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걷히기도 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운동을 나서는데 때마침 눈이 내렸다. 가로등 불빛을 배경으로 푸슬푸슬 부서지는 눈발을 보자 한겨울에도 없던 오슬한 추위가 사무치도록 느껴졌다. 하루쯤 눈을 핑계로 아침운동을 거른들 건강에 큰 이상이 올 것도 아닌데, 하는 얄팍한 유혹이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표표히 날리는 눈발과 모자른 잠을 채우고 싶다는 달콤한 유혹. 꼭 무슨 영화 제목처럼 강렬하다.

나는 끝내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삶과 시간의 채색은 늘 그런 식이다. 당위를 무시한 채 아무리 약한 척 어리광을 부려도 거기에 대한 응답도 결국 나의 몫이며, 행위에 대한 나의 변명에 대해 세상은 한참이나 늦게 응답하거나 모르는 척 무시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외로워 말지니. 세상을 일깨우기에는 나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가냘프고 어깨를 맞댄 나의 이웃에게 이제 겨우 알려졌을 뿐이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보다도 한참이나 넓어서 적어도 내가 바라는 그 넓이의 사람들에게 끝내 이를 수 없는 나의 목소리.

 

지난 주말, 경찰 차벽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두 집단의 시위. 소위 탄핵을 반대하는 친박 집회와 탁핵 인용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는 집회 참가자들 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모든 국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을 듯하다. '같음'이나 '같아짐'을 바라는 대다수 국민들의 소망과는 달리 그로부터 한참이나 어긋난 '다름'을 보았을 때, 세상을 이해하는 우리의 태도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끝내 시인할 수밖에 없는 2017년의 우매함은 세월의 뭇매를 맞은 먼 훗날에 우리가 떠안을 후회의 무게. 평의를 마친 헌재 재판관들은 선고 기일 발표를 8일 이후로 연기했다. 오늘 아침에 날리던 눈발처럼 계절의 고개를 넘는 시간은 참으로 힘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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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길이 아닌 길을 가라 - 조달청장 정양호의 직장별곡
정양호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사람의 책을 읽고 그에 대한 리뷰를 쓴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지나치게 솔직하자니 그건 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마음에도 없는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자니 그것 또한 양심에 찔려 개운치 않은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입장에 처할 바에는 차라리 리뷰를 안 쓰면 되지 않느냐 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도 못할 짓이다. 책이 출간된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 리뷰를 쓰지 않는다는 건 책이 재미가 없어 읽어보지도 않았구나 하는 의심을 살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까닭에 아무튼 나는 책을 다 읽고도 어지간히 뜸을 들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기왕 리뷰를 쓰기로 작정했으니 책에 대한 소회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써 보기로 한다.

 

<때로는 길이 아닌 길을 가라>의 저자인 조달청장 정양호 님과의 인연은 사실 별게 아니다. 수년간 블로그 생활을 하면서 좋은 글벗으로 지냈다는 게 인연의 전부이다. 내가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나는 저자로부터 정영희 작가의 책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선물로 받았었다. 저자가 직접 쓴 편지와 함께 말이다. 그 바람에 나는 저자에 대하여 더 각별히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저자의 직업도, 얼굴도, 사는 곳도 알지 못하면서 그저 가까운 사람이려니 생각했었다.

 

<때로는 길이 아닌 길을 가라>는 32년째 공직 생활을 한 저자가 한 사람의 직장 대선배로서 자신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하는 '직장 생활 지침서'라고 말하는 게 옳을 듯하다. 물론 사기업에서의 직장 생활과 공직 생활은 직장의 분위기나 추구하는 목표 등에서 많이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2008년부터 블로거로 활동하며 1,300여 권의 북 리뷰를 올렸던 저자의 이력을 감안하면 이 책이 단순히 직장 생활을 오래 한 한 직장인의 서툰 창작물만은 아니라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책에서 다루는 범위는 우리의 직장생활 전반에서 겪게 되는 일상이다. 시기적으로 공직에 첫 입문한 때부터 최고위직 관리자가 되기까지의 경험을 망라했다. 업무 관련 사항과 함께 직장 내에서의 처세 문제, 자기계발 문제까지 다양한 측면을 조망했다. 필자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공직자들이 가장 많이 공감하겠지만, 공공 기관이나 일반 민간기업 직장인들도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p.324)

