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눈물 - 서경식의 독서 편력과 영혼의 성장기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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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이따금, 위기를 모면하고 용케 책장과 서랍 속에 살아남은 낡은 책들을 펼쳐들 때가 있다. 낙서와 손때로 지저분해진 책을 한 장 한 장 들추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 기뻐하고 슬퍼하던 감정들이 가슴 깊은 곳에서 어수선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성장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 자부심과 열등감, 희망과 실의가 격렬하게 교차하던 그 나날들이." (p.17)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글자가 갖는 의미를 무심히 지나쳐, 스쳐가는 영상과 이미지, 손끝에 전해져 오는 감촉과 아스라히 잊혀져가던 느낌들이 낱글자의 획 하나하나에서 되살아나는 경우가 있다. '서경식의 독서 편력과 영혼의 성장기'라는 부제가 달린 <소년의 눈물>은 작가의 서사 구조를 따라 내 어린 시절의 영상을 되살렸던 책이다. 가슴을 향해 짓쳐 오는 먹먹한 시간의 뒷편에는 배를 깔고 엎디어 책을 읽는 소년의 모습과 매섭게 몰아치던 겨울바람 소리와 탄광촌의 암울한 어둠이 마치 한 몸인 양 어우러지곤 한다. 그때의 느낌을 속속들이 표현할 자신은 내게 없다. 다만 가슴속으로부터 두서너 개의 문과 묵직한 덧문까지 밀어 제친 뜨거운 물이 눈가로 쭈뼛거리며 흘러넘칠 뿐이다.

 

일반 독자라면 혹 서경식을 모르는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 미술계에서는 익숙한 이름일 테지만 말이다. <나의 서양 미술 순례>로 유명해진 재일 조선인 2세 서경식을 나는 <경계에서 춤추다>라는 서간집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논리정연하고 반듯한 그의 생각이 퍽이나 맘에 들었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지' 생각했던 게 꽤나 오래 전의 일인데 나는 이제야 그의 작품 <소년의 눈물>을 읽었다.

 

'독서'를 이야기하는 책들은 대개 자신이 읽었던 작품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소년의 눈물>은 다르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책들은 국내 독자들이 읽어보는 것부터가 어렵고 작가도 딱히 원하는 바는 아닌 듯했다. 그보다는 오히려 작가가 성장해가면서 만났던 책들에 대한 감정을 이해하는 게 적절한 듯 보인다.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사춘기, 청년기에 읽었던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어떤 책을 읽었느냐가 아니라 왜 그런 종류의 책을 읽었고 당시의 상황은 어떠했는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등 책에 얽힌 자신의 삶을 폭넓게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서경식이 '살아온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나는 아직 사랑도 죽음도 이해하지 못하는 열 살짜리 꼬마였지만 이 한 편의 글을 애독했다. 그리고 글을 읽을 때마다 몸 한구석 어딘가가 스멀스멀 저려오는 듯한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 'Fate'란 '운명' 혹은 '숙명'을 뜻한다"라는, 글 말미에 달린 주석을 보고 나 역시 공책에 "Fate, Fate"라고 써두었다. 과연 나는 어떤 숙명을 짊어지고 있는 것일까? 어떤 운명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p.32)

 

작가는 <데라다 도라히코 작품집>을 읽던 이 무렵이 자신이 사춘기로 접어들던 입구가 아니었을까 회상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어른들의 눈을 피하여 고독하고 어둡고 조용한 곳으로만 찾아 헤매던 시절. 나의 어머니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광산 노동자들을 상대로 하숙을 쳤었다. 하숙생들의 퀴퀴한 땀냄새가 밴 지저분한 방에서, 갑,을,병 하루 삼교대로 일하는 하숙생들의 부재의 시간에 나는 그들이 사서 아무렇게 방치해 둔 책을 가리지 않고 꺼내 읽으며 무료한 시간을 달랬었다.

