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 - 오지은의 유럽 기차 여행기
오지은 지음 / 이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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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의 분단 70년.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과 북은 급격히 가까워진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사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태어난 이후 단 한 번도 북한 땅을 밟아보지 못했기에 마치 동아시아의 작은 섬처럼 살아왔던 게 사실이다. 그게 뭐 불편하다거나 불행하다는 현실 인식도 없이 해외로 나갈 때는 으레 비행기나 배를 이용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 여겨왔다. 그러나 남과 북의 정상들이 몇 차례 회담을 하고 냉랭했던 분위기가 점차 풀리면서 우리는 기차를 타고 머나먼 이국땅을 밟아보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것이 비록 언제가 될지 기약은 없지만 기차를 타고 떠나는 먼 나라로의 여행을 우리는 비로소 현실에서 꿈을 꾸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오지은의 유럽 기차 여행기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는 조금쯤 특별하게 읽혔다. 시적인 가사로 리스너들의 사랑을 받는 뮤지션이자, 자신의 마음을 가감없이 드러낼 줄 아는 작가, 오지은. 나는 예전에 읽었던 그녀의 에세이 <익숙한 새벽 세 시>를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나는 그 기억으로 인해 이 책을 손에 잡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낡은 기차를 타고 여행했던 어렸을 적 기억과 몸으로 기억되는 편안한 진동이 책을 통해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마음으로 비행기표를 샀다. 그냥 잘 쉬고 싶다. 그냥 신기해하고 싶다. 기차를 타고 알프스 한가운데를 달리고 나폴리에서 피자를 먹고 싶다. 그래도 될지, 내게 그런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건 오늘 내가 한 생각 중 가장 멍청한 생각일 것이리라.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 (P.12)

 

작가는 기차를 타고 오스트리아 빈을 출발한다. 구석에 파묻혀 있는 걸 좋아하면서 또한 여행을 좋아한다는 작가는 그래서 자신의 삶이 아이러니라고 말한다. 아이러니와의 계속되는 싸움이라고. 일상을 전투적으로 대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작가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과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가는 모습을 잊기 위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 우리는 두 가지 상반된 마음 중 하나를 선택하며 중립이란 없는 아슬아슬한 삶을 살아가게 마련이지만 그렇게 양 극단을 살아간다는 게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른다. 우리들 중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일상은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게 전부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의 우울이란 그저 게으른 자의 사치쯤으로 여기면서.

 

"기차는 산의 모양을 따라 둥글게 달린다. 산의 덩치는 점점 커지고 등줄기는 정연히 서 있는 군대의 그것 같다. 너무 가팔라서 눈도 쌓이지 않은 돌산에 눈보라가 친다. 그 아래 소나무는 하는 수 없이 눈으로 새 옷을 입었다. 오스트리아의 알프스." (P.43)

 

책의 두께는 문고판처럼 얄팍하다. 기차를 타고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약한 진동에 몸을 맡긴 채 급할 것 없이 즐길 수 있는 그 정도의 두께. 책을 읽다 보면 자신의 어깨에 실린 삶의 무게도 저절로 가벼워지는 것만 같다. 삶의 고독은 모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가벼움이다. 책임이 없다는 건 고독하다는 말과 진배없다. 그러므로 삶의 무게로부터 달아나고 싶다는 건 어쩌면 단순한 응석일 뿐, 무한한 고독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기차 여행은 때론 아슴아슴 멀어져가던 기억을 눈앞으로 소환한다. 일상에서는 슬몃 눈을 감거나 일부러 외면했을 기억들. 돌이켜보면 별것도 아닌 일들이 삶의 중요한 순간으로 다가온다. 여행은 그렇게 우리의 가치 체계를 뒤흔든다. 단단하기만 했던 신념들이 하나둘 무너질 때의 쾌감은 여행이 주는 또 다른 축복이다. 일상에서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을 것들. 그런 것들이 한낱 허접쓰레기처럼 변하기도 한다. 나는 이따금 그런 순간들을 경험한다. 영혼이 부활하는 순간.

