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책읽기 - 세상을 이해하는 깊고 꼼꼼한 읽기의 힘
로버트 P. 왁슬러 지음, 김민영 외 옮김 / 문학사상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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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인 소설은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듯이 우리가 읽었던 어떤 평론은 우리를 과거의 기억 속으로 이끌고 들어갈 뿐만 아니라 그 기억으로부터의 출구를 도무지 찾을 수 없게 만든다. 저자가 나의 생각을 정확히 대변하는 듯도 하고 소설을 읽던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을 하나하나 불러내는 듯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여라도 저자가 다루는 어떤 소설이 아직  내가 읽지 못한 소설이라 할지라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쩌면 나는 머지않은 미래에 그 소설을 읽게 되고 과거의 기억으로 변해버린 저자의 평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되짚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이미지와 스크린이 우리의 언어를 대체하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 언어와 이야기의 중요성을 말한다는 건 시대에 한참이나 뒤진 사람으로 치부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험한 책 읽기>의 저자인 로버트 P. 왁슬러 교수는 디지털 시대에 사는 우리가 점점 언어적 존재로서의 입지를 잃어가고 있음을 몹시 우려한다. 우리의 뇌가 깊이 읽고 사고하는 '읽는 뇌'에서 스펙터클과 표면적 감각만 탐하면서 점점 우둔해지는 '디지털 뇌'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우리가 체험하는 세상은 환영과 실제 사이의 경계, 원본과 복사본 사이의 경계, 허구와 일상 사이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고 둘 사이의 벽은 점차 약해져서 급기야 우리는 '오프라인의 삶'보다는 '온라인의 삶을 선호하고 순간적인 지식의 습득만을 추구하게 된다고 진단한다.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우리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지 못하고 우리를 둘러싼 인간 공동체의 삶을 부정하는 불완전한 인간으로의 전환.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독서를 통제할 수 있기에 독서는 우리의 필요와 리듬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의 주관적이고 연상적인 충동을 충족시키는 데 자유롭다. 이를 위해 내가 만든 용어가 바로 '깊이 읽기', 즉 책을 느리고 사색적으로 소유하는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단어를 읽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에 접근하여 우리의 삶을 꿈꾸는 것이다." (p.10)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지향하는 바는 명확하다. 이야기의 중요성을 일깨움으로써 우리를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집안에서 집 밖으로 나오게 하고, 불편하고 복잡하다고 여기는 공동체를 향해 손을 내밀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향해 나아가는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스스로의 특이성(개인적 자아)을 발견하고, 공동체와의 연대감(사회적 자아)을 확인하며, 익숙함이나 낯섦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언어 내러티브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연결 짓기도 한다.

 

"이야기는 무엇이 인간 세계에서 지속되며 무엇이 이 세상의 인간을 만들어내는지를 상기시킨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불완전한 인가으로서 우리의 삶이 가진 불안정함, 그리고 우리의 나약함과 평범함이다. 반면 명멸하는 순간의 산만함 속에서 정보와 데이터는 마치 그 순간 자신이 모든 것을 아는 신神인 것처럼, 군주로 군림하며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분리시킨다." (p.291)

 

디지털 시대의 개인은 자신의 삶이 개별적이고 독자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그러므로 개인은 절대적인 자아 찾기에 골몰할 뿐 공동체 속에서의 자신인 상대적 자아에는 관심이 없다. 오프라인에서의 관계 맺기에 취약한 현대인의 단점이기도 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문학의 '깊이 읽기'와 '꼼꼼히 읽기'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며, 특히 내러티브를 가진 소설은 우리가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며,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라고 말한다.

