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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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타 사야카의 소설 <편의점 인간>은 다수의 편에 속한 인간들이 그곳에 속하지 못한 소수의 인간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도록 한다. 우리는 소수자,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말은 무수히 많이 듣고 자라지만 이 책을 읽는 순간 그것만큼 헛된 구호도 없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왜냐하면 다수의 편에 섰을 때의 편안함을 결코 포기한 적이 없었던 사람들은 소수지의 삶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을 의도적으로 배척한 적이 없으니 나는 잘못이 없다는 식의 항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 뿐이라는 변명은 나를 지키기 위한 한낱 위선에 지나지 않았음을 책을 읽는 사람들은 누구나 실감하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인 '후루쿠라 게이코'는 18년째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는 서른여섯 살의 노처녀이다. 그녀의 삶은 어렸을 때부터 그리 순탄치 않았다. 말하자면 사회 부적응자의 기미가 어려서부터 보였다는 얘기다. 그것은 자신만의 판단이나 의사가 없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예컨대 같은 반 친구 두 명이 싸우고 있을 때 누군가 "싸우지 못하도록 해!"라고 말한다면 옆에 있던 삽을 들고 싸우는 친구의 머리를 때려서라도 싸움을 멈추도록 만들고 그 행동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비난할라치면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때 이후로 후루쿠라는 주변부에서 맴돌 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고 이따금 머리나 끄덕이면서 조용히 지냈다.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p.98)

 

은행원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맏딸로 태어난 후루쿠라에게는 그녀와는 다르게 모든 면에서 정상인 여동생이 한 명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편의점 알바를 시작한 후루쿠라를 가족 모두는 진심으로 반겼다. 조금은 특이했던 후루쿠라가 정상적인 사람으로 변하고 있구나 생각했던 것이다. 매일매일의 반복되는 일상과 매뉴얼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후루쿠라의 체질에 잘 맞았을 뿐인데 가족들은 그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어딘가에서 변화를 바라고 있었다. 그것이 좋은 변화든 나쁜 변화든, 교착상태에 빠진 지금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 (p.113)

 

대학 1학년 때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편의점 일을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다른 곳에 취직 한 번 하지 못한 채 18년째 같은 곳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것이다. 편의점이 오픈하면서부터 시작된 그녀의 알바 인생에서 그녀는 수많은 알바생들과 이별했고, 점장도 지금까지 여덟 번이나 바뀐 상태였다. 그녀는 매일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규칙적으로 일하고 그러면서도 어떤 불만도 품지 않았다. 달라진 것 없이 그렇게 그녀는 나이만 먹어 왔던 것이다. 그녀가 편의점을 쉬는 휴일에 학창 시절의 고향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녀는 자신에 대해 간섭하는 친구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동생의 조언에 따라 몸이 허약해서 편의점 알바만 했다고 말하는 그녀의 변명을 친구들은 다들 이상하게 생각한다. 적당한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하는 친구들의 평범한 삶과 비교하면 남자 친구를 사귄 경험도, 취직을 한 경험도 없는 그녀의 삶은 그들과 너무나도 달랐던 것이다.

 

"모두가 이상하게 여기는 부분을 내 인생에서 소거해간다. 고친다는 건 그것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p.113)

 

그러던 어느 날 편의점 신참 직원으로 '시라하'가 들어온다. 매사에 불평 불만이 많았던 그는 기계화 된 사회 체계와 규범화 된 승자 독식의 관습을 비판하며 다수로부터 멀어져 온 인물이다.

 

"무언가를 깔보는 사람은 특히 눈 모양이 재미있어진다. 그 눈에는 반론에 대한 두려움이나 경계심, 또는 상대가 반발하면 받아쳐줘야지 하는 호전적인 빛이 깃들어 있는 경우도 있고, 무의식적으로 깔볼 때는 우월감이 뒤섞인 황홀한 쾌락으로 생겨난 액체에 눈알이 잠겨서 막이 쳐져 있는 경우도 있다." (p.81)

 

사회 시스템이 잘못되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믿는 시라하는 서른다섯 살의 대학 중퇴자이다. 직업도 없고, 결혼도 하지 못한 그는 자신을 걱정하는 세상 사람들의 간섭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열망만 가득했을 뿐, 매뉴얼화 된 편의점 일은 애초에 관심조차 없었다. 그는 결국 편의점에서 해고된다.

