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사회에서의 개인은 정보의 무차별적인 공습에 의해 쉽게 상처받고 그 상처받은 개인이 자신도 모르게 정형화된 어떤 보편적인 틀(또는 룰)에서 벗어난 행동을 할 때 자신이 속한 사회로부터 방치되고 소외되는 것은 주변에서 너무도 흔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현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시큰둥하고 뜨뜨미지근할 뿐이다. 같은 일을 되풀이하여 목격함으로써 우리가 처음에는 충격으로 받아들였던 한 사건은 점차 퇴색하여 희미해져가고 사회로부터 도태되거나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알 수 없는 죄책감이나 서글픔은 먼 옛날의 신화처럼 산화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것은, 아직은 도태되지 않은 나 자신도 언젠가는 사회로부터 추방된 무리 속에 속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그것이 현실로 일어날 가능성은 백 퍼센트에 가깝다. 나이가 들거나, 병이 들거나, 어떤 사고로 인하여 장애를 입거나 하는 피할 수 없는 육체적 손실로 인하여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소외되었을 때 '나만 아니면 돼.'하는 식의 차디찬 눈길을 받는다면 그 기분은 어떨지.

 

오늘은 세월호 승무원들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 있었던 날이다. 선장과 나머지 14명의 승무원에 대한 판결이 있었고 그것으로서 세월호 사건은 일단락이 된 것으로 치부될지 모른다. 진실도 밝혀진 게 하나도 없는 이 마당에 세월호 유가족들은 어쩌면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영원히 잊혀질지도 모르고 사회에 편입되어 평범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그들의 필사적인 노력은 사회를 위협하는 적대적 행위로 인식될 수도 있다. 물대포와 최루액을 뿌린 경찰의 행태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오죽하면 국제엠네스티도 “평화적인 집회와 행진을 진압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그 유가족 모두에 대한 모욕적인 처사”라고 비판했겠는가.

 

세간에 떠돌고 있는 '성완종 리스트'도 따지고 보면 어느 한 개인의 욕심에 의한 뇌물 수수 사건이 아니고 현 정부의 정권 획득 시기에 있었던 비열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이나 대중은 거론된 인물들만 하루 빨리 도태되기를, 그렇게 됨으로써 사건에 연루되었지만 드러나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게 불똥이 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듯하다. 대중으로부터 추방된 한 개인은 상처받기 쉽고, 그 상처받은 개인은 대중으로부터의 개별적인 관심을 받지 않는 한 치유되기 어렵다. 잊는 것과 잊혀진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야누스의 두 얼굴'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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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일상의 여백 - 마라톤, 고양이 그리고 여행과 책 읽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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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에서 읽게 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도무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작가의 애기라고 예외일 리 없다. 아무리 심각한 이야기를 할지라도 '뭐, 그럴 수도 있지.'라거나 '음, 그렇군.'정도의 반응만 보일 뿐 '설마, 그럴 리가?' 하는 식의 호들갑은 떨지 않는다는 말이다. 내 손에 난 상처가 아니어서 아픔을 느낄 수가 없다고 말한다면 내가 너무 야박하다고 힐난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책에서 읽는 이야기는 대부분 작가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이라고는 해도 다 지난 옛일일 뿐이고 지금은 어느 누구보다 행복하게 잘살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게다가 힘든 일을 겪던 그 당시에도 작가는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고. 사실 그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눈물을 철철 흘린다는 것도 조금은 주책맞아 보인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그가 쓴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더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종종 만나게 된다. 사실 하루키의 에세이는 주변 풍경을 스케치하듯 가볍게 쓰거나 마치 남의 일인 양 쿨하게 쓰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땀으로 젖은 옷이 척척 감기는 듯한 끈적끈적한 수필만 읽어 왔던 독자들은 마치 신세계를 만난 듯 '유레카!'를 외치곤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옆집에서 외치는 '유레카!'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면 하루키의 팬이 한 명 더 늘었다는 얘기일 수 있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즐겨 읽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하루키 일상의 여백>을 특히 좋아한다. 자신의 사생활이 드러나는 걸 극도로 꺼려하는 까닭에 인터뷰도 자제하는 그이지만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의 사생활을 비교적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글쓰기와 마라톤, 여행과 재즈, 고양이에 얽힌 이야기 등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드러낸 에세이 모음집이다. 작가는 <태엽 감는 새>를 집필하던 시기에 보스턴 근교의 대학 마을 케임브리지에서 보낸 2년 간의 생활을 이 책에 담고 있다.