 

"나에게는 병이 있다. 별것 아닌 평범한 우울증이다. 앓은 지 4년 정도 되었다. 어쩌면 더 오래됐을지도 모른다. 이 병을 앓으면 기쁨을 느끼는 감각이 퇴화되는 느낌이다. 아무 음악도 듣지 않고 아무 글도 읽지 않고 아무 것에도 놀라지 않는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미신적인 믿음에 빠졌다. 이 증상을 없애줄 성배가 세계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는 믿음." (P.148)

 

우리는 그런 믿음 하나로 여행길에 오른다. 지금의 일상과 하나 달라질 게 없는 여행이라면 굳이 먼 곳까지 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늘이 희끄무레 어두워지고 있다. 아늑한 우울에 한동안 빠져들고 싶은 날씨. 오지은의 기차 여행기<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는 반어법처럼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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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내일이 성탄절인데 주변 분위기는 너무도 조용하다. 다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라고 생각하는 듯한 분위기. 인터넷도 없고 저작권에 대한 규제도 많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성탄절 전후로 족히 한 달 정도는 전국 어느 곳을 가더라도 캐럴을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 사람들이 빈번하게 오가는 시장통에서도 크리스마스 캐럴은 여지없이 울려 퍼졌다. 게다가 사는 게 팍팍하고 어려워도 집집마다 캐럴 테이프 한두 개쯤은 갖고 있었던 걸 보면 낭만이라는 게 삶의 고통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리는 진통제 역할을 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요즘은 그 시절에 비해 몇 곱절 잘살게 된 건 맞지만 지금처럼 한 해의 끝자락에 서면 캐럴은커녕 다들 죽겠다는 소리만 달고 사니 어찌된 일인지...

 

서민들의 고달픈 현실과 삶의 애환을 보듬고 달래주어야 할 주체가 정치인들인데 되려 없던 분노를 촉발시키는 당사자 역할을 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정치인들을 불신하고 정치를 혐오하지 않을 수 없겠다 싶은 것이다. 그중에서도 민의를 대변한다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며칠 전 인천 송도의 한 버스정류장에서도 국회의원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일이 벌어졌었나 보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여성에게 인천 연수구를 지역구로 하는 자유당 의원이 다가와 인사를 하자 여성분이 "네" 하고 짧게 대답하고는 계속해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러자 "잘 지내시죠?" 하고 말을 이어가는 바람에 대답을 안 하고 있었더니 같은 질문을 재차 물어서 "이번 정부에서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했더니 국회의원이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 침을 뱉더란다. 모욕감을 느낀 여성분이 지금 침 뱉은 것이냐 물었더니 한동안 노려보기만 해서 "지금 저랑 얘기 중에 침 뱉은 것이냐" 재차 물었더니 뱉었다고 답하며 왜 삐딱하게 나오냐고 하더란다. 여성분이 송도 주민한테 뭐하는 짓이냐고 따지자 고소하라고 하더란다.

 

이게 사실이라면 이 자는 시정잡배만도 못한, 인격이라곤 도통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자임에 틀림없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고 정치적 의사를 표출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자신과 뜻이 같지 않다고 해서, 국회의원을 능가하는 권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해서 무시하고 모욕감을 준다는 건 동네 양아치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는 아마도 자유당에서 그런 것들만 학습했나 보다. 그가 옆에 있다면 가래침이라도 뱉어주고 싶다. 그와 똑같은 사람이 될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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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이석원 지음 / 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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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황경신의 글 중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뭔가가 시작되고 뭔가가 끝난다. 시작은 대체로 알겠는데 끝은 대체로 모른다. 끝났구나, 했는데 또 시작되기도 하고 끝이 아니구나, 했는데 그게 끝일 수도 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아, 그게 끝이었구나, 알게 될 때도 있다. 그때가 가장 슬프다.' 정말 그렇다. 잠시의 휴지도 없이 시간의 연속선상에 있는 우리는 그 끝도 알지 못한 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가 많다. 독서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겪게 된다. 끝인 줄 알았는데 다시 시작되기도 하고, 끝은 아니겠지, 생각했는데 완전히 끝난 경우도 가끔 있다. 이석원 작가의 글도 그렇다. 황경신 작가와도 인연이 깊은 이석원 작가이기에 그의 책 <보통의 존재>를 읽은 후 신간이 나올 때마다 계속해서 읽게 되었는데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읽고 나서는 '아, 이제는 이석원 작가와도 끝이구나' 생각했었다. 그랬던 게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닌데 나는 또 그의 신간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을 읽고 말았다. 자석에 이끌리는 철가루처럼. 오래된 습관처럼 나도 모르게 그만.

