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소설은 우리가 사는 메이저한 세상에서 메이저한 방법으로 읽어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아귀가 맞지 않는 맷돌처럼 한없이 겉돌기만 하다가 종국에는 '아몰랑' 내팽개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럴 땐 곰팡내 나는 마이너한 공간으로 내려가서 마이너한 방법으로 책을 읽어야만 한다. 눈의 초점을 의도적으로 흐리게 하지 않으면 '매직 아이'에 나타나는 입체 사진이나 그림 속에 숨겨진 특정 글씨가 3D로 나타나는 경이적인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박민규의 단편 소설집 <카스테라>도 어쩌면 그렇게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의식의 한 쪽 눈을 한 자리에 고정시킨 채 다른 쪽 눈을 몽롱한 꿈의 세계에 반쯤 걸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매직 아이'를 볼 때처럼 말이다. 그렇게 읽지 않으면 현실과 꿈의 층위가 한 화면에서 3D로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아무리 애를 써도 2D로 밖에 볼 수 없는, 조금 덜 떨어진(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사람이 있게 마련이지만. 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여 작가에게 '적녹안경'을 요구한다거나 소설의 리콜을 요구하는 등의 덜떨어진 짓을 하는 사람은 물론 없겠지만 말이다.

 

"이불을 펴고 나는 자리에 누웠다. 두 개의 창문 틈으로 시린 우풍이 새어들어왔다. 세기의 마지막 밤은 - 그런 식으로 우리의 세계를 냉장하고 있었다. 오늘밤만은 이 세계의 부패도 잠깐 그 진행을 멈추겠지, 라고 나는 생각했다." (p.32)

 

이 책은 표제작인 '카스테라'를 비롯하여 10편의 단편을 한 권에 엮은 단편 소설집이다. '카스테라'는 대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한 내가 소음이 심한 냉장고를 구입하여 2년여를 같이 지내는 동안 온갖 황당무계한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냉장고의 전생이 훌리건이었을 거라는 발상에서부터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나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나는, 그러니까 책을 읽는 동안 전두엽에서 이탈한 나의 뇌세포가 변연계를 지나 해마로 숨어들었다가, 십삼 년 전 범죄를 저지른 어느 살인자가 여전히 잡히지 않고 은신하는,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어두운 동굴의 가장 깊은 곳에서 작가와 어렵사리 접선한 느낌이 들었다. '귀신 씨나락이라도 까먹는 듯한 음악이 울려퍼지는' 너구리 게임의 폐인과 친구가 된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를 읽고, 흔들리는 삶을 붙잡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를 읽고, '이 세계가 너무, 그렇고 그렇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지구 탈출기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를 다 읽을 즈음이면 그래, 점심을 먹어야지. 밥을 먹으러 가기 전에 딱 하나만 더, 일흔세 곳의 직장에서 퇴짜를 맞고 유원지 오리배를 관리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한 취준생의 이야기<아, 하세요 펠리컨>을 읽는 바람에 늦은 점심을 먹게 되었다.

 

"전문대라는 단어 역시, 늘 어딘가에서 32킬로미터 떨어진 느낌이었다. 퐁당퐁당 퐁당. 그래서 그곳의 가족들이, 혹은 커플들이 한 마리의 오리를 타고 앉은 광경을 지켜보노라면 묘한 연민의 정이 생겨나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뭐랄까, 저렴한 인생들 사이에 흐르는 심야전기와 같은 것이었다." (p.130)

 

변비로 고생을 하는 한 남자의 일상을 다룬 <야쿠르트 아줌마>, 대학시절 학생 운동을 함께 했던 선배의 몰락을 지켜보는 한 직장인의 삶을 그린<코리언 스텐더즈>, 어린 시절에 구독하던 잡지 '소년 중앙'에서 보았던 대왕오징어의 추억이 '괴수대백과사전'으로, '주간경향'으로, '사상계'로 옮겨오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대왕오징어의 기습>, 미국 유학 시절 헤드락을 당한 경험과 자신이 행한 헤드락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이야기의<헤드락>, 대학 시절 학교 근처의 고시원에서 이년 육 개월을 살았던 어느 샐러리맨의 추억을 다룬 <갑을고시원 체류기>를 읽었다.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사실과, 이 세상은 혼자만 사는 게 아니란 사실을 - 동시에,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모순 같은 말이지만 지금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즉, 어쩌면 인간은 - 혼자서 세상을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혼자인 게 아닐까." (p.286~p.287)

 

