게 된다. 필연적으로 말이다. 먹고 살 걱정이 없는데 굳이 일을 할 필요도 없고, 전쟁의 위협이 없는데 굳이 내 나라를 고집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미디어의 발전은 최소한의 인간 관계를 유지 가능하도록 만들어 준다. 애써 노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죽음과 종교에 대한 문제만 해도 그렇다. 저자는 종교의 쇠퇴와 종교인의 파산을 예측하면서 통합 종교의 출현도 예고하고 있다. 자살클럽의 증가와 잉여 살해를 돕는 비밀 조직의 등장도 말한다. 이것이 과연 사회 시스템이나 구조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일까? 나는 오히려 물질적 풍요, 평화의 지속에서 오는 삶의 '권태'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생명에 대한 위험 요소가 많을 때에는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지지만 그러한 요소가 사라졌을 때는 오히려 삶은 따분하고 권태롭기만 한 것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참치를 잡으면 냉동 상태로 반입되지만 냉동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참치를 살려서 들여와야만 했다. 원양어선에서 잡은 참치를 국내에 반입할 때까지 더 많이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던 중 참치 수조에 상어 새끼 한 마리를 넣어 두는 방법이 고안되었다. 참치만 담아 왔을 때는 폐사율이 높았지만 천적을 한 마리 넣어 둠으로 해서 폐사율이 현격히 떨어졌다고 한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칠 수밖에 없었으므로.

 

"미래에 대한 비전은 안팎으로 곤경에 빠졌을 때 포기하려는 나를 격려해주고, 때로는 건강하게 타협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일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대로 주저앉지 않고 다시 시도해볼 수 있게 도와준다. 청사진을 갖고 씩씩하게 무언가를 시작했지만 도중에 크고 작은 실패에 좌절해 자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싶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은 다시 한 번 자신을 추스리게 만든다. 이것이 이 책에서 미래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펼친 가장 중요한 이유다." (p.238)

 

요즘 아이들에게 결핍이나 생명의 위협을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따금 지구의 어느 곳에서 내전이나 자연재해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는 기사가 전해지기는 하지만 그것은 개별적이고도 직접적인 죽음은 아니다. '살아야겠다' 또는 '열심히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는 풍요와 평화가 인간의 내면을 심하게 부패시킨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평화를 빕니다'는 인사는 '고독을 빕니다'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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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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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 무슨 대작이 있겠습니까마는 몇 년째 준비하면서도 끝내 쓰지 못했던 책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몇 달도 아닌 몇 년째. 남들이 들으면 내가 마치 신춘문예에 출품할 작품이라도 구상하고 있으려니 생각하겠지요. 부끄럽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나는 다만 책을 읽고 느꼈던 그 충만한 감동을, 그 순간의 내 솔직한 감정을, 언어 밖의 풍경으로 그려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나는 허섭스레기와 같은 글을 몇 줄 쓰다가 지우고,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생각나서 또 쓰고 하기를 몇 년째 반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그것은 짝사랑하는 연인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마냥 쭈볏거리기만 하는 숫총각의 마음과 같았습니다.

 

나는 작품 속 하나하나의 문장에 밑줄을 긋고, 의미를 되새기고, 부풀어 오른 감상에 젖어 확대해석하기도 하고, 때로는 나름의 생각을 끄적거려보기도 했지만 낙서는 낙서로만 존재할 뿐 그것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 하나의 완성된 문장, 마음에 흡족한 글로 재탄생하지는 못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고스란히 글로 옮긴다는 게 어찌나 어려운 일이던지요. 거칠고 미욱한 나 자신을 탓해본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답답하고 속만 뒤집히는 것을요.

 

아무튼 나는 이제는 더 이상 이렇게 마냥 시간만 허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어떻게든 매듭을 짓고 넘어가야 겠다 마음 먹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무척이나 각별했던 책, <그리스 인 조르바>는 그런 책입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입니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고등학교 시절, 대학 캠퍼스를 오가며 짬이 날 때마다 읽고 또 읽었던 대학 시절, 힘든 사회 생활 속에서 사람들과 부대끼고 지쳐갈 때마다 문득문득 생각나서 이곳저곳을 펼쳐 보곤 했던 멀지 않은 과거, 책을 붙들고 씨름을 하듯 처음부터 다시 읽었던 근래의 날들을 생각하면 나는 왠지 눈물이 솟을 것만 같습니다.

