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 20일이면 아들의 열세 번째 생일, 우리나라 나이로는 이제 열네 살이 된다. 곧 초등학교 졸업과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지만 내 눈에 아들은 여전히 어리게만 보인다. 생일 선물로 아들이 원하는 책 몇 권을 주문했다. 책을 좋아하는 아들을 둔 덕분에 생일 선물을 고르느라 골머리를 앓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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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남들과 다른, 달라도 너무나 달라 거부감마저 드는 사고방식의 사람들을 볼 때면 조금 섬뜩한 느낌이 든다. 그들은 대개 무슨무슨 부대나 무슨 전후회와 같이 군대 용어가 들어간 단체를 만들곤 하는데 그래서일까 그들의 사고방식은 때로 일반인의 상식에서 한참이나 멀어진, 도드라진 것이 되곤 한다. 사람의 신체에 비유하자면 일반 세포와는 확연히 다른 암세포를 떠올리게 된다. 암세포는 우리의 몸 속에서 무서운 속도로 증식하여 목숨을 위협하기도 하는데 그들의 행동이나 사고방식도 그와 유사한 모습을 띠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위화감과 적대의식을 심어줌으로써 조직원 간의 상호 결속력을 다지고 외부인과 적대의식을 높임으로써 조직원 개개인의 투쟁의지를 높일 수 있을 테니까.

 

"이제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여 용서하자.", "위안부 할머니들이 희생해달라."

 

-본인의 딸이나 어머니가 위안부 피해자였어도 횽서할 수 있나?

"일본이 용서를 구하는데 용서를 해야지 어쩌겠나."

 

-OO부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만만치 않은데...

"대꾸할 가치도 없다. 당연히 나와는 반대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잇다. 그것까지 내가 침해할 필요는 없다. 비난하라면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한민국의 올바른 가치를 위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일본의 역사 왜곡이나 위안부(성노예가 옳지만)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가 같은 생각일 줄 알았다. 그러나 일본의 입장을 앞장서서 대변해주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내에도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딸이 피해자였어도 용서한다'는 말은 얼마나 해괴한가. 진실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인격적으로 완벽한 성인이거나 정신병자일 것이다.

 

일본 정치인들은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 국제사회에서 독일만큼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당하기는커녕 미국의 비호 아래 승승장구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반성을 하고 위안부 피해자에게 무릎을 꿇어야 할까. 개인이든 국가든 절실함이 없다면 변화는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일본을 옹호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 있다. 그들은 성인 아니면 정신병자다. 나는 장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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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1-06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밀양 ㅡ생각도 나고 ㅡ정말 열심히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용서라는 걸 해 보려고 찾아간 곳에서 그는 신의 자식이 되어 스스로 용서를 받았다면서 다른이의 용서는 필요 없다 ㅡ하죠.
다른 또 하나 ㅡ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 ㅡ에서 였는데..사람이 사람에게 구해야 할건 용서가 아닌 위로라고ㅡ도 해요.
앞에선 살인자가 ㅡ뒤에선 ㅡ방관자가ㅡ 두 예는 저 글과 어쩌면 상 관 없는지도 모르겠어요.
하고 싶었던 말은 아마도 이 걸 거예요. 사람들은 사과하고 위로하고 애도하는데에 참 인색하다는 것..
개인도 그런데 좀 더 가진 사람은 높은 지위에 있거나 하다못해 권력이라도 가지거나 하면 그 고개는 더 뻣뻣해져서 수그러들줄 모르고 진정한 위로와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가 돈보다 더 많은 것을 할수있고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있단 걸 인정할 줄 모르는 것 같아요.진다고 생각하죠. 국격이 그로인해 낮아지는 걸까 ㅡ인정하고 안하고 ㅡ이미 지불하고만 돈은 그들이 죄를 가졌단 걸 인정한건데 ㅡ적든 크든 ㅡ이해 안가는 정치놀음이고 언론이고 그러네요. 거기에 누가 당사자 아닌 사람들이 받아주라 마라 하는지 ㅡ가만있는 것도 미안한데 ㅡ
우리는 서로 위로 해야하는 사람들인데 말이죠.

