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첫날이자 근로자의 날인 오늘 도시는 온통 미세먼지로 뒤덮여 뿌옇게 보입니다. 이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인근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체육대회가 한창입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풍경입니다. 학사일정과 아이들의 건강, 둘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요? 휴일이 많은 5월의 학사일정상 대기 오염으로 인한 일정의 취소나 연기는 예정에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진행하는 선생님들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요. 며칠 있으면 어린이날, 미래의 주인공인 우리 아이들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고 어떻게 하면 학사일정을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을까 염려하는 어른들의 편의주의적 발상이 그저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제 대통령 선거가 8일 남았습니다. 후보자들은 연일 전국을 누비며 선거 유세에 열을 올리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그들의 세상과는 사뭇 다른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일은 부처님 오신 날, 5일은 어린이날, 8일은 어버이날, 9일은 대통령선거일, 15일은 스승의날 등 휴일이 많아서 좋은 건 둘째 치고 돈 나갈 일 많은 일정에 앞이 캄캄한 건 아닌지요. 미세먼지로 뒤덮인 오늘의 하늘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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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다니구치 지로 지음, 신준용 옮김 / 애니북스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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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절제의 미학은 마음의 여백과 결합할 때 그 가치가 빛난다. 극도로 절제된 작품도 독자의 이해와 여유로은 마음으로의 초대가 없다면 다 소용없는 짓이다. 독자가 한 줄의 짧은 문장을 읽고 30분, 혹은 하루 종일이라도 기꺼운 마음으로 그 문장의 의미를 되새기며 깊은 사색에 빠져들 수 있다면 퇴고의 과정에서 작가가 들였을 혼신의 노력은 비로소 빛을 보게 된다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예술은 결국 향유하는 자의 가슴에 안주하는 것이니까.

 

내가 어렸을 때는 '만화방'이 있었다. 석탄 난로 주변으로 낡아빠진 소파들이 줄줄이 놓여 있고 사방의 벽면에는 각종 만화가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동네 아이들의 유일한 놀이터이자 바깥 세상의 소식을 전해 듣는 통로로서 만화방의 위세는 대단했다. 하여, 용돈이라고는 변변히 받아본 적 없는 아이들도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친척의 방문으로 깜짝 횡재를 하였거나 길에 떨어진 동전푼이라도 주운 날이면 그 돈이 손에서 녹아 없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숨을 헐떨이며 한달음에 '만화방'으로 달려가곤 했었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 '만화방'은 어린 시절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아련한 추억의 장이 아닐 수 없다. 이따금 나는 먼지가 묻은 추억의 유리창을 통해 내 어린 시절의 '만화방'을 바라보곤 한다. 그곳에는 땟국이 줄줄 흐르는 허술한 옷을 입고 손에 침을 발라가며 책장을 넘기는 어린 아이가 있고, 성인이 된 후에도 나는 그 시절의 아이를 그리워하며 때로는 눈물이 글썽해진 눈으로 만화를 읽곤 했다.

 

"내가 고향을 생각할 때마다

어떤 법칙처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어느 봄날 오후, 나는 아버지의 이발소 마룻바닥에 앉아 놀고 있다."    (p.6)

"따뜻한 봄 햇살의 온기가 한가득 머문 마루,

아마도 그건 어린 시절 중 내가 기억하는 가장 행복한 한때였으리라."    (P.7)

 

올해 2월 향년 69세의 나이로 고인이 된 다니구치 지로도 성인이 된 이후에 내가 만나 좋아하게 된 만화 작가 중 한 명이다. 1971년 '목쉰 방'으로 데뷔하여 일본 근대문학 거장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와 그 지인들의 생활상을 그린 '도련님의 시대'로 일본 3대 만화상 중 하나인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대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었다. 그랬던 그도 흐르는 세월 앞에서는 어찌하지 못했던 것일까. 만화 작가로서 그는 만화적 과장과 왜곡 따위를 극도로 절제한 사실적이면서도 담백한 작품을 남겼다. 내가 오늘 읽었던 작품은 2005년에 국내에 소개된 <아버지>였다. 질곡의 삶을 살아온 한 가족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이다. 일본에서 1995년에 '아버지의 달력'으로 소개되었던 단행본이다.

