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브리오 기담 이즈미 로안 시리즈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담' 하면 역시 일본  출신의 작가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우리나라 작가들이 쓴 기담집도 여러 권 존재하고 중국 기담집이나 기타 다른 나라의 기담집도 즐비하건만 이상하게도 '기담' 하면 일본 작가가 먼저 떠오르는 걸 보면 아무래도 일본인들의 '기담' 사랑이 유난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언뜻 머리에 스치는 책만 하더라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 기담집>이나 오노 후유미의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 아사노 아쓰코의 <기담>, 아사베 다쿠의 <기담을 파는 가게> 등이 있다. 그리고 제목에는 기담이 빠져있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신작 <금빛 눈의 고양이> 역시 기담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기담' 하면 일본의 이 작가를 빼놓을 수 없다. 야마시로 아사코. 2005년 괴담 전문지 <유幽>로 데뷔한 그는 기담 전문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무작정 별나고 괴상한 이야기들만 다루기보다는 설화에 나오는 신비한 소재들을 바탕으로 마음을 울리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지어내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은 그의 재능이 잘 반영된 책이 <엠브리오 기담>이다. <엠브리오 기담>에는 표제작인 '엠브리오 기담'을 비롯하여 총 9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연작 기담집으로 작가는 책에서 항상 길을 잃는 이즈미 로안을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여행과 공포를 대비시키고 있다.

 

"내가 로안의 여행에 동해하지 않게 된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다. 이즈미 로안은 길치였다. 그는 확실히 여행에 익숙했다. 지치지 않게 걸을 줄도 아는지 하루 종일 걸어도 기운이 넘쳤다. 하지만 백이면 백, 길을 잃는다." (p.13)

 

이즈미 로안은 그가 거래하는 의뢰처(책 집필을 의뢰한 상점)에서 여행 비용을 지원받아 길 안내서를 쓰기 위한 취재를 주업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아직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훌륭한 효능을 지닌 온천이나 한 번쯤 볼 만한 사찰을 소개하기 위해 입소문만 들으면 직접 가서 확인하고 오는 게 그의 임무였다. 그와 몇 번인가 만나 말을 섞었을 때 그는 '나'(미미히코)에게 같이 여행을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고 일자리가 궁하던 '나'는  로안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인다.

 

로안과 함께 떠난 세 번째 여행지는 무릎 통증에 좋다는 온천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 주나 걸려 도착한 장소였다. 그러나 온천은 없었고, 완전히 지친 몸으로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서 로안 때문에 길을 잃었고, 갈 때는 지나지 않았던 이상한 마을을 지나게 되었는데 날이 저물어 여러 명이 공동으로 쓰는 큰 방에서 자게 되었다. 안개에 파묻혀 모든 게 희미했던 그 마을에서 나는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산책에 나섰는데 개울가에서 우연히 무엇인가를 먹고 있는 개들을 보았고, 개들이 먹다 남긴 찌꺼기를 숙소로 가져오게 된다. 새벽녘에 눈을 뜬 로안은 내 손바닥에 얹힌 물건이 인간의 태아(엠브리오)라고 했다.

 

"인간의 태아지. 모른단 말인가? 인간은 갓난아이가 되기 전에 모친의 배 속에서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네. 어제 나카조 산원産院이 있었던 걸 기억하는가? 나카조는 예로부터 낙태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지. 분명 그곳 의사가 여자 배 속에서 빼낸 태아를 근처에 버린 게야." (p.17)  

여행에 넌덜머리가 났던 '나'는 여행 세 번만에 로안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금세 죽을 줄 알았던 엠브리오는 예상을 깨고 꿈틀거리며 살아 있었고, 부모를 일찍 여의고 형제도 없었던 '나'는 엠브리오의 입가를 쌀뜨물을 묻힌 헝겊으로 축여 주기도 하고, 미지근한 물을 받아 씻겨 주는 등 애정을 갖고 돌보기 시작했다. 이즈미 로안과의 여행으로 주머니가 두둑해진 '나'는 노름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쉽게 돈을 잃고 말았다. 돈을 벌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만 했던 '나'는 집 한구석에 암막을 치고 엠브리오를 감춰 놓은 뒤 사람들을 집 안으로 끌어들여 돈을 받고 엠브리오를 구경시켰다. 엠브리오를 보겠다는 관객은 끊이지 않았고, '나'는 큰돈을 벌게 되었지만 노름으로 감당할 수 없는 큰 빚을 지고 말았다. 노름꾼 우두머리로부터 빚 독촉을 받게 된 '나'는 엠브리오를 지키기 위해 도망갈 궁리를 하고 이즈미 로안에게서 비바람을 막을 도구를 빌려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이 녀석에게 지독한 짓을 했다. 내가 이 녀석에게 좋은 아버지였다면 어째서 이런 오밤중에 강가에 멍하니 서 있겠는가? 어째서 이 녀석에게 차가운 바깥바람을 맞히겠는가? 나는 태아를 손으로 감싼 채 지금까지의 행동을 되돌아보며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p.30)

