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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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기본적으로 이상하거나 특별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그러므로 작가 자신이 남들과 다른 이상한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을 기록할 수도 있고, 특별한 삶을 살았거나 지금 현재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열심히 만나거나, 찾아내거나 또는 다른 이를 통해 전해 들으면서 그들의 삶을 기록할 수도 있겠다. 작가로서 그렇게 살 자신이 없다면 자연과 주변 환경에 대한 남들과 다른 독특한 시선이라도 갖고 있어야 한다. 연예인이 대중 앞에서 자신이 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이든 시든 에세이든 우리가 자주 읽는 문학 작품은 대개 이런 범주에 속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보편적이거나 평범한 삶은 문학의 객체로서 흥행 가치가 없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거나 특별하다는 건 우리의 삶과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우리에게 있는 대부분을 그들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더하여 어느 것 하나가 특별하다거나 이상할 뿐이라고 보는 게 옳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이상하다거나 특별하다는 건 모든 걸 아우른 채 보너스처럼 하나가 더 첨가된 것일 뿐 보편의 부재는 전혀 아니다. 결국 문학가가 된다는 건 평범 너머의 다른 하나를 취득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남들 다 하는 건 뭐든 빼놓지 않고 겪어봤음은 물론 웬만한 사람들은 듣도 보도 못했던 일도 무엇 하나쯤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비로소 문학가로서의 자격을 갖춘 셈이 된다.

 

"어릴 때도 잡지에 심리테스트, 성격테스트만 나오면 질문들 옆에 빈 네모칸에 체크를 하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했다. 요즘도 소셜미디어 친구들이 올린 테스트 결과가 뉴스피드에 줄줄이 올라오면 나도 한번 해보고 싶어 손가락이 움찔거린다. 좋아하는 색깔로 내 성격을 알려주고, 몇 가지 질문에 답만 하면 좌뇌형인지 우뇌형인지 알 수 있고, 내게 맞는 남자친구 유형을 알 수 있고, 내가 살 만한 세계도시를 골라준다니!" (p.27)

 

문소영의 에세이 <광대하고 게으르게>는 작가의 특별한 이력과 개성이 충분히 드러나는 산문집이다. 자신을 한없이 게으른 인간이라 말하면서도 나름 완벽주의 성향 탓에 괴롭다는 작가는 '미술 작품에서, 또 영화, 웹툰, 광고, 길거리 디자인을 비롯한 모든 시각 문화에서, 이야기를 읽어내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서 학사와 석사를, 그리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에서 박사 과정 중에 있다는 특이한 이력도 문학가로서의 자격에 신뢰를 더한다.

 

"생각해 보면 비교적 일찍부터 주변에서 예기치 않은 죽음을 여러 번 봐왔다. 대학교 때 동기 두 명이 각각 교통사고와 스스로의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고, 교수님 한 분도 심장마비로 요절했다. 그때 그분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보다 적었다는 걸, 그리고 그땐 내가 어른인 줄 알았는데 지금 대학생들을 보니 병아리들로 보인다는 걸 떠올리면, 채 다 피지도 못하고 가지에서 떨어진 그들의 젊음에 새삼 가슴이 서늘하고 아릿해진다. 몇 년 전에는 신문사 선배 두 분이 두 주 간격으로 각각 불의의 사고와 지병으로 별세해 모두들 혼이 반쯤 나갔던 일도 있다." (P.277)

 

작가는 문득 떠오른 생각이나 자신의 경험에 비춰 그동안 읽고 보아 왔던 책, 영화, 그림, 사진, 도자기 등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버무려서 자신만의 개성이 한껏 드러나는 40여 편의 글을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1부 '게으르게', 2부 '불편하게', 3부'엉뚱하게', 4부 '자유롭게', 5부 '광대하게', 6부 '행복하게'라는 부제도 재미있다. 출산율 최하위 국가인 대한민국에 사는 싱글 여성으로서 정부가 내놓는 저출산 해법이 불편하기도 하고, '계속 끄적거리라'는 프랭크 매코트의 명언이 무기력하게 게으른 자신에게는 서늘하고 무거운 충고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행복 경쟁'을 하다 보면 '왜 행복해야 하나?'라는 질문까지 나오게 된다는 작가.

