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사람들은 조금 힘들어하는 듯했다. 물론 장마가 물러난 뒤의 찌는 듯한 폭염에 비하면 지금의 더위는 그럭저럭 견딜 만한 더위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예년에 비해 습도가 높지 않다는 것과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는 것일 테다. 습도는 높고 바람 한 점 없는 가마솥 더위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숨이 턱턱 막히기는 하지만...

 

어제는 여야 원내대표들이 80여 일만에 국회 정상화를 합의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지 채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자유당 국회의원들에 의해 정상화 합의문 추인이 불발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뉴스를 접한 국민들 대다수는 '이게 뭐하는 짓거리인가' 잔뜩 뿔이 난 표정이었다. 인터넷에서 소식을 접한 후배는 동네 양아치들도 이런 짓거리는 하지 않을 거라며 씩씩거렸다. 게다가 강원랜드에 인사청탁을 했던 자유당 권모 의원도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하니 정치인들이 뜨거운 날씨에 국민들의 더위를 식혀주기는커녕 오히려 열기에 불을 들이대는 셈이 아닌가. 진상 짓도 이보다 더한 진상 짓이 없다.

 

그나마 속 시원했던 소식은 광화문 광장을 불법 점거한 채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하고 별 해괴한 짓거리를 일삼던 대한애국당 천막 농성인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었는데 무사히 철거했다고 하니 앓던 이가 빠진 듯 시원하다. 우리 사회의 암덩어리로 작용하는 존재는 조폭과 다름없는 극렬 자유당 의원들과 대한애국당 졸개들이 아닌가.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어야 토론과 대화가 가능할 터인데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아집과 부당한 논리에 사로잡힌 이상한 무리들이 판을 치고 있으니 10년쯤 지나면 그들도 다 죽고 없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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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블랙홀을 건너는 크리에이터를 위한 안내서
라이언 홀리데이 지음, 유정식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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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건 언제나 창작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걸 의미한다. 기존에는 없던 것, 있었지만 좀 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창작의 본능을 지닌 가능성의 존재인 동시에 창조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창작을 밥벌이나 생계의 수단으로 삼지 않는 한 창작은 그 자체로서 삶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유희의 일종이거나 기쁨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잠을 자거나 숨을 쉬는 게 지겹지 않은 것처럼 생각 자체가 지겨울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작을 업으로 삼는 순간 그것은 결코 기쁨의 원천이 될 수는 없다. 창작자 개인의 욕심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소설도 그것이 교과서에 수록되는 순간 학생들로부터 소설의 재미를 몽땅 빼앗아가는 것처럼 창작이 업으로 전환되는 순간 기쁨보다는 고단함이 더 깊게 파고드는 것이다. '책을 쓰는 일은 마치 오랜 지병을 앓듯이 지긋지긋하고 진을 빼는 고통스러운 작업'이라고 했던 조지 오웰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만약 당신이 경계를 느슨히 한다면,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갈망과 욕구는 그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과 짝을 이루며 당신을 착각과 자만심에 쉽게 빠뜨릴 수 있다. 불안하고 두려워할수록,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작품을 다시 개선하고 수정하고자 하는 열망이 높아질수록 프로젝트는 훌륭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든 당신의 창작물로 인해 조금이라도 전율을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당신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p.93)

 

<창작의 블랙홀을 건너는 크리에이터를 위한 안내서>를 쓴 라이언 홀리데이는 창작이 단순히 개인의 선천적 재능이나 우연의 산물이 아닌, 시간과 노력의 산물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개인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창작이 놀이나 취미의 수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불멸의' 또는 '불후의'와 같은 수식어를 달기 위해서는 창작자의 시간과 노력이 투자되어야 함은 물론 그와 더불어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대학을 자퇴하고 다양한 분야의 '창작 산업'을 두루 경험했던 저자는 현실에서 좋은 작품은 어떻게 잘 만들어내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잘 홍보하고 잘 판매할 수 있는지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작가 중의 작가라 말할 수 있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는 이렇게 말했다. "문학은 재미일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이기도 하다." 비즈니스에서 생존하려면 다른 사람들과 당신 자신이 돈을 가져다주도록 해야 한다. 즉 고객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 반대를 믿는다면 비즈니스는 망하고 만다." (p.151~p.152)

 

저자는 모든 창작에 있어 작품의 목적을 명확히 하고 목표 대상(고객)이 누구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목표 대상에 맞게 미세한 조정과 개선 작업을 반복하는 건 좋은 결과물을 얻기 위한 지난한 작업의 과정이다. 장난거리이자 오락의 수준에서 그치는 많은 아마추어 창작자들이 있는 반면 '불멸의' 작품을 창조하는 위대한 크리에이터가 드문 까닭은 대부분의 창작자들이 그와 같은 복잡하고 힘든 과정을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작품의 진가를 즉각 알아보느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크리에이터로서 마땅히 들여야 할 시간과 노력은 그 자체로서 가치가 높은 일이다.

