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민수 문지 푸른 문학
김혜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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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빅셀의 산문집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귀 기울여 듣기에는 관용이 필요하고 선입견이 없어야 하는데, 이른바 경험이라는 게 많아질수록 그게 점점 더 어려워진다. 나를 성급히 이해하지 않은 탁월한 청중, 지적장애인들이 그때 이 사실을 기억나게 해 주었다.' 나는 누군가를 섣불리 예단하거나 아이들의 말을 건성건성 듣게 될 때마다 그 문장을 떠올리곤 한다. '나는 그야말로 듣지 않아도 다 아는, 그래서 들을 필요가 없는, 그래서 스스로의 귀를 막아버리는, 나이도 많지 않은 '꼰대'가 되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한없이 움츠러들게 되는 계절, 한 해가 저물어가는 어느 날 김혜정의 소설 <오늘의 민수>를 읽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두 명의 민수, 그들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며 함께 성장한다. 말하자면 성장소설이다. 예순두 살의 김민수와 열다섯 살의 주민수가 어떻게 서로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지 책일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 수 있다. 나이도, 직업도, 생김새도 극과 극으로 다른 그들이 한 권의 소설 속에서 동화처럼 펼쳐보이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세대 간의 소통이 절실한 작금의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니메이션 영화계의 거장 김민수 감독은 고집불통에 제멋대로인 사람이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도 따뜻한, 그러면서도 마음결이 투명한 매력적인 사람이다. 돈이 많고 명성이 자자해서가 아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나이가 든 지금도 아이의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있는 그런 인물이다. 반대로 중학생 김민수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눈치가 빠르고, 주변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알며,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싹싹한 '애늙은이'다.

 

일본에 스튜디오를 둔 김 감독은 1년에 한 번 정도 누나를 만나기 위해 한국에 잠시 들르곤 했었는데, 이번엔 한 대학에서 특강을 맡게 되면서 예년과 달리 조금 오래 머물게 되었다. 그런 김 감독 앞에 또 다른 주인공 주민수가 나타난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맡게 된 엄마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살림을 도맡아 할 뿐만 아니라 엄마의 말이라면 죽는시늉도 할 수 있는 착한 아들이다. 그런 민수에게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김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다운로드하여 본 것으로 인해 저작권법 위반에 대한 벌금을 물어야 할 상황. 힘들게 일하시는 엄마를 봐서라도 고액의 벌금을 낸다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민수는 무작정 김 감독을 찾아가 사정을 하기에 이른다. 김 감독을 지근거리에서 돌보며 잡무를 처리하는 최 피디가 민수의 사정을 듣고 소송을 취하하는 대신 하나의 제안을 한다. 여름방학 동안 김 감독의 작업실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돌봐달라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우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예술가에게 걸맞은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성격을 지닌 김 감독은 대중 앞에 나서는 걸 극도로 꺼리고 자신의 차기 작품이 언론에 미리 노출되는 걸 무엇보다 싫어한다. 그러나 일에서만큼은 철두철미하다. 만화 그리기가 취미인 민수는 아내도, 자식도 없이 오직 애니메이션만 바라보며 평생을 살아온 김 감독을 흠모와 존경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김 감독이 자신의 작업실 근처에 있는 카페의 주인인 여진을 은근히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민수는 김 감독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연애에 있어서는 젬병인 김 감독을 위해 여진과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한다. 반면에 웹툰 작가가 되고 싶으면서도 안정된 직장을 바라는 엄마의 기대 때문에 고민하는 민수를 보면서 김 감독은 "노인이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게 뭔 줄 아냐? 좀더 많은 모험을 해보지 못한 거라더라. 난 절대 후회하는 삶은 살고 싶지 않다. 넌 안 그러니?" 하고 묻는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고 각자의 고민을 진심으로 걱정하면서 우정을 키워간다.