 

만화는 주인공 요이치가 아버지의 부고를 전해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요이치는 아버지의 나이와 자신이 고향을 떠나 지내온 세월을 셈해본다. 15년의 세월은 그가 고향을 잊고, 가족마저 등진 채 지낸 세월이었고, 아버지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발버둥쳤던 아득한 시간이었다. 요이치는 어떡하든 가족과의 대면 시간을 줄이기 위해 다음날 떠나려 했지만 아내 료코의 만류로 고향 돗토리를 향해 등 떠밀리듯 출발한다. 도쿄에서 돗토리현은 비행기로 1시간의 거리였다.

 

"고향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고향이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돌아오는 것이라고..." (p.274)

 

1952년에 있었던 돗토리 대화재로 인해 요이치의 집도 불타버렸고 빈털터리가 된 요이치네는 양조장을 하는 요이치의 외갓집, 그러니까 요이치 어머니인 키요코의 친정에서 돈을 빌려 집을 새로 짓게 된다. 가난했던 요이치 친가와는 달리 양조장을 하며 형편이 넉넉했던 처가로부터 도움을 받은 요이치의 아버지 야마시타는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쉬는 날 없이 일을 했다. 이발사인 그는 출장이발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밖에 모르는 아버지가 못마땅했던 어머니는 요이치의 누나 하루코와 요이치를 데리고 영화관에 가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한 부모님은 결국 이혼을 했고 어머니는 음악을 가르치던 마츠모토 선생님을 따라 돗토리를 떠났다. 유난히 요이치를 아꼈던 그의 어머니가 가족들을 버리고 떠났던 까닭은 일밖에 모르는 무뚝뚝한 아버지 때문이라고 굳게 믿었던 요이치는 어떻게 하면 집을 떠날 수 있을까 궁리한다. 아버지는 새어머니와 재혼을 했고 도쿄에 있는 대학에 합격한 요이치는 이후로 고향을 찾지 않는다. 그가 사랑했던 애완견 코로가 죽었을 때에도 그는 고향을 찾지 않았다. 요이치가 집을 떠난 후 코로를 극진히 돌보았던 건 그의 아버지였다. 그것은 곧 요이치에 대한 아버지의 그리움이었다.

 

"코로의 죽음 앞에서도 마음의 동요가 일지 않았다. 고향을 떠나 살아온 날들이 그런 감정을 조금씩 무디게 했던 것이다."    (p.239)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모인 많은 사람들로부터 요이치는 자신이 몰랐던 아버지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그리고 자신이 그동안 아버지를 오해하고 있었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 요이치가 방학이면 외삼촌을 도와 아르바이트를 했던 양조장에서의 일을 추억하며 그의 외삼촌 다이스케는 요이치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요이치가 떠난 후 그의 아버지가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도.

 

"니가 정성을 들여서 말을 걸어주면 술도 화답해서 좋은 술이 되는 기다."    (p.230)

 

다니구치 지로의 <아버지>는 웬만한 소설보다 더 묵직한 감동으로 독자들의 눈시울을 적신다. '아버지'라는 이름에서 오는 무게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작가의 절제된 문장 표현과 사실적인 그림, 돗토리 대화재라는 실재하는 참화를 소재로 하여 한 가족의 수난사를 담담히 그려냄으로써 작품을 읽는 독자는 작가가 숨겨둔 그리움의 실체를 온전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의 여백에는 작가가 그려 놓은 소박한 그리움의 무늬가 아롱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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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하기 좋은 날이었어요. 한낮의 기온은 제법 더위를 느낄 만했지만 시원스레 부는 봄바람이 어찌나 반갑던지요. 봄 하면 역시 바람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지요. 바람에 실려오는 라일락 향기가 더없이 달콤했던 오후의 한적한 공원에는 투명한 햇살만 넘실대더군요. 그 크지 않은 공원의 벤치 하나를 마치 전세라도 낸 양 홀로 차지하고 앉아, 바람과 봄햇살이 나누는 침묵의 대화를 몰래 엿듣는 기분은 그야말로 '평화'였습니다. 한껏 욕심을 내도록 누군가 내게 허락한다면 오후 시간 전체를 그렇게 앉아 있고 싶었습니다.

