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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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세월이 할퀴고 간 상처는 끝내 세월로 치료할 수밖에 없음을 어렴풋이 알 만한 나이가 되었다. 크게 자랑할 거리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것은 치료라기보다 하나의 상처가 다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상처를 더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고통에 대한 점진적 내성일지도 모른다. 고통에 대한 반응이 그렇게 점차적으로 둔해지다가 종국에는 '죽음'이라는 가장 큰 고통을 태연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면 상처에 또다른 상처를 더하는 것은 지당하고 옳은 일이다.

 

손홍규의 산문집 <다정한 편견>을 다시 읽었다. 실상은 어이없는 실수에서 비롯된 일이었지만 괜히 시간만 낭비했다, 자책할 일만은 아니었다. 재작년 여름에 이 책을 읽고 리뷰까지 썼음에도 불구하고(http://blog.aladin.co.kr/760404134/7660211) 어떻게 나는 남의 일인 양 까맣게 잊은 채 도통 기억을 떠올리지 못했던 것일까. 급기야 나는 책을 새로이 구매했고, 모르는 낱말에 밑줄까지 그어 가면서 꼼꼼히 읽었다. 지난 주말, 방 청소를 하던 중 마구잡이로 쌓아올린 책더미 속에서 유난히 낯이 익다 싶은 책 한 권을 발견하였는데, 아뿔싸, 그것은 바로 내가 읽고 잇는 바로 그 책, 손홍규의 <다정한 편견>이었다.

 

"완전한 독서를 위해 우리가 준비할 것은 경이로운 것들 앞에서 기꺼이 감탄할 자세 하나면 된다. 마치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그렇다면 언젠가 우리는 책 너머의 것들에 감탄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독서는 읽는 행위가 아니라 교감하는 행위다. 좀더 외설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문장들과 속삭임을 나누고 손길을 나눈다. 책과 동침하고 책과 사랑을 나눈다. 책은 우리 안에서 익어가고 발효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책과 하나된 스스로를 출산한다." (p.167)

 

지난 2008년부터 3년 반 동안 일간지에 연재했던 칼럼 〈손홍규의 로그인>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는 그의 산문집에는 당시에 썼던 180여 편의 글 중에서 138편만이 실려 있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1부 '시간이 지날수록 초라해지는 목록', 2부 '선량한 물음', 3부 '바느질 소리', 4부 '다정한 편견'의 제목 하에 글의 내용에 따른 분류가 이루어진 듯했다.

 

1부에는 주로 작가의 고향이나 가족을 주제로 한 글들이 많다. 새로 산 하얀 고무신을 물에 떠내려 보낸 후 혼이 날까봐 무서워서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근동을 배회하다 밤이 늦어서야 들어간 집의 댓돌 위에 놓인 또다른 새하얀 고무신을 보고 눈물을 찔끔 흘렸던 추억 등 작가의 마음 속에서 한 폭의 그림으로 간직된 여러 이야기들이 읽는 이의 가슴을 아련하게 한다. 2부에는 소소한 일상에서 건져올린 작은 깨달음과 다정한 이웃들의 따뜻한 시선을 담았다. 방을 구하기 위해 인터넷 직거래 카페를 들락거리며 우연히 보게 된 타인의 삶의 일부, 고즈넉하지도 평안하지도 않았던 그들의 삶에서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3부에는 소설가로서 문학을 대하는 작가 자신의 자세와 습작시절 등을 다룬 글들이 담겨 있다. 글은 왜 쓰는지, 무엇을 쓸 것인지,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등 작가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애환과 그럼에도 주관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자 애쓰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4부에는 주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작가 자신의 생각과 시대의 풍경이 담겨 있다.

 

재작년에 내가 썼던 리뷰에서도 언급했던 바이지만 작가의 글에는 잊혀져가는 순우리말이 적절히 섞여 있다. '여축없다', '몰강스럽다', '각다분하다', '끄느름하다', '비루먹다', '메지구름', '는질는질', '그들먹하다' 등의 낱말들이 섬처녀처럼 수줍게 다가온다. 이보다 더 많았더라면 아마도 나는 자신의 부족한 우리말 실력을 탓하기보다는 책을 읽는 내내 '잘났어 정말' 하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른다.

