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면 어때요? 좋으면 그만이지
신소영 지음 / 놀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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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서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지난해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자주 있는 일이다. 아들과 아내와 떨어져 주말부부로 지내긴 했지만 그래도 아내가 살아 있을 때에는 딱히 안부전화를 하지 않아도 잘 지내겠거니 크게 걱정하지 않던 사람들조차 요즘은 나로부터의 연락이 조금 뜸하다 싶으면 전화를 걸어오곤 한다. 아내가 떠난 후 나는 그렇게 주변 사람들의 걱정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물론 성인이 된 이후로 처음부터 쭉 독신의 삶을 이어왔던 건 아니지만 아무튼 대한민국에서 독신으로 산다는 건 꽤나 번거롭고 힘든 일임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아빠를 떠나보낸 지 이제 18년이 된 싱글 선배, 엄마. 나는 엄마를 닮고 싶다. 내가 가진 노년에 대한 희망은, 딸은 엄마를 닮는다는 말이 나에게도 적용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엄마가 꽃에 인사할 때마다 남사스러워 모른 척을 했는데 어느새 나도 따라 하고 있다. 그런 나를 볼 때마다 깜짝 놀라다가도 안심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다정하고 유쾌한 엄마를 닮아가는 게 좋아서." (p.54)

 

신소영 작가의 <혼자 살면 어때요? 좋으면 그만이지>는 대한민국에서 비혼인 채 나이 든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는 얼마나 특별한 존재로 비치는지 깨닫게 된다. 결혼과 비혼은 단지 개인의 선택이거나 우연에 의한 결과일 뿐인데 비혼족을 마치 관습에 어긋나는 큰 죄를 저지른 사람인 양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는 이유는 비혼보다는 결혼을 선택한 사람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타인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은, 좋게 말하자면 정이 많은 민족이기 때문일까.

 

잡지사에서 편집기자로 일하다가 우울증과 돌발성 난청으로 일을 그만두고 마흔한 살에 방송작가에 도전, 5년간 MBC 라디오에서 일하다 퇴사한 후 프리랜서 방송작가로 살아가고 있다는 신소영 작가는 현재 49살의 비혼족으로서 자신의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어떤 소신에 의해 비혼을 선택한 사람도 있겠지만 내 주변에서 보면 세월에 의해 등 떠밀리거나 어쩌다 보니 비혼으로 굳어진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문제는 비혼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비혼인 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일 것이다. 작가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종종 혼자 사는 삶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또 어떤 때는 혼자라는 사실에 사무치게 외롭고 고단해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라고 해서 늘 행복하고 신나는 것만은 아녜요."라고 솔직하게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처량한 여자가 되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 어디 여행 다녀왔다, 이것저것 하면서 잘 지낸다, 등의 답으로 대신하곤 했다. 사실 그렇기도 하니까." (p.282)

 

책의 목차를 보면 작가가 독자들에게 말하려고 했던 바가 더욱 선명해질지도 모른다. 프롤로그에 이어 PART 1 나는 결혼 없이 산다, PART 2 나의 폐경을 충분히 애도하며, PART 3 보호자 없는 인생에서 진짜 필요한 것, PART 4 짝이 없어도 충분하다, PART 5  남은 삶을 근사하게 만드는 방법 그리고 에필로그가 이어진다. 비혼족이든 결혼을 한 사람이든 자신의 삶은 언제나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이다. 그게 비혼이라고 해서 달라질 리도 없다. 다만 노년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조금 다르고, 자신의 건강은 스스로 돌봐야 한다는 게 다를지도 모른다.

