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새살이 돋은 듯 몰캉몰캉했던 1월의 시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렇게 2월이 되면 새해라는 느낌은 사라지고 1년이라는 풍성한 시간들 중 아주 큰 뭉텅이 하나를 흔적도 없이 날려버린 듯한 허망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반짝반짝 빛이 나던 2016년 새해의 간판도 적당히 찌들고 때가 묻어 더 이상 시선을 끌지 못하는 듯하고 말이다. 매년 그렇지만 2월부터 12월까지는 적당한 타성과 관성에 의해 나도 모르게 끌려 가는 느낌이 든다. 이따금 시간의 풀섶에 '의지'라는 주관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고종석, 하면 이제 문단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 인사가 되었지만 그의 글은 언제나 새롭다. 그것은 어쩌면 새로운 것에 대한 쉼 없는 그의 시도와 각고의 노력 덕분이겠지만 그의 글에서 날카로운 노력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그저 평화롭거나 여유롭다.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으되 독자에게 들키지 않는 경지, 고종석의 글은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작가의 30년 가까운 글쓰기 경력과 스무 권 넘는 방대한 저서를 다섯 권의 선집으로 압축하는 작업의 마무리가 되는 이 책은 고종석 에세이의 정수이자 마무리이다.

 

 

 

 

 

 

 

제목이 맘에 들어서 고른 책이다. 이따금 신간 도서를 검색하다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내용은 둘째 치고 제목만 눈에 한가득 들어오는 책이 있다. 작가의 이력이나 작품도 알지 못하면서 말이다. 마치 하나가 좋으면 모든 게 좋을 것이라고 믿는 세살배기 어린 아이의 순진한 믿음처럼 말이다.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5주기라고 했다. 산 사람은 살게 마련인지 무던히도 잘 잊는다. 언제나 곁에 있는 듯 다정했던 박완서 작가. 그녀의 순한 웃음이 사소한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듯하다. 서강대학교 김승희 교수, 서울문화재단 조선희 대표이사, 장석남 시인, 최재봉 한겨레 선임기자, 김연수 소설가, 정이현 소설가, 씨네21 김혜리 편집위원, 신형철 문학평론가, 박혜경 문학평론가 등 9명의 대담을 추렸고, 이병률 시인의 새 글을 보태었단다.

 

 

 

 

 

 

 

황경신 작가의 글은 소설보다 에세이에서 빛을 발한다.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녀의 감각적이고 살아 숨쉬는 듯한 문장은 읽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불러일으키게 하지만 때로는 부러움의 질투를 샘솟게 하기도 한다. 그녀의 재능이 마치 노력보다는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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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2-02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고 갑니다 ㅡ ^^

꼼쥐 2016-02-05 18:02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즐거운 설 연휴 되시길~~

[그장소] 2016-02-05 18:03   좋아요 0 | URL
네.꼼쥐님도 연휴잘 보내세요!^^

우민(愚民)ngs01 2016-02-02 1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완서작가님 가신지가 벌써 5년이군요..😢

꼼쥐 2016-02-05 18:02   좋아요 1 | URL
네, 벌써 그렇게 되었나 봅니다.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 시드니 걸어본다 7
박연준.장석주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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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전날 내리던 비의 여운이 아침까지 길게 이어져 유유히 떠다니는 구름 위에 어둡게 내려앉아 있었다.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선 길, 주말 휴일의 게으름에서 비롯된 창백한 고요가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는 듯했다. 나는 처음 가보는 도로로 차를 몰았고, 산과 들에는 며칠 전에 내린 눈이 달마시안의 얼룩 무늬처럼 어지러웠으며, 이제 막 젊은 부모가 되기로 결심한 조카의 결심에 머리가 무거웠다.

