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자주 걷던 길을 우연히 다시 걸어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반가운 것도 같고, 조금 서글픈 느낌인 것도 같고, 때로는 낯선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제는 오후에 있었던 약속 때문에 몇 년 전에 살았던 마을을 우연히 들르게 되었다. 봄바람이 강하게 불었고 오후의 햇살은 따가웠다. 만나기로 한 시간을 5분여 남겨두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급한 용무가 있어서 그러니 미안하지만 약속 시간을 30분만 늦추어 달라는 전화였다. 그러마, 대답하고 나니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차를 몰아 등산로 입구의 한적한 골목에 세웠다. 그리고 가파른 산길을 무작정 걸어 올라갔다.

 

아침마다 그 길을 걷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능선에 이르기 전에 위치한 커다란 묘와 능선을 따라 중간중간에 놓인 나무 벤치, 산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 풍경. 그런 모든 게 마치 어제 걸었던 길처럼 다정했다. 아까시나무와 상수리나무의 새순이 돋는 초록의 그 길은 그야말로 그리움이었다. 그리움을 밟으며 걷는 그 길에서 다정한 얘기를 나누며 걷는 두 명의 여성분과 힘겹게 걷고 있는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다. '나는 그때 무슨 생각을 하며 이 길을 걸었을까?' 몹시 궁금하기는 했지만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몇 년 전의 나를 다시 만날 수도 없지 않은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하면 만나서 물어보면 그만이지만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와 엄연히 다른 사람이건만 넘을 수 없는 시간의 장벽으로 인해 만나고 싶어도 다시 만날 재간이 없다.

 

몇 걸음 걷지도 않은 듯한데 약속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다정한 봄햇살이 어깨를 토닥였다. 나는 그때 무슨 생각을 하며 그 길을 걷고 또 걸었던 것일까. 만나기로 했던 지인과 차를 마시면서도 머릿속에서는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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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디를 살까요 - 알면 돈 되는 신나는 부동산 잡학사전
김학렬.배용환.정지영 지음 / 다산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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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역 아파트 평균 매매가 6억, 강남 지역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 14억'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쳤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지 않을까. 앞으로 더 오를 것이라고 보는 사람보다는 지금이 꼭지라고 보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아파트 가격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 올랐다고 생각하는 그런 시기에 이제나저제나 떨어질 때만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인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그들의 예상을 보란 듯이 뒤집으며 폭등하곤 했다.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무작정 시기만 조율하던 사람들을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는' 격으로 만들었다. 그런 경험을 반복하다 보니 '역시 부동산 투자는 어렵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꽂혔다.

 

"부동산은 공부도 중요하지만 실전 투자가 더욱 중요합니다. 내 돈으로 투자하여 노심초사해봐야 합니다. 그런 경험이 쌓여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주식처럼 매일 시시각각 시세가 변하는 건 아니므로 비교적 편한 마음으로 투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람이 살고 생활하는 공간이란 생각을 하면 더 재미있게 투자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p.69~p.70)

 

<그래서 어디를 살까요>는 소위 부동산 투자의 고수라고 불리는 세 명의 전문가가 쓴 책이다. 입지의 고수 빠숑(김학렬), 상가의 고수 서울휘(배용환), 부동산 임장(현장조사)의 고수 아임해피(정지영)가 각각의 시선으로 지역을 분석하고, 부동산 투자의 트렌드를 짚어내며, 부동산 정책이나 전업 투자에 접근하는 현명한 태도에 대해서도 진심을 담아 조언한다. 뿐만 아니라 과학적 투자의 대가 아기곰, 학군 투자의 대가 월천대사 등 다양한 전문가의 조언을 덧붙였다. 말하자면 이 책은 한 자리에 다 모을 수 없는 내로라하는 부동산 전문가들로부터 개인교습을 받는 것과 진배없다.

