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도 꽃이다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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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만 대한민국의 교육제도만큼 온 국민의 관심을 꾸준히 받는 사안도 드물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제도는 수시로 바뀌어 왔던 게 사실이고 말이지요. 그러나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제도의 문제점은 꾸준히 지적되어 왔고, 지금도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쏟아내고 있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웃기는 노릇이지요? 대한민국에 교육 전문가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 그 오랜 시간 동안 개선을 해왔는데 어느 곳 하나 표가 나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요?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을 위한 개선이 아니라 특정인을 위한 '개악'만 해왔는지도 모르지만.

 

최근에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최모 여인의 딸 정모 양의 문제만 하더라도 그 한 사람을 위해 입시제도나 대학의 교칙까지 손을 본 듯한 모양새이니 그동안 왜 대한민국의 학부모들이 교육제도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는지 일견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나 또한 중학생 아들을 둔 대한민국 학부모 중 한 사람이다 보니 '교육'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관심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하여 조정래 작가의 소설 <풀꽃도 꽃이다>가 출간되었을 때 그 즉시 사서 읽고 싶었지만 어쩌다보니 한참이나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야 겨우 읽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지금으로선 2권 중 제1권을 겨우 읽었을 뿐이지만 말입니다.

 

아직 2권을 마저 읽지 못한 처지에 이 책에 대한 소감을 말한다는 건 좀 이른 감이 없진 않지만 굳이 말한다면 '실망스럽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소설 형식을 빌린 '대한민국 교육 실태 보고서' 또는 '대한민국 교육 현장의 실사례집'쯤으로 읽혔습니다. 예컨대 학부모와 선생님들의 공부지상주의로 인해 발생되는 청소년 자살 문제, 학교 내에서의 흡연, 왕따(또는 은따), 폭력 문제, 교권의 추락, 맹목적인 영어몰입교육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교육의 실상이나 사례를 단순히 이야기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설은 주인공 강교민의 학교에서 모의고사 성적을 복도에 게시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교직 생활 15년차인 우리의 주인공 강교민은 '차별교육'에 반대하여 교장실로 직행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에피소드는 고등학교 동창인 유현우로부터의 상담 신청입니다. 중학교 3학년인 그의 아들이 공부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여 자살을 계획하고 있다는 제보였죠. 대기업 직원인 유현우는 일에 치여 바쁘고 그의 아내는 아들 지원이의 공부를 닥달하는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엄마로 그려집니다.

 

강교민은 친구인 유현우에게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공부보다는 독서를 좋아하는 지원이를 다독이기도 합니다. 유현우의 아내 김희경은 지원의 누나를 이화여대에 합격시킨 후 지원이는 반드시 서울대에 합격시켜 판,검사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세웁니다. 그러나 외우는 걸 싫어하는 지원이는 자신의 능력이 엄마의 바람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자살을 계획합니다. 이런 사실을 파악한 강교민은 김희경을 설득하여 지원이를 공부 압박이 덜한 대안학교로 보냅니다.

 

아들 문제로 고민이 많았던 김희경은 동창인 최미혜에게 사정 얘기를 합니다. 이대에 합격한 김희경의 딸 때문에 기가 눌려 있었던 최미혜는 지원과 같은 학년인 자신의 딸 신예슬을 생각합니다. 지금껏 군말 없이 자신의 말을 잘 따르기는 했지만 이제는 자신보다 훌쩍 커버린 키 때문인지 왠지 주눅이 들고, 혹시 자신의 눈을 피해 딴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합니다.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유명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목표로 신예슬은 빡빡했던 수학 과외로부터 풀려납니다. 그러나 이를 시기하는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게 됩니다.

 

한편 강교민은 같은 교직에 있는 사촌 여동생 이소정의 도움 요청을 받고 그녀의 반 학부형을 대신 만나기도 합니다. 강교민의 반에는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니는 배동기라는 학생이 있습니다. 땀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시비가 붙어 코뼈를 부러뜨리기도 했던 배동기는 일진의 괴롭힘을 참지 못하여 언젠가 그들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싸움 기술을 갈고 닦습니다. 어느 날 일진 두 명을 쓰러트린 배동기는 결국 자퇴를 하게 됩니다.