 

"'젊은'이란 말과 '부모'라는 말을 붙여놓으면 왠지 애틋하다. 아이 때문에 서둘러 어른이 되어야 했을 사람들. 부모이기 이전에 자식이었던 사람들.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에 맞춰, 어쩌면 그보다 더 빨리 늙어갈 사람들. 그들은 목마가 한 바퀴 돌아 자기 아이를 만나게 될 때마다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이가 한 바퀴의 세상을 구경할 때까지 그 자리에 붙박여 기다리는 모습에서 부모된 자들의 천형天刑을 감지할 수 있었다. 회전목마만큼 부모와 자식 관계를 잘 설명해주는 것이 또 있을까." (p.64)

 

컨벤션홀이라고 명명된 예식홀에는 여느 집회 장소처럼 엄숙하거나 조용하지 않았다. 신랑이 될 사람과 신부가 될 사람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는 자리라기보다는 그들의 예식을 빌미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사람의 생사를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야 말겠다는 듯 사람들은 저마다 참석한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훑고 있었다. 으레 그렇듯 예식은 눈 깜박할 사이에 끝나 버렸다. 함께 온 사람들을 챙기느라, 또는 반가운 사람들과의 뒤늦은 인사를 나누느라 식당으로 향하는 길은 왁자지껄 소란하고 붐볐다.

 

뷔페의 음식은 종류만 많았지 실상 눈길 한 번으로 손님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식욕을 돋구지는 못했다. 그것은 어쩌면 식당 주인의 전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접시에 담아 온 음식에 몇 번 손이 갔는가 싶자 사람들은 다들 지친 표정으로 풀어졌다. 그렇게 풀어진 채로 조용히 늙어가고 있는 듯했다.

 

다음 순서의 예식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왔고, 우리는 서둘러 내몰렸다. 서둘러 떠나기에는 뭔가 아쉬웠고, 마땅히 갈 곳도 없이 미적거리거나 어슬렁거리던 사람들은 식당 입구에 놓인 티테이블에 옹기종기 앉아 자판기 커피를 마셨다. 언제였던가, 새댁이었고 새신랑이었던 사람들은 한동안 시간이 흐른 어느 예식장에서 이제 겨우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 아이의 손을 잡은 초보 엄마, 초보 아빠였다가, 다시 얼마만큼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누군가의 장례식장에서는 훌쩍 자란 아들 딸을 앞세우고 저만치 뒤에서 느린 걸음을 걷는 제법 익숙한 모습의 부모였는데, 어제는 줄 끊어진 연처럼 어느 한 순간 툭 하고 끊어진 아이들을 어디엔가 버려둔 채 부모라는 이름표만 가슴에 매단 채였다.

 

"멀어지는 도시를 향해 나도 모르게 '안녕'이라고 말했다. 다른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유 없이 가슴이 뭉클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바다를 잠깐 건너는 것뿐인데 무언가 중요한 것과 작별하는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은 살면서 많이 오지 않겠구나. 지금 내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관통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아름다운 순간은 붙잡아둘 수 없다. 안녕, 안녕, 누구에게랄 것 없이, 몇 번이나 인사했다." (p.89)

 

고등학생이거나, 대학생이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사회 초년생인 그 시절의 아이들은 이제 오직 그들만의 이유로 바빴고 어느 예식장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그저 늙었거나 늙어가는 부모들의 입에서 단지 이름으로만 호명되었다. 이름도 잊은 채 그저 아무개의 아빠나 엄마로 불리우는 우리는 ~했었거나,~했었야만 했거나, ~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과거형의 이야기들을 한동안 쏟아냈다. 나는 그들 속에서 조금씩 늙었거나 늙어갔거나 오래도록 늙은 채였다.