 

책은 총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의 두 장은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창작물을 '만드는' 태도와 방법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좋은 창작물을 만들었다고 하여 그 결과물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어떻게 해야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창작자의 결과물을 도달시킬 수 있을지 하는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인 셈이다. 저자는 뒤의 두 장에서 '시장에서 창작물이 오래 팔리도록 하는 방법'과 '타깃이 되는 소비자군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대하여 알려준다.

 

'타이탄의 도구들'의 저자 팀 해리스와 '과감한 선택'을 쓴 제임스 알투처가 어떻게 자신의 책들을 성공시켰는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감행했던 마케팅 전략, 도요타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원칙, 록 밴드 '아이언 메이든'이 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 등 풍부한 사례들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흥미를 끈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광고 캠페인이 되려면 두 개의 핵심요소를 기억해야 한다. 고객의 '생애 가치Lifetime Value, LTV'를 알아야 하고 '행동당 비용Cost per Acquisition, CPA'을 파악해야 한다. 고객 생애 가치란 결국 고객이 당신의 고객으로 남아 있는 동안 발생하는 수익이 얼마나 되는가이고, 행동당 비용은 클릭시 비용, 반응제 광고 등으로도 불리는데 간단히 말하면 광고를 통해 고객을 확보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요소가 포함된 방정식에서 크리에이터로서의 자의식(예를 들어 "매일 아침 신문 광고에 내 작품이 나오는 걸 보는 것이 너무 좋아!"라는 생각)을 없애면 남는 것은 그런 방정식의 작동 여부가 전부다." (p.234)

 

우리는 종종 제품의 생산이나 특정 창작물의 제작에 있어 잘만 만들면 알아서 잘 팔리겠거니 생각하곤 한다. 말하자면 좋은 작품이 좋은 판매로 직결된다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좋은 창작물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지독한 판매 부진으로 인하여 망하는 경우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저자는 책에서 '영원불멸의 걸작은 불멸의 마케팅을 필요로 한다.'고 썼다. 최상의 전략을 찾고 효과가 이어지는 한 그 전략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이다.

 

저자는 책에서 크리에이터 자신의 능력과 노력, 마케팅 전략 등을 말하면서 마지막으로 '행운'에 대해 짧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통제 가능하지 않은 분야로서의 '행운'은 일회성이 아닌 '영원불멸의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것은 크리에이터로서의 창작과 판매에 전력을 다한 후에 기대할 수 있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은 그럴 때 쓰는 말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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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계산대 앞에 설 때마다 드는 생각은 우리네 인생도 이와 비슷한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전체요리든 메인요리든 혹은 후식이든 간에 각각의 단계별로 그때그때마다 정산을 요구받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먹은 음식은 누군가에 의해 꼼꼼히 계산되고 식당을 나서는 순간 한꺼번에 그 대가를 지불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들 인생도 삶에서 누리는 순간순간마다 그 대가를 지불하거나 청구되는 건 아니지만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죽음이라는 가혹한 방식으로 저마다의 삶에서 누렸던 기쁨이나 슬픔, 즐거움 등에 대한 대가를 한꺼번에 요구받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나 다른 게 있다면 우리는 식당 주인에게 언제든 정산을 요구할 수 있지만 인생에서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이제껏 누렸던 기쁨에 대한 대가를 며칠 혹은 몇 달 아픈 것으로 대가를 지불하고 싶어요,라고 말할 수 없는 까닭에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안심할 수 없는 것이다. 혹자는 말하길 인생의 매 순간마다 감사하며 살라고 하는데 나는 그게 과연 감사할 일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어찌 됐든 나는 인생에서 누리는 모든 경험에 대하여 죽음이라는 가장 비참한 방식으로 대가를 지불할 텐데 말이다. 매 순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한꺼번에 정산한다는 차이만 존재할 뿐인데 그게 어떻게 감사할 일인지... 우리가 식당 주인에게 매 순간 정산을 요구하지 않아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면 식당 주인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

 