 

로안은 '나'와 태아 단둘만의 여행을 반대했다. 얼어 죽기 십상이라는 이유였다. 대신에 그가 아는 사람 중에 아이를 원하는 부부가 있으니 '나'의 노름빚을 그들이 대신 갚아주는 조건으로 태아를 그들에게 넘기자고 제안했다. 태아를 가져간 부부는 의사의 도움을 받아 태아를 배 속에 넣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로안의 부탁을 받고 심부름을 다녀오던 중 갈림길에서 쉬고 있는데, 근처에 사는 아이들 무리가 지나갔고, 그들 무리 중 한 소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 아이가 말하길, 예전에 소녀는 나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내 손바닥 위에서 잠들고, 밥그릇에 받은 미지근한 물로 목욕도 하고, 내 가슴에 딱 달라붙어 잠들면 마음이 놓였다고 했다. 소녀는 이제 갓 트인 말로 열심히 설명했다." (p.35)

 

'기담'이란 게 늘 그렇지만 때로는 오싹한 한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에이, 말도 안 돼.'라는 생각과 함께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계속해서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기담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되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훈훈한 교훈도 은연중에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이따금 '기담집'에나 나올 법한 이상한 이야기들을 현실에서 마주치는 까닭에, 때로는 '기담'보다 더 이상한 이야기들을 현실에서 전해 듣는 까닭에 '기담' 또한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게 아닐까. '세상에는 별의별 일이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까닭도 사람들의 입과 입으로 '기담' 역시 끊이지 않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아는 한 세상의 모든 책은 심리서적이다."라고 했더니 그는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책이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는 날건달도 아니고 소위 책을 좀 읽는다는 놈이 어떻게 이런 무식한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표정이었다. 잠시 동안의 어색한 침묵이 지나간 후 그도 다시 냉정을 되찾은 듯 "설마, 그럴 리가..." 하면서 서둘러 말을 멈췄다. 적어도 친구에 대한 예의상 더 이상의 심한 말을 하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멋있어 보이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이 그래. 심지어 개인의 정서와는 하등 상관이 없는 과학서적도 말이야." 그는 여전히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 "내가 납득하거나 수긍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 봐. 밑도 끝도 없이 내뱉듯 툭 하고 던지지 말고." 하면서  의자의 등받이 쪽으로 허리를 젖혔다. 나와 조금 더 멀어짐으로써 사적인 친밀감에서 벗어나 일말의 객관성을 획득하려는 듯. "이를테면 내 생각은 책을 읽는 독자가 책을 처음 받아 드는 순간부터 명확하게 호불호가 갈리는 까닭에 모든 서적은 심리서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야. 누구나 시간을 내서 책을 읽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잖아. 내용이 좋아서일 수도 있고, 저자를 좋아해서일 수도 있고, 표지가 예뻐서일 수도 있고, 기술하는 방식이 맘에 들었을 수도 있고, 주변의 누군가로부터 추천을 받았을 수도 있고, 읽기는 싫지만 내일 당장 책의 내용에 대해 발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읽을 수도 있고, 아무튼 자신의 귀한 시간을 책 읽는 데 쓴다는 건 심리적으로 동해야 한다는 거지. 그러니 세상의 모든 서적은 심리서적이라고 해도 억지는 아니라는 얘기야. 예를 들면 전에 만났던 어떤 사람이 자기계발서를 읽고 나한테 책을 읽은 소감을 말했던 적이 있는데, 책의 내용보다는 다른 책과 비교해서 이러이러한 점이 좋았다고 한 시간 이상을 설명하는데 결국 그것은 그분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순전히 기분이겠지만, 심리적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었어." 자기계발서뿐만이 아니야. 과학서적도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해서 좋았다든가,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갖지 않는 분야를 다루어줘서 좋았다든가 하는 심리적 문제로 연결되는 게 다반사이지."