 

성주골프장에는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더군요. 차기 정부로 미룬다고 했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배치를 새벽을 틈타 기습적으로 시행한 것이지요. 그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다쳐 병원 신세를 졌나 봅니다. 환경영향평가도 거치지 않은 막무가내식의 결정이었습니다. 국민과의 소통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을 수 없었던 현 정부의 소통 방식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었지요. 국민은 개·돼지일 뿐이라는 그들의 생각은 자신들의 손에서 정권을 내려놓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듯합니다. 적당히 시간이 흐르면 정부에 대한 비난도 저절로 사그라들 것이라는 얄팍한 계산이 깔린...

 

마누엘 푸닉의 소설 <거미여인의 키스>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몰리나, 한 가지 명심해 두어야 할 게 있어. 사람의 일생은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지만, 모두 일시적인 것이야. 영원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어." 단순하고 흔해빠진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오후, 바람과 봄햇살이 침묵의 언어로 내게 들려주었던 것인지 나는 문득 <거미여인의 키스>에 나오는 그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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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내공 - 이 한 문장으로 나는 흔들리지 않는 법을 배웠다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북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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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얄팍한 위로가 때로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위로가 범람하는 시기에는 진심을 담은 위로마저 그 진정성을 의심 받기 쉬울 뿐만 아니라 위로의 효과마저 떨어질 수 있다. 말하자면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한마디의 위로가 일시적인 위안은 될 수 있을지언정 자포자기의 심정인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다시 한번 일어서야겠다는 의지를 심어주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슬프게도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고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기회는 자꾸만 줄어들고 있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이런저런 경험을 많이 해봐야 인생을 살아갈 내공과 지혜가 쌓이는 데 말이다. 더구나 현대는 정보화 사회여서 손가락으로 까딱하는 검색만으로도 땀 흘리며 도전하는 일이나 그 과정에서 생기는 실패를 줄이기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직접 부딪쳐서 얻는 성취의 기쁨을 놓치게 만든다. 과거에는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 자신이 크고 작은 시행착오들을 거쳐야만 했지만, 최근에는 검색을 통해 무슨 일이든 별다른 실패와 노력 없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p.139~p.140)

 

실패의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은 타인으로부터 듣는 위로와 격려의 말에 유난히 집착하곤 한다. 이 세상에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과도한 감정 과잉의 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럴수록 위로의 말에서 얻는 달콤하고 편안한 기분이 그(또는 그녀)를 취하게 만든다. 위로의 호수에 코를 박은 채 수면 위로 올라올 생각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위로에도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 존재하는 것일까. 처음에 들었던 위로의 말도 두 번 세번 반복하여 들으면 그 효과는 차츰 떨어지게 마련이다. 말하자면 물이 말라가는 위로의 호수에서 현실의 공기를 마셔야 할 순간이 도래하는 것이다. 좋든 싫든 그것은 피할 수 없다.

 

"요즘은 많은 현대인들이 스트레스나 패배감, 열등감과 같은 마음의 문제로 괴로워하는데, 그 원인은 결코 외적인 스트레스뿐만이 아니다. 마음속 자존감의 두께가 얇아져 작은 고난에도 쉽게 상처받기 때문이다." (p.12)

 

메이지 대학의 인기 교수이자 일본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사이토 다카시는 고난의 순간마다 자신을 구원해준 것은 수천 권의 책이나 타인에게서 듣는 달콤한 위로가 아니라 책에서 발견한 한 줄의 문장이었다고 자신의 책 <한 줄 내공>에 적고 있다. 그는 "백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혼을 울리는 한 문장'을 발견하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막막한 미래 앞에 방황해야 했던 젊은 시절, 남들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데 자신만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을 때, 그는 책 속에서 발견한 '한 줄의 문장'에 기댈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경험과 거장의 지혜가 더해져 삶에서 필요한 단단한 내공이 만들어진다고 했다.