 

두 사람의 우정이 순탄하게만 이어지는 건 아니다. 우리의 인생이 다 그런 것처럼 두 사람에게도 작은 위기가 찾아온다. 그러나 '이것도 다 지나가리라' 외치던 민수의 말버릇처럼 위기의 순간순간도 무사히 지나간다. 어찌 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이유는 이야기 전체에 흐르는 정서가 순하고 부드럽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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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 배웠던 국어 교과서의 내용 중 가장 또렷이 기억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민태원의 '청춘예찬'이 아닐까 싶다. 그중에서도 단 하나의 문장을 뽑으라면 나는 단연코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라고 썼던 그 구절을 꼽는다. 나 역시 청춘을 지나던 그 시절에는 그 문장만 다시 들어도 가슴이 절로 뛰곤 했었다. 그러나 청춘을 지나쳐 제법 멀리까지 온 지금은 감동은커녕 그저 시큰둥할 따름이다. 건방진 이야기지만 이따금 그 문장이 이렇게 바뀌어 씌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도 더러 있다. "정의는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용기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라고.

 

김태우 수사관과 신재민 사무관의 무분별한 폭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청와대의 독단과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 국가 권력을 동원한 청와대의 개입 등 온갖 불법적인 일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상시적으로 벌어졌었다는 게 법적으로나 객관적인 증거로나 이미 다 증명이 된 셈인데 그 시절에는 그런 불법을 보면서도 일언반구도 없던 사람들이 문재인 정권에서는 왜 공익 제보 입네 하면서 대대적으로 떠들고 나선 것일까. 공포정치가 횡행하고 청와대의 감시가 엄혹한 시기에는 누구든 용기를 낼 수 없는 법이다. 권력에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이 더욱 뚜렷해진다. 오히려 권력자에게 잘 보임으로써 자신의 영달을 꾀하고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부를 축적하려는 욕심만 키울 뿐 권력자에 맞서 정의를 지키겠다는 용기는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 소시민적 경향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당한다. 물론 나라고 특별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김태우, 신재민과 같은 자들이 언론에 등장한다는 건 문재인 정권이 권력을 이용하여 소시민을 옥죄지 않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즉 문재인 정권이 민주주의 원리를 잘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원래 시끄러운 법이니까 말이다. 자신이 저질러왔던 비겁함이나 부정부패에 대한 눈 감음을 이번 기회에 씻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누가 말했던 것처럼 '나는 절대로 그러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그들은 비겁했던 대다수 국민들을 향해 자신들을 이해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그들을 비난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정의는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용기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일 뿐이라는 소시민적 견해가 나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누가 죄짓지 않은 자 있으면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하셨던 예수님 말씀처럼 나 역시 그들을 보면서 나 자신을 탓하며 반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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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
톰 말름퀴스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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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몸살로 며칠을 앓았다. 연말연시의 육체적인 피로도 피로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크지 않았나 싶다. 발단은 아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지난해 9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아들은 너무도 의연하게 일상을 지켜왔다. 학교 생활도, 하교 후에 가는 몇몇 학원도 힘들다는 내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직장 문제로 떨어져 사는 나나 아들을 보살피는 할머니 역시 그런 아들을 대견하게 생각했을 뿐, 속으로 얼마나 힘들고 아파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랬던 아들이 탈이 났던 건 지난주. 잘 다니던 학원도 며칠째 빠지고 밥을 먹는 것도 깨작깨작 의욕이 없어 보였다.

 

어제 아이의 할머니로부터 장문의 문자를 받았다. 그동안 꽁꽁 감추어 왔던 아이의 속내를 듣고 어찌나 안쓰럽던지 혼자 한참을 우셨다고 했다. 그리고 어떻게 위로를 하고 용기를 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일 때문에 잠시 외출을 했던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펑펑 울었다. 눈물로 시야가 번져 운전을 할 수조차 없었다. 나야 그렇다지만 아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신히 집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아들과 통화를 했던 건 늦은 밤이었다.