오늘은 일 년 중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 높아진 습도 탓인지 후텁지근하다. 기말고사를 일주일여 앞둔 아들은 평소에 하지 않던 공부와 친해지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사는 게 참 만만치가 않다. 그렇다고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자신의 인생에서 가만가만 따져봐야 할 것은 죽음이라는 가혹한 대가를 치를 만큼 값진 인생을 살았는가 하는 문제일 듯하다. 자신의 생명을 내어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만족한 삶을 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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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고양이의 비밀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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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인기가 많은 작가라고 할지라도 안티팬은 늘 있게 마련이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만큼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작가는 드물지 싶다. 작가의 신작이라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빠른 시간 내에 읽고야 마는 열성팬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재미있는 책을 써내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안티팬으로 극명하게 나뉘니 말이다. 게다가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 또는 작가를 싫어하는 이유 또한 명확하다. 이쯤 되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는 반은 검은색, 반은 흰색으로 만들어진 별종의 인간인 듯 생각되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작가의 열성팬 중 한 사람인 까닭에 그의 작품이라면 빼놓지 않고 모두 읽어본 축에 속한다(고 해야 하리라.).

 

최근에 출간된 하루키의 에세이 <장수 고양이의 비밀> 역시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누군가가 빨리 읽으라 닦달하는 건 물론 아니지만 말이다. 게다가 이 책은 작가가 최근에 새로 쓴 에세이가 아니라 1995년에서 1996년까지 <주간 아사히>에 연재된 에세이 60여 편을 모아 엮은 것으로 하루키의 팬이라면 당연히 어디선가 한 번쯤 읽어봤음직한 에세이들이 더러 포함되어 있을 터이다. <노르웨이의 숲>이 예상 밖의 큰 성공을 거둔 이후 거듭되는 인터뷰 요청 등 인기 작가로서 거쳐야 했던 통과의례를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했던 소회 및 번잡한 국내 생활을 피해 외국에서 체류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 작가로서의 정체성과 일본 출판업계의 현실에 대한 단상 등이 실려 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소설가로 먹고살게 되고부터 '난처한데, 이럴 줄 알았으면 필명을 쓸 걸 그랬어' 하고 깊이 후회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혹 여러분 중에 앞으로 소설가가 되고 싶은 분이 있다면 이번 글이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p.202)

 

이상한 일이지만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르게 에세이를 읽고 있노라면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가 큰 변화도 없이 평온하게 흘러갈 것만 같은 그런 기분에 젖게 된다. 작가의 명성에 비해 그가 책에서 풀어놓는 에피소드의 전반이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이 겪을 만한 작고 평범한 일상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전라로 집안일을 한다는 어느 주부의 신문기사에 대한 작가의 느낌이라든가 공중 부유의 꿈을 자주 꾼다는 이야기라든가 달리기 동호회에 얽힌 에피소드라든가 작가가 기르던 순종 샴고양이 뮤즈에 얽힌 에피소드 등 나른하고 소소한 일상이 편안한 문장으로 펼쳐진다.

 

"때때로 '나이깨나 먹어서 매주 에세이에 시답잖은 이야기만 늘어놓고 부끄럽지 않냐. 좀더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이야기를 쓸 수는 없느냐'는 꾸지람을 듣는다. 전적으로 맞는 말이고 대꾸할 말도 없다. 그래도 이것도 쓰고 싶고 저것도 쓰고 싶어 부지런히 쓰다보면 다 시답잖은 이야기가 돼버린단 말이죠. 왜 그런지는 몰라도. 그런 연유로, 이번주도 단연 세상에 보탬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p.152)

 

물론 작가라는 직업의 특성상 늘 보게 되는 사전이라든가 번역의 문제라든가 좋아하는 책과 같은 주제도 빠지지 않는다. 여행할 때는 예외 없이 '체호프 전집' 중 한 권을 넣어간다거나 일생 동안 두고두고 읽는 책이 '위대한 개츠비'라는 등의 이야기는 하루키의 팬이라면 모를 리 없는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잘 알고 있는 사실도 그의 에세이에서 일언반구 언급을 하지 않으면 왠지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 책은 개인적으로 작년 여름 세상을 떠난 우리집 장수 고양이 뮤즈의 영혼에 바치고 싶습니다. 책에 실린 글을 쓰고 몇 달 뒤, 뮤즈는 고요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생후 육 개월의 뮤즈가 기묘한 인연으로 고쿠분지의 우리집에 왔을 때 저는 아직 스물여섯 살이었습니다. 그때는 내가 언젠가 소설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지평선 위로 조금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p.336)

 