 

"언제나 그렇듯 그 사건의 충격의 강도도 매스컴들이 잘 보여주고 있었다. 모든 매스컴들이 총동원되어 교육의 위기, 사회의 위기, 국가의 위기로까지 확대해 가며 숨이 가빴다. 그렇게 분위기가 고조되자 집권 세력에서는 정권의 위기를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급조해 낸 것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였다. 그 종합 대책의 핵심은 경찰력까지 동원해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폭력을 더욱 강한 폭력으로 제압하겠다는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 발상이었다." (p.360)

 

책에는 기간제 여교사에게 행해지는 중3 남학생의 성희롱 장면과 원어민 교사를 흠모하여 그의 요구를 들어주고 임신까지 하는 여대생과 이를 즐기는 원어민 교사들의 적나라한 멸시 발언도 등장합니다. 우리의 부끄러운 현실일 수도 있고, 설마 그 정도까지야 하는 의심이 들 수도 있는 장면입니다. 1권은 그렇게 원어민 교사 포먼의 애를 임신한 남온유와 강제로 한국을 떠나게 된 원어민 교사의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

 

오늘도 뉴스에는 온통 Sunsiri 아줌마 얘기 뿐입니다. 이제는 그녀의 조카와 유명 연예기획사로 뉴스의 초점이 확대되는 양상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개인의 욕심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하기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이 너무도 허술했고, 그녀에게 동조해서 개인의 영달을 꾀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욕심이 뒤엉켜 허술한 시스템을 무력화하고 지금의 모습을 연출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교육제도에 목매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다 먹고 사는 문제와 결부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발상은 이제 일부 계층의 생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긴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건 1박 2일의 모토이기도 했지요. "나만 아니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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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맹하고 어이없는 해명이겠습니다만 요즘 저는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데에도 도통 집중을 할 수 없는 까닭이 모두 어수선한 시국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낮에 외국인 친구 한 명을 만나 점심을 먹는데 아니나 다를까 불쑥 Sunsiri 아줌마 애기를 꺼내는 바람에 낯이 뜨거워서 그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지요. 그 친구 얘기인 즉슨 어떻게 민간인 한 명에 의해, 그것도 막돼먹은 아줌마 한 사람 때문에 나라 전체가 좌지우지 될 정도로 국가 시스템이 형편없을 수 있느냐는 의문이었고, 아무리 대한민국의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 낮은 수준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멍청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을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저는 다만 '어쩌다보니...(Well, in the meantime...)'라는 말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힘들고 하기 싫은 일이 닥쳤을 때 제가 항상 되내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는 말이지요. 단순하지만 저는 그 말을 속으로 몇 번 되내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심감을 얻곤 합니다. 적어도 힘들어 보이는 어떤 일을 피하지는 않게 된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 일도 어찌어찌 하다 보면 반드시 끝이 보이곤 한다는 것을 지난 경험이 사실로 증명해주었습니다. 예컨대 뜨거운 여름 날 집안 대청소를 하려면 엄두가 나지 않지요. 그래서 질질 시간만 끌고 미루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두 번쯤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럴 때에도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다. 쉬더라도 일단 시작하고 중간에 쉬자.' 하고 맘을 먹곤 합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요? 그렇더군요. 일을 일단 시작하면 빨리 끝내고 싶은 욕심에 힘든 것도 참고 일에 매달리게 됩니다. 저만 그런가요? 암튼.

 

대한민국 전체가 뒤숭숭한 요즘입니다. Sunsiri 아줌마도 귀국을 했고 그동안의 잘못에 대해 조사를 받고는 있습니다만 하나를 들추면 또 다른 일이 딸려나오는 바람에 '도대체 끝이 어딘가? 끝이 있기는 한건가?' 의심이 들고, 그때마다 국민들 전체의 어깨는 한 뼘씩 축축 쳐지는 듯합니다. 국가의 동력이란 무릇 그런 것이지요.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지도자가 있으면 국민들도 덩달아 힘이 나는 법이고, 제 잇속만 차리고자 몸을 움츠리고 국민들의 눈을 속이려는 지도자가 있다면 국민들도 따라서 사분오열 되는 건 시간 문제이겠지요.

