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화의 오류는 있겠습니다만 어른들은 대개 부질없는 짓인 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많은 반면 아이들은 혼날 줄 뻔히 알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차이가 느껴지나요? 물론 어른이라고 혼날 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건 아닙니다. 직장 동료들과 늦은 시각까지 술을 먹는다거나 행인의 눈치를 보면서도 꿋꿋이 담배를 피우는 등 혼날 짓도 많이 하지요. 그러나 어른들은 아이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어떤 일이 너무나 하고 싶어서 몸이 들썩이거나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습관적으로 또는 타성에 젖어서 하는 게 대부분이지 싶습니다. 에너지의 차이일까요? 아이들의 경우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발견했을 때에는 눈빛부터 달라지는 듯합니다. 혼날 줄 뻔히 알면서도 전혀 두려운 표정이 아니지요. 목숨이라도 걸 태세라고 할까요. 아무튼 간절히 원했던 일을 할 때에는 혼나는 것쯤이야 하나도 두렵지 않다는 듯 눈빛에서는 결기가 느껴지곤 합니다. 오직 지금의 순간에만 집중할 뿐 코앞의 미래도 일체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뭄이 너무나 오래 지속되는 탓인지 하는 일마다 부질없다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이를테면 아침에 산을 올랐을 때 키가 작은 나무들의 잎이 다 말라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등산로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다는 게 도대체 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하고, 담배를 끊은 지 이제 만 이 년 반이 지났지만 이따금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얼마나 오래 살겠다고 이렇게 참아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가뭄도 가뭄이지만 때 이른 폭염마저 극성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자유한국당에서도 정말 부질없는 짓을 하고 있더군요. '자유한국당'의 다섯 글자로 오행시를 짓는 이벤트를 벌인 게 그것입니다. 담당자 또한 부질없는 짓인 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 일을 해야만 월급을 받을 수 있으니까 말이죠. 소위 '뻘짓'을 하는 대가가 월급이라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무튼.

 

부질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이벤트에 올라온 오행시를 옮겨봅니다. 가뭄에, 폭염에 웃을 일 없다 여겼는지 자유당에서는 자폭 이벤트를 열고 있습니다.

 

자 폭하네 ㅋㅋㅋ 지금 지지율

유 지하는 것도 벅찰 텐데

한 심하게 오행시 이벤트나 하다니

국 민 민생부터 챙겨라

당 첨자가 있을려나 모르겠다?

 

자 괴감이 드네요.

유 체이탈화법 똘아이 탄핵 대통령 돼지발정제 대통령후보로

한 나라를 말아먹으려고 했던

국 민을 개같이 아는

당 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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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이브닝, 펭귄
김학찬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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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이면 '펭귄'이었을까? 생긴 것과는 달리 까칠한 성격을 타고난 때문일까? 그래서 말도 잘 듣지 않고 제멋대로인 성격이 펭귄을 닮아서? 아니면 미끈하게 수영을 잘해서? 작가는 '산책하는 펭귄이 있는 동물원을 수소문해서 찾아갔'었노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고 했다. 꿈을 통하여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분명 '펭귄'인 동시에 '나'였다. 그러므로 '펭귄'의 변화는 곧 '나'의 변화였고, 변화의 기록은 아직 끝나지 삶의 이야기였다.

 

신체의 일부인 동시에 액세서리에 불과했던 '펭귄'이 아무런 기척도 없이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깨어난 건 내가 열세 살 때였다. 학교 운동장에서 국기가 내려가던 시간, '바이킹이 내려갈 때 허리 아래에서 느껴지는 좋고도 싫은 느낌'이 들어서 바지 앞섶을 열자 기립 자세의 펭귄이 "굿 이브닝" 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변신을 하는 <철인 28호>처럼 인사를 마친 펭귄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곧 익숙한 고추가 되었다. 당혹스러운 순간이었다. 짐작했겠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펭귄'은 주인공인 '나'의 성기를 일컫는다. 작가는 남자의 '2차성징'인 발기와 사정을 펭귄이 깨어나는 것으로 표현하면서 마치 '나'와 '펭귄'이 서로 다른 인격체인 양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화합하면서 성장해가는 과정을 유머와 위트를 섞어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미친 펭귄. 펭귄은 단 두 번의 인사만으로 보이스카우트를 해산시킬 뻔했고, 한 가정의 평화를 영구히 파괴할 뻔했으며, 아빠에게는 한 달 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 했고, 아빠는 이 핑계로 또 술 마시러 나갔고, 여자아이에게는 끔찍한 기억을 남겼다." (p.26)

