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시작하는 이맘때면 몸도 마음도 으레 바쁘다. 딱히 할 일이 많아서 시간에 쫓긴다기보다는 뭔가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새해라고 다들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한데 나만 혼자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지나친 우려가 그렇게 만드는 듯도 싶다. 이런 까닭에 잠을 충분히 잔 듯한 날도 여전히 피곤하고 온몸이 녹작지근한 밤에도 쉽사리 잠들지 못한다.

 

하루 종일 눈발이 날렸다. 조금 그치는가 싶다가도 내다보면 어느새 눈발이 흩날리고 그러다가 반짝 해가 나기도 했다. 남과 북의 협상 대표단이 2년만에 얼굴을 마주한 오늘, 지난 정부의 실정으로 어수선했던 나라가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는 느낌이다. 일본과의 어처구니없는 위안부 협상도, UAE와의 외교문제도 이제야 서서히 제자리를 찾는 것이다. 이처럼 산적했던 문제들이 조금씩 풀려갈 때마다 선거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지도자 하나 잘못 뽑는다고 나라가 망하기야 하겠어? 하는 생각이 얼마나 안일했던가 반성하는 마음이 절로 드는 것이다.

 

뉴욕에 사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체감온도 영하 70도라는데 어떻게 지내고 잇는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집안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갇혀 지내는 신세라고 했다. 얼마나 춥고 바람이 거센지 나갈 수도 없다고 했다. 사람이 저지른 잘못을 고스란히 되돌려 받는 듯한 느낌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40도가 넘는 폭염으로 동식물이 죽어나가고, 사하라 사막에는 폭설이 내리고... 나만 편하면 된다는 이기심이 지구 환경을 이토록 나쁘게 만들지 않았을까.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되돌아볼 시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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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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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온통 고통이거나 악몽으로 보일지라도 그 자리에서 망연히 붙박인 듯 서 있을 일은 아니다. 그 사이사이의 아주 작은 기쁨이나 희망을 찾아 어렵사리 발을 딛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일이다. 그러다 보면 고통의 색깔은 점점 옅어지거나 완전히 잊혀지게 마련이다. 적어도 삶의 빛깔이 휘황찬란한 무지개빛은 아닐지라도 공포의 신음은 조금쯤 덜 수 있지 않을까. 오르한 파묵의 소설 <검은 꽃>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인생만큼 경이로운 것은 없다. 유일한 위안인 글쓰기를 제외하고는." 삶의 위안이 되는 글쓰기가 없다면 고통으로부터 잠시 피할 수 있는 도피처나 은신처를 잃는 것과 같다.

 

강원도에서 책을 읽고 번역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윤미나. 다른 사람의 글을 번역한다는 건 또 다른 창작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쓰고 그것으로부터 작은 위안을 얻는 것과 번역은 사뭇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독서여행기 <굴라쉬 브런치>는 솔직하다 못해 직설적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작가의 여정은 체코의 프라하와 베네쇼프,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와 자그레브, 슬로베니아의 류블라냐와 블레드로 이어진다.

 

"여행이란 게 원래 시시하다. 성당을 하나 더 보고, 바로크니 고딕이니 꽥꽥거리는 것이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그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아는 만큼 더 보인다는 것은 명징한 진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그 순간을 살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무지의 소치로 눈부신 건축과 역사를 상한 우유처럼 미련 없이 포기해야 했지만,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오직 시간을 앞으로 밀어내기 위해 걷고 또 걸었던 그 시간도 좋았다. 어차피 여행은 각진 다면체 세상을 내 맘에 맞게 이리저리 둥글리는 작업이 아닐까." (p.86)

 

애초에 나는 무엇이거나 무엇이기를 바라는 존재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시간의 추이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나의 모습과 그 변화를 매순간 확인하고 싶은 나는 무엇이었다가 또 다른 무엇이 되고 싶어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라는 걸 일상에서 벗어날 때마다 수시로 생각하는 것이다. 작가도 그랬던 모양이다. 여행은 몸이 떠나는 게 아니라 나로부터 마음이 벗어나는 것임을 새삼스레 느낀다. 여행지의 고독은 익숙했던 내 몸으로부터 멀어지는 의식과도 같다. 여행의 침묵 속에서 작가도 어쩌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침묵에도 무늬가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고독하거나 지루하거나, 두려움에 짓눌려 있거나 거짓말을 꾸며내는 중이거나.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침묵한다. 지금 이 순간의 침묵은 아무 무늬도 없는 순전한 것이다. 텅 빈 지구에 평화가 수북이 쌓여 있다." (p.109)