 

유한한 생명체인 인간이 광대한 시공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의미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비트 단위로 쪼개기를 좋아하는 디지털 시대의 현대인이라면 더더욱 자신의 삶이 인류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 알 수 없게 되며, 그럴수록 우리는 순간적인 쾌락이나 표면적 관계를 중시하게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창세기,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켄 키지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척 팔라닉의 <파이트 클럽>,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깊이 있게 분석함으로써 독서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의 저자인 왁슬러는 책이 우리 인간의 유한함, 세상 속에서의 우리 인간의 위치, 타자와의 관계 등을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삶과 죽음의 문제 등 생각하면 숙연해지고 골치 아파지는 문제들을 성찰해보도록 촉구하는 것이 바로 책이라는 것이다. 몰랐다면 '행복'했을 수 있지만, 한 번 알고 나면 잠들어 있던 우리의 인식을 일깨우는 것이 바로 책이다. 때문에 책은 '위험'하며 그 '위험함'이야말로 책의 미덕이라는 것이 왁슬러의 주장이다." (p.308 '옮긴이의 말' 중에서)

 

나는 그 위험한 것을 오늘도 신줏단지 모시듯 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남몰래 들춰 보고 있다. 어떤 혜택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읽는 인간으로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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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분노를 입에 담지도 못할, 담아서도 안 될 막말로 푼다는 데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감정의 배설물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악취와 구린내가 진동합니다. 정작 말을 쏟아내는 당사자는 알지 못하지만 말입니다. 어쩌면 한 사람의 품격은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는 까닭에 자신의 품위를 지킨다는 건 감정을 절제한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최근 자유당의 전당대회를 보면서 어쩌면 하나같이 저토록 저급한 사람들이 당 대표 후보나 최고위원 후보로 나왔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아무리 인물이 없어도 그렇지 일개 공당의 대표를 뽑는 자리인데 그런 사람들을 걸러내지 못했다는 건 자유당 전체의 수준을 짐작케 합니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망언을 일삼았던 김진태 후보나 어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막말을 했던 김준교는 나이가 어리고 사회경험이 없어서 그렇다지만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노인들이 방청석에 앉아서 쏟아내는 막말은 그야말로 가관입니다.

 

자신의 분노를 세련된 방식으로 표출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걸 의미합니다. 타인과의 소통은 물론 자신에 대한 이해력도 떨어지는 사람들이죠. 이런 사람들을 볼 때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의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입니다. 그는 자신의 분노를 유머와 해학으로 풀어냄으로써 세상을 즐겁게 했던 사람입니다.

 

"내 생각에 지구의 면역체계는 에이즈 그리고 신종 독감과 결핵 등으로 우리를 제거하려고 애쓰고 있다네. 지구로서는 우리를 제거하는 편이 나을 걸세. 우린 정말로 무서운 동물이거든."

 

"우리의 소중한 헌법에는 비극적 결함이 있지만 그걸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결함은 바로 미치광이 환자들만이 우두머리가 되고자 나선다는 것이다. 심지어 고등학교에서도 그랬다. 정서장애가 분명한 아이들만 반장선거에 출마했다."

 

위에 인용한 말은 모두 커트 보네거트가 쓴 <나라 없는 사람들>에 나오는 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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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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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남아공 출신의 괴짜가 있다. 미래 과학이나 우주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한 번쯤 들어보았음직한 이름, 그의 이름은 앨런 머스크이다. "(나는)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봅니다. 그러한 가치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면 사람들은 기꺼이 돈을 지불합니다. 나는 돈이라는 것이 사회(다른 사람들)가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흐른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던 그의 말은 진실일까? 앨런 머스크의 말은 일정 부분 진실이라고 나는 믿는다. 지구 바깥에서 지구를 바라볼 수 있는 특권은 그 희귀성 때문에 사람들의 꿈이 되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인해 더 큰 꿈으로 자라기도 하기 때문이다.

 

권기태의 소설 <중력>에는 우주인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어쩌면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을 양성하기 위해 260억 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했던 2006년의 일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나라 국민 전체의 꿈이자 최종 후보로 올랐던 고산, 이소연 두 사람의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2007년 9월 최종 후보자로 낙점되었던 고산 씨는 2008년 3월 관련 보안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이소연 씨로 교체되고 만다. 우주선 탑승까지 한 달을 남겨둔 시점이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박사과정에 있었던 이소연 씨는 그렇게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유명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2012년 8월 미국으로 건너가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밟았고, 이듬해에는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하여 미국에 정착하였다. 그와 함께 우리는 260억 원을 들인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을 잃었고, 이소연 씨에 대한 먹튀 논란과 거센 비난이 이어졌다.