 

내게 전화를 걸어왔던 친구는 고등학생, 대학생인 2명의 자식과 아내를 돌보느라 남은 건 빚밖에 없노라고 하소연을 했다. 그나마 나는 아들 하나만 돌보면 되니 자신에 비하면 부담이 좀 덜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누구에게나 처음인 삶, 어느 게 덜하고 어느 게 더하다 비교한다는 게 있을 수 없지만 우리는 언제나 남의 손에 있는 떡이 제 손위에 있는 떡보다 더 커 보인다고 부러워하면서 평생을 살게 되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71번째 맞는 제헌절,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의하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결혼한 사람이든 그렇지 아니한 사람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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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에 소나기가 내린 탓인지 새벽 등산로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알맞게 부드러워진 흙과 절정의 푸르름을 자랑하는 나무들, 그리고 새벽의 정적을 깨우는 새소리와 간간이 들리는 맹꽁이 울음소리... 등산로에 떨어진 사탕 껍질과 종이컵, 일회용 건강식품 파우치 등 등산객이 버린 쓰레기를 준비해 간 20L 쓰레기봉투에 담아 내려오는데 정말 반가운 얼굴을 보았다. 2,3년 전만 하더라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만나 뵙던 할머니인데 언제부턴가 통 보이지 않았었다. 등산로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사는 곳도,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속으로만 그저 할머니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할 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연세가 연세이니만큼 다른 걱정이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뭘 이렇게 많이 주웠느냐?"는 할머니의 말씀에 늘 하던 일이니 정 보기 싫을 때쯤이면 이따금 줍고 있노라며 안부를 대신했다. 할머니는 무릎 관절 수술을 받은 후 한동안 병원 신세를 졌었다면서 마치 남의 일을 전하듯 말씀하셨다. 이제 그만그만해져서 나들이 삼아 사부작사부작 나선 길이라며 바쁠 텐데 어서 내려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이렇듯 고마운 것이다.

 

오늘 아침 자유당의 정 모 최고위원이 했던 막말을 뉴스에서 보면서 참으로 몹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백 명의 어린 목숨이 죽었는데 인간이라면 가슴이 아파서 차마 그 사실조차 입에 담기 어려울 텐데 그것을 정쟁에 이용하는 조롱과 비웃음 거리로 삼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옆에서 듣고 말리지는 못할망정 배를 잡고 웃는 놈들은 또 뭐란 말인가. 인간 같지도 않은 사람들, 아니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들의 막말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인간의 고귀한 목숨을 가지고 조롱을 한다는 건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일 터, 그런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슬프다. 다음 총선에서는 그런 작자들을 모조리 낙선시킬 수 있으려는지.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길에서 만난 어느 할머니의 생존도 그렇게나 반가운 일인데 무고한 생명의 스러짐을 아파할 줄 모르는 사람을 어찌 인간이라 말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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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방문자들 - 테마소설 페미니즘 다산책방 테마소설
장류진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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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을 신림동에서 보냈다. 가파른 산비탈까지 올망졸망한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마을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집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돈이 들지 않는 자재들로 얼기설기 엮어 겨우 집의 형태를 갖춘 듯한 그런 집들이 대부분이었고, 겨울이면 연탄재가 없이는 가파른 비탈길을 오른다는 게 어설픈 산악인이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르는 것만큼이나 어려웠었다. 그 동네에서 대학을 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젊은이들은 대개 육체노동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자니 이 집 저 집에서 술판이 벌어지는 건 다반사였고, 그런 자리에서는 언제나 이유도 없이 싸움이 이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취객들의 소란과 싸움판의 악다구니를 참아내며 겨우겨우 잠을 청하곤 했다.

 

재개발로 아파트만 빽빽하게 들어선 새로운 환경으로 바뀐 지가 오래되었건만 나는 지금도 신림동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텔레비전 뉴스로 접할 때마다 대학 시절의 신림동을 떠올리게 된다. 신림동은 원래 그런 동네였다는 걸 잊지 않으려는 듯 말이다. 지난 5월 신림동 소재 원룸에 사는 20대 여성을 뒤따라가 집에 침입하려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조 모 씨의 재판이 있었던 며칠 전, 묘하게도 그날 화장실 창문을 통해 원룸에 침입한 뒤, 이 집에 사는 여성을 강간하려 한 사건이 또 있었다. 다행히도 용의자 A 씨는 어제 경마장에서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는 했지만.