 

슬프면 슬프다고 말해도 된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언제든 나에게 말해주면 좋겠다고는 했지만 정작 아들은 나에 대한 걱정이 더 큰 듯했다.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나는 톰 말름퀴스트의 소설 <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을 마저 읽었다. 읽기 시작한 지는 꽤나 오래되었지만 읽다 말다를 반복하는 바람에 진도가 잘 나가지 않던 책이었다. 재미가 없어서라기보다 아내를 잃은 톰의 상황이 나의 상황과 겹쳐지면서 슬픔이 북받쳤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거예요. 뉘그렌이 말한다. 그럼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은가요? 내가 묻는다. 부인의 치료를 조금 더 계속해보기로 결정하긴 했지만, 가망이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기는 힘들지만, 아마도 대략 한 시간쯤. 나는 카린의 뺨에 양손을 얹고 손가락으로 이마를 쓸어준다. 땀이 배어 나와 있다. 아내와 단둘이 있게 해줄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시간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p.106)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한 이 소설은 평범하기만 했던 우리의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마치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양 담담하게 쓰고 있다. 약 1개월 반 후면 아빠가 될 예정이었던 톰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아내 카린과의 결혼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린이 고열과 호흡 곤란으로 병원에 실려 가며 모든 게 바뀐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라는 진단과 함께 뱃속의 아기를 살리기 위한 제왕절개 수술에 들어간다.

 

미숙아로 태어난 딸 리비아를 돌보면서 아내 카린의 병간호까지 감당해야 했던 톰은 순식간에 변한 이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톰과 의료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내 카린은 세상을 떴고, 신생아인 딸과 톰만 남았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아내가 죽는 바람에 리비아는 법적으로 딸이 아닌 동거인에 불과했다. 리비아에 대한 법적 문제를 처리하며 카린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톰. 책에는 톰과 카린이 만나 같이 살게 되는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톰에게는 또 다른 상실의 고통이 이어진다.

 

"나는 장례식 추도문을 쓰면서 카린의 머리빗을 옆에 두고 글이 막힐 때마다 카린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문지른다. 계단에서 이웃집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부엌 환풍기가 휭휭 돌아가는 소리, 환기구를 지나가는 바람 소리, 창문 아래 룬다가탄에서 띄엄띄엄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소리는 여느 때와 똑같다. 여느 평범한 날과 똑같다." (p.284)

 

미국 월가의 허상을 파헤친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저서 <블랙 스완>에는 재미있는 비유가 나온다. 칠면조의 주인은 천일 동안 매일 먹이를 갖다 준다. 칠면조는 먹이를 받아먹을 때마다 주인이 자신에게 선의를 베푼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친절한 먹이주기의 횟수가 늘어갈수록 믿음은 한층 견고해진다. 하지만 추수감사절을 앞둔 날 친절하기 그지없던 주인의 손에 칠면조는 죽임을 당한다. 과거 경험으로는 결코 자각하거나 예측할 수 없었던 극단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 그러니 경험에서 얻은 지식에 의지해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천만한 일인가.

 