우리의 인생이라는 게 따분한 한낮에 자신이 기르는 고양이와 노닥거리는 일만큼 평온하게만 흐를 리 만무하다는 걸 잘 알지만 하루키의 에세이집을 펼쳐 들고 읽을라치면 우리 인생이 아무런 걱정도 없이 흘러갈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비틀스의 노랫말 '오블라디 오블라다'처럼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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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야기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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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잘 쓰인 소설 한 권이 웬만한 철학 서적 몇 권의 의미를 전달할 때가 있고, 몇 권의 과학 서적에 담길 만한 미래의 변화상을 한 권의 소설에서 발견할 수도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하겠지만 말이다. 예컨대 한 권의 과학 서적이나 철학서가 여러 권의 소설이 줄 수 있는 재미와 감동을 모두 줄 수 있다는 것. 흔치는 않지만 그와 같은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물론 잘 쓰인 한 편의 시가 웬만한 소설 몇 권에 담길 만한 감동을 한꺼번에 전달해주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장르를 고집하며 편협한 독서로 일관한다는 것은 때론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신예작가 미아키 스가루가 쓴<너의 이야기>는 감동과 의미, 미래에 대한 성찰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좋은 소설이다. 물론 젊은 작가들이 늘 그렇듯, 지나치게 의욕이 앞서 소설 전체에서 작위적인 느낌이 살짝 묻어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정통 코스를 밟지 않고 개인 웹사이트 등에 올린 자신의 창작글이 인기를 끌면서 독자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는 작가의 이력으로 볼 때 소설의 몰입도나 완성도 면에서 이 정도의 성과를 보일 수 있다는 건 꽤나 놀라운 일이다. 일본 발매 이틀 만에 4쇄를 돌파하고 제40회 오시카와 문학 신인상 최종 후보작에도 올랐다는 <너의 이야기>,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현실과 비현실, 실재와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질 것이라는 예측은 누구나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자신의 소설 <너의 이야기>를 통해 이와 같은 예측에서 한 발 더 들어간다. 삶에서 획득한 개인의 경험과 기억의 총체가 그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확고부동한 논리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예컨대 개인이 실제 삶에서 취득한 진짜 기억을 지우고 누군가에게 의뢰한 가짜 기억을 자신의 뇌에 이식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가. 작가의 상상은 그와 같은 의문에서 출발한다.

 

소설에는 불행한 유년시절을 보낸 두 명의 남녀가 등장한다. 아마가이 치히로와 나쓰나기 도카. 가족으로부터의 사랑도, 친구 간의 우정도 도통 받아본 적 없는 치히로는 대학생이 된 지금도 대인관계에 대한 지독한 콤플렉스를 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 만나는 사람이라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선배가 유일했던 치히로는 자신의 유년시절 기억을 지워버리는 게 자신의 남은 삶을 위해서도 차라리 낫겠다는 판단을 하고 특정 시기의 기억을 지워주는 프로그램인 '레테'를 구입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매진한다. 그러나 배달 착오였는지 치히로가 '레테'인 줄 알고 먹었던 것은 새로운 기억을 심어주는 '그린그린'이었다. 그 바람에 치히로에게는 어릴 적 소꿉친구로 만나 청소년기까지 이어졌던 달콤한 사랑이야기가 심어졌다.

 

"처음부터 가질 수 없다고 여긴 것은 쉽게 포기할 수 있다. 그러나 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손에 넣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건, 한없이 미련이 남는다. 나는 의억을 통해 행복과 불행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걸 처절하게 깨달았다.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 그 차이 하나가 천국과 지옥을 가른다." (p.164)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를 하던 치히로는 여름 축제가 열리고 있는 산사의 많은 관람객들 사이에서 의억(가짜 기억) 속의 그녀인 나쓰나기 도카인 듯한 여인을 먼 거리에서 보게 된다.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그녀가 '의억'에 의해 만들어진 가공의 인물(의자)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치히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혼란스러워한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행복한 꿈을 꾸던 치히로.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치히로는 어느 날 자신의 아파트에서 꿈 속의 연인 '도카'를 현실에서 맞닥뜨린다.

 

자신의 기억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잘 알고 있는 치히로는 도카를 현실의 여자 친구로 받아들일 마음이 없다. 그럼에도 도카는 치히로를 위해 요리를 하고, 빨래를 하고, 같이 음악을 들으면서 치히로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를 쓴다. 이쯤 되면 책을 읽는 독자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도대체 도카의 정체는 뭘까?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도카의 호의를 매정하게 거부하였지만 치히로 역시 도카가 싫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의억을 이용하여 사기를 친다거나 사이비 종교를 권유한다거나 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태풍이 치던 어느 여름 날, 도카에게 지독한 천식이 있다는 걸 의억을 통해 알고 있었던 치히로는 혹시 기압이 떨어진 이때에 도카가 예전처럼 쓰러진 게 아닐까 걱정이 된 나머지 도카의 집 현관문을 다급하게 두들긴다.

