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더블 side A 더블 - 박민규 소설집 1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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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핫팩을 그러쥔 듯 몸이 덥다. 문득, 그렇다. 설마 덥기까지야... 아침의 내 생각은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는 시곗바늘에 채여 비틀대거나 휴일 아침의 게으른 얼굴처럼 초췌해졌다. 계절의 변이(變異)는 그렇게 갑자기 다가와 얼굴을 쿵하고 부딪히거나, 콧김을 훅 뿜고 달아나는 것이다.

 

박민규의 두 번째 소설집 [더블 side A]를 읽었다. 일전에 읽었던 [카스테라]의 여운이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바람에 그리 된 것이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다. 때는 바야흐로 사 월이었고, 춘곤증 1리터를 원샷한 기분이었고, 안 그래도 머리가 책상의 윗면과 가까워지려는 시기에 굳이 소설을 읽을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부연하여 설명하자면 그랬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작가가 직접 마스크를 쓰고 촬영한 표지 사진이다. 또라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거나, 내리거나, 번지다가, 문득 멈춰 섰다. 멕시코의 전설적인 레슬러 '블루 데몬'과 '엘 산토'를 모티프로 삼은 것이라고 한다. 그는 문학상 시상식에도 이 가면을 쓰고 나갔다고 하니 또라이라는 내 생각이 맞거나, 때리거나 흘러내렸을 것이다. 아마도. 18편의 단편을 두 권에 나눠 묶은 이 책은 상·하권이 아니라 side A, side B로 나뉜 음반과 같은 느낌을 준다. 박민규의 소설이 다른 작가와 차별화되는 주된 이유는 작가의 상상력과 뛰어난 문장력 덕분이겠지만 그와 더불어 행갈이와 여백 등의 시각적인 장치를 통하여 소설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독자들에게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더블-sideA]에는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인 '근처'를 비롯하여 '누런 강 배 한 척', '굿바이, 제플린', '깊', '끝까지 이럴래?', '양을 만든 그분께서 당신을 만드셨을까?', '굿모닝 존 웨인', '축구도 잘해요', '크로만, 운'의 9편이 실려 있다.말기암 판정을 받은 40세 독신남의 귀향을 통해 죽음과 존재의 성찰을 시적으로 그려낸 '근처'는 박민규 작가의 변화와 발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카스테라]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들이 시시각각 변하는 인간의 감정이나 생각들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눈에 보이는 듯 선명하게 그려냈다면 [더블]에 실린 작품들은 죽음과 삶이라는 본원적인 질문을 향해 더 깊이 파고드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물이 끓을 때까지, 또 물이 끓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말없이 갈라진 허물의 등짝을 바라본다. 죽음도... 저런 걸까? 행여 삶이란 허물을 벗고, 또다른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닐까. 저 틈을 빠져나온... 그리고 다시, 오래전에 죽었을 매미의 삶을 나는 떠올려본다. 수면(水面)이란 허물을 벗어던지고, 잘 우러난 얼그레이의 향이 코끝까지 번져온다. 남은 삶이 문득 홍차가 되기 직전의 뜨거운 물처럼 느껴진다. 번진다, 번진다" ('근처'-1권 p.16)

 

자식들에게 자신이 가진 재산의 대부분을 내어주고 치매에 걸린 아내와 함께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한 노인의 시선을 그린 '누런 강 배 한 척'도 '근처'의 연장선에서 다루어진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인간이란//천국에 들어서기엔 너무 민망하고 지옥에 떨어지기엔 너무 억울한 존재들이다. 실은 누구라도, 갈 곳이 없다는 얘기다. 연명(延命)의 불을 끄고 나면 모든 것이 선명해진다. 창을 열고, 나는 베란다로 나간다. 긴 하루의 늦은 밤이다. 흐르고 흐르고 흐르는 차들의 불빛들로, 언뜻 저 멀리 도로가 길고 긴 강물처럼 느껴진다. 아득하고, 멀다. 이제 그만//건너고 싶다.//저 누런 강, 나는 한 척의 배처럼" ('누런 강 배 한 척'-1권p.65~p.66)