우리는 누구나 타인에게 일어나는 불행이 자신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산다. 다른 사람에게는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도 자신만은 예외로 비껴갈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무심한 듯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 물론 그러한 믿음과 희망이 없다면 세상을 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평범한 일상에 대한 고마움은 저만치 사라지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톰 말름퀴스트의 소설 <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은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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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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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홍규의 산문집을 읽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이유로 주눅이 들곤 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해 어두운 방 한켠으로 달아나야만 할 것 같기도 하고, 무릎 꿇고 손을 드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슴에 손을 얹고 두어 시간쯤 혼자만의 깊은 반성 정도는 있어야 할 것만 같다. 그리고 세상에 이름 붙여진 모든 것들을 일일이 다 알아둘 필요야 없다 할지라도 제 나이에 걸맞은 평균적인 앎은 반드시 있어야 하고, 효자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도 제 부모가 지나온 삶의 여정을 더듬고 이해하면서 그 지난한 과정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 것만 같다. 이러한 느낌은 작가의 글이 주는 엄숙주의에서 비롯된다. 웃음기 쏙 뺀 그의 글은 단정하다 못해 서릿발처럼 엄격하다.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은 작가 개인의 자서전적 성격이 짙은 산문집인 까닭에 작가의 성장 배경과 소설가로서의 꿈과 희망, 문학에 대한 작가의 소신, 그리고 소설가인 작가의 눈에 비친 우리 사회의 모습 등 다소 주관적인 이야기가 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독자층으로부터 공감을 득하는, 말하자면 작가 개인의 사생활이나 개인적 소신이 객관적으로 평가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까닭은 작가의 글에서 느낄 수 있는 진정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컨대 작가의 부친이 탈곡기에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잃고 절망한 나머지 크지 않은 논을 처분하여 중고 트럭을 샀고, 모친과 함께 행상에 나섰다. 옷과 신발, 그릇, 잡화, 닭, 청과 등을 팔고 다녔는데 장사 수완이 없었던 터라 결과는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이를 두고 작가는 "절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절망하지 않은 사람처럼 살아왔다"고 썼다. 십여 년의 트럭 행상을 접은 후 조경업체 날품팔이로 칠팔 년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아버지는 전지작업을 하기 위해 높은 사다리에 올랐다가 떨어져 크게 다쳤고, 수술을 하기 위해 마취실 입구에서 섰을 때 아버지의 떨리는 손을 잡았던 기억을 들려준다.

 

"당신의 손이 내 손안에서 어린 새처럼 떨었다. 당신의 두 눈은 이미 갈쌍갈쌍했다. 마취사가 나가라고 할 때까지 온 생애인 듯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인 듯 다시는 그럴 수 없는 것처럼 한 번도 그런 적 없는 것처럼 아버지의 손을 쥐고 있었다. 당신의 손가락 하나가 내 가슴속에서 오래도록 영글어 내가 되고 소설이 되었음을 말해주고 싶었다." (p.79)

 

그의 또 다른 산문집 <다정한 편견>을 읽었을 때도 그랬지만 글을 읽다 보면 지금은 쓰지 않는 낯선 단어들로 인해 책을 덮고 사전을 뒤적여야 하는 순간들을 종종 맞게 된다. 책 한 권을 읽기 위해 국어사전을 뒤적였던 건 대학 시절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을 읽은 이후 손홍규의 산문집이 유일하지 싶다. 어쩌면 우리는 잊혀가는 한글을 되살리려는 노력도, 그런 어휘를 사용함으로써 작가 개인에게 미칠 수도 있는 불이익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의지도 점차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손홍규의 가치는 그 지점에서 발화된다.

 

"같은 낱말이라 해도 사전에 있을 때보다 살아 있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때 아름다운 이유 역시 그 낱말을 발음하는 이의 사연이 담겨서라는 걸 뒤늦게 깨달으면서 정작 내가 흉내 내야 했던 건 할머니의 말투와 어휘가 아니라 당신이 세계를 바라보던 방식, 고달프고 끔찍하며 비참했으나 누구보다 낙관적이었던 당신의 태도였어야 한다는 후회가 찾아왔다." (p.45~p.46)

 

어린 시절 작가와 내내 같은 방을 쓰다 그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신 할머니, 고모의 죽음, 작가의 대학 등록금을 위해 팔아야만 했던 소, 대학시절의 문학 동아리 활동과 파란만장했던 대학 생활과 군대 시절의 기억, 터키 이스탄불에서 만난 '야샤르 케말' 등 그가 절망 속에서 고드름처럼 키워온 문학적 소양은 이 겨울의 한파처럼 매섭고 눈물겹다. 이십대 후반까지 농민이 되기를 꿈꿨던 그가 갑오농민전쟁 사료를 보면서 문득 깨달았다는 '형님들의 서글픈 진심'. 농민 따위는 되지도 말고 생각도 말라며 윽박질렀던.

