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천천히 가도 괜찮아 - 글로벌 거지 부부 X 대만 도보 여행기
박건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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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한 긴장감 속에 느슨한 일상을 살 때가 있다. 자신은 생과 사의 기로에 선 듯 어느 때보다 강한 긴장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살고 있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나의 일상이 한껏 느슨해 보이는 것이다. 박건우의 <느리게 천천히 가도 괜찮아>를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실 박건우의 책이 처음인데 나의 생각과는 달리 작가는 유튜브나 인터넷에서 꽤나 유명한 사람이었다. '글로벌 거지 부부'라는 닉네임에 걸맞게 그는 부인인 미키 씨와 최소의 경비로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글로벌한 거지 인생을 살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자녀 계획이 없다. 만약에라도 애가 생긴다면 이민을 와서라도 이 학교에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상상에 잠기며, 단념했던 평범한 미래를 그려본 게 얼마 만이던가." (p.86)

 

작가의 생각이나 현재의 삶이 범상치 않은 듯하여 인터넷을 여기저기 뒤져 그와 연관된 글들을 찾아보았다. 인터뷰 기사도 있고, 작가가 쓴 칼럼과 여행 팁 등 다양한 글들이 올리와 있었다. 물론 동영상도 여럿이었다. 게다가 박건우의 팬을 자처하는 블로그 글도 많았다. 먼저 눈에 띄었던 건 그의 최종 학력이 고등학교 중퇴라는 거였다. 기존의 체제에 순응하지 못하는 듯 보였던 작가는 반항아 기질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학교로부터 퇴학을 당했고, 그때부터 작가의 인생이 다른 방향으로 흘렀던 듯하다. 기타를 치며 잠시 음악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관광비자로 가게 된 일본에서 막노동을 하여 돈을 조금 모았고, 모은 돈으로 노인들이 타는 세발자전거를 구입하여 타고 일본 열도를 여행하기도 했단다. 여러 건의 단기 알바를 전전했고, 태국 여행에서 만난 일본인 여행객 미키를 보고 다시는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연애를 생략한 채 바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도 했다. <느리게 천천히 가도 괜찮아>는 대만 도보 여행의 기록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총 68일에 걸친 1,113km의 대장정을 담은 그들만의 이야기이다.

 

"친구의 장례 직후 내 삶은 엉망이었다. 무작정 귀국한 탓에 돈도 없었고, 먹고살 대책도 없었다. 당장 잘 곳조차 없어 대전역 부근의 여관 달방에 살았다. 밤이면 마음이 뒤숭숭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자는 것이 고통이었던 나는 일본에 있던 미키를 대전으로 불렀다. 우리는 처절할 정도로 가난한 여관살이를 했다. 이후 소일거리를 잡고 틈틈이 책을 쓰면서 형편은 조금씩 나아졌다. 그해 무리를 해서 거처를 서울로 옮기고, 이듬해 허름한 전셋집을 마련하면서 이번 대만 여행도 가능해졌다." (p.110)

 

박건우 작가가 지나쳐 온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어쩌면 작가가 어렸을 적에 꿈꾸었던 미래는 이런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학교에서도 쫓겨나고, 어쩔 수 없이 살긴 살아야 했고, 그러다 보니 지금과 같은 삶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지금은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서울에 거처도 없고 가진 것도 없으니 다른 나라를 전전하면서도 살아야 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자족하면서 살아야 스트레스도 덜 받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막상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우리의 상상 속에서는 무척이나 어려웠을 일도 아주 쉽게 해결되기도 하고, 세상에는 나를 걱정하고 뭐라도 도와주고 싶어 하는, 친절이 몸에 밴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는 게 아닐까. 떠나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었던 일들.

 

"그러고 보니 800km를 돌파했다. 한창 뜨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한 거리다. 대만을 걷기 7주 전에 산티아고를 다녀온 나는 그로부터 채 두 달도 되지 않은 시기에 800km를 두 번째 걷고 있다. 아직 젊어서 그런지 오늘까지 버텨준 내 다리에 대해 기특함이나 건강한 육신에 대한 감사함은 느끼지 않았다. 감사를 하자면 선심을 베풀어준 대만인들, 그리고 당연히 미키에게도 하고 싶다." (p.282)

 