 

"눈 내리는 바다는 늘 해맑게 웃던 이가 어느 날 속깊은 울음을 터뜨렸을 때처럼, 타인의 내면을 무심코 목격했을 때처럼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그리고 나는 이 당황스러움이 삶을 구성하는 찬란한 순간들임을 알았다. 상대의 진심을 알게 되던 속수무책의 순간들을 겪듯 매 순간 당황하고 당황하며 견뎌내야 하는 게 삶이라면 그 삶 가운데 비장하지 않은 삶이란 없다는 것도." (p.127)

 

길게 늘여 쓴 글이라고 해서 없던 감동이 갑자기 생길 리도 없지만 짧은 글이라고 해서 감동의 여운이 비례하여 짧아질 리도 없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까닭은 작가의 글이 원고지 4.5매 내외의 짧은 글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에서도 밝혔듯 이와 같은 분량상의 제약 때문에 작가 또한 괴로웠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짤막짤막한 그의 글을 읽으면서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작가가 말하는 장면들을 모두 떠올릴 수 있었다. 원고지 4.5매로 압축했던 까닭에 행간의 의미는 더욱 깊어졌고 언어 너머의 여운 또한 길어진 듯했다. '행복은 건강과 좋지 않은 기억력에 달려 있다.'고 했던 잉그리드 버그만의 말이 새삼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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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겨울인들 매섭지 않았으랴만 유독 올 겨울을 스산했던 계절로 기억하게 된다면 아마도 그 이유는 최순실의 태블릿 pc에서 비롯된 길고 무자비했던 혼란과 이를 무마하기 위해 갖은 발악과 추태를 보였던 여당과 친박 단체의 민낯을 시도 때도 없이 보아야만 했기 때문일 터였다. 기나긴 터널을 간신히 통과한 느낌이다. 그러나 어둠의 끝이 항상 밝음이라는 건 어느 동화책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닐까. 법과 상식을 무시하는 무자비한 인간들이 두 눈을 똑바로 뜬 채 살아 있는 한 어둠의 예감은 곳곳에서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그동안의 혼란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느껴질 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진실을 알리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써왔던 정직한 기자들이 모두 잘려나간 대한민국의 언론 현실에서 누가 나서서 알려준 것도 아닌데 우리는 제 스스로 소위 보수(합리적인 보수를 제외한 수구 꼴통이라고 해야겠지만) 세력의 정체와 그들의 민낯을 똑똑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입에 담기도 민망한 폭언과 욕설은 기본이요, 법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폭력과 위협, 그리고 협박 등의 그들이 저질렀던 온갖 불법행위가 지난했던 대한민국의 겨울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준법을 유난히 강조했던 대통령과 법이 자신들의 편이라고 믿었을 때만 법치를 강조하던 무리들은 이제 더이상 법이 그들의 안하무인과 법 위에서의 군림을 용인하지 않게 되었음을 알았다. 망나니와 같았던 그들을 유난히 감싸고 편애했던 대한민국의 사법기관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더이상 자신들의 편에 설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절망 대신에 이성을 상실한 듯한 과격한 행동으로 우리들 앞에 섰다.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추하고 저속했다. 법치와 자유를 사랑하는 보수의 품격은 그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보수의 몰락을 원하지 않는다. 상식과 법률에 기초한 건전한 보수, 자유와 공정을 사랑하는 합리적인 보수의 출현을 누구보다도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번은 죽어야 한다. 죽지 않으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없다. 우리는 지금 가짜 보수, 양의 탈을 쓴 대한민국 보수의 민낯을 보았을 뿐이다. 그들이 몰락하지 않는 한, 그들이 철저히 죽지 않는 한 새로운 보수는 태어나지 않으리라.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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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7-03-12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충제를 뿌리니 숨어 있던 바퀴벌레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온 형국입니다.
대규모 방역작업 없이는 수백만개의 알들까지 퇴치할 순 없겠지요.
꼼쥐님 말씀처럼 그 누구도 살충제를 뿌려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맞아보니 바퀴의 끈질긴 생명력처럼 내성을 갖겠지요. 철저히 뿌리뽑아야 됩니다.
이제 시작인 셈이니~ 국민들이 마음을 놓게 되는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해질수도 있겠지요


꼼쥐 2017-03-15 15:15   좋아요 1 | URL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철저한 감시와 게속되는 질타가 있어야만 공정한 처벌이 이루어질 듯합니다. 세간에는 벌써부터 사면을 하자는 둥 말이 많던데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이번에는 기필코 죄가 있는 사람은 감옥에 보내야지요.

cyrus 2017-03-15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 같은 생각입니다.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기초가 무엇인지 다시 배워야 할 정도로 반성해야 합니다. 민심을 다시 얻으려고, 자신이 ‘진짜 보수’라고 강조하며 말로만 반성을 여러 번 되뇌는 정치인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꼼쥐 2017-03-16 18:02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서 소위 보수라고 말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삼류 조폭을 빼다 박은 것 같아요. 강자에게는 무한정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더없이 강한 듯 보이려고 하지요.
 
