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언제나 서글프거나 서글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상 과거에 대한 진한 향수를 지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과거를 강하게 부정함으로써 자신이 저지른 지난날의 과오를 덮으려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상반된 행위는 모두 인간의 나약함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서글픈 것이다. 과거를 부정하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염두에 둔 것이기에 더욱 쓸쓸하고 그 행위자에 대한 연민과 애처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잘못 살아왔다고 판단하는 사람의 대체적인 반응은 자기부정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까닭에 자신의 과오를 바로잡을 수는 없고,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까닭에 자신이 죽고 난 후 자신에 대한 세간의 판단이 두려워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얼마 남지 않은 삶의 기간 동안 자신의 과오를 적극적으로 부정함은 물론 자신의 행위에 동조하거나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집착함으로써 자신이 죽은 후에도 그들이 자신을 대신하여 세간의 평가를 바로잡아줄 것이라고 굳게 믿게 되는 것이다. 통렬한 반성을 하는 사람은 오히려 용기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당당한 사람은 잘 살아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제 전두환 씨의 법정 출두 장면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은 그에 대한 연민이었다. 얼마나 나약하고 추한 모습이었던가.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고, 대중 앞에서 반성조차 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 그럼에도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난 후 내려질 세간의 평가에 대해서는 몹시 두려워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 그는 딱 그 지점에 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역시 많지 않았던 듯하다. 대중을 향한 적개심은 나약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었을까. 자신의 공포를 드러낸 단 한 마디의 문장. "이거 왜 이래!" 공포와 적개심이 한데 뭉쳐진 언어 밖의 언어. 가장 나약한 사람이 취할 수 있는 자기부정의 언어. 그리고 공포와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한 더욱 과장된 몸짓. 그 모든 감정이 하나에 응축되어 터져 나온 말, "이거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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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언수 소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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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모르던 작가의 저작을 읽는다는 건 일상에서의 우연한 만남처럼 드라마틱한 경우가 종종 있다. 내게는 김언수 작가가 그런 경우였다. 자주 찾는 도서관의 서가에서 책을 둘러보던 중 김연수 작가의 코너에서 시선이 멎었고, 서가에 꽂힌 책들 중 못 보던 책을 한 권 발견했다. 책의 제목인 즉 <설계자들>. 나는 그 책의 저자가 김연수 작가가 아닌 김언수 작가였다는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빌려온 책을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김연수 작가가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만 생각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잘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내심 놀라워하면서... 그러나 리뷰를 쓰려고 보니 김연수 작가의 저서에는 <설계자들>이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책의 제목으로 검색한 후에야 비로소 저자가 김연수가 아닌 김언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연수 작가와는 완전히 다른 장르를 추구하는 김언수 작가의 저서를 어떻게 김연수 작가로 오해할 수 있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나는 그렇게 나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통해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었다.

 

김연수, 아니 김언수 작가의 소설집 <잽>은 작가의 상상력과 이력을 잘 드러내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소설가로서의 김언수 작가가 그동안 자신이 쓴 단편소설을 엮어 한 권의 소설집으로 출간했다기보다 소설가로서 자신의 이력을 단편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써내려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한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 책의 중반부에 실린 <참 쉽게 배우는 글짓기 교실>이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을 통해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려 한다. 리뷰를 갈음하여.

 

삼십대 초반의 이혼남이자 중소기업의 총무과 대리인 송정오, 그는 어느 날 퇴근길에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영문도 모른 채 납치된다. 후진을 하더 차와 약간의 충돌이 있었고, 사고를 낸 운전자가 갑자기 그가 소지했던 전기충격기를 꺼내더니 느닷없이 가격하는 바람에 그대로 기절을 한 것이다. 자동차 트렁크에 실려 끌려간 곳에서 눈을 떠보니 치과 수술용 의자 같은 곳에 묶여 있었다. 송정오를 납치한 사람들은 그 자신도 몰랐던 가계를 줄줄이 꿰고 있었다. 송정오가 태어나기도 전에 월북한 할아버지는 조선 노동당 당검열위원회 부국장까지 올랐고, 아버지 송만길은 1957년에 월남하여 고정간첩으로 활동하다 베트남으로 피신한 후 마카오에서 행적이 끊겼다는 것. 그리고 송정오 본인은 워커힐 호텔 복도 앞에서 김석산을 권총으로 암살했다는 죄명이었다. 송정오가 이를 부인하자 전기고문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이번 암살 사건이 정말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하는 사실적인 내용이네. 복도에 어떤 표식을 했고, 엘리베이터는 몇 층에서 내렸으며, 너는 무슨 옷을 입고 잇었고, 아침식사는 어디서 무슨 메뉴로 했는가 하는 자네만 알고 있는 그런 사실적인 내용이란 말이지." (p.129)