 

한참을 듣고 있던 그는 옅은 미소를 띤 채 내 쪽으로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논리적 비약이 있는 것 같아. 이 자리에서 콕 집어 반박할 수는 없지만 말이야." 하였다. '모든 비평은 일종의 자서전이다.'라고 썼던 데이비드 실즈의 명제가 독자들에게 어떤 영감을 불어넣는 것처럼 때로는 가까운 사람과 하나의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활력소가 된다. 논리적으로 맞든 그르든, 비약이 존재하든 그렇지 않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대화의 내용이 이전과 조금 달라짐으로써 우리는 분명 세상이 달라진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힘들 때 시 - 아픈 세상을 걷는 당신을 위해
로저 하우스덴 지음, 문형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한 줄 시구가 가슴을 파고드는 날이 있다. 정말이지 생생하게 날 선 시의 이미지가 가슴 깊이 아로새겨지는 것이다. 그런 날이면 왠지 쓰디쓴 소주 한 잔이 생각나기도 하고, 늦은 밤 실례를 무릅쓰고 멀리 떨어진 친구에게 긴 넋두리를 풀어내고 싶기도 하다. 마치 오래된 슬픔을 새로운 슬픔으로 대체하면서 옛 슬픔을 아주 까맣게 지워버리려는 듯이 말이다. '인생은 짧다, 비록 내 아이들에겐 이것을 비밀로 하겠지만.'으로 시작하는 매기 스미스의 시 '좋은 뼈대(Good Bones)'의 시구처럼 생경하거나 전혀 새롭지 않은 시구가 울컥울컥 눈물을 지어내는, 그런 날이 있는 것이다.

 

인생은 짧다, 비록 내 아이들에겐 이것을 비밀로 하겠지만.

인생은 짧다, 그리고 흘러간 내 삶은 더 짧아졌다

수없이 달콤하고, 어리석은 짓들로 인해,

달콤하고도 어리석은 수많은 행동들

내 아이들에겐 비밀로 할 것이다. 세상은 적어도

오십 퍼센트는 끔찍한 곳, 그조차도 긍정적으로

바라본 평가인 것을, 비록 내 아이들에겐 이것을 비밀로 하겠지만. (P.21)

-----------하 략--------------------------------------------

 

영국 출신의 에세이스트 로저 하우스덴은 그의 저서 <힘들 때 시>에서 그가 뽑은 10편의 시를 소개하면서 시에 내재된 인생의 아픔과 불안, 슬픔과 고뇌를 끄집어낸다. 그리고 익숙하지만 결코 달갑지 않은 그런 감정들을 작가 자신의 설명에 곁들여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그리고 시에 내재된 무한한 치유력과 생명력에 대해 설파한다. 역자도 인정하는 바와 같이 시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조차 없는 자신도 그랬던 것처럼 독자들도 저자가 고른 시와 저자의 정성 어린 해설을 읽다 보면 저절로 시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믿게 된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이 책을 읽은 소감에 대해 물어본다면, 아마 뿌듯한 마음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맛집을 말해주는 기분이 들 것 같다. 좋은 식재료에 훌륭한 솜씨를 가진 요리사의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자랑스럽게 소개하듯, 좋은 시를 고르고 독자가 충분히 즐거움을 누리기 바라는 저자의 정성 어린 해설을 곁들인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p.182 '옮긴이의 말' 중에서)

 

나는 이따금 스마트폰이 없던 아주 오래된 과거를 아주 간절한 그리움으로 떠올리곤 한다. 그 시절에 우리는 누군가와의 약속 장소에 나가기 위해 시집 한 권을 옆구리에 낀 채 집을 나서곤 했다. 희미한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낡은 버스 좌석에 앉아, 퀴퀴한 곰팡내가 하루 종일 맴도는 어느 지하 다방의 소파에 앉아, 그리고 갈색으로 물드는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 우리는 시가 주는 낭만에 흠뻑 취하기도 했었다. 어쩌면 그 시절이 시에게도, 낭만을 갈구하는 청춘에게도 한 번쯤 누릴 수 있는 가장 찬란했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빛이 어떻게 오는지

당신에게 말해줄 수는 없다.