 

문소영 작가의 에세이는 자유분방한 작가의 성격이나 본성대로 살고 싶어 하는 작가의 꿈이 글에서 묻어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작가의 꿈을 방해하는 여러 요소들, 이를테면 관습이나 주변 환경에서 오는 장애물 등에 대한 작가 자신의 불편한 심기들도 언뜻언뜻 드러난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들 각자의 현실이 그리 녹녹지 않으며, 매번 그런 현실에 대해 툴툴거리면서도 다시 힘을 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게 우리네 삶이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마음속 구호를 힘차게 외치면서 말이다.

 

오늘 보았던 어느 신문의 기사에는 '밥 한 번 편하게 먹자'라는 문구로 결식아동 '꿈나무 카드'를 소지한 아동에게는 식사 비용을 받지 않는다는 어느 파스타 가게의 훈훈한 소식과 함께 그의 선행이 SNS를 비롯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자 선한 영향력에 동참하고자 하는 식당, 극장, 카페, 학원 등 다양한 업종의 업체가 결식아동에게 식사나 음료를 제공하고 공연 할인이나 무료 수강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연락해왔다는 소식이 실렸었다. 우리가 읽는 신문이 매일 이런 기사들로 넘쳐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럼에도 우리는 끔찍한 사건 사고에 진저리를 치다가도 이따금 읽게 되는 이와 같은 따뜻한 소식에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구나' 하고 느끼는 게 아닐까. 문소영의 에세이와 우연히 읽은 어느 신문 기사가 묘하게 오버랩되는 그런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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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끄물끄물합니다. 높아진 습도 탓인지 한여름 무더위가 몸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태풍 다나스가 한반도를 관통하지 않고 해상에서 소멸했다는 것일 테지요. 이런 우중충한 날씨에도 모 정당의 정신 나간 사람들은 광화문 광장에 텐트를 설치했나 봅니다. 시민들의 원성과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를 그들이라고 못 들을 리 만무할 텐데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그런 짓거리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연예인 같으면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것도 아닌데 말이죠.

 

낮에 지인 몇 명과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대화는 역시 아베의 경제 전쟁과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주였습니다. 그중에는 4월에 예약했던 일본 여행을 최근에 취소했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 역시 일본 제품은 가급적 사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만 가뜩이나 어려운 세계 경제 여건 하에서 우리나라의 경제 역시 타격을 받지 않을까 다들 우려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해방 후 우리 스스로 청산하지 못했던 친일 잔재를 아베로 인해 조금씩 청산하고 있다는 것과 그동안 잊고 지냈던 '애국심'을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하면서 새로이 느끼게 되었다는 사실을 거기 모였던 사람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게다가 친일파의 후손들 역시 자신들이 취해야 할 스탠스가 애매해졌다는 사실입니다. 일본과 아베를 옹호하자니 자신이 대한민국에서 내쳐질 것 같고, 일본에 대해 욕을 하자니 자신의 선조를 욕하는 것 같아 그렇게 하기도 어렵고...

 

주변에서는 어차피 한 번은 터질 일이 터졌다고들 말합니다.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우리가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었다는 거죠. 그게 지금이라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경제는 조금 어려워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총선에서는 친일파의 후손이나 '토착 왜구'로 지칭되는 지일파를 뽑지는 않을 테고, 대일 의존도가 높았던 부품 소재 산업에 대한 자생력도 높아짐으로써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거라는 전망입니다. 우리 민족은 언제나 위기를 통해 단합하고 그 단결된 힘으로 국가를 발전시켜 왔으니까 말이죠. 저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비가 개고 'KBO 리그 올스타전'이 열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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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 1 - 아모르 마네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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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점심을 먹고 잠깐 누웠던 게 까무룩 낮잠으로 이어졌던가 보다. 텔레비전에서는 여전히 제5호 태풍 다나스에 대한 뉴스 특보가 이어지고 있었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깔릴 시간도 아닌데 밖은 여전히 어둡고 간간이 빗방울의 떨어지고 있었다. 태풍 다나스는 결국 육지에 상륙도 하지 못한 채 열대저압부로 약화되었다고 했다.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했던 김진명의 소설 <직지 1>를 마저 읽었다.

