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나 농구, 수영 등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좀 더 잘하기 위해 우리가 배우게 되는 것은 결국 몸의 힘을 빼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다. 무릇 몸으로 하는 운동은 그것을 배우는 과정이 대동소이하지 않을까 싶은데, 몸의 불필요한 부분에 들어간 힘을 빼는 것, 그럼으로써 좀 더 유연해지는 것, 의식의 흐름에 자신의 몸을 자연스럽게 맡기는 것은 스포츠 고수들이 아마추어에게 말하는 스포츠를 잘 하기 위한 하나의 팁인 셈이다.

 

운동을 함에 있어서 몸의 힘을 빼는 것처럼 자신의 삶을 잘 가꾸기 위해서 우리는 때로 의식에 들어간 불필요한 힘을 뺄 필요가 있다. 세월의 부력에 자신의 운명을 편안히 맡긴 채 되는 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자신이 뜻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무작정 분노하고 자신의 운명에 맞서 싸우느라 진을 빼지 말고 한동안 세월의 흐름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바라볼라치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아, 다시 힘을 내서 살아봐야겠다.' 마음을 먹는 순간이 반드시 오게 마련이다.

 

운동을 할 때 불필요하게 들어간 힘 때문에 삐끗했던 적 많을 것이다. 살다 보면 의식에 불필요한 힘을 주는 바람에 다툼이 생기거나 제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는 그보다 훨씬 더 많다. '내가 너보다 못한 게 뭔데?'하는 마음이나 '내가 뭘 잘못했기에...'하는 마음은 의식에 불필요한 힘을 주는 경우이다. 작든 크든 누구에게나 불행은 찾아오게 마련이고 그 원인을 두고 깊이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자신에게 일어난 불행의 원인이 꼭 자신이 못나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닐뿐더러 세상의 모든 불행이 자신만 비껴가야 한다고 믿어서도 안 된다는 말이다.

 

몸에 힘을 빼면 유연해지고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것처럼 의식에 힘을 빼면 세파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나도 그렇지만 우리는 종종 넘치는 힘 때문에 손해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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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바보 - 대양 육대주에서 만난 사랑하는 영혼들과의 대화
오소희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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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양은 저마다 다를지언정 우리가 짓는 마음의 결은 국적을 불문하고 서로 비슷하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나는 저으기 안심하곤 한다. 크게 복잡할 것도 없이 열 손가락만으로도 다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은 감정의 결들. 기쁨, 슬픔, 화남, 놀람, 공포, 혐오... 여행자는 기실 공간과 공간을 방문하는 게 아니라 마음과 마음을 찾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을 디딤돌 삼아 삶의 또 다른 징검다리를 건너는 게 여행의 묘미이자 순리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나와 다르지 않은 그 마음결을 재차 확인하며 자신이 사는 이 세상에 대해 안심하는 것이다.

 

"유난히 사랑이 많은 나라를 여행하다보면, 그곳 사람들이 더 많이 키스하고 포옹할 뿐만 아니라 더 많이 울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눈물을 참는다는 것은 자신을 억압하는 일이다. 눈물을 잘 참는다는 것은 잘 억압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울지 않는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p.200)

 

몇 해 전에 나는 심리학 서적에 심취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봐야 깊은 지식을 요하는 전문서적은 어려워서 읽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 식의 가벼운 책들만 주로 읽었지만 그때 내가 깨달았던 건 사람에 대한 깊은 신뢰만이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난 지금, 단단했던 그때의 깨달음도 흐르는 세월에 풍화되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평생 잊혀지지 않는 각성이나 깨달음은 오직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에서만 비롯될 뿐 책을 통한 간접적인 체험은 유통기한이 명시된 그저 일시적인 '앎'일 뿐이다.