 

오직 내가 아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닿기 위해

놀라울 만큼 광대한 곳을 지나

이동해 왔다는 것이다. (p.103 '빛이 오는 방법'-잔 리처드슨)

------------------하 략----------------

 

시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이나 아름다움 잘 꾸며지고 각색된 것이 아니다. 그런 허위나 감추어진 진실이 우리를 위로할 것 같으면 우리의 삶도 가짜일 터, 시는 우리에게 우리의 시선 너머에 있는 진실을 직시하도록 돕는다. 시라는 필터를 통해 우리가 볼 수 없었던 현실 이전의 현실, 그 적나라한 실재를 거듭 응시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깊고 추한 상처와 뒤틀림, 고독, 불안, 피할 수 없는 운명들을 하나하나 꿰뚫어 보며 더한 슬픔에도 과감히 맞설 수 있는 커다란 용기를 얻는다.

 

"우리의 인생길에는 언제나 부러진 나뭇가지들과 돌들이 흩뿌려져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런 장애물들조차 행로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는 천상의 존재들이 아니므로 오히려 그 장애물들이야 말로 우리 인생을 실체화한다. 그 장애물들이 우리를 먼저 부서뜨리지만 않는다면, 물리적 세계의 거친 모서리에서 우리는 영혼을 평온하게 할 저항력을 기르고 또 다른 세계를 향해 문을 열 수 있다. 우리가 열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세계. 윌리엄 스태포드의 시가 튀어나온 세계이다." (p.84)

 

인간의 감정은 대개 역설적이다. 너무나 슬픈 시를 읽으면 우리도 덩달아 슬퍼질 듯하지만, 우리는 잠시 슬픔으로 인해 머뭇거리다가도 그 슬픔으로 인해 용기를 얻고, 지나간 슬픔을 걷어내기 위해 밝은 웃음을 짓곤 한다. 앞으로의 남은 인생에서 슬픔이란 다신 없을 것처럼... 그러나 멀지 않을 미래에 우리를 쓰러트릴 고통이나 슬픔이 반드시 오고야 만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다짐하듯 되뇌면서도 우리는 현재의 기쁨을 발견하기도 하고, 작은 희망을 손에 쥐기도 한다.

 

"예술가와 시인은 인류애의 마지막 형체이다. 그들만으로는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만약 그들이 없다면 세상은 아마도 인간다움을 유지해야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머리말' 중에서)

 

비가 그쳤다. 우리는 또 달라진 세상을 보고 있다. 한 편의 시를 읽듯, 어쩌면 한 줌 희망을 손 안에 쥐는 것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 기독교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교회 내의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최근에 있었던 자유당 대표의 종교 편향과 그에 동조하는 한기총 대표 회장의 발언 등으로 인해 한기총의 해체와 빤스 목사(한기총 대표 회장)의 목사직 사퇴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빤스 목사의 발언을 보면 대한민국에서 개신교의 인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명확히 보여주기도 한다. '전라도는 빨갱이'라거나 '문재인 대통령 하야 촉구' 등 기독교 정신에도 맞지 않는 부적절한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신교는 아니지만 하느님을 믿는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와 같은 부적절한 발언이 비단 빤스 목사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다. 과거서부터 꾸준히 지속되었고,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정치권에서 적당히 눈감아주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앞에서 빤스를 내리라고 하면 언제든 서슴없이 빤스를 내릴 수 있는 무식한 신도들이 많았기 때문일 터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의식도 많이 성숙되었고, 목사 한 사람이 빤스를 내리라고 지시한다고 해서 그대로 따를 사람도 이제는 거의 없지 싶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자유당과 개신교 목사들만 모르고 있는 듯하다.

 

보수의 품격을 운운하는 개신교 지도자들의 면면을 보면 그들이 마치 제정일치의 원시사회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곤 한다. 말하자면 과학은 극도로 발전하더라도 사람들의 의식은 퇴행에 퇴행을 거듭하여 제사장이 정치도 관장하는 그런 시대로 되돌아가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마치 보수의 표상인 양 선전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지금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렇게 칭찬하던 청동기 사회도 아니고 21세기 대한민국인 것을 어쩌랴. 제발 정신 좀 차리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낭만인생 2019-06-07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그런 인간도 목사라고.. 또 그런 목사를 위해 빤스도 내리는 신도들이라니.. 거참... 참 거시기 합니다.

꼼쥐 2019-06-07 17:54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우리는 정말 요지경 속 세상을 살고 있나봅니다. ㅎ
 
리케 -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의 비밀
마이크 비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에 대해 말한다. 지금 행복하냐는 질문에서부터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는 거대한 담론에 이르기까지 언제 어디서든 '행복'이라는 단어는 빠지지 않는다. 이렇게 온통 '행복'으로 둘러싸인 현실 앞에서 나는 이따금 '행복 멀미'를 한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 콘테스트에 참여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나고, 콘테스트에서 이기기 위해 목숨을 걸고 경쟁하다가 수상 트로피는 구경도 하지 못한 채 허무하게 죽어버리는 게 우리 모두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죽기 살기로 경쟁해서 당신은 과연 행복에 이르게 되었는가 묻고 싶은 심정이다. 진심으로 말이다.