 

끔찍한 고문이 멈춘 후 그들은 종정오에게 종이와 펜, 기타 자료들-이를테면 경찰 측의 보고서, 국과수 검시관들의 보고서, 갖가지 의혹을 담은 신문 기사들- 을 던져주고 자리를 뜬다. 모든 의혹들을 말끔하게 풀어줄 수 있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진술서를 쓰라고 요구하면서. 송정오에게 주어진 시간은 열두 시간이었다. 그들은 송정오가 쓴 진술서를 검토한 후,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였고, 강요와 협박 속에서 진술서 쓰기는 계속되었다. 그들이 요구하는 사실성과 개연성을 충족할 때까지. 결국 송정오는 아무런 의혹도 모순도 존재하지 않는, 논리적이고 명확한 진술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자료만 준다면 어떤 진술서도 열두 시간 안에 완벽하게 써낼 수 있는. 진술서 쓰기의 달인으로 다시 태어난 송정오는 그가 처음 납치되었던 지하주차장으로 내던져지지만 수사관에 의해 체포가 된다. 김석산의 살해범으로. 송정오는 수사관 앞에서 조사를 받고 진술서를 쓰게 되는데...

 

송정오의 글쓰기 솜씨가 달인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반복적인 연습과 고문에 대한 공포, 그리고 고문을 받지 않기 위한 간절함이 이루어낸 결과였다. 김언수 작가는 이 작품에서 소설 속 주인공 송정오를 통해 자신을 설명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글쓰기에 그닥 재능이 없던 자신이 어느 날 특별한 이유도 없이 글쓰기 세계에 납치되었고, 규칙적인 시간 내에 지루한 글쓰기 연습을 반복하였고, 자신이 쓴 글에 대한 세간의 혹평이나 지적을 받아들인 후 다시 글쓰기에 매진하여 마침내 작가로 등단하는 그런 과정들. 진술서의 '진'자도 몰랐던 송정오가 진술서의 달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평범했던 자신이 작가로 등단할 수 잇었던 과정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작가는 그렇게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너스레를 떨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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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의 나날
시바타 쇼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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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이를테면 나이가 아주 어리거나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가만히 지켜볼라치면 인생이란 그저 누군가 정해진 길을 순종하며 조용히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곤 한다.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사람들이 겪는 하루하루의 역동적인 변화는 그들에게 조금도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정해진 운명에 따라 조용히 걷다가 이따금 의미도 없는 함정에 빠져 고초를 겪기도 하는, 별반 특이할 것도 없는 그만그만한 인생을 조용히 살다 가는 게 대다수 사람들이 삶인 듯 여겨지는 것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이것은 마치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저 아래편 사람들의 꼬물거림을 지켜볼 때의 느낌과 흡사하다.

 

한 사람의 삶을 멀찍이 떨어진 채 무관심한 필체로 그려낸 소설들을 몇 편 알고 있다. 그런 소설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로 서두에 꺼낸 그런 느낌을 받곤 한다. 시바타 쇼의 소설 <그래도 우리의 나날>도 그중 하나다. 간결한 필체로 무심하게 써내려간 그의 소설은 무덤덤하다 못해 처연한 느낌마저 든다. 한 사람의 삶을 이렇게 무덤덤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하는 비판 의식과 함께.