 

펭귄이 깨어난 후 민달팽이 취급을 하는 누나와 한 방을 쓰고 있던 나는 한밤중에 몰래 나와 학교 운동장에서 펭귄과 악수를 하기도 하고, 야한 사진이 담긴 트럼프 카드를 모으기도 하고, 에로 비디오에 집착하기도 한다. 사내아이들은 대개 그렇지만 펭귄이 깨어나면 그 순간부터 펭귄의 생각에 지배받게 된다. 시도 때도 없이 깨어나는 펭귄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것을 명령하고, 모든 것을 펭귄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말하자면 펭귄은 자신을 대표하는 상징이자 정체성인 셈이다. 때로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주는 장난감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사내아이들은 펭귄의 크기를 갖고 경쟁하거나, 펭귄이 내뿜는 오줌발의 거리로 경쟁을 하기도 한다. 군대에서는 펭귄의 목에 양동이를 걸고 양동이에 조금씩 물을 채움으로써 누구의 펭귄이 더 많은 물을 들 수 있는지 서로 겨루어보자는 조모 상병도 있었다. 소설 속의 나도 다르지 않았다. '진짜 여자를 보고 싶다'는 펭귄의 생각에 따라 교회를 나가기도 하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형학원에 등록하기도 한다.

 

"교회를 다니는 청소년들이 줄어든다는 기사를 봤다. 남녀 공학이 사라지면 교회는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하지 않을까. 교회의 신자가 줄어드는 것은 사회적 물의 때문이 아니라 연애당의 기능을 대신할 곳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교회는 늘 일정하게 사회에 공헌을 하고, 사고도 공헌만큼 쳤다. 교회가 예전보다 더 나빠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것은 아니다. 천국, 인맥, 연애라는 교회의 3대 기능 중 연애의 역할이 예전보다 줄어든 탓이다." (p.65)

 

트럼프 카드를 모으고 야설을 읽던 나는 플로피 디스켓으로 진화하고, IMF 사태로 아빠가 명예퇴직을 하고, 전업주부였던 엄마가 동네 마트의 캐셔로 출근하고, 밤 늦게까지 공부만 하는 누나. 고등학생이 된 나는 인터넷 전용선이 깔린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야동이라는 신세계를 경험한다. 게임과 야동에 빠져 살던 나는 진로와 적성과는 상관없이 여자가 과반인 대학에 가까스로 합격을 하고, 여자친구를 사귈 기회만 호시탐탐 노려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2002년 월드컵이 열리고 친구의 코치를 받고 거리 응원에 나섰던 나는 여자와 함께 모텔에 입성하는 데 까지는 성공하지만 그때마다 펭귄은 깨어나지 않았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 자랐다. 선배들은 근본적으로 아날로그형 인간이었다. 후배들은 아날로그를 낯설어하는 디지털형 인간이었다. 나는 그 사이에 끼어 있는 덕분에 아날로그적 음란물과 디지털적 야동을 모두 접했다. 대신 선배들을 따라잡지 못했고 후배들에게는 곧바로 밀려버렸다. 힘을 쥔 기성세대는 아날로그를 강요했고 추격하는 쪽들은 디지털로 무장하고 있었다. 양쪽의 즐거움을 모두 맛본 세대에게 내려진 벌이었다." (p.194)

 

군대를 다녀오고, 생활비와 학자금을 벌기 위해 알바를 하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 펭귄은 모습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풀이 죽은 펭귄은 생각의 주도권을 내게 넘겨주었다.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펭귄도 나도 조금씩 지쳐갔다. 나는 이제 연민의 눈으로 펭귄을 바라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이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눈과 입술과 볼이 약간씩 처진 것 같은, 표정. 말을 걸어줘야 할 것 같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 표정. 보고 있으면 힘내라는 말만 간신히 건넬 수 있는 표정. 괜한 말을 했다고 후회하게 되는 표정이었다." (p.250)