 

"글을 쓰는 시간보다 아직은 글을 읽는 시간이 많은 것 같다. 내가 글을 읽는 이유는 영감을 받기 위해서고 영감이 필요한 이유는 글을 쓰지 못해서다. 글을 쓸 수 없는 시간들을 보내고나면 삶의 일부를 낭비해버린 듯 허탈하기까지 하지만 좋은 글을 읽게 되면 외려 과분한 보상을 받은 것처럼 송구하기까지 하다." (p.303)

 

바람이 차다. 작정한 듯 불어오는 바람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을 오래 기억하라고 다그치는 듯하다. 인간은 절망을 딛고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지만 때로는 절망 앞에서 무릎이 꺾여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는 경우도 흔히 보지 않던가. 시가, 소설이 희망을 말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켜켜이 절망이 쌓일지언정, 마음을 다쳐 오래도록 그 자리에 머물지언정 우리는 끝끝내 그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제 더는 슬픔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라는 작가의 다짐, 그 문장을 읽는 우리도 다시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지금은 다시 희망을 말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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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송년 모임이 빈번한 요즘, 그래도 과거에 비해 하나 나아진 게 있다면 2차, 3차 자리를 옮겨가며 끝없이 이어지던 음주문화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술은 배제한 채 음악회만 관람하는 것으로 송년모임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고, 원하는 사람만 모여 산을 오르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변화가 긍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부어라 마셔라 하던 무분별한 송년모임이 사라진 까닭에 자영업자들의 타격은 아무래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술이라면 질색을 하는 나로서는 이런 문화가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한 해를 조용히 되돌아보고 다가올 한 해의 계획과 새로운 다짐을 하는 데 반드시 술이 있어야만 하는지 의심스럽기도 하고 말이다.

 

2018년의 출판계에서 유시민 작가의 <역사의 역사>가 '2018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것은 참으로 획기적인 일이 아닌가 싶다. 물론 여러 방송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였던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던 게 사실일 테지만 무엇보다 작가로서의 그의 역량이 없었더라면 그와 같은 일은 처음부터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런 면에서 그의 지적 소양과 안목을 독자로서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역량이 빛나면 빛날수록 이를 시기하는 사람들도 많아지는 건 인지상정, 며칠 전에 했던 그의 발언도 그런 측면에서 기인한 게 아닌가 싶다.

 

대통령에 대한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의 지지율 격차에 대해 '자기들은 축구도 봐야 되는데 여자들은 축구도 안 보지, 롤도 해야 되는데 여자들은 롤도 안 하고 공부하지, 모든 면에서 우리가 불리해'라고 하면서 20대 남성들의 처지를 위로했던 발언인데 보수 언론과 유 작가를 시기하는 측에서는 '옳다구나' 싶었던지 아무것도 아닌 발언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작가는 사실 이 발언을 농담조로 한 듯 보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는 사실(fact)에 가깝다. 오죽하면 고교 진학에 있어서도 남학생을 둔 학부모는 남녀공학보다는 남자고등학교를 월등히 선호할까. 교육문제는 대개 엄마들이 주관하게 마련인데 이는 곧 전적으로 엄마의 의견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남학생들은 이성 친구를 사귐에 있어 이성을 상실할 정도로 중독되는 반면 이성 교제를 하는 여학생들은 적어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은 다 처리하는 편이다. 여학생들은 적어도 눈이 뒤집히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생물학적 측면이 강하다. 더구나 롤처럼 순발력을 요하는 게임에서는 여성보다는 남성이 두각을 나타내게 마련이고 어떤 분야를 잘한다는 건 중독으로 진행될 위험성이 크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을 사실이라고 증명하는 일과 거짓을 사실이라고 꾸미는 일 중 어떤 것이 더 어려울까? 당연히 전자가 어렵다. 최순실의 태블릿PC가 최순실 것이라고 증명하는 일도 어려웠거니와 사실로 밝혀진 지금도 이를 믿지 않으려는 자들이 여전히 횡행하는 걸 보면 그런 측면을 여실히 짐작할 수 있다. 그 자체로 사실인 것을 사실임을 증명하려 한다는 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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