 

그때 내가 읽었던 책 중에는 박경리의 장편소설 <토지>가 있었다. 지면의 반을 나누어 세로쓰기 방식으로 인쇄된 <토지>의 깨알같은 글씨를 나는 정말 아껴가며 읽었었다. 하여 지금도 <토지>를 떠올리면 그 방에 떠돌던 하숙생들의 퀴퀴한 땀냄새가 먼저 맡어지곤 한다. 일부러 가둬둘 작정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도 한 번 밴 땀냄새는 그 방의 문지방조차 넘지 못했다. 그 방의 꽃무늬 벽지를 떠돌던 <토지>의 아름다운 문장들. "쓸쓸하고 안쓰럽고 엄숙한 잔해 위를 검시하듯 맴돌던 찬바람은 어느 사슬엔가 사람들 마음에 부딪혀와서 서러운 추억의 현을 건드려주기도 한다."

 

""눈 깜짝할 사이 저 답답하고 안타깝던 지난날에서 어느덧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나의 사춘기는 벌써 저 멀리 떠나간 것이다. 그러나『마의 산』을 정복하지 않는 한, 나는 언제까지고 사춘기 때의 번민을 떨쳐버릴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마의 산』은 사춘기 콤플렉스의 상징이요 끝까지 등정할 수 없었던, 영원한 미답의 봉우리와도 같은 존재이다." (p.163)

 

작가의 독서 체험은 다분히 그의 둘째형, 셋째형의 영향이 컸다. 서울대에 유학을 왔던 두 형들이 국보법 위반으로 감옥에 갇힌 몸이 되었을 때 "나에게 독서란 도락이 아닌 사명이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고 한다. 작가는 그 한마디 말에 자신의 독서를 깊이 되돌아 볼 수 있었고 말이다. '작가는 또한 <프란츠 파농 저작집>읽었던 기억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한 귀퉁이에서 울려퍼진 한 흑인 지성이 작가 자신을 크게 뒤흔들어놓았다'고 회고한다.

 

계절은 이미 가을의 언저리에 다다른 듯 밤에는 제법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바야흐로 등화가친의 계절이 돌아온 셈인데 나는 여전히 여름 한낮의 게으름을 다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주변의 여건들, 예컨대 수년째 지속되는 경기 불황이나 어수선한 정국 탓으로 핑계를 대고 있으니 말이다. 젊은 청년들의 눈물과 한숨이 더욱 깊어질 것만 같은 이 계절에 나는 한가로이 <소년의 눈물>을 읽었다. 요즘 내가 하는 독서는 돌로 짓누른 듯 무겁기만 하다. 올해가 가고 새 봄이 오면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한 권의 책을 읽게 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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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해외여행이 보편화되어서 자신의 여행담을 자랑하거나 크게 부풀려 말할 거리도 되지 못하지만 나는 유독 여행지의 호텔에서 보내는 무료한 시간에 대해 말하는 걸 즐기는 편이다. 재미도 없고 특별한 사건이 있을 리 없는 휑한 풍경을 나는 왜 그렇게 좋아하게 되었는지, 혹은 언제부터 좋아하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 중에서도 나는 늦은 밤이나 새벽녘에 도착한 호텔방에서 몸은 천 근 만 근 늘어지는데 말똥말똥 잠은 오지 않아 무심코 틀었던 TV에서 낯선 언어로 듣게 되는 그 나라의 소식에 대해 말하는 걸 좋아한다. 사건도 많고 들려줄 사고 소식도 많은 우리나라의 뉴스와는 다르게 어쩌면 그렇게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뉴스라고 보도하는 것인지... 나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60년대의 어느 도시에 불시착 한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나는 어제 밤 늦은 시각에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이런 긴급속보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긴급 속보]‘김무성, “딸 32년간 한 번도 속썩인 적 없어”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처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나라에서 아무리 기삿거리가 없기로서니 남의 집 가정사가 긴급속보로 뜨다니... 어찌나 놀랍던지 혹시 꿈이 아닌가 팔을 꼬집어보기까지 했다.

 

마약 상습 복용자와 결혼한 자신의 딸을 감싸주기 위한 애끓는(?) 부정은 이해하겠는데 그걸 긴급 속보로 전하는 언론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언제부터 우리나라의 언론이 딸을 사랑하는 한 아버지의 부정에 그토록 관심이 많았나?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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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015-09-11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호텔이 좋은 이유가 청소 안해도 되는 것. ㅎㅎ 자고 먹고 쉬고 난 후 툭 털고 팽하니 뒤돌아 보지 않고 나와도 되는 점을 좋아해요.

꼼쥐 2015-09-12 11:31   좋아요 0 | URL
저는 오히려 지저분하게 사용하고 나오면 제 치부가 드러나는 것 같아 뒷꼭지가 따끔거리더군요. 그래서 청소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충 정리는 하고 나와요. 이것도 병이라면 병이죠.