꼼쥐 2016-01-07 12:59   좋아요 1 | URL
피해 당사자나 그들의 가족도 아닌 제3자가 용서를 해라 말아라, 희생을 해라 말아라 하는 꼴이나 정부가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자호자찬을 하는 꼴이나 정말 가관이더군요. 이건 뭐 나라도 아니고 제대로 된 국민도 아닙니다. 언제부터 나라 꼬라지가 이렇게 되었는지...

[그장소] 2016-01-07 16:44   좋아요 0 | URL
ㅎㅎ그러네요..언제부터 ㅡ깜깜 하죠~휴~^^;;;
정신 바짝 차려야겠죠.지금 ..
 
그림과 문장들 - 뜯어 쓰는 아트북
허윤선 지음 / 루비박스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대학 시절 '봉천동 산 00번지'의 주소로 기억되는 낡은 단독주택 2층에서 국민학교 친구 2명과 함께 자취를 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가 사는 집까지는 남부순환로의 버스 정류장으로부터 상당히 먼 거리였고 우리는 그 길을 매일 걸을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당시에 나는 군대를 제대한 후 복학을 준비중에 있었고, 전문대학을 졸업한 후 치과기공소에서 일을 배우는 친구와 과외를 하며 대학을 다니고 있는 다른 친구 한 명이 있었다.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자마자 나타나는 방이 우리가 살던 방이었고 복도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주인집 할아버지가 혼자 사용하는 큰방과 그 방에 딸린 부엌이 있었다. 우리 방에는 따로 마련된 부엌이 없었으므로 출출하여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 요량이면 언제나 등산용 버너에 불을 붙여 그 위에 물을 가득 담은 양은냄비를 올려 라면을 끓이곤 했었다. 라면이 노랗게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치과기공소에 다니던 친구는 이따금 낡은 기타 반주에 맞춰 유행가 한 곡조를 구성지게 부르곤 하였다. 그때 우리는 너무나 가난했고, 젊음이라는 낭만의 옷자락으로도 다 감출 수 없었던 가난의 추레함이 언뜻언뜻 남들 눈에 띄곤 했었다.

 

음악과 미술 등 예술 방면에는 영 재능이 없었던 나는 악보도 없이 능숙하게 기타 코드를 옮겨 잡던 친구의 연주 실력에 늘 감탄하곤 했었다. 낮에는 캔제품 대리점에서 배달을 하고 밤에는 과외를 하느라 늘 바빴던 나는 다람쥐 쳇바퀴의 일상에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고 그때마다 친구가 불러주던 유행가 한 자락은 내게 적잖은 위로가 되었다. 하여 나는 밤이 늦어서야 퇴근하는 친구의 귀가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기 일쑤였고, 가끔 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만큼 만취하여 돌아온 친구에게 노래 한 곡을 청할라치면 그는 차마 싫다고 뿌리치지 못하고 가사마저 뒤죽박죽인 노래를 목소리를 죽여가며 조용조용 들려주곤 하였다.

 

버스를 타면 지척이었던 신림동에 부모님과 여동생이 살고 있었음에도 굳이 집을 뛰쳐 나와 월세와 생활비를 부담하며 그 방에서 같이 살기를 청했을 때 친구들은 누구 하나 내게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것은 나로 인해 월세 부담이 그만큼 줄어들게 된 것에 대한 경제적 이득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버지의 술주정과 폭력은 친구들도 익히 아는 바였고, 그것은 젊은 혈기의 내게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도록 하는 지뢰와 같은 것이었다. 코딱지만 한 작은 방에 장정 셋이 잠을 잔다는 게 영 마뜩치 않았을 텐데 친구들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내가 과외비를 받고 술과 안주를 사서 들어갔던 날, 나는 저간의 사정을 겨우 말하며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했었다. 그때였었나 보다. 치과기공소에 다니던 친구는 내게 속에 있는 울분이든, 기쁨이든, 슬픔이든, 도대체 어떤 감정이든 누를 수 없을 만치 솟아나면 그때마다 글을 쓰는 게 어떠냐며 노트 한 권을 내밀었었다.

