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이라도 같이 하자는 친구의 전화를 받은 것은 오늘 아침의 일이었다. 딱히 정해진 선약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요즘처럼 입맛이 없는 시기에 점심은 대충 때우면 될 일인데 점심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과 장소를 정해 친구와 만나고 또 메뉴를 고르느라 한참이나 머리를 쥐어짠다는 것이 괜한 정력을 소모하는 것도 같고 번잡스러운 느낌도 있어서 우물쭈물 망설이고 있었는데 친구는 다짜고짜 시간과 장소를 잡고는 꼭 나오라며 엄포 비슷한 투로 다짐을 받았다.

 

딱 맞게 도착하려던 것이 그만 조금 늦고 말았다. 친구는 언제 도착했는지 식당의 입구에서 잘 보이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멍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제 좋아하는 일을 찾아 종일 헤맬 듯한 놈이 오늘은 어쩐 일인지 어깨가 축 처지고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걸 보니 뭔 일이 있어도 단단히 있나 보다 하는 걱정이 들었다. 나는 식당 사람들이 다 들을 듯한 큰 목소리로 뭔 맛있는 걸 사줄려고 가라 오라 하느냐 물었더니 어라 이게 웬 일, 왔어 하면서 조용히 눈만 마주치는 게 아닌가.

 

나는 한껏 걱정이 되어 "뭔 일 있냐?" 물었더니, "뭔 일은 뭔 일, 그런 거 없어. 그냥 사는 게 재미 없어서 그래." 하는 게 아닌가. 돈키호테가 갑자기 햄릿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어떠한 필터도 거치지 않고 바로 입으로 튀어나오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사는 게 재미없다는 표현은 영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었다.

 

냉면을 무겁게 건져올리며 어렵게 어렵게 꺼낸 그의 변은 이랬다. 자신은 매년 4월만 되면 프로 야구를 보는 재미로 사는데 요즘에는 오히려 프로 야구 때문에 살 맛이 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가 응원하는 팀은 올초까지만 하더라도 우승 후보로 낙점이 될 정도로 선수 보강을 많이 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연전연패를 거듭한다는 거였다. 게다가 얼마 전에 치러진 총선에서 자신이 평생 지지하던 당이 무참히 패배했다는 사실이 삶의 의욕마저 꺾어놓았다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이런 미친 XX가 있나' 싶었지만 친구로 지내왔던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서 전에 없던 다정한 표정으로 "흠, 그런 일이 있었구먼." 하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친구 왈, "프로 야구 팀이야 감독을 바꾸면 되지만 여당의 수장은 대통령인데 지지율 상승을 위해 대통령을 바꿀 수도 없고..." 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의 한숨이 지나간 자리가 10센티쯤 움푹 패인 듯했다. 얘기를 들어 보니 그가 응원하는 야구팀의 감독과 대통령의 공통점 또한 비슷해 보였다. 소통의 부족과 권위주의적 태도. 그럼 그렇지. 그런 사람을 믿고 따른다는 게 21세기에 가당키나 한 일인가. 반이나 남긴 친구의 냉면을 내가 다 먹고 말았다. 오늘 따라 밥맛이 더 댕겼다. 친구에게는 미안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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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7 11: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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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8 15: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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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향해 쏴라
마이클 길모어 지음, 이빈 옮김 / 박하 / 2016년 2월
평점 :
품절


이상도 하지요? 어려서는 결코 믿지 않았던 운명에 대해 시나브로 '운명이구나' 생각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일이 하나, 둘 늘어만 가니 말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가능성의 영역은 줄고 처분만 기다리는 운명의 영역이 더 넓어지는 까닭도 있겠습니다만 그보다는 오히려 젊은 시절에는 까맣게 잊고 지내던 운명에 대해 조금씩 알게되었다거나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것들, 운명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어떤 것들을 하나, 둘 발견하게 되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곤 합니다. 그럴 때면 마치 누군가가 펼쳐 놓은 운명의 덫에 앞도 살피지 않고 무작정 돌진하던 내가 허망하게 걸려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거미줄에 걸린 한 마리 나비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어머니는 이 모든 것들이 애초부터 운명으로 정해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 같다. 그리고 한평생 끝끝내 오지 않을 희망과 해방의 기다림 속에서 살게 한 잔인한 운명의 장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p.98)

