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 - 기시미 이치로의 사랑과 망설임의 철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오근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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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시인의 시 '즐거운 편지'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시인은 사랑을 노래하는 듯한데 그것이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사랑은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소소한 일상의 한 부분이거나 전부라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소한 일상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사랑을 할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게 됩니다.

 

"한순간 한순간의 '지금 여기'에 집중해서 지낼 수 있다면, 그날 만난 순간부터 헤어질 때까지 둘이서 나눈 이야기를 모두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유는 아주 명백합니다. 함께 지낸 시간이 '그저 보낸 시간'이 아니고 '체험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기쁨을 동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시간이 아니고, 둘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p.229~p.230)

 

이따금 어린 학생들이나 대학에 다니는 젊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생각을 들어볼 기회가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몇몇 대학생들과 저녁을 함께 먹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들의 일상이 궁금한 나로서는 대화에 적극적으로 끼어들기보다는 그저 묵묵히 듣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쩌다 나의 생각을 묻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그들로부터 들었던 대학가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한 즉석 만남의 실태는 과거 세대인 저로서는 가히 충격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서로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만나 성적인 욕구를 충족한 후 깨끗하게 헤어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내가 그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자 학생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게 아니냐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날 만나서 마음에 들면 그날 관계를 가질 수도 있고, 욕구를 충족한 후 그날 바로 헤어질 수도 있지만 다음에 또 만날 수도 있는 게 아니냐며 자신들은 옛날처럼 질질 시간만 끌면서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압축적으로 사랑을 하는 까닭에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자신이 고독하다는 감정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에 섹스를 요구하는 사람은 섹스를 커뮤니케이션의 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잇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커뮤니케이션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협력, 존경, 신뢰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상대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런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입니다." (p.259)

 

아들러 심리학을 소개한 <미움받을 용기>를 통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저자는 이 책에서 사랑이 단순한 욕구 충족이나 일시적인 감정의 결과가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능력이자 기술임을 일깨워 줍니다. 사랑하는 법을 알아야 사랑이 행복해질 뿐만 아니라 노력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사랑의 기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숙한 사랑의 방법론을 말하기 위해 저자는 심리학자인 알프레트 아들러와 에리히 프롬을 비롯해 철학자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칼 야스퍼스, 마르틴 부버, 니체 등과 함께 시인인 릴케의 저작과 에피소드를 두루 살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저자 자신의 통찰을 더하여 사랑이 인간관계의 한 부분임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사실 공부를 할수록 사랑에 대한 아들러의 입장도 예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아들러와 공동으로 연구를 했던 프로이트는 예수의 이웃사랑에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실제로 만약 "네 이웃이 너를 사랑하듯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이렇게 말했다면 이견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나도 묻고 싶습니다. 나를 사랑해주는 것도 아닌데 왜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만 하는 거냐고 말이지요. 그러나 곧 만약 당신이 나를 사랑해준다면 나도 당신을 사랑하겠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p.124~p.125)

 

저자는 서문에서 '연애에 괴로움을 느꼈던 사람, 같은 괴로움을 또다시 맛볼까 봐 두려운 사람, 그리고 바로 지금 연애 상대나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괴로움을 느끼는 사람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지금보다 좋은 사랑을 만들어가는 힌트를 발견하기를 바란다는 희망도 싣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저자는 전 연령대의 사람들이 연애와 결혼, 자녀 양육에 이르기까지 상황별, 시기별, 문제별로 해결책을 고민해보고 이 책을 통해 도움을 받으라는 이야기입니다.

 