 

총5부로 구성된 이 책에는 Part 1 불안을 이겨내는 말, Part 2 상처를 위로하는 말, Part 3 벽을 돌파하는 말, Part 4 삶을 긍정하는 말, Part 5 나답게 살기 위한 말이 실려 있다. 크고 작은 인생의 벽 앞에서 좌절할 때마다 책 속의 한 문장이 자신을 붙잡아주고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도록 했다고 작가는 말한다. 가족이나 주변의 가까운 사람에게서 듣는 위로의 말은 그 순간에는 더없이 좋은 효과를 발휘하지만 시간의 휘발성 앞에 끝내 굴복하고 만다. 그러나 거장의 지혜가 응축된 한 문장은 고난이 닥칠 때마다 반복해서 그 효과를 발휘한다. 어쩌면 횟수가 더해질수록 더욱더 큰 울림으로 진화하는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괴로운 날이 계속되겠지만 그럼에도 아침은 반드시 찾아온다'는 그녀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 까닭은 처절한 시련을 한 세기 동안 경험한 노인만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이기 때문은 아닐까? 오늘의 삶이 행복하지 않았더라도 살아 있는 한 우리에게 내일은 반드시 찾아온다. 그 사실을 깨닫는다면 어떠한 고난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겨날 것이다." (p.207)

 

입에 발린 위로나 격려의 말이 차고 넘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 시대를 사는 사람은 한마디 달콤한 위로의 말에 중독되지 않을 재간이 없다. 말하자면 우리는 위로 중독 사회를 살고 있는 셈이다. 알다시피 모든 중독은 함유량을 늘려가야 그 효과를 볼 수 있다. 위로의 말이라고 다르지 않다. 웬만한 말로는 가슴에 와닿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책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찾은 한 줄의 문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효과가 강해진다. 그것이 자신의 삶을 이끄는 한 줄기 빛이 될 때 삶은 그 자체로서 가치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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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기온이 20도 안팎을 오르내리면서 거리에는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계절은 시나브로 여름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산에도, 아파트 화단에도 우르르 핀 철쭉 군락이 마치 연분홍 물감을 뿌려 놓은 듯 화사하다.

 

엊그제 밤에는 KBS에서 열린 '중앙선관위 주최 19대 대선 후보 초청 1차 TV토론회'를 보았다. 크게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시간적 여유도 있고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기에 보았을 뿐이다. 대선 후보 토론이 이전에도 몇 번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그저 얘기로만 들었었다. 그런데 이게 의외로 재미있었다. 토론 내용은 둘째 치더라도 토론에 참가한 대선 후보들의 말과 행동, 표정과 몸짓이 여느 개그 프로를 뺨칠 정도로 시청자들의 웃음을 빵빵 터뜨리게 만들었다.

 

출연진은 다음과 같았다. 도덕성이란 도덕성은 모두 개에게나 줘버린 능구렁이, 징징거리며 떼를 쓰는 초등학생, 깐족거리며 공부만 잘 하는 우등생, 거칠 것 없는 여장부, 심한 말을 하는 게 못내 어색한 옆집 아저씨 그리고 그들의 난장을 말리지 못하는 사회자. 역시 압권은 '내가 갑철수입니까?', '내가 mb아바타입니까?' 하고 묻는 대목이었다. 게다가 '실망입니다', '얼굴을 보지 않고 말하겠습니다'에 이르러서는 웃음을 꾹꾹 눌러 참던 시청자들을 완전 무장해제시켰다.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구르기도 했다. 그동안 웃을 일이라고는 없었는데 얼마나 고맙던지...

 

덧붙여 그동안 우리나라의 보수당이 얼마나 쉽게 선거운동을 해 왔는지도 토론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유력한 야당 후보를 향해 '빨갱이', '친북 좌파', '김정은이 하수인' 등 근거도 없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면 국민들은 그것이 진실인 양 받아들이고 결과적으로 보수당의 후보는 큰 노력도 없이 손쉽게 승리하곤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인지 '돼지 흥분제'를 먹고 나온 듯한 보수당의 후보는 근거도 없는 말로 눙치며 토론을 이어갔다.

 

사실 우리나라의 헌법을 보면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국가 독립과 영토 보전의 의무,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 수호의 책무, 겸직 금지 의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노력 의무, 취임 선서문 상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진다.'고 되어 있다. 보수당이 대통령 직위에 있을 때 북한과의 강대강 대치 속에 대화 한 번 하지 않았으므로 평화적 통일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으니 대통령으로서는 직무유기를 범한 셈이 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뻔뻔스럽게 북한과의 통일 의무를 성실히 수행한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지 않은가. 그뿐인가. '돼지 흥분제' 자서전에 이어 '설거지는 여자가 하는 것'이라는 등 성차별적 언사도 거리낌없이 하지 않던가. 우리는 지금껏 함량미달의 후보를 검증도 없이 뽑아 왔던 건 아닌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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