박민규 작가의 소설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큭큭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하고, 찡한 감정의 자신도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이 울컥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한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읽어나가면 저렴한 인생을 사는 전세계 인간 군상들을 모두 만나볼 것도 같고, 그들 사이로 흐르는 심야전기가 찌리릿 느껴질 것도 같다. 찌릿 찌릿 찌리릿!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닥 새로운 일도 아니지만 만나는 사람들마다 경제가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며 죽는 소리를 한다. IMF 금융위기 때도 지금보다는 나았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위축 국면에 접어든 세계 경제의 불황 탓도 있을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어떤 유행처럼 번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근 십여 년만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극도로 심화시켰고, 대다수 저소득층의 소비여력을 바닥까지 떨어트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비인데 어떤 수단으로도 소비는 회복되지 않는다. 저금리를 지나 마이너스 금리로도 소비는 살아나지 않는 모양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아무리 금리를 낮춘들 소득 하위계층의 소비여력이 증가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백약이 무효인 셈이다.

 

이런 와중에 정부와 여당은 개성공단의 폐쇄를 감행함으로써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 경제에 카운터 펀치를 날린 꼴이 되었다. 물론 심리적으로 속이 시원할 수는 있을 것이다. 미국의 환심을 조금 살 수도 있을 테고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일본과 같이 주한 미군의 방위비를 우리가 부담하지 않는 한 일본과 같은 적극적인 환대는 받기 어려울 것이다. 현 정부는 정치를 무슨 이즘(ism)이나 속풀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대화와 타협은 사라진 지 오래다. 노동계와 각을 세우는 이유도 그런 데서 찾을 수 있다.

 

우스갯소리이지만 이번 사태를 불러온 원인이 꽤 오랫동안 해외여행을 나가지 못한 대통령의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비서실에서 어떤 건수를 만들어서라도 대통령을 해외로 내보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 불똥이 개성공단으로 튀었다는 것인데 아무튼 대한민국 경제는 암울한 국면을 면키 어렵게 된 건 사실이다. 국민들은 간혹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사장들을 걱정하는데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 참에 정부의 보상을 받아 챙기고 골치 아픈 사업을 정리하면 그만이다. 문제는 직원들과 그 가족의 생계인데 그것까지 정부가 나서서 챙겨줄 리는 만무하다. 지금이라도 대통령의 외유를 주선하면 한국 경제는 조금 나아지려나?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이소오 2016-02-12 1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각하는 편집증이 있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총에 맞아 죽은 한국인은 찾기 힘들잖아요?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하죠. 상담 결과에 따라 신속한 격리 조치가 이뤄지면 좋겠네요.

꼼쥐 2016-02-14 14:01   좋아요 1 | URL
그럴 수만 잇으면 그랬으면 좋겠어요.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서 말이죠. 이게 뭡니까,도대체...

우민(愚民)ngs01 2016-02-13 0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정부는 태생부터 민생보다는 재벌친화적이죠 대기업들 법인세 감면으로 사내유보금만 늘게 하고
증세 안한다고 하고는 담배세등 간접세 올려서 서민들 등처먹는 양아치 수준 참고로 저는 담배를 안핍니다. 국민건강 생각하는 척 하지말고 민생을 챙기는 잔여임기가
되기를 빌어봅니다.

꼼쥐 2016-02-14 14:04   좋아요 1 | URL
저는 담배세 올렸던 지난해 1월부터 담배를 끊었습니다. 그러니까 담배를 끊은 지 만 1년 하고도 한 달 반이 지난 셈이죠. 현 정부를 위해서 세금을 더 내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기 때문에 담배도 끊을 수 있었죠. 그 점에 대해서는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민(愚民)ngs01 2016-02-14 1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하셨네요! 😊 지금이라도 이 정부가 뉘우치고 서민을 위한 집권 마무리를 했으면 합니다. 물론 안하겠지만...
 