 

나는 도무지 운율에도 맞지 않는 시를, 도대체 시인지 산문인지 형식도 없는 글을 그가 준 노트에 옮겨 적었고, 이따금 친구는 앉은뱅이 책상 위에 올려진 그 노트를 자신이 봐도 되느냐 내게 묻곤 했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비루한 감정의 찌꺼기들을 친한 친구에게 보이는 게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내가 노트를 들고 외출하지 않는 한 그것은 결국 언제까지고 나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될 수는 없을 터, 나는 그래도 좋다 승낙하고 말았다.

 

장마가 시작되던 어느 여름날이었나 보다. 친구는 내가 쓴 시에 리듬과 곡조를 붙여 자신의 낡은 기타 반주에 맞춰 흥얼거리고 있었다. 때로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골똘히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어떨 때는 낙서하듯 끄적거리기도 하면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더니 내게 들어보라며 자신이 만든 노래를 들려주었다. 아, 그때의 느낌이란... 친구가 부르는 노래는 시를 쓸 때 나의 감정과는 판이하게 다른, 내 시를 읽고 느꼈던 친구의 감정이 그대로 밴 것이었지만 그런 경험을 단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진한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허윤선 작가의 <그림과 문장들>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그 시절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장르가 다른 두 분야의 예술 작품이 만나 하나의 작품으로 재탄생 되었을 때의 벅찬 감동은 그 시절에 내가 느꼈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떤 그림을 볼 때면 책이 떠올랐다. 그림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책들, 인생의 비밀을 속삭여주던 말들. 가장 외로운 순간 기댈 수 있었던 행간들. 이 책은 그림 앞에서 떠올린 문장이다. 나는 다만 그림의 말을 들었고, 책으로 답했을 뿐이다. 내가 사랑한 모든 책들이, 대신 답을 해주었다. 100점의 그림과 100점의 문장들.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은 아이들의 흥겨운 모습에선 트루먼 카포티의 단편이 떠올랐고, 붉게, 아주 붉게 타오르는 꽃 그림에서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고백이, 수줍은 연인들의 모습 뒤에는 몇 번이나 의미를 고민했던 보토 슈트라우스의 문장이 들렸다." (p.4 ~ p.5)

 

이 책을 읽는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학창시절의 시화전에서 보았던 친구의 시와 그림, 교과서에 실린 어느 시인의 시에 곡조를 붙여 불렀던 노래, 산에서 구한 나뭇등걸에 인두로 새긴 한 구절의 경구, 그 어느 것 하나 감동으로 되살아나지 않았을까. 예술은 결국 당신의 삶 속으로 인도하는 하나의 문이다. 그것이 과거로 향하든 미래로 향하든 시간을 자유로이 왕래하는 그 길은 예술을 통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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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어떤지 몰라도 남자들만의 모임에서는 간혹 "얼굴만 예쁜 여자와 성격만 좋은 여자 중 고르라면 너는 누구를 고를 것 같니?" 하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수컷들의 모임이란 종종 본능 이외의 일에는 무관심해지곤 하는 법이다. 그렇다고 사람이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뉠 리 만무하지만 남자들이 아니라면 그런 극단적인 흑백 논리의 질문을 하지도 않을뿐더러 선호하지도 않을 것이다. 남자들의 단순성은 동성의 입장에서 보면 순수함이지만 여자들은 간혹 '변태'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단순한 것과 변태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단순한 질문이 등장하는 이유는 모르긴몰라도 가뜩이나 복잡한 세상에서 친한 사람들끼리의 모임에서나마 마음 편하고 단순해지고 싶어 하는 남자들의 솔직한 속내가 드러나기 때문은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결혼한 남자들의 대부분이 성격 좋은 여자를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혼전이나 돌싱이 된 남자들은 여전히 얼굴이 예쁜 여자를 선호하고 말이다. 돌싱은 결혼 생활을 겪어보았으니 성격 좋은 여자를 선호할 만도 한데 그렇지 않은 걸 보면 남자들은 대개 좋지 않았던 기억들을 쉽게 잊는 듯하다. 그것도 아마 단순해서 그렇겠지만.