 

특이한 것은 [더블]에 실린 작품 중 많은 것이 작가에 의해 시도된 실험적인 작품이라는 점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한, SF적이거나, SF스럽거나, SF 비스무리한 작품들이 미래스럽게 펼쳐진다. 먼 미래를 배경으로 심해 탐사라는 특이한 소재로 쓰여진 '깊'이 그렇고, 다른 우주의 이야기를 다룬 '크로만, 운'이 그렇다. 내가 인상깊게 읽었던 작품은 '양을 만든 그분께서 당신을 만드셨을까?'였는데 작가는 어둠 속 망루에서 끝도 없이 보초를 서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시니컬하게 다루고 있다. 나는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떠올렸다. 소설의 분위기도, 양이 등장하는 것도 어쩐지 서로 유사한 면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어쩌면 박민규 작가도 하드하면서도 보일드한 세계의 끝과 같은 원더랜드를 배경으로 삶과 죽음, 기억의 문제를 다루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 지구의 울음소릴 듣고 싶었어. 이어지는 고요 속에서 샘케가 중얼거렸다. 이렇게 꼭 한번은 말이야. 하지만 실은 인간의 울음소리가 아닐까? 드미트리가 속삭였다. 룸도 인체의 확장일 뿐이야, 조금 전의 소리도 그 인체가 낸 울음이고, 룸은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깊'-1권p.135)

 

주말 휴일 이후의 평일 하루를 이미 겪은 몸이지만 천 근 만 근 늘어지는 몸을 어찌할 줄 모르겠다. 청명한 봄하늘과 꽃구경을 나온 사람들의 설레는 표정은 곧 있을 초여름의 더위를 예고하고 있을 테지만 나는 여전히 겨울스러운 오후의 외투를 입고 박민규의 SF스럽거나, SF 비스무리했던 소설들을 생각하며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다. 달다, 또는 쓰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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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억누른 채 점잖은 척 짐짓 에둘러 말할 때가 있습니다. 아파트 화단에 핀 벚꽃을 보면서도 나는 "벚꽃이 환하게 피었네." 무심한 듯 한마디 했을 뿐입니다. 화산처럼 튕겨져 나오는 꽃의 분화를 그렇게 무심히 맞을 일은 아니었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담아 자지러질 듯 떠들 일은 아니었을지라도 그윽한 상념과 함께 시선은 오래 머물렀어야 했습니다. 매년 피는 꽃일지언정 반갑다는 인사는 했어야 옳았습니다. 새롭게 핀 벚꽃을 맞는 것처럼 새롭게 나온 에세이를 둘러봅니다.

 

 

나의 마지막 모습이 이러했으면, 하고 오래 생각한 적은 없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그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연명치료를 하면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되기 때문이지요. 이 책의 저자인 다비드 메나셰도 그런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고등학교 영어 교사였던 저자는 100여일 동안 미국 전역을 떠돌며 75명의 옛 제자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 여정에 동행하고 싶은 까닭은 나의 마지막 모습도 그러했으면 바라기 때문입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다룬 빌 브라이슨의 저서 <나를 부르는 숲>을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던지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완주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면 꼭 한 번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습니다. 35년 동안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며 열한 명의 아이를 키워낸 게이트우드가 가까스로 이혼하고 예순일곱의 나이에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완주하였다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몇 년 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위지안 교수의 저서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를 읽고 깊은 감동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유학을 마친 후 결혼을 하여 아들을 낳고 이제 막 교수로서 인생을 즐기려던 찰나에 그녀는 암 선고를 받고 세상을 떠났던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케이트 그로스도 비슷했었나 봅니다. 20대에 이미 총리 관저에서 일할 정도로 성공한 인생을 살았던 그녀가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16일만에 완성했다는 이 책은 그래서 더 값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전적으로 사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열성팬인 저는 하루키의 신간이라면 그저 좋아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루키의 글과 고인이 되신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이라고 하니 더욱 욕심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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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 - F. 스콧 피츠제럴드와 <위대한 개츠비>, 그리고 고전을 읽는 새로운 방법
모린 코리건 지음, 진영인 옮김 / 책세상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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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련한 추억과 함께 다시 읽고 싶은 책이 적어도 한두 권쯤은 있게 마련이다. 예컨대 중학교 시절에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나 그 무렵의 학생들에게 회자되던 J.D.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대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교 시절에 읽게 되는 한국 단편문학과 그때 읽었던 이상의 <날개>나 김유정의 <봄봄>, <동백꽃> 등은 요즘과 같은 봄의 어느 날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그때의 추억과 함께 다시 읽고 싶은 책의 목록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박경리, 박완서 작가의 <김약국의 딸들>이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함께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렇듯 나는 석양처럼 번지는 그리움으로 인해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책에 이끌린다기보다 그리움에 이끌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책이나 무작정 이끌리는 건 결코 아니다. 읽었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으려면 추억만으로는 부족한 어떤 유인이 따로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 권의 책을 두어 번 다시 읽었던 적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열 번, 스무 번 반복해서 읽었던 책은 아마 없었지 싶다.