젖은 모래 위의 두 발
안도핀 쥘리앙 지음, 이세진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가뭇없던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근 이십 년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그와 나 사이에 낯선 시간들이 와그르르 무너져 내렸고 명절 후유증인 양 나른한 피곤이 몰려왔다. 어쩌면 우리는 길 위에서 정면으로 마주친다 해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을런지도 모른다. 마치 처음부터 알지 못했던 사람들처럼. 서로가 알지 못하는 저간의 사정을 최대한 간추려서 서로에게 들려주려 애쓰는 너와 나의 해명은 힘겨웠다. 그 잠시의 해명만으로 그와 닿지 못했던 낯선 시간들이  친숙했던 시간으로 쉽게 전환되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우리는 서로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그러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이 들었고 몸도 마음도 그에 따라 한없이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하루에 반나절쯤, 아니 그게 여의치 않다면 다만 두어 시간만이라도 귀를 막고, 눈도 감고, 전화며 텔레비전이며 내게 세상 밖의 소식을 전해주는 모든 도구를 내려놓은 채 죽은 듯이 있고 싶을 때가 있다. 까짓거 못할 것도 없지 않느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이 살아야 얼마나 산다고' 하는 미련이 애당초 먹었던 마음을 슬몃 밀어내곤 하는 까닭에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것이다. 외로움도 습관이다. 정말로 외로움에 익숙해지면 나는 그 누구도 그리워하지 않는, 죽음과 같은 삶을 살게 될런지도 모른다. 삶의 테두리 밖에서 그들을 멀뚱히 지켜보면서 말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아이들은 삶으로부터 스스로 달아나거나 삶의 테두리에서 단 한 발짝이라도 벗어나지 않는다. 오직 현재의 삶이 중요할 뿐이다. 지금의 햇살,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곁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지켜주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미래의 불안 때문에 현재를 걱정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이다. 안도핀 쥘리앙이 쓴 <젖은 모래 위의 두 발>을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던 친구의 전화를 받았고, 한 번 만나자는 상투적인 인사로 쓸쓸한 기분을 달랬었다. 나이 든다는 것은 삶의 중심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3년 9개월. 오늘로써 타이스는 딱 3년하고 9개월을 살았다. 아직은 어린아이, 월령까지 따지는 것이 당연한 어린아이다. 지난 한 해는 너무나 밀도 높고 강도 높게 보냈기 때문에 두 해로 쳐줘야 할 것 같다. 타이스는 곧 네 살이 된다. 석 달만 있으면. 아니, 석 달이나 있어야! 타이스가 과연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네 번째 생일이, 다가갈수록 더 멀게만 보이는 사막의 신기루 같다." (p.231)

 

짐작하겠지만 이 책은 유쾌하거나 읽어서 기분이 좋아질 만한 책은 아니다. 오히려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 먹먹해지는 책이다. 이염성 백질 이영양증! 나는 그런 질병이 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백과사전의 정의로는 '매우 희귀한 소아의 백질 대사의 질환 중에서 대표적 질환이며, arysulfatase A의 감소에 의해 초래되는 상염색체 열성 유전 질환'이라고 한다. 도무지 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병은 발병 연령과 효소 결핍의 종류에 따라 영아 후기형(late infantile), 연소형, 성인형 이염성 백질이영양증 등으로 나뉜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이 책의 주인공인 타이스는 1~2세경에 발병하는 영아 후기형 이염성 백질이영양증이었다. 마땅한 치료법은 없다.

 

파리의 한 잡지사에서 근무하는 저자는 2006년 그녀의 둘째 아이 타이스의 두 돌 즈음에 아이가 이 유전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는다. 아이는 겨우 두 살, 남은 삶은 1년 남짓이었다. 삶의 부조리를 이해하기에는 턱없이 어린 나이였다. 타이스가 진단을 받을 당시 그녀는 이미 그녀의 뱃속에 아이가 한 명 더 있었고, 유치원에 다니는 타이스의 오빠 가스파르가 있었다. 새로 태어날 아기도 유전될 확률이 25퍼센트나 되었으며 막내딸 아질리스도 결국 같은 병임을 확인받게 된다. 신경계가 서서히 마비되어 결국에는 생명 기능을 멈추게 하는 이 병은 일단 발병하면 골수 이식도 소용이 없다고 했다. 아질리스는 여러 부작용을 감수하면서도 골수 이식을 받았다.

 

나는 이따금 이런 가슴 절절한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가족 중 누군가가 심하게 아프다면 그게 꼭 나쁜 점만 있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철없는 생각일지 모르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아프지 않았다면 일 년에 두어 번 명절에만 이따금 만났을 사람들도 그보다는 더 자주 만나게 되고 환자를 중심으로 연민의 끈이 더 단단해지는 것을 나는 여러번 목격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환자를 통해 가족이라는 느낌을 더 확고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픈 사람이 다른 가족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베푸는 사랑의 체험이 아닐까 싶다.