 

안 그런 남자들도 많다고 반론을 펼치거나 남자들을 싸잡아 도매금으로 넘기는 건 옳지 않다고 말하실 분이 많을 줄로 안다. 그러나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오십보백보일 뿐이다.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남자와 사적인 자리에서의 남자는 분명 다르기 때문에 뭉뚱그려 말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지금 사적인 자리에서의 남자를 말하고 있다. 남자는 대체로 공적인 자리와 사적인 자리에서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에 어쩌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공적인 자리에서의 남성과 사적인 자리에서의 수컷이라고 보는 편이 옳지 않을까 싶다. '남자의 단순함은 아메바보다 한 수 위다'라는 말처럼. 문득 생각난 것을 두서도 없이 썼다. 그냥 웃자고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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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6-01-03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얼굴만 잘 생긴 남자를 만나보고 싶어요. 현빈 같은? ㅎ
꼼쥐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꼼쥐 2016-01-04 10:23   좋아요 1 | URL
세실 님 반갑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이제는 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로 보이곤 하더군요. 남들과 다를 것 없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그장소] 2016-01-03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자고 하셔서 웃었습니다~^^

꼼쥐 2016-01-04 10:23   좋아요 1 | URL
ㅎㅎ

서니데이 2016-01-04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쥐님, 친구신청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꼼쥐 2016-01-04 20:03   좋아요 1 | URL
제가 무지해서 그런 기능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어요. 죄송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2016-01-04 1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꼼쥐 2016-01-04 20:04   좋아요 1 | URL
제가 오히려 고맙죠. 사실 그런 게 잇는 줄도 모르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새해가 되면 나는 가급적 이동을 삼간 채 꼼짝 않고 집에 틀어박혀 있거나 어쩌다 외출을 하더라도 가까운 산을 가볍게 오르거나 집 근처의 마트에서 장을 보는 정도의 지극히 제한적인 활동만 한다. 마치 동면을 하듯 이렇게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단지 귀찮아서일 뿐인데, 이 시기에 어쩌다 뉴스를 보게 되면 내가 마치 상당히 비정상적인 사람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바닷가까지 차를 몰고 가자면 대여섯 시간은 족히 걸리는 그 험난하고 무대책의 고속도로를 향해 사람들은 끊임 없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어떤 불편도 감수하겠다는 듯 용감하게 길을 나서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혹시 나는 어린왕자가 사는 B612 소행성에서 태어난 외계인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는 말이다. 나는 오늘도 뒹굴뒹굴 시간만 보내다가 볼 만한 책을 뒤적이고 있다. 뒤적뒤적~~

 

 

내가 황경신 작가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모두에게 해피엔딩' 을 읽은 후였다. 그때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도, 글이 이루어지는 신선한 문체도, 작품의 소재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전작 읽기를 시도한 적은 없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그럭저럭 읽다 보니 거지반 읽은 듯하다. 작가의 신작이 왠지 반갑다.

 

 

 

 

 

 

 

 

작가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아마도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을 통해서였겠지만 나는 그 책이 그닥 뛰어난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책이 형편없다는 게 아니라 작가의 역량에 비해 작품이 떨어진다고 할까, 아니면 대중을 타깃으로 쓴 상업적 성격이 짙다고 할까 아무튼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나는 그녀가 쓴 '마음의 서재'나 '헤세로 가는 길'이 더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생텍쥐페리를 소재로 쓴 정여울 작가의 에세이인지라 은근 기대가 된다.

 

 

 

 

 

 

 

방송작가 김경희의 부탄 여행기를 고른 이유는 나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제목에서 딱 멈춰섰을 수도 있고, '김경희'라는 이름에 시선이 갔을 수도 있고, 둘 다일 수도 있다. 이맘때면 움직이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나의 성향에 대한 반발심리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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