 

"투자에서 가장 지켜봐야 할 게 종목과 타이밍입니다. 투자에서 많은 수익을 내려면 싸게 사서 비싸게 팔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언제가 싼 시기인지 모른다는 겁니다. 백화점에서 옷을 살 때는 바겐세일 할 때를 노리면 됩니다. 그러나 부동산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바겐세일 합니다'라고 광고하지 않습니다. 또 개인과 개인의 거래이기 때문에 싸게 파는 사람이 있어야만 싸게 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타이밍을 잘 봐야 하는데 언론이나 일부 전문가들이 경기가 오르내릴 때마다 떠들어대니 많은 이가 공포감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경제에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p.306)

 

서울의 강남구, 강동구, 강서구, 관악구, 구로구 등 13개 구와 분당, 일산, 평촌, 중동, 산본의 5개 신도시를 세밀하게 분석함으로써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자신에게 맞는 지역이 어디인지 판단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된다. 각 지역의 역사부터 교통, 상권, 일자리, 자연, 교육, 생활 인프라 등과 앞으로 있을 중요한 개발 호재까지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피스텔, 셰어하우스, 경매, 분양권, 재개발 등 다양한 투자 방법에 대해서도 조언을 잊지 않는다.

 

"사회 경기가 침체기-회복기-호황기-침체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부동산 경기도 똑같습니다. IMF 때가 대표적인 침체기였는데, 거품이 다 빠지고 바닥을 찍은 상태였으니 투자만 하면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경기가 다시 살아나고 호황이 끝으로 달려갈 때는 같은 방법으로 투자하면 실패합니다. 그런 과정을 몇 번 겪다 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투자가 시기마다 다르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알게 됐고, 사이클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대비할 수 있게 됐습니다." (p.324)

 

부동산 투자든 주식 투자든 학습과 정보 획득도 중요하지만 경험만큼 큰 자산도 없겠다 싶다. 각각의 시장에는 고유한 패턴과 사이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시장에 직접적으로 몸을 담그지 않으면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전문가의 조언과 미디어를 통한 정보 획득도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어느 것을 버리고 어느 것을 취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게 된다. 자신의 돈이 투자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관심의 정도가 약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큰돈을 투자하여 가슴을 졸일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경험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투자하여 부동산 투자에 대한 관심과 경험을 높여가는 게 부동산 투자의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저자의 생각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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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산행길의 풍경은 낯설고 생경했습니다. 산벚나무의 흰 꽃잎들이 등산로에 가득하고 강한 봄바람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키 큰 나무들이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이따금 서로의 몸에 부딪혀 '끽, 끽' 소리를 내곤 했습니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나는 4월의 무르익었던 봄을 잠시 잊기로 했습니다. 의식적으로 잊으려 했던 것은 아니지만 봄답지 않은 날씨가 그렇게 만들었나 봅니다. 이러다 어느 날 갑자기 겨울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길을 걷고 걸어도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앉은 고민 하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내가 아픕니다. 아픈 아내와 철부지 아들을 연로하신 장모님께만 맡겨두었던 나는 가족과 주말을 보내고 다시 지방으로 내려올 때마다 밀려오는 부담감을 떨쳐낼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나는 설 명절을 보낸 후 지방의 내 숙소로 아내를 데려오고야 말았습니다. 일을 하고, 아내의 식사와 약을 챙기고, 빨래와 청소 등 집안일을 병행하느라 나의 하루는 빠르게 지나갑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내는 아내를 위해 하루에 두 번 전신 마사지를 해주는 일도 거를 수 없는 일과 중 하나입니다. 동분서주하는 나에게 아내는 무척이나 미안해합니다. 그러나 어찌 알겠습니까. 전생에 내가 아내에게 큰 빚을 졌거나 지금 내가 하는 일보다 더 큰 은혜를 아내로부터 받았을지 말입니다.

 