 

마이클 길모어의 <내 심장을 향해 쏴라>는 죽음과 운명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는 책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깊이 있는 어떤 철학책을 읽을 때보다 더 자주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곰곰 생각하였습니다. 누구라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불행한 운명을 살았던 한 가족의 가족사를 읽고 이토록 깊게 생각해본 건 처음인 듯합니다. 소설이 아닌 실화로서의 가치 또한 이 책이 갖는 또다른 의미일 것입니다. 두 명의 무고한 시민을 죽이고 스스로 사형에 처해달라고 주장하여 전 미국을 충격에 몰아넣었던 사형수 게리 길모어의 동생이기도 한 이 책의 작가 마이클 길모어는 자신의 형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운명과도 같았던 자신의 가족사에서 찾고 있습니다.

 

"게리는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어버렸어. 그는 죽음이 자신을 해방시켜주길 원하고 있어. 이게 그를 다시 만나러 가지 않은 이유야. 그가 진심으로 그걸 원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리고 괴로웠지. 게리는 그저 죽음을 바란 정도가 아니야. 마치 휴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축제 기분에 젖어 있는 것 같았어. 게리는 자신을 해방시키려고 한 거야. 그에겐 탈출이었어," (p590~p.591)

 

1977년 게리 길모어의 사형이 집행된 후 노먼 메일러는 게리의 이야기를 담은 <사형집행인의 노래>를 써서 발표하였고, 그 책은 베스트 셀러에 올랐음은 물론 퓰리처 상까지 수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작가를 비롯한 살아 있는 그의 가족에게 꼭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고 그것은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였습니다. 가족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재창조하고 그것의 증인이 되는 일은 작가의 입장에서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상실의 고통을 계속해서 되새김질 하게 함으로써 그의 가족들로부터 망각의 권한을 앗아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르몬의 혈통을 이어받은 집안에서 자라면서 그녀가 겪은 그 모든 것들, 그리고 열렬하고 경건한 종교적 신화 뒤에서 빛났던, 그러나 사실은 어쩌면 고집불통의 형편없는 작자들일 수도 있는 선조 개척자들을 기리는 집안에서 자라온 그녀에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과묵한 프랭크 길모어의 태도는 오히려 장점으로 보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p.124)

 

작가는 모르몬의 혈통을 이어받은 외가의 역사부터 쓰고 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 베시의 어린 시절과 아버지와의 만남, 그리고 자신을 비롯한 형제들의 유년 시절. 그것은 어쩌면 대를 이어 지속되었던 폭력과 학대의 역사였고, 공포와 분노의 축적이었던 동시에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던 게리 길모어에 이르러 잠재되었던 분노의 표출로 나타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작가의 형 게리는 피로써 자신의 죄를 사죄하는 모르몬의 전통에 더하여 자신의 죽음으로써 혈통에 흐르는 폭력과 학대의 역사를 끝내려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게리가 죽은 후 큰형 프랭크와 함께 살던 어머니마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자 작가는 극심한 외로움을 느꼈다고 고백합니다. 폭력과 공포 속에서 살아왔던 자신의 삶과 영원히 단절되기를 원했던 작가는 가족으로부터 끝없이 도망쳤었고, 어머니가 죽고 큰형 프랭크마저 연락이 되지 않았음에도 작가는 끝내 그를 찾지 않았습니다.

 

"여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어야 했던 것, 그것은 그래도 우리의 인생은 계속된다는 진실이다. 우리는 고통을 삼키고, 과거를 돌아보고, 우리가 한 일들을 용서해야 한다. 그건 우리가 살아가면서 기억해야 하는 진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말로 우리의 인생이 '계속'되며, 인생에 있어서 죽음 말고는 종지부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완전히 끝났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죽음뿐이다. 막을 내린 인생을 평가하고, 그 플롯과 극을 분석하고, 또 그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죽음의 시간뿐이다."    (p.643)

 

가족과 단절된 채 음악 평론가로서, 작가로서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았던 그는 번번이 실패했던 결혼도 자신의 가족사와 무관치 않음을 깨닫습니다. 작가는 부랑아처럼 떠돌던 프랭크와 재회하여 유타를 다시 방문합니다. 어머니가 자라고, 부모님이 처음 만났고, 게리가 파멸을 불러왔던 곳을 다시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그토록 혐오했던 자신의 가족사와 그곳에서 살고 있는 친척들과의 화해였습니다. 작가는 사촌 누나 브렌다로부터 게리의 유골을 건네받았고, 어머니와 프랭크에 얽힌 충격적인 비사도 알게 됩니다.