 

여행의 좋은 점은 같은 일상을 살아도 그 일상에 쉽게 중독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하루하루의 일상이 마치 개성이 뚜렷한 원시림처럼 개별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반대로 실생활에서의 일상은 아무리 개성이 뚜렷한 일상으로 하루를 채워본들 그날이 그날 같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작가 역시 프라하의 카를교를 오가고 두브로브니크의 스트라툰 거리를 목적도 없이 걷고,슬로베니아의 류블라냐와 블레드를 슬슬 어루만지면서도 각각의 날들은 더없이 특별했던 날들로 기록한다. 무늬도 없을 듯한 이런 흔한 일상이 여행지에서는 기억의 큰 파도를 넘어 뚜렷한 흔적을 남기곤 한다.

 

"평소엔 여자라는 신분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많은 경우 그것은 김칫국물이 흐르는 도시락처럼 난감한 현실이다. 늘 몸가짐을 조심해야 하고 욕망을 사려야 하고 본심을 감추어야 한다. 대충 여자 흉내라도 내고 다니려면 싸지고 다녀야 할 짐이 가방 하나 가득이다." (p.139)

 

작가는 프라하를 거닐며 영화 <타인의 삶>, 보후밀 흐라발의 소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남아 있는 나날>을 떠올리는가 하면 두브로브니크에서는 존 레넌의 노래 <노르웨이의 숲>, 토마스 만의 소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조지프 헬러의 소설 <캐치-22>,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생각한다. 슬로베니아의 블레드에서는 슬라보예 지젝의 <이라크: 빌려온 항아리>와 토니 마이어스의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영화 <남아 있는 나날>, 가리타니 고진의 <세계 공와국으로>를 말한다. 각각의 장소에서 만나는 책이나 영화만 보더라도 그 지역의 분위기를 얼추 짐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블레드에서 작가는 어쩌면 여행자의 고독과 우울을 심하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나 고백하는 자들이 어리석고 무책임하다고 생각해왔지만, 이번만큼은 지젝의 말을 인용하여 슬쩍 자기모순에서 빠져나가야겠다. 고백하지 말라. 그것 말고는 여행의 매력을 설명할 길이 도저히 없을 때를 제외하고는." (p.242)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서른 시간도 더 지난 지금, 세상은 2018년이라는 시간에 조금 더 익숙해져가고, 2017년의 기억이 차츰 빛을 바래고, 새로 태어난 듯한 사람들이 무작정 희망을 얘기하는 동안 나는 어느 어두운 골방에 누워 삶의 고단함을 견디고 있는 누군가의 신음을 떠올렸다. 문학은, 때로는 음악이나 영화는 자신의 부드러운 입술로 까슬까슬한 삶의 감촉을 느껴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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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반응한다. 뭔가 꽉 막힌 듯 답답하고 만사가 귀찮아지는 것이다. 미리 정해진 선약도 그 장소가 집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경우에는 그쪽에서 여기로 와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쪽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오늘을 제외하면 2017년도 이제 만 하루가 남았다. 늘 그렇지만 올해도 역시 정신없는 한해였다. 살아간다기보다 살아지는 채로 세월에 끌려가고 있는 듯한 느낌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한번뿐인 삶인데 이렇게 무책임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서 이따금 나는 도움이 될 만한 책도 뒤적여보고, 성직에 계신 스님이나 신부님도 무시로 찾아 도움을 구해보지만 그것도 그때만 반짝 머리에 들어올 뿐 정작 필요한 일상의 변화를 유도하지는 못한다. 내 삶의 여유분이 아직 많이 남아 있겠지, 저으기 안심이 되기 때문인데 그것도 역시 내 마음에 두텁게 자리 잡은 게으름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나마 어느 한 순간을 기점으로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 그런 마디가 존재한다는 건 참으로 다행이지 뭔가. 나처럼 게으른 인간에게도 반성하고 새로운 다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니 말이다. 언젠가 읽었던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속이 빈 대나무가 높이 자랄 수 있는 것은 마디가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돌이켜보면서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열여섯 살의 이른 나이부터 자동차 정비업체에서 일을 했던 혼다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가 한 말이다.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은 어제 방학을 했다. 중간고사 성적은 평균 98점, 기말고사 성적은 평균 99점이란다. 남들이 들으면 놀라운 성적이라며 부러워하겠지만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들이 시험 문제를 너무 쉽게 출제한다는 푸념이다. 숫제 공부를 하지 않거나 꾸지람을 면할 정도로 적당히 하고도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으니 공부를 할 리가 없지 않겠느냐는 게 아내의 주장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축하할 일이 있었다. 문학동네출판그룹에서 주최하는 연말 결산 리뷰대회에서 동상을 받았던 것.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얼떨결에 참가한 글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기쁨은 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생각해 보면 삶은 이러한 우연의 연속이다. 2018년의 우연이 자못 궁금해진다. 아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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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월급쟁이 부자들 - 투자의 고수들이 말해 주지 않는 큰 부의 법칙
성선화 지음 / 다산북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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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은 크게 상업은행(CB)과 투자은행(IB)으로 구분된다. 상업은행은 화폐를 저장하고 여수신, 지급결제 기능을 갖는다.일반인의 여유자금을 예금으로 받아 이를 자원으로 자영업자 또는 기업에게 신용(대출)을 제공하고 수익을 얻는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은행은 엄밀히 말하면 상업은행인 셈이다. 반면에 투자은행은 유가증권(주식, 채권)의 발행, 인수 및 매매업에서부터 구조화증권 발행/유통, 인수합병 등 기업구조조정 업무, 프로젝트 파이낸싱, 금융자문까지 광범위하다. 쉽게 말해 투자은행은 우리 주변의 증권회사, 자산운용사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하나의 기업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업무를 겸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지주회사 체제 아래 증권사,은행, 보험사를 자회사로 두는 형태의 업무 다각화는 가능하다.