 

여행작가 오소희의 <사랑바보>는 예전에 읽었던 김형경의 심리 여행 에세이 <사람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다만 김형경의 시선이 자신의 내면으로 향했었다면 오소희는 그녀의 시선이 타인에게 향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우리는 모두 사랑을 '잘' 하고픈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작가는 여행길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사는 방식, 말하자면 사랑하는 방식을 진솔하고 따뜻한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여행을 기억하지 못할까봐 염려하지만, 사실 아이들은 기억엔 관심없어요. 언제나 현재를 살며 체험할 뿐이지요. 여행이라는 매우 강도 높은 체험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태도를 형성해줍니다. 열고, 뛰어들고, 함께하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요. 기억은 결국 사라지지만 태도는 평생을 관통해 남아 있게 되죠." (p.38)

 

맞는 말이다. 아무리 지식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삶을 오직 지식에 의존해서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사람을 사랑하려는 마음과 곁에 있는 사람과 더 가까워지는 방법은 머리가 아닌 가슴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대부분이 여행을 즐겼던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사랑의 다양한 형태, 이를테면 모성애, 자기애, 동성애 등과 함께 세대에 따라 달라지는 사랑의 모습을 자세히 그리고 있다. 남미로 가는 경유지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중년의 동성애자와 남미에서 만난 유쾌한 레즈비언 등 사랑의 다양한 모습과 세계 각국에서 만나는 청년의 사랑, 중년의 사랑, 그리고 프랑스에서 만났던 잊혀지지 않는 노년의 사랑을 작가의 편견없는 따뜻한 시선으로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부여한 아름다운 역할을 충실히 해나간다는 것과 동의어일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까르르까르르 박수를 치며 고맙다고 하는 것. 시간과 품과 진심을 내어주고도, 고스란히 받아주니 고맙다고 하는 것. 일 년에 한 걸음씩만 내딛더라도 더 나빠지지 않아 고맙다고 하는 것. 고맙다는 것의 참뜻, 아마도 그런 것인가보다. 다시 평범한 창밖을 보니, 온통 고마운 세상이었다." (p.265)

 

내가 사는 세상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다하지 않던가. 뭉근한 햇살 속에서 완만하게 변하는 겨울 날씨처럼 사랑은 그렇게 온유하고 상냥한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걸 믿는다면 당신의 삶은 안전할 것이다. 오늘 오전에 오는 20일 퇴임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고별연설이 있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던 그가 임기말까지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받았던 까닭은 아마도 8년간의 임기 내내 미국인의 화합을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1만 명에 가까운 예술인들을 배제하는 우리나라의 대통령과는 격이 달랐던 것이다. 그는 연설에서 자신의 부인인 미셸 여사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먼 나라의 대통령이지만 존경할 만하다. 사랑꾼 오바마의 연설문 일부를 인용해본다. “지난 25년간 당신은 나의 부인이자 내 아이들의 엄마이면서 가장 중요한 친구였다. 원치 않던 역할(영부인)이었지만 아주 우아하고 용감하고 폼나게 일을 해냈다. 당신은 백악관을 모든 사람의 장소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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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일이고, 사람의 인연입니다. 그런 걸 두고 어려운 말로 '삶의 비의(秘義)'라고 하나요? 어려워서 잘 모르겠지요? 나는 잘 아는 단어이고 더구나 평상시에 흔히 쓰는 말이기도 합니다. 잘난 체좀 한 번 해보려고 일부러 쓴 말인데 쓰고 있으면서도 깜냥이 되지 않은 탓인지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네요. 암튼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농담도 해본 사람이 잘 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서두에 꺼낸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엊그제 한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몇 년 동안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름은 기억할 수 있지만 만나지 못한 세월로 인해 조금은 서먹해진 친구였습니다. 친구가 했던 말인 즉,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우연히 방문해 블로그에 있는 글을 읽다 보니 블로그 쥔장이 '나'라는 걸 딱 알겠더라고, 그래서 나와 친한 친구 몇 명에게 나의 전화번호를 물었고, 그렇게 알게 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는 게 친구가 내게 들려준 말의 요지였습니다. 물론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흔한 인사말로 짧은 통화가 끝나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아! 중요한 걸 빠트릴 뻔했네요. 최근에 올린 블로그 포스팅에 차츰 정부 비판적인, 말하자면 정치적인 글이 많아지고 있는데 그 이유가 뭐냐고, 그렇다면 나의 소신이나 철학적 기반이 진보쪽 성향에 가까운 것이냐고 친구는 물었습니다. '헐... 나와 같은 소시민이 무슨 이즘이나 철학씩이나.' 나는 사실 그런 게 없습니다. 굳이 그런 걸 가질 필요도 없고 말이지요. 나는 기본적으로 정치인을 믿지 않지만 그들 중에서도 생명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의 말은 더더욱 믿지 않으며,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생명을 경시하는 사람의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절대', '결단코'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도 철학이 있다면 '생명주의'쯤 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정권에서도 그렇게 국민들의 반대가 심했던 4대강 건설을 밀어부침으로써 얼마나 많은 생명이 사라졌으며 지금도 여전히 죽어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더구나 현 정권은 또 어떠한가요. 세월호에 탔던 생때같은 아이들이 죽어갈 때 현 정권의 태도는 어떠했으며, 살수차의 물대포에 맞아 돌아가신 고 백남기 어르신에 대해서도 그들은 어떤 태도를 취했나요. 세상에 하찮은 생명은 없는 것입니다. 한 생명의 죽음은 당사자 입장에서 온 우주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와는 가깝지 않다는 이유로, 내 이익이나 권력의 유지와는 전혀 관련 없다는 이유로 한 생명의 죽음을 경시하거나 무시한다면 그 사람은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겠지요. 생각만 해도 갑자기 열이 뻗치네요. 그러니 내가 그들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진보, 보수를 떠나서 말이지요. 대통령 선거가 언제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아마도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투표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진보든 보수든 상관없습니다. "친구야, 나는 철학이란 게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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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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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소한 추위는 꿔다가도 한다'거나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소한에는 어김없이 추위가 닥친다고 전해져 온다. 그러나 이번 겨울은 어찌된 노릇인지 소한 추위는 고사하고 한낮 기온이 영상 10도를 상회하는 봄날씨만 연일 계속되고 있다. 난방비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으니 지갑이 얇은 서민들에게 이보다 더 반가운 일이 없을 테지만 겨울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나 겨울 한 철 장사인 스키장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오늘도 한낮 기온이 영상 10도까지 오르고 화창한 날씨에 햇빛마저 따사로워서인지 주말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엔 생기가 돌았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집 <나는 왜 쓰는가>를 읽었다. 이 책에는 표제작인 '나는 왜 쓰는가'를 비롯하여 작가가 쓴 에세이 29편이 실려 있다. 생각해 보면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면서 살고 있다. 누군가는 기록의 목적으로, 다른 누군가는 치유의 목적으로, 또는 알림의 목적으로... 글을 쓰는 목적이 어떠하든 간에 우리는 이따금 시간을 때우기 위한 방편으로 글을 쓰기도 하고 그렇게 썼던 글이 운 좋게도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오기도 한다.