 

"그건 그렇고 지금까지도 세상 사람들은 작가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 같은 걸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작가라는 작자들은 밤을 새우기 일쑤고, 줄창 단골 술집에 드나들면서 술이나 퍼마시고, 가정은 거의 돌보지 않으며, 게다가 지병(持病) 하나둘쯤은 누구나 갖게 마련이고, 원고 마감일만 되면 호텔 같은 곳에 틀어박혀서 머리칼을 마구 쥐어뜯고 있는 족속이라고 믿는 것 같다." (p.16)

 

'밤에는 대개 열 시에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는 여섯 시에 일어나 매일 조깅을 하며, 한 번도 원고 마감일을 넘긴 적이 없다는 그는 우리가 갖고 있음직한 작가에 대한 신화적 이미지를 여지없이 깨트리지만 일시적으로 디아스포라의 삶을 선택하는 그의 내면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는 듯하다. 불건전한 영혼의 정화를 위해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하는 것하며, 이웃집 고양이 코타로 이야기, 자동차를 도둑맞고 되찾기까지 고생한 이야기, 중국과 몽골을 여행할 때 곤혹스러웠던 중국 음식 알레르기, 그리고 소설 쓰기와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 이야기 및 재즈와 영화 이야기 등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 대하여 작가는 애정을 담아 풀어놓는다. 나는 이 책에서 이따금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듯한 여유와 자유로움을 느끼곤 한다.

 

작가는 미국 생활에서 겪었던 소소한 즐거움들, 이를 테면 통신 판매를 통하여 구입했던 빨래 건조대와 고양이 손목시계, 대학 동료로부터 처음 배운 스쿼시, 결혼 전 힘들었던 시기를 같이 견딘 고양이 피터에 대한 추억 등 세계 어느 곳에서도 있을 법한 이야기를 가볍게 쓰다가도 어느 순간 문득 진지해지곤 한다.

 

"때때로 문득 혼자서 살아가는 것은 어차피 지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정말 피곤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나름대로 힘껏 살아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개인이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 존재 기반을 세계에 제시하는 것, 그것이 소설을 쓰는 의미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p.74)

 

다른 에세이집과는 다르게 중간중간 일상의 모습이 담긴 원색 사진이 실려 있다. 그가 통신 판매로 구입한 목조 빨래 건조대며, 찰스 강 기슭의 갈매기,고양이 코타로, B.B. 킹의 콘서트 풍경 등 책에 실린 사진들은 글과 함께 작가의 일상을 보여주는 가벼운 터치처럼 신선한 느낌을 준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에서 나는 특별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

 

시간은 조용히, 그리고 쉬는 일도 없이 흘러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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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의 즐거움 - 인생을 해석하고 지성을 자극하는 수학 여행
스티븐 스트로가츠 지음, 이충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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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넬대학의 응용수학과 교수인 스티븐 스트로가츠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유치원 과정에서부터 대학원 과정에 이르기까지 수학의 모든 것을 쉽게 설명하는 이 여행에는 수학과 친해질 또 한 번의 기회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동참할 수 있으며, 친절한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흥미진진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다만, 이번에는 어른의 시각에 초점을 맞춰 안내할 것이다. 이 여행의 목적은 부족한 수학 실력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수학이란 무엇이며, 수학을 이해하는 것이 왜 그토록 즐거운 일인지 깨닫게 하는 것이 주 목적이다." (p.15~p.16)

 

수학은 어려운 과목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말하고 나 또한 그 의견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그러나 어렵다는 말과 재미없다는 말이 같은 뜻인 양 떠벌리는 사람의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것은 결코 같아질 수 없는, 어쩌면 근처에도 가지 않는 별개의 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수학은 어렵다.=수학은 재미없다."로 인식하거나 동일한 명제인 양 혼동하곤 한다. 두 명제가 관련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과목이든 아는 게 적으면 적을수록 점점 더 재미가 없어지는 법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같은 또래에 비해 아는 게 적다는 의미의 상대적 개념으로서 말이다. 그것은 또한 자신도 모르게 '또래집단이라는 경쟁 구조 내에서의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취미로서의 수학은 어떤가? 이 질문에 대해 '에이, 세상에 수학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말도 안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드문 경우다. 인정한다. 나 또한 수학을 취미로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보면 '수학을 취미로 가지려는 사람은 왜 없는가?' 반문하게 된다. 결혼도 한 어른이 피아노 연주를 취미로 갖기 위해 피아노 학원에 등록하는 것처럼 수학을 취미로 갖기 위해 수학 학원에 등록하는 어른이 있을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그런 어른은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말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동호회 중에 '어른을 위한 수학 동호회'는 존재할까? 나는 본 적이 없다. 세상에는 별별 희한한 동호회도 많은데 말이다. 가령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었을 때의 스릴이나 성취감은 외발자전거 묘기에 도전하여 성공했을 때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외발자전거 동호회는 있어도 수학 동호회는 없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잠시 나도 모르게 열을 받아 혼자 떠들었나 보다. 아무튼 이 책 <X의 즐거움>은 어른들을 위한 수학책이다. 이 책은 단순한 '수'에서부터 음수와 양수, 소수, 복소수, 근의 공식, 기하학, 피타고라스의 정리, 미적분학, 벡터미적분학, 구면기하학, 미분기하학, 해석학 등을 일상생활과 연결해 설명하는데, 상당수는 배운적이 없는 내용(혹은 기억하지 못하는 내용)이라 '과연 이 책을 읽고 일반인이 수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마냥 어렵게만 씌어졌다는 얘기는 아니다. 선형대수학을 응용한 구글의 성공이나 조지 부시 대통령의 감세 정책 등 어른들도 재미있어 하거나 관심을 끌 만한 내용이 눈에 띈다.

