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숍 보이즈
다케요시 유스케 지음, 최윤영 옮김 / 놀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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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성장기에서 길냥이 '키라'를 빼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부터 아들은 아파트 주변을 떠도는 길냥이 무리들과 가까워졌고 그중에서도 흰색 바탕에 갈색 무늬가 있는 '키라'는 아들과 눈만 마주쳐도 배를 내보이며 아양을 떨곤 했다. 아내의 코치로 이제 막 줄넘기를 배우기 시작하던 때에도 '키라'는 주변을 얼쩡거리며 채 한 번도 넘지 못하고 번번이 다리에 줄이 걸리는 아들을 보면서 그 모습이 마냥 귀엽기만 한지 '야옹 야옹' 열심히 응원을 했었다. '키라'의 응원 덕분인지 아들의 줄넘기 횟수는 하루가 다르게 늘었고 봄부터 가을까지 놀이터 한편에서 줄넘기를 하는 아들을 대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겨울이면 아내와 아들은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키라' 역시 지하주차장으로 따라왔다. 햇볕이 잘 드는 창턱에 자리를 잡고 앉아 줄넘기를 하는 아들을 지켜보며 이따금 스르르 눈이 감기곤 했다. 아들의 성장과 함께 '키라'의 행동도 부쩍 느려지더니 언젠가부터 '키라'는 우리들 시야에서 영영 사라졌지만 나는 지금도 해를 등지고 지하주차장 창턱에 앉아 까무룩 잠이 들던 '키라'의 모습을 떠올려보곤 한다. 그 곁에서 우쭐한 모습으로 줄넘기를 하던 어린 아들과 함께.

 

다케요시 유스케의 <펫숍 보이즈>를 읽는 내내 한동안 잊고 지냈던 길냥이 '키라'가 생각났었다.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었던 아들과 털이 날리는 걸 질색하던 아내 때문에 '키라'를 집에 들일 수는 없었지만 아들과의 끈끈했던 우정만큼은 아내나 나나 늘 고맙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미조 지역에 위치한 유어셀프 펫숍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평범한 사람들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는 책을 읽는 독자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한 번쯤 있었음직한 동물과의 교감을 쉽게 떠올리지 않을까.

 

"그럼에도 인간은 동물이라는 가족을 원합니다. 함께 지내게 된 반려동물을 최대한 행복하게 해주려 애씁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동물이 정말로 행복한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함께 생활하는 펫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열심히 노력합니다. 저는 이것이 인간의 습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먹이사슬을 뛰어넘어서까지 다른 동물을 품에 안으려고 하는 습성을 지닌, 동물계에서 가장 외로운 생물입니다." (p.394)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을 읽으며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어선 안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작가는 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해 "소설을 쓸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이야기 속에서 희망을 찾아내거나 대사 하나로 위로를 주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펫숍 보이즈>는 추리소설이라기보다 감동 리얼스토리로 읽힌다. 마치 우리 주변의 이야기나 미담을 책 속에 담은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 펫숍이 그저 동물이 그저 하나의 물건처럼 거래될 듯한 삭막하고 무미건조한 장소가 아니라 인간과 동물이 한 가족처럼 융화되는 교감의 장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나쓰카와라는 사람과 마키타 씨의 아련한 사랑을 떠올렸다. 모든 감정이 생존 본능에 의한 거라 단정한다면 마키타 씨는 옛 추억을 그렇게 소중히 여기지 않았겠지. 더구나 인류가 진보한 것도 사랑이라는 복잡한 감정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상대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을 생각하고 그 충돌을 제대로 고민하며 소통을 중요하게 여겨온 것이 인류의 발전에 도움을 미치지 않았을까." (p.241)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취준생 미나미 가쿠토와 동갑내기 아르바이트생 구리스 고타를 비롯하여 그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가시와기 씨 및 마키타 씨, 아카이 씨, 미코 씨 등과 더불어 직원은 아니지만 펫숍을 자주 찾는 구도 씨, 꼬마 아가씨 유리, 아야메 선생님, 호프만 씨, 브라운 씨 등 다양하다. 펫숍의 직원과 손님, 펫숍의 동물들이 펼치는 여섯 편의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반려동물 한 마리쯤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든다. 동물에 관한 지식은 부족하지만 누구보다도 동물을 사랑하는 주인공 가쿠토, 아르바이트를 하기 전 수의학도였던 까닭에 동물에 관한 지식이 풍부한 고타, 누구보다 성실한 가시와기 씨는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그들 앞에 닥치는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해간다.