 

소설의 시작이 어떠해야 한다고 따로 정해놓은 규정은 없지만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도입부는 늘 존재하게 마련이어서 <직지>의 도입부 역시 강렬하게 시작하고 있었다. 사회부 기자 기연이 잔혹한 살인 현장을 취재하는 장면. 나도 모르게 나는 최근에 있었던 고유정의 엽기적인 살인 행각을 떠올렸었다. 비위가 약한 나는 소설의 묘사 부분을 읽는 것만으로도 속이 메슥메슥하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책상 옆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뼈 부스러기며 내장 조각에 이어 흉곽이 함몰돼버린 시신이 망막에 잡히는 순간'과 같은 문장을 읽어 내려간다는 것은 차라리 고역이었다.

 

창과 같은 길고 날카로운 흉기에 의해 심장이 관통됨으로써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는 피살자는 고려대에서 라틴어를 가르쳤던 전형우 교수. 누구에게 원한을 살 만한 직업도, 성품도 아닌 그는 유학을 떠난 아들 하나와 살해 당시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던 아내가 가족의 전부였다. 일류급의 전문 살해범이 개입한 듯한 살해 현장에는 족적을 포함한 어떠한 증거도 남지 않았고 감식에 참여했던 베테랑 형사마저 미제 사건으로 남을 것을 염려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기연이 이 사건에 관심을 두게 된 까닭은 피살자의 귀가 잘린 것과 살해 후 목에 남겨진 송곳니와 입술 자국이었다. 드라큘라가 피를 빤 듯한 흔적. 기연은 차량의 내비게이션에 남은 행선지를 토대로 전형우 교수가 청주에 있는 서원대학교를 다녀온 것을 발견하고 전 교수가 접촉했던 사람을 추적한다.

 

기연은 처음에 서원대학교의 김정진 교수를 의심하였다. 그러나 김정진 교수는 '직지' 알리기 운동을 펼치는 인물로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의 뿌리가 '직지'라 확신하고,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캐고 있는 인물이었다. 14세기 금속활자를 가진 동방의 어느 나라 왕에게 보냈다는 교황의 편지와 바티칸 비밀수장고 내부의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로마대학교 출신인 전 교수가 연구 조사에 참여했었다는 사실을 김정진 교수를 통해 전해 듣게 된다. 기연은 전 교수의 죽음이 '직지'와 연관된 많은 비밀과 그 비밀을 지키고자 하는 여러 사람의 계획에 의해 자행된 철저히 계산된 범죄임을 직감하고 그녀가 독일에서 유학 당시 밀라노 신학대학에서 공부하였던 연세대학의 최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최 교수는 라틴어에 정통한 인물이었다. 최 교수의 도움을 통하여 기연은 전 교수를 살해한 범인이 외국인일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전 교수의 서재를 샅샅이 뒤진 기연은 전 교수의 메모에서 '스트라스부르의 피셔 교수와 아비뇽의 카레나'를 찾아낸다. 그리고 김정진 교수와 함께 유럽으로 향하게 되는데...

 

"피셔 교수는 연구의 성과를 알려주었을 테지만 어느 순간 전 교수가 절대 알아선 안 될 비밀에 다가선 걸 발견하고는 크게 놀랐을 거요. 그래서 혼비백산해 누군가에게 그 사실을 얘기했고, 그 누군가가 한국에 암살자를 보냈을 거요. 여기까지가 큰 줄기에서 본 전 교수 사건이오." (p.235)

 

그러나 피셔 교수를 만났던 기연은 이렇다 할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한 채 귀국한다. 그리고 다시 최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기연의 도움 요청에 한달음에 달려와준 최 교수는 세 시간여의 작업 끝에 전형우 교수가 로마대학교에서 서지학을 공부하던 당시에 찍었던 사진을 통해 그와 가까웠던 인물인 파블리오 인데르노를 찾아낸다. 바티칸 수장고 관리신부인 그는 교황청에서 발간하는 일간 신문의 독자 문의도 받고 있다. 그를 발견함으로써 미궁에 빠졌던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하게 되는데... 1권은 그렇게 막을 내린 채 2권으로 이어진다.