 

이 책에 실린 각각의 글은 한마디로 군더더기 없는 매끈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철학적 사고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느꼈다.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삶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주제,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과 간디 등에 대한 인물평을 통하여 책을 읽는 독자는 작가로서의 조지 오웰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하게 된다.

 

"우리는 너무 문명화되어 명백한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진실은 아주 단순한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남으려면 종종 싸워야만 하고, 싸우자면 자신을 더럽혀야 한다." (p.137 '스페인 내전을 돌이켜본다' 중에서)

 

작가든 연극인이든 간에 문화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살아남기 위해 종종 싸워야만 했나 보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계 종사자들 만여 명을 리스트로 작성하여 정부의 지원을 완전히 끊어버리지 않았나. 실로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보도되는 뉴스를 보면 점점 사실로 굳어지고 있는 듯하다. 조지 오웰이 살았던 시대에도 차별과 불공정은 여전히 존재했었나 보다. '애국주의는 보수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은 우리나라 보수주의자들이 명심해야 하는 말이다.

 

"그날 밤 꿈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은, 중산층에게 주입되어온 애국주의가 마침내 효과를 본다는 것이었으며, 영국이 심각한 궁지에 빠지면 나로서는 애국주의에 반기를 드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단, 여기서 오해는 없도록 하자. 애국주의는 보수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애국주의는 변하고 있되 신비롭게도 똑같이 느껴지는 무엇에 대한 헌신이다. 이를테면 백군 출신으로 볼셰비키가 된 사람의 러시아에 대한 헌신 같은 것이다. 체임벌린의 영국에 충성하는 동시에 내일의 영국에 충성한다는 건, 그것이 일상적인 현상임을 모른다면 불가능해 보일지 모른다." (p.85 '좌든 우든 나의 조국' 중에서)

 

오랜 세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생계를 꾸려간 조지 오웰이 서평자의 입장을 글로 쓴 부분은 인상 깊었다. 생계를 위해 서평을 써온 것은 아니지만 나도 이따금 책을 읽고 블로그에 서평을 남기는지라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밀려드는 책을 다 읽지도 못하고 마감 기한에 맞춰 의례적인 서평을 쓸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고백하면서 과도하게 많은 서평을 쓰는 것이 '사기'라고 외치는 작가의 단호한 말에 가슴이 뜨끔했다.