 

"타이스의 울음소리만큼 정신을 확 깨우는 알람은 없다. 당번을 서는 사람은 낑 하는 소리 한 번만 나도 다른 식구들이 깨지 않기를 바라면서 부리나케 타이스에게 달려간다. 안됐지만 그런 바람은 소용없다. 부모의 본능인지, 세상모르고 깊이 잠들어 있다가도 애가 부르는 소리는 알아듣는다. 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타이스를 잘 보살피고 있다는 걸 아니까 금방 다시 잠들 수 있다." (p.98)

 

이따금 멀리서 들려오는 유행가 가사가 가슴을 후벼 팔 때가 있다. 얼마 전에는 산울림의 "청춘"을 듣고 그 절절한 가사와 멜로디에 깊이 빠져든 적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었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나 듣는 관객 모두가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비슷한 거니까. "생에 살아갈 날을 더할 수 없다면 살아갈 날에 생을 더해야 한다."고 했던 암 의학자 장 베르나르의 말이 가슴에 울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일에 혼자 지내는 이곳에서 나는 어제 이사를 했다. 뭐 이사라고 해봐야 같은 아파트에서 단지 동과 호수를 바꿨을 뿐이지만 이사의 규모가 작고 크고를 떠나서 이사는 이사였다. 나는 비교적 우습게 생각했다가 호되게 당한 꼴이었다.

 

그동안 내가 살던 아파트는 임대를 목적으로 세워진 임대 아파트였다. 당연히 아파트 소유권은 아파트를 지은 건설회사에 있었고 입주민들은 보증금과 월세를 내며 생활했었다. 보증금과 월세는 1년마다 상향되었지만 월세와 관리비가 저렴했으므로 딱히 불만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집이 팔렸으니 나가라는 식의 일방적인 통보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런데 작년에 건설회사는 느닷없이 입주민들에게 분양전환을 추진하였고, 다른 곳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나는 분양 대상자에서도 제외되고 말았다. 꼼짝없이 집을 비워주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집을 알아보고 이사 날짜를 잡기까지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했다.

 

그저께는 이사할 곳에 가서 청소를 하고 어제 오후에 이미 계약한 이삿짐센터의 차가 와서 이삿짐을 날랐다. 그렇게 무사히 이사를 마쳤는가 싶었는데 건설회사와의 보증금 반환 문제며, 관리비 정산이며, 전입신고 및 금융권 주소지 변경이며, 관련 사이트의 주소지 변경까지 그야말로 할 일이 산더미였다. 이삿짐 정리는 결국 설 연휴 뒤로 미뤄진 상태로 방치되었다. 별반 한 일도 없는 듯한데 어깨며 허리며 안 아픈 곳이 없다. 이사, 두 번 다시 할 일이 아니다. 또 다시 이사했다가는 골병 들겠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민(愚民)ngs01 2016-02-05 2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삿짐 정리 쉬엄쉬엄 하세요 서두르시면 병 나십니다

꼼쥐 2016-02-11 14:32   좋아요 1 | URL
아직도 허리 통증이 남아 있어요. 딱히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말이죠. 집안은 아직 난장판이고 빨리 정리를 끝내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

[그장소] 2016-02-06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살림도 무시못해요. 특히나 책이있는 분들은 더더욱.. 저는 아직도 정리중 예요. 찔끔 찔끔..
몸이 편치않아서 옛날처럼 후다닥 못해요. ㅎㅎㅎ
천천히 살펴하세요. 어쨋든 축하드려요.^^
떡 돌리실거죠?^^

꼼쥐 2016-02-11 14:35   좋아요 1 | URL
책도 책이지만 짐을 꺼내놓고 보니 여기저기 숨겨져 잇던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정말 많더라구요. 요즘은 안 쓰는 물건이라고 함부로 버릴 수도 없으니 버리는 일도 만만하지는 않겠다 싶어요.

[그장소] 2016-02-11 15:00   좋아요 0 | URL
안쓰는데 도 불구 나중에 찾아서 아쉬워하니 그게 안습 ㅡㅎㅎㅎ
일년중에 한번.어쩌다 한번 그렇게 쓰긴한단거..
저도 가능함 책빼곤 다 버리자 했는데..한번 그랬더니..나중에 필요한걸 사들이는데 돈이 또..들더라는..^^
 
읽다 (2015년판) -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똑같은 책을 읽고도 누구는 이렇게 근사한 말을 줄줄이 풀어놓는데 나는 고작 재미있다거나 따분하다거나 감명깊었다는 등의 상투적인 말밖에는 더 할 말이 없는지 생각하면 울컥 짜증이 솟구칠 때가 있습니다. 김영하의 산문집 <읽다>를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이지요. 나는 혹시 나의 뇌에 크나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조차 들었더랬습니다. 문학에 대한 지식의 차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읽은 책에 대한 소감이나 느낌을 말할 때에는 적어도 엇비슷하거나 너무나 큰 차이는 벌어지지 않아야 하는 게 맞지 않은가 말입니다.