 

"그래요, 정면으로 세상과 맞서 싸워서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일생을 바치는 쪽이 아마 고통에 대해 성실한 걸 거라고 생각해요." (p.112)

 

월세가 밀려 살던 집에서도 쫓겨난 시라하는 거리를 배회하던 중 후루쿠라의 눈에 띈다. 갈 곳 없는 그를 그녀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같이 살게 한다. 그렇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범한 남녀관계는 아니였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편의점 식구들과 후루쿠라의 여동생, 그리고 친구들은 모두 축하의 말을 하며 반긴다. 그녀의 집에 숨어서 놀고 먹는 시라하의 조언에 따라 그녀는 결국 18년 동안 몸 담았던 편의점을 그만두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한다. 그러나 편의점 알바에 길들여진 그녀의 몸과 마음은 기준을 잃고 헤맨다.

 

내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에 입성했을 때 나는 익명성이 주는 편안함에 한없이 매료되었었다. 특별히 눈에 튀는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서울 사람들은 너무나도 바빴고, 나는 투명인간이 된 듯 자유로웠다. 하루 종일 시내를 싸돌아다녀본들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어쩌면 다수의 편에 선다는 건 평범함 속에 자신을 숨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묻혀버리지 않았던가. 평범함의 기준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한 개인은 닮은 듯 서로 다른 파편화 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평범함이 주는 익명성을 얻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자신의 일에 악착같이 매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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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날씨 변덕도 심하고 일도 힘에 겨웠던지 화상을 입은 듯 윗입술에 물집 몇 개가 생겼다. 둔한 듯 보여도 사람의 몸뚱어리는 어떤 정밀한 기계보다도 훨씬 더 민감하다. 적당히 쉬면 풀리겠지, 생각했는데 누적된 피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살기 위해선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필요로 한다.

 

겨울볕이 화창하다. 구름도 없는 그저 푸른 하늘이 시린 들녘으로 쏟아진다. 세월의 칼날 위에 맨발로 선 사람들에겐 한낱 사치일 수밖에 없는 그런 날씨. 가까운 공원에선 아이들 웃음소리가 멀리까지 울려퍼진다. 햇볕을 향해 돌아 앉은 노인 몇 분의 등 굽은 그림자가 기괴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혼란한 시국 탓인지 유난히 조용한 올해의 세모 풍경.

 

이따금 순한 바람이 불었다. 뚜껑이 열린 과거에 변명을 하듯 하루를 더하는 일은 그 얼마나 손쉬운 일인가. 그렇게 또 한 해를 훌쩍 살아낸다는 건 손바닥을 뒤집는 것만큼 가벼운 일이다. 알랭 드 보통이 쓴 <슬픔이 주는 기쁨>을 읽고 있다. 그의 글은 마른 먼지를 털어내듯 명료하다. 그리 많지 않은 나이의 작가는 언제 그 많은 지식을 축적한 것인지... 나는 가끔 그의 지식을 부러워한다.

 