우리는 종종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곤 한다. 출생에서 비롯된 여정은 성장의 단계를 넘어 노년으로, 그리고 종착지에 다다르게 된다. 물론 우리네 삶의 목적이 죽음은 아니지만 누구든 피할 수 없는 여정이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여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되는가. 우리 모두가 두려움 없이 인생을 시작하는 것처럼 여행도 그렇게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인생의 축소판과 같은 여행에서 우리는 많은 우연과 마주하게 되고, 그 우연을 통해 비로소 여행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더불어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인생을 시작할 때 많은 게 필요치 않았던 것처럼 우리 앞에 펼쳐질 여행의 우연성을 믿는다면 여행에 앞서 우리가 준비할 것은 다만 한 줌의 용기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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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는 청명한 하늘이다. 가슴이 뻥 뚫릴 만큼 시원한 풍경을 마주하는 오늘과 같은 날이면 나도 꽤 괜찮은 나라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4계절이 있다는 것도 그렇고, 산과 바다를 원 없이 볼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 자원은 없지만 자연재해로부터 조금쯤 안전하다는 것도 그렇다. 물론 내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곳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런 천혜의 자연환경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은 과연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국민 전체가 그렇다는 게 아니다.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국회의원들의 거친 몸싸움과 욕설, 고성과 야유 등 일반인들이 길거리에서 그랬더라면 당장 현행범으로 체포되고도 남을 만한 짓을 서슴없이 하는 꼴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더구나 불법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들이 무슨 국가와 국민을 위한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양 포장한다는 게 텔레비전 화면으로 그 현장을 보고 있는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사실 우리나라 정치는 정경유착뿐만 아니라 정언유착 등 그들끼리의 강력한 카르텔을 형성해 왔던 까닭에 공수처법으로 인해 그러한 동맹이나 카르텔이 깨지는 걸 두려워하는 것이다. 게다가 거대 양당의 독점 구조로 인해 설령 그들이 내세우는 공약이 맘에 들지 않더라도 당선 가능성 때문에 둘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불합리한 선거가 유지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더구나 검찰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됨으로써 검찰만 장악하면 아주 손쉽게 반대 진영을 제압할 수 있지 않았던가. 말하자면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을 강력 저지하는 이면에는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겠다는 목적만 존재할 뿐 그 어떤 다른 명분도 없는 것이다.

 

자유당과 민주당이라는 거대 양당이 독점적 권력을 쥔 채 국정을 운영한다는 건 국민 전체를 두 세력으로 양분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권력 구조하에서 국민의 단합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사적인 싸움을 벌이면서도 기괴한 논리를 동원하여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의석 배치로는 어떠한 법도 통과되기 어렵다. 어차피 그리 되었으니 차기 총선이 치러지기 전까지 국회도 개원하지 않은 채 조용히 지내는 게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좋을 듯하다. 되지도 않을 일을 괜히 시도만 하여 미친개처럼 날뛰는 자유당 의원들의 기만 살려주는 꼴을 만드느니 세비로 나가는 세금이 아깝기는 하지만 국민들 정신건강을 위해 그 정도 출혈은 감수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국회의원들의 밥그릇 싸움만 보지 않았어도 짙어가는 녹음과 맑은 하늘을 보며 순순한 감동에 젖어들 수 있었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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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탈한 오늘
문지안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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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일상이 고스란히 내게 옮아오는 책이 있다. 마치 내가 저자의 삶을, 그 흔한 일상을 아주 오래전부터 살아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책. 그런 책이라면 값싼 감동이나 교훈은 그닥 필요치 않다. 가슴을 짓누르는 눅진한 무언가가 흔한 감동을 아주 값어치 없는 어떤 것으로 만들어버리니까 말이다. 오직 책에 실린 글과 사진만으로 자신의 익숙한 일상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은 남들에겐 없는 뭔가 특별한 능력을 작가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능력은 또한 누구에게나 있는, 분명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진심' 혹은 '공감'이라고 한다면 나는 작가의 능력을 1/n로 줄어들게 만드는 걸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진심이나 공감의 능력은 스스로 개발하는 것이지 태어날 때부터 누구에게는 많고 누구에게는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흔하다는 이유로 하찮게 여기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흔하기에 더욱 소중히 여기는 극소수의 사람이 존재하는 까닭에 그 차이는 더욱 크게 벌어지는 게 아닐까.