 

"성인이 된 다음 내가 《개츠비》를 자진해 쉰 번도 더 읽고, 대학에 신입생들이 들어올 때마다 《개츠비》를 강의하고, 전국을 돌며 호기심 많은 독자들 앞에서《개츠비》에 대해 열렬하게 이야기하리라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면 나는 깜짝 놀랐을 것이다." (p.12)

 

비평가이자 언론인인 모린 코리건은 자신의 저서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의 '들어가는 말'에 이렇게 썼다. 말하자면 그녀는 <위대한 개츠비>의 열렬한 팬이자 애독자인 셈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위대한 개츠비>에 숨겨진 많은 상징들(물, 시간, 타이타닉호, 온도, 색깔 등)과 정교하게 짜여진 작품의 구조, '시와 같은 힘찬 문체' 등을 설명하면서 피츠제럴드의 삶과 소설의 관계를 여러 증거를 통하여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모린 코리건의 이 책은 자신의 경험과 감성을 살린 <위대한 개츠비>에 바치는 저자 자신의 '사랑 고백'인 동시에 피츠제럴드와 관련된 광범위한 취재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학문적 혹은 전기적으로 무언가를 더 보탤 생각은 없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소설로 떠나는 개인적인 여행이다. 나 말고도 많고 많은 사람들이《위대한 개츠비》를 사랑한다. 나와 함께 《개츠비》를 다시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 아직 읽지 않았지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이 책을 썼다." (p.25)

 

사실 나는 저자인 모린 코리건에 대한 인상이 썩 좋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몇 년 전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영어로 번역되어 미국에서 출간되었을 때 어느 라디오 방송에서 그녀가 했던 혹평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인들에게 문학적인 장르가 있다면, 그건 교묘하게 눈물을 짜내는 언니(sister) 취향의 멜로드라마"라고 말하면서 "<엄마를 부탁해>는 확실히 그 중에서도 집권 여왕격"이라고 꼬집었다. 그녀의 비평이 개인적인 것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나는 그녀가 했던 말이 타국의 문화에 대한 지적 기반이 없는 지극히 국수주의적인 언사였다고, 문화적 기반이라야 불과 200년이 조금 넘는 문화 열등국의 한 언론인이 밝힌 열등의식의 분출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지만 나는 F.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마저 폄하할 생각은 없다. 나는 적어도 <위대한 개츠비>를 두 번 이상 읽었고, 나 나름의 리뷰도 써본 적이 있지만 여전히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부분이 작품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도덕적으로는 혼탁했던 1920년대 미국의 '재즈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피츠제럴드는 단연 돋보이는 작가였다고 생각한다. 내가 <위대한 개츠비>에 대하여 모린 코리건처럼 '미국의 계급을 다룬 가장 위대한 작품인 동시에 냉혹한 현실을 서정적 언어로 전달한 고전"이라는 찬사를 보내지는 못할지언정 피츠제럴드가 그 시대의 미국을 가장 설득력 있게 묘사한 작가라는 데는 나로서도 이견이 없다.