보슬비 2015-09-11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것 같아요... -.-;;

꼼쥐 2015-09-12 11:30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뭔 할 짓이 없어서 아직 성사되지도 않은 권력 앞에 아부를 하는 것인지...

yamoo 2015-09-12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썅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군요!ㅎㅎ

꼼쥐 2015-09-12 11:29   좋아요 0 | URL
권력에 대한 아부가 도를 넘은 것이지요. 이런 놈들도 기자라고 할 수 있는지 정말... 북한이나 남한이나 다를 게 없는 것 같아요.
 
사회인대학교 낯가림학과 졸업하기 - 낯가림 심한 개그맨의 우왕좌왕 사회 적응기
와카바야시 마사야스 지음, 전경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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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의 : 아랫글에는 미풍양속을 해칠 수 있는 비속어가 섞여 있으니 아이들의 교육에 저해된다고 판단하시는 분은 읽지 말 것을 권함.)

 

다른 사람의 말을 설렁설렁 듣다가 혼쭐이 났던 적이 몇 번 있다. 사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학교 수업을 듣는 것도 아닌데 이따금 멍 때리거나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거지 그걸 가지고 꼬치꼬치 따지는 게 더 쪼잔하지 않나, 하는 게 내 생각이고, 그렇게 집중이 안 되면 '내가 지금 집중할 수 없으니 나중에 얘기하자'고 할 것이지 왜 그런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느냐, 는 게 아내 생각이다. 흠,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닌 듯싶다. 내 변명을 조금 덧붙이자면 이렇다. 나는 어떤 사람이 말하고 싶어 할 때 듣는 척이라도 하는 게 예의인 것 같아서 아무리 듣기 싫은 말이라 할지라도 꾸역꾸역 들어주는 편이다. 양념 삼아 이따금 멍 때리거나 딴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요 앞에 함정이 있어"라고 주의를 줘도 "그건 당신이 가는 길이니까 그렇지"라고 귀담아 듣지 않다가 함정에 빠지고 나서야 "아, 그 사람이 말한 대로잖아!" 하고 깨닫는다. 아집이 강한 것이다. 천재라면 아집이 강해도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해서 결과를 낸다. 하지만 내 경우는 아집에서 출발해 결국 통념으로 귀결한다. 그리고 전부 내 잘못이야, 라고 반성한다. 그런 일이 내 인생에는 숱하게 많다. (p.168)

 

<사회인대학교 낯가림학과 졸업하기>를 읽다 보면 재미있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오랜 무명 생활과 강한 자의식으로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던' 저자가 어느 날 갑자기 유명한 개그맨이 되어 세상과 만났을 때의 문화적 충격은 남달랐을 것이다. 2009년과 2010년에 방송 출연 횟수 1위를 기록하였고 그 후 저자는 월간 잡지 <다빈치>로부터 칼럼 연재 청탁을 받았다고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사회인 2학년'이라는 제목으로 그때 썼던 칼럼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흔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 그 자리에 오르는 법은 없다. 아니, 어떤 행운으로 인해 그 자리에 오를 수는 있어도 그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내기는 어렵다. 우리 주변에서도 벼락출세를 한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미처 준비가 되지 못한 사람은 언제라고 말할 수도 없는 짧은 순간에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 만다. 예컨대 도박이나 음주운전, 성추문, 폭력이나 막말 등 그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결국 그는 그 자리를 유지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셈이다. 본인도 자신의 능력에는 버거운 그 자리가 심히 부담스러웠을 것이고, 그런 부담이 행동으로 튀어나왔을 뿐이다.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에는 수업을 빼먹고 공원에 앉아 있곤 했다. 그냥 앉아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면서, 벤치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란 의외로 어렵구나. 좋아, 더욱 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보자! 아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해버렸잖아! 바보, 생각하지 말자니까!'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p.58)

 

나도 학창시절에는 저자처럼 낯가림이 심한 편이었다. 발표할 사람 손들어 보라는 선생님 말씀에 앞장서서 따라본 적도 없었고, 누군가 등 떠밀어 발표를 시킬까 봐 전전긍긍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선생님 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연단에 나설 때는 얼굴이 빨개지는 것은 물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고 어찌나 심장이 두근대던지 혹시 이러다가 내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가는 건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다. 그러나 저자와 내가 하나 다른 게 있다면 나는 어려서부터 눈치가 빨랐다는 것이다. 형제가 여럿인 집에서 자란 탓일 게다. 이 사람한테 까이고, 저 사람한테 욕을 먹다 보면 자연스럽게 눈치만 늘어난다. 그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사회에 나가면 꽤나 유용하게 쓰이는 건 확실하다.