 

"그가 울음을 터뜨린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 때문이 아니라 깊은 무력감 때문이다. 아름다움이 눈앞에 있는데 그걸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 것이다. 장 그르니에는 그 충격을 이렇게 압축한다. "우리를 가득 채워야 할 것이 오히려 우리 안에 끝없는 공허함을 키운다." 아름다움은 한 개인에게 영속적 귀속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단 한 번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덧없이 스러지는 것이며, 두번 되풀이할 수 없는 기적이다." (p.148)

 

우리는 예식장에서 서둘러 떠나는 몇몇과 작별을 했고, 여기 남아서 흐르는 시간을 마냥 붙들고 싶어했던 하릴없이 배회하던 몇몇 사람들과 함께 혼주였던 누나의 집으로 옮겨갔다. 그들의 입에선 그 자리에 없는 아이들의 이름이 또 다시 차례로 불려졌고, 서울대나 경찰대 등 그들이 다니는 학교가 호명될 때마다 아직 중학생이거나 고등학생인 부모의 입에서는 부러움의 말들이 코러스처럼 퍼졌다.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던 시간, 도로에는 암흑처럼 어둠이 내려앉았고 긴 전조등 불빛을 토해내는 차량들 사이로 나는 조금씩 세월을 토하거나 토해냈거나 잊었거나 잊으려 애썼을 것이다. 집에 도착해서도 밤이 늦도록 잠이 오지 않았고,나는 박연준(35)·장석주(60) 두 시인이 함께 낸 책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읽었다. 이 책은 스물 다섯 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10년 열애 끝에 결혼한 두 사람이 9월 초부터 한 달 동안 호주 시드니에서 살았던 기록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했다.

 

시드니 북서쪽 동네 글레노리의 한 동포 집을 빌려 일종의 신혼여행처럼 지냈던 날들을 들려주는 이 책은 한가운데 16쪽짜리 사진첩을 경계로 앞부분은 박연준 시인의 기록이고 뒷부분은 장석주 시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두 사람은 여느 신혼부부처럼, 사소한 일로 다투고 삐치거나 같이 산책을 한다. 그리고 영원처럼 사랑을 다짐한다. 나는 문득 조카 생각을 했고, 잘 살았으면 기도했다. 그대로 밤이 깊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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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입하지 않아도 스스로 되어지는 것들이 있다. 예컨대 시간의 소멸이라든가 새벽의 축구중계라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나름대로 뭔가 해야 할 일이 잇을 것 같은데 단지 생각뿐이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의욕도 없이 무기력하게 지켜보았는데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 것들. 마치 어둠 속에서 다트를 던지는 것처럼 부질없는 느낌이 내 머릿속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그런 일들을 지켜보고 잇노라면 하루키의 표현처럼 '문득 들여다본 자신의 손이, 투명하게 보이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드'는 것이다.

 

금요일 저녁이 되면 막연히 손을 놓게 된다. '이제부터 월요일 새벽까지는 무작정 쉬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드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지금도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어느 광고 카피의 문구처럼 시간의 잔상 위에서 마냥 흔들리고만 싶은 것이다. 어차피 그래도 시간은 가고 어떤 모습으로든 월요일은 도래하니까.

 

내일 오후에는 큰누나의 아들(그러니까 내게는 조카 되시겄다)의 결혼식이 있다. 결혼식에 참석하여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갈 것이다. 아무리 친척이라지만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화장실로 향하게 된다. 화장실 거울에 내 얼굴을 비춰 보며 시간의 경과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나온 시간 동안 그 친척분은 뭘 하면서 보냈을까 생각하곤 한다. 부작위에 의한 시간의 소멸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변화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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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개인적인 - 내 방식대로 읽고 쓰고 생활한다는 것
임경선 지음 / 마음산책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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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

세상이 조금 더 잠잠해지면 읽어보게나.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뭐라 덧붙여 설명하기도 전에 군은 단박에 "언제 그런 날이 올까요? 과연 그런 날이 오기나 할까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한가롭게 서평이나 읽을 그런 미래는 제게 없을 것 같군요." 하는 반박의 말과 함께 나에 대한 신뢰(그런 게 있었다면 말일세)마저 반납하겠지. 이해하네. 아니,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정도로 군에 대해,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대해 확신할 수는 없을 것 같네. 다만 군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일세.