 

"나는 나에게 이 세상에 영속시켜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는 것, 내가 죽은 후까지 남겨두어서는 안 될 그 무엇이 내 안에 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나 자신과 나의 미래에 대한 그런 생각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난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    (p.655)

 

초여름처럼 더운 날씨였습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심장이 옥죄는 듯한 욱신욱신한 통증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아버지의 무차별적인 폭력과 그것을 견디며 삶을 지탱하기 위해 자신의 내면에는 공포와 그것을 이기고도 남을 만한 분노를 키워왔던 나의 유년시절이 작가의 삶에 쉽게 투영되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면 저항할수록 자생하는 분노는 커지게 마련이고, 언젠가 자신이 키워온 분노가 자신마저 삼켜버릴 수 있음을 아프게 깨달았던 하루였습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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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 당신 - 위로가 필요한 모든 순간에 써내려간 문장들
이용현 지음 / 북라이프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햇살 고픈 아이들이 양지쪽에 나란히 앉아 봄볕을 쪼이고 있다. 가슴에 쌓인 먼지를 봄햇살에 털어내는 아이들 표정이 어쩜 그리도 투명한지. 저 나이쯤에는 아마 가슴 한 켠이 시렸던 기억은 설마 없겠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햇살 고픈 날에 햇볕을 쬐듯 마음 시린 날엔 시(詩)를 쪼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온종일 햇볕을 쪼여도 시린 가슴이 더워지지 않는 날이 있다고. 그런 날에는 시집 한 권 곁에 두고 주저없이 시(詩)를 쪼이라고, 봄볕 담은 아이들 눈에 심어주고 싶었다. 조막만 한 아이들 손에 햇살 한 움큼 담아주고 싶은 것처럼.

 

이용현의 <울지마, 당신>은 저자가 낱말 하나하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는 걸 금세 알 수 있는 책이다. 마음에 생긴 사소한 생채기쯤이야 그가 내민 한 줄 위로의 글로도 금방 나을 것만 같았다. 좋은 글은 머리로 이해되기 보다는 먼저 가슴으로 녹아드는 법이다.

 

울지마, 당신

잠시만 눈을 감고 있으면 사라진다.

고통으로 나를 이끌었던 시간의 궤적들이

사라져버린다.

행복의 싸움은 미래가 아닌

나 자신과의 싸움이란 걸 잊지 말자고

희미해져가는 것들을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는 것들에

의미를 두지 말자.

오직 내 마음을 소중히 지켜내는 것에만

힘을 두자.

 

어제는 우렁 쌈밥을 먹자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나갔었다. 초록의 신선한 모둠 쌈과 우렁 쌈장이 입맛을 자극했다. 식사를 마칠 즈음 친구는 한탄조의 말을 한마디 툭 던졌었다.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은 건지..." 쓸쓸함이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삶은 어차피 상처와 치유의 반복일 뿐이고 그 과정의 고통을 고스란히 경험하는 일이야. 삶의 모양새가 어떠하든 그 고통을 견디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야. 그러니 별 탈 없이 이만큼 견뎠으면 오히려 기뻐할 일이지 슬퍼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정작 불쌍한 사람은 살 날이 한참이나 많이 남은 젊은 사람들이야." 했더니, "그런가?" 하면서 조금 밝아진 듯 보였다.