 

"딩동. 초인종이 또다시 울렸다. 여자는 귀를 의심했다. 자신이 들은 소리가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하지 못해 당황했다. 딩동. 한 번 더 울리자 그제야 서늘한 공기가 여자의 심장을 훑고 지나갔다. 여자를 찾아올 사람도 없었고, 이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조차 없었다. 더 남은 택배도 없었다. 무엇보다, 새벽 3시였다. 이 시간에 초인종이 울릴 이유가 없었다. 여자는 자신이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p.20 '새벽의 방문자들' 중에서)

 

페미니즘 소설집 <새벽의 방문자들>을 읽기 전까지 나는 혼자 사는 여자들의 공포를 알지 못했다. 아니, 알고는 있었지만 내 일인 양 느끼거나 그들이 느꼈을 공포와 두려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것은 전적으로 타인의 문제일 뿐이었다. 그러나 표제작인 장류진 작가의 '새벽의 방문자들'을 읽었을 때 '아, 정말 공포스럽겠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다. 소설에서 30대 초반의 여자 주인공은 포털사이트의 관계사에서 댓글 모니터링 업무를 맡고 있다. 게시물 규정에 어긋나는 댓글이나 신고받은 댓글들을 직접 확인하고 블라인드 처리하는 일을 하는 그녀가 더블타워 오피스텔로 이사 온 지는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15층짜리 건물 두 동의 오피스텔은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다. 결혼을 염두에 두다 헤어진 후 급하게 이사를 온 여자는 어느 날 미뤄두었던 옷장 정리를 하던 중 모르는 남자가 초인종을 누르는 걸 문에 달린 렌즈를 통해 확인하고 급기야 비밀번호마저 마구 눌러대는 통에 무척이나 놀란다. 그것도 새벽에. 그리고 모르는 남자들이 한밤중에 자신의 집 현관에서 초인종을 누르는 일이 반복된다. 여자는 정황상 옆 동의 자신과 같은 호수에 사는 여성이 성매매를 하고 있을 것이라 추측한다. 여자는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B동 1204호로 향한다. 그리고...

 

표제작인 '새벽의 방문자들'에 이어지는 소설은 하유지 작가의 '룰루와 랄라'. 정지향 작가의 '베이비 그루피', 박민정 작가의 '예의 바른 악당', 유일한 남성인 김현 작가의 '유미의 기분', 마지막으로 김현진 작가의 '누구세요?'가 실려 있다. '스쿨 미투'를 다룬 김현 작가의 작품이나 돈 때문에 아이를 포기한 청춘의 삶을 그린 하유지 작가의 '룰루와 랄라'도 인상 깊었지만 나는 사실 김현진 작가의 '누구세요?'가 가장 궁금했었다. 모 인터넷서점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읽으면서 이따금 댓글을 달기도 했던 나는 그녀가 쓴 에세이를 두어 권 읽었었고, 자신의 삶을 적나라하게 내보이던 그녀의 글에 다소 충격을 받았고, 블로그에서 볼 수 없는 그녀의 삶이 이따금 궁금하기도 했었다.

 

"아마도 이 소설집의 독자는 여성분들이 대다수일 거라 생각하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을 약자의 위치에 놓아볼 상상력이 없는 어떤 남성들에게 '옆집에 놀러갔더니 자고 있던' 싱싱한 성적 대상이 되면 기분이 어떨지 묻고 싶었다." (p.266)

 