 

"첫 책을 낸 지 6년. 어느새 난 세 번째 책을 내게 되었다. 첫 책과 달리 두 번째 책이 환영받지 못했기 때문에 긴장과 걱정 속에 출간된 새책은 다행히 독자들이 반겨주었고, 그 덕에 이제야말로 몸을 쭉 펴고 누울 수 있을 만한 거실이 있는 곳으로 부모님의 거처를 옮겨드릴 수 있었다. 비록 집을 사드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난 그때 어머니가 새집의 베란다에 틈틈이 모은 화분들을 들여놓으시며 기뻐하시던 모습과 처음으로 좁은 방을 벗어나 거실로 '산책'을 나오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p.112)

 

사실 나는 이석원 작가의 글을 그닥 선호하지는 않는다. 감성 충만한 말랑말랑한 글을 읽을라치면 손발이 오글거리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장르가 불분명한 그의 글이 영 낯설고 어색하게만 느껴져서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읽은 후에는 '아, 이석원 작가와의 인연도 이걸로 끝이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랬던 내가 그의 책을 다시 읽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겠지만 어쩌면 <보통의 존재>를 읽었을 때도, <실내인간>을 읽었을 때도,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들었을 때도 모두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이 존재했던 게 아닐까. 오늘날 우리의 모든 인간관계가 우연적 에피소드의 연속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밀란 쿤데라가 지적하듯 우연이 항상 무의미나 권태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이석원의 글을 읽게 된 동기야 어떻든 많은 부분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는 건 어느 정도 사실이니까.

 

1부 '그해 여름', 2부'내가 사는 작은 동네엔', 3부 '엄마의 믿음', 4부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5부 '배려', 6부 '스며들기 좋은 곳', 7부 '마음이란', 8부 '마지막 순간'으로 구성된 이 책은 짧은 분량의 여러 꼭지의 글들이 실려 있다. 그런 까닭인지 '출퇴근길에 가볍게 읽기에는 딱 좋은 책'이라고 썼던 어느 블로거의 평에 머리를 끄덕이게 된다.

 

"어떤 이의 글을 읽으면 어, 이건 누구누구의 글이야 하고 대번에 알아볼 수 있게 만드는 그 작가만의 벗어버릴 수 없는 인장 같은 것. 단순히 독자의 입장에서, 내겐 그게 어떻게 보면 내용이나 본질보다 더 중요하다. 그래서 책 속에 담겨 있는 생각의 결이 아무리 매력적이거나 유용하다 해도, 그 사람만의 글의 톤이 느껴지지 않으면 그 책을 반복해서 읽기는 어렵다." (p.247)

 

작가는 삶의 거대한 주제들보다는 보다 작고 소소한 이야기들을 이 책에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독자로서 내가 받았던 인상은 가벼운 듯 보이는 그의 글은 이전에 나왔던 다른 책들보다 더 깊은 의미를 품고 있는 듯했다. 어떤 글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가볍게 읽히는가 하면 또 어떤 글은 가벼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 깊은 의미가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그걸 연륜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삶의 성숙이라고 해야 할지...