앞서 인용했던 황동규 시인의 시에서처럼 사랑은 소소한 일상을 통해 배우는 인생 전체의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젊은 사람들의 일시적인 욕구 충족 행위는 그 횟수가 늘어날수록 사랑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나 습관을 심어줄 수도 있습니다. 육체적 관계가 아닐지라도 일상에서의 따뜻한 관계 속에서 서로의 체온을 감지할 수 있고 더불어 삶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학습되는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사랑에 빠진 남녀가 저절로 터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시간 속에 스미는 숱한 기억들은 우리가 지난 겨울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통해 배웠던 사랑의 향기였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아름다운 까닭은 피어나는 봄꽃처럼 사랑의 향기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더없이 아름다운 사랑을 배우기 위해 우리는 평생을 바치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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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는 돈관리다 - '구멍'은 막고,'돈맥'은 뚫는 알짜 장사회계
후루야 사토시 지음, 김소영 옮김, 다나카 야스히로 감수 / 쌤앤파커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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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이직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지만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때만 하더라도 '한 번 직장은 영원한 직장'이라는 생각이 강했었다. 이렇게 말하니까 취업이 마치 해병대에 입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물론 그 시절에 취직을 했던 사람이라고 해서 퇴사도, 이직도 불가능했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이런저런 이유로 퇴사를 하는 사람도 많았고. 그러나 지금보다는 이직률이 훨씬 낮았던 까닭에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자신이 정년퇴직을 하면 남은 생을 피자집이나 치킨집을 하다가 마감할 거라고 공공연히 말하곤 했다. 그게 어쩌면 당연한 코스인 것처럼.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직장 생활에 길들여진 사람이 갑자기 연 자신의 가게를 수월하게 운영할 리도 만무하고 그러다 보니 어렵게 어렵게 몇 년을 버티다가 제 풀에 지쳐 나동그라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돈과 시간이라는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채... 그런 경험을 한 번 겪어본 사람들은 자신의 주변에서 자영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면서 말리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했다. 그들에게는 어쩌면 호환·마마보다도 무서운 게 자영일지도 모른다.

 

후루야 사토시의 <장사는 돈 관리다>는 장사라면 자다가도 경기를 일으킬 만한 사람들에게 딱 맞는 책이다. 연봉 8,000만 원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던 저자가 돌연 퇴사, 한 달간 꽃 가꾸기를 배워 꽃집을 개업했으나 가게에는 파리만 날렸고 돌파구로 삼았던 게 온라인 쇼핑몰. 매출은 올랐지만 늘 은행 대출금으로 겨우겨우 유지를 하던 저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회계사에게 매달렸고 '한계이익' 원리를 배운 끝에 그는 결국 V자 회복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 책은 저자의 경험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책이지만 가게를 열고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익한 책이 아닐까 싶다.

 

"처음 꽃집을 시작했을 때는 신용카드를 받지 않고 현금으로만 거래했습니다. 매출이 100만 원 있으면 금고에도 100만 원의 현금이 있었죠. 그래서 갑자기 50만 원짜리 청구서가 날아와도 당황하지 않고 바로 지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온라인 판매를 시작하고 카드 결제를 도입하자, 고객이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면 대금은 다음 달에야 들어왔습니다." (p.20)

 

모든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처리해야 하는 자영업자에 대해 직장인들은 대개 막연한 선망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준비도 되지 않은 채 직장인에서 자영업자로 신분을 바꾸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직장 생활로 받은 퇴직금에 약간의 대출금을 합쳐 가게를 여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열에 일곱여덟은 3년을 채우지 못하고 가게 문을 닫는다. 투자금 전액과 무위로 돌아간 시간을 혹독한 수업료로 지불하면서. 이 책의 저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나 다른 게 있었다면 관리회계와 '한계이익'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방법을 늦지 않게 터득했다는 점이다.

 

"네, 총수익(매출 총이익)은 이른바 일반 안경으로 보이는 숫자입니다. 그러나 한계이익이라는 마법의 안경이 있으면 본질적인 이익이 보여요.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돈 버는 숫자가 보이는 안경이죠." (p.77)

 

책의 내용은 저자가 밟은 전철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스토리 텔링 방식으로 전개된다. "~~천재가 된 홍대리" 시리즈처럼 술술 읽힌다. '돈 관리', '회계'라는 단어에 숫자 알레르기가 있는 많은 사람들이 지레 겁을 먹을 수도 있지만 '한계이익'은 사실 말만 거창할 뿐 사칙연산만 할 줄 알면 누구나 계산할 수 있다. '한계이익'을 계산함으로써 몇 명의 직원을 고용할 수 있는지, 가격을 얼마로 정해야 할지, 예상 이익과 예상 매출액은 얼마가 될지 등 다양한 추정치를 도출할 수 있다.