 

그래도 끝은 있겠지요. 그럴 것입니다. 잘못을 저지른 지도자가 자신의 모든 잘못을 시인하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가장 빠른 해법이겠습니다만 지금으로선 그마저도 쉽지 않은 듯 보입니다. 그럴수록 국민들의 분노와 수치심은 더욱 커질 테구요. 돌이켜보면 Sunsiri Family에게 우리의 지도자는 얼마나 좋은 먹잇감이었겠습니까. 세상 물정이라곤 아는 게 없는, 세 살배기만도 못한 여인에게 크나큰 권력이 쥐어졌다는 걸 아는 순간 그 권력의 칼을 자신이 대신 휘두르면 세상 겁날 게 없겠다 생각했겠지요. 그렇게 광란의 칼춤이 시작되었던 것이구요. 2016년이 저물어 가고 있는 요즘, 대한민국호는 좌초되기 일보 직전의 위기 상황입니다만 어떤 식으로든 끝이 나겠지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일 수도 있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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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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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별도 없이 성급하게 왔던 계절이 또 서둘러 떠나려 하고 있다.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아쉬움만 가득 남겨 놓은 채 말이다. 아쉬움은 늘 준비되지 않은 게으른 자의 몫으로만 남는다. 아파트 주변을 붉게 물들였던 벚나무잎은 그제 내린 비가 힘에 겨웠는지 부스스한 모습으로 흩날렸다. '가을비 한 번에 내복 한 벌'이라는 옛말도 있다지만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탓인지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잔뜩 옹송그린 자세로 잰걸음을 옮기고 있다.

 

바람으로 가늠하던 가을의 결이 어느새 칼날처럼 매서워졌다. 시간의 흐름을 가을만큼 선명하게 보여주는 계절도 없는 듯하다. 서서히 단풍이 드는 나뭇잎에서, 날카로워지는 바람결에서, 이제는 마지막이라는 듯 보도 위를 힘없이 뒹구는 낙엽의 무리에서 시간의 흐름을 우리는 온몸으로 느끼지 않던가. 당나라의 명필가 구양순이 쓴 '추성부'(秋聲賦)에는 이런 소절이 있다. '바람의 결은 외로움에서 그리움의 톤으로 돌아눕고 그 기척을 제일 먼저 알아차리는 건 귀뚜라미와 잠자리. 귀뚜라미는 더듬이로, 잠자리는 대나무의 속청 같은 날개로 그 그리움의 감도를 때론 진하게 때론 옅게 조율한다.' 얼마나 멋진 문장인지...

 

앉아만 있어도 괜히 감상적으로 변하는 건 계절의 탓도 있으려니와 며칠 전에 읽었던 <숨결이 바람될 때>가 생각나서이기도 했다.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에 어린 딸과 아내를 남겨둔 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신경외과 의사 폴 칼라니티의 회고록인 이 책은 가을의 속절없는 애상처럼 읽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중병에 걸리면 삶의 윤곽이 아주 분명해진다. 나는 내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건 전부터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은 그대로였지만 인생 계획을 짜는 능력은 완전히 엉망진창이 됐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만 하면 앞으로 할 일은 명백해진다. 만약 석 달이 남았다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다. 1년이라면 책을 쓸 것이다. 10년이라면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삶으로 복귀할 것이다." (p.193)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의 저자인 폴은 레지던트 마지막 해에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치료 후 기적적으로 복귀하여 얼마 남지 않았던 7년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지만 결국 그는 죽었다. 신경외과 전문의도, 추앙받는 교수도, 유능한 과학자도 그는 되지 못했다.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후 22개월 만에 그는 세상과 이별했던 것이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찾고자 고군분투했던 그의 노력은 이 한 권의 책으로만 남았을 뿐이다.