 

눈치가 없는 저자는 딱히 취미라고 말할 게 없어서 애먹고, 술자리에서는 재미없는 인간이라고 타박이나 듣고, 너무 솔직하게 감상을 말했다가 지적이나 당하고, 평화롭고 한가한 시간에는 부정적인 생각만 하게 되고 도무지 대책이 없는 인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사람한테 차이고 저 사람한테 핀잔을 들으면서 저자는 이제 '사회인대학교'의 졸업논문을 쓸 위치에 올랐다. 누구나 다 그렇지 않은가.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저자의 경험에 실없이 웃다가도 그 일이 마치 내 지난 날의 모습과 닮은 듯하여 짠해지기도 할 것이다.

 

" '나를 바꾸는 책'을 읽은 후에는 내용을 의식하고 있어서 3일 정도는 달라지지만, 일상에 젖어 지내면 곧 원래의 내 모습을 되찾는다. 성격이란 형상기억합금과 같아서 타고난 것은 바뀌지 않는다. 그것을 깨닫게 된 점이 '나를 바꾸는 책'을 읽은 수확이었다." (p.81)

 

사회에 진출하면 저자뿐만 아니라 누구나 달라진 환경에 적응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미리부터 조금씩 준비하거나 선배들로부터 몇 가지 요령을 배운다 한들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고 보면 세월만큼 좋은 선생님도 없다. 다만, 어렵고 힘들다 하여 징징거리거나 좌절하지만 않는다면 저자처럼 누구나 사회인대학교의 졸업논문을 쓰는 날이 올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기간을 어떻게 견디느냐의 문제이다. 내 경험으로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중 하나만 택하라면 나는 '글쓰기'를 택하고 싶다. 나를 돌아본다는 것, 객관적으로 나를 살피기 위한 방법으로 독서는 부족한 면이 있다. 저자도 그랬을 듯싶다.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칼럼을 연재하면서 자신을 차분히 살펴보고 그 요령을 하나하나 터득해갔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공짜는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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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5-09-10 19:31   좋아요 1 | URL
아무리 읽어봐도 “미풍양속을 해칠 수 있는 비속어”는
섞여 있지 않은 것 같은데요~??? ^^
제가 너무 ‘센스’가 떨어지는 건가요?
이거이거 댓글 달면서 ‘눈치’ 없는 사람으로 들통나는 것 같기도 하고~ 여엉~ㅋ

꼼쥐 2015-09-11 12:09   좋아요 0 | URL
`멍 때리다`나 `까이다`라는 단어는 사실 비속어이죠. 요즘 아이들도 많이 쓰는 단어이긴 하지만 바람직한 단어는 아닌 것 같아요. 물론 `까이다`라는 단어는 표준어로 쓰이는 경우도 있죠. 다른 뜻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ㅎㅎ
쓰고 보니 답변 치고는 제가 너무 진지했던 것 같아요. 다 웃자고 하는 일인데...
 
나는 떠났다 그리고 자유를 배웠다 - 짜릿한 자유를 찾아 떠난 여성 저널리스트의 한 달에 한 도시 살기 프로젝트!
마이케 빈네무트 지음, 배명자 옮김 / 북라이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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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고은 시인의 시 한 편으로 시작할까 합니다. 누구나 다 아실 만한 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누구나 다 공감할 만한 시일 테구요. 그런 까닭에 책의 제목으로도 몇 번 인용되었던 듯합니다.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 한

그 꽃

 

저는 고은 시인의 시를 좋아하기도 하려니와 어떤 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주문처럼 외기도 합니다. 종교 경전도 아닌데 굳이 그럴 것까지야 있느냐구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단순히 시 한 구절 외웠을 뿐인데 저는 이상하게도 두근대던 마음이 금세 진정되고 차분해지는 걸 보면 시인은 단순히 시만 쓴 게 아니라 시 속에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약이라도 한 덩어리 집어 넣은 것만 같습니다. 시인은 그렇게 독자들의 영혼에 평생 벗어날 수 없는 견고한 울타리를 친 셈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중독이라면 중독인지도 모르겠구요.