 

펫 하면 무조건 개와 고양이만 생각하는 나와는 달리 책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아메리칸 숏헤어, 사모예드, 잉꼬의 일종인 유리매커우, 도롱뇽의 일종인 일본얼룩배영원 등 습성도 생김새도 낯선 동물들이지만 이야기는 결국 우리네 형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취업, 사랑, 가족관계 등 인류 보편의 문제로 귀결된다. 다만 인간과 동물이 이야기 속에 녹아 있을 뿐.

 

"고타는 예전의 자신을 오메가 개체라고 불렀다. 분명히 말하지만 왕따를 시키는 인간은 최악이라 여겨왔다. 오메가 개체를 자주 예로 들며 "동물 세계조차도 왕따가 있으니까"라고 말하는 인간이 있는데, 웃기지 말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것이 본능이라고 해도 우리는 동물 중에서 본능을 다스릴 줄 아는 유일한 생물이다." (P.306)

 

길냥이 '키라'를 쫓아다니던 아들은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아파트 화단을 어슬렁거리며 걷다가도 아들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반갑게 인사하던 길냥이 '키라'. 아들이 가슴 따뜻하고 정 많은 사람으로 성장한 데에는 '키라'와 나누었던 소중한 추억이 한몫했는지도 모른다. 봄볕 완연한 3월의 휴일 오후, 양지바른 곳에서 느긋이 털을 고르던 길냥이 '키라'가 문득 떠오른다. '고마웠어, 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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꾹꾹 다져진 듯한 농밀한 침묵이 새벽 달빛과 함께 등산로를 밝히더이다. 아, 오늘은 정월 하고도 대보름. 그 휘황한 달빛을 받으며 나는 여느 날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산을 올랐습니다. 한 달 전보다 한 뼘쯤 길어진 낮이 게으른 자의 뒷목을 부여잡는 듯하고 부지런한 청설모의 힘찬 몸짓에 새삼 부끄러워지는 아침이었습니다. 금세라도 초록물이 들 듯한 춘삼월 초봄, 계절처럼 쑥쑥 희망이 자랐으면...

 

성큼성큼 길을 걷다가도 시나브로 길을 잃기도 하고, 혼곤한 잠에 빠져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도 어느새 저 멀리서 비치는 한줄기 빛을 발견하는 게 우리네 삶인지도 모릅니다. 유난히 매서웠던 지난겨울이 있었기에 오는 봄을 더욱 반갑게 맞을 수 있음을 나는 압니다. 하염없는 시간들이 모래 위 발자국처럼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아침이면 어젯밤 시체처럼 풀썩 쓰러져 잠들었던 순간이 부끄러워지곤 합니다. 내 삶의 뒷좌석에 앉아 마치 동승자처럼 무심히 살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요.

 