 

君,

세상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다양한 종류의 인간들이 살고 있다는 걸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단지 생각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게 나의 주관일세. 군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인간종의 한 명일 테고, 나 또한 다르지 않을 걸세. 그러나 비슷한 류의 군상들과 동질성을 추구할 수 없는 특별한 개인을 나누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네. 이를테면 군과 같은 개별성을 지닌 인간은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얘기지. 내가 군에게 특별한 애정(오해하지는 말게나. 편애는 아닐세.)을 표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라네. 군에게 임경선의 <어디까지나 개인적인>을 읽고 느꼈던 나의 소감을 말한다는 게 조금은 부끄럽고 나이 든 사람의 입장에서 여간 쑥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나 군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색깔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나의 체면이나 위신쯤은 어찌 돼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네.

 

"우리는 모두 더없이 소중한 영혼과 그것을 감싸는 깨지기 쉬운 껍질을 가진 알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저마다 높고 단단한 벽과 마주하고 있다. 바로 '스스템'이라는 벽이다. 내가 소설을 쓰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영혼의 존엄을 부각시키고, 거기에 빛을 비추기 위함이다. 우리 영혼이 시스템에 얽매어 멸시당하지 않도록 늘 빛을 비추고 경종을 울리는 것, 그것이 바로 소설가의 책무다." (p.165)

 

그렇다네. 위의 인용문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이지. 임경선 작가는 그야말로 하루키의 열성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걸세. 본인 입으로도 고백하고 있지만 하루키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할 정도라네. 시쳇말로 '하루키 덕후'가 아닐 수 없지.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한 팬덤이나 유명 작가의 슈퍼 덕질이라고는 오해하지 말아주게. 슈퍼 덕질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열성팬의 입장에서 한 위대한 작가에게 바치는 헌정서쯤으로 이해했으면 좋겠네.

 

"내가 처음 배운 언어는 일본어였다.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일본에 가서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을 요코하마에서 다녔다. '린 게이센'이라는 희한한 이름(임경선을 일본어로 읽으면 이렇게 된다)을 가진, 한국에서 온 계집아이였던 것이다." (p.122)

 

임경선 작가는 유년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다네. 어쩌면 한국어보다 일본어가 더 익숙했을 걸세. 그렇다고 한국 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한 사람도 아니지. 일본이나 한국이나 글을 쓰는 사람들은 모두 점잖고 유식하며 예의 바르고 배려를 생명처럼 여기는 사람들일 거라는 우리의 생각은 참으로 허망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네. 그녀가 정식 작가로 등단하지 않은 이유가 그래서라는 말은 아니지만 문학계의 종사자들도 종종 동종 업종의 종사자(?)로서 갖는 그들만의 패거리 정신이 문제가 될 때가 있다네. 그런 어두운 면이 독자들에게 낱낱이 밝혀지는 건 아니지만 잘 알다시피 어느 인터뷰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도 지적했던 바일세. 나는 임경선 작가의 이 책을 읽으면서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이 이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네. 곁에 있는 사람이 언제나 자신과 똑같아 보인다면 그는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간은 고독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조차 없음을 새롭게 깨달았다네. 거창하지만 말일세.

 

"독자마다 소설을 통해서 얻는 메시지가 다 다를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모든 인생은 고독한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것만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고 확신하지만, 그 고독이라는 채널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타자와 소통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소설을 쓰는 의미는 어쩌면 거기에 있을지도 몰라요." (p.188)

 

"제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인간이 자기 안에 끌어안고 사는 일종의 암흑 같은 것이에요. 나는 그것들을 진지하게 관찰해서 이야기라는 형식으로 그대로 리얼하게 쓰고 싶어요. 해석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p.238)

 

君,

우리나라에도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히 갈린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네. 그러나 작품의 좋고 나쁨을 떠나 자신의 삶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던 한 인간으로서의 무라카미 하루키를 사람들이 좋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나만의 착각은 아닐 듯하네. 자신이 겪은 고통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자 했던 무라카미 하루키를 기억한다면 작가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그 순수성을 이해하게 될 거라고 나는 강하게 믿게 되었다네.