 

암튼 제가 이 시를 인용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마이케 빈네무트의 신간 <나는 떠났다 그리고 자유를 배웠다>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고은 시인의 시를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도 삼 개월여 살았던 적이 있다는데 저는 사실 작가에 대해 아는 게 없습니다. 프리랜서 기자이자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는 작가는 어느 날 독일의 유명 퀴즈 쇼 '누가 백만장자가 될 것인가?'에 도전하여 50만 유로의 상금을 거머쥐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전하면 약 6억 7천만 원쯤 되는군요. 큰 돈이죠. 그녀는 한 달에 한 도시씩 총 열두 도시를 여행하겠다고 답했던 인터뷰를 실천에 옮기기로 작정합니다. 그녀는 그녀 자신에게 꿈같은 여행을 허락한 셈입니다.

 

"여행의 묘미는 우연이 아닐까 싶어. 아니, 우연이라는 말로는 부족해. 뭐랄까, 세계가 말을 거는 느낌? 세계가 윙크를 보내고 나만 해독할 수 있는 암호로 쪽지를 보내는 그런 기분. 이제 겨우 두 달 째인데 벌써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우연과 일치를 경험했어.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나도 모르겠다. 이 기분을 꼭 묘사해야 한다면 아쉬우나마 '세계의 품에 안긴 기분'이라고 말할 수 잇을 거야. 먼 타향에서 아주 작지만 고향을 느끼게 해주는 친밀함, 익숙한 패턴, 관련성을 찾는 것, 그것이 바로 여행이란 생각이 들어." (p.66)

 

눈치채셨나요? 그렇습니다. 작가는 그녀가 여행한 각각의 도시에서 편지를 보냅니다. 그녀의 지인들에게 말이지요. 여행의 느낌은 그때 그때마다 다른 것이기에 여행지에서 보낸 그녀의 편지는 가장 솔직한 여행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작가가 아는 열두 사람에게 열두 도시에서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편지의 수신자는 오랜 친구들, 새로 사귄 친구들, 전 남자 친구, 부모님 등입니다. 2011년 1월 1일에 도착한 호주 시드니를 시작으로 1년 동안의 장대한 그녀만의 프로젝트가 실행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어쩐다? 그때 처음으로 제가 여행하고 있다는 걸 실감했죠. 정말 멀리 떠나왔구나 싶었어요. 제가 어디에 있는지 저도 모르고 다른 사람도 몰라요. 저는 어느 자연 속에 있는 한 인간이었고 저 외엔 아무것도 없었죠. 이것이 명확해졌을 때, 전 행복에 도취되었어요. 아무리 설명해도 두 분은 이해하기 힘들 테지만요. 그것은 완전한 자유와 가벼움이었어요. 겁도 나지 않았고 패닉도 없었고 오로지 존재의 기쁨만이 가득했죠." (p.104)

 

시드니, 부에노스아이레스, 뭄바이, 상하이, 런던, 바르셀로나, 텔아비브, 아디스아바바, 아바나 등 마음속에 떠오르는 도시들을 주저 없이 포스트잇에 적은 후 그녀는 한 가지 원칙을 정합니다. 매월 1일 새로운 도시에 도착해 마지막 날에 다음 도시로 떠나는 것. 그녀는 그러나 그녀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지 이틀만에 영원히 그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녀가 게획했던 여행이 그렇게 끝날 수도 있었지요. 결국 그녀는 자신의 원칙에 따라 그곳을 떠나게 되지만 말입니다.