 

"어쨌든 나는 소네의 얘기 속에서 이미 마지막 윤곽이 정해진 사노의 삶에 관해 생각하기보다, 내 속에서 요동치는 그의 죽음의 무게를 재고 싶었다. 그의 죽음의 분위기가 그 늦가을 날 차가운 빗물의 습기와 함께 이미 내 피부에 엉겨붙은 것 같았다. 나는 그날, 내키지 않아 하는 소네에게 부탁하여 요코하마 근처에 있는 그의 집까지 가서 사노의 편지를 빌려 왔다." (p.52)

 

소설은 주인공인 '나(후미오)'가 헌책방에서 자신도 모르게 구입한 'H전집'으로부터 시작된다.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인 후미오는 먼 친척뻘의 약혼녀인 '세쓰코'와 함께 취직이 내정된 지방의 대학으로 내려갈 예정이었다. 'H전집'에는 소장자의 장서인이 찍혀 있었는데, 그 도장의 주인은 대학 시절 세쓰코와 함께 역사연구회에 몸담았던 동료 회원 '사노'의 것으로 밝혀졌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공산당에 가입하여 지하 군사조직에 참가할 정도로 극렬 공산주의자였던 사노는 1955년 무장투쟁을 지향하던 일본 공산당이 '육전협(제6회 전국협의회) 결의' 이후에 평화혁명으로 노선을 전환하자, 학교로 돌아와 평범한 대학생활을 이어가고, 졸업 후 s전철에 취업하여 사람들과 연락을 끊은 채 혼자만의 조용한 삶을 산다. 세쓰코의 부탁으로 사노의 행적을 좇던 후미오는 사노와 같은 고등학교 출신인 소네로부터 사노가 죽기 직전에 쓴, 유서나 다름없는 편지를 입수한다.

 

"암이라는 단어를 아무런 무게도 느끼지 않고 가볍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젊음의 특권이다. 나 역시 스무 살 때는 사람이 한 번은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것이 내일이라도 나를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것이 언젠가는 찾아온다는 것조차 진지하게 느낀 적이 없다. 그래서 노인도 똑같이 태평스러울 거라고 생각했다." (P.79)

 

조용히 살던 사노의 생각이 극단적으로 변했던 것은 s전철 부사장의 별장에 초대된 후였다. 부와 권력을 소유했던 부사장은 자식이 없었고, 사노에게 친척뻘의 어린 여대생인 아야코를 소개했다. 미래의 신랑감 예비 후보로 말이다. 별장에서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부사장의 표정이 안 좋아졌고 암이 아니냐는 아야코의 농담에 부사장의 표정이 심각하게 어두워졌던 것이다. 모든 걸 다 가진 듯한 부사장도 죽음 앞에서 저토록 공허하고 씁쓸한 표정을 짓는데 사노 자신은 어떨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노는 '결국 죽을 때가 돼서 생각나는 일이 과거에 저지른 배신이라면' 하는 생각과 함께 과거 자신이 시위 대열에서 도망쳤던 단 한 번의 배신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사는 것에 대한 귀찮음과 죽으면 모든 것이 편해질 거라는 속삭임이 한데 어우러졌다.

 

"행복에는 몇 종류가 있는데 사람은 그중에서 자기 몸에 맞는 행복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해. 잘못된 행복을 잡으면 그건 손바닥 안에서 금세 불행으로 바뀌어버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행이 몇 종류인가 있을 거야, 분명. 그리고 사람은 거기서 자기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는 거지. 정말로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면, 그건 너무 잘 맞아서 쉬이 익숙해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행복과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 거야." (p.24~p.25)

 

사노의 유서를 읽은 두 사람, 후미오와 세쓰코는 서로 엇갈리기만 했던 지난날을 떠올린다. 그리고 뭔가 부족하기만 했던 청춘의 과오를 뒤로 한 채 새롭게 출발하고자 했던 두 사람의 약혼과 오직 행복한 미래만 꿈꾸었던 2년여의 시간들. 그렇게 조용히 흘러가던 시간 속에 사노의 유서는 계속해서 의문을 던진다. 역사연구회의 노세를 육체가 아닌 정신적으로 깊이 사랑했던 세쓰코는 후미오에게서도 그런 느낌을 찾으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후미오는 세쓰코로부터 길고 긴 편지를 받는다.