 

일반인이 투자은행의 업무와 그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속사정을 속속들이 이해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미국과는 달리 우리는 은행 하면 으레 상업은행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자본시장통합법'의 제정으로 두 은행 간의 장벽이 점차 무너지고는 있지만 말이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은 점차 투자은행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이데일리 금융부 기자인 성선화의 <100억 월급쟁이 기자들>은 투자은행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를 돕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1부 100억 월급쟁이 부자의 DNA, 2부 100억 월급쟁이 부자들은 누구, 3부 일상생활 속 대체투자로 구성된 이 책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불기 시작한 기업의 구조조정과 인수 합병(M&A)에 대한 관심과 2004년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간투법) 개정을 통해 기업인수 목적의 사모펀드인 투자전문회사(PE, Private Equity) 제도가 도입된 이후의 활발해진 사모펀드의 활약과 성장을 아우르고 있다.

 

"지금까지 작가로서 재테크라는 키워드로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이번만큼 간절한 적은 없었다. 그동안 부동산과 금융을 넘나들며 '평범한 사람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은 공허했다. 아마도 심리적 부조화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회적 공익을 추구하는 기자라는 본분과 개인의 사적 이익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재테크라는 영역의 간극에서 오는 불편함이다. 하지만 이 시장은 달랐다. 불로소득이 아닌 근로소득으로 당당히 돈을 벌고, 궁극적으로 그 결과가 국가 전체의 부를 창출하는 데 기여했다. 대체투자 시장은 개인과 국익이 만나는 접점에 있는 것이다." (p.14)

 

사모펀드에 의한 대체투자는 사실 개인 변호사가 재벌 오너의 형사사건을 수임하는 것과 같다. 변호사의 수임료도 수임료이지만 무죄 석방이 되었을 때의 성공보수는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액수의 돈이 오가는 것이다. 사모펀드의 펀드매니저는 기업의 매각이나 통합을 중개하기도 하고, 해외 부동산을 매입하기도 한다. 때에 따라서는 성장 잠재력이 있는 게임 회사에 투자하여 새로운 온라인 게임을 시장에 론칭함으로써 투자 원금 대비 수십 배의 수익을 거두기도 한다. 이 책은 MBK파트너스, 스틱인베스트먼즈 등 국내의 대표적인 사모펀드와 그 주역들의 투자 이야기를 실감나게 기록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외환은행을 인수하였던 론스타가 배당수익 및 양도소득을 포함하여 4.7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고 철수하자 국내에서는 론스타의 먹튀 논란과 함께 외환은행 헐값 매각 논란 등 사모펀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비등해졌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대체투자 시장에 대한 우리나라 금융권의 정보력과 투자 스킬의 부족을 반성하게 하는 측면도 존재했었다. 그후 20여 년 동안 우리나라의 대체투자 시장은 꾸준히 성장했다. 그러나 여전히 갈길은 멀다. 대체투자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미국과 영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이제 막 첫발을 뗀 것에 불과하다. 저자는 대체투자 시장을 파헤치기 위해 사모펀드 대표부터 부동산 자산운용사 대표, 투자기관의 CIO(최고투자책임자)까지 1년간 총 100여 명을 만나보았다고 한다.