 

"행복한 삶은 각자 정의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없어요. 이혼이나 해고의 형태로 인생 설계가 갑자기 무너져요. 두 분 세대에는 이것이 재앙에 가까운 특이한 사례였겠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아무도 그렇게 여기지 않아요. 오히려 평범한 일이고, 이동성과 유연성이 미덕으로 통해요. 이런 시대에서 살려면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해요. 그건 거의 생존의 조건이나 마찬가지예요. 모든 것이 흔들릴 땐 스스로 든든한 기둥이 되어야 하니까요. 여행은 이런 존재적 물음에 답하는 데 큰 도움이 돼요. 밖으로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어떤 가능성들이 있는지, 삶의 다른 가능성이 남아 있는지를 알려줘요." (p.115)

 

우리가 작가처럼 훌쩍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이 비운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의 삶은 자신도 알 수 없는 어떤 곳으로 거처를 옮기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 자신이 여행에서 다시 돌아왔을 때 떠나버린 자신의 삶 때문에 절망하지나 않을까 하는 고민으로 인하여 우리는 삶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른 채 꾸역꾸역 살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는 그녀가 사는 함부르크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녀의 책들이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삶이 너를 기다려주었어. 이제 네게 멈췄던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면 돼."

 

제가 이 글을 쓰면서 고은 시인의 시를 인용했던 까닭을 밝힐 때가 온 것 같군요. 작가도 어느 여행지에선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것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려면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입니다. 태어나서 50년 이상을 살아온 작가의 눈에도 어쩌면 그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 둘 눈에 띄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인생 자체가 하나의 산을 넘는 것이라면 이제 작가는 그 산을 내려오고 있는 것이겠지요.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그 꽃을 작가는 내려올 때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24절기 중 열다섯 번째 절기인 백로라는군요. 풀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히는 데서 유래했다지요? 그래서인지 아침운동을 나갔던 새벽 시간에 약한 바람도 불고 날씨는 제법 서늘했습니다. 가을 하늘이 유난히 싱그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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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된 것은 한참이나 지난 일입니다만 풀릴 기미가 조금도 없는 걸 보면 저절로 한숨이 나오게 됩니다. 조금씩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기는커녕 갈수록 악화되는 경제 여건도 그렇고 대책이랍시고 내놓는 정부의 정책도 그닥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없는 듯 보입니다. 제가 생각해도 답답한 노릇입니다. 저도 그럴진대 장성한 자녀를 둔 부모라면 그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요즘 젊은이들의 취업 경쟁은 그야말로 전쟁에 가깝습니다. 취업 준비생이나 신입사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어찌 사나 싶은 게 측은한 마음이 절로 들게 됩니다. 게다가 취준생들이 그동안 힘들여 쌓았던 스펙들도 하루 아침에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회사들이 늘어나는 바람에 젊은이들의 고민은 더 깊어진 듯합니다. '脫스펙'을 선언하는 대부분의 회사들은 신입사원 채용에 있어 스펙보다 더 무시무시한 것을 꺼내들었다지요.

 

직무 경험과 관련한 에세이를 요구하는 회사가 늘어났는가 하면 현대자동차의 입사 희망자는 지원 이유와 역량 소개 2000∼3000자, 인생의 가치관과 구체적 입사동기를 각 1000자씩 써야 하며, 공기업인 한국지역난방공사는 상반기 인턴공모에서 26개 항목 8200자 분량을 요구했다는데 이 정도면 단편소설의 절반 분량을 요구하는 수준입니다. 자소서 난이도가 높은 은행의 경우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오죽하면 은행 이름과 신춘문예를 결합해 ‘신한문예’ ‘우리문예’ 식으로 호칭되겠습니까. 인사담당자들도 취준생들이 제출한 방대한 분량의 자소서를 면밀히 검토하여 엄정한 점수를 매기려면 이제부터라도 문학적 소양을 길러 작가로 등단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자소서 비중이 늘어난 것은 지원자의 직무수행 능력을 파악하는 동시에 허수를 솎아내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당신이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에 대해 비교해 기술하시오”라든지 “당사 브랜드 중 한 가지를 선택해 인지도를 제고시킬 참신한 아이디어와 그 실현방안을 제시하시오”처럼 추상적이거나 전문적인 항목을 만났을 때 취준생들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요. 취업 조건에서 글쓰기 역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며 그러한 추세는 유행처럼 번질 것입니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할 뿐 아날로그에 취약한 요즘 젊은이들에게 그런 현상은 형벌과 다름없어 보입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것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스갯소리겠지만 노조를 비판한 새누리당 대표의 말에가수 이승환 씨는 “친일파 청산해서 재산 환수하고 사자방(4대강사업, 자원외교, 방산사업)에 엄한 돈 쓰지 않았으면 소득 5만 불 됐을 것”이라고 글을 남겼다지요. 하나의 현실에 대해 그들이 갖는 생각과 처방은 너무도 다양한 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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