내 안에 잠든 작가의 재능을 깨워라
안성진 지음 / 가나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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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관련된 책들이 정말 많이도 나온다. 마치 무슨 유행이나 시대의 트렌드처럼 신간도서 10권 중 한두 권은 글쓰기 책이고 보면 이건 좀 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드는 것이다. 책이라는 게 보통 시대의 흐름을 포착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욕구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최근 들어 글쓰기 책이 이렇게 범람하는 까닭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SNS의 발달로 인하여 자신의 블로그나 페이스북 등 자신의 sns 계정에 사진을 찍어 올리거나 짧은 글을 남기는 게 보편적인 일처럼 여겨지는 요즘, 글쓰기의 필요성 또한 증가한 게 사실이지만 글쓰기 책의 범람을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여전히 미진한 느낌이 든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도 글을 많이 쓰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지금보다 어릴 때부터 이런 이야기를 했다. 똑똑해지고 싶으면, 지혜롭게 살고 싶으면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써야 한다고. 그래서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p.3)

 

<내 안에 잠든 작가의 재능을 깨워라>의 저자인 안성진 님을 알게 된 건 순전히 블로그 덕분이었다. 책을 읽고 자신의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레 친구도 생기고, 성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친분도 쌓이게 된다. 비록 온라인상에서의 일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오프라인에서는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단지 블로그의 글만 읽어도 '아, 이 사람은 이런 성격의, 이 분야에 관심이 있고, 이러이러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구나', 하고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저자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분이다.

 

저자의 책을 두 권째 읽었다. 슬하에 두 명의 아들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도 아들에 대한 이야기나 사진이 많았고 저자의 자식 사랑이 각별한 듯 느껴졌었다. 어느 부모 치고 제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있을까마는 자식의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책을 통하여 배우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그래서였는지 저자의 첫번째 책은 <하루 10분 아빠 육아>였다. 자신의 육아 경험을 바탕으로 쓴 육아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글쓰기 책을 선보였다. 엄밀히 말하면 책 쓰기 방법이겠지만 말이다.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그것이 한 권의 책으로 나오기까지,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박힌 한 권의 책을 써낸 후의 달라진 삶을 통하여 저자는 깨달은 바가 많았던 듯하다. Chapter 01 변화를 꿈꾼다면 글을 써라, Chapter 02 당신만의 책을 써라, Chapter 03 본격적인 책 쓰기, Chapter 04 책 쓰기 코칭 받기, Chapter 05 글을 쓸 때 필요한 좋은 습관들, Chapter 06 첫 책을 쓴 작가의 책 쓰는 이야기의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맘만 먹으면 누구든 책을 쓸 수 있다고, 누구든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꾸준히 글을 쓰던 사람이 단순한 글쓰기를 떠나 책 한 권을 쓰겠다고 마음먹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바로 작가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내가 매일 쓰는 글이 나중에 책이 되어 세상에 나올 것이라고 상상해 보자. 오늘 쓰는 글에 대한 의미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매일 쓰는 글이 훨씬 더 큰 의미를 갖게 된다. 마치 적금통장에 돈이 쌓이는 것을 보며 뿌듯해 하듯 매일 써낸 글 때문에 뿌듯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p77~p.78)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다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지만 말이다. 블로그에 올라오는 저자의 글을 꾸준히 읽어오면서 내가 느꼈던 생각은 저자는 다른 누구보다도 성실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일 수도 있었다. 어떤 분야든 자신이 목표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가장 큰 무기는 성실함이다. 그러므로 신이 부여한 가장 훌륭한 재능은 성실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단 한 권의 책도 내보지 못한 나와 저자의 차이는 그 성실함에서 갈리는 듯하다.