 

"증명은 현기증이나 과도한 졸음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장기간 노출의 부작용으로는 야간 발한, 공황 발작, 그리고 드물게 이상 황홀감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증명이 여러분 건강에 괜찮은지 사전에 의사에게 문의하세요." (p.126)

 

어른이 수학을 배우거나 공부한다고 하여 창피함을 느낄 사람은 없다고 본다. 오히려 나름 뿌듯해 하거나 보람을 느꼈으면 느꼈지. 물론 다른 이점도 있다. 다른 분야의 공부에서는 잘 경험할 수 없는 몰입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어른들이 수학을 싫어할 거라는 편견은 그야말로 편견일 뿐이다. 어떤 학문이든지 성적에 따라 석차를 매기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즐겁게 공부할 수 있고 언제든 뿌듯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어른이라면 적어도 그런 위치에 있는 것이다. 순수한 동기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누구보다 더 좋은 점수를 받을 필요도 없고, 정해진 시간 내에 문제를 풀 필요도 없는 것이다. <X의 즐거움>은 그 길잡이 역할을 할 뿐이다. 조금 더 실력이 붙으면 혹시 아는가 필즈상에 도전하게 될지. 장담하건대 이 책을 다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학창시절에 앓았음직한 수학 기피증을 완전히 치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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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04-28 23:24   좋아요 0 | URL
저는 다행히 수학의 기피증은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 수학 기피증을 치료할 수 있군요.
책 전체의 내용들이 궁금하네요.

책을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꼼쥐 2015-05-01 13:30   좋아요 0 | URL
개념 위주로 재미있게 써놓은 책입니다. 사실 수학을 재미있게 이해시킨다는 건 웬만한 전문가가 아니고는 힘든 일이죠. 이 책의 저자는 수학에 있어서만큼은 탁월한 실력가인 듯. 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정말이지 낮잠이 쏟아질 때는 달리 대처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그저 조용히 물러날 시간만 손꼽아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할 일이 없다는 얘기다. 지금으로부터 십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나는 낮잠 때문에 교통사고를 낸 적이 있었다. 교통사고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가벼운 수준이었지만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걸 보면 내게는 꽤나 큰 충격이었던 듯하다. 원주 치악산에서 점심을 먹은 후 채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아 출발한 게 잘못이었다.

 

고속도로는 여주를 지나면서 주차장을 방불케 했고, 차들은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나른한 봄햇살이 차의 앞유리로 마구 쏟아졌고 아내는 피곤했는지 이내 잠들어버렸다. 차 안에는 도로만큼이나 답답하고 무거운 공기 사이로 끈적한 졸음이 둥둥 떠다니고 잇었다. 앞차의 브레이크등을 보며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이천까지 왔을 때 나는 한계에 도달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가서 다음 휴게소에서 잠깐 자고 가야겠다' 생각했는데, 아뿔사! 그만 앞차를 뒤에서 받아버렸다. 잠이 확 달아났다. 앞차의 뒷범퍼가 찌그러들고 내차의 앞범퍼와 보닛이 긁혔다. 깜박 졸다 일어난 불상사였다. 다행히 사람은 누구도 다치지 않았고 앞 차의 차주와는 명함을 주고 받은 후 헤어졌다.