제 마음의 안뜰에 누군들 걱정 하나 없으랴마는 사는 게 녹록지 않다는 걸 생각 밖으로 꺼내들 때마다 휑한 바람이 스쳐가곤 한다. 누더기가 될 때까지 그 생각들을 매만지다 보면 길에서 스치는 사람들조차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짠한 연민이 가슴을 치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눈물이 많아지는 건 아마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겨울볕이 너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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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계 최초 잡놈 김어준 평전
김용민 지음, 고성미 사진 / 인터하우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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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도 그런 악연이 없다. MB와 현 대통령의 대척점에 서서 "쫄지마, 씨바" "가카는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를 외치며 정치에 무관심했던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정치판으로 이끌었던 인물. 바로 김어준이다. 부스스한 긴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숨이 넘어갈 듯 웃어대는 비교양. 일본의 옴진리교 교주를 연상케 하는 외모에 거칠 것 하나 없는 자신감. 그를 특정짓는 것은 그 외에도 아주 많다. 물론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부각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오해나 선입견에서 비롯된 잘못된 판단임을 말히고 싶다. 겉모습만 보고는 알 수 없는 게 사람이다. 하기는 나부터도 그랬다. 팟캐스트 '나꼼수'(나는 꼼수다) 초창기에 김어준에 대한 사전지식이라곤 전혀 들어본 바 없었던 나는 인터넷에 떠도는 그의 외모와 욕을 입에 달고 사는 듯한 어투에 그가 순전히 막돼먹은 후레자식이 아닐까 생각했었으니까. 그랬던 나의 선입견은 그의 저서 '건투를 빈다'를 읽은 후 말끔히 사라졌지만 말이다. 어찌 보면 그는 어느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는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총수 김어준입니다. 새로운 방송을 만들었습니다. 이 방송은 이명박 대통령 가카에게 헌정하는 방송입니다. 가카가 퇴임하는 그날까지 이어집니다. 가카의 끝을 알 수 없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치밀하고 정교한 극강의 꼼수, 앞으로 매주 여러분 앞에 바치겠습니다." (p.174)

 

"정면으로 부딪혀서 자존심을 세우다가 한 방에 죽어나가는 것보다는, 적당히 피하고 욱하면서 삶을 영위해가는 것이 이 시대의 처세다. 그런 때 필요한 것이 욕이고 위로다. 대신 욕해주는 것, 함께 있어주는 위로가 우리가 필요로 하는 태도로서의 콘텐츠다." (p.258)

 

대통령에 대한 탄핵 표결이 있었던 어제, 나는 '나꼼수'의 멤버이기도 했던 김용민 PD가 쓴 <김어준 평전>을 읽었다. '은하계 최초 잡놈'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저자는 자유분방했던 부모님의 교육 철학과 그 속에서 자유롭게 성장한 김어준에 대하여, 포스코에 취직했다가 금세 사표를 내던지고 세계여행길에 올랐던 그에 대하여, 사업에 실패한 후 딴지일보를 창간하기까지의 이력과 이혼을 하고 방송 MC를 하던 시절과 나꼼수를 시작한 이후에 대하여 쓰고 있다. 김용민은 김어준의 동지로서, 그를 지근 거리에서 살펴보았던 관찰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밑바탕에는 김어준에 대한 애정과 존경의 마음이 담겨 있음을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김어준은 '선호하는 스타일의 배우'에 대한 답변을 무시하는 박근혜에게 10여 분 동안 줄기차게 추궁했고 '장동건'이라는 답을 간신히 얻어냈다. 그런 박근혜의 표정에서 '뭘 이런 걸 알려고 하지' 하는 찝찝함이 느껴졌다고 하고." (p.70)

 

사실 김어준의 저서 중 아무거나 한 권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의 인간됨이나 철학적 기반이 시정잡배의 수준이 아니라는 걸 금세 알 수 있다. 다만 그의 인생관이 범인의 시각에서는 특이하게 보인다. '단 한 번뿐인 인생, 원하는 대로 멋지게 살아보자' 하고 누구나 생각하지만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아니, 극히 드물다. 그럼에도 김어준 자신은 그렇게 사는 듯 보인다. 적어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처럼. 나는 그에게서 '제5도살장'을 쓴 커트 보네거트의 모습을 언뜻언뜻 보곤 한다.

 

"그들은 방송을 통해 공포를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 웃음임을 다시금 보여주었다. 조선시대 광대들이 그랬듯이, 그들은 가카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모토만으로 기득권 세력을 조롱하고 농락했으며, 우리는 그들의 신명나는 모습에 기꺼이 웃었고, 이를 통해 내가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고 용기를 얻었다. 나꼼수를 통해 새로운 연대가 시작된 것이다." (P.329)

 

어제 국회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가결시켰고 대통령의 권한은 정지되었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우리 앞에 놓인 험로는 지금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야당은 마치 대선에서 승리하기라도 한 것인 양 들떠 있는 모습이지만 그 속내는 제각각이란 걸 국민들이라고 모를 리 없다.