 

"사람에 대한 기대와 실망을 되풀이하며 살아가기 마련인 인생에서, 어느 날엔간 혼자서도 잘 살아갈 거야 하다가, 또 어느 날엔간 그래도 내가 아닌 누군가가 아니면 결코 채워질 수 없는 빈자리가 내 안에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될 때, 아무리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때,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사람이란 게 이토록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버겁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하다. 늘 말하지만 진짜 부자는 관계의 부자가 아닌가 한다." (p.276~p.277)

 

중학교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아들은 졸업 발표회를 위한 춤 연습에 열심이다. 이것이 어쩌면 중학교 친구들과 할 수 있는 마지막 추억이 될지도 모르지만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아, 그게 끝이었구나'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나이가 되면 왠지 모를 슬픔과 먹먹함이 느껴지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는 끝이 있게 마련이고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머릿속에서 그 끝을 확인한다는 건 무척이나 슬픈 일이다. 오늘 하루도 무참히 저물고 있다. 하루의 끝을 담담히 맞이할 수 있는 까닭은 변함없이 내일이 온다는 걸 믿기 때문이요, 또 다른 하루가 내가 아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끝내지 않을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우연처럼 이석원의 산문집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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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에는 뭘 하면 좋을까. 인생은 농담처럼 가벼워야 한다는데 방 안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도 크게 나쁘지는 않을 듯해.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면서 보내기는 무료하지 않을까? 하루는 생각보다 길거든. 우리는 종종 하루를 마치 운동선수가 전지훈련을 하듯 숨 쉴 틈 없이 빽빽하게 계획을 세우곤 하지. 그럴 필요 없는데 말이야. 그러면서도 늘 불안해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 수 있어. 알잖아.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자신보다 더 잘하는 학생만 눈에 띄는 까닭에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면서도 단 하루도 마음 편하게 보내지 못한다는 걸.

 

책 한 권을 읽고 있어. 그렇다고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읽는 건 아니야. 그저 시간이 날 때마다 설렁설렁 읽고 있을 뿐이지. 책날개의 저자 소개를 보니 꽤나 특이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1978년생으로 스웨덴의 시인이자, 전직 아이스하키 선수이며, 대중음악가라고 하네. 결혼식을 앞두고 아내 카린을 급성 백혈병으로 잃고, 현재 딸 리비아를 홀로 키우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적혀 있네. 아, 작가 이름과 책의 제목을 말하지 않았구나. 작가는 톰 말름퀴스트야. 처음 들어본다고? 사실은 나도 그래. 책의 제목은 <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이야. 전 세계 20개국에 판권이 팔리며 수많은 독자들을 울렸다고 하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 조금밖에 읽지 못해서.

 

창을 통과하는 겨울 햇살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져. 나만 그런 걸까? 암튼 그래. 좀 추워지더라도 미세먼지만 사라졌으면 좋겠어. 날씨 때문에 잠시 우울해지는 건 그럭저럭 낭만이라도 있지만 미세먼지로 인한 장기간의 우울은 병이 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더 우울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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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푸른숲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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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통해 작가를 알아간다는 건 오프라인에서의 직접적인 만남과 온라인상의 간접적인 만남의 중간쯤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한 작가가 쓴 작품이 여러 권이라면 먼저 어떤 작품을 읽느냐에 따라 그 작가와의 인연이 좀 더 길어질 수도 있고, 아주 짧게 막을 내릴 수도 있는 것이지요. 오프라인에서의 만남도 그러하듯 첫인상이 안 좋았던 사람은 그와의 인연을 계속해서 이어가기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은 것처럼 말이지요.

 

중국 작가 위화를 처음 알게 된 건 그의 작품 <인생>을 통해서였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이었던 푸구이의 기구한 삶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었지요. 계속되는 가난과 불행 속에서도 삶의 의지를 꺾지 않는 푸구이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그의 저서 <허삼관 매혈기>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를 읽음으로써 작가와의 인연을 길게 이어갔으니 말입니다. 그 외에도 국내에 번역된 그의 작품은 더 있는 걸로 알지만 차츰 읽기로 하고 미뤄두었는데 그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나도 모르게 구매 버튼을 누르고 말았습니다.