 

광고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지금은 이커머스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저자는 자신의 페이스북 '울지마, 당신'에 연재 중인 글과 직접 찍은 사진들 중 가장 사랑받고 공감을 얻었던 120여 편의 글과 사진을 엄선해서 이 책을 엮었다고 한다. 총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무엇을 해도 서툴기만 했던 젊은 날의 시련과 상처를 기록한 첫 장 '서둘러서 서툴러서',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두 번째 장 '슬픔이라 말하기엔 이른 시간', 그리고 책의 제목이기도 한 세 번째 장 '울지마, 당신'은 위로와 희망의 글로 채워져 있다.

 

마음을 비우며

 

상처받은 일만 생각하다 보면

상처 준 일은 잊게 되는 법이다.

 

이기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공원에서 봄볕을 쬐던 아이들은 어디론가 가고 없다. 유난히 봄비가 잦았던 요즘,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오늘은 어릴 적 광목 이불 홑청에서 맡던 햇살 내음이 맡아질 것만 같다. 어쩌면 봄비를 맞는 식물처럼 봄볕을 받은 아이들도 이 봄이 지나고 나면 몸도 마음도 한 뼘 자라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사람도 하늘이 기르는 식물이다' 라고 노래했던 문태준 시인의 시구처럼 <울지마, 당신>을 읽은 내 영혼도 봄비를 맞은 저 나무처럼 우뚝 자라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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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나절 내내 비가 내렸다. 어젯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오늘 오전까지 이어졌다. 어제는 24절기의 여섯째 절기이자 봄의 마지막 절기인 곡우(穀雨)였으니 이 비가 백곡(穀)을 기름지게 하였으리라. 가볍게 내리는 봄비를 뚫고 아침 운동을 나섰었다. 아침이면 늘 하는 운동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비 오는 날의 등산은 어쩐지 가볍게 설렌다. 매번 그렇다.

 

가볍게 내리는 비였다. 우산에 듣는 빗소리가 투닥투닥 정다웠다. 생명을 키우는 비는 언제나 가볍고 경쾌하다. 그것은 빗줄기의 가늘고 굵음이나 강수의 많고 적음에 기인하지 않는다. 생명의 젖줄과도 같은 봄비가 만물을 보듬어 깨우고 나날이 자라도록 북돋우는 것인데 어찌 무겁거나 우울할 수 있으랴. 하여, 봄에 내리는 빗줄기는 생기가 넘친다. 비가 내리는 날의 참나무 밑동에 고인 흰 거품과 반쪽만 젖은 소나무 몸통도 오늘따라 유난한 듯 도드라졌다.

 

반면 가을비는 무겁고 우울하다. 새봄이 되기 전에 떠나갈 생명에 대한 애도의 느낌 때문이다. 그러므로 잠깐 내리는 가을비에도 무거운 바위를 어깨에 짊어진 듯 허리가 꺾이곤 한다. 그 애잔함에 울컥 눈물이 솟기도 하고.

 

연둣빛 잎새가 점차 초록의 물이 들고 있는 요즘, 오늘은 생명을 키우는 가벼운 봄비가 땅속 깊이 스며들고 허공에는 포릉포릉 참새가 날았다. 다들 생명을 키우는 일에 저토록 열심인데 저마다의 삶이 어찌 가벼울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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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 :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 - 성룡 자서전
성룡.주묵 지음, 허유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매일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사는 게 도무지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맹숭맹숭하고 재미없어질 때가 가끔 있다. 그럴 땐 정말 ;이럴 수도 있구나' 싶은 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뭔 일을 해도 그저 맹물을 마신 듯 밍밍하기만 하고 그보다 정도가 심할 때에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내팽개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다 마침내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는걸' 하는 생각이 들라치면 그제서야 퍼뜩 정신이 돌아오곤 한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나 다부진 결심이 재빠르게 내 몸을 재점령하는 건 아니지만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미세한 떨림을 동반한 채 서서히 떠오르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중심을 잡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정신을 차릴 때쯤이면 나는 어김없이 혼자 영화를 보러 가곤 한다. 조명이 꺼진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스크린을 한두 시간 응시하다 보면 내게 남아 있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어둠 속으로 서서히 풀려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영화관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내는 나의 습관은 꽤나 오래된 것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시험이 끝난 다음날 단체관람으로 보았던 홍콩 영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시험공부로 부족했던 잠 때문에 가물가물 눈은 감기는데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성룡의 화려한 액션과 코믹한 연기가 무겁게 떨어지는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올리곤 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스크린 속의 성룡은 내 속으로 자리를 옮겨가게 마련이었고, 다시 조명이 켜지고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즈음이 되어서야 성룡의 엔지 장면을 겨우 보면서 내용을 유추하곤 했었다.