 

"신경외과는 뇌와 의식만큼이나 삶과 죽음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아주 매력적인 분야였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에서 일생을 보낸다면 연민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스스로의 존재도 고양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찮은 물질주의, 쩨쩨한 자만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 문제의 핵심, 진정으로생사를 가르는 결정과 싸움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곳에서 어떤 초월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p.105)

 

폐암 판정을 받은 후 폴과 그의 아내 루시는 인공수정을 통하여 임신을 했다. 무기력하게 죽어가는 대신 남겨진 삶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리라 결심한 것이다. 보조침대에 누워 루시의 출산과정을 지켜보고 갓 태어난 딸을 힘겹게 안아보았던 폴은 이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던 듯하다. 그가 연명치료를 거부한 채 죽음을 선택하던 날 그의 딸은 태어난 지 겨우 8개월이 된 아기였다. 아빠로서, 한 생명의 보호자로서 그는 얼마나 할 말이 많앗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아쉬움 속에 눈을 감았을까. 그가 어린 딸에게 남긴 메시지를 옮겨본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p.234)

 

화학요법으로 쇠약해져가는 몸과 가물거리는 의식을 부여잡고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에는 22개월은 결코 넉넉한 시간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은 미완성의 작품일 수도 있다. 이 책의 말미에서 그의 아내 루시도 말하고 있지만 '미완성이야말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진실, 폴이 직면한 현실의 본질적인 요소'였을 것이다. 루시는 폴이 암과 사투를 벌이던 그 기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비록 지난 몇 년은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때로는 정말 견딜 수가 없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충만한 시기이기도 했다. 매일 삶과 죽음, 즐거움과 고통의 균형을 힘겹게 맞추며, 감사와 사랑의 새로운 깊이를 탐구한 시기였다." (p.256~p.257)

 

폴은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내 루시는 매순간 그가 사무치게 그립다고 고백한다. 모든 사람이 거쳐가야 할 과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죽음을 예약하기 전에는 그 사실을 체감하지 못한다. '바람의 결이 외로움에서 그리움의 톤으로 돌아눕는' 이 계절이 오면 나 또한 내 곁을 떠난 사람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물드는 단풍잎새에도, 마른 바람결에도, 푸르게 높이를 더하는 하늘가에도 내 슬픔의 물기가 촉촉히 젖어드는 것만 같다. 사랑을 하는 것도, 누군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사는 것도 어쩌면 내가 떠난 후에 그리움의 무게를 더하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결국 한 사람이 살다 간 삶의 가치는 그리움의 무게에 지나지 않음이다. 날이 차다. 그럴수록 그리움은 깊어질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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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이유도 없이 새벽에 한 번 잠이 깨는 바람에 오늘 아침에는 5시 30분에 맞춰진 알람이 울리고 나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밖은 여전히 캄캄했고 습관적으로 운동복을 꿰어 입은 나는 무거운 몸을 겨우 추스르며 현관을 나섰다. 새벽 기온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아파트를 벗어날 무렵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졌다. 낭패였다. 우산을 가지러 다시 돌아가자니 귀찮고 우산도 없이 그냥 가자니 빗발이 거세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에라, 모르겠다. 비좀 맞으면 뭐 어때' 하는 생각으로 무작정 산을 올랐다. 귀차니즘이 결국 나를 압도한 것이다.

 

산을 반도 오르지 못했는데 빗발이 굵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전히 푸른 나뭇잎들이 직접적으로 비를 맞는 건 막아주었다는 점이다. 능선에 있는 체육공원에 들러 몸을 풀었다. 정자 밑에서 체조를 하고 팔굽혀펴기도 하고 스트레칭도 했다. 철봉은 이미 빗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비를 맞으며 철봉에 거꾸로 매달린 채로 잠시 있었다. 피가 머리로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비가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산길을 걸었다. 늘 다니던 길이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어두웠던 탓에 발을 헛딛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럴 때마다 휘청 하면서 중심을 잃었다.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주'지는 않았다. 'Sunsiri' 아줌마 정도의 영적 능력이라면 비라도 그치게 했을 텐데 말이다. '더 블루 K'라는 회사를 만들고 사업이 번성하기를 간절히 원했더니 전 우주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청와대와 문체부는 나서주지 않았던가. 직접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영적 능력이 턱없이 낮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무리 간절히 원했건만 산을 다 내려올 때까지 비는 그치지 않았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분명 위기 국면이다. 대통령의 권한은 있지만 권위는 무너졌다. 임기라고 해야 1년 남짓 남은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마저 상실했다면 그것은 이미 대한민국 내에서 최고권력자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명예로운 퇴진은 아니지만 대통령 자신을 위해서라도 직을 내려 놓는 게 현명한 처신일 것이다. 측근에서 보좌하는 사람들도 대통령에 대한 충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퇴진을 건의하는 게 맞다고 본다. 적어도 자신들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대통령을 끝까지 남아 있도록 한다는 건 비겁하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위기 국면을 타개하고 장기적인 아노미 상태를 극복하는 유일한 해법이리라.