 

"우리 인간의 생활은 늘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망막한 세상의 심연 위에 노출된 채 빛이 바래가지. 또 자칫하면 그 끝없는 깊이 속에 빠져들기도 하고. 아니, 그런 망막함 속에 표류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생활일지도 몰라. 그럼에도 내 생활은 의미 없는 일이 연속으로 일어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어. 언제나 상대와 뭔가를 공유하고 싶다, 두 사람의 생활 속에 뭔가 공통된 의미를 갖고 싶다고 바란 것도 망막한 세상에 확실한 못을 박고 싶은, 그것을 한 개 한 개 박음으로써 단조로운 시간의 흐름이 아닌 역사라고 부를 만한 것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었어. 그럼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우리 주위에 펼쳐진 이 무한한 공간, 마침내 우리를 죽음 속으로 사라지게 할 이 무한한 시간을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꼈어.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추구하지 않고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야." (p.185~p.186)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삶은 더 공허해진다. 그것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 양 찾고 또 찾다가 결국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일과 같다. 자신의 실존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단지 착각에 불과할 뿐이다.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서는 계속해서 삶을 유지한다는 게 힘들다는 건 알지만 숫제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런 질문조차 던지지 않는다면 사는 건 오히려 가벼워진다. 그러자면 멀리서 나의 삶을 바라보는 일은 멈춰야 한다. 이제는 고인이 된 스티븐 호킹 박사도 '신은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우주는 과학의 법칙에 따라 무(無)에서 자연스럽게 생겼고 우주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질량을 가진 덩어리와 같은 물질과 에너지, 공간이라는 세 가지 기본 재료만 있으면 된다.'고 답하지 않았던가. 삶은 의미를 찾아야만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살아지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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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제1야당인 자유당의 나경원 원내대표가 국민들의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게 하는 사이다 발언을 해서 박수를 받고 있는 듯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선거법 등 주요 법안 '패스트트랙' 상정 추진에 대해 "이렇게 야당을 무시하고 멋대로 마음대로 하는 여당의 태도에 대해 거듭 경고하지만 이제 의원직 총사퇴를 불사하고 맞서겠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했다는데 이보다 더 반가운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조금 과장하자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분란이란 분란은 모두 자유당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게다가 자유당은 그동안 선거법에 대해 다른 대안도 내놓지 않은 채 사사건건 반대만 일삼아오기도 했었지요. 그랬던 자유당 의원들이 모두 의원직을 내려놓겠다니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있을라고요. 쌍수를 들어 환영할 밖에요.

 

나경원 원내대표가 조건을 달았던 바와 같이 더불어민주당은 더욱더 야당을 무시하고 멋대로 마음대로 함으로써 하루빨리 자유당 의원들이 국회의원직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국민들이 바라는 바는 그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시끄럽겠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리 되어야 할 듯합니다. 그동안 5.18 망언을 일삼던 의원들을 향해 사퇴하라고 국민들이 얼마나 외쳤습니까. 그럼에도 꿈쩍도 하지 않던 그들인데 자발적으로 그만두겠다는데 돕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오늘은 111주년 세계 여성의 날,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대한민국의 여성 국회의원으로서 조국을 위해 큰 결단을 내린 나경원 원내대표를 향해 심심한 존경의 말을 전합니다. 부디 그 결심 흔들리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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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19-03-08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꼼쥐님 격렬하게 찬성합니다! 시원하네요!ㅎ
사이다 사러가다가 필요없을것 같아서 포도쥬스 삽니다!ㅎ

꼼쥐 2019-03-09 16:46   좋아요 1 | URL
ㅎㅎ 포도쥬스도 좋지요.
정말이지 자유당 의원들이 총사퇴를 단행한다면 마을 사람들에게 떡이라도 돌릴 듯합니다.

transient-guest 2019-03-09 0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스가 나베때문에 시끄럽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네요 저도 나베와 자유당의원들의 총사퇴를 지지합니다

꼼쥐 2019-03-09 16:47   좋아요 1 | URL
지금이라도 당장 사퇴서를 낸다면 자유당 의원들 전체에게 감사의 문자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포노 사피엔스 -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최재붕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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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이엔가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고, 가까운 미래에 우리의 삶은 정확히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감이 오거나 어떤 근거나 데이터를 통해 예측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우리는 단지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협박용(?) 단어로서 혹은 비슷한 세대 간의 작업용(?) 멘트로서 '4차 산업혁명'을 입에 올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이렇게 자주 사용하다 보니 왠지 친근해진 느낌도 들고, '4차 산업혁명'이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온 듯한 느낌도 들긴 합니다.