 

<때로는 길이 아닌 길을 가라>에는 Chapter 1. 직장생활의 기본 갖추기(업무 편) Chapter 2. 당신이 거울입니다(처세 편) Chapter 3. 천리길도한 걸음부터(자기계발 편) Chapter 4. 직장인들이 꼭 읽어야 할 책(정양호의 책꽂이)의 4개의 장에 80여 꼭지가 넘는 글이 실려 있다. 나는 예전부터 블로그에 올라오는 저자의 글을 읽어왔지만 그때마다 들었던 생각은 그의 글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는 것이었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수십 년간의 직장 생활 동안 저자가 쓰고 고쳤을 수많은 보고서와 기획안으로도 그의 글쓰기 내공은 충분히 다져졌을 터, 게다가 웬만한 작가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그때마다 블로그에 올라오는 많은 리뷰는 나와 같은 게으른 블로거와는 비길 바가 아니었다.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양적이고 얕은 독서를 주로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의 역할을 하는 책이다. 직장인으로 온전히 책 읽기에만 전념할 수 없는 입장이라 온전히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독서를 바탕으로 이젠 울림이 있는 독서를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 평가도 해본다. 앞으로의 독서가 다독보다는 정독을, 지식의 습득보다는 감수성을 깨치는 방향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p.283)

 

'당신의 친구에 대해서 내게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말해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스페인의 문호 세르반테스가 한 말이다. 그런가 하면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는 말도 있다.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아 사바랭이 한 말이다. 이와 비슷한 의미의 말이 더 있는 것으로 안다. 두 말에서 나는 사람은 누구나 주어진 환경에 적당히 적응하고 쉽게 안주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직장 생활도 다르지 않다. 낯설고 어색한 시간은 순간에 그치고 다람쥐 쳇바퀴 도는 그날이 그날 같은 날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다.

 

어느 한 곳에 매몰된다는 건 위험한 일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로 살아가기는 쉽지만 그곳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책의 제목을 <때로는 길이 아닌 길을 가라>고 정한 이유도 적당한 선에서 안주하고 타협하려는 대다수 직장인의 나태함을 경계하고자 쓴 말이 아닐까 싶다. 저자도 물론 퇴근한 후의 피곤한 몸을 이끌고 책상 앞에 앉기까지 수없이 많은 말로 자신을 채찍질했을 것이다. 그러나 책에서 길을 찾지 않으면 우물 밖으로 향하는 길은 영원히 보이지 않는다.

 

이제 나의 어설픈 조언으로 짧은 리뷰를 마무리해야겠다. 보고서나 기획안처럼 장황한 이야기를 짧게 요약하는 글만 잘 쓰는 직장인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문학적 글쓰기를 연습하는 직장인은 드물다. 직장인으로서 작가에 도전하라는 말은 아니지만  서툰 솜씨라고 할지라도 문학적인 글쓰기를 멈추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공감의 능력, 소통의 능력은 정서가 메마른 상태에서는 길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이 나 한 사람의 욕심과 이기심을 키우는 장으로 전락하는 걸 나는 많이도 보아왔기에 하는 말이다. 은퇴 후에 남는 것은 결국 돈이 아닌 사람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독서에 있어서도 자기개발과 어학 등 실용서 위주의 독서에서 이따금 벗어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열 중 셋 정도는 문학책을 읽어야 한다. 무엇이든 편중되면 좋지 않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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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문동씨입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리뷰대회 수상자를 발표합니다. ^^

 

#이벤트 다시 보기: http://cafe.naver.com/mhdn/122130

1등
다비랑 님 _ 위안이자 희망 그리고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준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http://blog.yes24.com/document/9300455