 

"이별은 늘 응집된 형태로 일상에 파장을 일으키기에 그 여파에 휩싸여 있을 때는 남은 것들이 하찮아 보이기도 하고 일상을 꾸려가는 작은 노력이 무의미해 보이기도 하지만 밥 한 그릇 퍼주는 아침, 머리 한 번 쓰다듬는 저녁, 아무 일 없다는 듯 곁에 머물러 있는 오늘이 언젠가 가슴 아리도록 그리워할 일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늘 당연하다고 여기는 평화, 그 평화를 지켜주는 존재들 위로 흐르는 비가역적인 시간. 그 시간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에 일상의 평화는 참으로 연약하고 당연하지 않다." (p.60~p.61)

 

이런 글은 작가에 대한 선입견 없이 읽는 게 좋다는 걸 잘 알면서도 책의 앞머리에 소개된 작가의 이력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스무 살에 대학에 입학해 스물두 살에 퇴학당하고 스물네 살에 다른 대학에 입학했다. 평온한 생활이 시작된 지 6개월,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술만으로 해결될 거라 생각해 3000cc에 육박하는 조직을 덜어내고 보니 다른 장기에 전이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이렇게 시작되는 작가 자신에 대한 소개글은 어쩌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선입견을 심어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돈이나 명예, 승진과 같은 보편적 가치가 아닌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간절히 원한다고 작가는 덧붙였다. '믿기 어렵겠지만 세상에는 안온한 일상을 갈망하는 이들이 있다'고 말하면서.

 

작가는 반려견, 반려묘와 함께 하는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지만 이런저런 인연으로 함께 살게 되었던 반려견이나 반려묘와의 영원한 이별과 그로 인한 상실감을 아주 세심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털어놓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곁에서 평범한 일상을 지켜주는 반려동물들에 대해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작가의 이야기는 이따금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회귀하다가 익숙한 듯 현재의 오늘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버릇처럼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향하는 생각의 섣부른 발길을 주저앉힌다.

 

"지나갈 것을 알지만

지나간 하루하루가 고될 때는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중에 웃으며 얘기할 거라는 사실도 알지만

당장 엷은 미소도 지을 수 없는 날들,

그 시기의 사람들은 대부분 몹시 외롭다." (p.192)

 

가슴이 따뜻해지는 사진과 짧은 글들 사이사이의 여백에서 나는 작가가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을 떠올려본다. 오늘처럼 흐리고 이따금 비가 내리는 주말 오후, 휴일을 계획하는 많은 사람들의 들뜬 기대 뒤에는 기척도 없이 숨죽이며 살아야 하는 시간 뒤편의 사람들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매일매일의 일상이 미래로 나아가는 하루가 되지 못하고 죽는 날까지 그저 묵묵히 견뎌야 하는 깨어 있는 시간에 불과하다고 느끼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과 어깨를 맞대고 자신의 체온을 조금쯤 나눌 듯한 작가의 진심이 느껴진다.

 

"순진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나는 몸으로 전하는 가치를 아직 믿고 있다. 손끝으로 전하는 온기, 소소한 것에 담긴 소소하지 않은 무엇, 그 엷은 온도를 느끼는 촉을 잃지 않으려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적어도 몸은 머리만큼 간사하지 않기에, 사람들의 안쪽에는 말로 다 전하지 못하는 뜨끈한 물 주머니 같은 것이 있기에." (p.204)

 

웅숭깊은 사색이 돋보이는 글은 사람을 들뜨게 하지 않는다. 평소 경박하거나 진중하지 못한 사람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힘이 있다. 날카롭기만 하던 표정도 어느 순간 온화하게 변하고, 옅은 미소만으로도 세상의 기온은 1도쯤 높아질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이들을 향해 무탈한 오늘을 비는 작가의 마음이 돋보였던, 금요일 오후의 여백 속으로 균질한 시간의 알갱이들이 안개처럼 스며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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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성형외과를 개업한 친구의 전화를 받았던 건 어제 낮이었다. 시간이 되면 저녁이나 같이 먹자는 친구의 말에 '이 놈 또 부부싸움을 대판 한 거 아냐?' 하는 의심이 먼저 들었지만 드러나는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러마 하고 선선히 승낙을 하고, 약속 장소까지 일사천리로 잡고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약속 시간보다 10여분 일찍 도착했건만 친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의사라는 직업을 핑계 삼아 약속 시간에 늦어도 된다는 생각은 애저녁에 버리는 게 좋다는 타박을 약속 시간에 늦을 때마다 여러 번 반복했건만 친구는 이번에도 늦을 듯했다. 식탁 위에 물 한 잔을 받아 놓고 멀뚱히 앉아 사람을 기다리는 일도 참 오랜만이었다. "갑자기 환자가 와서 말이야..." 하는 틀에 박힌 변명을 늘어놓으며 친구가 나타난 건 약속 시간이 30분쯤 지난 후였다. 늘 그래왔지만 친구를 기다리며 나는 '가버릴까?' 하다가 기왕 왔으니 올 때까지 기다릴까?' 하는 두 가지 상반된 질문을 놓고 내적 갈등에 시달렸다.