 

"작가는 아침을 활용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잠자는 시간을 조금만 조절하면 그 시간을 글쓰는 시간으로 바꾸어 쓸 수 있다. 그게 습관이 되지 않았다면 천천히 시간을 두고 생활습관을 바꾸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침 7시에 일어나던 사람이 5시에 일어나면 오래 실천하지 못한다. 하루 5분씩만 바꿔보겠다는 생각으로 시도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p.213)       

 

언제가 법정 스님의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을 다 버릴 수 있고 사람마다 생각나는 대로 다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무슨 인생이라 말할 수 있겠느냐'(사람아 무엇을 비웠느냐 中) 나는 이따금 이 말이 떠오를 때마다 스님이 꼭 나를 두고 하는 말인 듯하여 가슴이 찔리곤 한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처럼 말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가장 뛰어난 재능이자 가장 큰 무기인 '성실함'은 내 안에서 여전히 잠들어 있다. 가수면 상태인 '성실함'을 도무지 깨울 방법이 없다. 저자와 나의 차이는 바로 그것이다. 다시 또 봄이다. '성실함'의 무덤인 이 계절에 나도 책 한 권 쓰고 싶다고 말한다면 지하에 계신 스님이 벌떡 일어나시지나 않을까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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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Out !' 차를 밖에 주차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박근혜 전직 대통령의 탄핵을 속보로 타전한 CNN의 기사 제목입니다. 달리 해석하면 청와대에서 차를 빼라는 얘기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파면되었습니다. 막힌 체증이 확 뚫리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만 한 편으로는 뭣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동안 겪지 않아도 될 온갖 고생을 다 겪었나 생각할 때 분하고 억울한 마음도 듭니다. 추운 겨울 날씨를 아랑곳하지 않고 주말의 휴식도 반납한 채, 매주 광화문 광장에 모였던 순수한 국민들의 의지와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대다수 국민들의 바람이 오늘과 같은 결과를 이끌어 낸 것일 테지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해야 할까요? 탄핵 심판에 참여했던 8명의 재판관 모두가 합치된 의견을 보였습니다. 그들도 대한민국의 한 시민으로서 그와 같은 결정을 내렸겠지요. 탄핵 심판의 변론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의 험한 꼴을 수시로 보아왔지만 그들도 이제는 달리 어찌하지 못할 것입니다. 판결문을 낭독하였던 이정미 재판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하면서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닌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로서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하여 파면을 선언한다."는 안창호 재판관의 보충의견을 덧붙였습니다.

 

부끄럽게도 우리는 오늘 우리 스스로 뽑았던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우리 스스로 파면시키는 전례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지난 대선에서 우리는 집단지성의 발현에 의한 유능한 지도자의 선발이 아니라 이념이라는 허황된 망령에 덧씌워진 채 전례가 없는 바지 대통령을 뽑았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허울뿐인 대통령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습니다. 내일쯤이면 'Parked Out'(밖에 주차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릴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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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 신은 혼자서 상처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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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 듯한 순한 햇살이다. 계절을 건너온 노곤한 햇살이 기신기신 창을 넘는 나른한 오후, 윌리엄 폴 영의 신작 소설『이브』 를 마저 읽었다. 소설의 주제가 다분히 종교적인 색채를 띤 영적인 치유와 깨달음에 있다는 걸 제외하면 윌리엄 폴 영의 여성적인 문체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전개 방식으로 별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게다가 종교적인 성향의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성경의 창세기편을 소재로 한 것이니만큼 대중성에 장애가 되지는 않을 듯 보인다.

 

소설은 미지의 섬인 피난처에서 시작된다. 위치도, 연도도 알 수 없는 섬의 해변에서 열두 명의 시체가 담긴 컨테이너가 발견된다. 컨테이너는 그 섬에서 유일한 '수집하는 자' 존에게 인계된다. 존은 그 섬에서 백 년째 살고 있다. 컨테이너에서는 중년 남자 한 명과 열한 명의 소녀들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컨테이너에서 서류철을 살펴보던 존은 한 명의 소녀가 더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냉각기 옆의 작은 공간 안에서 완전히 부서진 소녀 한 명을 추가로 발견한다. 그가 발견한 소녀는 살아있었다. 치유하는 자들이 구한 소녀의 이름은 릴리였다. 릴리는 환상 속에서 '마더 이브'를 만나 태초의 현장을 목격하는 증인이 된다.