 

정부와 여당은 지금의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듯하다. 사건에 연루된 사람 몇몇을 처벌함으로써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인 양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권력을 상실한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할 인물도 없으려니와 권력이 살아 있을 때 미처 말하지 못했던 그간의 비리들이 봇물처럼 터질 것임은 너무도 자명하지 않은가. 힘 없는 대통령에게 모든 잘못을 전가함으로써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날 테니 말이다. 그런 비리들이 하나둘 드러날 때마다 대한민국의 위기는 증폭되고 국민들의 분노는 커져만 갈 것이다. 결국에는 쫓겨나듯 등 떠밀려 직을 내려 놓는 것보다는 지금 스스로 물러나는 게 낫다는 얘기다.

 

이제 비는 그쳤다. 혼란에 빠진 대한민국의 실상처럼 여전히 하늘은 어둡고 찬바람이 불 때마다 으스스한 한기가 옷깃을 파고든다. 다들 무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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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8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30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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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살을 거스르며 바람이 불고 있다. 스산한 느낌이었다. 스산하다는 그 느낌에서 나는 생각을 멈춘다. 그래. 가을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바람은 이미 불고 있었지. 심지어 유난히 뜨거웠던 올해 여름의 어느 날에도 나의 상상 속에서는 언제나 시원한 가을 바람이 불고 있었어. 그것은 다만 시원하다는 느낌으로만 존재하는, 손끝에 감지되지 않는 어떤 것이었을지라도 내 머릿속에선 결코 떠난 적이 없었다. 그렇게 상상처럼 가을이 왔고, 가을도 다 가기 전에 벌써 스산하다고 느낀다는 건 나는 이미 겨울을 염려하고 있거나 상상 속에서 겨울을 살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늘 같은 계절을 두 번 사는 게 아닌가. 한 번은 상상 속에서, 또 한 번은 현실에서.

 

가을 햇살이 옅어지던 오늘, 나는 박주영의 소설 <고요한 밤의 눈>을 읽었다. 작가는 이 책에서 대한민국의 90퍼센트의 사람이 누군가의 조종을 받는 노예이거나 소모품이라는 전제를, 나머지 10퍼센트의 사람 중에 다시 10퍼센트, 즉 전체의 1퍼센트에 속한 사람들이 이 나라를 조종하고 기획한다는 전제를 깔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특정 나라를 언급한 적 없으니 어쩌면 전 세계를 의미하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 책은 단순히 스파이 소설에 불과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현대인의 절망적인 삶과 파편화된 개개인의 모습을 조망하고 있다.

 

"나는 나의 일을 하고 X는 X의 일을 하고 Y는 Y가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스파이이고 각자가 해야 할 일을 한다. 그리고 우리의 목표는 하나이거나 하나가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세상, 그 세상의 이면에 우리가 있고, 우리의 이면에 또 누군가가 있다. 누군가 우리를 모른 체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등 뒤를 모른 체한다. 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 하지만 패자가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 결국 우리 모두를 패자로 만든다. 언젠가 뒤돌아서 등 뒤를 보아야만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 순간이 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p.132)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생각의 날틀은 예상하지 못한 어떤 순간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곳으로 불시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실체도 없고,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도구로서의 '생각'을 우리는 어떻게 다루고 보듬어야 할까. 소설에는 여러 이니셜로 지칭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과거 15년간의 기억이 사라진 채 깨어난 서른다섯 살의 남성인 X와 X가 병원에 있는 동안 보호자 역할을 했던 여성 요원 Y와 정신과 의사 D와 스파이 조직의 중간 보스인 B와 소설가 Z 등.