'누구세요?'에서 김현진 작가는 역시나 도발적이고 거침없었다. 술에 취해 무작정 뛰어든 옆집에서 침대 위에 잠든 남자를 덮쳤지만 남자는 일을 다 마칠 때까지 잠에서 깨지 않는다는 내용의 이야기는 표현 역시 적나라하지만 '성적 대상화' 되는 상대를 남성으로 설정함으로써 여성과 남성의 위치를 전복시키는 점도 재미있다. 페미니즘 소설로 지칭되는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나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분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우리 모두가 누려야 하는 권리를 여성이라는 이유로 혹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누리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분명 잘못된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그게 대한민국만의 문제일까마는 누군가의 문제를 내 일인 양 느낄 수 없는 구조, 그런 피폐한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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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챔피언 - 경쟁 없이 지속가능한 시장을 창조하는 CSV 전략
김태영.도현명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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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동시에 야심 차게 추진했던 사업이 사회적 기업 지원과 양성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던 사회적 기업 1천 개 양성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을 받으면 3년간 정부에서 임금을 지원해 줌으로써 사업 초창기의 경영 여건을 개선하고 경기침체에도 양적 성장을 꾀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이는 취업 취약 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임금 지원으로 생긴 수익을 인력이나 시설 확충 등에 재투자하지 않고 지원이 끝나면 폐업이나 인증을 반납함으로써 취약계층을 다시 실업자로 전락하도록 만들었다.

 

사실 그와 같은 생색내기용 투자가 한두 번 있었던 건 아니지만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김태영, 도현명의 <넥스트 챔피언>을 읽는 동안 문득 내가 알던 후배 한 명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당시에 후배는 가정에서 배출되는 플라스틱을 수거·선별·재활용하는 자원 재활용 회사를 설립하여 저소득 취약계층을 직원으로 고용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이 끊기고 기업 환경이 악화되면서 그도 결국 폐업을 하고 말았다. 건실한 사회적 기업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는 많은 사회적 기업이 태생적으로 지속 가능한 사업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갈등관계로 여겨온 사회와 시장을 융합할 기회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기업은 새로운 가치 창출의 원천으로서 사회 문제를 이해하고,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어느 한 기업의 도덕이나 철학을 넘어 실제 비즈니스의 변화를 촉발할 이러한 혁신 전략을 '공유가치창출' 즉 CSV Creating Shared Value 전략이라고 부른다. 이런 패러다임의 전환 Paradigm Shift에 올라탄 기업은 '넥스트 챔피언'으로 비상할 것이다." (p.6)

 

성균관대학교 SKK GSB 교수로 재임하고 있는 김태영 교수와 임팩트 비즈니스 전문 컨설팅 기업인 임팩트스퀘어의 대표로 있는 도현명 대표는 그들의 공저작 <넥스트 챔피언>에서 기업이 CSV를 통해 경쟁 없이 지속 가능한 시장을 창조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소비자의 불만이나 사회적 문제에는 그닥 관심이 없었던 기존의 기업들이 사회적 문제를 적극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말하자면 상생의 기업인 셈이다.

 

"모든 기업이 저마다 사업과 관련해 공유가치를 창출한다면 사회 전체의 요구가 충족되고, 지역사회에서 기업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사회문제가 공유가치로 다 해결되진 않는다. 하지만 기업은 그 기술과 자원, 관리 능력을 활용해 정부나 사회부문 기관에서 이루지 못한 사회진보를 이끌 수 있고, 이를 통해 다시 사회에서 존중받을 수 있다." (p.42)

 