 

멋쩍은 웃음과 함께 친구의 변명도 한동안 이어졌지만 혼자 기다렸던 나의 시간은 이미 어쩔 수 없는 과거가 되었고, 누구에게도 보상받지 못할 무용한 시간이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나 나나 담백한 한식을 좋아하는 영락없는 촌놈인지라 메뉴 선정에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두부전골이 맛있다는 친구의 말에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고 음식이 나오자마자 우리는 전골냄비에 코를 박은 채 허기를 달래느라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어느 정도 허기가 가시자 친구는 버닝썬 사태 때문에 걱정이라며 내 쪽을 쳐다봤다. 자다가 봉창 두들긴다더니 갑자기 웬 버닝썬 사태를 들먹이냐고 타박을 하자 친구는 아주 진지한 낯빛으로 자신의 말이 장난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고 했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려는지 시사에는 도통 관심이 없던 친구가 버닝썬 사태를 거론하니 조금 생뚱맞은 느낌이 들기는 했으나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의 말인 즉 자신의 병원을 찾는 고객은 대부분이 여성이지만 남자들도 미용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최근에는 남성 고객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고 했다. 그런데 버닝썬 사태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여성 고객들 사이에서도 남자가 잘 생기면 인물값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회자된다면서 이런 추세라면 남성 고객이 증가하던 추세가 바뀌지 않을까 걱정이라는 말이었다. 한마디로 버닝썬 사태가 자신의 돈벌이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는 얘기. 나는 친구의 말에 곧바로 반격을 가했다. "말은 바로 해야지. 버닝썬 사태는 인물이 잘생긴 애들에 의해 벌어진 일이 아니고,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돈을 소유한 사람들에 의해 사달이 난 거야. 돈은 사람들의 도덕성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너도 적당히 벌어." 친구는 나의 말에 몇 번인가 반박을 했지만 굳이 이겨먹을 심산도 아니었기에 적당한 선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내가 90년대 초에 호주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 놀랐던 건 캠퍼스를 활보하는 청춘들이 푸르른 생명력으로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진한 화장과 명품 옷으로 자신을 뽐내려는 각축장이 되어가던 우리나라의 대학과는 달리 당시의 호주 대학은 화장기 없는 얼굴에 청바지에 티셔츠 한 장을 걸친, 오직 자신의 젊음을 누군가에게 내보일 뿐 다른 꾸밈이라고는 전혀 관심조차 없는 대학생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그야말로 대학 교정은 푸르른 생명력으로 넘쳐나는 듯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어제 친구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나는 문득 그때 생각을 했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자신의 미를 뽐내기 위한 각축장이 아니라 자신의 부를 자랑하기 위한 아비규환의 장이 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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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순례길이다 - 지친 영혼의 위로, 대성당에서 대성당까지
김희곤 지음 / 오브제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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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방사수까지는 아니지만 어쩌다 시간이 되면 싫증 내거나 지루해하지 않고, 때에 따라서는 아주 진득하게 시청하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텔레비전을 즐겨 보거나 쉽게 빠져들지 않는 까닭에 남들이 다들 재미있다며 추천하는 프로그램도 일부러 시간을 내어 시청한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은 듯하다. 그랬던 내가 자발적으로 텔레비전 앞에 앉게 될 줄이야. 나로서도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세간의 관심을 받는 인기 프로그램도 아닌 듯한데 말이다.

 

금요일 밤에 나를 텔레비전 앞으로 불러들이는 프로그램은 <스페인 하숙>이다. 유해진, 차승원, 배정남이 알베르게의 주인이 되어 방문하는 순례객들에게 음식과 숙소를 제공한다는 설정의 예능 프로그램인 '스페인 하숙'은 시청자들에게 특별한 재미를 안겨줄 것 같지도 않은데 나처럼 뭔가에 홀린 듯 이끌리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가 보았다. 현대인들의 숨 가쁜 일상에 대한 반작용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런 연유로 금요일 저녁 시간을 몇 주째 텔레비전 시청에 쓰고 있다.