 

"숫자에는 감정이 없습니다. 숫자는 단지 결과를 나타내는 기호일 뿐입니다. 그래서 더욱 숫자를 다루는 사람이야말로 가치를 가져야 하고 숫자에 마음을 싣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이익을 좇는 것은 확실히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회사는 존속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책을 여기까지 읽어주신 여러분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p.230)

 

자영업자의 비율로 보아도 그렇다. 2018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미국 6.3%, 캐나다 8.3%, 스웨덴 9.8%, 독일 10.2%, 일본 10.4%, 프랑스 11.6%, 영국 15.4%, 이태리 23.2%, 한국 25.4%로 다른 나이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폐업률 또한 높아서 대한민국은 자영업자의 천국이 아니라 자영업자의 무덤인 셈이다. 이와 같은 결과는 국가가 개인의 노후를 책임져주지 못하기 때문이지만 그로 인한 노인 빈곤층으로의 전락을 우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개인의 행복과 노후의 안정을 위해서는 북유럽처럼 고부담, 고복지가 바람직하겠지만 세금 인상에는 절대적으로 반대 입장을 보이는 사람들이 다수인 마당에 그마저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이다. 스스로 공부하여 스스로 살 길을 찾는 것, 말하자면 각자도생이 유일한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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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평평했을 때 -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과학의 모든것
그레이엄 도널드 지음, 한혁섭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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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 있어서도 가짜 과학이나 음모론은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세력을 넓혀간다. 유튜브를 통해 전파되는 허위·날조의 정보들이 판을 치는 것처럼 말이다. 예컨대 '지구인은 달에 간 적이 없다'거나 '에이즈는 특정 인종 말살을 위한 조작된 병'이라는 주장을 허무맹랑한 근거와 함께 인터넷에 게재하면 이것을 사실로 믿고 싶어 하는 몇몇 네티즌에 의해 이리저리 퍼 날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들은 마치 사실인 양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퍼져나가는 식이다.

 

어쩌면 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해 가짜 뉴스뿐만 아니라 가짜 과학의 전파도 손쉽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통신 기술의 발달 이전에 있어서 과학은 과학자들의 전유물에 지나지 않았고, 일반인들에게 과학은 그저 약간의 상식 차원에서만 다루어졌던 까닭에 과학의 원리와 이론적 지식을 깊이 있게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에 있어서 과학은 일반 대중의 지적 호기심에 부응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공유되는 까닭에 과학 지식은 특정인의 전유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물론 전파 과정에서 그럴듯하게 부풀려진 가짜 과학이 여전히 확대 재생산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다행히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과학의 모든 것이 인류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어떤 이야기는 실소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모든 비금속을 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을 찾는 연금술사나 진동기Vibrator의 다소 놀라운 역사, 지구 공동설Hollow earth theory을 믿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과학의 역사는 이상한 사람과 함께 훨씬 더 이상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p.6)

 

신문 칼럼을 연재하면서 라디오 방송 진행자이기도 한 그레이엄 도널드는 자신의 책 <지구가 평평했을 때>를 통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과학'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독일의 내과의사인 프란츠 요제프 갈에 의해 만들어진 골상학은 엉뚱하게도 직원 채용에 있어서도 골상학 전문가를 동원하게 되었고, 르완다에 있었던 벨기에 식민지청은 폴 바우치에 의해 만들어진 골상학 측정기를 통해 투치족이 후투족보다 우월하다고 결론지음으로써 르완다 내전의 대량 학살을 촉발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군인들이 발을 맞춰 행군함으로써 현수교가 무너졌다거나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는 연금술 등 우리가 잘못 알았거나 잘 모르고 있던 흥미로운 과학적 사례를 다룸으로써 일반인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고 있다.