 

"나는 내 속에 열정이 숨어 있는 것을 안다. 가끔은 달궈진 마음을 온통 쏟아부을 그 무엇을 기다린다는 것을. 그럴 때 나는 내 몸 이상이며 내 마음 이상의 존재가 된다는 것을. 그런 꿈 없이는 가능성의 흥분이 생겨나지 않는다. 만일 내가 비행기를 만들고 싶다면 가장 먼저 지녀야 할 것은 엔진이나 두랄루민 패널이 아니다. 저 하늘 너머에 대한 상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38)

 

소설에는 생태보호연구원의 과장인 이진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는 퇴직한 아내와 딸 둘이 딸린 가장이다. 대학 시절부터 우주인이 되는 꿈을 꾸었던 그는 석사 전공을 식물학으로 정하고 나서는 우주선 적재함에서 여러해살이 식물들을 키우는 상상을 하면서 마음 속에서 우주 정원사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우주인이 되기 위해 한국에서의 전기공학연구원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건너가 항공공학을 전공하는 김태우도 등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유일한 문과 출신이자 '투어리스트'라는 벤처 회사에 다니는 정우성, 유일한 여성 후보이자 마이크로로봇연구단의 연구원인 김유진이 이진우, 김태우와 함께 최종 후보가 된다.

 

"생각해보면 나는 경쟁심도 만만치 않았고 질투를 하기도 했다. 낙오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속이 부서지는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남이 잘 해놓은 것이 사라지기를 바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파괴돼서라도 나와 비슷해진다면 하고 바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게 공평하고,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했더라면 나는 이 정도만큼도 살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p.309)

 

네 사람은 최종 후보자가 되기 위해 끝없이 경쟁하고 치열하게 노력한다. 그 과정은 혹독하다. 작가는 너무 세밀하다 싶을 정도로 전 과정을 집요하게 다룬다. 그리고 매 단계를 넘어설 때마다 그들 각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어떤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계속해서 되짚는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들 각자의 인생과 흡사하다. 좌절하고 낙담하면서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용기는 계속할 힘이 아니다. 힘이 없어도 계속하는 것이다. 우레 같은 외침만 용기가 아니다. 쉬었다가 다시 해보자. 나지막이 속삭이는 것도 용기다." (p.318)

 

소설을 구상하고 취재를 시작한 지 십삼 년 만에 출간되었다는 이 소설은 작가가 집필하는 사 년 동안 적어도 서른다섯 번을 개고했다고 한다. 실로 지난한 작업이었음을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토로한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답답하거나 어둡지 않다. '이 겨울이 지나면 우리의 희망은 응달이 걷힌 눈처럼 녹아서 또 시내로 흐르고, 강이 되어서 봄이 숲에 들게끔 숨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작가의 바람처럼 이 소설을 읽게 될 많은 사람들의 꿈도 그렇게 영글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어쩌면 가능성을 먼저 생각함으로써 지난한 과정을 참게 되는지도 모른다. 중력은 날아오르려는 자에게 큰 짐이 되지는 못한다. 중력조차 가벼워지는 당신의 꿈은 도대체 무엇이냐고 작가는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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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봄이 오는 소리가 언뜻 들리는 듯한 주일 오후,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별사탕 내리는 밤>을 읽고 있습니다. 간결하고 때에 따라서는 시크하게 느껴지던 그녀의 문체는 여전히 간결하기는 하지만 조금은 부드럽고 동글동글하게 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습니다. 워낙 오랜만에 읽는 에쿠니 가오리의 책인지라 어쩌면 제가 착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젊어서는 모가 났던 부분이 나이가 들수록 순하게 변하기도 하지만 내재해 있던 천성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강고해지고 고집스러워지기도 하는 법이니까 말입니다.

 

"사와코는 지금껏 젊은 사람이 부럽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젊다는 건 어리다는 것이고, 젊음을 잃을까 겁내는 것을 꼴사납게 여겼다. 하지만 지금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만큼 위태로운, 자신이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하는 벌거벗은 소녀처럼 무방비한 조카를 보고 있자니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한 남자가 자신의 전부라고 믿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아젤렌은 심지어 완벽한 애정이나 완벽한 관계 같은 것도 존재한다고 믿을 것이다. 그런 젊음을 부러워한다는 건 가슴 저밀 만한 일이었다. 슬픔으로 그리고 아마도 위로와 동정으로."