2등

cyrus 님 _ 책으로 살찌운 영혼
http://blog.aladin.co.kr/haesung/9146201


빌더무트 님 _ 현대의 백과전서파 다치바나 다카시의 종이책의 미래에 대한 이유 있는 낙관
http://blog.yes24.com/document/9300447

3등

티거루 님 _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를 걷다
http://blog.aladin.co.kr/788375142


랜디와일드 님 _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성장한다는 것
http://book.interpark.com/blog/rhoads82/4818194


꼼쥐 님 _ 비밀의 문
http://blog.aladin.co.kr/760404134/9147964

꿈의도서관 님 _'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http://blog.yes24.com/document/9256510


정말 많은 분들께서 참여를 해주셨는데요. ^^

수상하신 분들 모두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더불어,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수상하신 분들께는 서점에 등록 된 회원정보를 통해 개별 연락 드릴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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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기쁨의 발견 - 달라이 라마와 투투 대주교의 마지막 깨달음
달라이 라마 외 지음, 이민영 외 옮김 / 예담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자신의 책 <의식 혁명>에서 인간의 의식수준을 에너지 수준에 따라 분류해 놓았다. 우리에게 잠재돼 있는 내면의 힘을 수치화 하여 '0'에서부터 '1000'에 이르는 각각의 구간을 나누고 구간별로 인간의 의식 수준을 정리한 것이다. 그의 분류에 따르면 수치심(에너지 수준20), 죄의식(에너지 수준 30), 무기력(에너지 수준 50), 슬픔(에너지 수준 75), 두려움(에너지 수준 100), 욕망(에너지 수준 125), 분노(에너지 수준 150), 자존심(에너지 수준 175), 용기(에너지 수준 200), 중용(에너지 수준 250), 자발성(에너지 수준 310), 포용(에너지 수준 350), 이성(에너지 수준 400), 사랑(에너지 수준 500), 기쁨(에너지 수준 540), 평화(에너지 수준 600), 깨달음(에너지 수준 700~1000)이고 200 이하의 에너지 수준에서는 '살아남기'의 삶의 태도를 유지하게 되고, 500이라는 수치에 이르면 다른 사람의 행복도 고려하게 되고, 600대에 이르면 인간의 선과 깨달음에 대한 추구가 삶의 기본적인 목표가 된다고 했다. 그리고 700~1000의 수준에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한 삶을 살게 된다고 말한다.

 

달라이 라마와 투투 대주교가 나눈 일주일간의 대화를 기록한 <기쁨의 발견>을 읽다가 문득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 혁명>이 떠올랐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21세기를 대표하는 두 성인이 인도 다람살라에서 만났던 것은 달라이 라마의 80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함이었지만 슬픔과 고통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기쁨을 찾고 영속적인 기쁨을 누릴 수 있는가에 대한 각자의 깨달음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함 또한 그들 만남의 목적이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절망과 좌절에 빠진 인류가 다시 높은 수준의 에너지 수준을 회복하고, 서로를 걱정하고 사랑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적시한 기쁨의 비법서인 셈이다.

 

"한 주 동안 두 영적 스승은 슬픔 없이는 기쁨이 없으며, 고통과 고난이 있기에 기쁨을 느끼고 이에 감사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실제로 자신과 타인의 고통을 향해 다가갈수록 우리는 기쁨을 향해 더욱 나아가게 된다. 우리는 삶이 들려주는 음악을 듣기 위해 볼륨을 높이면서 그 둘 모두를 받아들이거나, 귀를 틀어막고 삶 자체에 등을 돌려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한 기쁨은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그저 스쳐 지나가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또 보여주었다. 그들이 긴 삶을 통해서 일구어낸 것은 기쁨의 그와 같은 지속적인 속성이었다." (p.354)

 