 

"가난뱅이가 부자가 되고 돈을 흥청망청 쓰다가 기부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은 나의 성장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내게 무식한 졸부라고 손가락질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실제로 내게 그런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돈을 꼭 써야 하는 곳에 쓰는 법을 알고 있다." (p.83)

 

그렇게 인연이 된 성룡이었기에 최근에 나온 그의 자서전 '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도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무려 623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이었는데도 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더이상 단체관람의 영화를 볼 수도 없었지만 그는 한동안 명절 연휴를 장식하는 인기 연예인인 양 각 방송사의 특선 영화에 자주 등장하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홍콩 영화의 쇠락과 함께 그의 인기도 시들해졌지만 그는 여전히 내 마음 속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내는 긍정의 메신저로 자리하고 있었다.

 

"나의 모든 영화는 긍정적인 가치관을 담고 있다. 저속하고 저급하고 잔인하고 부정적인 내용은 절대로 내 영화에 들어갈 수 없다. 내가 성가반 형제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나는 최고가 아니라 유일함을 추구한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성룡의 영화다." (p.287)

 

성룡이 구술한 것을 공동 저자인 주묵이 받아 적어 정리한 이 책은 슈퍼스타 성룡의 면모보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성룡에 대해 진솔하게 쓰고 있다. 홍콩 빅토리아피크에 있는 프랑스 영사관의 주방장인 아버지와 가정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성룡은 열네댓 살 때 집을 떠나 희극학원에서 10년 동안의 혹독한 무술수업을 받았고, 학교를 떠난 후에는 영화판을 전전하면서 단역 무술배우, 프로 스턴트맨, 무술감독, 남자 주인공, 감독으로 승승장구하면서 어린 나이에 이미 벼락부자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좌절이나 실패가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따거는 수많은 좌절을 겪었지만 그때마다 다시 일어났고 차츰 자기만의 영화 스타일을 구축했다. 수많은 팬들이 오랫동안 그를 응원하고 그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준 것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 그의 정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p.307)

 

성룡도 어느덧 그의 나이 62세가 되었다고 한다. 나를 비롯한 모든 그의 팬들도 앞으로는 그만이 할 수 있는 고난이도 액션신을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설령 그렇다고 할지라도 오직 영화를 위해 평생을 바쳐온 한 남자의 열정과 도전 정신은 앞으로도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를 좋아하는 한 사람의 팬으로서 나는 그의 화려한 인생사를 그의 자서전을 통하여 더 많이 알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 인간으로서 감추고 싶은 과오와 세간의 비난, 실패와 좌절을 어떻게 견디어 왔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는 게 맞을 것이다. 아들의 대마초 사건, 홍콩 영화 배우 우치리와의 불륜 사건 등 인생을 살면서 지우고 싶은 과거를 그는 이 책에서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세상은 넓다고 말하면 또 그리 넓지 않고, 좁다고 말하면 또 그리 좁지 않다. 사람의 인연이란 늘 기묘한 것이다. 이 책은 자료 수집에서 출간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 나의 인생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었다. 바로 지금이 많은 이들과 나의 과거를 공유하기에 적절한 때인 듯하다. 이 책에 실린 잡다한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들이 더 진실한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작가 서문, p.24)

 

영화배우로서 유명해지는 것은 오히려 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명성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팬들로부터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경을 받는 일일 것이다. 어느 날 깜짝 성공을 거두고 소리도 없이 잊혀지는 작금의 세태를 보면 더욱 절감하게 되는 사실이다. 우리가 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오랫동안 지켜온 사람들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겪었을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그들이 딛고 일어섰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우연이나 운에 맡겨질 수 없는 인간정신의 발현이다. '우리는 왜냐고 묻지 않는다. 죽기 살기로 할 뿐이다.'는 그의 신념이 그것을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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