 

"4액체설을 믿는 사람은 병은 저절로 나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인체의 자연 치유력을 높이는 치료 계획을 세웠다. 사혈Bloodletting은 열을 내리고 과도한 피를 뽑으려고 19세기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사혈은 인기가 높았고, 환자의 상태에 상관없이 의사가 끊임없이 피를 뽑아서 죽음에 이르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p.140)

 

우리는 흔히 지금까지 밝혀진 과학적 이론이 마치 신의 계시라도 되는 양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후 새로운 이론이 출현하여 현재의 이론을 뒤엎을 때 우리가 믿던 진실은 가짜 과학이라는 오명을 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믿는 진실이 미래에도 유효하리라는 가정은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과학의 발달은 모든 것에 대해 회의하는, 말하자면 의심을 멈추지 않는 어느 괴짜 과학자에 의한 성과이기도 하다. 우리가 알던 지식은 그런 과학자에 의해 일부의 오류가 수정되기도 하고, 새로운 이론이 등장함으로써 현재의 이론이 뒤집히기도 하는 까닭에 음모론이 아닌 어떤 의심의 빌미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해야 할지도 모른다. 과학은 의심과 호기심을 기반으로 발전하는 까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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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벌써 겨울에서 봄으로 조금씩 기울고 있다. 겨울이 지나간다는 것 혹은 봄이 온다는 것은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활짝 펴고 따스한 봄햇살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런 설렘이 있었다. 오래지 않은 과거에는 말이다. 그러나 올해는 어찌 된 게 설렘은 고사하고 두려움이 앞선다. 기온이 오르고 바람이 잦아든다는 건 미세먼지의 농도가 높아진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답답한 집 안에 갇혀 지낸다는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며칠째 바깥출입을 자제한 채 실내에서만 머물고 있다. 뒹굴거리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책보다 더 좋은 것도 없지 싶다. 이윤용의 <이제 너는 노땡큐>를 읽고 있다. 책날개에 있는 저자에 대한 소개글을 보니 라디오작가란다.  '해외에서 살아본 적 없는 서울 토박이로, 용기 없어 사고 못 치는 순둥이로, 라디오가 좋아 일에 매달리는 일벌레로 살다가, 세상의 쓴맛과 인간관계의 독한 맛을 경험하고 이제는 흐트러진 날라리로 살고 싶은 싱글 여성'이라고 씌어 있다. 방송 작가의 글은 대개 은어와 비속어가 살짝살짝 뒤섞인 감각적인 글이 많다. 설렁설렁 읽기에는 편하고, 이따금 깊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지만 너무 깊이 들어가는 건 싫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고 있는가. 키워야 하는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명품백이나 보석으로 치장하는 데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하루 세끼 먹고 살 수만 있으면 되는데 왜 선뜻 블루존에 가서 살 마음이 들지 않는 걸까. 그건 아마도 지금껏 살면서 움켜쥔 몇 안 되는 결과물들을 내려놓을 용기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 정도면 엄청 욕심 없이 사는 거야, 라고 내가 나에게 우겨도, 가만 들여다보면 지금의 일을 스스로 놓을 자신도, 들어온 일을 쿨하게 거절할 용기도 없는 사람. 슬프지만 그게 나인 것 같다. 우리 블루존에 가서 살까? 친구의 물음에 흔쾌히 대답할 그날이 올까. 내가 '욕심존'에서 벗어날 용기를 가질 그날 말이다."

 

직업은 각자 다 달라도 살아가는 모습은 다 거기서 거기인 듯하다. 적당히 고민하고, 적당히 포기하면서, 또 적당히 타협하면서, 그래도 나만의 자존감은 지키고 싶은, 그러면서도 뭔가 하얀 백지와 같은 도덕심으로 내 삶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길 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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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사탕 내리는 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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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문장이 소설 전체를 대변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또는 소설 속 한 문장으로 인해 한 번도 본 적 없는 작가의 이미지를 확연히 깨닫게 될 때도 있다. 소설이 아닌 다른 장르의 책에서도 그렇겠지만 말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평소에도 많은 대화를 나누던 가까운 사람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 말에 의해 그 사람 전체가 새로이 규정되는 것과 흡사하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별사탕 내리는 밤>을 읽었던 독자라면 누구나 '믿지 않으면 배신당할 일도 없는 것이다.'라거나 '절대 남자 생각대로 끌려 살지 않을 거야.'라는 문장이 소설을 읽는 내내 자신의 머릿속을 감돌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다른 문장도 있다. "프랑스 영화를 보면 늘 술이 당겨."라고 했던 소설 속 미카엘라의 말에 나 역시 '그래, 맞아.'라고 동감하면서 작가인 에쿠니 가오리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부각되었다. 물론 이 모든 게 아주 사사로운 개인적인 경험에 불과할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거나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고 일반화 시킬 생각은 조금도 없다.