개화를 준비하던 아파트 화단의 철쭉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화들짝 놀라 움츠러든 모습입니다. 봉오리를 꼭 닫은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듯합니다. 계절의 추이에도, 우리의 인생에도 예측하지 못했던 이런 일들이 수시로 닥치곤 하지요.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저 운명처럼 벌어지는 이런 일들에 자책하거나 원망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저 담담히 시간을 견디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따뜻한 봄 날씨가 이어질 테니까 말입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책도 잘 읽지 못합니다. 일주일에 한두 권을 겨우 읽을 뿐입니다. 어제는 전임 대통령의 1심 선고가 있었지요. 24년의 중형이 내려지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다들 착잡한 심정이었던 듯합니다.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는 그분의 말씀처럼 자신의 깜냥이 직위에 미치지 못한 사람이 욕심만으로 그 자리에 올랐던 것에 대한 처벌 치고는 과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법 앞에 공평해야 함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보여주는 것도 후세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 중 하나이겠지요. 불현듯 찾아온 추위처럼 우리네 인생에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이 이따금 찾아오는 법이지요. 그게 비켜갈 수 없는 운명이라면 주어진 시간을 담담히 견디는 것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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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8-04-08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내분 얼른 쾌차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꼼쥐 2018-04-08 17:0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위대한 설계
스티븐 호킹.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전대호 옮김 / 까치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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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말보다 표정이 더 많은 것을 설명할 때가 있는 것처럼 자연계의 현상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것보다 한 번의 수학적 증명만으로 모든 것을 명확히 할 수가 있다. 그래서였을까. 근대 과학의 아버지인 갈릴레이는 신은 수학이라는 언어로 자연을 설계했다고 믿었다. 우주에 대한 갈릴레이의 사유는 다분히 철학적이고 때로는 문학적이기도 하지만 현대 과학 또한 그로부터 발원되었음을 상기할 때 그가 했던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철학은 우리 눈으로 일찍이 본 적 없는 우주라는 위대한 책에 쓰여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먼저 책에 쓰인 언어를 익히고 등장인물의 특징을 파악해야만 한다. 그 언어는 수학이며, 등장인물은 원 같은 도형이다. 이를 모르고서는 인간의 힘으로 단어 하나도 이해할 수 없고, 어두운 미로를 헛되이 헤매게 될 뿐이다."

 

그러나 수학을 익히고 도형의 성질을 파악한다 해도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특정한 법칙들, 또는 그들의 존재 이유를 밝혀낼 수는 없다. 우리가 철학적 과제로만 미뤄두었던 그러한 근원적인 질문들은 섣불리 대답하기도 어렵지만 현재의 과학 수준에서도 이른 감이 없지 않은 듯하다. 우주와 생명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철학과 신학의 문제에서 현대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21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스티브 호킹과 믈로디노프는 그들의 저서 <위대한 설계>에서 양자이론을 가지고 단순하게 설명한 바 있다. 물론 그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미진하여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명확히 납득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고 그에 대한 대답 역시 꾸준히 진화하리라는 희망과 기대가 책 속에 녹아 있다.

 

"왜 무(無)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있을까?

왜 우리가 있을까?

왜 다른 법칙들이 아니라 이 특정한 법칙들이 있을까?" (p.15)

 

<위대한 설계>는 위와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신체에 내려진 천형(天刑)에도 불구하고 만물의 근원을 향한 탐구를 포기하지 않았던 호킹은 물리공식의 제1 조건으로 '우아함'을 들 정도로 그의 삶 전체를 통하여 우아한 사유로 일관했다. 오직 사유의 힘에만 의지하여 특이점 이론과 호킹 복사로 대표되는 빅뱅 우주론의 기초를 수립했을 뿐만 아니라 우주의 시초와 만물의 근원을 밝힐 궁극의 물리법칙을 확신하고 이를 밝히는 데 평생을 쏟아부었다.

 

"일부 사람들은 시간이 빅뱅보다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는 모형을 지지한다. 그런 모형이 현재의 관찰들을 더 잘 설명할지 여부는 아직 불분명하다. 왜냐하면 우주의 진화를 지배하는 법칙들은 빅뱅 시점에서 무력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빅뱅 이전의 시간을 포괄하는 모형을 창조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왜냐하면 우주 진화의 법칙들의 효력이 빅뱅 시점에서 없어진다면, 빅뱅 이전의 존재는 관찰 가능한 영향력을 현재에 끼치지 못할 테니까, 그냥 빅뱅이 우주의 창조였다는 생각을 유지해도 아무 지장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p.64)

 

이 책에서 전개되는 논의의 상당 부분은 주로 M이론(M-theory)에 의지한다. 저자가 생각하기에 M이론이야말로 궁극의 이론이 갖춰야 한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속성들을 모두 갖춘 유일한 모형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속한 우주와 모든 생명이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인가 아니면 자연법칙에 의해서 스스로 발생한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에도 M이론이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여러 물리 법칙들과 과학 발전의 계보를 들여다보고 있다.