 

"나에게 가장 울림이 컸던 그의 '고통론'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비관적 현실주의자이다. 그에게 인생은 '어차피 지는 게임'이다.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은 늘 뭔가 자신이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되찾기 위해 방황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여러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시간을 허비하고 가능성을 잃어버린다. 그야말로 불확실하고 불안한 보통의 삶을 반영한다." (p.242)

 

혹독했던 추위가 한풀 꺾여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군이 말했었지. 밖에서 하는 일이니 요즘 군의 노고가 이만저만 한 게 아닐 거라고 쉽게 집작할 수 있었다네. 나라고 왜 모르겠는가. 아르바이트라면 나도 할 말이 꽤나 많은 사람일세. 그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군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단 한 가지라네.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길은 비록 유치해 보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인물이나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굳건히 믿고 있기에 군도 그리 하기를 바랄 뿐이네. 슈퍼 덕질이라고 해도 좋으니 제발 그렇게 하게.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군이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어떤 성과가 있을 거라고 믿네. 지금 내가 군에게 슈퍼 덕질을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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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축구 중계를 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나 봅니다. 휴대폰 알람 소리가 마치 덩치 큰 곰이 내 몸을 우악스럽게 흔들어 깨우는 것 같았죠. 이제 막 단잠에 든 아이의 달콤한 꿈을 방해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눈도 제대로 뜰 수 없는 비몽사몽의 의식으로도 아침마다 입고 나가던 운동복의 소매는 잘도 꿰어지더군요. 현관을 나서자 차가운 새벽 공기가 모자란 잠을 훅 하고 날려버렸습니다.

 

달빛이 밝았습니다. 음력 보름에서 3일이 지났더군요. 눈석임물이 얼어 빙판을 이룬 곳이 더러 있었습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종종걸음을 쳐야만 했습니다. 못 보던 사람들이 많은 걸 보니 날씨가 어지간히 풀려 사람들로 하여금 새삼스레 운동을 결심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도 그렇지 이 새벽에 산을 오르려면 웬만한 결심으로는 아마 힘들었을 것입니다.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심정이었죠. 그렇게 산을 오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제 풀에 지쳐 그만두는 사람도 많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종종 '피곤'이라는 이름 앞에 자신의 귀중한 하루를 상납하곤 하지만 자신의 의지로 분연히 저항하는 하루는 또 얼마나 대견한 것인지요. 2016년의 1월은 어느 해보다 빨리 지나가는 듯합니다. 한동안 길게 이어졌던 맹추위 탓도 있었겠지만 극과 극을 오가는 롤러코스트의 날씨가 사람을 영 정신 못 차리게 했나 봅니다.

 

한낮의 나른함이 무차별적인 공격을 해대는 오후. 기온은 조금 더 올라 포근해졌고 읽고 있던 책의 낱글자들이 가물가물 흩어집니다. 그나저나 국정 역사교과서는 편찬기준이나 집필진의 발표도 없이 이미 집필에 들어간 모양입니다. 대한민국은 제 나라의 역사에 대해 얼마나 자신이 없는 것인지요. 하다 못해 정부의 사이트에 게시글을 올리더라도 실명을 쓰는 마당에 한 나라의 역사를 새로이 쓰면서도 익명으로 하다니... 정부가 앞장서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민망해 하는 까닭에 대한민국의 모양새는 점점 옹색해지고 있습니다. 뉴스를 읽고 있으려니 몰려오던 잠이 모두 달아난 느낌입니다. 졸음을 쫓는 데는 뭐니뭐니 해도 정부의 망나니짓을 보고 화를 내는 일보다 더 효과적인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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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愚民)ngs01 2016-01-27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새벽까지 우리나라 축구 응원해습니다. 마지막 남은 한일전도 꼭 승리하기를..😁

꼼쥐 2016-01-28 13:15   좋아요 0 | URL
일단 리우올림픽 출전권은 땄으니 설사 한일전에서 진다고 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이기면 더없이 좋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