 

일정한 시간에 매일 반복되는 일들도 여의치 않은 환경에 의해 그 시간을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오늘처럼 종일 흐리고 어둑어둑한 날, 시간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그런 날에 한번 빠져들면 빠져나오는 것조차 힘든 추리소설을 붙잡고 읽는다는 건 까무룩 낮잠에 빠져드는 일보다 더욱 치명적일 수도 있는 일. 나는 그런 사실도 까맣게 잊은 채 위험한 책 읽기에 몰입했다. 벌써 하루가 다 지나간 듯하다. 귀중한 주말 하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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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 미지의 땅에서 들려오는 삶에 대한 울림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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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택지조성사업 현장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나무를 베어내고 산과 구릉의 속살이 드러난 자리에 선캡과 마스크로 중무장을 한 아줌마들이 아주 오래 전의 집터인 듯 보이는 매장문화재 발굴터에서 세월아 네월아 솔질을 하고 있었다. 나무 한 그루 남지 않은 너른 공터에는 뙤약볕과 마른 먼지만 가득했다. 멀리서 바라보면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풍경이었다. 그 허허로운 풍경에 점점이 박힌 저 여인네들은 도대체 누구의 지시를 받고 성과도 없는 무한 반복의 솔질을 해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들의 어깨 위로 비스듬한 석양이 쏟아지고 그들이 앉았던 자리에는 파란 방수포가 씌워졌다.

 

"시간여행을 꿈꾸는 인간의 판타지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고고학이 발달해서 사람들이 꿈꾸던 찬란한 과거 같은 건 없다고 밝혀진다 해도 혹은 인류가 바라마지않는 미래는 결코 오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시간여행을 꿈꿀 것이다. 그 이유는 지금이라는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과 색다를 시공간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호기심에 있다." (p.26)

 

내가 어느 택지조성사업의 현장에서 보았던 황량하고 나른한 풍경은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에도 그대로 옮겨진다. '고고학자들은 흙먼지 자욱한 열악한 환경에서 발굴을 합니다'로 시작되는 그의 저서는 일반 대중이 생각하는 고고학에 대한 편견이나 헛된 상상을 일거에 깨트린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한 장면이나 아프리카 오지의 어느 사막지대에서 거대 공룡의 화석을 발굴하는 그런 장면들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어렵게 발굴한 토기 조각을 통해, 토기의 밑바닥에 남아 있는 식물 성분을 통해 과거의 생활상을 연구하고 그 시절의 문화와 풍습을 상상하며 이를 통하여 알게 된 고고학자들의 지식을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는 게 그들의 임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짧게는 100여 년 전서부터 길게는 수천 년에 이르기까지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더욱 또렷한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고고학자인 셈이다.

 

"사람들이 고고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유물이 주는 여러 가지 창의적인 상상력 때문일 것이다. 박물관 전시품 안에 잇는 유물을 보면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 고고학에서는 하나의 유물을 하나의 관점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또한 새로운 유물은 계속 발견되고 그에 대한 해석 역시 계속 바뀐다. 이렇듯 고고학에는 정답이 없다. 고고학은 매일 바뀌어가는 일상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p.277)

 

고고학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는 내가 고고학이라는 생소한 분야의 이 책에 매료되었던 까닭은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아마도 저자의 유려한 문체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쩌면 그것은 고고학자로서의 풍부한 현장 경험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러시아, 시베리아, 몽골, 중앙아시아, 중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직접 발굴을 주도했다는 저자는 책에서 자신이 경험했던 실제 발굴 이야기들을 실감 나게 전하고 있다.

 

"초원을 조사할 때에 틈만 나면 땅에 누워보곤 한다. 그러면 온갖 풀들의 희미한 향이 더 또렷하게 맡아진다. 민트향, 맵싸한 향, 달콤한 향, 이 초원의 향은 순간 다른 시간으로 나를 데려간다. 수천 년간 이 땅에서 살아온 유목민들의 삶 속으로.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그들과 나는 이렇게 향기로 소통을 한다. 나 혼자 하는 공상일지도 모르겠지만." (p.144)

 

책을 읽는 독자는 고고학이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밝히는 고리타분한 학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예컨대 무덤을 발굴한 고고학자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들을 무덤에서 발굴한 여러 유물을 통해 추론하고, 검증하며, 때로는 상상을 통해 종합한다. 노련한 형사가 작은 단서들을 취합하여 범인을 확증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와 같은 이야기를 확증하기 위해서 고고학자는 무덤을 발굴하고, 향기와 음악과 음식 등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며 마약이나 젓갈 또는 문신과 같은 생소한 분야를 탐험하게 된다. 말하자면 고고학은 한 시대를 연구하는 종합학문인 셈이다.