 

"......산다는 게 곧 말썽이오. ......죽으면 말썽이 없지. 산다는 것은...... 두목, 당신,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삶이오." (p.159)

 

위의 인용문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숨이 멎는 듯했습니다. 풀리지 않는 화두 하나를 받아든 느낌이었죠. 산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어렴풋이 짐작하던 그 시기에 '산다는 게 말썽'이라는 한마디 말은 왜 나를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게 했던 것일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소설의 얼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관념에 사로잡힌 서른다섯 살의 젊은이와 순간순간의 삶을 사랑했던 예순다섯 살의 노인이 크레타 섬에서 펼치는 한 판의 춤사위, 관념과 실재가 어우러진 한 편의 서사시 정도로 해두어야 겠군요.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오직 조르바만 믿지. 조르바가 딴 것들보다 나아서가 아니오. 나을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요. 조르바 역시 딴 놈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오! 그러나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내가 아는 것 중에서 아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조르바뿐이기 때문이오. 나머지는 모두 허깨비들이오." (p.86)

 

"부드럽게 비가 내리는 시각에 그 비가 내부의 슬픔을 일깨운다는 것은 얼마나 관능적으로 즐거운 일인가! 그럴 때면 의식의 심연에 숨어 있던 쓰디쓴 추억, 친구와의 이별, 사라져 버린 여자의 미소, 날개를 잃고 다시 구더기가 되어 버린 나방의(구더기는 내 심장으로 기어오르며 심장을 갉아먹고 있었다) 덧없는 희망 같은 쓰디쓴 추억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른다." (p.141)

 

나는 이 책을 통하여 삶의 본질을 꿰뚫는 나 나름의 시각을 배웠던 셈입니다. 한때 철학에 매료되어 현실적인 이상이나 꿈보다는 인간의 정신이나 영혼, 도덕적 관념이나 불변하는 진리를 추구했던 나에게 있는 그대로의 삶을 열정적으로 붙잡으려 했던 조르바의 태도는 충격적이다 못해 말을 잃게 할 정도였습니다. 단지 인식의 차원에서 머물렀던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가 심장 가까이로 '쿵'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한 번뿐인 삶이기에 어느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헌신짝처럼 버린다는 게 상식적으로 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인간 본질은 야만스럽고, 거칠며 불순한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사랑과 육체와 불만의 호소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을 추상적인 관념으로 승화시켜 보라. 정신의 도가니 속에서 연금술의 과정을 쫓아 순화시키고 증발시켜 보라." (p.209)

 

"최후의 인간은 자신을 비운 인간이다. 그 몸에는 씨앗도 똥도 피도 없다. 모든 것은 언어가 되고, 언어의 집합은 음악이 되어도 최후의 인간은 거기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절대의 고독 속에서 음악을 침묵으로, 수학적인 방정식으로 환원시킨다." (p.209)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은 후회를 양산하는 일련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실재하지도 않는관념과 도덕에 얽매어 자신의 삶을 출구가 없는 한 귀퉁이로 몰고, 종국에는 손과 발을 옥죄어 엉뚱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요.

 

"나는,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지식도, 미덕도, 선도, 승리도 아닌, 보다 위대하고 보다 영웅적이며 보다 절망적인 것, 즉 신성한 경외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p.415)

 

"어릴 때부터 나는 초인(超人)에 관한 야망과 충동에 사로잡혀 이 세상일에 만족하지 못했다. 차츰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조용해졌다. 나는 한계를 정하고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인간적인 것과 신적(神的)인 것을 가르고 내 연(鳶)을 놓치지 않도록 꼭 붙잡았다." (p.463)

 

너무나 이질적인 두 사람의 만남은 결국 시간의 궤도를 달려 하나의 소실점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한의 영역으로 말입니다. 그 어둠의 영역에서 우리가 태어났고 다시 그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인지, 무한광대의 우주 속으로 어느 날 갑자기 '나'라는 생명체가 뚝 떨어졌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한 사람이 살다간 핏방울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길 뿐입니다. 진정으로 삶을 사랑했던 어느 자유인의 절규를 오래도록 기억할 뿐입니다.

 

"꺼져가는 불 가에 홀로 앉아 조르바가 한 말의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의미가 풍부하고 포근한 흙 냄새가 나는 말들이었다. 존재의 심연으로부터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 한 그런 말들이 따뜻한 인간미를 지니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으리. 내 말들은 종이로 만들어진 것들에 지나지 않았다. 내 말들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것이었다. 말에 어떤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그 말이 품고 있는 핏방울로 가늠될 수 있으리." (p.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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