 

"내 딸아, 이리 와. 와서 창조의 증인이, 너의 부서진 몸과 깨진 영혼을 치유할 완벽한 증인이 되어줘." (p.26)

 

소설은 세 개의 공간에서 펼쳐진다. 릴리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지구,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피난처, 우주의 탄생과 아담과 이브가 등장하는 에덴 동산이 그것이다. 마약중독자인 릴리의 엄마는 릴리가 6살이 막 지났을 무렵, 약값 대신 그녀를 팔았고 그때 이후로 사람들은 그녀가 이용 가치가 없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팔아넘겼고, 그녀는 결국 영원히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만신창이의 몸으로 사고까지 당하여 혼수상태에 빠진다. 섬의 수호자였던 '존'은 이브가 예고한 '태초의 증인'이 그 소녀라는 것을 직감하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릴리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자 릴리의 생존에서 의미를 찾기 위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고 그들 중에는 아주 먼 곳에서 온 학자들인 제럴드, 아니타, 사이먼도 있었다.

 

"그녀는 창조의 절정에서 증인이 되려고 여기 소환되었다. 이브는 인간 안에서 탄생될 것이기에 아직 존재하지 않으며, 그녀는 그들의 탄생의 증인이 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p.266)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만 여겼던 릴리는 아내를 잃고 '그림자 병'에 걸린 사이먼의 꾐에 빠져 모든 희망을 잃고 정신적 위기 상황으로 내몰린다. 사이먼이 선물한 '진실의 거울'을 통해 자신의 내면 모습을 비춰본 릴리는 사악한 괴물과 같은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완전히 잃고 만다. 릴리가 뱀의 공격을 받은 후 존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다밑 피난처인 '볼트'로 이동한다. 그곳에는 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서재와 증인으로서 릴리가 본 것을 기록하는 기록실과 식당과 휴식 공간 등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곳에서 사이먼은 다시 한 번 릴리를 유혹한다. 아담에게 배신을 당한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에게 다시 돌아가지 못하도록 막을 수만 있다면 이브는 영원히 에덴에 남을 것이고 인류의 역사는 바뀔 것이라고 하면서 태초의 증인인 릴리가 그 현장에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에게는 수치심과 자기혐오야말로 가장 오래된 친구였다. 그런 감정들은 은혜나 축복과는 반대에 있는 것으로 그녀가 무가치하다고 입증하는 것들이었다.'실망'이라는 단어조차 그녀를 바닥으로 떨어뜨릴 수 있었다. 존은 그녀에게 그런 감정들에 저항하라고, 자신에 대한 애정과 배려가 더 큰 진실이라는 걸 부탁하고 있었다." (p.272~p.273)

 

여러번 위험에 빠진 릴리의 곁에는 언제나 사이먼이 있었다는 걸 눈여겨 보고 있었던 존은 위기의 상황에서 릴리를 구하고 릴리로부터 사이먼을 분리시키는 데 성공한다. 릴리는 환상 속에서 마더 이브와 재회하고 그곳에서 마리아를 만난다. 그동안 진실을 외면한 채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기만 했던 릴리는 그곳에서 비로소 진실을 마주하게 되고 아담이 '영원한 이'로부터 돌아섬으로써 앓게 되었던 '그림자 병'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이제 릴리는 존의 헌신적인 노력과 진실한 사랑을 신뢰할 수 있었다.

 

"신뢰란 일생에 단 한 번 내리는 선택이 아니고, 매순간 강물이 흐르듯 선택하는 거야. 우리를 둘러싼 선물에 감사하고, 또 그 선물을 보내고, 혹여 한 번 잃더라도 어느 것도 잊히지 않았다는 걸 신뢰하는 거야."(p.409~p.410)

 

"진정한 사랑은 펼쳐진 두 손을 필요로 하지. 거절할 힘이 없다면 사랑은 절대로 실재가 되지 못하고 환상에 불과하단다."(p.373)

 

그러나 그들 앞에는 피할 수 없는 이별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존과도, 부부인 아니타와 제럴드와도... 소설은 이제 마지막 반전을 향해 달려가고 독자들은 아담을 유혹한 이브에 대한 인식도,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인식도 서서히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늘 하느님을 향해 있던 아담이 태초에 그로부터 '돌아섬'으로써 생긴 하느님과의 단절, 하느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는 안개의 장막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슬픔은 참 기이한 거야.기쁨과 똑같이 갑작스레 찾아오거든. 옆으로 툭 하고 말이야. 그건 그냥 우리 삶의 리듬이고 충분히 인간적인 일이야."(p.328)

 

헌재의 탄핵 심판 선고를 하루 앞둔 오늘, 봄빛 완연한 날씨에 나는 온종일 춘곤증에 시달렸고, 윌리엄 폴 영의 소설 <이브>를 읽고 소설 속 주인공 릴리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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