 

지난주에는 알베르게를 찾은 어느 외국인 순례객이 자신이 만났던 나이 든 순례객에 대한 언급이 시선을 끌었다. 10년쯤 전에 아내를 암으로 보내고 이제는 자신도 암환자가 되었다는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28번째 걷는다고 했다. 그가 남겼던 말은 '인생은 아름다운 선물과 같다'는 거였다고. 그것은 분명 어느 책에선가 한 번쯤 읽어보았음직한, 또는 누군가로부터 한 번쯤 들어본 말일 테지만 삶을 정리하는 어느 누군가로부터 듣게 될 때 그 무게는 사뭇 다르게 느껴질 듯했다. 약간의 뭉클한 감동을 느꼈던 덕분인지 나는 건축가 김희곤이 쓴 <스페인은 순례길이다>를 주말 휴일을 이용하여 단숨에 읽었다.

 

순례길의 막바지에 위치한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가 '스페인 하숙'의 촬영지라고 했다. 나는 이미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마을의 풍경을 여러 번 보아왔지만 책에서 보는 사진은 또 달랐다. 저자도 이곳에서는 뭔가 다른 기운을 느꼈던지 전에 없이 감상에 젖는 듯했다. 건축가의 시선에서 갑자기 문학가의 시선으로 바뀐 듯한 문장이 나로 하여금 잠시 넋을 놓게 했다.

 

"신의 품을 빠져나와 알베르게 마당을 가로질렀다. 스위스에서 온 숙녀가 돌담에 걸터앉아 미소 지었다. 그녀 옆에 나란히 앉아 계곡을 굽어봤다. 운무가 파란 능선 위에 솜사탕처럼 걸려 있었다. 마음도 안개구름을 타고 흘렀다. 돌집 아래 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천막 속 형형색색의 장식품들이 고개를 내밀고, 거친 벽에 매달린 표주박들이 아침 햇살을 기웃거렸다. 여기저기 농기구가 아무렇게 놓여 있는 길가에 검은 돌조각들이 담장을 따라 흐르다 산장의 벽을 따라 올라타고는 곧바로 지붕을 눌러썼다. 라 파바의 아침이 세상의 모서리에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고 있었다." (p.250)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많은 이들의 저서를 한두 권쯤 읽지 않은 사람이 없을 터,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독일의 유명한 코미디언 하페 케르켈링이 쓴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한효정의 <지금 여기, 산티아고>, 김진세의 <길은 모두에게 다른 말을 건다>,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 등 많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블로그 이웃 중 한 분의 산티아고 순례기를 빼놓지 않고 읽었었다. 걷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프랑스 남부 생장피드포르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어지는 728km의 기나긴 여정이 짝사랑의 대상처럼 가슴에 남았던 까닭이다.

 

"오늘날 파리가 매력적인 것은 순례길의 제로 포인트여서도 아니고, 단순히 아름답기 때문은 더욱 아니다. 중세와 근대의 아픈 역사를 사랑으로 감싸고 미래로 묵묵히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순례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전에 파리의 역사를 되새겨보는 게 좋다." (P.51)

 

전에 읽었던 브르통의 산문집 <걷기 예찬>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히 경험하는 것이다. 기차나 자동차는 육체의 수동성과 세계를 멀리하는 길만 가르쳐 주지만, 걷기는 눈의 활동만을 부추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목적 없이 그냥 걷는다. 지나가는 시간을 음미하고 존재를 에돌아가서 길의 종착점에 더 확실하게 이르기 위하여 걷는다. 전에 알지 못했던 장소들과 얼굴들을 발견하고 몸을 통해서 무궁무진한 감각과 관능의 세계에 대한 지식을 확대하기 위하여 걷는다.'

 

우리는 아는 만큼만 보게 되는 까닭에 산티아고 순례길에 놓인 대성당과 수도원, 그리고 수많은 중세 스페인 건축물들에 대해 약간의 지식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 혹시 걷게 될지도 모르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수많은 건축물들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나는 건축가 김희곤이 쓴 <스페인은 순례길이다>를 슬쩍 곁눈질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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