 

'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말이 있듯이 부자가 되기를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체투자 시장은 분명 매력적인 투자처이다. 그러나 그만큼의 위험도 존재한다. 꾸준히 공부하고 강인한 인내심과 신뢰, 공감하는 능력, 간절함과 끝까지 버티는 근성 등으로 타인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을 수 있는 젊은이라면 한번쯤 도전해볼 만하다. 그것은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구며 과거 '튤립파동'을 떠올릴 만큼 투기 광풍을 일으키고 있는 가상화폐 시장과는 다르다.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는 그야말로 도박에 가깝다. 실체도 없는 대상에 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전 재산을 들고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모습은 마치 세계의 종말을 보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그 누구도 확신하지 못했다. 블루홀의 신작 '배틀그라운드'의 성공은 개발자인 김창환 PD도, 게임의 개발을 최종 승인한 장병규 블루홀 의장도, 심지어 배틀그라운드에 50억 원을 초기 투자한 박기호 LB인베스트먼트 대표까지도." (p.248)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한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지는 않는다. 분명한 것은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는 아주 우연히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기회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 또한 극소수에 불과하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 모두가 지금 당장 대체시장에 뛰어 들어 부자가 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지는 않다.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대체투자 시장에 대해 가벼운 마음으로 알아보고,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더 깊이 공부하여 언젠가 자신에게 우연처럼 다가온 기회를 결코 놓치지 말라는 저자의 간절한 당부로 읽힌다. 2017년의 마지막 주, 새해에 대한 희망을 담아 나는 <100억 월급쟁이 부자들>을 읽었다. 새해에는 모두의 꿈이 이뤄지기를 빌어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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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각 산타 오민석 판사를 보는 시각은 대체로 부정적인 듯하다. 물론 구치소에 있는 박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일부 박빠들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사람으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데 다시 한 번 곰곰 생각해 보면 기각 산타 역시 한 집안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부모이며 든든한 남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가 결혼을 했는지, 슬하에 자식은 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말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그를 두둔하고자 함은 아니다. 불혹을 기점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기 때문이다. 본인의 가치관이 자식들 보기에 떳떳한 것인지, 본인이 속한 사회를 위해 혹은 우리의 미래 세대를 위해 본인의 행위가 적합한 것인지 한번쯤 따져 묻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정상적인 사고의 사람임을 전제로 할 때.

 

기각 산타 역시 사람인지라 개인의 욕심이 있고, 과도한 욕심으로 인해 그릇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그도 또한 신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도 역시 이따금 실수를 하고, 후회를 하며, 시시때때로 새로운 다짐을 하는 평범한 인간이기에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의 판단은 실수라고 하기에는 반복의 횟수가 과도한 면이 없지 않아서 사회적인 비난이나 지탄을 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첫 번째 영장 청구 기각을 필두로 댓글 부대에 동참한 양지회 관계자 2명의 영장 기각,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 영장 기각, 불법사찰 혐의가 있는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 영장 기각 등 그는 그야말로 기각 요정, 기각 산타로 불릴 만했던 것이다.

 

이번에도 그는 국정원으로부터 매달 500만 원씩 약 5천 만 원의 특활비를 상납받은 조윤선 전 장관의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수수된 금품의 뇌물성 등 범죄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고, 수사 및 별건 재판의 진행 경과 등에 비춰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불구속 재판이 맞지만 사회 정의를 무시한 채 인권만 강조하는 건 문제가 있는 듯싶다. 판사((Justice)는 정의(Justice)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판사가 정의를 등한시한다면 그는 그 직에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성탄도 지난 시기에 기각 산타의 출현은 좀 당황스럽다. 성범죄를 전담하는 판사가 지하철 몰카를 찍지 않나, 영장을 전담하는 판사가 피의자를 위해 번번이 영장을 기각하지 않나, 세상 참 요지경이다. 캐롤이라도 불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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