 

"살아가면서 경험한 행복한 기억은 동시에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때에 대한 슬픈 기억이기도 하다. 타투는 고통스러운 행위이지만 그럼으로써 그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몸의 감촉과 정신의 기억이 함께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타투야말로 몸에 새기는 마음의 지도가 아닐까 싶다." (p.191)

 

나는 산길을 걸을 때마다 과거에 이 길을 걸었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곤 한다. 그들도 나처럼 헐떡거리며 저 언덕을 숨 가쁘게 올랐고, 정상의 바위 위에 앉아 흐르는 땀을 식혔고,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녹색의 삼림을 보며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했을까. 저 멀리 느긋하게 흐르는 시간들을 손에 잡히지 않는 아지랑이처럼 허망하게 바라만 보았을까. 내가 걷는 이 길 위에서 그들도 나처럼 별의별 생각들을 떠올리면서 상념에 젖곤 했을까.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을 읽었던 오늘, 나는 먼 과거를 향해 시간여행을 한다. 그들도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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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일 아침 몇 년째 오르고 있는 산의 초입에는 능선을 따라 오른편에는 어느 종친의 가족묘가 있고  그 주변을 따라 둥글게 철망이 쳐져 있다. 그리고 외부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성 현수막이 걸려 있고, cctv도 서너 대 설치된 듯하다. 무슨 보물을 숨겨둔 곳도 아닌데 어찌 보면 과하다 싶을 정도의 보안 시설을 갖추고 있는 셈인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작년부터는 가족묘의 아래쪽에 있는 좁은 공터에 진돗개인 듯 보이는 개 한 마리를 묶어두었다. 개는 긴 목줄에 묶인 채 오가는 등산객들을 향해 열심히도 짖어댔다.

 

밤이고 낮이고 비 한 방울 피할 곳 없는 공터에서 등산객들을 향해 그저 목이 쉬도록 짖기만 하는 개가 꽤나 안쓰러웠는데 개 주인도 너무 심하다 생각했던지 어느 날 개가 머물 수 있는 개집 하나를 갖다 놓더니 언젠가부터는 밤에는 숫제 개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내가 산을 오르는 새벽 5시 30분께에는 보이지 않던 개는 산을 내려오는 새벽 6시 30분이나 되어서야 보였다. 말하자면 개도 출퇴근을 하는 셈인데 그렇게 대우가 좋아진 탓인지 내리는 눈·비를 고스란히 맞을 수밖에 없었던 초창기의 열악한 환경에서는 등산객을 향해 악을 쓰고 짖기만 했던 험악한 인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등산객이 나타나면 귀찮다는 듯 어슬렁어슬렁 일어나서는 바람 반 소리 반으로 겨우 짖는 시늉만 했다. 그 소리는 마치 하루에 행사 네댓 곳을 소화한 어느 가수의 심드렁한 목소리인 듯 또는 외출에 나서는 허리 굽은 노인의 힘없는 기침 소리인 듯 들렸다. 이를테면 개도 그만의 요령을 터득한 셈인데, 등산객들에게도 이른바 이것이 자신의 소임임을 확실히 알려주는 듯했다. 공짜로 밥을 얻어먹을 수는 없는 일 아니냐는 듯.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인한 일본 여행 자제 움직임이나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나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쓰던 일본산 문구류나 음료 등을 전혀 구매하지 않고 있다. 내 주변에도 적극 홍보하면서 말이다. 이를 두고 노골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하는 토착왜구들도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나는 끝까지 지속해볼 생각이다. 일본 식민지 치하에서 우리나라 국민을 비하하기 위해 사용하던 '냄비 근성'과 같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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