 

"M이론은 아인슈타인이 발견하기를 원했던 통일이론이다. 우리 인간 - 인간은 자연의 기본입자들의 집합체에 불과하다 - 이 우리와 우리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들에 대한 이해에 이토록 바투 접근했다는 사실은 위대한 업적이다. 그러나 아마도 진정한 기적은 논리에 대한 추상적인 숙고에 의해서 우리가 보는 놀라운 다양성으로 가득 찬 광활한 우주를 예측하고 기술하는 유일무이한 이론이 나오는 것일 것이다. 만일 그 이론이 관찰에 의해서 입증된다면, 그 이론은 3,000년 넘게 이어져온 탐구의 성공적인 결과가 될 것이다. 우리는 위대한 설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p.228~p.229)

 

인간의 위대함은 순간의 업적이나 성과에 의해 평가되지는 않는다. 50여 년의 긴 시간 동안 루게릭 병을 이겨내며 천문학과 물리학의 발전에 지대한 업적을 남기고 떠난 스티븐 호킹 박사는 그의 업적도 업적이려니와 병에 굴하지 않았던 그의 열정과 끝없는 탐구정신으로 인해 세계인으로부터 더욱 존경을 받는 게 아닌가 싶다. 우주의 시작과 끝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우주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했던 위대한 과학자의 죽음에 대해 우주학자 로렌스 크라우스는 "별 하나가 막 우주로 떠났다."고 말했다.

 

서둘러 피었던 봄꽃들이 지고 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 해의 끝인 겨울과 시작을 알리는 봄이 언제나 맞닿아 있음을 알기에 눈처럼 쏟아지는 분분한 낙화를 보면서도 서럽지 않은 것이다. 우주의 시작과 끝도 계절의 순환처럼 정확히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닌지 호킹 박사는 묻고 있다.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것은 우주에 대한 여전한 호기심이 아닐까. 호킹 박사는 이 책을 읽는 독자 누구에게나 위대한 설계를 이해하는 궁극의 이론을 꿈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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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에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막노동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다. 어느 현장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수백 가지 공정으로 이루어지는 아파트 건축은 분야별로 하도급을 맡은 오야지가 각자의 팀을 짜서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나는 주로 설비팀의 일원으로 따라다녔다. 특정한 기술이 없는 나로서는 어떤 팀을 쫓아다니든 큰 차이는 없었지만 설비팀의 잡역부는 다른 일에 비해 일당이 조금 더 높았기 때문에 한 푼이 아쉬웠던 나로서는 육체적으로 고되다는 단점은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 팀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일을 하다 보니 설비팀의 사람들은 마치 가족처럼 느껴졌다. 일도 함께 하고 밥도 같이 먹으러 다니니 사실 한 식구나 진배없었지만 말이다. 팀원 중에는 지금도 이따금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 그분은 텁수룩한 수염과 구레나룻에 걸맞게 덩치 또한 산만 하여 먹는 것 역시 범상치 않았다. 일반인의 서너 배를 먹는 것은 물론 소화가 되지 않아 탈이 나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식사 후에는 항상 하는 말이 있었다. 습관처럼 "아, 배불러 죽겠다." 하면서도 먹을 것을 보면 또 손이 가곤 했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법정 스님의 수필 '먹어서 죽는다'가 실려 있다. 산업화 이후 급속도로 서구화되고 있는 식생활 문화를 지적하며 채식 위주의 식생활이 고기 중심으로 바뀌었을 때 나타나는 문제점을 설파한 글이다. 뜬금없이 이 글이 떠올랐던 이유는 미세먼지가 극심했던 요 며칠 동안의 끔찍했던 기억 때문이다. 산이고 들이고 무작정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미세먼지로 인한 고통이 다른 사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고문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미세먼지의 심각성이 크게 대두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차량의 보유 대수가 한 가구에 서너 대씩 이르게 된 작금의 현실을 감안하면 크게 놀랄 일도 아니지만 사람들은 다들 제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남 탓만 한다. 2040년까지 휘발유와 디젤 엔진 차량의 판매를 금지할 계획이라는 영국과 프랑스의 사례에서 보듯이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인한 미세먼지 발생의 심각성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크다고 하겠다. '먹어서 죽는다'는 법정 스님의 말씀에 더하여 '편해서 죽는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대량학살의 공범이 되는 셈이다. 100여 미터의 가까운 거리도 차를 타고 가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한, 화석연료 차량의 운행을 금지하는 것과 같은 정부의 강력한 규제가 시행되지 않는 한 맑은 하늘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우리는 지금 '편해서 죽는' 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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