 

간결하고 확신 찬 듯한 에쿠니 가오리의 문체는 길고 화려한 문장으로 독자들을 유혹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작가가 생각했던 이미지를 독자들에게 여과 없이 옮겨놓는 듯하다. 벽돌을 찍어내듯이. 그런 까닭에 소설을 읽는 독자는 '읽는다'는 느낌보다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본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간결한 문장 속에 작가가 생각하는 이미지를 심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사와코의 목소리는 즐거운 듯 울렸다. 그리웠던 거다. 조금도 달콤하지 않은, 그렇지만 마음 편하고 친밀한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그 그리움은 현관에서 한 발 들여놓자마자 다부치가 웃음을 터뜨리며, "진짜 여기 사는 거예요?"라고 말했을 때도 강도를 더했고, "연기파네."라고 말했을 때도 강도를 더했다. 다부치가 한마디 할 때마다 다쓰야와 함께했던 결혼 생활의 거짓이 한 꺼풀 한 꺼풀 벗겨지면서 과거의 자신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만 같았다. 과거의,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었던 건전한 자신이." (p.136)

 

 

소설은 주인공인 사와코(카리나)와 미카엘라(도와코), 미카엘라의 딸인 아젤렌의 일상이 번갈아가며 그려진다. 이따금, 그렇다 아주 이따금 소설의 주인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다쓰야와 사와코의 새로운 애인이 된 다부치가 등장할 뿐이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기 그지없는 인물 구성이다. 단출한 인물들이 엮어내는 이야기는 의외로 복잡하다. 남녀 간의 사랑 문제도, 결혼이라는 굴레와 이민자의 삶도, 이성 간의 사랑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도, 그리고 삶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도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은연중에 떠올리게 된다.

 

십대의 어린 나이일 때부터 서로의 연인을 공유하기로 했던 사와코와 미카엘라.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설정에 잠시 당황할 수도 있지만 충격은 오래가지 않는다.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아, 작가는 소설의 주인공인 자매가 그런 약속을 하도록 쓸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고 이해하게 된다. 일본계 아르헨티나 이민자 2세로 자랐던 자매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였을 테고,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공유하기로 하는 소녀들만의 약속은 우리에게 익숙한 제도나 관습을 끌어들이지 않는다면 머리를 끄덕일 수도 있지 않을까.

 

자매의 성격은 작가에 의해 극과 극으로 그려진다. 일본에서의 유학 시절, 언니인 사와코가 사귀던 다쓰야를 두고 미카엘라는 자신과 결혼해달라고 청한다. 그것도 언니 앞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손에 넣고 싶어 하는 적극적인 성격의 미카엘라에 비해 사와코는 말도 안 되는 그 상황을 그저 담담히 받아들일 뿐이다. 사와코는 결국 다쓰야와 결혼하여 일본에 남고, 난잡한 생활을 했던 미카엘라는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임신한 채 아르헨티나로 돌아간다. 그 후 자매는 달라진 환경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자신의 딸 아젤렌을 돌보며 독신으로 살아가는 미카엘라와 사업에 성공하여 바쁘게 사는 다쓰야와 떨어져 도쿄 외곽에서 전원의 삶을 즐기는 사와코.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사와코는 자신의 스페인어 제자였던 다부치와 함께 아르헨티나로 향하는데...

 

"나는 엄마와 카리나가 어렸을 때 땅에 별사탕을 묻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게 일본 밤하늘의 별이 될 거라 상상했다는 이야기. 이 거리에 반짝이는 별은 그러니까 일본에서 누군가가 땅에 묻은 별사탕이겠거니 상상했다는 이야기를." (p.407~p.408)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 어쩌면 확신에 차 있다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헤어진 연인들은 서로의 사랑이 식기 시작한 시점을, 상대방의 사소한 행동이 무엇을 말하려 했던 것인지를 확연히 알게 된다. 그러므로 '사랑에 눈이 멀었다'는 표현은 어느 정도 정확하다. 상대방이 말하는 무언의 몸짓에서, 나를 향한 달콤한 말의 향연에서 사랑의 진위를 파악하는 데는 어쩌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가짜 사랑일지언정 모르는 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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