 

"아무리 지겨워한다 해도 서평자는 책에 대한 관심이 각별한 사람이며, 매년 수천 권씩 쏟아지는 책 중에 쉰 권이나 백 권쯤에 대해서는 기꺼이 서평을 쓰고 싶어 한다. 업계 최고 수준인 사람이라면 열 권에서 스무 권 정도를 택할 것이며, 두세 권만 꼽을 수도 있다. 그 나머지 일은 아무리 양심적으로 칭찬을 하든 욕을 하든, 본질적으로 사기다. 그는 자신의 불멸의 영혼을 하수구로, 그것도 한 번에 반 파인트씩 흘려보내는 셈이다." (p.286 '어느 서평자의 고백' 중에서)

 

저녁이 되었는데도 기온은 크게 떨어지지 않고 포근하다. 사는 게 이렇게 포근한 겨울날씨처럼 늘 안심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작가가 되기 위해 밑바닥 인생을 경험하고 노숙생활도 마다하지 않았던 조지 오웰의 작가정신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 현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의 안일하고 나약한 심성에 경종을 울리는 바가 크지만 삶을 꾸려가기 위해 그렇게까지 해야 했던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잘 쓴 글은 세월이 지나도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가 보다. 조지 오웰이 밝힌 글을 쓰는 이유는 덧붙이는 글로 남겨 둔다.

 

P.S

1.순전한 이기심.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를 말한다.

2.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3.역사적 충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를 말한다.

4.정치적 목적.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동기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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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지겠지' 생각하며 한 해 두 해 시간만 흘려보낸다고 해서 저절로 나아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개인의 건강이나 살림살이 또한 아무런 노력도 없었는데 나빠진 건강이 좋아질 리도 없을 뿐더러 빠듯했던 살림살이가 어느 날 갑자기 제비가 가져다 준 흥부네집처럼 하루 아침에 좋아질 리 만무하다는 건 세 살배기 어린애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로또복권에 당첨되지 않는 한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지도 않을 행운을 기대하면서 무작정 기다리는 일에 너무도 익숙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1주일여가 흐르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새해 분위기가 크게 흐려지지 않은 덕분에 만나는 사람마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빼놓지 않는다. 나도 역시 그런 인사를 주고 받으며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은근한 기대를 품게 되는 것이다.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듯 보이지 않던 행운이 어느 날 갑자기 내 눈앞에 턱 하니 펼쳐지기라도 할 것처럼 은근한 기대감에 가슴까지 설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한해의 시작인 1월 한 달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 2월만 되더라도 예년과 다름없는 텁텁한 일상이 반복되곤 한다.

 

우리가 연초에 기대하는 행운은 어쩌면 예년과 달라지지 않은 평범한 일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올해는 그런 기대도 한낱 사치에 그치지 않을까 다들 걱정하는 분위기이다.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탄핵 피소추인이 된 대통령 한 사람만을 탓할 일도 아니다. 따지고 보면 그녀는 아바타 대통령, 핫바지 대통령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려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무런 실권이나 생각도 없이 하루 하루 로봇처럼 움직였던 대통령의 실체를 국민 모두가 까맣게 몰랐다는 건 그런 사실을 숨기기 위해 애썼던 수많은 부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터, 우리는 그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본인보다 더 나쁜 사람은 그들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새해의 수명은 과연 언제까지라고 해야 적정할까. 보름? 한 달? 또는 한 분기? 어쩌면 올해는 새해 분위기가 지속되는 기간도 역대 최단 기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확대와 미국의 금리 인상, 극우 세력의 득세 등 우리 앞에 놓인 난제는 지도자를 잃은 대한민국호에 충격을 더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소비자들의 꽁꽁 닫힌 지갑과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가계부채, 그리고 벼랑으로 내몰리는 자영업자들... AI 여파로 인한 달걀 가격의 고공행진... 들썩이는 물가. 그러나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무한반복되는 그들의 '몰랐다'는 말만 지겹도록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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