 

그 후로 나는 점심 식사 후의 운전을 상당히 꺼리게 되었다. 오늘 낮에도 운전을 하여 나갈 일이 있었지만 어찌나 잠이 쏟아지던지 결국에는 취소하고 말았다. 졸음을 쫓으려고 책을 펼쳤었는데 그게 오히려 역효과를 낳은 셈이었다. 일교차가 심하게 벌어지는 탓도 있는 듯했다. 아침에는 제법 서늘했는데 낮기온은 더위를 느낄 정도로 오르니 몸인들 정상 컨디션이겠는가. 이럴 때는 한숨 늘어지게 자고 싶은 생각뿐 다른 어느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게 또 주말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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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세트 (전2권)
문학사상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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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남들보다 더 큰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침묵이 주는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여 TV를 켤 때가 있습니다. 아마 혼자 실아본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실 겁니다. 방안 가득 눅눅하게 퍼져 있는 고요를 걷어내기 위해서는 어떤 소리든 반드시 필요한 법이지요. 그럴 때 보게 되는 게 뉴스입니다. 요즘은 뉴스를 송출하는 방송사가 워낙 많아서 어떤 뉴스를 볼지 선택하는 것도 쉽지 않은 듯합니다.

 

방안에 쌓인 침묵이나 밀어내자 생각하며 보게 된 뉴스 채널이 JTBC입니다. 그렇습니다.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이지요. 프로그램이 저녁 8시에 시작하는지라 매일 보지는 못하고 어쩌다 집에 일찍 귀가한 날만 보게 되더군요. 뉴스 포맷도 다른 방송사와 차별되는 듯하고, 아무튼 나는 참신하다는 느낌을 받은 게 사실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손석희 앵커의 차분한 진행을 예전부터 좋아했던지라 설령 내 맘에 들지 않는 다른 무엇이 있었다 해도 그냥 내처 보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

 

한 달 이상 지난 얘기지만 손석희 앵커가 3월 12일 오전 서강대학교 개강 축복 미사에서 특강을 했더군요. '새 봄을 맞는 후배님들에게'라는 주제로 말입니다. 그는 누군가로부터  "너는 자격이 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대단히 행복했다"고 합니다. '마르첼리노'라는 세례명을 가진 천주교 신자이기도 한 손 앵커의 연설 일부를 옮겨 보겠습니다.

 

"내년이면 환갑인 저는 요즘, '너는 자격이 있다'는 말을 의문문으로 바꿔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나는 자격이 있는가?' 이렇게 의문문으로 바꾸면 '자격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와 반대의 감정이 든다는 걸 느낍니다. 제가 저에게 던지고 있는 이 질문을 여러분도 늘 던져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너는 자격이 있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것이 새 봄을 맞는 후배들께 드리는 오늘의 주제입니다."

 

누구나 그렇겠습니다만 세상이 참을 수 없이 무정하다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정치 음모, 폭력, 속임수 등 비정한 세계의 단면들을 우리는 뉴스를 통해 매일매일 목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국가적 범죄가 아니더라도 냉담한 세계에서 받는 상처는 일상이 된 지 오래이지요. 경쟁을 강요하고 기준을 못 따르면 내쳐지는 것은 비단 직장뿐 아니라 학교와 가정까지 파고든 듯합니다. 참으로 냉정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세계는 개인에게 결코 따뜻하지 않습니다. 약간은 생소할 수 있는 ‘하드보일드’라는 말이 원래의 맥락을 떠나도 익숙하게 여겨지는 건 지금을 사는 우리 모두가 세계의 비정함을 피부로 실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2>는 제1부 마음을 버리고 사는 사람들, 제2부 숲 속의 겨울에 피는 꽃, 두 권 속에 전체 4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 소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와 그 속에서 삶을 누리는 인간의 삶을 현실과 비현실(의식과 무의식)의 세계 깊숙이 파고들어 가, 두 세계를 번갈아 가며 평행적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특이한 형태의 소설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하루키 문학의 진수로 이 책을 꼽곤 하지요. 하루키 문학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작가는 작가 본인의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함으로써 작가가 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삶을 대하는 자세 등 독자가 소설을 통해 취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느끼게 합니다.

 

"인식 하나로 세계는 변화하는 거야. 세계는 분명히 여기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지만, 현상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세계란 무한한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하지. 자세하게 말하자면 자네가 오른쪽 발을 내밀까, 왼쪽 발을 내밀까, 하는 데 따라 세계는 변해 버린다 그거야. 기억이 변화하는 것으로 세계가 변화한다 해서 이상한 건 아무것도 없네." (2권, p.156)

 

이 소설은 두뇌 속의 의식을 편집 당해 기억을 잃어버린 '나'의 모험이 벌어지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자신의 마음을 버린 대가로 도서관에서 일각수의 두개골에 새겨진 오래된 꿈을 읽는 일로 하루하루 평온하게 살아가던 '나'가 탈출을 꿈꾸는 세계의 끝, 두 이야기가 한 편씩 교차되어 전개됩니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주인공인 나는 서른다섯 살의 이혼한 적이 있는 독신 남자로서 직업은 계산사이고 두뇌에 입력된 정보를 암호화하는 일과 다시 풀어내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샤프링 시스템을 개발한 노박사가 나의 의식 속에 자신이 다시 편집한 의식의 핵을 집어 넣어, 3일 후에는 자신과는 별개의 의식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됩니다.