숲이 던져주는 삶의 조언들에 대해 이따금 생각하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의 등산로에서 쓰러진 고사목 한 그루를 보았습니다. 엊그제 내린 비가 죽은 나무를 기어코 땅으로 쓰러트렸을 테지요. 쓰러진 나무는 결국 자신의 몸으로 주변 나무들의 성장을 돕겠지요. 우리네 삶도 그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인간의 죽음이 나와 무관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성장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걸 가슴 깊이 새기고 싶습니다. 계절이 가고 또 다른 계절이 올 때면 나무가 자라듯 나의 영혼도 조금씩 자라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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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의 공부 - 완벽한 몰입을 통해 학문과 인생의 기쁨 발견하기
오카 기요시 지음, 정회성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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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뜩이나 적은 일수의 달인데 중간에 설 연휴마저 끼이다 보니 한 달이 어찌 흘렀나 싶은 게 도통 정신이 없다. 틈 나는 대로 읽으려고 책상 한편에 쌓아 놓은 책들은 좀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되레 권수를 더하여 그 높이만 키우고 있다. 한숨 돌릴만한 짬이 나지 않는 까닭에 어떤 내용의 책인지 대충이나마 훑어볼 여유도 갖지 못했다. 이러다가는 입안에 가시가 돋는 형국을 지나 숫제 철조망이 쳐지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일까 입맛도 없고 매사가 그저 시큰둥할 뿐 활력이 생기지 않는다. 봄이 오려나 보다.

 

"몰입은 그런 식으로 찾아오는 것 같다. 약간의 긴장감을 유지한 채 난생처음 가는 길을 걷듯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을 계속 진행하기. 거기에 더해 졸음만 쏟아지는 일종의 방심 상태에 놓여 있기. 이 두 가지가 '발견'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p.23)

 

2월도 끝을 향해 가는 오늘, 하루의 노력으로 한 달의 무위도식을 만회할 수는 없겠지만 좋아하는 소설은 왠지 놀고먹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고민 끝에 선택한 책이 오카 기요시의 <수학자의 공부>였다. 1901년에 태어난 오카 기요시는 제국주의 일본을 대표하는 수학자였다. 다변수 함수론 분야의 최대 난제였던 '3대 문제'를 해결해 세계적 명성을 얻기도 했던 저자는 이 책에서 학문과 예술, 인생과 공부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적어 놓았다. 그러나 저자가 정립했던 '다변수 복소함수론'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설명이 있었다 해도 그러려니 하고 못 본 척 건너뛰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1963년 일본에서 처음 출간된 이후 반세기가 넘는 긴 세월 동안 세대를 관통하며 대를 이어 읽히고 있는 까닭에 나는 이 책의 내용이 궁금했던 게 사실이지만 저자의 업적보다는 천재 수학자의 일상적 태도와 생각을 엿보고 싶었다. 학문에 있어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는 저자는 자신의 학문적 성과의 근원으로 '정서를 귀하게 여긴 삶'을 내세웠다. 조화와 균형을 배우기에 가장 좋은 대상은 '자연'이며 '수학적 자연'을 일궈내는 열쇠가 '정서'라는 것이다.

 

"수학교육의 목적은 계산이 아니다.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억지로라도 열어 신선한 바람을 쐬게 해주어야 한다. 수학교육은 대자연의 직관이 인간의 마음 중심에 닿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우리의 통념대로, 계산을 잘하게 해주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한 인간을 계산기로 만드는 일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p.77)

 

저자는 스스로를 '자연순응자'라고 칭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자신의 방식이 '자연을 따르는 삶'이라는 것이다. 중학교 입시에 낙방한 전력이 있던 저자는 대학에서도 물리학에서 수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수학에 있어 천부적 재능을 타고 태어난 것도, 자신의 재능을 남보다 일찍 발견한 것도 아니었던 저자가 '층 이론'의 수학적 토대를 이룬 위대한 수학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자연과 정서를 중시하고 수학의 영역에 정서를 도입하려 했던 했던 획기적 발상, 즉 '정서적 수학'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의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자연과 학문을 매개함으로써 인류의 지적 성장을 이끌고자 했던 그의 열망이 한몫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무엇에 쓰려고 그렇게 열심히 수학을 연구하느냐고. 봄 들녘의 제비꽃은 제비꽃으로 피어 있으면 그뿐이지 않은가. 피어 있는 것의 소용은 제비꽃이 알 바 아니다. 피어 있느냐 피어 있지 않으냐, 중요한 문제는 그것뿐. 나도 마찬가지다. 나로 말하자면, 단지 수학을 배우는 기쁨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 뿐이다. 수학을 배우는 기쁨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 뿐이다. 수학을 배우는 기쁨을 먹고 마시며 사는 존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p.19)