 

"문득 나는 이 사람을 잃으려 하고 있다.라고 남 일처럼 생각했다. 그 사실이 내게 무얼 의미하는지 나는 아직 파악할 수 없다. 세계의 종말이 내게 무얼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슬픔은 지나치게 거대해 불가능하다고는 말 못해도 내 잣대로 잴 수 없는 건 분명하다." (p.338)

 

치히로는 결국 자신의 방에 도카의 출입을 허락한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음악을 듣고, 같이 추억을 공유하면서 하루하루를 흘려보낸다. 그리고 도카의 한 줄 일기가 매일매일 기록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도카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도카가 사라진다.

 

"정체성의 존립 근거가 기억의 일관성이라 한다면, 나는 매일매일 누구라고 특정할 수 없는 누군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해 겨울로 접어들며 나는 나 자신을 의뢰인과 의억 사이에 설치된 여과 장치와 같은 것으로 여길 수 있게 되었다. 단련에 따른 사적 감정의 소멸과 다른 점은, 나라는 인간이 글자 그대로 소멸함에 따라 나타나는 부차적인 현상에 불과했다는 점일 것이다." (p.282)

 

이제 2부에서는 도카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천식으로 인해 암울한 유년시절을 보냈던 도카가 우연한 기회에 의억기공사가 되어 그 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음으로써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자신이 신형 알츠하이머병(Alzheimer Disease: AD)에 걸렸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회한에 휩싸인다. 자신이 죽더라도 누구 한 사람 슬퍼하거나 자신을 기억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게 너무나 비참하게만 여겨졌던 도카는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한 남자의 이력서를 우연히 보게 된다. 유년시절의 기억을 지우고 싶어 했던 치히로의 이력서였다. 도카는 의억기공사로서의 규정도 어긴 채 자신이 현실에서 치히로의 진짜 연인이 되고자 한다. 그 기억을 안고 평온히 잠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일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클리닉에서 내 앞으로 의뢰인의 '이력서'를 보내준다. '이력서'에 담겨 있는 정보는 최면 상태에서 추출된 것으로 거짓은 없다. 나는 '이력서'를 읽어보고 의뢰인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가공의 과거를 작성한다. '편집업자'와 몇 차례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세세한 수정을 거친 후 의억을 최종 완성본으로 정리해 클리닉에 제출한다. 이러한 일련의 공정은 대략 1개월 안에 끝난다." (p.236~p.237)

 

소설의 후반부에는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된 치히로가 병원에 입원하여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도카를 찾아간다. 치히로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온 정성을 다했던 도카의 입장에서 이제 정반대의 입장에 놓이게 된 치히로는 도카의 완강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휴학한 채 매일매일 도카를 찾아간다. 도카는 자신이 앓고 있는 신형 AD에 내성이 있다고 알려진 의억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억을 잃었다. 그녀가 의억마저 잃으면 그녀의 삶은 끝나는 것이다. 마지막을 향해 달려갈수록 도카는 가짜가 아닌 진실된 마음을 치히로에게 보여주고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치히로는 자신의 의억에도 없던 이야기를 만들어내어 도카에게 들려준다. 이야기는 그렇게 종말을 향해 치닫는다.

 

단순히 SF적 요소를 지닌 로맨스 소설인 줄 알았던 이야기는 치히로의 이야기에서 많은 궁금증을 유발한 채 도카의 이야기로 이어짐으로써 마치 미스터리 소설처럼 읽힌다. 내가 대개의 일본 소설에서 늘 감탄하는 대목은 독자들이 감동할 만한 포인트를 작가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이다. 스미노 요루가 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도 그렇고 이 책 <너의 이야기>에서도 작가는 감동의 실마리를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조금도 노출시키지 않고 끝까지 숨기다가 적당한 지점에서 한꺼번에 폭발시킴으로써 감동의 크기를 배가시킨다.

 

'나는 문학이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길 바라지만, 그 무엇도 인간의 외로움을 달랠 수 없다. 문학은 이 사실에 대해서 거짓말하지 않는다. 바로 그 때문에 문학은 필요하다.'고 했던 데이비드 실즈의 말처럼 먼 훗날 지금보다 과학이 발달하여 인간의 뇌 속에 각자에게 필요한 기억을 이식할 수 있는 날이 온다고 할지라도 그 기억들이 우리의 삶을 규정하거나 만들어진 기억이 삶 전체를 통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문학이 인간의 외로움을 달랠 수 없는 것처럼 기억만으로 인간의 정체성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영원히 남게 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믿는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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