 

위화의 신작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했던 특강이나 좌담을 모은 책입니다. 그런 까닭에 겹치는 부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어보면 수십 년에 달하는 오랜 시간 동안 위화라는 소설가가 어떻게 탄생하고 성장해 왔는지 잘 알게 됩니다.

 

1장 '읽고 쓰기', 2장'사람으로 살기'의 총 2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그에 대한 모든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많은 관객을 앞에 두고 했던 강연이거나 같은 업종의 사람들과 나눈 좌담이었기에 감춰야 했던 비밀 한두 가지쯤은 있었겠지만 말입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냈던 그는 성인이 될 때까지 책다운 책 한 권 읽어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루쉰의 작품 속에서 성장했으면서도 루쉰을 싫어했던 그가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루쉰을 재발견하게 되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세계적인 고전을 찾아 읽고, 생각하고, 쓰고 문학을 재해석하는 과정이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저는 책이 없던 문화대혁명 시대에 성장했고, 제가 진정으로 진지하게 문학작품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소설을 쓰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글을 썼던 셈입니다." (p.38)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작가들도 여럿 등장합니다. 톨스토이, 가와바타 야스나리, 카프카, 헤밍웨이 등. 물론 자신이 쓴 작품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이 뒤따릅니다. 작품이 처음 실렸던 잡지사와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편집자들과 얽힌 일화, 그리고 소설가로서 자신이 걸어온 길과 삶의 철학에 대해 들려줍니다. 치과의사였던 그가 소설가가 되고자 분투했을 지난한 세월을 생각해보면 그에게도 무리 모두에게도 인생에서 거저 얻어지는 건 없나 봅니다.

 

"가장 훌륭한 독서는 마음을 비운 독서, 꾸밈없는 마음으로 아무것도 염두에 두지 않는 독서입니다. 아무런 선입견도 갖지 않는 그런 독서는 사람들의 인식을 더욱 넓혀주지요. 선입견을 가지고 하는 독서는 음식을 골라 먹는 것과 같아서 사람들의 인식을 더욱 좁게 만들 수 있습니다." (p.159)

 

그가 소설의 지평을 넓혀갔던 과정은 아주 단순했던 듯합니다. 분량으로 보자면 단편소설에서 중편소설로 그리고 중편소설에서 장편소설로 옮겨갔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 범위에서 그동안 써보고 싶었던 여러 주제 중 하나를 고르고, 앞에 놓인 많은 장애물을 하나하나 넘어왔던 것입니다. 그것은 소설가로서 성장하는 일반적인 발전 단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눈앞의 장애물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도 않았던 까닭에 지금의 위화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한다는 건 어떤 분야에서건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기본 덕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편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게다가 이 모든 편견이 진리의 옷을 입고 있지요. 진리라는 것은 수시로 우리가 갈아입을 수 있는 겉옷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의 옷장에는 각양각색의 그럴듯한 옷이 가득 걸려 있습니다. 그러니 편견에 반기를 들어도 결코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이미 옷을 갈아입어버리기 때문이지요.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페터 한트케가 배운 보스니아어 욕으로 그들에게 반격을 가하는 것이지요. 너희 집, CNN에 나왔더라! 이 말은 대단히 수준 높은 욕입니다. 중국 속담으로 표현하자면 욕인데도 더러운 단어가 없는 셈이거든요." (p.374)

 

내일은 일 년 24절기 중 스물두 번째 절기인 동지.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기도 하지요. 반대로 말하면 모레부터는 조금씩 조금씩 낮이 길어진다는 뜻이겠지요. 문화대혁명의 시대를 잘 견뎌온 위화 작가도 그 어둠의 시기를 딛고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왔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 역시 자신을 의지하여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꾀를 부리거나 엄살을 떨지 않고 두려움 없이 나아갈 때 각자가 닿는 종착지에는 선물처럼 뭔가 주어지는 게 있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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