 

"인간이 기억의 총합이라면 그 기억을 가진 누군가를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기억하고 있는 그 누군가. 하지만 그녀는 정답이 될 수 없다. 그녀는 십 년 전의 나만을 알고 있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말은 진실일 테지만 그것은 그녀의 진실뿐이었다." (p.39)

 

성인이 된 이후의 기억을 모두 잃은 X는 자신의 기억을 찾기 위해 정신과 의사 D를 만나기도 하고 자신의 친구라고 기록된 Y를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이 몸 담았던 회사를 찾아가기도 한다. 그러던 중 자신을 안다는 한 남성이 접근하여 그가 과거에는 금융계를 좌지우지하는 애널리스트로서 조직을 위해 일했노라고 말하면서 다시 조직에 복귀할 것을 종용한다. 한편 신분을 바꿔가며 중요 요원들을 감시해왔던 Y는 X가 다시 스파이 일에 복귀하도록 조종하는 임무를 맡고 X에게 접근한다.

 

"원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위안을 주는 환상 속에서 살 수 있다. 거짓된 현실에 속아주기도 하고 본래 의도를 감추려고 그 현실을 이용하기도 하면서. 이 거짓으로 쌓은 도미노가 길고 크고 복잡해질수록 어쩌면 우리는 더더욱 환상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성공적인 환상을 지키기 위해 거짓된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스파이의 삶이다." (p.162)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스파이에 자원했던 수석요원 B는 자신도 단지 하나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고 새로 들어오는 신참들은 그런 꿈마저 없이 오직 자신의 안위와 영달만을 목표로 한다는 사실에 실망한다. 잠재적인 위험인물로 소설가인 Z를 지목했던 B는 Y에게 그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겼었지만 X와 가까워져서 그를 설득하고 감시하는 역할이 주어지자 Z를 감시하는 일은 다른 요원에게 맡겨진다. Y는 X의 서재에 꼽혀 있는 Z의 책을 발견하고 Z와 X가 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보통 사람에게 일상은 매일 망각의 강을 건너는 것과 같다. 알람에 맞추어 겨우 일어나 요기를 하고 일터로 나가는 분주한 하루의 시작부터 그 하루를 바삐 보내고 지친 몸으로 귀가해 식사를 하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켜놓은 채 앉아 있다가 잠드는 나른한 하루의 끝까지, 그 하루의 순간순간을 함께하는 누군가의 몸짓을, 이야기를 시간과 함께 잊어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기록한다. 하지만 기록은 기억을 완전히 대신하진 못한다." (p.63~p.64)

 

Y와의 결혼을 염두에 두었던 X는 Y의 진짜 모습을 알기 위해 정신병원에 있는 Y의 어머니를 찾아간다. 한때는 스파이였던 Y의 어머니도 딸에게 해가 되지 않기 위해 철저히 자신을 정신병자로 위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X는 알게 된다. 한편 Z가 X의 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된 Y는 Z의 감시 임무를 다시 맡게 해달라고 B에게 부탁한다.

 

"현실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우리의 정당한 분노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여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믿는 사람, 바꿀 수 있다, 해낼 수 있다는 격렬한 희망을 여전히 품은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p.288)

 

작가는 소설에 등장하는 스파이 조직이 어떤 성격의 조직인지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가가 독자들에게 말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소수의 상위 그룹에 집중된 권력의 편중은 갈수록 심화되고 다수의 대중은 점차 냉소와 무관심만 더해가는 현실에서 '생각은 최고의 지성이었고 최상의 사치'로 변모해 간다. 그런 환경이 지속될수록 세상은 점점 살기 어려운 곳으로 변하지 않을까 작가는 우려스러운 것이다. 삶이 팍팍할수록 주변은 온통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감시하는 스파이들의 세상으로 바뀌고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리라는 희망은 사라진다. 이러한 비극적은 결말이 도래하기 전에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회복해야 하고, 그 원동력은 바로 독서라는 사실을 말하려고 했을 터였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작금의 현실을 바라보며 우리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던가. 실체도 없고, 진실도 없었던, 어쩌면 종교보다 더 성역화 된 '반공'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우리는 지금의 현실을 만들어 온 게 아닌가 싶다. 개인의 능력이나 정당의 도덕성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반공'이라는 종교를, '안보'라는 신을 숭배해 온 우리에게 지금의 현실은 뼈아픈 자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대통령 한 명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참회여야 한다. 그렇게 가을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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