 

한 사내의 성과 관련된 재미있는 경험담으로 시작된 이 소설은 마지막으로 갈수록 짠한 느낌에 젖어들게 된다. 펭귄의 지배를 받던 철부지 어린 아이가 어느덧 스스로 독립할 나이로 자랐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세상살이에 치여 펭귄의 존재마저 까맣게 잊고 지내게 되었나, 생각할 때, 소설 속의 나는 문득 현실의 나로 오버랩되는 것이다. 작가가 펭귄에게 보내는 위로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향한 작가의 응원가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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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이 길어지는 요즘, 산과 들에는 초록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열악한 날씨에도 계절의 변화는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 밤꽃 냄새가 진동했던 등산로에는 며칠 전부터 밤나무 수꽃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밤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한 나무에서 피는 암수한그루라는 걸 아시는지요. 강아지풀을 닮은 수꽃과 가시가 있는 도토리를 닮은 암꽃이 한 가지에서 피어나는 것이지요. 비릿한 밤꽃 냄새는 주로 수꽃에서 풍긴다고 합니다.

 

 

계절은 이렇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인간은 그렇지도 않은가 봅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벌써 한 달이 넘었건만 대통령도, 정부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으니 말입니다. 연일 막말 논란에, 행사 때마다 꾸벅꾸벅 잠을 쳐자면서도 반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 인사들이 지난 정부의 주축 세력이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어제는 또 자유당의 이철우 의원이 문 대통령의 탄핵을 암시하는 듯한 말을 함으로써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나 봅니다. 제주 퍼시픽호텔에서 열린 당대표 및 최고위원 후보자 합동토론회에서 했던 그의 말인 즉, "다음 대통령 선거는, 대통령 선거까지 지금 안 갈 것 같다. 오래 못 갈 것 같다. 반드시 찾아오도록 하겠다."면서 "지금 문재인 정부 하는 걸 보면 정말 기가 막힌다. 나라를 망하게 할 것 같다."고 말했다지요.

 

추경을 설명하는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자유당 의원들 중 상당수가 졸거나 잠을 자더군요. 야당 의원으로서 여당의 정책을 비판하고 바로잡겠다는 생각은 그들의 머릿속에는 아예 없었던 듯합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똑바로 듣고, 그 내용을 요약한 뒤 정황상 맞지 않는 바를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따지고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한가하게 잠이나 쳐자면서 무슨 비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어떤 나라의 국회의원들도 대통령의 국회 연설 현장에서 잠을 잤다는 뉴스는 들어본 적 없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부끄럽던지요. 초등학생만도 못한 것들을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라고 뽑아놓았으니 말입니다.

 

당대표에 도전하는 한 인사도 현 정부를 두고 '주사파 운동권 정권'이라고 했다지요. 그런 낡은 사고의 틀로 권력을 되찾겠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습니다.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그들은 통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대통령이 탄핵되기 이전에 그들의 당이 먼저 해체될 듯합니다. 밤나무 수꽃이 지듯 허무하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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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1 0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2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두막 (100쇄 기념 특별판 리커버)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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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어도 좋고, 조물주여도 좋은 어떤 것이 이를테면 우리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의 눈앞에 짜잔 하고 나타나서는 더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당신에게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 관계가 이만큼 실제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똑같지 않더라도 훨씬 더 실제적일 수 있어요.' 하고 속삭인다고 상상해보자. 얼마 후 현실에서 그 실체가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우리는 이따금 그 순간을 떠올리며 보이지 않는 그(또는 어떤 것)가 당신의 곁에서 늘 함께하고 있다고 믿게 되지 않을까. 윌리엄 폴 영의 소설 <오두막>은 바로 그 지점을 포착하고 있다.