예컨대 백내장으로 고통받는 인구가 600만 명에 이른다는 인도에서 안과의사 고빈다파 벤카다스와미는 아라빈드 병원을 설립하여 백내장 수술을 무료로 해주거나 환자 개개인의 형편에 따라 지불하도록 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은 외부 지원 없이 흑자 경영을 유지하고 있다. 그 기저에는 철저한 분업화로 백내장 수술을 특화함으로써 수술비용을 현저히 낮춘 데 있었다. 병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독보적인 수술 경험을 바탕으로 값싸고 질 좋은 인공수정체를 만들어냄으로써 지금은 전 세계 120여 개 나라에 인공수정체를 수출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라빈드 병원처럼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다층적으로 연결하여 혁신의 동력으로 삼는 기업이 시장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빈곤층에게 무담보 소액 대출을 해주던 그라민 은행은 통신과 식품 산업으로 사업을 다각화했고, 영양 불균형에 시달리는 저개발국 국민들을 위해 가격을 낮춘 소포장의 보급형 제품을 내놓은 네슬레, 베트남의 낙후 지역에서 고추재배를 함으로써 지역주민의 소득을 올리고 자사에 필요한 고춧가루 물량을 확보한 CJ제일제당,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임으로써 고객의 신뢰를 회복한 GE 등 전 세계적으로 CSV에 주목하는 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저소득층을 돕거나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등 CSV를 대기업의 자선 사업, 비영리 모델로 보는 시각이 많은 게 현실이다. 말하자면 기업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수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CSV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대기오염이나 미세 플라스틱, 수질오염, 쓰레기 대란, 빈부격차 등 거대 자본과 국민 전체의 인식 개선이 조화롭게 결합되지 않으면 도저히 해결 불가능한 사회적 문제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는 마당에 그와 같은 일부 생색내기용 투자로는 이미지 제고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넥스트 챔피언>은 마이클 포터의 CSV이론을 소개하는 수준에 그치는 책이 아니라 CSV 전략 실행의 실천적 요소를 이해하고, CSV를 둘러싼 빈번한 오해를 짚어 보면서 조직 혁신, 사회적 가치의 측정과 평가, 파트너십 구성 방안 등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게다가 책에서 풍부한 실전 사례를 다룸으로써 사업의 배경과 연결 구조, 차후의 결과 등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다.

 

"모든 것은 여전히 사람의 문제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과 역량이 자라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말하자면 이 책에서 꿈꾸는 기업을 통한 사회혁신, 이를 통한 사회의 지속 가능한 진보라는 것은 인재를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좋은 경험을 쌓아감으로써 가능하다. 그러므로 기업은 당장 그 일을 위한 투자에 나서야 한다. 기업은 사회적 기업이나 비영리조직에 핵심인력을 파견해 사회적 가치의 새로운 언어를 배우거나, 사회적 기업이나 비영리조직에서 비즈니스 훈련이 되어 있는 인력을 중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p.303)

 

수익의 극대화에만 몰입할 뿐 사회적 문제에는 다소의 거리를 두었던 기업들이 사회적 문제와 사회적 가치에 눈을 돌리고 있다. 비록 그것이 일부 기업에 국한된 현실이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모든 기업이 지향하는 거대 트렌드로 바뀔지도 모른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어느 때보다도 현실감 있게 느껴지는 요즘, 한 지역의 문제가 그 지역에서만 그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사회적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비용을 아끼기 위해 한밤중에 오염된 공기를 대기 중으로 내뿜는 비양심적 제철소는 한 번쯤 되새겨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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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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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은 작가의 신작 발표 기간이 긴 까닭에 일부러 천천히 읽거나 반복하여 다시 읽게 된다. 말하자면 야금야금 아껴가며 읽거나 읽었던 책을 꾸역꾸역 되새김질하면서 오직 작가의 다음 작품이 출간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식이다. 세상에 작가라고는 해당 도서의 저자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목을 길게 늘이고 오매불망 기다리다 보면 이따금 잊기도 하고, 다른 작가의 작품에 빠져 외면을 하게도 되지만 막상 신간이 나오는 순간 또다시 오랜 기다림을 준비하는 것이다.

 

나에게 테드 창은 그런 작가 중 한 명이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의 원작이었던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출간되었던 게 벌써 17년 전 일이다. SF소설로는 이례적으로 다양한 연령대의 팬층을 거느리게 된 작가는 작품이 나올 때마다 여러 상을 휩쓸곤 하지만 정작 그가 세상에 내놓는 작품의 수는 상당히 제한적인 까닭에 작가를 사랑하는 독자들은 늘 기다림의 연속인 것이다. 작가의 수상 경력을 보더라도 최연소 네뷸러상을 포함해 네뷸러상 4번, 휴고상 4번, 로커스상 4번을 받았다. 다른 작가들은 한 번도 받지 못한 상을 수 차례 받았다는 사실도,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기술 저술가로 일한다는 사실도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 사이에서는 그닥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때로는 그의 작품이 난해하다는 평도, 읽고 난 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평도, 그리고 '역시 테드 창'이라는 평도 다 그의 몫이자 독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테드 창의 신작 소설집 <숨>에는 9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8편의 단편이 실렸던 걸 감안하면 적은 숫자도 아니지만 왠지 아쉬운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이번 작품 역시 나는 조금씩 아껴가며 읽고는 있지만 줄어드는 쪽수를 보면서 조바심이 나기도 하고, 책을 읽는 속도를 일부러 천천히 늦춰보기도 하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다. 하여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책에 실린 단편소설을 한 편씩 리뷰를 쓰고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른 것이다.