 

"나꼼수든 누구든 한국 야당에 염치는 고사하고 의리라도 회복돼야 뭘 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의리는 간단하다. 기쁠 때 같이 기뻐하고 슬플 때 같아 슬퍼하는 공감이다. 정서와 분위기에 편승하는 것과 다르다. 인간다움이다. 어느 정파, 어떤 정치인의 승리 그 이전에 추구해야 할. 인간다움이다."(p.354)

 

우리는 종종 이유도 없이 누군가를 미워하는가 하면 받은 것 없이 또 누군가를 좋아한다. 그러나 어른이라면 적어도 호불호의 이면에 깔린 감정이 합리적인 판단에서 기인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한 번쯤은 따져보아야 한다. 나는 현재의 대통령을 인간적으로 미워하는 건 절대 아니다. 자라온 환경이나 겪어온 일들을 감안할 때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한다. 다만 자신의 과오에 대해 떳떳하게 밝히고 용서를 구하지 못한 점은 심히 유감스럽다. 한 국가의 리더가 된 자가 그만한 '용기'도 없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대통령의 비겁함에 대해서는 철저히 단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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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예견된 뻔한 일들도 우리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만 오늘은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은 듯합니다. 오히려 우려 섞인 예측 결과가 강화된 느낌입니다. 재적의원 300명 중 299명이 참여한 대통령 탄핵안 투표에서 찬성 234표로 가결이 확정되었으니 말입니다. 200표 이상의 찬성표가 나오지 않아 혹시라도 탄핵안이 부결되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던 많은 국민들은 가결 소식에 다소 안도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속내야 어찌되었든 탄핵안 가결로 인하여 당장의 혼란 상황을 잠재울 수 있다는 게 중론이었습니다.

 

저 또한 다른 사람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결과였음에도 막상 국회의장의 가결 선포와 땅 땅 땅 세 번 두드리는 망치 소리가 마치 꿈결인 양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사에서 국가의 명운을 가름하는 중요한 결정이 전적으로 국민들의 의사에 준하여 이루어진 적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을까요. 제 기억으로는 없었던 듯합니다. 그리고 콧대 높은 정치인들이 허리를 숙이고 국민들의 눈치를 살폈던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일련의 과정에 의한 결과물이 오늘 우리가 본 탄핵안 가결로서 확정된 것입니다.

 

시원섭섭하다는 게 지금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이건 단순히 현직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안보와 지역성을 빌미로 온갖 부정부패와 국정농단을 일삼았던 새누리당 보수정권의 몰락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실체와 민낯을 확인하는 데 우리 국민은 근 70년의 세월을 허비했던 것입니다. 이제라도 똑똑히 알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구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주일의 업무를 마무리하는 금요일,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일손을 놓은 채 탄핵 결과만 기다렸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그것은 단순히 대통령의 탄핵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껏 잘못되었던 대한민국 70년 민주주의에 대한 탄핵이며 몇몇 기득권 세력에 대한 탄핵이었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국민들의 건강이 걱정되었던 오늘, 우리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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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12-09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9 년간 안할 수도 있었을 고생을 하였다 생각하고 분개하였는데 민주주의를 생각하면 70 년을 허비한 셈이군요.

꼼쥐 2016-12-10 15:47   좋아요 0 | URL
사실 야당 대통령 있었지만 그때도 역시 권력의 핵심은 언제나 새누리당의 몫이었죠.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대통령을 비하하는 건 다반사고 숫제 대통령으로 인정하지도 않았죠.
 
이제 다시 그 마음들을 - 황인숙의 엉뚱한 책읽기
황인숙 지음 / 이다미디어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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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글을 읽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읽었던 책에 대해 짧게나마 글을 쓴다는 건 또 다른 일인 듯싶다. 평론가가 아닌 이상 말이다.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것이다. 괜히 어쭙잖은 말 한마디로 오해를 살 수도 있고 이러쿵 저러쿵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글에 대해 감나라 배나라 간섭하는 꼴로 비친다면 아무래도 득보다는 실이 많지 않겠는가.