 

"나의 추론은 이런 것이었어. 즉 뇌에 설치한 분기 장치의 기능이 헐거워졌거나, 타버렸거나, 소멸되었거나 해서 사고 시스템이 혼탁해지고, 그 혼탁해진 에너지의 힘에 의해 뇌의 기능이 견뎌 낼 수 없게 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야. 만약 분기 장치에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면,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의식의 핵을 해방시킨 일 그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을 인간의 뇌가 견디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2권, p.131)

 

"그러나 이유야 어쨌든 자네의 의식 속에서 세계는 이미 끝나 있어. 거꾸로 말하면 자네의 의식은 세계의 끝 안에서 살고 있는 셈이지. 그 세계에는, 지금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의 대부분이 빠져 있다네. 거기엔 시간도 없고, 공간의 확장도 없고, 삶도 없고, 죽음도 없고, 정확한 의미에서의 가치관이나 자아도 없다네. 그 곳에서는 짐승들이 사람들의 자아를 통제하고 있지." (2권, p.136)

 

나는 노박사로 인해 내가 소속된 계산사 조직과는 다른 기호사들 조직과, 지하 세계를 지배하는 야미쿠로 조직 사이에서 벌어진 정보 전쟁에 휘말리게 된 셈입니다. 나는 노박사의 젊은 손녀딸과 함께, 파란만장의 탈출극을 벌입니다. 한편 세계의 끝이라는 이 소설의 반쪽은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는 달리 정적이며 폐쇄적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주인공 나는 새와 일각수만 넘나드는 높은 벽에 둘러싸인 작은 도시에서, 자신의 그림자(마음)를 버린 대가로 평온한 생활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나는 도서관에서 일각수의 두개골에 숨겨진 오래된 꿈을 읽는 직업을 갖게 되는데, 이 도시의 벽을 넘어 올 때 문지기에게 맡긴 나의 그림자는 겨울의 모진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점차 병들어 죽어 가고, 나 역시 서서히 마음을 잃어 갑니다. 마음이 없다는 건 욕망도 싸움도 희로애락도 없는 평온한 상태이지만 감정이 없는 인간들, 영혼 없는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곳은 세계의 끝인 셈이죠. 그림자는 나에게 이 세계의 끝은 완벽하나 뭔가 잘못되어 있다면서 탈출을 권하지만 나는 결국 탈출 일보 직전에 그림자와 결별하고 내가 사랑하는 도서관 여자 직원을 찾아 갑니다.

 

"영원한 삶, 하고 생각해 보았다. 불사. "자네는 불사의 세계로 가려 하고 있네." 라고 노박사는 말했었다. 세계의 끝은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전환이며, 거기서 나는 진정한 나 자신이 되어, 이전에 잃어버렸고 지금 잃어 가고 있는 것들과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이라고.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도 맞을 것이다. 노박사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가, 내가 가게 될 그 세계가 불사라고 한다면 불사인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노박사의 말이 와 닿지 않았다. 그것은 너무나 추상적이고, 너무나 막연했다." (2권, p.251)

 

우리는 지금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욕심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희로애락의 여러 사건들이 난무하는 '하드 보일드 원더랜드'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마음을 잃은 채 모든 것이 완벽한 '세계의 끝'으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요. 불사를 위해 우리가 사는 '하드 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영원히 소멸될 것인지, 아니면 아등바등하며 사는 이 삶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는 걸로 만족할 것인지 선택하라면 어찌하시겠습니까.

 

"나의 소멸이 어느 누구에게도 슬픔을 주지 않고, 또 어느 누구의 마음에도 공허함을 남기지 않는다 해도, 혹은 또 그 어느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나의 문제다. 분명히 나는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것을 잃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은 나 말고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묘하게도 내 안에는 상실된 것들의 잔재가 마치 앙금처럼 남아 있어, 내가 지금까지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나는 이 세계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지 않다." (2권, p.338)

 

나는 이따금 TV를 켬으로써 침묵을 몰아내는 대신 침묵 속에서 더 깊은 침묵 속으로 침잠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 것, 지금 당장 떠오르는 생각들을 의식적으로 차단하면서 말입니다. 마치 소설 속 주인공 내가 자신의 그림자와 결별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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