 

작가의 여섯 자녀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로 쓰기 시작하여 입소문만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이 책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직접 읽었거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이 책이 한국에서 처음 출간되었던 2009년에 책을 구매하여 읽었던 기억이 있다. 양장본의 그 책은 지금 사서 단 한 번의 손길이 닿았던 그 상태 그대로 책꽂이 한켠에 얌전히 꽂혀 있다. 말하자면 그 책은 재독, 삼독을 원할 만큼 가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그가 입을 다물고 바닥에 앉자, 오두막의 공허함이 그의 영혼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가 던진 대답 없는 질문과 비난들이 마룻바닥에 가라앉았다가 황폐한 나락 속으로 천천히 빠져들어 갔다. '거대한 슬픔'이 그의 목을 조여오자 그는 오히려 그 고통이 반가웠다. 잘 알고 있는 고통, 친구처럼 다정한 고통이었다."    (p.125)

 

사람의 일이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다. 100쇄 특별판으로 나온 이 책을 우연히 다시 읽게 될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저 무덤덤했다. 흥미나 감동도 딱히 기억나는 게 없었다. 이 책이 출간되었던 당시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던 것도 단지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우리나라 개신교 신자들의 믿음이란 게 전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광적이지 않던가 말이다. 800만 명 내외의 개신교 신자들이 4명 중 한 명꼴로 책을 구매한다고 하더라도 20만 권이 팔릴 테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다는 건 결국 시간문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때만 하더라도 나는 이 책이 전적으로 종교서에 가깝다는 주관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매켄지, 당신은 진정한 사랑의 방법을 현명하게 잘 알고 있군요. 사랑이 성장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는 것이야말로 성장하는 것이고, 사랑은 그것을 포함하기 위해 확장할 따름이죠. 사랑은 단지 안다는 것의 거죽일 뿐이죠. 매켄지, 당신은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놀랍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사랑하고 있어요." (p.260)

 

책의 내용은 사실 특별할 게 없다. 가족 캠핑 도중 맥의 막내 딸 미시가 유괴된다. 경찰이 내린 결론은 그 나이 또래의 어린 여자 아이들만 노려 유괴하는 연쇄 유괴범들의 짓이라는 것이었지만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고 미시의 시체도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범행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 인근의 버려진 오두막에서 미시가 입었던 옷이 피가 묻은 채 발견되었고, 그런 정황으로 보아 미시가 연쇄 살인범들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될 뿐이었다. 맥은 자신이 미시를 돌보지 못해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자책과 함께 '거대한 슬픔'에 사로잡힌다. 그로부터 4년 뒤 맥은 오두막으로 찾아오라는 내용의 쪽지를 받게 되는데 발신인은 놀랍게도 하느님(책에서는 '파파', 맥의 아내 낸은 하느님을 늘 파파로 불렀다.)이었다.

 

누가 장난으로 보낸 쪽지였겠거니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거대한 슬픔'이 시작되었던 그곳을 한번쯤 확인해보고 싶었던 맥은 친구로부터 차와 권총을 빌려 오두막으로 향한다. 황량하기만 했던 그곳은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꽃들이 만발한 가운데 날씨마저 따뜻했고, 맥은 그곳에서 삼위일체의 성부, 성자, 성령을 서로 다른 인간의 모습으로 만나게 된다.하느님(파파)은 덩치가 큰 흑인 여성으로, 예수는 중동에서 온 노동자, 아시아 여성의 성령이 그들이다.맥은 또한 지혜의 여인 소피아를 만나기도 한다. 자신의 종교나 신앙에 대해 큰 믿음이 없었던 맥은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조금씩 변해간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남자들을 통해 욕구를 충족하고, 안전을 제공받고, 정체성을 보호받아왔던 것을 그만두고 나에게 돌아오기가 힘들거예요. 또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의 일을 통해 안정과 의미를 추구하던 것에서 전환해서 나에게 돌아오기가 힘들겠죠."    (p.244~p.245)

 

어른이나 종교인들을 위한 한 편의 동화처럼 읽히는 이 책은 맥과 다른 인물들과의 대화를 통해 신은 무엇이며, 종교는 또 무엇인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 우리가 늘 마음에 품고 있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는 듯하다.