 

봄으로 향하는 2월의 마지막 날, 온 국민의 바람처럼 단비가 내렸다. '인간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정서다.'라고 했던 저자의 말은 학문하는 자의 향기로운 삶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자가 감언이설의 붓끝으로 세상을 현혹시켰던 대한민국의 어느 노시인에게서 나는 썩은 내가 아닌, 학문 이외의 다른 어떤 것에도 한눈 팔지 않았던 한 수학자의 단순하고 청초한 삶에서 나는 은은한 향기를 나는 이 봄에 맡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봄이 오고 있다. 대한민국 전역에 내리는 이 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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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게 꽤나 오랜만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뭔가 낯설고 어색한 느낌이 든다. 순전히 기분 탓이겠지만 말이다. 명절도 명절이지만 연휴를 전후해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적한 까닭에 나이가 들수록 명절은 그저 부담만 될 뿐 홀가분하고 설레던 분위기는 점차 사라지는 듯하다. 명절 연휴도 다 지났고 2월도 이제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는 요즘, 볼에 와닿는 바람은 제법 부드러워졌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직도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지만 계졀은 바야흐로 봄 쪽으로 살짝 기울어지지 않았을까.

 

평창 동계 올림픽도 얼추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시작과는 달리 제법 안정을 찾았구나 싶으니 벌써 끝이라고 하니 살짝 서운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여자 컬링팀과 걱정했던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선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쇼트트랙 선수들, 이상화와 고다이라의 가슴 뭉클했던 우정 등 볼거리도 많았다. 물론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경기에서 선수들과 빙상연맹이 보여준 고질적인 파벌주의와 헬멧에 그려진 노란리본을 문제삼았던 어느 무식한 기자의 흠집내기로 인해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지만 그 정도면 무난한 올림픽이 아니었나 싶다. 아직 다 끝난 건 아니지만.

 

올림픽도 올림픽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이슈는 미투 운동이 아닐까 싶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있는 고백으로 촉발된 미투 운동은 문학계와 연극계를 넘어 관행처럼 이어져 온 남녀차별과 부족한 성의식의 차원으로 번질 기세다. 당연히 치뤄야 했던 혼란이고 한번쯤 곪아 터져야 했던 종양이 아닐까. 자신의 치욕적인 경험을 고백할 수 있는 용기는 처음 한 사람에게만 필요했을 뿐 다음, 그 다음 사람에게는 약간의 결단만으로 족했을 터, 부당했던 관행에 대한 고발은 들불처럼 번지지 않을까 싶다. 나는 그렇게 되리라고 본다. 지금은 그저 시작일 뿐, 드러나지 않은 일들과 앞으로 누군가의 입을 통해 세상에 알려질 일들이 얼마나 많을지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어떤 일을 계기로 세상은 또는 역사는 그렇게 조금씩 앞을 향해 나아간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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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 감정 오작동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실천 인문학
오찬호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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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물리적인 힘이 직접적으로 가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장 비열한 폭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차별이 있는 사회는 비록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가뜩이나 지연이나 학연 등 어떤 이유로든 틈만 나면 뭉치고 싶어 하는 우리나라의 패거리 문화에서 차별과 소외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단순한 사회 현상이 아니라 한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중대한 범죄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코 가벼이 볼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사회학자 오찬호의 신작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는 차별과 소외에 대한 우리나라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우리의 일상에 만연한 혐오와 폭력, 강박과 차별의 현장을 끄집어내어 하나도 괜찮지 않은 우리의 자화상을 그려냄으로써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은근한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갈등이 심한 국가에선 사회 곳곳의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반성을 유도하기보다는 자칫 새로운 갈등만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 굴에서 정신만 차려봤자 산 채로 죽듯이 사회구조라는 벽은 개인의 의지로 쉽사리 깰 수 없다. 깨져야 할 벽은 안 깨지는데 역효과는 크다. 무엇이든 개인이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식의 접근은 피해자에게 문제의 원인을 돌리는 우를 범한다. 왕따의 피해자에게 '너도 원인 제공이 있다'면서 폭력을 묵인하는 사회, 성범죄를 걱정하는 여성들에게 '늦게 다니지 않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지 않으면' 위험해지지 않는다는 망언을 조언이랍시고 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많은 건 우연이 아니다." (p.230)