 

그래서인지 작가들의 독서일기는 흔하지도 않지만 그(또는 그녀)가 읽었던 텍스트보다 소감을 기록한 글이 더 어려워 독자들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위 작가라는 놈이 그 정도밖에 쓰지 못하느냐 누가 따지기라도 하는 듯 한껏 멋을 부려 현학적인 말을 늘어놓거나 잘 알지도 못하는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비교하는 등 일반 독자들의 기를 사정없이 찍어 누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역시 작가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황인숙 시인의 독서 후기 <이제 다시 그 마음들을>은 편안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숫제 작가가 아닌 일반인의 글을 옮겨놓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작가도 이런 사실이 뭔가 모르게 께름칙했는지 작가는 책의 머리말에서 자신의 소회를 밝혔다.

 

"독후감이나 서평이라는 것은 책읽기의 침전물이거나 흔적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 침전물이나 흔적을 밖으로, 몸뚱어리 바깥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내게는 그것이 그리 마땅치 않았다. 독후감을 쓰고 있노라면, 칠칠치 못하게 뭔가를 질질 흘리며 걸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p.6)

 

'황인숙의 엉뚱한 책읽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작가가 읽었던 38권의 책에 대해 자신의 방식으로 기록한 독서 후기인 셈이다. 작가는 그것을 '제대로 된 것이 아닌' 혹은 '정통 방식이 아닌' 일종의 서평이나 독후감이라고 말하고 있다. 시인으로서 자신이 쓰는 글에 대해서는 결벽에 가까운 완벽을 추구하는 그녀이기에 그녀의 책을 읽는 독자가 일상의 사소한 일과 결부된 생활인으로서의 그녀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몸빼바지 차림의 편안한 옷을 입은 그녀가 아무도 없는 집안을 활보하는 듯한 그런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내 나이가 돼도, 아니 내 나이의 곱절이 되어 눈을 감기 직전까지도 '미움'의 앙칼진 톱니바퀴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에게는 용서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 사람들, 용서하게 될 자신을 상상만 해도 용서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 미움과 증오만이 힘인 사람들. 나는 지금 가산 카나파니의 소설들을 통해 화들짝 발견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다." (p.39)

 

"사막의 꿈" "행복하기 위해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사랑도 없이 돈도 없이" 등의 각기 다른 제목의 5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도리스 되리의 "나 이뻐?', 피에르 신부의 '단순한 기쁨', 드 보통의 '삶의 철학산책', 줌파 라히리의 '이름 뒤에 숨은 사랑',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공선옥의 '멋진 한세상', 파트릭 모디아노의 '신원미상의 여자' 등 우리가 한번쯤 읽었거나 누군가의 서평으로부터 대강의 줄거리를 전해 들었던 친근한 제목의 책들이 등장한다.

 

"내 인생에 통과 의례로 논술 시험이 없었다는 것은 정말이지 행운을 넘어 횡재다. 지금 이 나이에도 누군가 갑자기 어떤 주제에 대해 내 생각을 펼쳐보라고 하면 '정말이지 특별히 할 말이 없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데, 스무 살 때는 오죽 눈앞이 캄캄하고 머릿속이 하얘졌을까." (p.206)

 

나도 이따금 책을 읽고 더러 마음이 내키면 '책읽기의 침전물이나 흔적'을 몸뚱어리 바깥으로 드러낸다. 그것은 '일종의 서평이나 독후감'에도 이르지 못하는, 말하자면 낙서에 가까운 글이지만 나는 몇 년째 블로그를 이어오고 있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 블로그는 삶의 유희나 오락의 장으로서 기능하는 셈인데 이게 때로는 엉뚱한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댓글의 개수나 공감 또는 추천을 누른 횟수에 일종의 시샘 아닌 시샘을 느끼는 경우이다. 나중에 생각하면 헛웃음만 난다. 어린애도 아니고 이 무슨 추태인가, 하고 말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그 속에서 하찮은 나를 끝없이 발견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독후감을 쓴다는 건 책에서 발견한 부끄러운 내 모습을 쉼 없이 드러내는 일이 된다. 그리고 블로그는 타인의 시선에서 그것을 검증하도록 한다. 사람은 누군가로부터 끝없이 평가된다. 나는 그것을 가끔 잊고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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