역설적이게도 경제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과학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인류가 갖고 있는 선한 본성이 그에 따라 점진적으로 더욱 풍성하게 발현되는 게 아니라 좌절과 공포, 타인에 대한 질투와 분노, 외로움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만 강화된다. 그에 따라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살인과 끊이지 않는 테러 등으로 아비규환의 생지옥을 연출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는 어떻게 기쁨을 발견하고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말을 하게 되어 유감이지만, 더 많은 기쁨을 발견하더라도 우리는 어려움과 슬픔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더 많이 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더 많이 웃게 되기도 하겠지요. 그저 조금 더 살아 있게 되는 것이랄까요. 하지만 더 많은 기쁨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고통을 마주할 때 원통함보다는 조금 더 고상한 자세를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려움 앞에서 경직되지 않고, 슬픔 앞에서 부서지지 않겠지요." (p.25)

 

두 성인의 대화는 단순히 머리에서 나오는 '앎'의 수준이 아니었다. 심리학이나 뇌과학, 또는 명상이나 종교 서적을 뒤적여보면 우리는 이보다 더 근사하고 멋진 말을 수도 없이 많이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체화된 '앎'에서 비롯되는 깊은 울림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떠한 외부 환경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의지, 타인을 향한 지속적인 연민, 우리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깊은 유대감, 그들 또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70억 명과 같은 인간일 뿐이라는 두 성인의 겸손에서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자기중심적인 태도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낳습니다. 불신이죠. 두려움이 많으면 좌절하게 됩니다. 그리고 좌절은 분노를 불러오죠. 그것이 연쇄적인 반응을 만들어내는 마음의 체계이고, 감정의 심리학입니다.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갖는다면, 다른 이들과 멀어지고, 불신이 생기며, 그렇게 되면 불안하고, 두렵고, 걱정되고, 좌절하고, 분노하며, 폭력을 저지르게 됩니다." (p.98)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지만 영원히 오지 않을 것처럼 까맣게 잊고 지내듯이 시련은 언제나 우리 삶으로부터 떠나지 않지만 영원히 오지 않을 것처럼 잊고 지낼 수 있느냐 하는 문제 역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시련의 존재를 잊는 순간 우리는 기쁨의 오로라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자면 슬픔의 나락으로 빠지지 않는 정신의 면역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타인의 슬픔을 묵상하면 나 자신의 슬픔이 작아지는 것처럼 타인의 기쁨도 내 기쁨인양 즐거워할 수만 있다면 웃고 기뻐하지 않을 시간이 있을 수 있을까. 주중에 하루를 쉬었더니 일주일이 다른 주보다 빠르게 지나간 느낌이다. 3월의 첫 주말, 일상에서의 기쁨이 온 나라에 가득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민 누구에게서나 체화된 기쁨을 하시라도 발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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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번의 반짝 추위가 더 남아 있을지도 모르지만 봄은 우리 주변을 서성이며 한껏 기대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모든 게 새로워지는 3월의 첫날이자 삼일절 휴일이었던 어제 아침, 나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산에 올랐고 이울어가는 겨울 풍경을 아쉽게 바라보았습니다. 짙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 산행은 푸른 빛이 감도는 새벽 어스름녘에서야 끝이 났습니다. 정상 부근의 소나무숲을 뒤로 하고 나는 하산을 서두릅니다.

 

 

 

우리의 삶도 어쩌면 이와 같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시작된 삶은 형체만 겨우 분간할 수 있는 어스름녘에 서둘러 끝이 나는 것일 테지요. 때로는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끝나는 삶을 목격하기도 하겠지만 대개의 삶은 어둠이 막 걷히는 이른 새벽이나 햇살이 찬란하게 퍼지는 아침에 끝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은 삶이 지속되는 시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잠깐 동안의 삶에서도 큰 깨달음을 얻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분들은 어쩌면 모든 게 선명해진 세상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조용히 눈 감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겨울, 우리의 시간은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암흑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둠이 완전히 걷힌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봄과 함께 칠흑 같은 어둠 또한 서서히 물러나겠지요. 골이 깊으면 산도 높은 것처럼 어둠이 깊으면 별은 더 빛난다는 것을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 찬란한 아침이 펼쳐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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