 

주지하는 바와 같이 사회 갈등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지표가 사회 갈등 지수이다. 한 사회의 노사 갈등, 윤리적 갈등, 문화적 갈등, 세대 갈등, 남녀 갈등, 계층 갈등, 지역 갈등 같은 그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갈등을 합쳐 수치로 표현한 것으로서 민주주의 성숙도와 정부 정책의 효율성이 낮을수록, 소득 불균형이 높을수록 사회 갈등 지수가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갈등구조는 좀 더 특이한 측면이 있는 듯하다. 2016년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중 멕시코 터키에 이어 3위를 차지했으니 말이다.

 

총 3개의 PART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PART 1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만', PART 2 '그게 다 강박인 줄도 모르고', PART 3 '불균형 사회, 나와 너를 성장시키는 법'을 통하여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 양성평등, 노키즈존, 사회적 약자와 성 역할에 대한 편견,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 등을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될지, 주변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심을 전하고 싶거나 존엄한 개인으로 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정말로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우리 사회의 병폐를 치유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한걸음만 떨어져서 보면 너무나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리겠지만, 문화라는 오래된 습속에 길들여지면 원래의 길에서 한 걸음조차 옆으로 내딛기가 힘들다. 나아가 타인이 다른 방향으로 한 걸음만 옮기려는 것도 쉽사리 용납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사람이라면 정말로 필요한 부끄러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누군가를 상식적으로 아프게 한다." (p.113)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지금의 우리 사회가 정상이 아리라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내 집이니까 아무리 쿵쾅거려도 괜찮다는 발상, 일상적인 외모 비하나 성 소수자에 대한 지나친 적대의식,자신의 기준에만 사로잡혀 타인의 영역을 무시로 넘나드는 꼰대 행각,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라는 강박에서 비롯된 수많은 차별, 예외적인 기준만 주입하여 보편적 기준이 무시되는 사회, 자신의 신체와 외모, 패션감각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사회 등 외부의 객관적 시각에서 바라보면 비정상도 그런 비정상이 없을 듯한데 우리는 오히려 그런 모습을 당연시하거나 우리의 틀에서 벗어난 정상적인 사람들을 강하게 배척하곤 한다.

 

"웃자고 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회를 튼튼하게 하는 데 지출하지 않고 사회가 좋아지길 희망하는 건 모순이다.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 정치인들을 감시할 사람들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시켜 주면 결국 사회는 한 단계 성장한다. 내가 발 뻗고 잘 지름길이다. '한때'가 지독히도 오랫동안 우리 주변을 부유하면서 '부끄러움'의 본질을 망각시키는 현실이 싫다면 그 반대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지향하는 단체에 구체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 (p.272~p.273)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오늘, 이른 귀성 차량의 행렬이 고속도로 곳곳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휴게소마다 몰려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넉넉했으면 좋겠다. 명절에 고향을 찾지 않는 사람이 있어도,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이 있어도 무례한 시선으로 그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기준과 다른 사람은 모두 비정상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기준이 다를 뿐인데 말이다. 명절이 명절다우려면 말과 행동에 앞서 상대방의 입장을 다시 한 번 되짚고 생각해야 한다. 갈등 유발 요인은 많고 갈등 관리는 현저히 부족한 우리 사회이기에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대화도 없이 무작정 배척할 게 아니라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우리 모두에게 평화를 가져다 준다면 굳이 피할 일도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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