 

"나는 이 책 전체에 걸쳐 다음의 문장을 인용해왔지만, 한 번 더 전부 다 인용할 가치가 있다. 개츠비는 녹색의 불빛을 믿었다. 해가 갈수록 우리 앞에서 멀어지는, 절정의 순간과 같은 미래를 믿었던 것이다. 그때는 그것이 우리한테서 달아났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 내일은 우리가 더 빨리 달리고, 더 길게 팔을 뻗으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맑은 아침에 ----/그래서 우리는 계속 나아간다, 흐름을 거스르는 보트들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리면서도. 이 말들은 절대 늙지 않는다." (p.375)

 

우리나라에도 모린 코리건과 같은 문학가가 여러 명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평생을 괴테 문학의 연구에 몰두했던 전영애 교수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세계에 푹 빠져 사는 임경선 작가 등은 내가 아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다. 어떤 순간이 "수많은 순간들의 퇴적 속에 깊이 묻혀 있다"고 했던 장 그르니에의 말처럼 한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음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삶에 동일한 경험을 반복해서 퇴적시킴으로써 더 단단하고 반듯한 삶의 체계를 형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가 읽은 책은 한 권의 소설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관하는 하나의 텍스트, 삶의 은유로 존재하게 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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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미세먼지로 목이 칼칼하고 멀쩡하던 눈마저 따끔거리는 날이 연일 이어지다 보면 과거 2,30년 전으로 되돌아가 산 위의 맑은 공기 한 바가지 퍼마시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계절은 봄꽃이 만발하여 우리를 유혹하고 차지도 덥지도 않은 기온은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은데 문이란 문은 꽉꽉 쳐닫고 빗물 자국으로 꾀죄죄한 유리창을 통하여 바깥 풍경을 보고 있자니 한심한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자연을 생각하지 않는 발전은 결국 인간을 죽이고 만다. 전국의 공기 좋다는 곳을 아무리 다녀봐도 예전만 못하다. 남들은 날 보고 '기분 때문이겠지' 말하지만 완전히 기분 탓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발전이고, 누구를 위한 자연파괴인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인간이 제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 한들 자연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발전만이 능사인 줄 안다.

 

꼭 자연만 망가지는 건 아니다. 인간의 심성도 따라서 망가진다. 욕심이 자꾸자꾸 커지는 탓이다. 법무부에 근무하는 한 고위직 공무원은 넥슨 주식 80만주를 팔아 구설에 오르고 있다. 비상장 주식을 80만주나 대량으로 매입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그것도 회사와 업무 연관성이 없는 개인이 말이다. 그럼에도 그 사람은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민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뭐하러 개 돼지들한테 신경을 쓰시고 그러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영화 '내부자들' 중에서)라고 누군가 조언했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양심 또한 썩어간다는 걸 그는 모를 것이다.

 

봄햇살이 저리도 따사로운데 문이란 문은 모두 닫은 채 실내에만 머무르자니 속이 터진다. 어렸을 적 이맘때면 들로 산으로 해가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쏘다녔을 텐데 말이다. 정말이지 그 시절의 공기를 어디서 구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다.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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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30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30 16: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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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에 생각나는 사람
김정한 지음 / 미래북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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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한번 보자'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늘 길이 엇갈려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갈 참엔 그는 공교롭게도 어디 외출을 했거나 예전에는 단 한 번도 없었던 사고로 병원에 입원을 하는 등 그야말로 불운이 붙어다닌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 경우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 이 사람과는 이제 죽을 때까지 몇 번 만나지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종의 미신처럼 말이다. 실제로 과거에 아무리 친했던 사람일지라도 죽기 전까지 몇 번이나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괜히 쓸쓸해지곤 한다.