 

우리는 종종 자신이 흘려보낸 세월만큼이나 자신도 역시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다릅니다. 많이 변한 건 자신의 겉모습뿐이고 그것은 결코 바라지 않던 변화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열심히 닮으려 했던 우리 각자의 성격은 늘 그 자리에 붙박인 듯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에 실망하거나 낙담하기에는 이릅니다. 자신의 못된 성격이 늘 제자리를 지키기는커녕 나이가 들수록 더욱 심하게 나빠지는 경우도 태반이니까 말입니다. 어렸을 적의 성격을 늘 그만그만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건 차라리 축복입니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요.

 

낮잠을 한바탕 푸지게 자고 나면 자신의 못된 성격이 다소 느슨해지고 전에 없이 관대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성격이 못되게 변했다는 건 우리가 경험했던 많은 종류의 결핍을 어쩔 수 없이 꾹꾹 눌러 참았다는 걸 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겨울 햇살이 쏟아지는 주일 오후, 졸리면 자도 된다고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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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왕은 안녕하시다 1~2 - 전2권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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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능청스러움에 깜박 속아 넘어갔지 뭔가. 노량진역 헌책방에서 구입한 <국역 연려실기술> 전집 사이에 이 소설의 출처가 된 오래된 원고가 끼어 있었다나. 과거의 어느 시점부터 꾸준히 전해 내려오면서 여러 사람이 보태고 고쳐 쓴 낡은 원고를 바탕으로 작가는 그저 현대에 맞게 고쳐 썼을 뿐이라며 구라를 치는 바람에 순진하기 그지없는 나로서는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작가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판인데 책이라면 사족을 못쓸 작가가 어느 날 우연히 구입한 책자 사이에서 낡은 원고 하나를 발견했고, 그 원고의 내용이 여간 탐나는 게 아니어서 현대에 맞게 번역과 각색을 하게 되었다는 말에 책을 400쪽이 넘는 두 권의 책을 다 읽는 동안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던 것이다. 사실이겠거니 생각하면서 말이다. 빌리가 애완지구인으로 트랄파마도어 행성에 납치되었었다는 커트 보네거트의 그럴듯한 구라에도 넘어가지 않았었는데...  

 

"이사를 하고 난 뒤 나는 틈날 때마다 '소설'을 노트북에 입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원문에 들어 있는 감정과 감각, 시대정신을 손으로 직접 느껴보고 거리를 좁혀보려 했던 것이지만 과정이 길어지면서 나 또한 자연스럽게 내 나름의 편집과 번안을 시도하게 되었다. 그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이 소설은 원래 그런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불가해한 힘을 가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1권 p.13)

 

사실 지금 이 세상에 없는 역사적 인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 모두 케케묵은 역사서 속의 인물들이라는 인식을 독자들의 뇌리에서 지운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므로 역사소설을 읽는 독자와 소설 속 인물들 간에는 항상 일정한 거리, 혹은 괴리감이 형성되곤 한다. 그러므로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라면 누구나 그러한 괴리감을 없애기 위한 장치를 이중 삼중으로 설치한다. 그렇게 해도 눈치가 빤한 독자들을 속여먹기에는 역부족일 때가 많다는 얘기다. 성석제 작가는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하 조치로 소설의 앞머리에서부터 구라를 친 것이다. 이 책이 마치 먼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야사일 뿐이고 자신은 그저 이야기의 전달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굳게 믿을 수 있도록.

 

각설하고, 조선 숙종 시절로 시간을 되돌려 보면 독자들은 소설의 화자가 되는 성형을 만나게 된다. 기생 할머니 밑에서 자라 '장안에 호가 난 알건달에 파락호'로 이름이 높은 '성형(成衡)'은 스승의 심부름을 갔다가 송시열의 집 앞에서 집을 지키는 하인배의 다리 밑으로 기어가는 수모를 겪는 것으로도 모자라 길바닥의 개똥을 먹어야 할 위기에 처한다. 그 위기를 구해준 인물이 장차 숙종이 될 세자인 소년 숙종이었다. 그 인연으로 소년 숙종과 성형은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고 급기야 의형제를 맺기에 이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왕에 오르게 된 세자 이순(李焞). 왕의 부름을 받은 성형은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미관말직으로 입궐하여 닳고 닳은 신하들 사이에서 어린 왕을 지키는 임무를 맡게 된다.