 

코펜하겐 행복연구소((Happiness Research Institute)의 대표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마이크 비킹은 자신의 저서 <리케 LYKKE>에서 행복의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의미를 배제하고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먼저 행복을 정서적 영역, 인지적 영역, 에우다이모니아 영역으로 나누고, 대규모 그룹을 장기적으로 관찰하면서 삶의 변화가 그들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한다. 이렇게 파악된 행복 요소를 통해 수치화된 행복 지수를 측정할 수 있고,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행복지수를 알게 됨으로써 좀 더 행보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된다.

 

"나는 행복을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없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한 이론을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했다. 머나먼 하늘 위에 뜬 벌겋고 황량한 행성을 보며 어떻게 하면 그곳으로 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종족은 인간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삶의 질을 높일 방법을 연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행동을 조금만 바꾸면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엄청난 가능성이 존재한다. 때로는 사소한 데서 엄청난 일이 시작될 수도 있다." (p.41)

 

돌이켜보면 전반적으로 잘 살고 있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행복이 인지적 영역의 행복이다. 날마다 느끼는 감정의 형태로 분류되는 정서적 행복이나 의미와 목적이 있는 삶에서 오는 에우다이모니아 영역과는 차이가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주로 총체적인 행복, 즉 인지적 영역의 행복을 다루고 있다. 책에서는 행복한 삶이 가능해지는 요소로 공동체 의식, 돈, 건강, 자유, 신뢰, 친절을 꼽고 있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익히 다 알고 있던, 혹은 유추할 수 있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하나의 요소에 대해 좀 더 깊이 파헤쳐보면 그 의미와 실천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행복으로부터 너무나 쉽게 멀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자신이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전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든 대부분 누군가와 함께 있었던 시간을 떠올리곤 했다. 물론 이것이 타인이 행복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일까? 친구, 동료, 친척을 만나는 횟수와 연관해서 살펴보면 분명한 패턴이 있다. 타인과 자주 만나는 사람일수록 더 행복하다. 하지만 양과 질은 별개의 문제다." (p.74)

 

돈 역시 행복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소비의 형태에 따라 행복에 미치는 영향력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저자는 '돈을 주고 행복을 살 작정이라면 물품이 아니라 경험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라고 말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정신적, 육체적 건강 역시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자유는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취약한 요소인 동시에 가장 신경 써야 할 요소일지도 모른다.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는 해도 삶과 일의 균형은 여전히 일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거나 그날 하루를 돌아보며 즐겁고 유익하게 출퇴근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출퇴근길은 고역이다. 출퇴근 시간에 우리가 좌절감을 느끼는 이유는 버스나 자동차 안에 갇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p.203)

 

신뢰와 친절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맺기를 가능케 하고 관계를 지속시키는 요소이기도하다. 다른 사람을 믿는다는 것, 타인이 나에게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는다고 믿는다는 것은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강화하는 기본적인 전제인 까닭이다. 게다가 우리가 친절을 베풀 때 측좌핵이 자극되고  이는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모르핀에 살짝 취한 것 같은 호르몬이 나오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라고 말한다. 결국 우리의 행복은 나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고, 행복은 오직 타인과의 결속에서만 획득할 수 있는 관계의 부산물임을 증명한 셈이다.

 

"신뢰와 협동심과 서로가 서로의 수호자라는 깨달음이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친절을 베풀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보장할 수 있도록 우리 도시를 재편하고 삶의 질에 따라다니는 가격표를 떼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금은 이 세상의 좋은 점을 찾아야 할 때다." (p.296)

 

곁에 있는 누군가를 위해 제 몸을 움직이는 데서 오는 행복, 그리고 내가 힘들 때 다른 누군가가 나를 위해 자신의 체온을 나누어 줄 수 있다는 믿음에서 오는 행복, 일을 하고 돈을 벌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가는 데서 오는 행복, 그런 행복들을 우리는 시나브로 잊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만약 행복에도 생명이 있다면 그 행복들은 시나브로 우리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득 두려워지는 오늘, 탄생과 동시에 행복 콘테스트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혹여라도 답지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마이크 비킹의 이 책 <리케 LYKKE>는 어떨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