 

시인 김정한의 신작 에세이 <새벽 2시에 생각나는 사람>을 읽으며 문득 쓸쓸해졌다.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지 못한 채 돌아설 때처럼. 시인의 삶과 사랑에 대한 오랜 고민을 시가 아닌 산문으로 털어놓은 이번 작품에서 나는 왠지 모를 쓸쓸함과 더불어 시인이 겪고 감내해야 했던 고통의 옹이를 억지로 만져본 듯한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 곁에서 아무것도 아닌 일로 쿡 찌르기만 해도 어린애처럼 금세 '왕'하고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나는 그렁그렁 눈물이 괸 눈으로 책을 읽어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먹먹해진 가슴으로.

 

"풍화된 시간을 돌아서 갈 즈음에는 동행할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어요./ 실망과 절망을 되풀이 하다 낡아버린 생각들이/ 서로 부딪치다 대숲에서 울어도/ 그리움이 파내려간 미로를 더듬어 인연의 출구에 도착하겠지만/ 누군가 나보다 먼저 도착했으면 좋겠어요./ 힘겨운 순례의 길이 멈추지 않도록 단 한 사람이 동행했으면 좋겟어요./ 그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어요." (p.102)

 

며칠 전 친한 친구 한 명이 나를 만나기 위해 평일 오전에 차를 몰아 서울에서 내가 있는 이곳까지 내려온 적이 있었다. 깜짝 놀란 나는 그의 손을 반갑게 잡았지만 우리는 이렇다 저렇다 별 이야기도 없이 그저 점심을 같이 먹었고, 늘 테이크 아웃을 하던 커피숍에서 익숙치도 않은 에스프레소를 주문하였고, 관상용인 듯 그저 쳐다보기만 할 뿐 마시지는 않았고, 약속이나 한 듯 일어섰고, 주차장까지 배웅을 나가겠다는 나를 친구는 굳이 등 떠밀어 돌려세웠고, 친구는 그렇게 말도 없이 가버렸다. 그리고 그 날 다 늦은 시각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 "잘 올라왔어. 얼굴 보니까 좋더라." 하는 싱거운 말에 나는 그저 기분이 좋았었다.

 

"꼭 당신을 만나야겠다고 노력한 적은 없어요./ 그러나 어느 날 당신이 내 앞에 서 있었어요./ 당신을 사랑하겠노라 죽어라 애쓴 적도 없어요./ 어느 날부터인가 난,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일부러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한 적 없어요./ 그저 난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서서히 물들기 시작했으니까요." (p.316)

 

관계는 의도하지 않는 어떤 순간에 맺어지고, 인연은 또 보이지 않는 어떤 시간에 깊어지는가 보다. 얼굴만 잠깐 보고 돌아서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 그런 인연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한참을 생각했다. 웅숭깊은 시인의 말에 상념이 깊어지는 하루였다. 언제였는지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모든 게 흐릿하고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나는 그때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렇다면 잘 살고 있는 거라고. 미래가 확고하고 모든 게 선명하다면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닌 로봇이거나 인생을 두 번 사는 뱀파이어가 아니겠느냐고.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은 '후회한다'는 말인 것 같아요./ 후회는 실수, 실패의 주인이기도 하니까요./ 그 의미를 알면서도 '후회한다'는 행동을 하게 되니까요./ 아마도 완벽하지 못해서 그렇겠죠?" (p.194)

 

괜히 우울하고 어깨가 움츠려드는 이유는 '세상에 오직 나 한 사람만 ……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마음 때문이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며 조용히 손 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내 얘기에 귀 기울여 줄 사람이 곁에 있다면 세상의 공기는 지금보다 한결 따뜻해질 것이다. 세상의 그대에게 가장 훌륭한 위로는 그대를 향한 조용한 미소라는 걸 누군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어쭙잖은 충고가 난무하는 요즘, 들꽃처럼 순박한 미소와 어깨에 얹히는 가벼운 손길이 세상을 향한 따뜻한 위로임을 시인은 이 책에서 말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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