 

"당신이 용서할 때마다 이 지구는 변해요. 당신이 팔을 뻗어서 누군가의 마음이나 삶을 어루만질 때마다 이 세계는 변해요. 눈에 드러나건 아니건 모든 친절과 봉사를 통해 내 목적은 이루어지고 어느 것도 예전 같지 않게 되죠."    (p.405)

 

인간의 최대 약점이자 장점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신이나 회의가 아닐까 싶다. 현실에서 직접 벌어진 일들도 자신이 보거나 겪지 않았으면 반신반의 믿지를 못하는 마당에 누구도 보지 못했던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오두막>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우리의 삶 전반에 대한 질문, 이를테면 세상의 부조리와 신의 역할, 삶의 자세 등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잊혀졌던 그 질문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해답을 찾는 것은 결국 각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질문들을 잊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오탈자) 그는 식탁에 앉아 습관적으로 기도를 하고 -->그는 식탁에 앉아 습관적으로 기도를 하려고(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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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한 몸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주제인데 어찌된 일인지 내게도 인생 상담을 청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럴 때 나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단호하게 거절을 하지 못한다. 우유부단한 성격 탓이다. 사람마다 성격도, 처한 환경도, 앞으로의 바람이나 희망도 제각각인데 누군가에게 나의 지난 경험을 말해준다고 해서 그 사람이 살아가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자초한 약속에 어쩔 수 없이 응할라치면 쭈볏쭈볏 주눅이 들곤 한다. 혹시 실수나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보다는 별 도움도 되지 않는 말을 중언부언 늘어놓는 바람에 상대방을 크게 실망시키지나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더구나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이렇게 해라, 말한다는 건 너무나 무책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끔 든다.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 까닭에.

 

어제도 그와 같은 약속이 한 건 있었다. 30대 초반의 그 친구는 내가 알지 못하는 동행 한 명을 대동하고 나보다 먼저 약속 장소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민망할 정도로 격식을 차리는 바람에 적잖이 당황했다. 음식을 주문하여 늦은 저녁을 먹는 동안 우리는 다들 말이 없었다. 미리 따라 놓은 소주를 한 잔 가볍게 들이켠 후 발그레한 얼굴로 그 친구가 내게 털어놓은 말은 여자친구에 대한 문제였다. 사내 연애를 한다는 건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지만 본인 입을 통하여 듣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친구 왈 연애를 시작한 지 반년이 넘었는데 도무지 진전이 없어 속이 탄다는 거였다. 데이트를 할 때는 즐겁고 유쾌하게 시간을 보내지만 헤어지고 나면 뭔가 허전하고 괜스레 시간만 허비한 게 아닌가 하는 후회도 이따금 든다는 게 그 친구 말의 요지였다.

 

예의 바르고 밝은 성격의 그는 누가 보더라도 일등 신랑감이었다. 그런 까닭에 연애 경험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랬던 그도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상대를 만나고 보니 좀처럼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허튼 농담이나 방송가 루머, 연예인 이야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소득 없이 헤어지는 일이 일상처럼 반복되다 보니 그도, 그녀도 조금씩 지쳐가는 느낌이 든다는 거였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우리의 삶도 기쁘고 유쾌한 일로만 채워진다면 삶의 의미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단조로운 일상에 금세 싫증이 날 테고 말이다.

 

이따금 자신의 고민이나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가족사 등 상대방도 긴장하며 들을 수밖에 없는 진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관계는 늘 겉돌게 마련이다. 시쳇말로 남사친, 여사친의 관계라고나 할까? 만나면 즐겁고 헤어져 돌아올 때는 뭔가 허전한... 시험을 앞둔 학생이 신나게 게임을 하고 나서 느끼는 후회의 감정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농담이나 가벼운 대화는 관계의 시작에서 더없이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관계를 깊어지게 하지는 않는다. 서로의 관계가 깊어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는 말도 날씨의 변화처럼 달라져야 하는 게 당연할 터 그 친구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말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겼다.

 

어제 뉴스에 보도되었던 자유당 서울시당위원장의 막말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공식 석상에서 그런 막말을 내뱉는다는 건 자신과 당의 체신만 깎아내릴 뿐이다. 대통령을 향해 '깡패 같은 놈'이라고 하면서 '이런 놈을 상대해서 점잖게 나가다가는 나라 꼴이 안 된다'고 했다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그렇게 막말을 일삼는 사람은 국민과 대통령이 점잖게 대해서는 안 된다. 본때를 보여서 그와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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