 

소설집 <숨>의 첫 번째 단편소설은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이다. <천일야화>와 같은 액자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소설은 바그다드 출신의 상인 후와드 이븐 압바스가 자신의 거래처 사람들에게 선물할 은쟁반을 사기 위해 세공사들의 거리에 있는 어느 가게에 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목이 좋은 자리에 새로 들어선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은 바샤라트. 그가 보여주는 신기한 물건들 중 하나가 원형 고리 모양의 타임머신이었다.

 

"바샤라트는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현실의 피막에는 나무에 난 벌레구멍 같은 미세한 구멍들이 뚫려 있다고 했습니다. 일단 그 구멍을 찾아내면, 유리 직공이 녹은 유리 덩어리를 잡아끌어 목이 긴 파이프로 바꾸듯이, 그 구멍을 넓혀 길게 끌어낼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 한쪽 부리의 시간을 마치 물처럼 흐르게 하고, 반대쪽 부리에서는 그것을 시럽처럼 걸쭉하게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바샤라트의 얘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의 말이 진실임을 증명할 수도 엇습니다. 저는 그저 이렇게 답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로 경이로운 것을 만들어내셨군요."" (p.17~p.18)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바샤라트는 압바스에게 '세월의 문'을 보여주고 문의 양쪽이 이십 년의 세월로 분리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믿지 못하는 압바스에게 세월의 문을 통과하여 미래의 자신과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밧줄 직공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하산이 이십 년 후 유명한 거상이 된 자신을 만났던 이야기와 아지브라는 젊은 직조공이 이십 년 후 자신이 많은 금화를 모았음에도 쓰지는 않고 옹색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금화가 든 궤를 훔쳐 현실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와 하산과 결혼하여 오랫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했던 라니야가 젊은 시절의 하산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야기를 들은 후 압바스는 과거에 자신이 저질렀던 과오를 후회하며 젊은 시절의 자신을 방문하고 싶다고 말한다. 바샤라트는 자신의 아들이 운영하는 카이로의 가게에 과거로 갈 수 있는 '세월의 문'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에게 압바스를 소개하는 편지를 써준다. 압바스는 과연 어떤 경이로운 여정을 걷게 될까?

 

"이제 저에겐 카이로에 있는 '세월의 문'으로 되돌아갈 노자조차 없지만, 저는 저 자신이 상상 못할 행운을 맛보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잘못을 돌아볼 기회를 얻었고, 알라가 어떤 방식의 구제를 허락하시는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대교주님이 묻기로 결정하신다면, 저는 미래에 관해 제가 아는 모든 것을 기꺼이 말씀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건대, 제가 가진 가장 값진 지식은 이것입니다. 그 무엇도 과거를 지울 수는 없습니다. 다만 회개가 있고, 속죄가 있고, 용서가 있습니다. 단지 그뿐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p.58)

 

SF작가로서의 테드 창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의 이야기 스타일에 무한히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의 이야기는 허무맹랑한 판타지의 세계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과학적 사고에 기반한 우리 삶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단편소설 하나하나가 마치 각각의 철학적 주제를 품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도 다 그런 까닭에서 연유한다. 과거를 지울 수는 없지만 회개와 속죄와 용서가 있을 뿐이라는,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압바스의 고백이 선명하게 각인되는 소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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