 

"비극의 주인공들은 항상 너무 늦은 순간에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곤 하지만, 저는 독서를 통해 커다란 위험 없이 무지와 오만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특히 고전이란, 이탈로 칼비노의 정의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어떤 것들을 준비해두고 있습니다. 읽지 않았으면서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제 오만은 오이디푸스의 자신감을 닮았습니다." (p.29)

 

작가가 위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한 듯 보입니다. 읽지도 않은 고전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저자 자신의 오만이었다는 것이지요. 모르긴몰라도 저는 작가처럼 멋지게 표현하는 대신 '읽지도 않은 책을 마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정도의 식상한 표현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차이가 눈에 확연히 보이지요? 이러니 제가 낙담할 밖에요. 대학생과 초등학생을 놓고 비교해도 이보다 더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을 듯합니다.

 

아무튼, '보다' '말하다'에 이어 김영하 산문 3부작의 완결편으로 출간된 이 책은 유명 작가이기 이전에 독서광으로서의 그의 편력을 생각하게 합니다. 저는 앞의 두 작품을 읽고 내심 작가에 대한 호감이 증가했던 게 사실입니다.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콕콕 짚어준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작가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이 저와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빨리 읽어야지' 생각했던 게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미뤄지다가 이제서야 시간을 내어 읽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앞의 두 책에 비해 가독력이 떨어진다고 느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보다'와 '말하다'가 자신의 경험을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놓았던 반면 '읽다'는 다분히 작가의 지식에 의존하여 책이 꾸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뇌과학자들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리 인간의 뇌는 현실과 환상을 분명히 구분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어떤 현실은 이러한 꿈처럼 기억되고, 어떤 이야기는 마치 직접 겪은 일처럼 생생하기만 합니다. 이야기와 비슷한 것으로는 꿈이 있습니다. 그러나 꿈은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야기와 다릅니다. 어제 꾼 꿈을 정확히 이어 꾸지는 못하니까요. 그런데 소설은 꿈만큼이나 생생한데 계속 이어집니다." (p.64)

 

작가가 했던 여섯 차례의 문학강연을 책으로 엮었다는 이 책은 그가 읽었던 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를테면 '오디세이아'와 '오이디푸스 왕'에서 시작된 '독서는 왜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독서로 인해 '우리가 굳게 믿고 있는 것들을 흔들게 되고', '자아의 상당 부분이 독서와 함께 산산이 흩어진다.'고 했던 작가의 대답은 보르헤스의 단편 '바벨의 도서관'에까지 이르게 되고, 마침내 독서는 '이야기의 바다'로 뛰어들어 '책의 우주'와 접속하는 행위로 확장됩니다. 그 각각의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작가는 자신이 읽었던 많은 책들을 동원합니다. 당연하게도 우리가 읽었던 많은 책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때로 자신이 쓴 소설을 예로 들기도 하면서 우리의 관심을 소설로 끌어들입니다. 생각해 보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현실과 유리되는 독특한 경험입니다. 예컨대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 초반부에 봉룡이 자신의 아내 숙정과 외간 남자의 만남을 목격하고 다짜고짜 매타작을 하는 장면을 읽으며 마치 내가 숙정이 된 양 쩔쩔매다가 엄마의 부르는 소리에 퍼뜩 현실로 돌아왔을 때의 생경한 느낌은 소설을 읽는 독자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느끼도록 하는 흔한 예가 될 테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소설을 읽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헤매기 위해서일 겁니다. 분명한 목표라는 게 실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이상한 세계에서 어슬렁거리기 위해서입니다. 소설은 세심하게 설계된 정신의 미로입니다. 그것은 성으로 향하는 K의 여정과 닮았습니다. 저멀리 어슴푸레 보이는 성을 향해 길을 따라 걸어가지만 우리는 쉽게 그 성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p.101~p.102)

 

작가는 소설 읽기를 두고 '이상한 세계에서 어슬렁거리기' 또는 '정신의 미로에서 기분 좋게 헤매는 경험'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순전히 독자 개개인의 치환되지 않는 독자적인 경험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소중한 것은 교환이 불가능하다는 작가의 말처럼 독서는 그래서 더 소중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영하의 산문집 '읽다'를 읽고 있노라면 그의 유창한 강연을 떠올리게 됩니다. 강연을 들으면서 이따금 꾸벅꾸벅 졸다가 소란한 웃음 소리에 잠을 깨기도 합니다. 저는 그렇게 한나절 어슬렁거렸던 듯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