 

공부는 하지 않고 종일 게임만 하는 아이들에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그렇게 게임만 하면 너 거지되기 십상이다."라거나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고 있는데 우리도 잘 준비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공허한 말을 지인들과의 대화 중간에 슬쩍 끼워넣기도 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정확한 의미도 모르는 채 이곳저곳에 갖다 붙이곤 하지요. 4차 산업혁명의 권위자이자 성균관대 교수이기도 한 최재붕 교수의 저서 <포노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교차했던 건 아마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비롯되었던 듯합니다.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권력이 소비자에게로 이동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산업 생태계의 지각 변동이 발생했고, 모든 기업의 흥망성쇠도 소비자의 선택이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결국 포노 사피엔스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답'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잘 알아야 좋은 인재가 되고, 사람을 잘 배려할 줄 알아야 성공하는 인재가 됩니다." (p.13 '프롤로그' 중에서)

 

2007년 스티브 잡스에 의해 출시된 스마트폰으로 인해 인류는 '혁명'에 버금가는 큰 변화를 맞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부지불식간에 일어나곤 하지요. 시장의 참여자가 미처 눈치를 채기도 전에 많은 변화가 이만큼 진전되는 것이죠. 저자는 이 책에서 1장 포노 사피엔스, 신인류의 탄생, 2장 새로운 문명, '열광'으로 향한다, 3장 온디맨드, 비즈니스를 갈아엎다, 4장 지금까지 없던 인류가 온다의 총 4장에 걸쳐 우리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롭고도 급격한 변화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던 지상파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검색 포털과 유튜브의 점유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는가 하면 은해의 지점 창구 처리 비중이 급격히 줄고 무인화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대형마트의 매출은 줄고 온라인 판매가 급증하는 추세이며 결제에 있어서도 현금보다는 스마트폰 결제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누가 시켜서 된 것이 아니라 '포노 사피엔스'라는 신인류의 자발적 선택이라는 데 저자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을 소우주라고 하는 것처럼 우리는 각자의 손안에 작은 지구 하나씩을 들고 살아가게 된 셈입니다.

 

"인류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자발적으로 소비 행동을 바꿨습니다. 이러한 예상치 못한 급격한 행동 변화는 연쇄적으로 시장 생태계 전반에 혁명적 변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변화가 원인이 되어 제조업까지 영향을 받게 되는데, 그것이 슈밥이 언급한 4차 산업혁명입니다." (P.143)

 

구시대의 엄격한 질서 속에서 살아왔던 우리로서는 이와 같은 변화가 썩 달갑지는 않을 듯합니다. 게다가 스마트폰으로 인한 부작용은 곳곳에서 발견되는 까닭에 가뜩이나 부정적이던 시각이 더욱 부정적으로 바뀝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진화는 구성원 개개인이 거부하거나 과거로 되돌릴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변화에 대한 수용자는 될 수 있을지언정 변화에 대한 저항자의 입장에는 설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특징과 변화된 모습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시장의 변화와 소비 트렌드가 만들어내는 데이터는 지금이 명확한 '혁명의 시대'임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새로운 문명을 공부해야 하고, 소비자가 만들어내는 데이터를 읽고자 노력해야 하고, 킬러 콘텐츠를 만드는 전문적인 기술도 익혀야 하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과 노력들 모두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사람'입니다. 혁명의 시대, 결국 답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로 이 책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P.332 '에필로그' 중에서)

 

오늘도 우리는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짓고 있습니다. 문명의 찌꺼기와 같은 미세먼지가 다른 누구의 책임도 아닌 것처럼 스마트폰으로 인한 부작용이 곳곳에서 드러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결국 사람의 몫인 것처럼 스마트폰으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고 건강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것도 결국 우리의 몫입니다. 다행히 북서풍이 불어 한반도의 대기 상태를 잠시나마 좋아지게 한다니 그저 반가울 따름입니다. 문명의 발전은 이렇듯 명암이 공존하는가 봅니다. 언제나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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