 

성형은 양반의 자제이기는 하지만 북벌을 꿈꾸었던 임경업 장군을 따라 사라진 아버지로 인해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 채 기생인 할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한양 제일의 기생집을 운영하며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였던 할머니 덕분에 부족한 것 없이 자란 성형. 세상 물정 모르는 천방지축의 성형이 권력을 놓고 암투를 벌이는 궁궐 깊숙이 뛰어들면서 보게 되는 남인과 서인의 당쟁, 대비와 대왕대비, 계비인 인현왕후와 희빈 장씨로 알려진 장옥정 간의 세력 다툼 등 숙종 치하 46년의 역사가 방대한 사료와 함께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독자들의 시선이 성형에게로 과도하게 쏠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성형으로 인해 역사 속 실제 인물이 더 입체적으로 살아나고 성형 역시 여러 무술을 익혀 검계의 우두머리가 되는 설정을 취함으로써 오래전 무협지를 읽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도 한다.

 

"아버지라는 스승을 통해 배운 무공이 어느 경지에 다다르게 되자 세상이 달라 보였다.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작고 미미한 것들의 움직임이 환하게 눈에 들어왔고 그런 것이 대국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빠르다고 생각했던 것이 느리게 보였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여겼던 것은 곧 따라잡을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몸은 금강석처럼 단단해지고 머릿속은 차곡차곡 정리된 지식과 논리로 빠르게 돌아갔다." (2권 p.126)

 

열네 살에 즉위하여 46년간 장기 집권하면서 왕권을 강화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신권(臣權) 세력을 자주 교체하는 '환국(換局'을 유도한 것으로 잘 알려진  까닭에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숙종 재위 기간은 어쩌면 독자들에게도 익숙할지도 모른다. 책이 아니더라도 영화와 드라마, 연극이나 뮤지컬을 통해 여러 번 접해보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진부하다거나 낯익게 느껴지지 않았던 까닭은 성형이라는 가공의 인물이 약방의 감초처럼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역사 속 인물들을 작가의 재치와 유머로 재탄생시켰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명이든 아니든 허구적으로 변용되거나 창작되었으며 역사상 실재했던 인물과는 같지 않음을 분명히 밝혀둔다. 그럼에도 당대의 창작물과 기록물에 힘입은 바 큰데『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 이긍익의『연려실기술』, 김천택의『청구영언』, 작자 미상의『 인현왕후전』『박태보전』『박태보실기』 등이 대표적이고 그 외의 수많은 문집과 내가 어릴 때 단편적으로 만난 사랑방에 떠도는 이야기들이 소개가 되었다. 그 기록 속의 격렬하고 치열하고 오욕칠정에 사로잡힌 인정을 숨김없이 묘사하는, 가혹하리만큼 아름다운 문장들이 이 소설을 계속해서 쓰게 만들었다." (2권 p.418~p.419 '작가의 말' 중에서)

 

성석제의 소설 <왕은 안녕하시다>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익숙했던 시대적 배경과 인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역사적 재발견의 시간을 갖게 된다. 남인에서 서인, 서인에서 다시 남인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왕은 숱한 목숨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두려운 존재로 변해가고 의형제였던 성형과 왕의 관계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게다가 마음에 두었던 여인 장옥정이 왕의 여자가 되는 과정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성형의 마음을 그려냄으로써 소설은 권력과 부에 대한 욕망의 그러데이션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는 걸 잘 알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을 펼친 독자가 책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까닭은 성형이라는 가공인물을 통해 역사 속 인물을 생생하게 되살릴 뿐만 아니라 작가의 능청스러움에 독자 역시 깜빡 속아 넘어가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허구라는 걸 까맣게 잊고 마치 눈앞에서 펼쳐지는 현실인 양 느꼈던 건 내가 남보다 더 순진하기 때문일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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